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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세라핌 ‘Fearless'(2022)

평가: 2/5

부유하는 메시지 : 소녀들은 왜 인어공주가 되었나

방탄소년단을 품은 거대 기획사 하이브와 산하 레이블 쏘스뮤직이 함께 만든 걸그룹 르세라핌의 화력이 식지 않고 타오른다. 5월 2일 데뷔 이후 활동 근 한 달 차에 접어든 지금까지 (여러 의미로) 화제의 중심에 섰다. 데뷔 첫날 17만 장의 음반을 팔아 치우며 역대 걸그룹 최대 판매량을 기록하는가 하면 벌써 여러 개의 음악 프로그램 1위를 거머쥐었다.

르세라핌. 즉, 나는 두렵지 않아(IM FEARRLESS)란 글자의 순서를 바꿔 만든 이름만큼 두려운 것 없는 행보다. 거창한 콘셉트와 음반 서사의 확장성을 부여하는 뮤직비디오까지 이들의 앞을 막아설 것이 없는 듯하다. 반면 곡은 의외로 가볍다. 화려하게 사운드를 섞지 않아 단조롭고 정적이다. 타이틀 ‘Fearless’는 자신들을 ‘겁 없는 새로운 b**ch’라 명명하지만 소리를 터트리지 않고 숨을 참는 쪽을 택한다.

‘Blue flame’이나 ‘The great mermaid’도 마찬가지다. 음악적 욕심을 빨간색보다 더 뜨거운 파란 불꽃에 비유한 ‘Blue flame’은 타이틀과 같은 기조를 유지, 앨범에 매끄럽게 녹아든다. ‘하날 위해선 하날 포기하’지 않고 모든 걸 다 갖겠다고 말하는 ‘The great mermaid’도 그렇다. 앞선 B**ch(나쁜 여자)에서 인어공주로 비유 대상만 바꾸었을 뿐 전체의 톤과 메시지는 같다. 다국어로 비장하게 시작하는 첫 곡 ‘The world is my oyster’부터 일관된 논조로 ‘주체성’에서 시작된 ‘차별점’을 내세운다. 하지만,

‘예쁘기만 하고 매력은 없는 / 애들과 난 달라 달라 달라’라고 말하는 있지(ITZY).
‘또 이 어려운 걸 해내지 / 우린 예쁘장한 savage’라고 외치는 블랙핑크.

등의 연장선상에 선 르세라핌이 꺼낸 ‘두렵지 않다’는 주체성 전략은 그다지 차별적이지 않다. 오히려 이제 유행을 넘어 장르가 된 ‘걸 크러시’를 마케팅 전략으로 선택한 것이 또렷이 보인다. 이들의 ‘피어리스’엔 빈틈이 크다. 카메라를 노려보다가도 끝 곡 ‘Sour grapes’에선 ‘눈물 나게 시큼한 게 사랑이면 맛보고 싶지 않다’ 말하는 ‘소녀’로 변모한다. 그룹의 다양한 면을 보여준다손 쳐도 이러한 콘셉트는 여전히 석연찮다.

새로운 차원에 들어오듯 SF적인 첫 곡이 지닌 탈시대성, 과도한 콘셉트가 만든 이미지의 과잉, 이를 통해 실제 주체인 소녀들의 주변화까지. 걸 크러쉬에서 비롯된 주체성이라는 가면을 씀으로써 직접 성애의 대상이 되고, 현실과 동떨어진 콘셉트의 비현실성을 끌어와 실제와 선을 긋는 것마저 전형적이다. 소녀인 듯, 소녀 아닌, 소녀 같은 그룹이 됨으로써 이들이 은근하게 드러낸 살색은(혹은 이를 바라보는 것은) 정당성을 부여 받는다.

테니스복에 하이힐을 신은 의상과 엎드려 몸을 흔드는 뮤직비디오 속 장면 등 그룹의 지금엔 문제가 많다. 한 끗 차이로 색을 달리하는 숭배와 혐오 사이 대상을 주체로 인식하지 않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르세라핌이다. 두려울 게 없다고 드높이는 이들이 완벽한 곡 소화력을 선보일지라도 그 핵심은 지나치게 흐리다. 껍데기만 남은 메시지. 인어공주 등의 비유로 어벌쩡 시도한 대상화하기가 커다란 구멍을 낸다. 자꾸만 그룹 너머 ‘기획’사가 호도한 의도를 생각하게 된다.

-수록곡 –
1.The world is my oyster’
2.Fearless
3.Blue flame
4.The great mermaid
5.Sour grap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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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하 ‘공중부양'(2022)

평가: 3.5/5

신보 < 공중부양 >으로 돌아온 솔로 뮤지션 장기하. 어떻게 읽을 것인가?
지난 2월 14일 장기하의 싱글 ‘2022년 2월 22일’이 깜짝 발표됐다.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이하 장얼)의 해체 이후 3년 만에 울린 솔로 활동의 신호음이었다. 공개된 싱글을 열어보니 과연 우리가 알던 그 장기하가 맞다. 데뷔 초 ‘싸구려 커피’, ‘달이 차오른다, 가자’ 등의 흥행 이후 노래와 랩, 아니 부르기와 말하기 사이를 모호하게 오가던 작법들이 그대로 담겨있었다.

‘앨범 제목이 공중부양이고 / 다섯 곡이 들었는데 /곡 제목이 1번 뭘 잘못한 걸까요 / 2번 얼마나 가겠어 (…)’

대화 형식을 빌려 신보 발매 소식을 홍보(?)한 독특함까지 ‘장기하다운’ 복귀 선언이었다.

‘장기하다운’이란 무엇인가. 먼저 그것은 앞서 말한 독특한 창법이 될 것이다. 툭툭. 단어를 정확하게 발음하며 내뱉는 그의 음악 만들기는 흔히 우리가 즐겨온 노래들과 거리를 둔다. 분명 선율이 존재하기는 하나 편하지는 않다. 따라 부를 수는 있지만 약간의 도움닫기가 필요하다고나 할까? 또한 장기하가 밴드와 솔로, 그 모든 커리어 동안 주목하는 것은 ‘재미’다.

“돈은 안 돼도 ‘멋있는’ 음악을 하는 뮤지션이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 눈앞에 있는 관객들만은 확실히 재밌게 해주겠다는 생각이 다였다.”

