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Interview

피프티 피프티(FIFTY FIFTY) 인터뷰

독특한 마케팅 요소로 눈길을 끈다 해도 좋은 음악만 한 정공법이 없다. 지난해 11월 데뷔한 신인 걸그룹 피프티 피프티는 부드러운 멜로디와 탄탄한 기본기를 앞세운 < The Fifty >를 시작으로 K팝 팬들은 물론 국내외 평단의 호평을 이끌며 그 불변의 진리를 몸소 증명해 내고 있다. 시대의 흐름에 과하게 반하지 않으면서도 대중에게 파고들 수 있는 방도를 깊이 모색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인터뷰 내내 ‘색깔’이란 단어가 이들의 입에서 떠나질 않았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를 아우를 수 있는 컬러를 찾기 위해 네 명의 소녀는 여전히 활동의 주체가 되어 서로 의견을 주고받고 있었다. 도회적인 디스코 트랙 ‘Cupid’로 좋은 음악을 갈망하는 이들의 가슴에 또 한 번 화살을 겨눈 지금, 당차고 싱그러운 에너지로 더욱 짙어진 피프티 피프티만의 색채를 확인해 보라.

▶ 좌측부터 아란, 시오, 새나, 키나

최근 ‘Cupid’가 빌보드 월드 디지털 송 세일즈에서 주간 8위를 기록했고 뮤직비디오엔 유튜브 공식 계정이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새나 : 내가 아는 그 빌보드, 유튜브가 맞나 하고 두 눈을 의심했다. 여전히 믿기지 않지만 당장의 지표보다 팬들이 피프티 피프티의 음악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사실에 집중했다. 이렇게 주목해 주는 순간에 더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잘 해야겠다는 마인드를 되새겼다.

세계적으로 관심받을 수 있었던 건 아무래도 데뷔 EP < The Fifty >의 공이 크다. 앨범에 수록된 4곡을 처음 받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새나 : 호응에 대한 본능적인 확신이 있었다. 비슷한 질감의 트랙 ‘Tell me’, ‘Lovin’ me’, ‘Higher’와 완전 반전 이미지를 갖고 있는 ‘Log in’만으로도 우리가 갖고 있는 다양한 스타일을 상당 부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키나 : 소위 말하는 ‘걸크러시’ 음악이 최근에 꽤 많다고 생각했는데 유행과 결을 달리하는 콘셉트로 우리만의 색깔을 확실히 보여줄 수 있을 거란 믿음이 갔다.

앞서 언급한 ‘Log in’은 다른 세 곡에 비해 동시대 걸그룹들의 음악과 큰 차이가 있진 않다.

새나 : 사실 ‘Log in’과 ‘Higher’를 두고 어떤 곡을 메인 타이틀로 할지 정말 많이 고민했다. 처음엔 아무래도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는 ‘Log in’ 쪽으로 의견이 몰렸지만 두 곡을 계속 듣다 보니 ‘Higher’의 매력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듣기 편한 음악이라는 것만으로도 현 K팝 신에서 돋보일 수 있는 위치를 점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해서 회사와 긴 상의 끝에 ‘Higher’가 메인 타이틀이 될 수 있었다.

‘Higher’의 어떤 부분에 끌렸나.

새나 : 구름 같은 매력이지 않을까. 몽글몽글한 멜로디가 잔향이 오래 드리우는 향수처럼 은은하게 꽂히는 느낌이 들었다.

나머지 2곡에 대한 첫인상도 궁금하다.

아란 : ‘Tell me’는 가장 발랄한 느낌의 시티팝이다. 그런데 디렉팅 때는 마냥 발랄하지 않게 불러달라고 요청을 받았다. 사랑이라고 하더라도 항상 행복한 건 아니니까 그런 역경까지 이겨내면서 나는 너를 계속 알아가고 싶다는 내용을 노래하는 트랙이었고, 그 주체가 나와 너, 그리고 우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표현하기 위해 멤버 모두의 생각을 고루 녹여냈다.

시오 : ‘Lovin’ me’의 경우 데모 버전과 가사가 달라졌다. 회사 측에서 우리 이야기를 더 풀어내고 싶다고 먼저 의견을 주셨고 기존 노랫말과 함께 풀어낼 수 있는 단어들이 어우러지면서 ‘Lovin’ me’가 완성됐다. 그리고 노래 자체도 ‘Higher’, ‘Tell me’와는 다르게 EDM 사운드를 강조해서 색다른 감상을 선사했다.

▶ 아란(리드보컬, 리드래퍼), 시오(메인보컬, 리드댄서)

신곡 ‘Cupid’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다만 이전에 비해 힘을 좀 뺐다는 느낌이 든다.

아란 : 메시지 전달에 집중하는 과정에서 자연히 부드러워졌다. 큐피드가 쏜 화살 덕분에 사랑을 비롯한 목표를 이룰 수 있겠지만 우리 모두 그런 도움 없이도 충분히 스스로 쟁취할 수 있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다.

‘Cupid’ 트윈 버전에선 랩이 아예 빠졌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키나 : 애초에 원곡 자체가 편안한 감상을 노린 만큼 전략적으로 랩을 완전히 제거한 트윈 버전도 수록하게 됐다. 오리지널 버전은 방송 무대 위에서 퍼포먼스적인 부분도 고려해서 4명의 다채로움을 담는데 집중했다면 트윈 버전은 좋은 멜로디와 비트를 더욱 앞세워 차별점을 두었다.

그런 면에서 멤버 모두 보컬에 대한 자신감이 상당한 것 같다.

시오 : 자신감이 없다면 거짓말이지 않을까. (웃음) 보컬이야말로 우리가 당차게 내세울 수 있는 부분 중 하나다. 물론 앞으로도 발전해 나갈 길이 멀기 때문에 실력이 뛰어나다기 보다 우리만의 색깔이 뚜렷하다는 쪽으로 해석해 주시면 좋을 것 같다.

