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KPOP Album

뉴진스 ‘NewJeans 2nd EP ‘Get Up”(2023)

평가: 2.5/5

지금 여기 K팝  

영리하고 당차게 ‘K팝’을 (재) 정의한다. 데뷔 초, 별다른 프로모션 없이 기습 공개한 ‘Attention’ 뮤직비디오부터, ‘둥둥 둥둥둥둥’하는 킥 드럼 사운드가 특징적인 저지클럽 열풍을 이끈 ‘Ditto’, 말 많았던 ‘Omg’ 뮤직비디오와 이를 가뿐히 잠재운 퍼포먼스는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획기적으로 만들었다. 눈에 띄게 달랐다. 사운드를 가득 채우고, 파트별 구간을 정확히 나눠 멤버별 이미지를 중시하던 이전 아이돌과 달리 뉴진스는 힘을 풀고 분위기를 타게 한다. 잔잔하게 너울너울. 핑크 팬서리스 & 아이스 스파이스의 ‘Boy’s a liar pt.2’를 위시해 해외 팝 씬에서 인기를 끌고 있고 베드룸팝 계열을 국내에 끌어온 이들은 시작부터 기존 K팝과 다른 노선을 택했다.  

음악은 새로웠고, 전략은 독특했다. 입대 전 단체 활동을 강조하던 방탄소년단처럼 이들 역시 개별 멤버보단 단체로서의 ‘뉴진스’ 어필에 열을 올린다. 늘 하나로 뭉쳐 호흡하는 그룹은 피처폰, 캠코더 등 Y2K 문화를 적극 수용한 뮤직비디오, 스타일링 등으로 젊은 층과 기성세대의 관심을 동시에 사는 데 성공한다. 앞을 내다본 음악과 과거와 손잡은 이미지 메이킹이 뉴진스에게 확실한 캐릭터를 안겼다. 2022년 낸 첫 EP < New Jeans > 이후 발표한 모든 싱글, ‘Ditto’, ‘Omg’과 심지어 코카콜라 CM송인 ‘Zero’마저 전 세계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샀다. 콘셉트나 음악적 변신 없이 일군 성과다.  

신보는 이미 몇 차례 대중 검증에 성공한 그 지층을 밟고 올라선다. 다만 더 가벼워졌다. 3분대를 웃돌던 러닝 타임은 2분 남짓으로 줄었고, 음반 전체를 수놓은 사운드는 더 정제됐다. 프롤로그 ‘New jeans’, 인터루드 ‘Get up’을 포함해 총 6개의 노래를 수록한 작품의 재생 시간은 단 12분. 의도적으로 훅 라인을 앞쪽에 배치, 짧은 시간에 뚜렷한 인상을 심기 위한 전략을 취하고 전보다 음역대를 제한 및 가창, 음색의 통일성에 힘을 쏟은 프로듀싱이 가장 먼저 감지되는 변화다. 핵심은 이 비슷한 질감의 노래 탄생이 시기 적절하다는 데 있다. 요즘 날의 분절된 음악 감상 경향. 즉, 음악이 BGM으로 휘발되는 지금 뉴진스 음반은 언제 어디서 들어도 쉽게 질리지 않는다.  

저지클럽을 중심으로 몽환적인 보컬이 매력적인 ‘Super shy’, 사이렌 소리가 묘한 긴장감을 만드는 ‘ETA’, 물 흐르듯 매끄럽게 떨어져 내리는 ‘Cool with you’ 등 각 음악은 약간의 분위기 차이만 있을 뿐 곡 사이 뚜렷한 경계를 지니지 않는다. 통일(혹은 통제)된 구성은 곧 노래 외부 상황과 결탁하며 새로운 의미를 찾는다. 블랙핑크, 아이브, 있지 등 당당함을 내세운 그룹에게 그 외부 상황이란 곡에서 노래하는 주체, ‘예쁘장한 Savage’나 ‘예쁘기만 하고 매력은 없는 애들과는 다른 나’ 등 구체적으로 집약될 것이나 ‘친구 같은 아이돌’을 표방하는 이들에게 확장의 방향은 ‘뉴진스(그 너머의 나)’로 향한다.  