2020년 펴낸 에세이 < 상관없는 거 아닌가? >에서 장얼 결성 즈음의 다짐을 그는 위와 같이 밝혔다. 웃자고 쓴 ‘싸구려 커피’ 역시 그랬다. 88만원 세대론과 엮어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정작 곡은 군 시절 믹스커피를 마시던 장기하 개인 일화에 맞닿아 있다. 사회비판의 의도보다는 텍스트 자체의 재미에 더 큰 힘을 실었다. 항간을 떠도는 장기하 음악에 통렬한 사회적 시선이 부족해졌다는 비판은 이 지점에서 균열이 생긴다. 처음부터 그의 곡을 사회에 걸어 해석한 쪽은 장기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장기하를 만날 때 드는 의문은 ‘왜’ 인기와 관심이 시들지 않느냐 하는 것이었다. 계속 언급하는 ‘싸구려 커피’, ‘달이 차오른다, 가자’에 준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지만 이는 분명 시작 때 만큼의 관심을 받지 않았다(혹은 못 했다).

장기하 솔로 프로젝트 격인 장얼 1집 < 별일 없이 산다 >를 거쳐 이후 2집 < 장기하와 얼굴들 >부터 밴드 멤버들의 음악색이 짙게 반영된다. 스스로 밝혔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로 갈수록 그의 의도에 따라 앨범 무게는 가벼워진다. 맛을 살리는 조미료를 최대한 걷어낸 것이다. 장얼의 마지막 음반 < Mono >는 담백하다. 앨범의 제목처럼 구태여 스테레오를 고집하지 않고 하나의 사운드 채널을 사용하는 ‘모노’의 방법을 취한 것에서 그 모든 지향이 드러나지 않는가.

‘왜’, 그 길고 길었던 질문에 대한 ‘해답’
소리를 최대한 털어냈지만 최소한 밴드 구성으로 어느 정도 소리의 힘을 유지했던 밴드 시절과 달리 이번 신보는 그마저도 부재한다. “곡의 가사와 음반의 시선이 ‘붕’ 떠 있고, 디딜 땅을 잃은 채 ‘둥둥’ 떠 있는 것 같아 신보 제목을 ‘공중부양’으로 지었다”는 설명처럼 어떤 면에서 음반은 정말 붕 떠 있다.

신보는 이 ‘붕 떠 있음’과 ‘땅을 디딤’ 사이의 미묘한 연결성을 잘 드러낸다. ‘공중’과 ‘지면’의 역설적인 이어짐. 나는 이 이어짐에 장기하 인기의 핵심이 있다고 생각한다. 음반을 살펴보자.

타이틀 ‘부럽지가 않어’는 랩이라고 하기엔 어색하고 노래라고 하기엔 부족한 위치에 서 있다. 별다른 효과음 없이 전자음 바탕에 하우스를 장르의 토대 삼아 심지어 디제잉 하듯 스크래치를 넣는 노래라니. 이 형식 파괴를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또한 ‘가만 있으면 되는데 자꾸만 뭘 그렇게 할라 그래’는 6분 가까운 러닝타임을 판소리와 뒤섞어 호흡하고 ‘얼마나 가겠어’는 신시사이저를 중심으로 시니컬한 비판과 조롱을 날린다. 음반은 대중음악이 가진 골격을 뭉뚝하게 만들고 정제된 사운드로 여백의 여백을 남겼다. 그러니까 붕 떠 있는 것이다.

반면 재미를 중심으로 일상을 소환한다는 면에서 음반은 지면에 뿌리내린다. 장얼 시절의 곡 ‘ㅋ’, ‘그렇고 그런사이’, ‘등산은 왜 할까’ 등이 엉뚱한 소재와 가사로 재미를 줬다면 ‘별거 아니라고’, ‘사람의 마음’ 등의 곡은 따뜻한 위로까지 더한다. 이번 신보의 끝 곡 ‘다’는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 파란 하늘에 눈이 시린 / 오늘 마침내 / 오월이 / 오랜만에 우리 집 현관문을 탁탁탁탁 두드리네’라며 노래한다.

오월의 따스한 햇살이 집 현관문을 두드린 경험이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있다. 재미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사이 일상을 소환하고 그를 통해 삶을 다시 톺아보게 한다. 장기하식 창법과 그의 음악 형식이 쉽게 와닿지는 않더라도 재미와 익숙함이 내재하는 본질이 마음을 움직인다. 음악에 귀 기울이게 한다.

무뚝뚝한 표정으로 초연하게 삶을 대하는 태도는 그의 과거와 현재를 지탱한다. 가만 있으면 되는데 자꾸만 뭘 그렇게 할 필요도 없거니와 아무리 자랑을 늘어놓더라도 하나도 부럽지가 않다는 단단함. 장기하 열풍이 불던 시기 히트곡 ‘느리게 걷자’와 맥이 통한다. 괴짜 뮤지션의 휘파람이 근거 없는 낙관이 아닌 확신 있는 위로로 흐를 수 있는 이유. 이 변함없음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솔로 커리어의 시작을 알린 < 공중부양 >이 반갑다. 세간의 반응이 어찌 됐든 간에 뚝심 있는 ‘장기하다운’ 음악이 가득 차 있다. 재미도 있고 (약간) 웃음도 나고 그러다 위로도 얻고 용기도 생긴다. 묘하게 중독적인 음반. 자꾸 듣게 된다.

– 수록곡 –
1. 뭘 잘못한 걸까요
2. 얼마나 가겠어
3. 부럽지가 않어
4. 가만 있으면 되는데 자꾸만 뭘 그렇게 할라 그래
5.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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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버둥 인터뷰

질긴 가사는 벅벅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다. 연일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버둥을 만난 뒤 적은 글귀다. 작은 체구에 연일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달고 있는 이 작은 아티스트는 도대체 어떤 생각과 고민을 안고 있는 것일까? 스스로 인정했듯 그의 많은 고민의 결들은 작고 잘게 뭉쳐져 버둥 음악의 자양분이 된다. 그래서 한때 아주 많이 날카로웠고 때때로 분노에 차 있었다.

그 시기를 거쳐 얼마 전 정규 1집 < 지지 않는 곳으로 가자 >를 발매했다. 한결 가벼워진 시선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그는 이번 음반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위해” 썼다고 했다. 처음으로 내가 아닌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음악을 쓴 버둥. 나에게서 타인에게로 눈길이 이동하는 동안 어떤 것을 잃고 얻으며 무엇을 읽어 냈을까. 모든 답은 음악 속에 있다. 버둥이 말하는 ‘지지 않는 곳’의 첫 막이 이제 막 먼지를 털고 마이크의 볼륨을 키웠다.