아란 :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무조건 나의 색깔을 잡아둔다. 그전에 끝마치지 못한다면 결코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에 준비 과정에서 항상 심도 있게 시간을 두고 고민하는 편이다. 이런 노력 덕분에 우리 노래에서만큼은 우리라서 살릴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자부한다.

닮고 싶은 보컬이 있다면.

아란 : 딘과 크러쉬는 확실히 다르다. 딘은 사용하는 패턴을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송폼이 다채롭고, 크러쉬는 타고난 리듬감 덕분에 귀로 음악을 듣는데 마치 몸이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불어넣는다. 똑같이 하려고 해봐도 절대 따라 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노래도 마냥 부른다고 다 되는 게 아니구나 하는 걸 깨닫고 내 색깔로 소화하는 방법에 대해 열심히 연구 중이다.

시오 : 보컬만 따진다면 팝 가수 예바(YEBBA)를 뽑고 싶다. 가창력도 가창력이지만 릭(Lick, 짧은 음계 간 연결) 노트를 정말 특이하게 사용한다. 내가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이기 때문에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그의 탁월한 능력을 많이 닮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새나 : 젊은 한국 가수 중에서 이하이처럼 깊은 소울을 품고 있는 뮤지션은 흔치 않다. 툭툭 내뱉는 노랫말에 특색 있는 애절함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본인이 추구하는 음악 역시 확실하다. 나도 목소리를 듣자마자 단번에 알아챌 수 있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

키나 : 비비를 굉장히 존경한다. 어떤 한 주제에 대해 깊게 파고 들 때 목소리 톤에 변화를 주거나 랩, 보컬을 섞어서 다양하게 해석할 여지를 남긴다는 점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 새나(리더, 메인댄서, 서브래퍼), 키나(메인래퍼, 서브보컬)

매체에서는 보컬을 주로 담당하고 있는 아란과 시오를 많이 언급하지만 새나와 키나 역시 수준급의 실력을 보유하고 있다. 키나는 과거 드라마 < 달리는 조사관 > OST에 참여해 ‘Take back my life’라는 곡으로 수준급의 가창력을 선보이기도 했는데, 둘의 보컬은 언제쯤 만나볼 수 있을까.

키나 : 아무래도 아직은 아란이와 시오가 보컬로 보여줄 수 있는 게 많다고 판단해서 지금처럼 파트 배분이 이뤄졌다. 물론 나와 새나 만의 색깔도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음색에 어울리는 곡을 받았을 때 언제든 참여할 수 있게 준비 중이다. 아마 가까운 시일 내에 들려 드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룹의 합을 보여주기 바쁜 데뷔 초반임에도 둘이서 부른 곡이 많다. 노래에 참여하는 멤버는 어떤 식으로 정해진 건지 궁금하다.

키나 : 녹음할 때마다 멤버 모두 처음부터 끝까지 곡을 불러보고 감성이 가장 잘 맞아서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멤버에게 그 파트 혹은 트랙을 맡겨 주신다. ‘Lovin’ me’는 새나와 시오가 좀 더 잘 표현을 했었고 ‘Tell me’처럼 아련함이 돋보이는 목소리는 아란이가 정말 잘 뽐낼 수 있었다. 나는 작사에 참여해서 랩을 비롯한 노랫말들을 조금 더 내 포인트에 맞게 조절하면서도 멤버들의 장점을 살릴 수 있도록 노력했다.

랩을 할 때 가장 많이 참고하는 래퍼는 누구인가.

키나 : 해외 아티스트 중에선 도자 캣. 랩은 물론 보컬까지 통합하며 본인의 색깔을 풀어낼 수 있다는 점을 본받고 싶다. 국내에선 김하온과 저스디스를 많이 찾아 듣는다. 특히 비방어 하나 없이 본인의 느낌으로 풀어내는 김하온을 리스펙한다.

멤버들의 참여도가 상당해 보인다. 본인들이 작업에 어느 정도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키나 : 아직은 30% 정도 같다. 당장엔 나만 작사에 참여했지만 멤버들도 작사, 작곡에 대한 의지가 너무나 커서 점점 참여도가 올라갈 것이다.

새나 : 40~50%라고 생각하는데 신인에겐 이 정도도 아주 큰 기회라고 본다. 덕분에 우리 색깔이 많이 반영되었고 결과적으로 좋은 그림을 완성할 수 있었다. 물론 아직도 채워나갈 스펙트럼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에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 좌측부터 키나, 아란, 새나, 시오

가수의 꿈을 키우게 된 결정적인 순간이 있다면.

키나 : 어릴 때 우연히 에이핑크의 콘서트 영상을 접했었다. 무대 위에서 본인 만의 메시지를 전달하며 팬분들과 공감하는 모습이 크게 와닿았고 나도 그런 가수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의 변심 없이 오로지 가수만 바라보며 달려왔다.

시오 : 원래 명확한 진로 없이 하고 싶은 게 많았던 아이였다. 노래, 그림, 춤과 같은 예체능 분야에 관심이 깊었고 그중에서도 음악, 특히 팝을 좋아해서 중학교 3학년 정도부터 가수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때 샘 스미스, 라우브, 트로이 시반 같은 가수들의 음악을 들으면서 나를 표현하는 방식을 체득할 수 있었다.

아란 : 4~5살 즈음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이 나왔는데 거실에 있던 컴퓨터로 하루 종일 그 노래만 틀어 뒀던 기억이 난다.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면서 들었던 걸 보면 그때가 시작이 아니었나 싶다.

새나 : 10살쯤에 베스티의 무대를 보고 나도 모르게 웃으면서 춤을 따라췄던 적이 있다. 그때 아이돌에 눈을 뜨게 되면서 나도 저런 가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엄마께서도 행복해하는 내 모습을 보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밀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굉장히 강하게 드셨다고 말씀해주셨다.