다시 말해, 곡에서 ‘나’를 특징짓지 않고, 어디에서든 소화 가능한 일명 “숨죽인 음악”을 하는 뉴진스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미국 애니메이션 ‘파워퍼프걸’과 협업해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아이폰 14를 수록곡 ‘ETA’ 영상과 무대에 적극 활용할 수 있었던 것은 단체, 그룹, 혹은 브랜드 ‘뉴진스’ 밖의 많은 것을 톤다운 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제작자 민희진의 능력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데뷔 9개월 만에 멤버 전원이 글로벌 명품 브랜드의 엠배서더가 된 것까지 지금 이들의 브랜드 가치는 최정상을 내달린다.  

작금의 잘나가는 아이돌이 글로벌 엠배서더로 인기를 인정받듯, 이들도 음악 외의 상품들을 대표하며 성공을 자축한다. 그 과정에서 음악은 ‘자체로서’가 아닌 ‘수단으로서’ 쓰인다. 일면, 노래를 부르는 멤버들 역시 음악 안에서만큼은 스스로 존재하지 못한다는 인상이 들기도 한다. K팝이 종국에 산업으로 닻을 내린다면, 신보의 착지는 완벽하다. 뉴진스는 어떤 의미에서든 지금 여기의 K팝을 이끈다. 우리 곁의 친구를 표방하며 동시에 명품을 대표하는 그 이질성을 잊게 할 만큼. 뉴진스는 전형적인 듯 전형적이지 않은 K팝을 한다.  

-수록곡-
1. New jeans
2. Super shy
3. ETA
4. Cool with you
5. Get up
6. ASAP

Categories
Album KPOP Album

유라 ‘꽤 많은 수의 촉수 돌기'(2023)

평가: 3.5/5

음반을 이해하거나 정의 내리는 것이 쉽지 않다. 평단과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EP < Gaussian > 이후 재즈 그룹 만동과 함께 낸 음반 < 이런 분위기는 기회다 >에서 부각된 재즈적 터치가 그의 첫 정규인 이번 신보에 짙게 자리한다. 개인 커리어와 콜라보 음반 사이 연결 고리를 찾자면 그 접촉면은 후자에 더 넓게 포진해 있다. 과거 코스믹 보이와 함께한 싱글 ‘Can I love?’, 기리보이와 손잡은 ‘도쿄’ 같은 곡에서 느껴지던 대중 감성, 이미지가 최근 커리어에서는 많이 옅어졌다. 변화 혹은 자유로움. 작품 첫 장에서 느껴지는 인상이다.  

의중을 알 수 없는 타이틀만큼 수록곡 역시 저마다 난해하고 의문스러운 제목을 가진다. ‘구운듯한 얼굴이 너의 모티프’, ‘허영 깊은 분위기에 실오라기 같은 눈을 가진 자’ 등 쉬이 뜻을 헤아릴 수 없는 노래 명 사이 전곡의 작∙편곡을 함께한 그룹 만동의 멤버이자 베이시스트 손남현의 터치가 가미되자 앨범의 질감은 전에 없이 독특해진다. 희뿌연 연기와 흐릿한 실루엣이 연일 소리로 만들어진다. 모호하고 아슴아슴한 가사의 나열이, 감정 표현을 최대한 거둬 낸 듯 노래하는 유라의 보컬이, 별다른 설명을 덧붙이지 않고, 툭 던져 낸 음반 사이를 자유롭게 오간다.  

해석의 실마리는 귀보다 마음을 열었을 때 다가온다. “순수 현존하려면 바로 응고해야 한다”는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곡들은 찰나의 순간, 기억을 소재로 파편화된 무언가를 표현한다. 거두절미하고 감각한 것들을 적시한 가사는 데뷔 이래 그가 늘 음악을 써온 방식이다. 즉, 재즈에 거점을 두고 다채로운 사운드를 들려주지만 그 문체는 언제나처럼 ‘유라스럽다’. 다양성과 통일성이란 두 가지 틀을 중심으로 자기감정을 노래하는 이 아티스트의 음악은, 애써 길을 찾지 않고, 구태여 길을 잃고자 할 때, 그제서야 우리에게로 온다.