#1. 우리 함께 ‘지지’ 않는 곳으로.

첫 정규 음반 < 지지 않는 곳으로 가자 >의 발매를 축하한다. 기분이 어떤가?
앨범 작업을 할 때마다 이번에 내야겠다는 확실한 ‘계기’가 있다. 계기가 있다는 건 발매할 이유도 확실해진다는 것이지만 반대로 지금 놓치면 다시는 기회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마음먹었다고 작품을 완성하는 건 아니니까 뜻했던 시기에 음반을 묶을 수 있어 감사하다. 아직 음반 활동이 마무리된 게 아니기 때문에 돌아보기보다는 앞을 보고 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알리고 기다려준 팬들에게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

확실한 ‘계기’가 있다고?
어느 순간 늘 이어오던 고민의 답이 찾아지는 경우가 있다. 내가 지금까지 했던 고민들이 이 결론을 위한 것이구나 싶다고나 할까? 나는 음악 활동을 시작한 18살 때보다 항상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럼 뭘 고쳐야 할까?’ 늘 생각했다. 그러다 올해 완벽하지 않아도 내 모습을 누군가 좋아하고 믿어주면 그걸 기반으로 나아갈 수 있구나 하는 걸 느꼈다. 고민을 맺을 수 있는 답을 찾았고 그게 이번 정규 음반의 ‘계기’가 됐다.

지난 EP < 조용한 폭력 속에서 >(2018), < 잡아봐! >(2020)가 개인적이고 날카로웠다면 이번 음반은 훨씬 대중적이다.
이전 EP는 나를 돌아보며 내 고민과 이야기를 담았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방향으로 작업을 많이 했다. 반면 이번 정규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다. 그들로 인해 내가 어떻게 변했는지, 그들로 인해 내가 어떤 생각을 품었는지를 썼다. 그러니까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걸 담았고 그래서 사람들이 원하는 것들을 되도록 맞추려고 했다. 많이 듣고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웅크리고 있는 버둥을 담은 핑크빛 음반 커버도 강렬하다.
커버를 두 번 갈아엎었다. 먼저 컨택 했던 분이 있었는데 편곡을 진행할수록 사진과 내 작품의 색이 점점 달라졌다. 정말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수가 없어 직접 사진을 찍었다. 그러다 우연히 지금 커버를 찍어준 김무무 님의 사진 작업에 참여하게 됐다. 무무님을 만나 내가 작업한 커버를 보여드렸는데 표정에 걱정이 가득하셨다. (웃음) 무무님이 자신이 찍은 사진을 써보는 건 어떻겠냐고 먼저 제안해줬다.

무무의 사진이 이번 작품의 메시지를 잘 담고 있던 건가?
그것보단 무무 작가님이 나를 많이 아껴준다. 나를 아끼는 사람이 보는 시선을 쓰고 싶었다. 그가 보기에 가장 버둥 같고, 담고 싶던 버둥의 모습을 찍어준 거니까. 그런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시선이면 음악과도 당연히 연결되지 않을까?

붉은빛, 핑크빛이 도는 사진을 선택한 건 여러 색을 시도해봤지만 이 색이 나와 제일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다른 여러 예술도 비슷할 것이라고 보는데 의도를 가지고 모든 걸 다 끼워 맞추기보다는 어떤 우연성을 믿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음악을 듣고 붉은빛의 커버를 보면서 의미를 각자가 유추하고 찾게 되는 식으로.

눈에 띄는 버둥의 강점이 있다. 바로 작명 센스. 캐치한 제목을 정말 잘 뽑는다. 그중 ‘씬이 버린 아이들’이란 곡명을 보고 크게 감탄했다.
나는 이러다가 신에서 진짜 버려지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 제목이 자극적이기까지 하니까… (웃음) 근데 그게 내가 활동하면서 실제로 느낀 감정이다. 어딘가에 선택받지 않는 건 정말 슬픈 일이다. 심지어 불합격은 연락도 잘 받을 수 없지 않나. 어느 순간 그게 내가 더 잘나고 모자라서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1년 전에는 쳐다도 안 보던 작업물을 다시 갖다줬을 때 너무 좋다고 하는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처럼 이제 막 작업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분명 이런 상황을 종종 겪을 거다. 그럴 때 힘들어하기보다는 ‘어쩌란 말이냐 트위스트 추면서’의 자세를 갖자고 말하고 싶었다. 곡을 쓰고 공연하면서 내가 갖는 마인드다. 아이러니하고 웃긴 상황을 우리가 바꿀 수는 없으니 유쾌하게 돌파하자.

그래서일까? 음반 타이틀이 < 지지 않는 곳으로 가자 >인 것이 버려지지 말고 차라리 지지 않는 곳으로 가자는 일종의 선언처럼 읽힌다.
내 곁에서 나를 사랑해주는 이들이 참 많다. 이 순간이 계속 지속 됐으면 좋겠다. 내가 더 많이 알려지면 그만큼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생기게 될 거다. 친구들 또한 몇몇이 이사라도 가면 현재처럼 가까이 지낼 수 없을 거고. 그걸 지금 고민할 필요는 없지만 언제든 변할 수 있는 거니까 이 순간이 계속 지속되길 바랐다. 무슨 바보 같은 짓을 해서라도.

소설 < 어린 왕자 >를 보면 어린 왕자가 행성에서 노을을 보려 의자를 당기는 신이 있다. 그걸 읽으며 ‘해가 지지 않는 곳으로 가자’라는 타이틀을 떠올렸다. 그러다 우리가 실제로 버려지고, 지더라도 서로 얘기 나눴을 때 그걸 그냥 재밌게 넘길 수도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남들은 다 졌다고 하지만 우리끼리는 이겼다고 하는 순간이 계속됐으면 좋겠다. 그곳으로 함께 가자. 하며 중의적인 의미로 제목을 지었다.

얼마 전 목표 금액의 5배를 웃돌며 실물 앨범 제작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에 성공했다. 앨범을 에세이집 형태로 만들었다고 들었는데.
인쇄비 정도만 모으려 시작했던 프로젝트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분이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했고 또 당황했다. 기대하시는 만큼의 퀄리티로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부담이… 교정을 네 번 이상 보며 최선을 다했다. (웃음)

처음 작업을 할 때 뭘 먼저 해야 할 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나는 운이 좋아 시행착오를 적게 겪었다. 이때 선배들의 짤막한 작업기를 보는 게 큰 도움이 됐다. 마찬가지로 이제 활동을 시작하는 분들 중 내 작업방식이 궁금한 사람들에게 프로세스를 보여드리고 싶었다. 또 내가 워낙 한 노래에 많은 의미를 담는 편이라 팬분들에게 그 내막을 설명해주고도 싶었고.

