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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세라핌(LE SSERAFIM) ‘Unforgiven’ (2023)

평가: 2/5

어느 때보다 여성 아이돌의 인기가 뜨거운 지금 르세라핌은 ‘이야기 속 주인공 되기’ 전략으로 차별을 둔다. 에스파가 얼마 전 발매한 신보 < My World >로 가상에서 현실세계로의 이동을 선언했고, 아이브와 (여자)아이들이 ‘주체성’이란 바운더리 내에서 세계관보단 메시지 전파에 열을 올리며 ‘우리 곁의 아이돌’이 된다면 이들은 다르다. 르세라핌이 몰두하는 건 ‘Fearless’ 두려운 것이 없고, ‘Antifragile’ 충격받을수록 더 강해지며, 용서 따위는 바라지 않는 ‘Unforgiven’ 즉, 용서받지 못한 자로서의 ‘나 만들기’이다. 이때 이들의 메시지가 선명해지려면 르세라핌의 세계가 살아있어야 한다. 곤경, 고난, 서사가 맞닿았을 때야 노래의 외피가 두꺼워지기 때문이다.

2022년 데뷔 후 발매한 2장의 EP 수록곡 일부와 7개의 신곡을 묶은 첫 번째 정규음반 < Unforgiven >엔 세계관 정립을 위한 노력이 곳곳에 자리한다. 그 제목부터도 선언적인 ‘The world is my oyster’부터 ‘The hydra’, ‘Burn the bridge’가 대표적이다. 한국어, 일본어, 영어를 혼용해 ‘나는 꺾이지 않아’, ‘나는 점점 더 강해져’, ‘나랑 저 너머로 같이 가자’ 외치는 내레이션은 앨범에 독특한 질감을 형성하며 곡에 서사를 덧댄다. 실제로 앞서 언급한 노래들은 각각 ‘Fearless’, ‘Antifragile’, ‘Unforgiven’의 바로 앞에 배치되며 이어지는 음악의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또 그에 맞는 이미지를 직선적으로 그려낸다.

친절한 안내를 통해 다다른 르세라핌의 ‘현실’은 여기가 아니라 ‘저 너머’에 가깝다. 그룹 세계관을 웹툰으로 그린 < 크림슨 하트>가 수록곡 ‘Blue flame’을 BGM으로 “푸른 반딧불이를 따라 마법의 황야”로 떠나는 여정을 담듯, 이들은 계속해서 ‘저 너머’ 어딘가로 ‘모험’을 떠난다. 신보의 후반부 배치된 신곡들로 미뤄볼 때 금번 이들의 행보는 용서받지 못할지라도 금기를 깨고 앞으로 나아가는 쪽으로 향한다. 타이틀 ‘Unforgiven’의 손을 맞잡고 앞으로 걸어 나가는 퍼포먼스가 이를 증명, 음악관에 힘을 싣고자 한다.

이처럼 음반은 내레이션, 콘셉트 확장을 위한 웹툰, 댄스 퍼포먼스 등 그룹 세계관 형성을 위해 총력을 다하지만 되려 작업의 단합력이 부족하다. ‘Unforgiven’을 두고, 르세라핌을 “용서하지 않은 자가 누구냐”라 질문은 이들이 만들어 나가는 서사의 기반이 탄탄치 않음을 보여준다. 이야기의 빈틈을 메울 만큼 음악이 강하지도 않다. 영화 < 석양의 무법자 >의 메인 선율을 가져오고, 유명 기타리스트 나일 로저스가 참여한 것이 무색하게도 곡에 이 소스들의 잔향은 옅다. 애써 귀 기울이지 않으면 흔적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

다시 말해, “우리들 만의 길을 가겠다”는 르세라핌의 도전이 기존 작업물의 모음집 격인 이번 음반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서사로 여타 아이돌과 구별되는 지점을 만들려 했으나 갑자기 등장하는 흥겨운 브라스 세션 기반의 ‘No-return’이 말하는 모험에 동참하고 싶은 의지가 지금으로써는 잘 생기지 않는다. 뜬금없는 위치에 배치된 팬송 ‘피어나’, 이지 리스닝 계열의 ‘Flash forward’, 라틴 장르를 가져온 끝 곡 ‘Fire in the belly’로 이어지는 구성 역시 헐겁다. 금기를 부수겠다며 강렬한 모습을 보이다 급 힘을 풀어버리니 이들의 외침도 흩어져 버린다.