둥둥거리는 베이스와 함께 묘한 긴장감이 서린 ‘목에게’, 전자음을 가미해 복잡한 내면을 서술한 것만 같은 ‘따갑고 부끄러워지는 것’을 지나 중후반부 ‘수풀 연못 색 치마’, ‘그늘덮개’, ‘동물원’로 이어지는 3곡은 이 작품의 핵심이자 정수다. 일면 대표곡 ‘미미’가 떠오르기도 하는 ‘그늘덮개’는 곡 말미 통기타 사운드를 덧대며 ‘그리움’, ‘외로움’을 말로 내뱉지 않으며 포착한다. ‘동물원’은 밴드 셋의 로큰롤로 밝게 서글픔을 노래한다. “저기 봄볕은 오뉴월 물드는 풍경을 볶고 있고”로 시작해 “떠난 자국 위에는 무지개가 생길 거다 말하면서”로 끝나는 노래라니. 근사하다.  

유일한 아쉬움은 음반의 끝이 너무 빠르게 묶여 버린다는 데 있다. 3분 남짓 8개 수록곡으로 정규의 메시지를 다 풀어내기엔 그 무게가 다소 가볍다는 인상도 든다. 한편으론 달려 나가면서, 되레 앨범의 문을 열어둔 채 끝나는 것 같기도 하다. 마치, 빈 공간엔 청자의 해석을 덧대라는 식으로. 자유롭고 풍부한 음반. 주제를 가두지 않고 노래의 끈을 잘라 각자의 순간을 곡에 빗대게 한다. 꿈속인 듯 몽롱하고 현실인 양 비범하다. 언어적 상상력의 끝에 음악이 걸려있을지니, 그걸 잡아 의미를 새기는 건 오롯이 듣는 자들의 몫이다.  

– 수록곡 –
1. 구운듯한 얼굴이 너의 모티프
2. 목에게
3. 따갑고 부끄러워지는 것
4. 수풀 연못 색 치마
5. 그늘 덮개
6. 동물원
7. 허영 깊은 분위기에 실오라기 같은 눈을 가진 자
8. 허무한 허무함의 패턴

Categories
I Am Woman

댄스가수유랑단, 시대를 관통하고 세대를 통합하다.

지난 5월 25일 tvN 새 예능 프로그램 <댄스가수 유랑단>의 막이 올랐다. 시작은 지난해 <서울 체크인>에서 던진 한마디에서 출발한다. “여가수 유랑단을 하면 어떻겠냐”는 이효리의 가벼운 제안이 현실이 됐다.

김완선, 엄정화, 이효리, 보아 그리고 화사가 모였다. “우리가 바라던 무대, 그 이상의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목표로 이들이 한데 뭉쳐 전국을 돈다. 해군사관학교의 작은 강당, 3천여 명의 인파가 모여든 진해군항제 폐막식, 대학가 축제 현장. 이들의 유랑 길이 그 규모를 가리지 않고 펼쳐진다.

여자, 댄스, 가수가 되기까지

대한민국에서 여자, 댄스, 가수로 살아남는 것은 쉽지 않다. 지금은 그나마 시선이 나아졌지만 맏언니 김완선이 데뷔한 1980년대의 분위기는 달랐다. 몸을 흔드는 댄스. 육체에서 분리된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퍼지며 작은 숨소리마저 크게 들리게 되었을 때, 세간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물론 1960년대 ‘키다리 미스터 김’으로 큰 인기를 끈 이금희가 댄스 음악의 원조라 불리기는 하지만, 오늘날 ‘댄스 가수’란 호칭을 굳힌 건 명백히 김완선이다. 17살의 어린 나이에 <독집 제1집>이란 음반으로 데뷔했을 때부터 그가 내세운 건 ‘섹시한 분위기’였다. 트레이드 마크 격인 비음으로 “나 오늘 밤엔 어둠이 무서워요”라고 노래를 부르고, 신체를 적극 활용한 과감한 율동을 선보였다.

섹슈얼리티에 기반한 댄스. 비슷한 시기 소방차, 박남정 등이 댄스 가수로 인기를 끌긴 했지만, 김완선이 불어온 반향에 미치지는 못했다. 폐쇄적이고, 엄숙한 1980년대 대한민국에서 김완선은 은근히 섹슈얼한 면모를 어필하고 이를 압도적 카리스마로 표출하며 그 빈틈을 파고든다. ‘나홀로 뜰앞에서’, ‘리듬 속의 그 춤을’, ‘나홀로 춤을 추긴 너무 외로워’,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로 연타석 홈런을 날렸다. 댄스 가수임에도 산울림의 김창훈, 신중현, 이장희 등 거물급 록, 포크 뮤지션에게 곡을 받으며 장르의 다양성을 포용했고, 춤뿐만 아니라 노래 완성도에도 신경을 썼다.