#2. ‘버둥을 읽는 방법

기사를 찾아 읽으며 버둥이 늘 ‘여성’에 방점 찍혀 다뤄진다는 생각도 들었다.
2~3시간 구구절절 이야기해도 결국 누군가는 보고 싶은 것만 본다. 많을 걸 꺼내놔도 꽂히는 부분이 생기기 마련이고 그러면 그게 크게 확대된다. 나에게 관심을 주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시선 쪽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오려 노력하지만 여젼히 실패할 때가 많다.

< 싱어게인 >을 하면서 특히 그랬다. 그때 머리가 지금보다 짧았는데 댓글이 참 재밌었다. ‘머리 짧으니까 페미 아니냐’, ‘페미 아니면 응원한다’ 등등. (웃음) 내가 어떻게 만들어도 사람들이 그렇게만 본다면 아예 모호하게 해볼까 싶기도 했다. 안 듣고 싶은데 계속 입으로 따라 부르게 되는 중독적인 선율로. 또 뭉뚱그린 가사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으니까 그때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궁금하기도 하고. 하하하.

이전 싱글 ‘How much’, ‘칼’ 등에서 이번 음반의 ‘00’, ‘연애’ 등으로 글감이 바뀐 것도 비슷한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을까?
예전에는 분노가 컸다. 다수의 여성이 그렇겠지만 내가 겪는 어떤 신체적, 외모적 차별들이 모두 내 탓인 줄 알고 자랐다. ‘내가 뚱뚱하니까…’ 하는 식의 것들이 있지 않나. 그게 잘못됐던 것임을 알게 되면서 내가 나를 가둔 시기에 대한 분노와 보상심리가 생겼다. 이전 작품이 날카롭다고 느낀다면 내가 그 분노들에 주목했기 때문일 거다.

분노가 지나가면 슬프다. 또 외롭기도 하고. 이제 나는 모든 게 반드시 내 잘못은 아니지만 또 어느 측면에서는 분명 내 잘못이 있음을 잘 알고 있다. 2장의 EP에서 그런 감정을 어떻게 인정하고 넘어가야 하는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답을 내렸다. 전작들을 통해 해소했다. 그랬더니 또 다른 지점에서 새로운 질문들이 찾아왔다. 앞서 말했듯 그걸 이번 정규를 통해 풀었다.

뮤지션 ‘버둥’ 이전의 한 개인으로서 성장 서사가 있다.
점점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 많아진다. 그들을 보며 내가 어떤 걸 해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번 음반의 ‘공주이야기’는 아이돌을 보면서 쓴 얘기다. 실제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높은 인기를 누릴 때가 있다. 어른들이나 대중들이 그들을 올렸다가 내렸다가 하는 거니까 실제 그 파도 위에 있는 어린 여성은 어떤 마음일까 상상하며 썼다.

중요한 건 시점이 달라졌다는 거다. 예전에는 ‘그 어린 여성’의 입장에서 글을 썼다면 지금은 그들을 마음대로 ‘다루는 사람’의 시선에서 가사를 쓴다. 그렇다 보니 우스깡스러운 모습을 묘사하게 된다. 대단한 일을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 별로야, 우스워하는 뉘앙스가 묻어난달까?

더 다양한 면을 비추지 않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는지.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지 않나. 내가 더 많은 작품을 쓰면 지금과는 다른 상징이 생길 수도 있다. 예전엔 내게 붙는 수식어들에 대해 고민했다. 근데 사회가 그렇게 오래 기억하지 않더라. 조금 더 똑똑하게 ‘내가 그걸 가지고 움직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요즘은 그냥 다 보고 있다. 누가 내 노래를 이렇게 저렇게 듣고 얘기하는구나 하면서.

그런 마인드를 가지는 게 쉽지 않을 텐데.
늘 내게 부족한 면만 봐 왔다. 그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며 이만큼의 결과를 만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자주 회사가 있는 게 아니냐는 소리를 들었다. 마케팅이나 비주얼 라이징을 굉장히 신경 쓰는 편인데 그러니까 사람들이 ‘버둥은 회사 필요 없잖아’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사람들이 버둥을 볼 때 고집이 있고 잘하니까 ‘회사가 하자는 쪽으로 안 하겠지’ 지레짐작하는 것 같다. 물론 하자는 대로 다 하겠다라고는 하지 않지만 ‘왜 이렇게 해야 하죠?’ 질문했을 때 납득 가능하고 감당할 수 있다면 나는 늘 시도 하는 편이다. 믿는 사람이 조언하면 설사 그게 손해가 될지라도 일단 한번 해본 뒤에 돌아본다. 충분히 얘기 나누면서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다.

버둥이 생각하는 뮤지션 버둥은 어떤 존재인가.
이번 정규를 만들면서 내가 결국 작업을 오래 할 사람이구나 깨달았다. 아무도 나를 안 찾아줘도 뮤지션 본인이 하고 싶은 얘기가 끊기면 안 된다. 그런 면에서 난 할 이야기들이 많다. 또 나는 고민이 많다. 그리고 그걸 글, 영상, 말 등을 통해서 정리해야 하는 사람이다. 이제 그걸 인정하고 깨달았다. 어떤 식으로든 예술과 관련된 일을 할 사람. 느리더라도 계속 이 일을 할 버둥. 확신이 생겨 요새는 마음이 좀 느긋하다. (웃음)

< 싱어게인 >, < 슈퍼스타 K7 >, ‘밴드 디스커버리’, ‘오월 창작 가요제’ 등 버둥이 참가한 오디션 프로그램은 한 손의 손가락을 다 접어도 부족하다. 그 싫어하는 경쟁에 직접 참여한 건 그만큼 자신을 알리고자 하는 욕심이 있었기 때문. 실제로 버둥은 나를 알리는 일에 망설임이 없다.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엔 각양각색의 버둥을 만날 수 있는 ‘Q&A’, ‘브이로그’, ‘라이브 스트리밍’ 콘텐츠가 가득하다. 현재 5천여 명의 구독자와 소통 중. 음악 외의 영상, 사진 작업 또한 찰떡같이 제 색을 찾아 잡는다. 다재다능과 선명한 욕심, 그리고 열심을 기반으로 버둥은 부단히 길을 닦고 있었다.