음악과 서사가 합쳐져 시너지를 낼 때, 르세라핌의 모험은 생명력을 얻는다. 그것이 이들이 데뷔 이래 지금껏 몰두하는 단 한 가지 가장 큰 지향이다. 목적지가 어딘지 불확실한 지금, 이 연대에 손을 얹기가 어렵다. 장황하다. 캐릭터 혹은 주인공 만들기에 급급해 중심이 흔들린 음반. 정리가 필요하다.

– 수록곡 –
1. The world is my oyster
2. Fearless
3. Blue flame
4. The hydra
5. Antifragile
6. Impurities
7. Burn the bridge
8. Unforgiven (Feat. Nile Rodgers)
9. No-return (Into the unknown)
10. 이브, 프시케 그리고 푸른 수염의 아내
11. 피어나 (Between you, me and the lamppost)
12. Flash forward
13. Fire in the be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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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

피프티 피프티 ‘Cupid’가 영미 차트에 명중한 음악적 이유를 쏘아보다!

피프티 피프티의 고공행진이 계속된다. 2022년 11월 내놓은 데뷔 음반 < The Fifty > 이후 발매한 첫 번째 싱글 ‘Cupid’의 이야기다. 이제 데뷔 6개월 차에 접어든 신인 그룹에, 국내에선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지만 해외 차트에서 먼저 이 곡을 알아보고 상위권에 올렸다. 숏폼 플랫폼 틱톡(Tiktok) 발, 바이럴이 인기의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프리 코러스 부분을 잘라 속도를 올린 스페드업(Sped up, Speed up의 준말로 노래의 속도를 빠르게 올린 음원) 버전을 중심으로 너른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위캔드 & 아리아나 그란데 ‘Die for you’, 핑크팬서리스 & 아이스 스파이스 ‘Boy’s A Liar, Pt. 2’, 코이 르레이 ‘Players’ 등 요새 차트를 수놓은 많은 히트곡이 틱톡의 수혜를 입는다.

하지만 틱톡에서 인기를 끈 곡이 다 차트 상위권을 순항하는 것은 아니다. 빠르게 순위권에 올랐다고 해도 그 수치를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Cupid’는 다르다. 천천히 끓어오르는 중이다. 지난 13일(현지 시각) 공개된 영국의 오피셜 싱글차트 톱 100에 8위로 안착하며 K팝 여성 아이돌 그룹 사상 가장 높은 성과를 내는가 하면, 9일(현지 시각) 미국의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선 19위, 16일(현지 시각)엔 전주보다 2계단 상승한 17위에 올랐다. 올해 2월 24일 발표한 곡으로 한 달여 만에 영미 차트 100위권 안에 오르고 이후 꾸준히 가속도를 냈다. 곡이 좋기 때문에 만들어진 성과다. 풀이하면 완성도 높은 노래였기에 틱톡의 수혜를 입을 수 있었다.

‘Cupid’가 영미권을 지나 세계 음악시장에 화살을 명중할 수 있었던 원인을 좇아본다. 핵심은 ‘음악’이며 그 시작은 ‘프로듀싱’에 있다.