새나는 데뷔 전에 댄서를 꿈꿨다고 들었다.

새나 : 본격적으로 아이돌을 준비를 하던 중에 춤에 완전히 빠져버린 케이스다. 전문 댄서가 되기 위해 몇 년 동안 무대에 많이 올라보고 대회도 부지런히 참가하며 경력을 쌓았는데, 아이돌의 꿈을 차마 포기할 수 없어서 다시 기획사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번번이 고배를 마신 탓에 마지막 기회란 생각으로 지금 회사에 지원했는데 다행히 합격해서 데뷔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 떨어졌다면 댄서로 활동하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까지 발매한 5곡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안무가 있다면.

새나 : 퍼포먼스적으로 보면 ‘Log in’의 기승전결이 깔끔하다. 하지만 보기에 부담 없고 4명의 색깔이 확실하게 묻어 나오는 건 ‘Cupid’라고 본다. 아무리 구성이 뛰어나도 우리가 그 순간을 더욱 즐기며 표현해야 완성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각자 파트를 어떻게 살릴지 깊게 고민하고 춤에 반영했다.

▶ 좌측부터 아란, 새나, 시오, 키나

데뷔 이후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하나만 꼽아 본다면.

키나 : 아무래도 처음으로 음악 방송에 출연했을 때가 아닐까. TV에서만 보던 무대에 내가 올랐다는 사실만으로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행복했다.

새나 : 이번 ‘Cupid’ 활동 때 객석에 몇몇 팬분들이 계셨는데, 무대를 하는 중에 인이어 사이로 우리를 응원해 주는 소리가 크게 들려서 아주 큰 힘이 되었다. 피프티 피프티가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걸 몸소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시오 : 모든 곡을 통틀어서 ‘Lovin’ me’는 가장 먼저 우리 이름으로 받았던 곡이다. 그래서 딱 처음 들었을 때 내가 드디어 연습생을 넘어 프로로 향하는 길에 들어섰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좀 뭉클했다.

아란 : 최종 녹음본이 나올 때마다 항상 짜릿하다. 특히 타이틀곡인 ‘Higher’는 의도한 바대로 나온 부분도 있고 다르게 들어간 부분도 있었는데 그마저도 결국엔 조화롭게 들려서 더 크게 와닿았다. 내가 부른 노래가 음원으로 세상에 공개되고 앞으로 내가 이 노래를 가지고 무대를 할 수 있다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 딱 그때인 것 같다.

멤버들이 정의하는 피프티 피프티의 음악적 정체성은 무엇인가.

새나 : 순수함이다. 우리는 새로운 무언가를 먼저 입히려 하지 않고 기본적인 것들을 챙기면서 그 위에 다른 색채를 가볍게 덧대는 식으로 작업을 진행하는데 그 과정에서 각자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매력이 잘 살아나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한국 대중음악, 그리고 K팝 신에서 어떤 팀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시오 : 진정성 있는 아티스트, 그리고 음악이 좋은 그룹으로 남는 게 우리의 목표다.

아란 : 피프티 피프티라는 장르로 남고 싶다. 어떤 노래를 들었을 때 사람들이 ‘이건 완전 피프티 피프티 음악이네’라고 하며 알아봐 줬으면 좋겠다.

새나 : 무대 자체를 즐기는 그룹으로 기억되고 싶다. 막연하게 노래하고 춤추는 게 아니라 음악에 몰입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임하는 지가 가장 중요하다. 그렇게 해야 보는 사람들도 무대를 온전히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키나 : 다 중요하지만 오래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장수하는 그룹이 되고 싶다.

진행: 임진모, 소승근, 장준환, 임동엽, 정다열
정리: 정다열
사진: 임동엽, ATTRAKT 제공

Categories
News

[이즘IZM 뮤직 아카데미] Back To The 80’s

강의소개
이즘이 새로운 음악 강좌 [Back To The 80’s]를 시작합니다. 최근 대중음악의 키워드는 복고, 레트로입니다. 그중에서도 1980년대 음악이 그 중심이죠. 이번 강의는 가장 화려했던 1980년대 팝 음악을 조명합니다. 큰 스피커로 함께 모여 제대로 음악을 듣고, 배우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문의 사항이 있다면 언제든 아래의 번호로 연락 주세요.

* 일시: 2023년 2월 23일 ~ 3월 9일 (매주 목요일, 3주 과정) 저녁 6:30 ~ 8:30
* 장소: 빅퍼즐 문화연구소 (서울특별시 마포구 서교동 370-26, 2층)
* 강사: 이즘 대표 겸 라디오 작가 소승근 (한동준의 FM POPS 작가로 활동 중)
* 수강료: 10만원 (개별 강좌 신청 가능 / 강의 1회 당 4만원)
* 수강신청 기간: 2023년 1월 6일 ~

* 문의: 010-2784-9906
신청링크: (클릭 시 새 창으로 연결됩니다)

커리큘럼
1. 1980년대의 역주행
2. 1980년대의 여성 싱어송라이터
3. 음악의 패러다임을 바꾼 MTV

Categories
특집 Feature

2022 올해의 팝 싱글

유난히도 치열한 경쟁이 펼쳐진 한 해다. 예상치 못 한 고지 점령과 아슬아슬한 추격전, 그리고 통쾌한 정상 탈환까지. 주연과 각본이 쉴 새 없이 바뀌며 반전의 반전을 이룩하던 1년간의 드라마는 어느덧 막을 내렸다. 그 크레딧을 천천히 살펴보며, 차트 내외곽에서 활약을 펼친 그 영광의 10곡을 소개하려 한다. 글의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해리 스타일스(Harry Styles) ‘As it was’

새 출발 이후 곧바로 그룹 시절과의 단절을 완수한 해리 스타일스는 올해 ‘As it was’로 완연한 대세에 올라섰다. 자국인 영국에서는 10주 동안 1위를 차지했고, 미국 빌보드 핫 100 싱글 차트의 정상에서는 무려 15주 동안 군림하며 통산 4위의 기록을 세운 것. 심지어 솔로 아티스트로는 최장기간이다. 봄부터 여름을 지나 가을까지, 앨범 제목 < Harry’s House >처럼 1위 자리를 마치 그의 집처럼 드나든 셈이다.