#3. 슈퍼스타가 된 버둥. 전국투어, 노들섬 그리고 고척돔!

고민 많은 버둥. 요즘 삶은 어떤가?
과분한 관심에 감사해하며 지내고 있다. 가끔 어떻게 하면 지금 버둥 정도로 자리를 잡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근데 해줄 수 있는 얘기가 없다. 나는 EBS ‘헬로루키’를 비롯한 경연 덕을 많이 봤다. 지금은 코로나로 경연, 오디션 자체가 줄어 들었으니… 나 또한 1년만 늦었으면 누렸던 많은 기회를 놓쳤을 거다.

정규를 내면서 솔직히 업무량이 꽤 많아졌다. 이걸 내가 다 혼자 처리하면 음악 활동만으로 생활이 가능하지만 노래를 연습하고 창작할 시간이 너무 부족해진다. 같이 일해줄 사람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소속사의 손길이 필요한데 그런 생각을 하면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아무래도 한 해 한 해 나이가 차니까 조급해지는….

정규 1집 발매 전후로 체감되는 외부의 반응 차이가 있는지.
차이라기에 예전에는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다. (웃음) 과거엔 그냥 버둥이라는 애가 있더라 정도였다. 정규 1집을 내면서부터 내 음악에 대한 깊은 평가나 이야기들이 생겼고.

반면 버둥의 ‘찐팬’은 활동 초창기부터 있더라.
너무 감사하다. 나를 오랜 시간 좋아해 주는 것을 보면 또 신기하기도 하고. 나는 내가 하는 이야기가 명확하다고 생각한다. 같은 걸 봐도 버둥이 해석하는 틀이 있고 거기에 디테일한 관점을 더하는 편이다. 이런 관점에 갈증을 느끼는 분들이 내 음악을 사랑해주는 것 같다. 팬들을 통해 내 시선을 의심하지 않아도 됨을 느낀다.

자신의 아픈 서사를 드러내고 이를 좋은 선율과 시선으로 녹여내는 건 참 대단한 일이다. 이번 음반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이 있다면?
첫 곡 ‘처음’. 모르는 걸 물어봤을 때 잘 챙겨주는 사람이 있는 반면 무시하는 사람도 있다. 지금은 말을 섞어도 되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조금 구분할 수 있게 됐지만 첫 EP를 낼 때만 해도 정말 힘들었다. 내가 언제까지 아는 척 해야 하고, 모르는 걸 언제까지 숨겨야 하는지. 얼마나 웃어야, 얼마나 울어야 하는지… 그런 마음들을 가사와 멜로디로 잘 정리한 것 같다.

EP 2개와 이번 정규 음반까지 모두 밴드 줄리아드림의 박준형 PD님과 작업했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준형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웃음) 이번 작품이 보다 대중적이어 진 데는 준형의 의견이 한몫했다. 슈퍼스타가 된 버둥. 준형의 이번 프로듀싱 키워드였다. 녹음 디렉팅을 줄 때 여기가 고척돔이고 4만 명이 있다고 생각하라고 하더라. 상상은 잘 안 됐지만… 하하하.

고척돔? 물론 가능이다. 가사도 너무 좋고, 기획도 너무 잘하고, 음악도 끝내주니까!
1월 말에 노들섬에서 크게 쇼케이스를 진행할 예정이다. 서울을 시작으로 지방 전국 투어도 준비 중이고. 표를 다 팔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현장에서 앞서 제작한 에세이집을 판매할 예정이니까 아직 구매하지 못한 분들은 참고해달라. 투어 일정은 조만간 공개하겠다. (웃음)

버둥을 위로해주고 지탱하게 한 작품이나 뮤지션이 있다면?
이번 앨범에 관련해서 말하자면 이랑의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이다. 관계에 있어 늘 자책했다면 이 음악을 통해 여유를 많이 얻었다. 내 곁에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좋지만 그렇지 않아도 그게 내 탓만은 아니다 하는 깨달음. 많은 위로가 됐다. 지금 곁에 있는 사람에게 감사하고 그들로 인해, 그들과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었던 데에 랑의 노래가 큰 역할을 했다.

음악 일을 멈출 수 없는 동기 중 하나 역시 이런 뮤지션들 때문이다. 멀리서 즐겨듣던 음악가 곁에 가볼 수 있고 그들의 음악을 때로 ‘미리’, ‘먼저’ 들어볼 수 있는 것은 이 일이 주는 큰 매력이다. 이번 에세이집 아이디어도 랑의 < 신의 놀이 >를 통해 얻었다. 나 역시 꾸준히 다양한 시도를 하며 언젠가 직접 회사도 운영해보고 싶다. (웃음)

하나하나 허투루 넘길 수 없는 비하인드 가득한 대화였다. 벽장 아래 살며 자신의 가치를 모르던 한 캐릭터처럼 버둥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원석인양 빛났다. 자신을 잘 알았고 그걸 잘 꺼낼 줄 알았으며 적절하게 포장까지 할 줄 아는 영리한 아티스트. 지지 않는 곳으로 부단히 발걸음을 옮기는 버둥. 그의 여정을 계속 지켜보고 싶다.

인터뷰: 박수진, 정다열, 정수민
정리: 박수진
촬영: 정다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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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IZM이즘x문화도시 부평] #19 쟈니 리

웹진 이즘(IZM)이 문화도시 부평과 함께 하는 < 음악 중심 문화도시 부평 MEETS 시리즈 >는 인천과 부평 지역 출신이거나 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티스트들을 순차적으로 인터뷰하는 시리즈 기획이다. 지금까지 이곳 출신의 여러 뮤지션들이 자리해 자신의 음악 이야기와 인천 부평에 대한 추억을 들려주었다. 이번 열아홉 번째 주인공은 부평의 애스컴(ASCOM)에서 첫 음악활동을 시작한 원로 뮤지션 ‘쟈니 리’다.