기존 K팝과 다르게

유튜브 공개 2주 만에 1000만 조회수 달성을 앞둔 ‘Live in studio FIIFTY FIFTY’가 실마리다. 처음부터 해외 시장을 염두에 두고 곡을 썼다는 소속사 대표의 말처럼 ‘Cupid’는 한국어 버전과 랩 부분을 빼고 모든 가사를 영어로 쓴 트윈버전(Twin ver.)이 동시에 발매됐다. 영미 차트를 중심으로 외국인들의 관심을 쉽고 빠르게 받게 된 데에는 이 트윈버전의 역할이 컸다. 영상은 ‘Cupid twin ver.’을 멤버들이 직접 라이브로 부르는 장면을 담는다.

현재 이 영상의 제일 핫한 인기 댓글은 “오디오 엔지니어의 월급을 올려줘야 한다”이다. 소리의 톤이 부드럽고 믹싱이 훌륭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피프티 피프티는 데뷔 때부터 이 ‘부드러움’에 강수를 뒀던 그룹이다. 데뷔 음반 < The Fifty >의 대다수 곡 중 특히 타이틀 ‘Higher’가 그랬다. 이 편안함이 이들이 여타 K팝 그룹과 다른 점이었다. 한 번에 시선을 잡아끌 강한 사운드, 또 다른 유희 거리를 만들어 줄 세계관 없이 그룹은 “듣기 편한 음악이라는 것만으로도 현 K팝 신에서 돋보일 수 있는 위치를 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정확한 유효타였다.

이를 위해 이들이 포기한 것은 ‘가창력 어필 포인트’다. 강한 고음으로 내지르는 구간이 없다. 뉴진스의 ‘Ditto’, 트리플 에스의 ‘Rising’ 역시 일정 부분 힘을 뺀 음악이긴 하나 무게 중심이 ‘사운드 톤’에 쏠리지 않았다. 더하여 눈여겨 봐야 할 지점은 가창력을 부각하려 하지 않았음에도 그룹의 가창이 계속해서 관심을 끈다는 사실이다.

심심찮게 이들의 음악에서 197~80년대 뮤지션인 아바, 카펜터스의 향취를 느낀다는 후기가 이어진다. 또한, 메인 보컬 아란, 시오의 음색을 지목하는 댓글도 많다. 각각 중저음, 메조소프라노의 음역을 지닌 이들의 보이스 칼라가 그만큼 돋보인다. 래퍼 라인인 키나, 새나를 향한 애정 어린 후기도 많다. 즉, 각기 다른 음색에 저마다 출중한 보컬 실력을 지녔다는 거다. 보컬의 강조와 보컬에서의 강점. K팝 레드오션에서 그룹이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란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딘, 크러쉬, 예바(YEBBA)와 같은 요새 아티스트를 즐겨 듣는 그룹이 요즘 음악과는 다른 스타일을 들려주게 된 것은 프로듀싱이 의도한 효과일 가능성이 크다. 여러 차례 곡의 프로듀서 안성일(SIAHN)은 “노래 자체의 멜로디와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다른 부분을 최소화 시켰다”고 밝혔는데

그의 이러한 접근이 멤버들의 힘을 뺀 창법으로 이어지며 색다른 K팝의 창조로 이어졌다고 본다.   

디스코 팝을 넘어 그때 그 시절 버블껌 음악까지

이 색다른 K팝은 K보다 ‘팝’ 역사 쪽에 그 기원을 둔다. 현재 이들의 음악을 두고, 2019년 큰 인기를 끈 도자 캣의 ‘Say so’에서 비롯된 디스코팝 계열을 많이 인용하나 이는 반쪽짜리 해석이다. 물론 도자 캣처럼 틱톡을 통해 인기를 끌었고, 그의 음악처럼 소프트한 복고풍의 디스코 사운드를 근간으로 하고 있긴 하지만, ‘Cupid’는 디스코와 곁들여진 드럼 사운드에 귀 기울였을 때 더 맛이 사는 곡이다. 마치 기타 소리를 죽이고 몽환적이고 몽글몽글한 사운드를 들려준 존 메이어의 ‘New light’처럼 말이다.