비결은 ‘무자극’이었다. 1980년대 뉴웨이브부터 요즘 인디 록까지 다양한 재료와 향신료를 한데 넣고 섞어, 따뜻하게 속을 데워주는 깔끔한 수프 같은 곡을 완성했다. 그 중심에 놓인 기름기를 쫙 뺀 해리 스타일스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노래를 찾게 만드는 정겨운 맛을 내줬다. 정점을 찍은 인기와 물오른 실력이 엇갈리지 않고 동시에 만난 흔하지 않은 케이스다. 그러니 연기로의 외도보다는 음악에 집중해주시길. (한성현)

스티브 레이시(Steve Lacy) ‘Bad habit’

강단 있는 알앤비 록스타가 승리를 쟁취한 방법은 무엇일까. SNS, 챌린지, 차트 줄 세우기, 밈, 방송 등 노래의 성공적인 대중화를 위해 각종 플랫폼으로 홍보에 열을 올리는 작금의 시대에서 그가 선택한 방식은 당연하게도 ‘음악’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유행만을 좇는 ‘나쁜 습관’에 영원히 지속 가능한 음악으로 일갈을 가한다.

소울 그룹 인터넷의 멤버로 시작해 켄드릭 라마 등 이름난 뮤지션들과 협업하며 일찍이 실력을 인정 받아 2022년 정상에 올랐다. 오롯이 음악만을 생각한 뚝심의 결과. 트렌드의 부정을 역설(力說)했지만, 역설(逆說)적이게도 스티브 레이시는 스스로 유행의 최전선에 섰다. 아무리 급변하는 세상이라도 좋은 음악은 살아남는다. (임동엽)

원리퍼블릭(OneRepublic) ‘I ain’t worried’

초기 히트 공식을 반복한 작법에 따라붙은 자기복제 꼬리표, 그에 따른 평가 절하에도 걱정 따위는 없었다. 폭넓은 장르 도입 너머 보편적 송라이팅을 최우선으로 추구했던 원리퍼블릭의 정성이 다시금 결실을 거둔다. 놀라울 만큼 쉽고 선명하다. 부단한 담금질의 산물인 생생한 멜로디를 연료 삼아 ‘I ain’t worried’는 37년 만에 개봉한 속편 < 탑 건 : 매버릭 >에 탑승해 스크린을 넘어 박스 오피스와 음악 차트 상공을 쾌속 비행했다.

원리퍼블릭의 ‘탑 건` 라이언 테더의 탁월한 프로듀싱 역량은 거듭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대중적 흡인력을 갖춘 록 선율과 경쾌한 휘파람 사운드를 끌어온 샘플링 기법, 공간감을 연출한 편곡까지 엘리트 조종사의 날 선 감각이 올해 절정에 달했다. 시리즈를 상징하는 사운드트랙 ‘Take my breath away’와 ‘Danger zone’의 아성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민 신흥 클래식 넘버. 찬사와 홀대를 양득하며 쌓아온 노하우가 결정적 한 방을 터뜨렸다. (김성욱)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 ‘The heart part 5’

켄드릭 라마는 음악의 사회적 기능을 믿는다. 밥 딜런과 보노의 궤를 잇는 흑인 사회운동가는 < Good Kid, M.A.A.D City >(2012)와 < To Pimp A Butterfly >(2015), < Damn >(2017)의 명반 퍼레이드로 평단의 찬사를 독식했고 랩 뮤직의 시초격인 소울 뮤지션 질 스콧 헤론(Gil Scott-Heron)과 퍼블릭 에너미가 주도했던 폴리티컬 힙합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그의 파급력을 다시금 공고하게 한 다섯 번째 정규 앨범 < Mr. Morale & The Big Steppers >의 프로모션 싱글 ‘The heart part 5’는 자전적 특성을 담은 ‘The heart’ 시리즈의 5번째 순서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사회의식이 강했던 선배 가수 마빈 게이의 1976년 작 ‘I want you’를 샘플링해 재즈와 펑크(Funk)적 색채가 다분하며 반복적인 리듬 아래 선언문과도 같은 언어를 채웠다. 분노와 일갈을 억누른 랩은 냉소적 시선을 견지해 더욱 날카롭고 성찰적이다. 딥페이크 기술로 화제가 된 뮤직비디오는 로스앤젤레스의 흑인 공동체를 위해 힘썼던 래퍼 닙시 허슬(Nipsey Hussle)과 살인 사건에 휘말렸던 전 미식축구 선수 오제이 심슨(OJ Simpson), 아카데미 시상식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윌 스미스 등 6인의 표상으로 흑인의 삶을 아울렀고 갱 문화를 비롯한 흑인 사회의 그릇된 방향성에 사랑만이 해결법(I want you)임을 제시했다. (염동교)

도자 캣(Doja Cat) ‘Vegas’

도자 캣의 공세는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 여러 히트곡을 배출한 2021년 < Planet Her >로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 아티스트는 영화 < 엘비스 >의 부름을 받아 입지 확장에 박차를 가했다. 빌보드 싱글 차트 10위까지 올라간 ‘Vegas’는 전쟁터 같은 힙합 세계에서 도자 캣이 이제 슈퍼 루키를 넘어 독보적인 주연에 등극했음을 알린다.

