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발매한 이들의 EP < Kill My Doubt >의 타이틀 곡이다. 데뷔 이래 줄곧 내세워 왔던 ‘달라달라’, ‘Wananabe’, ‘Sneakers’ 등의 당당함, 나를 사랑하자는 메시지가 이번 활동까지 무난히 이어진다. “케이크를 왕하고 베어 먹으며 세상일을 쉽게 해치워 버리자”는 경쾌한 외침 사이 통통 튀는 브라스 세션, 귀를 잡아끄는 ‘케이크’라는 단어가 반복되며 노래의 강렬한 한방을 남기려 한다.
담백한 구조로 핵심 메시지를 전하려는 와중, 서로 다른 질감을 맞붙인 멜로디가 어딘가 성긴 빈틈을 만든다. 트와이스 활동 궤적에 큰 공을 세운 블랙아이드필승이 곡의 진두지휘를 맡았으나 되려 엔믹스의 ‘Love me like this’, ‘O.O’와 같은 결과물이 만들어졌다. 나아가고자 하는 지향은 살아 있으나 다가가는 재료인 음악이 심심하다. 케이크란 비유에 덧댄 가사보다 노래의 힘이 더 강했어야 한다.
올여름 나왔던 < Checkmate > EP에 이어 운율을 맞춰 나온 새 미니 앨범 < Cheshire >의 타이틀 곡이다. 멜로디를 각인시키는 도입부와 시원하게 내지르며 집중력을 끌어올리는 후렴구가 곡의 진행을 선도한다. 다르게 말하자면 혼자 앞서 나간다는 의미에 가깝다. 인트로의 선율은 쉽게 다가오지 않고, 힘이 잔뜩 들어간 코러스는 둔탁한 리듬과 고음만을 강조한다.
관심 있게 들어야 할 부분은 보컬이다. 기존에는 리듬 뒤에서 가벼운 음색으로 음악을 보조했다면 여기서는 진득하고 단단한 톤의 목소리가 노래를 주도한다. 앞서 언급한 후렴의 고음이 양날의 검처럼 작용한 이유다. 있지만의 음악을 듣는다는 의미에서는 좋은 변화지만, 듣고 싶은 마음이 생길 만큼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멜로디가 없다는 데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현재 K팝 씬에서 두각을 보이는 신진 그룹들은 모든 멤버가 1995년 이후 출생한 Z세대 아이돌이다. 음악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새로움을 지향하는 이들은 이전 세대와 다른 방식으로 입지를 넓히고 있다. 신세대 아이돌은 숏폼 콘텐츠와 메타버스, 스토리텔링으로 꽉 찬 노랫말을 활용해 더 다양하게 K팝을 즐기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중에서도 독특한 전략과 정체성으로 Z세대의 지지를 받는 8팀을 소개한다. 이들을 통해서 아이돌의 새로운 생존전략을 어렴풋이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음악에 국한되지 않는 변칙적인 K팝의 미래를 아래 그룹들을 통해 그려보자. 아이돌이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는 신세대의 시대정신과 대중음악의 흐름을 모두 담은 이 기민함에 있다.
에스파 (æspa) SM에서 6년 만에 내놓은 신인 걸그룹의 화제성 위에 메타버스 세계관이 기름을 부었다. 에스파는 멤버들의 이름 앞에 아이(ae)를 붙인 4명의 아바타를 포함한 8인조 그룹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이를 증명하듯 데뷔 직전 공개한 ‘MY, KARINA’ 영상에서 멤버 카리나는 아이-카리나와 대칭으로 앉아 대화하며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렸고 어려운 세계관은 노랫말에 녹아들어 대중에게 주입한다. 데뷔곡 ‘Black mamba’의 ‘에스파는 나야 둘이 될 수 없어’라는 가사는 온라인에서 두 자아를 대비하는 밈(Meme)으로 유명해져 그룹의 이름을 알렸다.
에스파는 세계관이 가진 접근성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음악과 춤의 무게를 덜었다. 영화 < 분노의 질주 : 홉스 & 쇼 >에 수록된 곡을 리메이크한 ‘Next Level’은 ‘I’m on the next level’이라는 가사를 쫀득하게 발음하여 듣는 재미를 더했고 디귿 춤 같은 독특한 포인트 안무가 쇼트폼 콘텐츠에서 돌풍을 일으켜 음원차트를 역주행해 1위에 올랐다. 그 열기가 채 식기도 전에 에스파는 더욱 공격적인 기세로 대중에게 다가온다. 메타버스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그룹은 최근 발매한 ‘Savage’을 통해 이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트와이스의 ‘Cheer up’, ‘TT’ 등을 만든 프로듀서 블랙 아이드 필승이 6인조 걸그룹 스테이씨를 기획했다. 히트메이커가 만든 팀이라는 타이틀과 가수 박남정의 딸이자 아역배우로 활동하던 박시은이 속했다는 사실로 데뷔 전부터 이목을 모았으나 확실한 임팩트를 남긴 것은 두 번째 싱글 ‘ASAP’이다. ‘ASAP 내 반쪽 아니 완전 카피’라는 중독적인 후렴구와 귀여운 ‘꾹꾹이 춤’이 소셜 미디어 서비스의 챌린지로 급부상하며 뒷심을 발휘한 덕분.