따라서 굳이 ‘Cupid’의 사운드 핵심을 뽑자면 그건 소프트한 드럼이다. 날카롭기보다는 끝을 뭉툭하게 다듬은 드럼이 곡에 특유의 꿈결(dreamy) 같은 분위기를 완성시킨다. 또 하나 이들 노래가 쉽게 귀에 감기는 이유는 곡이 1960대부터 인기 끈 ‘버블껌 음악’을 떠오르게 한다는 데 있다.

버블껌 음악은 쉽게 말해 오늘날 아이돌 음악의 효시이다. 10대들이 하거나 또는 그들을 겨냥한 감각적인 음악을 뜻하는 말로 주로 10대들이 좋아하는 풍선껌(버블껌)처럼 달콤하고 쉬운 노래를 의미한다. 당시 굵직한 인기를 끌었던 몽키스, 오하이오 익스프레스를 거쳐 마이클 잭슨이 있었던 1970년대의 잭슨 파이브 등이 다 이 계열에 속한다. 그중 ‘Cupid’에게선 토미 로의 ‘Dizzy’, 아치스 ‘Sugar sugar’, 숀 캐시디 ‘da doo ron ron’ 같이 밝고 달콤한 향이 짙게 묻어난다.  

다시 말해, ‘Cupid’가 응축한 복고는 디스코에서 시작된다기보다 영미권의 그때 그 시절 아이돌 음악을 생각나게 한다는 점에 있다. 틱톡으로 흥한 모든 노래가 차트 상위권에 오르지는 못하지만 틱톡으로 빛을 본 음악은 더 많은 사람에게 가 닿을 가능성이 높다. 이를 뒷받침하듯 곡은 2030 이용자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스트리밍 사이트 스포티파이 데일리 톱송 차트에서 글로벌 4위 미국 8위 영국 10위에 오르는가 하면 연령층이 다소 높은 아이튠즈 다운로드 순위에서도 40위 권을 오르내리며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K팝 열혈 팬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다양한 연령층에게 고루 사랑받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만들어진 성공, 이유 있는 흥행

이들의 성공 옆에 붙는 ‘틱톡’, ‘바이럴’, ‘좋은 음악의 힘’과 같은 수식어는 정확히 만들어진, 의도된 성과이다. 서로 다른 음색을 지닌 멤버들을 모으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고, 그룹의 영어공부에 힘쓴 것은 물론, 이들을 관리하는 이준영 본부장(A&R 총괄), 김지훈 팀장(글로벌 PR 담당) 등을 모두 해외 프로덕션에 최적화 된 인물로 구축했다는 탄생 비화까지 모든 곳에 보이지 않는 땀방울이 묻어있다. 어쩌면 ‘Cupid’를 향한 가장 큰 상찬의 말은 ‘K팝인지 몰랐다’는 댓글일 수도 있다.

처음부터 국내보다 외수 시장을 위해 맞춘 곡으로 영어 발음까지 하나하나 교정해 만든 ‘Cupid’. 해외 유학 없이 전 멤버가 한국에서 자랐고, 이곳에서 꿈을 키운 이들이 일군 성과는 그래서 값지고 그렇게 더 체계적이었다. 현재 틱톡에 업로드된 ‘Cupid’ 관련 영상의 수는 200만 개가 넘는다. 안무를 따라 하고 곡의 일부를 각색해 만든 여러 리액션 비디오 속 인종과 나이대는 손에 잡을 수 없을 만큼 넓다. 이 평이한 댄스 라인과 가사까지 모두 의도된 작품이었다고 하니, 그들의 성공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기대된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중소돌의 기적. 이 흥행이 너무나도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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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 쿤스트(Code Kunst) ‘Remember Archive'(2023)

평가: 3.5/5

당신의 삶은 안녕한지 묻게 하는 음반이다. “10년 동안 기억에 남는 순간들만 뽑아 곡으로 만들었다”는 그의 말처럼 정규 5집에는 17개의 많은 수록곡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들이 소환된다. 이는 팬과 뮤지션의 사랑 한담이 되기도, 지구 멸망 55분 전 애인에게 전하는 마지막 메시지가 되기도, 힘들 때 조금만 더 해보자는 외침이 되기도 한다. 저마다 뚜렷한 장면들을 소환해 내 삶을 찬찬히 돌아본다. 따뜻하고, 힙하게.

