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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ZM이즘x문화도시 부평] #22 강혜연

웹진 이즘(IZM)이 문화도시 부평과 함께 하는 < 음악 중심 문화도시 부평 MEETS 시리즈 >는 인천과 부평 지역 출신이거나 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티스트들을 순차적으로 인터뷰하는 시리즈 기획이다. 지금까지 이곳 출신의 여러 뮤지션들이 자리해 자신의 음악 이야기와 인천 부평에 대한 추억을 들려주었다. 이번 스물두 번째 주인공은 K팝 아이돌과 트로트를 아우르는 뮤지션 강혜연이다.

오디션 프로그램 < 내일은 미스트롯 >의 등장은 기성세대 위주의 트로트 신에 젊음의 활기를 불어넣었다. 송가인, 임영웅을 비롯한 수많은 차세대 주자를 발굴하고 이들을 중심으로 탄탄한 팬덤 문화가 형성된 덕분에 주요 음악 차트의 상위권에서도 트로트를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긍정적 성과와 달리 대부분의 젊은 층은 여전히 트로트를 즐겨 듣지 않는다.

그럼에도 여기 장르의 현주소를 받아들이고 세대 간극을 좁히기 위해 힘쓰는 이가 있다. 걸그룹 이엑스아이디(EXID)의 초기 멤버이자 베스티(BESTie)의 리더로 활약한 강혜연은 아이돌 활동을 마친 2018년 ‘왔다야’를 발표하며 트로트 가수로 변신을 꾀했다. 급격한 노선 변경이었지만 트로트를 향한 진심 하나로 시장이 필요로 하는 본인만의 스타일을 잡아 나갔고 < 미스트롯 2 >를 기점으로 그 노력들이 조금씩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아이돌과 트로트, 양분화된 두 흐름 사이를 넘나들었던 10여 년의 시간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푸르른 여름의 기운을 몰고 나타난 강혜연과 함께 파란만장했던 그의 음악 인생을 되짚어 보았다. 

작년 정규 1집 < 선데이혜연 > 발매 이후 별다른 음악 행보는 없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일은 어느 때보다 열심히 하고 있었다. < 미스트롯 2 > 종영 이후 < 화요일은 밤이 좋아 >, < 6시 내고향 >에 출연하며 부지런히 인지도를 끌어올리는 중이다. 물론 음악 작업 또한 늘 생각하고 있다. 다만 아직 어떤 스타일의 곡을 내야 할지 정하지 못해서 완성도를 위해서라도 시간을 두고 신중하게 고민하는 중이다.

방송 출연 이후에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전에는 내가 트로트 한다고 해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요즘은 식당이나 길거리에서 많이 알아봐 주셔서 감사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스케줄도 많아졌다. 그전까지는 고정 일정이 별로 없어서 여행도 자주 다니고 외가인 제주도에도 종종 다녀오고 했었는데 지금은 따로 시간 내기도 어려울 정도다. 보내주시는 관심에 감사할 따름이다.

< 미스트롯 2 >에는 어떻게 참가하게 되었는지.

사실 시즌 1 때 연락이 오긴 했었다. 근데 그때는 트로트로 전향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트로트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나가봤자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만약에 시즌 2를 하게 된다면 나가겠다고 얘기를 했고 그전까지 트로트를 체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준비하는 동안 국악도 배웠다고 들었다.

세미 트로트만 잘해서는 성공할 수가 없다고 느꼈다. 그래서 전통 창법을 익히기 위해서 민요를 한 2~3개월 정도 배웠었다. 하지만 원래 국악을 했던 사람이 아니라 그런지 어설프게 흉내만 내다가 성대 결절 조짐이 보였다. 프로그램 참가 대비는 물론이고 가수 생활도 계속해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그만두게 됐다.