전기 영화다 보니 트렌디한 힙합 사운드의 사용은 키워드만 보면 어색할지도 모른다. 작품에서 ‘Hound dog’의 원곡자 빅 마마 손튼(Big Mama Thornton) 역을 맡은 숀카 두쿠레(Shonka Dukureh)의 목소리를 샘플링한 영민한 비트와 후렴이 일말의 괴리감을 메꾼다. 시대와 인종의 장벽을 넘은 무대 위, 매서운 전달력과 흥겨운 싱잉 랩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래퍼의 실력도 역시 굳건하다. 복고 추세로도 모자라 옛 명곡의 적극적인 차용이 주류로 올라선 오늘날의 흐름 가운데 특히 빛나는 곡이다. (한성현)

덴젤 커리(Denzel Curry) ‘Walkin’

덴젤 커리가 2023 그래미 어워드 힙합 부문 후보에 이의를 제기했다. 자신의 음반을 포함해 올 한해 호평을 받았던 앨범들을 명단에서 제외한 데에 불만을 토로한 것. 어리광으로 치부될 수 있는 발언이지만 그에게는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 < Ta13oo >(2018), < Zuu >(2019) 등의 탄탄한 디스코그래피로 제이 콜, 켄드릭 라마 이후의 컨셔스 래퍼 선두 주자 타이틀을 노리는 그가 이번엔 < Melt My Eyez See Your Future >로 제대로 역량을 터뜨렸다.

그 중 ‘Walkin’은 단연 베스트 트랙이다. 부조리한 세상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자신을 가사에 담아 역설적으로 불합리한 사회를 고발한다. 정통 붐뱁에서 하이햇과 함께 트랩으로 변주하는 사운드, 그에 맞춰 플로우를 바꾸는 랩은 무거운 주제를 전달하면서 일말의 지루함도 허락하지 않는다. 켄드릭 라마의 ‘The heart part 5’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흑인 커뮤니티에 자극을 주며 어느 때보다 눈에 띄는 도약을 만들어냈다. 덴젤의 ‘Walkin’이 올해를 대표할 자격은 충분하다. (백종권)

푸샤 티(Pusha T) ‘Diet coke’

드레이크는 앨범을 (훨씬) 더 많이 팔았다. 릴 베이비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더 많은 노래를 빌보드 차트에 올렸다. 2022년 현재 힙합 신에서 푸샤 티보다 잘 팔리고 인기 있는 래퍼는 많다. 그러나 ‘Diet coke’에서 그의 랩을 듣는다면, 선정을 납득할 것이다.

일로매진(一路邁進)의 승리다. 노래는 그의 바위처럼 단단한 태도와 모든 음악적 특징을 압축한다. 맹수처럼 사나운 랩, 랩에 집중할 여유를 넉넉히 주는 반복되는 비트, 마약상의 경험에서 비롯된 공격적인 텍스트까지. 프로듀서 에이티에잇 키스(88-keys)가 18년 전 만들어 카니예 웨스트와 새로 손본 비트는 빈티지한 느낌을 물씬 자아내고 여기서 래퍼의 목소리는 여느 때보다 자신감과 여유가 넘친다. 축소, 경량화, 단발성이 득세한 힙합 신에서 이런 묵직하고 정직한 카운터 펀치를 날릴 수 있는 래퍼는 많지 않다. 이게 기록이나 수치적 성적을 떠나, 푸샤 티가 항상 승리하는 이유다. (이홍현)

리조(Lizzo) ‘About damn time’

여성을 대표한 뮤지션은 많다. 1980년대 이후 마돈나가 줄곧 여성의 섹스(욕구)를 거침없이 발화 하고 레이디 가가는 ‘태어난 대로 살자’며 ‘Born this way’를 열창, 여성을 넘어 소수자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약간 결이 다르긴 하지만 메간 더 스탈리온, 도자 캣, 카디 비 등의 음악가는 자신의 ‘바디’를 음악적 어필 포인트로, 서슴없이 자기 과시를 행하는 중이다.

리조 역시 여성을 대표하고 자신을 과시한다. 하지만 그는 그간 다뤄지지 않았던 ‘몸’에 주목, ‘몸 긍정주의(Body Positive)’를 이끈다. 그를 이 분야의 대명사로 만든 앨범 < Cuz I Love You >가 그랬듯 이 곡도 몸의 두께와 상관없이 ‘음악은 키우고 조명은 낮추며’ 신나게 즐기자고 말한다. 1980년대 펑크/디스코 사운드를 골자로 트레이드 마크인 플루트 선율을 담은 점 또한 과거와 맥을 맞춘다. 이 연속성이 반복됨에도 올해 팝은 또다시 리조로 집약이다. 왜? 곡이 가진 독보적이고 힘 있는 메시지 덕분. 시대가 변하지 않는 한 그의 바디 찬가는 계속해서 시대를 대표할 것이다. (박수진)

수단 아카이브(Sudan Archives) ‘Selfish soul’

기록은 오직 인간에게만 허락된 신성한 행위다. 이 뜻깊은 작업을 활동명에 새겨 넣은 뮤지션 수단 아카이브는 방대한 음악 자료 수집을 통해 깨우친 가치를 단 2분 22초 안에 압축했다. 둥둥거리는 베이스로 맥이 뛰기 시작한 트랙은 소울 가득한 목소리, 가스펠 풍의 백 보컬, 그리고 박수 소리에 맞춰 그 박동을 빠르게 이어가고 이내 북동 아프리카의 바이올린과 조우하며 경쾌한 대비를 이룬다. 말미에는 짧은 랩까지 가미해 투철한 실험 정신과 장르를 끌어안는 포용성을 두루 발휘한다.