섹시 가수 우상이 되다

1990년대 박진영이 남성 댄스 가수로 이름을 펼치기 전까지, 댄스 가수는 대부분 여성의 전유물이었다. 물론 박진영 이후에도 댄스는 대한민국에서 여성이 장르의 대표성을 장악한 몇 안 되는 분야다.

엄정화표 댄스 음악에는 스토리가 있었다. 1993년 고 신해철이 써준 ‘눈동자’로 음악계에 발을 디딘 그는 데뷔 초 가수보단 배우로 더 조명을 받는다. 분위기가 반전된 건 1997년 발매한 정규 3집 <후애>의 수록곡 ‘배반의 장미’부터였다. 노래 가사에 맞춰 특유의 표정 연기를 선보이고 몸매의 곡선을 그대로 부각한 의상 등은 대중에게 엄정화의 이름을 아로새긴다. Y2K 새천년의 시작과 종말을 앞둔 때에는 테크노 곡 ‘몰라’로 시대를 응축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엄정화는 ‘Poison’, ‘초대’ 등의 곡을 통해 이별 후의 감정, 아슬아슬하고 아찔한 사랑의 과정 등을 노래하며 제 영역을 구축한다. 반면 이효리는 시작부터 강했다. 요정 콘셉트의 그룹 핑클에서 솔로로 재도약한 2003년부터 그가 내세운 건 주도적이고 주체적이며 당당한 여성상이었다. 10분 만에 널 내 것으로 만들겠다고 노래하는 ’10 MINUTES’가 그 시작. 당시 유행한 힙합 사운드를 바탕으로 카고 바지에 크롭탑을 입고 무대를 활보하던 이효리의 모습은 뭇남성은 물론 여성의 마음까지 훔친다.

몇 차례 표절 관련 문제로 몸살을 앓긴 했지만 이효리는 그야말로 꾸준히 내 것을 하며 길을 개척했다. ‘섹시함’에 집중되어 있던 노래들이 외적 이미지에서 개인 서사 쪽으로 시선을 옮기며 보다 친근한 목소리를 들려주기도 했는데 ‘천하무적 이효리’, ‘이발소 집 딸’ 등의 노래가 꼭 그랬다.

인디 음악가와 협업하며 댄스에 로큰롤, 포크 등의 소스를 이식하고 가장 최근 발매한 정규 음반 < Black >(2017)에서는 일렉트로니카, 트립합을 끌어오기도 했다. 셀프 프로듀싱 및 작사 작곡 비중도 상당하다. 음악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풀어나감에 있어, 대중과 호흡함에 있어 어떤 성숙이 이뤄졌는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No.1’과 ‘Ending Credit’. 시대를 관통하고 세대를 통합하다

이러한 언니들이 ‘No.1’을 부르는 보아의 모습을 보며 눈물짓는 장면은 꽤 인상적이다. 특히 보아는 대형 레이블 소속으로 데뷔부터 ‘기획형 아이돌’이란 반발 아닌 반심 속 활동을 이어왔던 아티스트가 아니던가. 활동 시기는 이효리와 비슷하지만, 워낙 어린 13살에 데뷔한 덕에 풍파도 많았고 변신과 성장의 폭도 컸다. 지금이야 외국 현지 맞춤의 프로덕션이 활성화되어 있지만 보아가 막 일본에 발을 들일 때는 그 어떤 것도 갖춰져 있지 않았다.

그런 그가 2001년 일본 데뷔 당시 부족한 라이브 실력을 지적받고 악착같이 연습을 이어 나갔다는 일화는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진 사실. 데뷔 초 립싱크를 하며 퍼포먼스 위주 공연을 선보이던 보아가 라이브, 댄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까지 흘린 땀방울은 쉽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다. 더욱이 ‘Valenti’, ‘아틀란티스 소녀’, ‘Girls On Top’ 등 히트곡이 있었음에도 어느 정도 회사가 만든 메시지를 중심으로 움직이던 그가 정규 7집 < Only One >(2012)을 기점으로 주도권을 행사하는 모습들은 아시아의 별 보아의 가치를 더욱 드높게 치켜세운다.

