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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바티스트(Jon Batiste) ‘WE ARE'(2021)

평가: 4/5

베테랑 재즈 피아니스트의 손길이 번뜩인다. 당장이라도 박수로 회답하고 싶은 빼어난 연주는 공동의 소통을 끌어내며 재즈의 본질을 닮는다. 미국 CBS ‘레이트 쇼 위드 스티븐 콜베어’의 밴드 리더이자 픽사 < 소울 > 사운드 트랙의 작곡가인 존 바티스트의 여덟 번째 정규 음반은 순백한 영혼으로 삶과 그가 한평생 몸 바쳐온 음악을 찬미한다.

정통적 재즈 기반에 가스펠, 소울, 힙합 등의 장르를 폭넓게 포괄하고 충실한 기본기 위 현대성과 조화를 이루는 매끄러운 사운드 스케이프가 더해진 견고한 짜임새의 재즈 앨범이다.

언뜻 < 소울 > 사운드 트랙의 연장처럼 다가오는 음반은 줄곧 생동감 넘치는 연주로 진행된다. 기술적인 터치를 자아내는 피아노 선율도 누구나 쉽게 반응할 수 있을 만큼 감도가 높다. 무엇보다 매력적인 건 ‘함께 한다’는 인상이 강하게 든다는 점이다.

풍성한 공간감 대신 가깝게 들리는 사운드로 직관적인 전달에 뜻을 두고, 좌우로 고르게 배치한 세션의 입체적인 합동은 이들의 재즈 공연을 한 자리에서 듣는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거기에 중간중간 떼창과 박수 소리를 동원해 그러한 동시성의 면모를 살리고, 인스트루멘탈 ‘Movement 11” 등의 곡으로 절정의 연주 실력을 보여주는 것은 덤. 장르에 대한 강한 애착으로 설계한 밑그림에 빈틈이 없다.

가사의 시선도 자신이 아닌 타자를 향한다. “재즈는 함께하는 것이다 / 혼자이고자 한다면 음악은 작동하지 않는다”는 모 인터뷰에서 한 발언처럼 다수에게 닿을 수 있는 인간적인 내용을 토대로 공감과 위안의 언어를 친절히 선물한다. 첫 트랙 ‘We are’는 그 대표다. 겹겹이 쌓아 올린 합창으로 ‘우리는 선택받은 자들이다’라 환희하는 메시지에 삶에 대한 긍정이 깃들고, 발랄한 사랑을 그려낸 ‘I need you’의 밝은 태도도 절로 미소를 짓게 한다. 베이스를 연주했던 아버지의 가르침을 기억하며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사랑하라’ 말하는 ‘Tell the truth’ 역시 교훈이 깊은 곡이다.

‘Boy hood’는 이 모든 무기를 압축한 가장 돋보이는 곡이다. 어린 시절의 회상이라는 주제로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노래는 현대적인 트랩 비트 특유의 리듬감을 살리면서도 따사로운 분위기와 임팩트 있는 후렴으로 편안하면서도 중독적인 청취감을 완성한다. 개별 트랙으로서의 존재감이 확실한 곡도 속속 배치한 것이다.

역동적인 그루브에 보컬이 전면으로 튀어나와 있는 ‘Freedom’의 강렬한 에너지와 존경하는 뮤지션을 예찬하는 ‘Show me the way’의 음악에 대한 진심이 설득력 있게 피어나는 것도 선명한 보컬 멜로디를 기반으로 튼튼한 만듦새가 뒷받침되는 덕이다.

모범적인 재즈 뮤지션의 섬세한 터치, 그리고 그 깊숙이 살아 숨 쉬는 수수한 영혼이 반갑다. 보기 드문 온기와 세대를 관통하는 순수로 뒤숭숭한 나날을 포근하게 다독이는 봄 햇살처럼 따뜻한 음반이다.