흑인 음악을 집대성한 만큼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 또한 그들의 공동체 의식을 투영한다. 각기 다른 헤어스타일을 소재로 풀어낸 노랫말은 그 형태와 색깔, 질감으로 다양성 존중을 피력하고, 흑인 여성들과 촬영한 뮤직비디오에서 수단 아카이브는 몸소 삭발과 핑크색 가발 쓴 모습을 번갈아 보여주며 주장에 힘을 싣는다. 흥미로운 ‘내용’, 간결하고도 짜임새 있는 ‘구조’, 여기에 사회를 관통하는 ‘맥락’까지. 기록의 3요소를 완벽히 충족한 현대식 민족음악 아래 새로운 무도회의 여왕이 탄생했다. (정다열)

엔칸토(Encanto) ‘We don’t talk about Bruno’

대중, 시장, 평단의 예상 밖 일치된 환대였다. 차차차 리듬을 내건 살사 음악은 친숙해서 신선하지 않고 가볍게 흘러 평가대상에서 밀려날 듯했다. 실제로 영화 OST를 쓴 작곡가 린 마누엘 미란다도 아카데미상 후보로 딴 곡을 제시했을 만큼 이 곡은 주변의 비핵심 트랙으로 간주되었다. 가수들도 영화 캐릭터의 보이스를 맡은 생소한 인물들이어서 대표곡 지위를 부여하지 않았음이 명백했고 왠지 여럿이 합창하는 곡에 승부를 걸지 않는 디즈니의 규범에도 부합하지 못했다.

반면 대중들은 이 야유적 어투의 쾌활한 아우성에 적극적 갈채를 건네면서 명곡은 범람했어도 디즈니에게 부재했던 빌보드 넘버원 싱글이란 나름의 영예를 안겼다. 무려 5주간 1위였다. (영국은 7주간) 진부할 수 있는 떼창은 오랜만에 접하는 완벽한 앙상블로 해석되어 코로나 시대에 갈구된 가족가치를 일깨우며 선전했다. 유머의 기민성, 가족 모두를 비추는 공평과 다양성, 굿 바이브레이션 사운드 그리고 미스터리 터치가 어우러진 한편의 완벽 크로스오버! 2022년을 사랑스럽게 했다. (임진모)

Categories
특집 Feature

2022 올해의 가요 싱글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2022년의 한국을 관통하는 슬로건이다. 무너지지 않을 것만 같던 코로나도 조금씩 걷히기 시작한 지금, 그간 꺾이지 않고 재도약을 위해 숨죽이고 있던 음악계는 그 여느 때보다 강한 자생 의지를 드러내며 움츠린 어깨를 펴고 있다. 숨겨둔 화력을 마음껏 뿜어내며 유독 따스함이 감돈 올해, 그 뜨거운 열기를 일조한 가요 10곡을 선정했다. 글의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아이브 ‘Love dive’

남자 아이돌이 일대 부진의 늪에 빠진, 걸그룹 천하에서 아이브는 경쟁자들의 선풍적 인기몰이나 사회적 트렌드 세팅은 아니었어도 선례가 없을 독자적 표현프레임을 구축하며 웅비했다. 토대는 대중가요에서 거부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곡’ 흡수력의 부각. 가사를 빼도 이야기가 잡힐 정도의 ‘사운드 스토리텔링’을 구현해낸, 변화무쌍하고 벅찬 기승전결 구성이 그 시작이었다. 순식간에 인식의 단계가 인정의 단계로 점프하면서 한해 내내 음반과 음원의 폭발적 호응이 둘러쌌다.

부단한 가사 전달의 노고, 고저가 교차하는 보컬의 분발, 동시대 곡 어디에도 부재한 어두움(다크 팝?)은 비장함마저 피워 올렸고 열다섯-스물의 풋풋한 하이틴들임에도 30대들마저 끌어들이는 윗세대 소구력도 뿜어댔다. 그 어떤 포장과 퍼포먼스보다는 우선 곡이 양질이어야 한다는 음악 예술의 보편이성과 오랜 성공도식을 환기시켰다. ‘괴물’ 신인에 의한 ‘정상’가동이라는 비대칭의 지혜를 일깨우며 ‘올해의 신인’을 단박에 ‘올해의 아티스트’로까지 밀어 올린 ‘올해의 노래’!! (임진모)

크러쉬 ‘Rush hour’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올 한해 크러쉬의 ‘Rush hour’ 챌린지에 동참한 연예인을 줄 세운다면 운동장 한 바퀴는 거뜬할 것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나 유튜브를 통해 이름을 알린 인플루언서까지 더한다면 두말할 것도 없다. 제이홉이라는 슈퍼스타의 지원 사격, 제대 후 첫 복귀라는 화제성 등 그 파급의 진원을 다양하게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본질적인 승리의 근거는 완성도 있는 음악이다.

이토록 강렬한 크러쉬의 펑크(Funk)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의 마지막 정규 음반이 고요한 새벽에 내면을 들여다봤던 < From Midnight To Sunrise >이고 입대 직전에 발매했던 EP가 아련한 사랑 테마의 < With Her >임을 생각하면 더욱 놀라운 방향 전환이다. 꾸준히 업템포의 리듬으로 고취되어 있는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안무를 추는 크러쉬라니. 단순 바이럴을 위한 곡이 아닌 기악 요소의 적절한 배치와 매끄러운 변주, 이미 여러 번 검증을 마친 보컬의 유려한 콜라주이다. 컴백과 동시에 한 해를 대표할만한 노래를 완성했다. (백종권)

뉴진스 ‘Attention’

뉴진스(New Jeans)의 ‘New’라는 단어에 K팝에 반향을 일으키겠다는 자신감이 가득하다. 전복의 대상은 구세대부터 동세대까지 아우르되 모순은 직관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뉴트로, 하이틴 등 최신의 키워드를 거침없이 전면에 내세우며 입체적인 방식으로 차별성을 피력한다. 이미지적으로는 Y2K 감성의 피처폰, 고전 포털 사이트 등 2000년대 대표 청소년 문화가 현대의 생활양식에 자연스럽게 섞였고, 음악적으로는 1990년대 뉴 잭 스윙과 하우스 리듬을 현대적으로 믹싱한 비트에 다시 1990년대 알앤비의 향취를 얹었다.