김완선으로 시작해, 엄정화, 이효리, 보아를 거쳐 2014년 그룹 마마무를 통해 데뷔한 화사가 힘을 합친 댄스가수 유랑단. 막내 화사가 대표하는 것은 앞선 언니들의 호흡에 맞닿은 ‘섹시함’과 주도적인 ‘자유로움’, 그리고 ‘댄스’다. 몇 차례 화제를 일으킨 자유분방한 화사의 퍼포먼스는 앞선 언니들이 겪었듯 ‘논란’이란 꼬리표가 되어 잡음을 만들었다. 데뷔부터 가창력을 인정받은 화사였고 인기 반열에 오른 후에는 선정적인 옷차림, 댄스에 관심이 집중되며 화사를 막아서는 듯했지만, 솔로 곡 ‘멍청이’, ‘마리아’가 연이어 흥행하며 그는 그 자체로 트렌드가 됐다.

이 여성 댄스 가수들의 유랑이 반가운 건 이 같은 이들의 스토리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대의 관심이 각 아티스트를 조명하든 조명하지 않든 이들이 꾸준히 자신의 자리에서 내 음악을 했다는 사실이 더욱더 방송이 전하는 감동에 불을 지핀다.

이 대목에서 보아의 ‘No.1’과 사랑의 마지막, 혹은 인생의 크레딧이 올라간 후의 감정을 그린 엄정화의 ‘Ending Credit’를 소환하고자 한다. 언제고 넘버 원이기도 하며 또 언젠가 가수로서의 엔딩 크레딧을 조심스레 상상하는 댄스가수들의 유쾌한 공연 방랑기. 5명의 ‘여성’ ‘댄스’ ‘가수’가 모여 시대를 관통하고 세대를 통합하며 우리를 다시 춤추게 한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듯이.

Categories
KPOP Album

르세라핌(LE SSERAFIM) ‘Unforgiven’ (2023)

평가: 2/5

어느 때보다 여성 아이돌의 인기가 뜨거운 지금 르세라핌은 ‘이야기 속 주인공 되기’ 전략으로 차별을 둔다. 에스파가 얼마 전 발매한 신보 < My World >로 가상에서 현실세계로의 이동을 선언했고, 아이브와 (여자)아이들이 ‘주체성’이란 바운더리 내에서 세계관보단 메시지 전파에 열을 올리며 ‘우리 곁의 아이돌’이 된다면 이들은 다르다. 르세라핌이 몰두하는 건 ‘Fearless’ 두려운 것이 없고, ‘Antifragile’ 충격받을수록 더 강해지며, 용서 따위는 바라지 않는 ‘Unforgiven’ 즉, 용서받지 못한 자로서의 ‘나 만들기’이다. 이때 이들의 메시지가 선명해지려면 르세라핌의 세계가 살아있어야 한다. 곤경, 고난, 서사가 맞닿았을 때야 노래의 외피가 두꺼워지기 때문이다.

2022년 데뷔 후 발매한 2장의 EP 수록곡 일부와 7개의 신곡을 묶은 첫 번째 정규음반 < Unforgiven >엔 세계관 정립을 위한 노력이 곳곳에 자리한다. 그 제목부터도 선언적인 ‘The world is my oyster’부터 ‘The hydra’, ‘Burn the bridge’가 대표적이다. 한국어, 일본어, 영어를 혼용해 ‘나는 꺾이지 않아’, ‘나는 점점 더 강해져’, ‘나랑 저 너머로 같이 가자’ 외치는 내레이션은 앨범에 독특한 질감을 형성하며 곡에 서사를 덧댄다. 실제로 앞서 언급한 노래들은 각각 ‘Fearless’, ‘Antifragile’, ‘Unforgiven’의 바로 앞에 배치되며 이어지는 음악의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또 그에 맞는 이미지를 직선적으로 그려낸다.

