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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웅 ‘Im Hero'(2022)

평가: 2.5/5

트로트는 거들 뿐, 중장년층의 아이돌 임영웅

송가인이 쏘아 올리고 임영웅이 이어받았다.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의 연이은 성공이 젊은 두 트로트 스타를 배출했다. 이중 후발주자로 나선 임영웅의 화력이 굉장하다. 2020년 출연한 < 미스터 트롯 >의 우승 이후 2년 만에 내놓은 첫 번째 정규 음반이 발매 첫날 9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는가 하면 3일차에는 100만 장 이상의 앨범을 팔아 치워 역대 솔로 가수 음반 초동 판매량 1위에 올랐다. 그가 ‘트로트’ 가수임을 염두에 둘 때 새삼 대단한 성과다.

아무리 국내에 트로트 열풍이 일었다 손치더라도 찻잔 속의 태풍이었다. 앨범을 사고, 음악을 소비하는 적극적인 10-20대 향유층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분명 트로트가 일대의 큰 관심을 받긴 했지만 정확히는 얼어 있던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그들을 흔들고 녹였다. 임영웅의 엄청난 음반 판매량 역시 닫혀있던 이들의 지갑을 활짝 열어젖혔다는 측면에서 더 큰 함의를 가진다. 지금의 임영웅은 중장년층의 아이돌이다.

확실한 인기층을 등에 업은 그는 옛 감성의 트로트를 꺼내오기보단 현재의 젊음을 강조한다. 자신의 이름을 앨범 명으로 삼은 신보의 커버 속 임영웅은 반짝이는 트로트 의상이 아닌 말끔한 정장을 입고 어딘지 ‘힙’하고 세련된 시선으로 카메라를 바라본다. 사진만 보았을 땐 ‘트로트’의 잔상이 사실상 전무하다. 수록곡 역시 트로트는 하나의 요소일 뿐이다. 후반부 위치한 ‘사랑역’, ‘보금자리’를 지나 ‘사랑해요 그대를’ 정도만 본적을 드러낸다.

집중한 것은 트로트보다 범보편적인 ‘대중성’이다. 이적이 작사 작곡한 타이틀 ‘다시 만날 수 있을까’는 앞서 드라마 OST로 큰 사랑을 받은 ‘사랑은 늘 도망가’ 풍의 진한 발라드이며 ‘우리들의 블루스’ 역시 비슷한 색감을 지닌다. 이후 흥겨운 후크송 ‘무지개’, 복고풍의 달콤한 세레나데 ‘손이 참 곱던 그대’, ‘사랑해 진짜’ 등의 쉽고 확실한 메인 멜로디를 장착,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이어진다. 트로트가 윗세대의 것이라면 적어도 이 음반에서 그 그림자는 살짝 감춰진다.

레게 리듬에 랩, 전자음을 뒤섞은 ‘A bientot’에 트로트는 없다. 애끓는 발라드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앨범은 무리 없이 그의 주요 팬층을 향해 다가서는데 나는 여기서 중장년층의 아이돌 임영웅의 현재가 잘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트로트로 윗세대의 마음을 열었지만 그는 지금 ‘트로트’를 포함한 ‘익숙함’으로 중장년층의 관심을 굳힌다. 얼핏 EDM을 포함한 다채로운 음악 스펙트럼을 담은 앨범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장르의 외피만 벗겨왔을 뿐 메시지 자체는 안정적으로 윗세대 팬층에게로 향한다.

트로트 계의 아이돌 임영웅이 현재 서 있는 그 무대. 빼고 더할 것 없이 익숙한 그의 모습을 모나지 않게 재생산한 앨범이다.

-수록곡-
1.다시 만날 수 있을까
2.무지개
3.손이 참 곱던 그대

4.우리들의 블루스
5.아버지
6.A bientot
7.사랑역
8.보금자리
9.사랑해 진짜
10.연애편지
11.사랑해요 그대를
12.인생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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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세라핌 ‘Fearless'(2022)

평가: 2/5

부유하는 메시지 : 소녀들은 왜 인어공주가 되었나

방탄소년단을 품은 거대 기획사 하이브와 산하 레이블 쏘스뮤직이 함께 만든 걸그룹 르세라핌의 화력이 식지 않고 타오른다. 5월 2일 데뷔 이후 활동 근 한 달 차에 접어든 지금까지 (여러 의미로) 화제의 중심에 섰다. 데뷔 첫날 17만 장의 음반을 팔아 치우며 역대 걸그룹 최대 판매량을 기록하는가 하면 벌써 여러 개의 음악 프로그램 1위를 거머쥐었다.