“나는 음악으로 살다가 음악으로 죽고 싶어요”
1938년생으로 올해 나이 84세. 원로 가수 쟈니 리는 여전히 음악을 즐긴다고 했다. 일제강점기 때 만주 길림성에서 태어난 그의 인생 회고는 역사를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놀라웠다. 중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가 한국에 오게 된 계기, 6.25 전쟁을 견디고 미국인 양아버지를 만나게 된 일화, 박정희 정권 시대에 그의 노래 ‘내일은 해가 뜬다’가 금지곡이 될 수밖에 없던 이유 등…

우여곡절 끝에 1957, 8년도에 ‘배를 타고 노래한다’는 뜻의 극단 쇼보트(Showboat)의 일원이 된 그는 이후 1960년대 당시 유행한 극장쇼 무대를 사로잡으며 인기 가수가 된다. 부평에 자리했던 미 군수지원 사령부(애스컴)는 그런 쟈니 리의 시작을 함께했던 공간이다. 아직은 찬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지던 11월 말 종로의 한 라이브 공연장에서 그를 만났다. 전날 있던 지방 공연을 끝내고 서둘러 서울로 올라온 ‘전설’은 어디 하나 흐트러짐 없이 단정한 모습이었다. 몇 달 전 < 복면가왕 >에 출연해 3관왕 거며 쥔 일로 이날의 대화를 시작했다.

얼마 전 < 복면가왕 >에 출연하셔서 3연승을 거두셨습니다.
가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도 출연한다. 2주에 한 번씩 나오는 유튜브 방송(쟈니 리 tv)을 하니까 아마 그걸 보고 연락이 온 것 같다. 3연승을 한 건 어리둥절했다.

섭외 연락이 왔을 때 한 번에 출연 결심을 하셨나요?
사실 고민 좀 했다. 내가 최고 고령자인데 떨어지면 가면을 벗어야 하니까 창피할까 봐. 그래서 처음 가왕이 됐을 때 깜짝 놀랐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노래를 참 잘하지 않나. 가창력도 풍부하고… 그런데 노래가 맛이 없어. 노래라는 건 ‘맛이 있다’는 게 제일 중요하다. 창작력도 풍부해야 하고.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를 어떻게 불러야 할까. ‘가까이하기에 너무 먼 당신을’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대표곡인 ‘뜨거운 안녕’에 그 맛이 담겨 있어 계속 사랑받는 것 같습니다.
1966년도에 < 뜨거운 안녕 >이 나왔다. 그 앨범과 곡을 들어봐라. 지금 들으면 어떻게 이렇게 불렀나 싶다. 그때 대한민국 가수 중에서 노래를 눈물을 흘리며 부른 건 ‘뜨거운 안녕’ 뿐일 거다. 너무 ‘오버 필링’ 하니까 신세기 레코드에서 내지 말자고 했다. 가수들이 전부 노래를 정박자로 하고 깨끗하게 하고 이랬을 때니까. 근데 나는 그 느낌을 ‘표현’한 게 아니다. 어린 나이에 피난 내려왔던 내가 이제 레코딩이라는 걸 하게 되니까 감동스럽고 앞으로 돈도 좀 번다고 생각하니까 눈물도 났던 거다. 그 감정을 음반에 그대로 옮겼다.

활동명을 ‘쟈니 리’라고 지으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외국인 양아버지가 ‘쟈니(Johnny)’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쟈니라는 건 외롭고 귀엽고 뭐 그런 뜻이었다. ‘Johnny is lonely boy(쟈니는 외로운 소년)’라는 말도 있던 것 같고. 쟈니는 외로운 거다. 내가 고아 출신이니까. 거기에 내 성인 ‘이’를 붙여서 쟈니 리가 됐다. 양아버지가 나를 ‘슈플라이’라고도 불렀다. 그 당시에 ‘슈사인(Shoe shine) 보이’가 많았다. 미군들 군화 코만 반짝반짝하게 닦아주는 꼬마들이다. 그곳만 반짝반짝하게 닦으니까 파리가 미끄러진다고 해서 만들어진 ‘슈 플라이’가 내 별명이었다.

양아버지는 어떻게 만나셨나요?
만주 길림성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기생이었는데 당시 기생은 일부종사, 평생 한 남자만 만나야 했다. 기생학교에 다니면서 활도 잘 쏘고, 서예도 잘하고, 노래도 잘 부르고, 장구도 잘 치는 요새 같으면 탤런트 같은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연극배우를 하던 중국 사람인데 금방 집을 떠났다. 어머니가 혼자서 나를 키우셨다. 그러다 1951년도 13살 때 피난 내려와서 1954년에 미국인 양아버지를 만났다. 영어를 귀동냥으로 배우면서 아버지가 피아노를 치시면서 노래하라면 노래도 하고 그랬다.

말씀은 조용조용하게 하시는데 노래하실 때는 정말 호랑이 같습니다.
자연스럽게 습득한 거다. 옛날부터 리듬 앤 블루스를 좋아했다. 가수들이 박자에 맞춰서 노래해야 되지만 리듬 앤 블루스는 애드리브도 있고 가창력도 있어야 한다. 아주 헤비한 록 보이스도 많이 쓴다. 또 노래가 때로는 재즈에 가까울 만큼 굉장히 쿨하다. 음악 분야에서는 아무나 못 하는 거다. 마음을 울리는 것도 있고.

레이 찰스, 스티비 원더, 조지 벤슨, 마이클 볼튼 같은 사람들은 노래가 거의 애드리브다. 다른 사람 노래를 리메이크해도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다. 음악에 젖어서 노래하다 보면 이성을 잃을 때가 있다. 나도 모르는 가창력이 나오고.

과거에 즐겨 부르셨던 노래도 궁금합니다.
냇 킹 콜, 토니 베넷 같은 스탠더드 노래를 많이 했다. 그런 고운 음악을 부르다가 록 블루스 쪽으로 마음이 가더라. 옛날에 우리가 노래할 때는 ‘극장쇼’라는 게 있었다. 고인이 됐지만 정원이란 가수와 나는 남들이 가만히 서서 노래할 때 우리는 청바지 입고 춤추면서 노래했다. 현재의 아이돌 같은 거였다.

그 시절은 여자들을 대학에 안 보낼 때다.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바로 공장에 취직해야 했다. 그분들이 거의 다 내 팬클럽이었다. 어른 앞에서 눈도 못 뜨고 그럴 때인데 우리를 소개하면 소리를 지르고 고무신 날라 오고 그랬다. (웃음) 그런 일은 대한민국에서 아마 제일 처음일 거다. 한바탕 난리가 나서 공연이 끝나면 주인 잃은 고무신이 한 가마니가 됐다.