친절한 안내를 통해 다다른 르세라핌의 ‘현실’은 여기가 아니라 ‘저 너머’에 가깝다. 그룹 세계관을 웹툰으로 그린 < 크림슨 하트>가 수록곡 ‘Blue flame’을 BGM으로 “푸른 반딧불이를 따라 마법의 황야”로 떠나는 여정을 담듯, 이들은 계속해서 ‘저 너머’ 어딘가로 ‘모험’을 떠난다. 신보의 후반부 배치된 신곡들로 미뤄볼 때 금번 이들의 행보는 용서받지 못할지라도 금기를 깨고 앞으로 나아가는 쪽으로 향한다. 타이틀 ‘Unforgiven’의 손을 맞잡고 앞으로 걸어 나가는 퍼포먼스가 이를 증명, 음악관에 힘을 싣고자 한다.

이처럼 음반은 내레이션, 콘셉트 확장을 위한 웹툰, 댄스 퍼포먼스 등 그룹 세계관 형성을 위해 총력을 다하지만 되려 작업의 단합력이 부족하다. ‘Unforgiven’을 두고, 르세라핌을 “용서하지 않은 자가 누구냐”라 질문은 이들이 만들어 나가는 서사의 기반이 탄탄치 않음을 보여준다. 이야기의 빈틈을 메울 만큼 음악이 강하지도 않다. 영화 < 석양의 무법자 >의 메인 선율을 가져오고, 유명 기타리스트 나일 로저스가 참여한 것이 무색하게도 곡에 이 소스들의 잔향은 옅다. 애써 귀 기울이지 않으면 흔적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

다시 말해, “우리들 만의 길을 가겠다”는 르세라핌의 도전이 기존 작업물의 모음집 격인 이번 음반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서사로 여타 아이돌과 구별되는 지점을 만들려 했으나 갑자기 등장하는 흥겨운 브라스 세션 기반의 ‘No-return’이 말하는 모험에 동참하고 싶은 의지가 지금으로써는 잘 생기지 않는다. 뜬금없는 위치에 배치된 팬송 ‘피어나’, 이지 리스닝 계열의 ‘Flash forward’, 라틴 장르를 가져온 끝 곡 ‘Fire in the belly’로 이어지는 구성 역시 헐겁다. 금기를 부수겠다며 강렬한 모습을 보이다 급 힘을 풀어버리니 이들의 외침도 흩어져 버린다.

음악과 서사가 합쳐져 시너지를 낼 때, 르세라핌의 모험은 생명력을 얻는다. 그것이 이들이 데뷔 이래 지금껏 몰두하는 단 한 가지 가장 큰 지향이다. 목적지가 어딘지 불확실한 지금, 이 연대에 손을 얹기가 어렵다. 장황하다. 캐릭터 혹은 주인공 만들기에 급급해 중심이 흔들린 음반. 정리가 필요하다.

– 수록곡 –
1. The world is my oyster
2. Fearless
3. Blue flame
4. The hydra
5. Antifragile
6. Impurities
7. Burn the bridge
8. Unforgiven (Feat. Nile Rodgers)
9. No-return (Into the unknown)
10. 이브, 프시케 그리고 푸른 수염의 아내
11. 피어나 (Between you, me and the lamppost)
12. Flash forward
13. Fire in the belly

Categories
Feature

피프티 피프티 ‘Cupid’가 영미 차트에 명중한 음악적 이유를 쏘아보다!

피프티 피프티의 고공행진이 계속된다. 2022년 11월 내놓은 데뷔 음반 < The Fifty > 이후 발매한 첫 번째 싱글 ‘Cupid’의 이야기다. 이제 데뷔 6개월 차에 접어든 신인 그룹에, 국내에선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지만 해외 차트에서 먼저 이 곡을 알아보고 상위권에 올렸다. 숏폼 플랫폼 틱톡(Tiktok) 발, 바이럴이 인기의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프리 코러스 부분을 잘라 속도를 올린 스페드업(Sped up, Speed up의 준말로 노래의 속도를 빠르게 올린 음원) 버전을 중심으로 너른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위캔드 & 아리아나 그란데 ‘Die for you’, 핑크팬서리스 & 아이스 스파이스 ‘Boy’s A Liar, Pt. 2’, 코이 르레이 ‘Players’ 등 요새 차트를 수놓은 많은 히트곡이 틱톡의 수혜를 입는다.