8번 트랙 ‘In the attic’ 즉, ‘다락방에서’라는 수록곡을 기점으로 위편은 주류 차트에서도 무난히 사랑받을 ‘힙’한 트랙이, 아래쪽에는 톤 다운된 ‘따뜻한’ 곡들이 담겼다. 앞 편의 “널 한입 베어 먹으면 라랄라”라는 섬뜩한 가사로 뮤지션과 팬 사이 연애담을 그린 ‘Jumper’는 리드미컬한 베이스라인과 개코, 송민호(MINO)의 상반된 목소리로 호흡을 다지고, 뒤편의 백예린, pH-1의 매혹적인 목소리가 인상적인 발라드 ‘Page 1’은 ‘내가 모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 나의 첫 페이지로 돌아가고 싶다’ 노래하는 식이다.

전 후반부의 음악색이 상반되는 와중, 크러쉬, 이하이, 타이거JK 등 막강한 피처링 진의 활용이 눈에 띈다. 지난 음반들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뮤지션들의 목소리를 빌어 내 얘기를 전한다. 이때 코드 쿤스트는 앞보다는 옆과 뒤에 선다. 호미들의 친(CHIN)이 작사에 참여한 드릴 힙합곡 ‘Crew’에선 친의 색이 강하게 느껴지고, 수민(SUMIN)이 함께한 ‘Terminal’은 관능적인 베이스라인과 신시사이저가 어우러지며 수민의 흔적이 강하게 드러난다.

피처링 아티스트에게 많은 역할을 내어주며 추억을 회고하고자 하는 그의 시도는 나의 개인적 경험이 어떻게 좀 더 범대중적으로 확장될 수 있느냐 하는 고민과도 맞닿아있다. 이를 증명하듯 신보엔 그의 출발이던 힙합의 색은 많이 빠졌고 전작 4집 < People >와 비슷하게 잘 들리고, 잘 다가오는 알앤비, 팝이 주를 이룬다. 도입부 ‘Bad bad’, ‘Circle’ 등 화려한 트랙이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잔잔하고 감성적인 분위기가 대다수를 이룬다.

귀에 꽂히는 히트 싱글의 한방보다 모든 수록곡이 고른 완성도를 지녔다. 피처링으로 협업한 뮤지션의 색과 주인장 코드 쿤스트의 설계가 매끄럽게 어우러져 볼륨감 있는 신시사이저로 부드럽게 문 닫는 끝 곡 ‘Oㅁ’에 이르면 까슬까슬한 여운이 귓가를 감돈다. ‘Jumper’에서 송민호의 거친 래핑이나, ’55’ 속 백예린과 웬디의 감정 표현의 격차가 조금은 이질적이다는 인상도 들긴 하지만, 이를 무마할 시너지가 이 앨범 안에 담겨있다. 가사와 선율을 좇아 하나하나 곡에 기울이다 보면 각자의 기억 편린이 슬며시 떠오를, 코드 쿤스트의 음악 스타일이 잔상처럼 남는 음반.