기존에 익혔던 것들과는 완전히 다른 영역인데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정신없이 외우기 바빠서 뭐가 부족한지 느낄 새도 없었다. (웃음) 음계가 적힌 악보라도 있었으면 그나마 편할 텐데 민요에선 선생님이 불러 주시는 멜로디와 리듬을 따라 하고 그걸 녹음해서 집에서 연습하는 게 최선이었다. 새삼 국악 하시는 분들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 미스트롯 2 > 자기소개 당시 “아이돌 꼬리표는 싫다”라는 문구를 사용했다.

아이돌 출신 자체를 부정한 건 절대 아니다. 다른 친구들보다 방송 적응이 빨랐고 무대 매너도 금방 습득했기 때문에 오히려 아이돌 활동이 큰 도움이 됐다. 다만 아이돌을 하다가 트로트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트로트만 좋아하시던 팬분들께서 경계를 많이 하셨다. 단순히 아이돌 출신이란 꼬리표 때문에 트로트를 향한 내 진심이 왜곡되지 않게 하기 위해 그런 슬로건을 내걸었다.

아이돌 연습생은 어떻게 되었는지.

사실 처음부터 아이돌을 목표로 한 건 아니었다. 발라드나 알앤비를 즐겨 들었기 때문에 마야, 임정희, 다비치 같은 가수가 되고 싶어했고, 심지어 춤도 아예 출 줄 몰랐던 몸치라서 아이돌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실용음악과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브라운아이드걸스 회사에서 연습생을 뽑는다는 공고를 보게 되어 경험 삼아 한번 지원했다가 덜컥 합격이 됐다. 대학보다 연습생 쪽으로 운이 있었던 것 같다. (웃음)

연습생을 하면서도 입시 도전을 계속했다고 들었다.

아무래도 연습생 트레이닝과 입시 준비가 결이 다르다 보니 꾸준히 문을 두들겼음에도 줄줄이 고배를 마셨다. 4수 정도 한 걸로 기억한다. 그래도 항상 대학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캠퍼스 잔디밭에 앉아 기타 치고 노래 부르는 환상이 있었기 때문에, 휴학하는 한이 있더라도 대학만큼은 꼭 가보고 싶었다.

그룹 활동 중에도 종종 트로트에 대한 관심을 내비치곤 했다.

어렸을 때부터 동네 친목회에서 어른분들이 ‘찰랑찰랑’이나 ‘남행열차’ 같은 노래를 부르시니까 자연스럽게 많이 접하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중학교 때 선생님께 장윤정 선배님 닮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때 마침 ‘어머나’, ‘짠짜라’ 같은 곡들이 한창 대박을 터트리던 시기라서 자주 듣고 따라 불렀다. 기본적으로 트로트란 장르에 대해 친근감이나 애정이 어느 정도 있었다.

베스티 활동 당시에도 대표님이 내가 트로트 좋아하는 걸 아니까 엠넷에서 방영한 < 트로트 엑스 >라는 프로그램을 소개해 주셨다. 그때부터 트로트를 많이 듣고 전문적인 레슨까지 받았었는데 알려주신 선생님께서도 잘한다고 칭찬해 주시면서 트로트 가수를 해보라고 하셨다. 실제로 받아 놓았던 곡들도 꽤 있었지만 회사 재정 문제로 앨범 제작은 무산되었다.

아이돌에서 트로트 가수로 전향하게 된 계기는.

사실 첫 팀이었던 이엑스아이디(EXID)에서 나오고 옮겼던 소속사 이사님께서도 트로트 솔로를 먼저 권유하셨다. 그런데 엄마랑 상의해 보면서 트로트는 나이가 들어서 해도 괜찮으니까 아이돌 활동을 더 해보자고 결론을 내렸고, 그렇게 재데뷔 하게 된 팀이 베스티였다.

활동을 이어가다가 베스티 계약도 생각보다 일찍 만료되고 나니 당장 뭘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혼자 음악 활동을 해봐야겠다고 결심하고 작곡도 배워보며 유튜브 개인 채널에 영상을 조금씩 올리고 있었는데, 지금 대표님께서 갑자기 연락을 주셨다. 베스티 때 라디오에 나가서 불렀던 트로트 커버 영상을 보고 오래전부터 염두에 두고 계셨다고 말씀하셨고 덕분에 지금의 길로 잘 넘어올 수 있었다.