하지만 틱톡에서 인기를 끈 곡이 다 차트 상위권을 순항하는 것은 아니다. 빠르게 순위권에 올랐다고 해도 그 수치를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Cupid’는 다르다. 천천히 끓어오르는 중이다. 지난 13일(현지 시각) 공개된 영국의 오피셜 싱글차트 톱 100에 8위로 안착하며 K팝 여성 아이돌 그룹 사상 가장 높은 성과를 내는가 하면, 9일(현지 시각) 미국의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선 19위, 16일(현지 시각)엔 전주보다 2계단 상승한 17위에 올랐다. 올해 2월 24일 발표한 곡으로 한 달여 만에 영미 차트 100위권 안에 오르고 이후 꾸준히 가속도를 냈다. 곡이 좋기 때문에 만들어진 성과다. 풀이하면 완성도 높은 노래였기에 틱톡의 수혜를 입을 수 있었다.

‘Cupid’가 영미권을 지나 세계 음악시장에 화살을 명중할 수 있었던 원인을 좇아본다. 핵심은 ‘음악’이며 그 시작은 ‘프로듀싱’에 있다.

기존 K팝과 다르게

유튜브 공개 2주 만에 1000만 조회수 달성을 앞둔 ‘Live in studio FIIFTY FIFTY’가 실마리다. 처음부터 해외 시장을 염두에 두고 곡을 썼다는 소속사 대표의 말처럼 ‘Cupid’는 한국어 버전과 랩 부분을 빼고 모든 가사를 영어로 쓴 트윈버전(Twin ver.)이 동시에 발매됐다. 영미 차트를 중심으로 외국인들의 관심을 쉽고 빠르게 받게 된 데에는 이 트윈버전의 역할이 컸다. 영상은 ‘Cupid twin ver.’을 멤버들이 직접 라이브로 부르는 장면을 담는다.

현재 이 영상의 제일 핫한 인기 댓글은 “오디오 엔지니어의 월급을 올려줘야 한다”이다. 소리의 톤이 부드럽고 믹싱이 훌륭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피프티 피프티는 데뷔 때부터 이 ‘부드러움’에 강수를 뒀던 그룹이다. 데뷔 음반 < The Fifty >의 대다수 곡 중 특히 타이틀 ‘Higher’가 그랬다. 이 편안함이 이들이 여타 K팝 그룹과 다른 점이었다. 한 번에 시선을 잡아끌 강한 사운드, 또 다른 유희 거리를 만들어 줄 세계관 없이 그룹은 “듣기 편한 음악이라는 것만으로도 현 K팝 신에서 돋보일 수 있는 위치를 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정확한 유효타였다.

이를 위해 이들이 포기한 것은 ‘가창력 어필 포인트’다. 강한 고음으로 내지르는 구간이 없다. 뉴진스의 ‘Ditto’, 트리플 에스의 ‘Rising’ 역시 일정 부분 힘을 뺀 음악이긴 하나 무게 중심이 ‘사운드 톤’에 쏠리지 않았다. 더하여 눈여겨 봐야 할 지점은 가창력을 부각하려 하지 않았음에도 그룹의 가창이 계속해서 관심을 끈다는 사실이다.

심심찮게 이들의 음악에서 197~80년대 뮤지션인 아바, 카펜터스의 향취를 느낀다는 후기가 이어진다. 또한, 메인 보컬 아란, 시오의 음색을 지목하는 댓글도 많다. 각각 중저음, 메조소프라노의 음역을 지닌 이들의 보이스 칼라가 그만큼 돋보인다. 래퍼 라인인 키나, 새나를 향한 애정 어린 후기도 많다. 즉, 각기 다른 음색에 저마다 출중한 보컬 실력을 지녔다는 거다. 보컬의 강조와 보컬에서의 강점. K팝 레드오션에서 그룹이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란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딘, 크러쉬, 예바(YEBBA)와 같은 요새 아티스트를 즐겨 듣는 그룹이 요즘 음악과는 다른 스타일을 들려주게 된 것은 프로듀싱이 의도한 효과일 가능성이 크다. 여러 차례 곡의 프로듀서 안성일(SIAHN)은 “노래 자체의 멜로디와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다른 부분을 최소화 시켰다”고 밝혔는데

그의 이러한 접근이 멤버들의 힘을 뺀 창법으로 이어지며 색다른 K팝의 창조로 이어졌다고 본다.   