그럼에도 미니멀하다. 다섯 명의 보컬이 하나의 음을 투과하여 화음을 이루는 코러스 외에는 멜로디를 최소화하고 10대 멤버들은 2030세대의 청소년기 문화를 위화감 없이 즐기며 청춘의 아름다움을 여과 없이 전달한다. 노스탤지어와 선구안의 결합은 관성적인 새로움으론 꿰뚫을 수 없는 대중의 잠재된 갈망을 자극했다. ‘민희진 걸그룹’이라는 기대와 부담을 환호로 맞바꿀 뿐만 아니라 본질적인 접근으로 현재 K팝 기획의 고착화된 패러다임을 뒤흔들었다. (정수민)

보수동쿨러, 해서웨이 ‘월드투어’

오늘날 인디의 근거지는 홍대가 아니다. 세이수미의 범지구적 활약을 거쳐 인디의 메카로 떠오른 부산은 검은잎들, 소음발광 등의 괴물 신인과 각양각색의 작업물을 내놓으며 독자적인 로컬 신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그중에서도 한 작은 클럽에서의 지연(知緣)으로 시작해 서로의 대표작과 지역색을 합한 지연(地緣) 앨범으로 돌아온 두 밴드, 보수동쿨러와 해서웨이는 부산 밴드 명단에서 빼놓을 수 없는 화제의 아티스트다.

그 합작의 서막을 여는 ‘월드투어’는 올해의 발견이다. 딸깍거리고 자글거리며 각자의 톤을 자랑하는 기타는 광활한 사막을 가로지르는 낭만의 로드 트립을 펼치고, 혼성 보컬을 자연스레 포갠 합창은 대가족의 ‘혈연’까지도 넘보는 듯하다. 8년 전,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캐러밴’이 밟은 서툰 글래스톤베리행 초행길이 떠오른다. 그때와 달리 홍대와 부산, 더 나아가 세계로까지 뻗어가며 발전을 거듭한 한국의 인디. 이제는 거짓이 아니게 된 ‘세계진출’과 그 소박한 염원과 설렘, 그리고 ‘우리는 어디에 있어도 / 다정한 친구가 되는 거야’라는 따뜻한 코멘트에는 오랜 인디 팬들이 경유할 수 있는 감동과 헌사가 담긴다. (장준환)

(여자)아이들 ‘Tomboy’

멤버 수진이 탈퇴하고 흔들리는 상황에서 발표한 ‘Tomboy’는 이전 노래들과는 달랐지만 (여자)아이들을 걸그룹 최상위 포식자 반열에 올려놓았다. 위기에서 공개한 ‘Tomboy’가 국민 히트곡이 된 아이러니는 우여곡절이 많은 우리 인생과 닮았다.

다른 그룹들이 뭄바톤 비트를 바탕으로 한 제3세계 리듬과 드롭, 트랩 스타일을 탐닉할 때 (여자)아이들은 20여 년 전에 유행한 팝 펑크로 자신들의 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했다. 어렵지 않은 안무와 쉬운 주요 멜로디가 히트 공식의 기본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 ‘Tomboy’는 2022년 최고의 히트곡이다. 반대의견은 있을 수 없다. (소승근)

비오 ‘Love me’

‘Counting stars / 밤하늘에 펄’, 2021년 힙합계에 새로운 별이 떴다. < 슈퍼스타K >를 넘어 국내 대표 음악 경연으로 자리 잡은 < 쇼미더머니 >의 10번째 시리즈를 통해 화려하게 비상한 주역, 그가 바로 비오다. 단숨에 블루칩으로 떠올라 레드벨벳의 슬기, 소유 등 대중 음악 곳곳에 소리를 남기며 노래하듯 랩 하는 싱잉랩(Melodic rap)의 유행 속 자신의 자리를 공고히 다지고 있다.

저스틴 비버와 더 키드 라로이의 ‘Stay’를 닮은 비트 위에서 부드러운 톤으로 매끄러운 랩을 펼치며 자신의 매력을 온전히 발휘한다. ‘Counting stars’에 이어 에픽하이를 연상케 하는 멜로디 감각도 확실하게 돋보인다. 이런 젊고 유능한 뮤지션이 끊임없이 나오는 곳이 여기 대한민국 K-힙합 신(Scene)이다. 쇼미(< 쇼미더머니 >) 10년이 강산은 못 바꿔도 음악이 흐르는 물길은 바꿔버렸다. (임동엽)

빅 나티 ‘정이라고 하자 (Feat. 십센치)’

그리움을 완결된 추억으로 만들기 위해선 스스로 납득할 만한 단어로 그 마음을 정확하게 포착해야 한다. 빅 나티와 십센치는 그들의 식어버린 기억을 ‘정이라고 하자’고 말하며 감정을 똑바로 직시했을 때 생기는 어떤 미적 경험을 만들어낸다. 사무치는 이별을 주제로 한 가사는 차트에 이미 가득하기에 관계의 세심한 극복을 다룬 이 곡이 크게 사랑받은 건 반가운 일이다.

적은 수의 코드와 귀에 쉽게 들어오는 멜로디라는 타율 높은 상업적 전략에 터 잡아 유행의 최전선을 달린 스타일의 흑인 음악 터치를 더했다. 대중의 마음을 선명하게 볼 줄 아는 가수들의 조합이라 곡의 내부 요소 간 앙상블도 적절하다. 빅 나티의 선율감이 도드라지는 보컬, 십센치의 언제나 풋풋한 감성, 그리고 따뜻한 어쿠스틱 편곡이 조화를 이룬다. 이보다 듣기 편한 곡을 상상하기 힘들다. (김호현)

윤하 ‘사건의 지평선’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던 어린 혜성은 방향을 잃고 궤도를 이탈했다. 그럼에도 윤하는 고독히 ‘우리’를 중심으로 공전했다. 간결하게 귀를 사로잡는 최근 트렌드와 정반대로 5분이란 시간 동안 숨 쉴 새 없이 쏟아내는 록 사운드의 ‘사건의 지평선’은 절대 흔들리지 않고 간직한 그의 음악 세계로 쌓아 올린 견고한 우주였다. 사건의 지평선 내부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일도 외부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만, 표류했던 과거로부터 보낸 구조 신호가 마침내 두꺼운 경계를 뚫고 몇 광년을 거쳐 지금 도달했다.