– 수록곡 –
1. We are
2. Tell the truth 
3. Cry
4. I need you
5. Whatchutalkinbout
6. Boy hood 
7. Movement 11′ (Feat. PJ Morton, Trombone Shorty)
8. Adulthood (Feat. Hot 8 Brass Band)
9. Mavis
10. Freedom 
11. Show me the way (Feat. Zadie Smith) 
12. Sing 
13. Unt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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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김도헌의 Twist And Shout

경이로운 ‘소울’의 음악세계

< 소울(Soul) >이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최고 작품은 아닐 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고의 음악 영화임은 분명하다. 흑인 재즈 피아니스트 조 가드너(제이미 폭스 분), 태어나지 않은 영혼 22(티나 페이 분)의 하루를 그린 이 작품은 반복되는 일상 속 삶의 가치를 다시 묻고, 모든 것의 근원으로 거슬러올라가 세계 속 개인을 곱씹게 만든다. 그 핵심 가치의 은유 도구가 음악이다. 영화는 불협화음으로 시작해 영적인 즉흥을 거쳐, 존재 자체로 빛날 수 있는 황홀경을 향해 나아간다.

 < 인사이드 아웃 >에 이어 다시 메가폰을 잡은 감독 피트 닥터는 유년기 음악을 가르쳤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더블 베이스를 연주한 아마추어 재즈 뮤지션이었다. 자연히 재즈의 팬으로 자란 그는 제작 회의 중 우연히 누군가가 언급한 허비 행콕의 온라인 마스터클래스 영상을 시청한 후 주인공 조의 직업을 결정했다. 영상 속에서 허비 행콕은 투어 중 마일스 데이비스와의 합동 공연을 회상하는데, 워낙 큰 무대에 긴장한 나머지 연주 중 그만 음을 틀려버렸음에도 마일스가 곧바로 흐름을 이어 즉흥으로 연주를 진행했다는 일화를 들려준다. 

거장의 유연한 대처 일화는 삶의 지향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영화 주제로 이어졌다. 조 가드너는 재즈 뮤지션이었던 아버지를 동경하며 음악가의 길을 걷고자 하나 집안의 반대와 경제적 사정에 부딪쳐 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친다. 학교 밴드 아이들과 씨름하면서도 조는 어린 시절 그를 매료시킨 클럽에서 밴드의 일원으로 공연하는 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조 가드너의 아이디어, 악기, 연주, 노래가 될 아티스트로 < 소울 > 제작진은 1986년생 재즈 뮤지션 존 바티스트(Jon Batiste)를 낙점했다. 존은 젊은 나이에도 그래미 어워드 3회 노미네이트 된 실력자이며 현재 ‘더 애틀랜틱’과 뉴욕 할렘 재즈 박물관의 음악 디렉터, 미국 CBS의 ‘레이트 쇼 위드 스티븐 콜베어’ 쇼 음악 감독을 맡은 대세 뮤지션이다. “영적인 장소에 이르는 과정을 그리며 조화롭고 멜로디가 살아있는, 리듬감 있는 음악”을 생각하며 존은 재즈를 기반으로 한 알앤비, 소울, 클래식 사운드트랙을 자유로이 선보였다. 

고전과 현실을 오가는 활기찬 연주가 ‘누구도 걷다가 멈추지 않는 도시’ 뉴욕의 조 가드너를 숨 쉬게 한다. 극 초반부터 화려한 연주로 재즈 클럽에서의 오디션과 들뜬 마음을 표현하더니, 중후반부부터는 ‘뉴욕 영화’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닐 만큼 도시의 소음과 일상의 사물과 함께 일상의 경이로움을 발굴하는 데 앞장선다.

pixar soul 이미지 검색결과

허비 행콕부터 테리 린 캐링턴, 퀘스트러브 등 신을 이끄는 다양한 뮤지션들이 자문을 더하며 고전에 대한 경의도 잊지 않았다. 데이브 브루벡 쿼텟의 ‘Blue rondo a la turk’, 월터 노리스의 ‘Space maker’, 듀크 피어슨의 ‘Cristo Redentor’ 등 과거의 명곡이 사운드트랙 곳곳에서 변주된다.

“우리 밴드의 음악 연령대는 95세부터 19세까지다!”. 존 바티스트의 자랑스러운 선언대로 < 소울 >의 음악은 세대 무관이다. 올드 재즈 팬부터 신세대 베드룸 알앤비 싱어송라이터까지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무아지경의 세계 속 자유로이 발걸음을 옮기는 연주의 즐거움과 쾌감이 영화의 주제 의식을 자연스레 옮기는 것은 덤.