말씀만 들으면 정말 가수가 천직이셨던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가수가 꿈이셨나요?
아니다. 우연히 가수가 됐다. 난 가수가 되겠다는 꿈을 꿔본 적도 없다. 옛날에 부산에 ‘하이야리아 부대’가 있었다. 내 양아버지가 별 세 개 달린 미군 장교였다. 그 부대에서 아버지가 피아노치고 내가 노래하고 그랬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가수가 된 거다.

그러면서 미8군 무대에도 오르신 건가요?
양아버지가 금방 돌아가시고 그 어린 나이에 내가 할 수 있던 게 없어서 미8군부대를 들락거렸다. 일반 단체하고 미8군 가수하고 다른 점이 뭐냐면 8군에서 노래하는 가수는 영어 발음이 좋지만 일반 단체는 영어가 엉터리다. 8군에서 공연하는 밴드들은 오디션을 보고 등급을 나눴기 때문에 이런 평가가 나왔다.

스페셜 A를 받으면 한 달 정도 공연을 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피나는 노력이 필요했다. 미8군에서 나온 사람들은 사회에서 대접을 좀 해줬다. 등급이 높았던 거다. 난 13살부터 양자로 있었고 나름 언어에 소질도 있었다. 조실부모한 내가 학벌이 있었겠나? 언어부터 노래까지 전부 노력하고 직접 터득했다.

미8군에 활동하셨던 거는 그럼…
1957년이었다. 당시에 현미는 무용을 했고 한명숙 씨는 노래를 할 때다. (당시 얘기를 조금 더 해달라고 부탁드렸더니) 한국 가수들이 8군에 들어가면 치즈 샌드위치, 햄버거를 줬다. 마치 천국에 있는 것처럼 맛있었다. 디저트로 파인애플, 바나나도 줬는데 평생 보지도 못한 과일들이었다. 아이들을 주겠다고 이런 음식을 챙기는 사람들도 많았다. 또 작은 유리병에 담긴 콜라를 그때 누가 먹어봤겠나.

미8군 때 한 캠프에서만 있으셨던 건가요?
오산, 평택. 의정부에도 있었다. 그쪽은 전부 미군 기지니까. 8군 생활할 때는 그쪽을 오갔다.

부평 애스컴에도 자주 들리셨나요?
1957년에 연예계에 입문해서 1959, 1960년쯤에 다녔다. 내가 처음으로 갔던 곳이 애스컴이다. 개인적으로 미8군부 무대에 많이 서진 않았다. 따로 오디션을 보지도 않았고. 양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쟈니? 싱!”하면 내가 노래를 불렀다. 워낙 어릴 때니까 그 사람들의 귀여운 장난감이었다. (웃음)

공연료가 꽤 높으셨을 것 같아요.
몇 푼 안 됐다. 당시에 단장이 지금의 기획사나 다름없다. 그가 모든 걸 주관했고 공연해서 받은 돈을 자기가 거의 다 챙겼다. 얼마 안 줘도 투덜거릴 수 없었다. 얘기하면 그냥 잘리니까. 피곤하고 살기 어려울 때였다. 어디 가서 밥 한 그릇 먹을 수도 없었고 누구나 돈 돈 돈 했다. 딱히 돈을 못 받아도 그저 밥 한 그릇 얻어먹고 그 힘으로 노래 불렀던 시기다. 내가 그렇게 힘들게 가수가 됐다.

1960년대에는 ‘극장쇼의 황제’라고 불릴 만큼 큰 인기를 누리셨다고 들었습니다.
극장에 간판만 붙여놓으면 정말 소동이 났다. 내가 1960년도에 도요타의 빨간색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다. 알랑 드롱처럼. 넝마주이 같이 낡은 청바지 입고 운동화 신고 무대에 올랐다. 핸드마이크가 없을 때라 스탠드 마이크를 썼는데 그걸 그대로 들고 객석 앞까지 나가고 그랬다.

오랜 기간 작자 미상의 민중가요로 알려져 있던 전인권의 ‘사노라면’이 선생님의 노래였습니다. 왜 오리지널 가수라고 밝히지 않으셨나요?
원제는 ‘내일은 해가 뜬다’이다. < 뜨거운 안녕 > 음반에 같이 있다. 1966년 즈음 방송국에서도 많이 틀고 꽤 알려졌던 곡이다. 그런데 갑자기 금지곡이 됐다. 그때는 툭하면 금지곡이 되던 시절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시절에 내가 ‘해가 뜬다’고 노래를 하니까 역적모의로 비쳤나 보다. 뭐 밑에 있는 사람들이 다 자기 먹고 살라고 그런 거겠지만. 그렇게 한동안 잊고 있다가 미국에서 돌아오니 민중가요로 불리고 있더라.

공식적으로 오리지널 가수라고 밝힌 게 2000년대 초쯤이었나요?
KBS에서 내 음반 < 뜨거운 안녕 >을 가지고 집에 왔다. 피디가 “여기 ‘내일은 해가 뜬다’라는 노래가 누구 노래예요?”라고 묻길래 전인권 노래가 아니라 내가 1966년에 많이 불렀던 노래라고 말했다. (정확히는 2004년 가요평론가 박성서가 소장해 오던 < 쟈니 리 가요앨범 >을 공개하며 주목받았다. 이 음반에 ‘내일은 해가 뜬다’가 실려 있었고 이 곡의 원작자가 쟈니 리라는 것이 밝혀졌다 -편집자)

인터뷰는 종로 3가에 위치한 ‘청춘극장’에서 이뤄졌다. 쟈니 리는 이곳의 전속 뮤지션이다. 극장쇼를 많이 했던 그가 지인과 직접 머리를 맞대고 5개월 전쯤 이 공간을 차렸다. LP판이 가득했고 음악을 틀 수 있는 디제이 부스도 있었다. 아, 반짝거리는 일명 ‘사이키 조명’이 화려하게 무대를 비추기도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공연장에는 말끔하게 차려입은 중장년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형님”, “선생님”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몇 달 전 ‘바보 사랑’이라는 싱글을 낸 쟈니 리는 여전히 청춘이며 늘 그랬듯 잘 나가는 가수였다.

요즘 한국 가수들이 전 세계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한창 활동하실 때 미국에 진출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하셨나요?
그때는 미국 가는 게 하늘의 별 따기였다. 미국에서 활동하다 왔다고 하는 사람들의 90%는 뻥이었다. 옛날에 < 삼손과 델릴라 >라는 영화가 있었다. 그 영화 내용을 라스베이거스에서 쇼로 만들어 공연하는데 영화에서처럼 건물이 무너지고 조명도 기가 막혔다. 어떻게 그렇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놀라운 곳이 미국이었으니까 당시에 미국에 진출하는 건 꿈도 못 꾸었다. ‘내 음악에 버터 냄새가 좀 난다’라는 걸로 만족했다.