굴곡진 인생을 말미암아 굵게 새긴 서사는 재개된 축제의 열기를 타고 울려 퍼져 거대한 필연처럼 대중의 마음과 감응한다. 희망은 언제나 곁에 머문다. 주변을 잠식한 절망은 분명 두텁지만, 그보다 밝은 빛이 존재하기에. 산전수전을 겪고도 포기하지 않았던 아티스트의 긍정적인 목소리가 명확한 지침서가 되어 모두를 내일로 이끌기 시작한다. 이에 윤하는 더 이상 외롭지 않다. (손기호)

한로로 ‘입춘’

눈이 녹아 비가 되기 직전의 찰나, 새 출발을 알리는 봄이 본디 그러하듯 모든 시작엔 추위와 온기가 동시에 서려 있다. 갓 첫걸음을 내디딘 아리따운 스물셋 소녀 한로로 역시 이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섭리를 마주한다. ‘아슬히 고개 내민 내게 첫 봄인사를 건네줘요’, 자신의 발화(發花)를 기록하기 위한 곡이라 밝힌 데뷔 싱글 ‘입춘’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한 설렘과 불안을 노래한다.

복잡한 속사정은 여리다가도 폭발하는 호흡 끝에 담겨 있다. 마음 녹여줄 누군가를 기다리던 목소리는 따스한 기타에 포개지며 피어날 준비를 마쳤고, 드럼이 꽃봉오리를 두드리는 순간 목청을 높여 작은 바람이 간절한 열망으로 피어오르게 한다. 간주를 장식한 일렉트릭 기타 솔로는 감정선을 더욱 극적으로 이끌어내고 직후의 가창에선 성대와 음을 살짝 비틀며 가슴을 냉랭히 찢어발긴다. 꽃놀이의 화사함으로 기억하던 계절의 현실은 차디찼지만 굳건한 뿌리의 민들레는 시들지 않았다. 오늘을 넘어 다가올 내일에 용기의 홀씨를 흩뿌린 올해 최고의 청춘 송가. (정다열)

조용필 ‘찰나’

한국대중음악사와 함께 걸어온 발걸음의 무게와 다르게 청춘처럼 산뜻한 ‘가왕’의 복귀다. < Hello > 이후 9년 만에 돌아온 조용필은 자신을 사랑한 이들이 빠져든, 그리고 빠져들 ‘찰나’를 조각하여 모두가 함께할 추억을 현재에 새겨 넣었다. 물론 2022년을 대표하는 자리에 거장의 이름을 올려둔 것은 역사적 가치나 명망에 따른 전관예우의 혜택은 아니다. 기대감을 늘 확신으로 뒤바꿔온 도전정신, 몇 번이고 격변한 시대와의 호흡 등 완숙해질수록 더 치열해지는 그 오랜 노력에 보내는 찬사다.

영원한 열정을 쏟아부었을 ‘찰나’ 역시 칭호에 걸맞게 절륜하면서도,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도도하다. 도시의 밤공기를 머금은 듯 활기찬 록 선율과 옅게 흩뿌리는 코러스가 각자의 자리에서 화려하게 반짝이고, 그 가운데 환희에 찬 보컬이 유려하게 완급을 조절하며 관록을 뿜어낸다. 갈고닦은 재료들이 단방향의 선율로 매끄럽게 조합되어 모든 세대의 귀를 만족시킬만한 트랙이 탄생했다. 정규 20집으로 향하는 왕도, 그 첫걸음에 울려 퍼진 행진곡은 역시 단 한 치도 빗나가지 않았다. (손민현)

Categories
News

[이즘IZM 뮤직 아카데미] 흑인음악 이야기

강의소개
이즘이 새로운 음악 강좌 [흑인 음악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흑인 음악은 무엇인가요? 흑인 음악이라 불리는 리듬 앤 블루스, 소울, 펑크, 디스코 등은 어떻게 생겨나서 현재 대중음악의 대세가 되었을까요? 각 장르가 생겨난 역사와 대표곡을 함께 읽고 듣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큰 스피커로 함께 모여 제대로 음악을 듣고, 배우는 시간일 될 것입니다. 문의 사항이 있다면 언제든 아래의 번호로 연락해주세요! 더불어 연이어 공개될 강의에도 많은 관심 바랍니다.

* 일시: 2022년 6월 30일 ~ 8월 4일 (매주 목요일, 6주 과정) 저녁 7:00 ~ 9:00
* 장소: 빅퍼즐 문화연구소 (서울특별시 마포구 서교동 370-26, 2층)
* 강사: 이즘 대표 겸 라디오 작가 소승근 (한동준의 FM POPS 작가로 활동 중)
* 수강료: 15만원 (개별 강좌 신청 가능 / 강의 1회 당 2만 5천원)
* 수강신청 기간: 2022년 5월 16일 ~

* 문의/신청: 010-9460-2573
신청 링크: (클릭 시 새 창으로 연결됩니다)

커리큘럼
1. 알앤비와 소울의 위대한 여정 1
2. 알앤비와 소울의 위대한 여정 2
3. 흥겨움의 끝판왕 Funk
4. Funk를 대중화한 디스코의 명곡들
5. 비트와 가사로만 음악을 한다! 랩의 역사
6. 흐린 기억 속으로 사라진 80년대의 고품격 알앤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