1963년 커티스 메이필드가 작곡한 임프레션스의 고전 ‘It’s all right’ 역시 존의 손 끝에서 극의 마지막을 잔잔하게 빛낸다. 정말로 ‘손 끝’이다. 실제로 영화 속 조의 연주 장면은 존의 실황을 촬영해 모션 캡처로 옮긴 결과물이니까.

그토록 바라던 재즈 밴드의 일원이 된 조. 벅찬 감정에 발 밑을 제대로 살피지 않다가 그만 하수구에 빠져 ‘태어나기 전 세상’으로 가고 만다. 피카소의 입체파 그림을 닮은 형이상학적 존재 ‘관리자’들과 무한한 영혼들이 신비로운 풍경을 이루는 이 곳에서 음악의 문법도 빠르게 전환된다. 리얼 세션 재즈에서 영롱하고 광활한 앰비언트가 장엄한 소리의 안개를 펼친다. 

이 세계의 설계자들이 트렌트 레즈너와 애티커스 로스다. 음악 팬들에게는 나인 인치 네일스로 유명한 이름이다. 1994년 우드스탁 페스티벌에서 온 몸에 진흙을 뒤집어쓰고 인간의 음울과 고통을 절규하듯 토해내던 인더스트리얼 밴드를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던지 이들의 참여 소식은 영화 개봉 전부터 화제였다. 정작 트렌트 레즈너는 “픽사만큼 애니메이션을 잘 만드는 곳은 없다”며 반가운 마음으로 작업에 임했다고. 

21세기 트렌트 레즈너와 애티커스 로스는 나인 인치 네일스보다 사운드트랙 작곡가로 더욱 유명하다. < 소셜 네트워크 >, < 나를 찾아줘 >, < 버드 박스 >, < 맹크 >까지 유수의 영화 사운드트랙을 담당했고 특히 2010년 < 소셜 네트워크 >로는 2010년 아카데미 상을 수상한, 검증된 아티스트다. 그럼에도 < 소울 >은 듀오의 첫 애니메이션 작업이고 디즈니 픽사 애니메이션과는 꽤 거리가 있는 전자 음악을 선보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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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바티스트가 즉흥의 붓질이라면 트렌트와 애티커스는 아티스트의 캔버스 같은 존재다. 장대한 가상공간 곳곳에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듀오의 음악은 야심 가득하면서도 포근하며 천진한 디즈니의 성격에 정확히 부합한다. 아날로그 신시사이저부터 가상 악기, 사운드 합성을 통해 제작한 소리는 < 인사이드 아웃 >의 감정, < 토이 스토리 >의 포근한 무생물 세계와 닮았으면서도 분명히 구분된다. 사후세계 ‘머나먼 저 세상’부터 어린 영혼들을 교육하는 ‘유 세미나’까지 유연하게 찰랑이는 청각의 물결이다. 

현실과 가상을 오가는 영화처럼 두 ‘음악 관리자’ 들의 연주도 자유로이 교차된다. 하이라이트는 가상 세계 관리자 테리(레이첼 하우스 분)가 존과 22를 뉴욕으로부터 가상 세계로 영혼을 데려갈 때다. 재즈 밴드 연주가 왜곡된 사운드 벽을 거쳐 긴박한 앰비언트 파편으로 제시되는 부분이 긴박하면서도 아름다운 충돌의 순간을 그린다. 친절하게도 트렌트 레즈너는 곧이어 온화한 피아노 뉴에이지로 긴장을 낮추며, 존 바티스트가 바통을 이어 화려한 고전의 세계를 전개한다. 아름다운 앙상블, 화려한 하모니다.

trent reznor soul 이미지 검색결과

근사한 사운드트랙 덕에 < 소울 > 은 한 편의 영화임과 동시에 영화의 형태로 비유된 음악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리고 음악은 곧 삶과 동의어다. 하루하루 정신없이 반복되는 일상 속 거대한 ‘불꽃’ 같은 순간을 바라며 삶을 무의미하다 비관할 수 있지만, 관리자 제리(리처드 아이오아이 분)의 말처럼 “불꽃은 삶의 목적이 아니다.”.

존재 그 자체로 아름답고 우리에게 하여금 새로운 꿈을 꾸게 만드는 음악, 그 몰입의 과정 속 선물처럼 내려오는 아름다운 순간, 그것이 곧 삶일지니. 훌륭한 작품의 드넓은 저편에 경이로운 음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