아이돌과 트로트 가수의 가장 큰 차이점은.

아이돌 때는 멤버들이 있어서 서로 부족한 면을 채워줄 수 있지만, 트로트는 혼자 모든 걸 이끌어야 하고 관객과의 소통도 온전히 내 몫이다. 물론 잘하면 내가 돋보인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런 부담감 자체가 상당히 컸다. 그전에는 무대에서 긴장해 본 적이 없었는데 트로트 가수로 처음 무대에 올랐을 땐 마이크가 덜덜 흔들릴 정도로 매우 떨렸다.

트로트 가수로 데뷔하고 나서는 주로 어떤 활동을 했는지.

데뷔 직후에는 별다른 스케줄이 없었다. 한 1년 동안 < 가요무대 >에 나가며 트로트를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지냈다. 그리고 어느 정도 감을 잡았다 싶었는데 이 때 코로나가 터져서 뭘 할 수도 없었다. 행사도 못하다 보니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떠올려보게 되었고 그때부터 유튜브에 트로트 영상을 꾸준히 올렸다. < 미스트롯 2 > 전에는 일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트로트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선배들의 노래를 많이 리메이크하게 된다. 원곡의 느낌을 살리려고 하는지 아니면 본인만의 스타일로 바꿔 부르는 편인지.

기존 트로트 팬층들은 보통 옛 노래를 그대로 불렀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계신다. 그런데 < 가요무대 > 같은 프로그램의 PD님들은 오히려 나의 상큼하고 통통 튀는 모습을 원했던 것 같다. 처음엔 ‘왜 내게 이런 곡을 추천하셨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지만 다른 출연진의 스타일을 보고 그제야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젊은 트로트 가수가 많이 없었기 때문에 새로운 얼굴과 소리가 필요했고, 그 후로는 선배님들의 무대를 마냥 따라 하기보단 나만의 장점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으로 무대에 올랐다.

그렇다면 트로트 가수 강혜연의 장단점은.

카메라에 비치는 모습이 중요한 아이돌을 겪어봤기 때문에 아무래도 무대 위 표정이나 동작은 기존 트로트 가수분들보다 자연스럽게 연출할 수 있는 것 같다. 물론 그만큼 소리 면에서 약점이 존재한다. 트로트를 오래 한 분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울림이 얕고, 다양하고 섬세함을 요구하는 기교 자체도 부족하다. 그래도 부단히 노력하면 자연스레 채워 나갈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작년에 한창 브레이브걸스가 역주행으로 시끌벅적했을 때 유정 씨가 절친한 가수로 강혜연 씨를 언급했다. 어떤 인연이 있는지.

KBS에서 방영한 아이돌 회생 프로그램 < 더 유닛 >에 같이 출연하면서 알게 됐다. 당시에 성격도 비슷하고 서로의 아픔을 너무 잘 아니까 금방 친해졌다. 프로그램이 끝나고도 자주 만나서 각자의 인생에 대한 얘기를 나눴고, 그때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정말 많이 고민했었다. 그렇게 방황의 시기를 겪고 있다가 나는 < 미스트롯 2 >에 나가서 잘 풀리기 시작했고 브레이브걸스도 딱 그때 역주행을 하며 부활했다.

‘척하면 척’의 작곡을 맡은 투챔프랑 연이 닿은 것도 혹시 유정 덕분인지.

맞다. 사실 ‘척하면 척’은 투챔프와 함께 작곡에 참여한 내 남동생 디웨일의 노래이기도 하다. 동생이 작곡한다는 사실을 알았던 유정이가 투챔프 오빠들과 연결을 시켜줬고 서로 음악적인 합이 잘 맞았는지 팀을 만든다고 했다. 내가 원하는 포인트나 어울리는 스타일도 잘 알아서 앞으로도 작업을 같이 해보면 좋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일반 대중가요 같은 느낌도 든다.