그럼 현재 방탄소년단이나 블랙핑크 같은 손자뻘 되는 젊은 친구들이 세계적인 관심을 받는 걸 보시면 어떠세요?
대단하다. 인터뷰하는 걸 봤는데 영어도 엄청나게 잘하더라. 자기들이 텔레비전 보고 배운 영어라고 하는 데 정말 천재구나 싶다. 지금 우리나라를 세계적으로 알린 게 아이돌 가수들이다. 방탄소년단이나 다른 아이돌 가수를 통해 대한민국이 세계적으로 홍보가 된 거 아닌가.

부평구문화재단이 진행하는 기획 앨범에서 가수 인순이가 선생님의 ‘뜨거운 안녕’을 리메이크한다고 합니다.
인순이 노래를 좋아한다. 가창도 좋고 무엇보다 소울이 남다르다. 약간 재지하게 리듬도 조금 바꾸고 하면 곡의 맛을 더 잘 살릴 수 있을 것 같다. 음반을 발매하면 내게도 꼭 보내 달라. 인순이에게는 기대한다고 전해주고. (웃음)

60년 이상 노래를 하셨습니다. 선생님께 음악이란 무엇일까요?
음악으로 죽고 음악으로 살고 싶다. 보통 가수들이 은퇴한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나는 생각이 다르다. 왜 하고 싶은 음악을 안 하고 중간에 나이 먹었다고 멈추는지. 조금 더 노력하면 되는데. 나는 평생 노래하고 싶다. 노래한다는 것 자체가 고맙고 즐겁다. 내가 여든이 넘었는데 늙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고? 노래 덕분이다.

젊은 노장과의 대화는 즐거웠다. 빛이 바랬을 법한 기억들도 연도를 포함해 정확하게 들려줬고 필요할 땐 서슴없이 노래를 불렀다. 단단하고 탄탄한 경험을 간직한 쟈니 리의 이야기에선 꼿꼿한 기세가 느껴졌다. 공연장을 떠나려 하자 몇 번이나 식사 한 끼를 대접하고 싶다던 쟈니 리. 이 따뜻한 말의 건넴을 받으며 이것이 어쩌면 그가 음악을 대하는 태도일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영원한 가수 쟈니 리와의 만남은 뜨겁고도 뜨거웠다.

인터뷰 : 소승근, 박수진, 정다열, 장준환
사진 : 정다열
정리 : 박수진
기획 : 부평구문화재단 문화도시사업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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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둥 ‘지지않는 곳으로 가자’ (2021)

평가: 3.5/5

우리는 모두 자주 버둥거린다.
애써도 애쓴 만큼 결과물이 따라주지 않는, 날들의 연속. 우연히 버둥의 음악을 만났다. 선홍색의 불빛이 짧은 머리의 웅크리고 있는 여성을 비춘 커버. 어딘가 외롭고 쉽게 그 의중을 찾아낼 수 없는 분위기가 감돌았다. 첫 곡 ‘처음’을 재생. 이내 자세를 고쳐 앉고 음반 전체를 꼼꼼히 받아 적었다.

버둥. 나름 열심히 음악을 따라 듣고 있지만 그리 익숙지 않은 이름이었다. 하지만 완숙한 멜로디가 돋보였다. ‘00’, ‘Muse’ 등의 신시사이저로 문을 열고 잘 들리는 선율로 무장한 곡들이 있었고 가사 또한 특별했다. ‘00’은 ‘영영’이라는 단어가 반복되고 곧 ‘1과 2가 지켜보길 / 3과 4가 지나가길’하는 식으로 숫자를 이용해 서사의 흐름을 살렸다. ‘연애’는 ‘날 네 것으로 널 내 것으로 / 만들지는 않을 거야’ 노래하며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고 확실하게 표현한다.

쉽게 말해 직접 쓴 노랫말은 음악을 통해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선명하게 내뱉고 있었다. 음악적 시선이 뚜렷한 곡. 난해하고 알 수 없는 단어들로 뭉뚱그리지 않고 시적이되 사고를 명징하게 풀어낸 작품은 뮤지션 ‘버둥’을 한정하기보다 오히려 확대했다. 마치 이쪽에서 ‘당신은 어떤 삶을 살아왔나요?’ 묻게 하고 더불어 ‘당신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요.’하게 한달까.

그렇게 2018년에 첫 EP < 조용한 폭력 속에서 >를, 2019년에 < 잡아봐! >를 발매했음을 알게 됐다. 두 개의 짧은 음반과 몇 개의 싱글을 거쳐 당도한 이번 정규 앨범은 오랜 시간 버둥거리며 부단히 노력한 흔적을 보여준다. 우선 대중을 놓치지 않는다. 선율이 전작에 비해 확실히 매끄럽다. 타이틀 ‘씬이 버린 아이들’을 들어보자. 그간의 싱글 중 가장 밝은 기조를 띈 이 노래는 둥둥거리는 베이스와 리듬을 타게 하는 신시사이저가 어우러지며 매력적인 후렴을 만든다.

또한 더 풍성해졌다. 신시사이저의 활용이 단정하고 깔끔하게 적소에서 터진다. ‘공주이야기’와 같은 노래에선 오르간, 브라스 세션 등을 활용해 전에 없던 터치를 담았다. 즉 이 음반은 인디 뮤지션으로서 모든 것을 스스로 해오던 그가 ‘지지 않았음’을 그래서 버둥을 주목해야 함을 증명한다. 제 색을 찾으며 발전한 흔적이 여기 있는 것이다.

버둥거리다. 힘에 겨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애를 쓰다. 버둥이 쓰는 음악은 어떤 순간들을 지나치고 또 어떤 기억들을 묻기 위한 삽처럼 느껴진다. 완전한 것을 노래하지 않고 조금은 불편하고 아프고 답답한 것들을 써 내린 음반. 자주 버둥거리며 살아가는 우리를 비추기 충분하다. 버둥, 버둥. 그의 이야기가 계속 궁금하다.

– 수록곡 –
1. 처음
2. 00
3. 나의 모든 슬픔이
4. 그림
5. 공주이야기
6. Muse
7. 씬이 버린 아이들
8. 파아란
9. 연애
10. 기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