디스코 팝을 넘어 그때 그 시절 버블껌 음악까지

이 색다른 K팝은 K보다 ‘팝’ 역사 쪽에 그 기원을 둔다. 현재 이들의 음악을 두고, 2019년 큰 인기를 끈 도자 캣의 ‘Say so’에서 비롯된 디스코팝 계열을 많이 인용하나 이는 반쪽짜리 해석이다. 물론 도자 캣처럼 틱톡을 통해 인기를 끌었고, 그의 음악처럼 소프트한 복고풍의 디스코 사운드를 근간으로 하고 있긴 하지만, ‘Cupid’는 디스코와 곁들여진 드럼 사운드에 귀 기울였을 때 더 맛이 사는 곡이다. 마치 기타 소리를 죽이고 몽환적이고 몽글몽글한 사운드를 들려준 존 메이어의 ‘New light’처럼 말이다.

따라서 굳이 ‘Cupid’의 사운드 핵심을 뽑자면 그건 소프트한 드럼이다. 날카롭기보다는 끝을 뭉툭하게 다듬은 드럼이 곡에 특유의 꿈결(dreamy) 같은 분위기를 완성시킨다. 또 하나 이들 노래가 쉽게 귀에 감기는 이유는 곡이 1960대부터 인기 끈 ‘버블껌 음악’을 떠오르게 한다는 데 있다.

버블껌 음악은 쉽게 말해 오늘날 아이돌 음악의 효시이다. 10대들이 하거나 또는 그들을 겨냥한 감각적인 음악을 뜻하는 말로 주로 10대들이 좋아하는 풍선껌(버블껌)처럼 달콤하고 쉬운 노래를 의미한다. 당시 굵직한 인기를 끌었던 몽키스, 오하이오 익스프레스를 거쳐 마이클 잭슨이 있었던 1970년대의 잭슨 파이브 등이 다 이 계열에 속한다. 그중 ‘Cupid’에게선 토미 로의 ‘Dizzy’, 아치스 ‘Sugar sugar’, 숀 캐시디 ‘da doo ron ron’ 같이 밝고 달콤한 향이 짙게 묻어난다.  

다시 말해, ‘Cupid’가 응축한 복고는 디스코에서 시작된다기보다 영미권의 그때 그 시절 아이돌 음악을 생각나게 한다는 점에 있다. 틱톡으로 흥한 모든 노래가 차트 상위권에 오르지는 못하지만 틱톡으로 빛을 본 음악은 더 많은 사람에게 가 닿을 가능성이 높다. 이를 뒷받침하듯 곡은 2030 이용자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스트리밍 사이트 스포티파이 데일리 톱송 차트에서 글로벌 4위 미국 8위 영국 10위에 오르는가 하면 연령층이 다소 높은 아이튠즈 다운로드 순위에서도 40위 권을 오르내리며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K팝 열혈 팬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다양한 연령층에게 고루 사랑받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만들어진 성공, 이유 있는 흥행

이들의 성공 옆에 붙는 ‘틱톡’, ‘바이럴’, ‘좋은 음악의 힘’과 같은 수식어는 정확히 만들어진, 의도된 성과이다. 서로 다른 음색을 지닌 멤버들을 모으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고, 그룹의 영어공부에 힘쓴 것은 물론, 이들을 관리하는 이준영 본부장(A&R 총괄), 김지훈 팀장(글로벌 PR 담당) 등을 모두 해외 프로덕션에 최적화 된 인물로 구축했다는 탄생 비화까지 모든 곳에 보이지 않는 땀방울이 묻어있다. 어쩌면 ‘Cupid’를 향한 가장 큰 상찬의 말은 ‘K팝인지 몰랐다’는 댓글일 수도 있다.

처음부터 국내보다 외수 시장을 위해 맞춘 곡으로 영어 발음까지 하나하나 교정해 만든 ‘Cupid’. 해외 유학 없이 전 멤버가 한국에서 자랐고, 이곳에서 꿈을 키운 이들이 일군 성과는 그래서 값지고 그렇게 더 체계적이었다. 현재 틱톡에 업로드된 ‘Cupid’ 관련 영상의 수는 200만 개가 넘는다. 안무를 따라 하고 곡의 일부를 각색해 만든 여러 리액션 비디오 속 인종과 나이대는 손에 잡을 수 없을 만큼 넓다. 이 평이한 댄스 라인과 가사까지 모두 의도된 작품이었다고 하니, 그들의 성공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기대된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중소돌의 기적. 이 흥행이 너무나도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