한동안 대중가요를 안 듣고 트로트만 들어서 그런지 처음 들었을 땐 확실히 낯설었다. 기존 트로트 곡들은 어른들도 따라 부를 수 있게 노랫말이나 멜로디가 쉬운 편인데 ‘척하면 척’은 아이돌 음악처럼 리듬감도 넘치고 가사도 많아서 다소 어렵게 느껴졌다. 그래서 단순한 방향으로 수정을 요청하려 했는데 계속 듣다 보니까 흠잡을 곳 없이 완벽해서 그대로 가기로 했다.

물론 ‘트로트’라는 명칭과 특유의 분위기 때문인지 젊은 사람들은 여전히 잘 즐겨듣지 않는다. 요즘 차트에 트로트도 많이 올라와 있어서 길거리에서도 간간이 트로트가 들려오는데 대부분 바로 넘기거나 플레이리스트에서 제외해버린다. 앞으로 모든 세대가 즐길 수 있는 세련된 트로트를 만들어 보고 싶다.

나이가 조금 더 들고 나서 해보고 싶은 음악 스타일이나 장르가 있다면.

앞서 언급했듯이 발라드를 해보고 싶다. 특히 7080 시대를 겪은 어른분들이 공감할 수 있는 옛날 감성의 발라드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포크도 해보고 싶다. 옛날에 많이 즐겨 듣기도 했고 베스티 때 기타를 독학으로 배워서 김광석 선배님의 곡들을 많이 연습했을 정도로 잔잔한 음악에 관심이 있다.

고향이 인천이다. 쭉 인천에서 살아온 만큼 인천에 얽힌 추억도 많을 것 같다.

예전에 살던 용현동 집이 인하대학교 후문이랑 가까워서 매년 학교 축제에 놀러 가곤 했었다. 2002년엔 초대 가수로 마야 선배님이 오셨는데,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던 폭발적인 가창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할 정도다. 원래도 노래하고 춤추는 걸 좋아했지만 그 무대를 보고 나서 나도 저런 멋있는 가수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고, 고등학교 때부터 실용음악 학원을 다니면서 본격적으로 꿈을 키워 나갔다.

무대에 서는 걸 워낙 좋아해서 고등학교 시절에 지역 가요제를 정말 많이 나갔었다. 한창 다닐 때는 하루에 2개도 참가해 봤을 정도였다. 부평 청소년 가요제에서 상을 탔었고 화도진 청소년 가요제에서도 입상해서 신포 문화의 거리에서 쓸 수 있는 상품권을 받기도 했었다.

동생도 음악인의 길로 빠졌다. 집안에 음악 DNA가 흐르는 건가.

꼭 그렇지도 않다. 우리 아빠는 음악 듣는 건 정말 좋아해도 완전 음치에 박치다. (웃음) 다른 건 모르겠지만 피아노나 기타 같은 악기를 배우는 속도는 확실히 빨랐다. 대신 춤만큼은 익히는 데 정말 오래 걸렸다.

음악을 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께서 바로 허락하셨는지.

엄마는 내가 하고 싶은 걸 지지해 주신 반면 아빠는 처음에 많이 반대했다. PD인 삼촌 친구분에게 연예계에 대한 이야기를 워낙 많이 들으셔서 그런지, 방송 연예인보다는 뮤지컬 배우나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 성당에서 성가를 부르는 가수가 되길 바라셨다. 심지어 아이돌을 한창 하고 있을 때도 관두고 딴 거 해도 된다고 계속 말씀하셨다. 그래도 트로트 하고 나서부터는 유명해지고 용돈도 챙겨드려서 지금은 자랑을 하고 다니실 정도로 좋아하신다. (웃음)


확실히 수입이 늘어나긴 했는지.