-수록곡–
1. Remember archive
2. Jumper(Feat. 개코, MINO)
3. Bad bad(Feat. Tabber, 박재범) 
4. Circle(Feat. Crush)

5. Home boy(Feat. 이하이)
6. Woode(Feat. 우원재)
7. Shine(Feat. 우원재, Tiger JK, JUSTHIS)
8. In the attic
9. Page 1(Feat. 백예린, pH-1)
10. 이불(Feat. Big Naughty)
11. Little bit(Feat. DeVita)
12. 55(Feat. 백예린, 웬디)
13. Terminal(Feat. SUMIN, 키드밀리, CHAI)
14. Petty(Feat. CAMO, Paul Blanco)
15. 911(Feat. 잭슨)
16. Crew(Feat. 쿠기, Paloalto, Chin)
17. oㅁ(Feat. meen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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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이즈(THE BOYZ) ‘Be Awake’ (2023)

평가: 3.5/5

6개의 수록곡이 담긴 짧은 EP다. 노래 수는 적지만 흔적만은 짙다. 전자음을 효과적으로 운용해 곡의 쫀쫀한 질감을 살려냄은 물론, 다층의 코러스, 휘파람 사운드, 볼륨감 있는 신시사이저를 적절하게 사용해 각 곡이 저마다 뚜렷하다.

‘사랑을 자각한 소년들이 강제적인 금기에 반항하고 본능에 이끌려 사랑을 쟁취해 나간다’는 콘셉트에 충실하다. 엑소의 ‘Love shot’이 연상되는 타이틀 ‘Roar’는 훅의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이다. ‘악’, ‘타락한 천사’, ‘낙원’, ‘욕망’과 같은 단어를 쓴 콘셉츄얼한 가사 사이 힘있게 직선적으로 내리꽂히는 전자음과 미드템포로 흘러가는 선율의 이중적 맞부딪힘이 좋다. 브릿지 부분에 두껍게 쌓이는 코러스까지 노래 곳곳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이는 퓨처베이스를 적당히 녹여낸 첫 곡 ‘Awake’, 후반부 베이스 리듬과 신시사이저의 의도적 어긋남이 흥미로운 ‘Savior’과 같은 노래에서도 마찬가지다. 부러 발음을 뭉게거나 마치 연기를 하듯 가창에 이미지를 덧씌워 음반이 만든 이야기에 농도를 높인다. 가사, 퍼포먼스, 비주얼 한 곳에서 조금만 더 나가거나 덜 나갔다면 세계관의 응집력이 떨어졌을 것이나, 신보는 그 중심을 잘 잡는다.

달콤한 사랑 노래인 ‘Blah blah’에서 ‘블라블라(Blah blah)’, ‘울라라(Ou la la)’ 등 비슷한 발음의 단어로 음율을 만들거나 어쿠스틱 기타가 중심 선율을 만드는 발라드 ‘숨’에서 ‘울고 있던 내 곁에서 / 수평선이 되어 준 / 넌 나의 모든 숨’ 따뜻한 위로를 전하는 등 인상적인 가사도 많다. 날 선 전자음이 주도하는 끝 곡 ‘Diamond life’ 역시 단어의 리듬감과 후렴구 멤버들이 교차하며 노래의 합을 끌어내는 깔끔하고 담백한 구성을 지녔다.

소년의 성장과 사랑. 단계적으로 세계관을 풀어가는 와중, 이를 뒷 받칠 노래들이 탄탄하다. 무엇보다 세계관에 귀 기울이게 하는 곡 단위 호흡이 음반의 승리 요소. 잘 정돈된 음악으로 그룹의 성장 서사를 조명했다.

-수록곡 –
1. Awake
2. Roar
3. Blah blah

4. Savior
5. 숨
6. Diamond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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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엠(RM) ‘Indigo'(2022)

평가: 3.5/5

말하고자 하는 욕망과 전하고자 하는 욕심이 가득하다. 2022년 방탄소년단의 단체 활동 중단 선언 이후 내놓은 리더 RM의 정규 음반 < Indigo >에는 인간 김남준의 생각과 사고가 빼곡하게 적혀있다. 팝스타로서 느끼는 외로움과 불안함 혹은 평온한 일상의 필요성과 타인에게 전하는 위로가 동시에 교차하는 식이다. 지난 솔로작 < Mono. > 역시 직접 가사를 쓰며 ‘나’를 적극 드러냈지만 이번 음반만큼의 ‘듣는 맛’은 부족했다. 전작이 모노톤의 단조로운 사운드를 바탕으로 감정을 토해냈다면 신보는 적소에 록, 일렉트로닉, 포크 등을 배치해 듣는 즐거움을 높였다.