르세라핌. 즉, 나는 두렵지 않아(IM FEARRLESS)란 글자의 순서를 바꿔 만든 이름만큼 두려운 것 없는 행보다. 거창한 콘셉트와 음반 서사의 확장성을 부여하는 뮤직비디오까지 이들의 앞을 막아설 것이 없는 듯하다. 반면 곡은 의외로 가볍다. 화려하게 사운드를 섞지 않아 단조롭고 정적이다. 타이틀 ‘Fearless’는 자신들을 ‘겁 없는 새로운 b**ch’라 명명하지만 소리를 터트리지 않고 숨을 참는 쪽을 택한다.

‘Blue flame’이나 ‘The great mermaid’도 마찬가지다. 음악적 욕심을 빨간색보다 더 뜨거운 파란 불꽃에 비유한 ‘Blue flame’은 타이틀과 같은 기조를 유지, 앨범에 매끄럽게 녹아든다. ‘하날 위해선 하날 포기하’지 않고 모든 걸 다 갖겠다고 말하는 ‘The great mermaid’도 그렇다. 앞선 B**ch(나쁜 여자)에서 인어공주로 비유 대상만 바꾸었을 뿐 전체의 톤과 메시지는 같다. 다국어로 비장하게 시작하는 첫 곡 ‘The world is my oyster’부터 일관된 논조로 ‘주체성’에서 시작된 ‘차별점’을 내세운다. 하지만,

‘예쁘기만 하고 매력은 없는 / 애들과 난 달라 달라 달라’라고 말하는 있지(ITZY).
‘또 이 어려운 걸 해내지 / 우린 예쁘장한 savage’라고 외치는 블랙핑크.

등의 연장선상에 선 르세라핌이 꺼낸 ‘두렵지 않다’는 주체성 전략은 그다지 차별적이지 않다. 오히려 이제 유행을 넘어 장르가 된 ‘걸 크러시’를 마케팅 전략으로 선택한 것이 또렷이 보인다. 이들의 ‘피어리스’엔 빈틈이 크다. 카메라를 노려보다가도 끝 곡 ‘Sour grapes’에선 ‘눈물 나게 시큼한 게 사랑이면 맛보고 싶지 않다’ 말하는 ‘소녀’로 변모한다. 그룹의 다양한 면을 보여준다손 쳐도 이러한 콘셉트는 여전히 석연찮다.

새로운 차원에 들어오듯 SF적인 첫 곡이 지닌 탈시대성, 과도한 콘셉트가 만든 이미지의 과잉, 이를 통해 실제 주체인 소녀들의 주변화까지. 걸 크러쉬에서 비롯된 주체성이라는 가면을 씀으로써 직접 성애의 대상이 되고, 현실과 동떨어진 콘셉트의 비현실성을 끌어와 실제와 선을 긋는 것마저 전형적이다. 소녀인 듯, 소녀 아닌, 소녀 같은 그룹이 됨으로써 이들이 은근하게 드러낸 살색은(혹은 이를 바라보는 것은) 정당성을 부여 받는다.

테니스복에 하이힐을 신은 의상과 엎드려 몸을 흔드는 뮤직비디오 속 장면 등 그룹의 지금엔 문제가 많다. 한 끗 차이로 색을 달리하는 숭배와 혐오 사이 대상을 주체로 인식하지 않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르세라핌이다. 두려울 게 없다고 드높이는 이들이 완벽한 곡 소화력을 선보일지라도 그 핵심은 지나치게 흐리다. 껍데기만 남은 메시지. 인어공주 등의 비유로 어벌쩡 시도한 대상화하기가 커다란 구멍을 낸다. 자꾸만 그룹 너머 ‘기획’사가 호도한 의도를 생각하게 된다.

-수록곡 –
1.The world is my oyster’
2.Fearless
3.Blue flame
4.The great mermaid
5.Sour grap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