늘었다기보단 생겼다고 하는 게 맞다. 가수로 데뷔하고 9년 동안 한 번도 정산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아이돌은 TV에 자주 나오고 화려한 모습으로 보이다 보니까 잘 버는 줄 아는 친구들이 많은데 현실은 그게 아니다. 주변에선 직장도 어느 정도 자리 잡아서 부모님께 용돈도 드리고 했지만, 나는 오히려 돈을 타서 쓰는 입장이었다. 그래도 < 미스트롯 2 >가 끝난 그해 가을에 처음으로 정산금이 들어왔다. 이제 내 밥벌이 정도는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다.

가수 생활 중 가장 안정적인 시기를 보내고 있는 지금, 강혜연의 목표는 무엇인가.

여기까지 오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긴 했지만 아직 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 나이에만 할 수 있는 음악적인 시도를 많이 해보려고 한다. 아마 그 중심엔 기존 트로트의 질감을 계승하면서도 대중가요의 트렌드도 적절히 반영할 수 있는 ‘세미 트로트’가 있을 것 같다. 장윤정, 홍진영 선배님의 뒤를 잇는 세미 트로트의 다음 주자는 물론이고, 아이돌 출신 트로트 가수의 선두에서 보다 더 젊은 후배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본보기가 되고 싶다.

진행: 소승근, 장준환, 정다열
사진: 정다열
정리: 정다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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룬디마틴 인터뷰

울산 밴드 룬디마틴. 굳이 앞에 지역 명을 붙인 것은 이들의 정체성에 ‘울산’이 큰 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모든 멤버가 울산에서 태어났고 이곳에서 자랐으며 그 기억을 음악에 실어 나른다. 지역의 음악 씬을 넓히기 위해 보컬 민경은 직접 민간 공연장 ‘플러그인’을 만들고 운영 중이라고 했다. “울산의 예술이 발전하려면 이렇게 계속 예술가들을 발굴하고 우리들끼리 연대가 되어야 한다.” 울산을 향한 태생적 발전적 애정이다.

유독 파란 하늘이 짙게 펼쳐진 10월 ‘플러그인’에서 이들과 만났다. 아쉽게도 베이스의 승언은 개인 일정으로 함께하지 못했다. 경쾌한 에너지와 열정을 기반으로 울산 이곳저곳을 누비는 룬디마틴과의 대화는 즐거웠다. 기타·보컬의 민경, 건반의 현규, 드럼의 한결은 결코 작지 않은 울산 인디 음악 씬에 관한 양질의 답변을 이어갔다. 음악에 닻을 둔 울산 예술가들의 꿈, 끈기, 갈등 그리고 자생에 대한 긍지…

▶좌측부터 한결(드럼), 민경(기타·보컬), 현규(건반)

룬디마틴는 무슨 뜻인가?
민경 : 불어로 ‘월요일 아침’이라는 뜻이다. 월요일 아침은 사람들에게 힘든 시간일 수도 있지만 팀이 가진 밝고 희망찬 에너지로 응원하고 싶었다. 우리 노래를 들으면 ‘월요병’도 좀 늦게 올 수 있다는 의미랄까? (웃음)

룬디마틴만의 강점.
한결 : 에너지. 민경이 프런트로서 아주 충분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 에너지 넘치고 밝고, 기분 좋게 들을 수 있는 우리 노래의 색을 잘 살려준다. 특히 무대에서의 활기가 정말 크레이지 하다. (웃음) 울산을 대표하는 팀이란 자긍심이 있다.

코로나 때문에 대면 공연의 제약이 있었겠다.
민경 : 새어보니까 연에 80회 정도 공연을 해왔다. 근데 작년에는 온라인 포함해서 6차례 정도 무대에 섰더라. 대면은 한, 두 번 정도 했었다. 나머지는 다 비대면이었다. 대신 자체 기획으로 < 여행스케치 in 울산 >을 발매했다. 울산 명소를 찾아다니면서 그곳에 얽힌 노래를 만들고 뮤직비디오까지 직접 찍었다.