이 같은 장르의 다양성은 ‘Still life’, ‘건망증’, ‘들꽃놀이’와 같은 트랙에서 빛을 발한다. 펑키한 힙합곡 ‘Still life’는 클랩 사운드, 관악기 등을 밀도 있게 배합해 ’94 livin’ in 한남대로 91 look at my 탄탄대로 / 갈 일이 없어 이젠 강남대로 월세 밀린 넌 빨리 당장 방 빼고’ 노래하며 스웨그 넘치는 삶을 그린다. 어쿠스틱 기타 반주 위에 포근한 멜로디를 얹은 ‘건망증’은 자칫 건조할 수 있는 노래에 맑고 청아한 뮤지션 김사월의 보컬과 따뜻한 가사를 엮어 매력을 높이고, 빌보드 싱글 차트 83위까지 오른 록 트랙 ‘들꽃놀이’는 힘 있는 곡 전개로 작품의 중심을 단단히 묶어낸다.

여러 장르를 끌어왔지만 핵심은 치우치지 않았다는 사실에 있다. 앞서 언급한 < Mono. >를 비롯한 RM의 이전 작품과 슈가(Agust D), 제이홉이 발표한 솔로 음반 등이 강렬한 음악적 이미지 제공에 일차적 목표를 뒀다면 신보는 음악 청취의 난이도를 낮추고 ‘이지 리스닝’을 대표 키워드로 내세운다. 그 결과 현재의 상념을 표현한 작품의 메시지가 생생히 귀에 걸린다. 해외 팬들을 고려한 듯 영어 가사로 전반을 채색한 ‘Closer’가 전형적인 팝송의 부드러움을 따라가고, 날카로운 전자음이 부서지는 ‘Change pt.2’가 다소 이질적 인상을 전하기는 하나 이를 상쇄할 대중성이 이 음반엔 있다.

월드 스타로 자리매김한 이후 방탄소년단의 음악적 행보는 ‘대중 지향적’이었다. ‘Dynamite’, ‘Butter’, ‘Permission to dance’, ‘Yet to come’ 등 근래 그들의 히트곡은 분명 쉬웠고, 편했으나 음악적으로 평이했다. RM의 이번 음반은 쉽고, 편함 사이 적절한 음악성까지 겸비한다. 정신없이 바쁜(‘Hectic’) 삶 속에서 호텔에 혼자 떠 있는 것 같은 외로움(‘Lonely’)을 견디며 살아가는 이 시대 대표 팝스타가 전하는 이야기가 좋은 음악 위 쉬운 선율을 타고 전해진다.

“No lookin’ back, no / 이젠 니가 널 지켜줄 거야”

끝 곡 ‘No.2’의 뒤돌아보지 말고 뮤지션인 ‘내’가 아닌 ‘너’ 스스로가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는 외침까지 작품엔 선명한 위로가 스친다. 조타를 쥐고 움직일 줄 아는 뮤지션 RM의 현재를 매끄럽게 녹이며 그가 지닌 음악성, 대중 감각을 증명했다.

– 수록곡 –
1. Yun(with Erykah Badu)
2. Still Life (with Anderson .Paak)
3. All Day (with Tablo)
4. 건망증 (with 김사월)
5. Closer (with Paul Blanco, Mahalia)
6. Change pt.2
7. Lonely
8. Hectic (with Colde)
9. 들꽃놀이 (with 조유진)
10. No.2 (with 박지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