인터뷰를 하는 공연장 ‘플러그인’에 대해 설명해준다면.
민경 : 내가 운영하고 있다. 나는 원래 서양학과, 즉 미술을 전공했다. 그러다 음악으로 전향한 거다. 울산에 연습실이 없어서 연습실을 찾다가 월세가 조금 싼 지하 공간을 발견했다. 합판을 잘라서 울산대학교 앞의 첫 번째 공간인 공연장 ‘언플러그드 하우스’를 무작정 만들었다. 10년 정도 복합문화공간으로 운영하다가 작년, 이곳 성남동 문화의 거리로 공연장을 옮겨 왔다. 더 많은 사람을 가까이에서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룬디마틴 같은 경우 이곳을 연습실로도 사용하고 회의도 이곳에서 한다.

“공간이 있어야 사람이 모인다는 생각에 번 돈을 공연장에 다 쏟아 부었다!!”

월세가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민경 : 다른 거로 일해서 버는 돈을 공연장에 다 투자했었다. 공간이 있어야 사람이 모일 수 있다는 생각이 컸었기 때문이다. 울산 내에 이런 민간 소공연장이 거의 없다. 그래서 이걸 지켜내야겠다는 일념으로 다 쏟아 부었다. 이제는 지원 사업이라든지, 국가 보조금들을 알게 되어 전보다는 수월하다.

코로나 이전에는 공연이 많이 있었나?
민경 : 이전 공간에서 2015년경부터 1년 반 정도 매주 화요일만 쉬고 기획 공연을 매일 돌렸었다. 미술 작가로서 삶을 아예 포기하고 음악으로 왔을 때 대중적인 것과 행정적인 것을 동시에 챙기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걸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도 재정적인 부분이 힘들긴 했다. 다행인 건 울산에 기타 치면서 노래하는 포지션이 많이 없어서인지 룬디마틴 공연 외에도 내 개인으로 하는 공연이나 활동들이 많이 들어왔다.

대구의 ‘클럽 헤비’처럼 울산 음악의 중심지가 있다면?
민경 : 22~3년간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로얄 앵커’다. 원래는 음악에 큰 관심이 없는 사장님이 운영하는, 외국인들이 많이 오고 가는 펍(Pub)이었다. 2015년 즈음부터 그곳에 그냥 놓여 있든 허름한 장비를 그냥 썩힐 바에 버스킹을 하자하며 조금씩 버스킹 문화가 형성됐다. 2014, 5년에는 그 금방이 ‘문화의 거리’로 조성되기도 했다.

로얄 앵커와 플러그인. 타지 사람에게는 생소한 이름이다.
민경 : 문화의 거리에 미술, 문학, 음악 등을 하는 예술가들이 많이 포진되어 있다. 로양 앵커와 플러그인 역시 이곳의 한 축이고. 두 공연장이 함께 ‘클럽 데이’도 열었다. 울산의 연주자들이 서로 교류하고 계속 공연할 수 있게 자체적으로 티켓을 팔고 공연을 기획했다. 코로나로 잠시 쉬고 있지만 상황이 괜찮아 지면 다시 진행할 생각이다.

“여기서 살았으니까 우리만 만들 수 있는 음악이 있다는 생각으로 노래한다!”

< 여행스케치 in 울산 >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
민경 : 우리 멤버 전원이 울산 출신이다 보니 추억이 많다. 엄마 손 잡고 태화강 변을 걸을 때도 있었고 내가 어릴 때는 롤러스케이트장이 있어서 거기서 자주 놀았다. 꽃밭도 아주 잘 돼 있고. 우리의 추억이 담긴 곳을 노래로 만들고 싶었다. 여기서 살았으니까 우리만 만들 수 있는 곡이라는 생각으로 노래를 만들고 뮤직비디오를 찍었다.

제작비는 어떻게 충당했나?
민경 : 감사하게도 2020년 울산문화재단의 ‘열린 콘텐츠 지원 사업’의 덕을 봤다.

선정된 이유가 뭘까?
민경 : 우리밖에 할 수 없는 거였다. 울산을 제일 잘 알고 있는 음악가들이 울산을 노래하는 거니까. 사람들이 흔히 울산을 ‘노잼 도시’라고들 한다. 그런데 최근 JTBC 예능프로인 <캠핑클럽>에 울산이 등장하기도 하면서 울산에 대한 관심이 조금 늘었다. 특히 울산12경과 같이 자연경관이 좋은 데도 많다. 울산의 아름다운 곳을 세 군데 선정해 그곳을 중심으로 다뤘다.

구체적으로 어느 장소일지.
민경 : 태화강, 간절곶, 그리고 함월로. 룬디마틴과 남성 듀오 JU와 함께 했다. JU가 함월로를 중심으로, 우리가 태화강을 중심으로 노래를 만들었고 간절곶은 두 팀이 같이 힘을 합쳐 작업했다. 울산의 예술이 발전하려면 이렇게 계속 예술가들을 발굴하고 우리들끼리 연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울산을 활동 기반으로 삼은 예술가들이 많은가?
민경 : 재작년에 ‘울산 음악창작소’가 개소했다. 거기서 신인 음악가를 발굴해 음악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60여 개 팀이 지원했다. 아쉽게 룬디마틴은 선정되지 못했다. 선정팀들을 보니 우리가 알지 못하던 다른 뮤지션들이 많더라. 정말 깜짝 놀랐다.

울산의 음악적 수준이 어떤 거 같은가?
민경 : 문화적인 부분과 실력 부분을 나눠서 얘기해야 할 것 같다. 우선 실력은 울산에 실용음악 학교는 많은데 실용음악과(대학)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중, 고등학생 때 열심히 음악적 기량을 쌓아도 결국 서울이나 다른 지역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런 부분이 아쉽다.

문화적인 건 우리 밴드를 통해 잘 설명할 수 있다. 룬디마틴은 천진난만하고 행복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이게 어디서 오냐면 나는 울산이란 지역 문화적 배경에서 온다고 본다. 물론 내가 서울에 살아보지는 않았지만 서울에는 굉장히 치열하고 어쩌면 개인주의적인 게 이곳보다는 많지 않을까 싶다. 이런 분위기가 울산 음악의 문화적인 걸 만들어주지 않을까?

“울산의 뮤지션들은 서로 구사하는 장르가 달라도 교류를 하면서 시너지를 낸다!!”

다른 멤버들의 생각은.
현규 : 동의한다. 문화적인 측면에서 확실히 잘 섞인다. 울산이 타 지역과 다른 것은 장르 간의 교류가 생기며 시너지가 난다는 거다. 씬 내의 우애가 좋다.

민경 : 나랑 베이스 오빠도 그렇고 우리 팀 모두가 객원 활동을 하고 있다. 그중 국악 쪽이랑 콜라보가 특히 많다. 그래서 퓨전 국악팀도 하고, 클래식 팀, 힙합 팀 등 여러 분야에서 다 교류가 많다. 서울, 대구, 부산 등지에 가면 재즈 하는 사람은 재즈 하는 사람들끼리 알고 인디 음악 하는 사람은 인디 음악 하는 사람들끼리 뭉쳐지는데 우린 예술가 수 자체가 많지 않아서 인지 서로 교류가 많다.

울산 음악의 특징이 ‘퓨전’일 수도 있겠다.
민경 : 울산은 공업 도시이기 때문에 타지에서 오는 사람들이 다 일자리 때문에 오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문화예술 생태계를 구축하는 사람들은 울산을 정말 잘 알고, 이곳을 더 알리려고 하는 울산 태생인 분들이 많다. 울산이 아무래도 무역 도시이다 보니까 염포, 방어진 등 항구를 기점으로 제주도, 일본 등지와 왕래가 잦았다. 그러다 보니 DNA 적으로 울산 사람들이 조금 더 개방적인 게 있고 그게 음악 교류가 활발한 것에 영향을 끼친다고 볼 수도 있다.

지방에서 음악을 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활동의 원동력이 있다면.
민경 : 멤버들. 우리는 급할 게 없고 그냥 이렇게 쭉 가면 된다. 밴드 운영비는 돈을 잘 벌어서, 공연이 많아서라기보다 그냥 그런 체제(자급자족하는)를 멤버 전원이 다 인정해서라고 본다. 1집을 제작할 때도, 쇼 케이스를 진행할 때도 무조건 공연비를 다 모아서 진행했다. CD를 찍을 때 현규 작업실을 썼는데 오토바이가 지나가면 멈췄다가 녹음하기를 반복했다. 그런 걸 거친 사람과 거치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크다. 우리 넷은 동시에 그것을 느꼈기에 함께 끈끈하게 갈 수 있다.

발매된 노래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곡은?
한결 : 1집 < Rundi Rise >(2019)의 타이틀 ‘히하’. 그룹에 들어온 지 5~6년쯤 됐다. 관객으로 룬디마틴을 처음 봤을 때 들은 곡이 ‘히하’였다. 밴드를 처음 만나게 했던 곡인데 지금은 내가 연주를 하고 있으니 감회가 새롭다.

민경 : 현규랑 한결이가 직장인이다. 그중 한결의 아이디어로 탄생한 ‘5분만’을 뽑겠다. 딱 5분만 더 자고 싶은데 출근을 해야 하니까 잘 수 없는 일상생활의 애환이 담겨 있다. 멤버 4명이 함께 쓰기도 했고 거의 2, 30분 만에 만족스러운 노래를 완성했다는 점에서 인상 깊다.

“울산 사람들, 울산 청년들 그리고 그 안의 우리 룬디마틴을 게속 얘기하다보면 지구 반대편 누군가와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
민경 : 울산에는 고복수, 윤수일 선생님이 있다. 11월 4일부터 열리는 울산 나들이 축제에서 ‘룬디마틴이 울산을 노래하다’라는 콘셉트로 무대에 선다. 우리식으로 고복수의 ‘타향살이’, 윤수일의 ‘아파트’를 해석했다. 또 우리의 시각으로 본 울산의 풍경에 대한 노래도 준비했다. 울산의 사람들, 울산에서 살아가는 청년들 그리고 그 안의 우리 룬디마틴을 계속 이야기하다 보면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와 소통할 수 있는 통로가 생기지 않을까? 그런 각오와 다짐이 있다.

울산 뮤지션들을 소개해준다면?
한결 : 온라인으로 음악을 들을 수는 없지만 ‘대보름밴드’와 ‘내드름연희단’을 추천한다. 퓨전 국악을 하는 팀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확실한 다이내믹이 느껴져서 좋다.

민경 : 내가 생각하는 울산의 약점은 밴드 자작곡이 많지 않다는 거다. 자체적으로 싱어송라이터 스터디를 하면서 일반 사람들과 많이 교류하는데 거기서 ‘브루니 센티’를 알게 됐다. 본인은 노래를 잘못한다고 취미로 유튜브를 하고 음악을 하는 거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 이상으로 끌어낼 게 많다. 이외에도 밴드 ‘더 블랭캣’과 가사에서 느껴지는 감성이 훌륭한 ‘피에스(P.S)’를 뽑고 싶다.

현규 : ‘뮤직 팩토리 딜라잇’. 브라질 타악기인 바투카다를 연주하는 그룹인데 경남, 경북을 통틀어서 가장 독보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끝으로 목표.
현규 : 어쿠스틱 팝의 선입견을 깨고 싶다. 원래 룬디마틴은 피아노 사운드를 기반으로 멜로디나 화성이 돋보이는 팀이었다. 4년 전 내가 합류하고 나서는 사운드를 더 풍부하게 채우려고 했다. 피아노 말고 신시사이저 소스를 쓰거나 추가로 스트링을 넣는 식으로 말이다. 이런 식으로 피아노를 빼기도 하고 사운드를 뭉개기도 하면서 음악적 실험을 주저하지 않겠다. 그렇게 나아갈 거다. (웃음)

인터뷰 : 임진모, 박수진
정리 : 박수진
사진 : 박수진, 룬디마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