최근 발매한 ‘색안경‘의 ‘난 좀 다른 여자인데 / 겉은 화려해도 아직 두려운 걸’과 같은 가사는 수동적인 소녀상을 되풀이하는 것 같지만 건강한 10대를 지향하는 팀은 ‘색안경을 끼고 보지 마요’라며 거침없는 자기표현으로 답습을 거부한다. 꾸밈없는 모습은 오히려 소녀의 생기발랄함으로 충만하다. 어떤 틀에도 끼워 맞출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좋아하는 Z세대가 스테이씨의 ‘틴 프레시’에 열광하는 이유다.
– 추천곡: ‘ASAP’, ‘색안경’, ‘So bad’, ‘Slow down’
위클리 (Weeekly)
학창 시절의 향수는 그 어떤 추억보다도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K팝에서 교복을 입은 소녀 이미지가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이유 역시 다시 돌아가지 못하는 때에 대한 그리움과 맞닿아 있지만 2020년에 데뷔한 7인조 걸그룹 위클리는 첫사랑의 아련함으로 되풀이되는 교복 컨셉트와 거리가 멀다. ‘언니’를 외치며 성인에 대한 동경심을 드러내는 이들은 교복 치마 대신 반바지를 입은 Z세대 여학생이다.
소셜 미디어 서비스에서 특정인을 부르거나 언급할 때 사용하는 태그(@) 기능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Tag me’, 2000년대 초반 하이틴 록을 따르는 ‘Zig zag’와 ‘After school’ 등 활기 가득한 음악은 기존 걸그룹의 이미지를 빗겨나간다. 책걸상, 큐브, 스케이트보드 등 다양한 소품을 활용한 댄스컬 역시 교실 마냥 왁자지껄하다. 올해 초 발매한 ‘After school’은 쇼트폼 콘텐츠에서 10대에게 인기를 얻으며 스트리밍 플랫폼의 바이럴 차트 1위에 올랐다. ‘틴 크러시‘로 선망의 대상이 되는 대신 ’위드 틴‘을 지향하는 위클리는 윗세대의 향수와 또래의 공감을 바탕으로 서로 다른 세대를 이어준다.
– 추천곡: ‘‘After school’, ‘Zig zag’, ‘나비 동화’, ‘언니’
투모로우바이투게더 (TXT)
시작부터 특별했다. 방탄소년단의 동생 그룹으로 주목받은 다섯 소년은 신스팝, 뉴잭스윙 등 복고적인 음악과 청량한 기조를 내세우며 선배와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걸어왔다. 대신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하위문화를 적극적으로 차용해 어린 연령의 팬덤과 북미 틈새시장 공략에 성공했다. 판타지 소설 < 해리 포터 >를 활용한 두 번째 타이틀곡 ‘9와 4분의 3 승강장에서 너를 기다려’의 컨셉트와 가사, 장르 소설 스타일의 긴 제목은 K팝에 관심 없는 이들도 기억할 만큼 독특하다.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성장하는 격동기를 담은 세계관은 탄탄한 팬덤을 형성하고 음악적 변화의 정당성까지 확립한다. 친구들과의 우정을 그린 < 꿈이 장 > 시리즈에서 밝은 분위기를 이어오던 이들은 올해 발매한 < 혼란의 장 > 시리즈에서 록 사운드로 비일상적인 세계를 깨고 나와 현실과 마주한 소년의 혼란을 표현했다. 빈틈없는 기획으로 짜인 밑그림을 따라 움직이는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선배와 다른 방식으로 같은 미래를 좇고 있다.
– 추천곡: ‘9와 4분의 3 승강장에서 너를 기다려’, ‘0X1=Lovesong’, ‘Blue orangeade’, ‘Angel or devil’
에이티즈 (Ateez)
연습생 시절 케이큐 펠라즈(KQ Fellaz)라는 이름으로 다수의 콘텐츠를 선보였던 에이티즈를 해외에서 먼저 알아봤다. 빌보드의 K팝 칼럼니스트 제프 벤자민이 ‘포스트 BTS’로 꼽은 8인조 그룹은 웅장한 퍼포먼스로 팬층을 형성했다. 또 블락비, 비에이피, 방탄소년단 등을 따라 힙합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음악은 팀이 가진 역동성마저도 담고 있다.
비투비의 ‘아름답고도 아프구나’를 쓴 이든이 팀의 프로듀싱을 전담하고 있으며 멤버들의 적극적인 작업 참여도 음악과 퍼포먼스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데 일조한다. 더해서 음반의 상호유기적인 구성과 ‘해적왕’, ‘Wave‘, ‘Neverland‘ 등 해적 컨셉트로 이어지는 스토리텔링은 이들의 무대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눈에 띄는 실력과 확실한 음악색으로 밀고 나가는 에이티즈의 기세는 어떤 외부적인 힘에도 기대지 않기에 더 강력하다.
– 추천곡: ‘Deja vu’, ‘Wave’, ‘Neverland’, ‘Answer’
있지 (ITZY)
있지는 ‘예쁘기만 한 애들과는 달라’라고 어필하며 데뷔했다. 논리적이진 않지만 다른 그룹과 다르지 않은 댄스곡, 걸크러시 컨셉트로 성공한 이들이 어딘가 남다르다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이후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입증하는 과정 역시 순탄했다. 쿨한 매력의 ‘Icy’, 자존감을 고취하는 ‘Wannabe’, 당돌한 사랑을 담은 ‘Not shy’까지 이들은 멤버 개개인의 뛰어난 스타성을 강조하는 JYP 걸그룹 전통에 ‘힙’을 더해 여성들의 워너비를 자처했다.
차별성을 전면에 내세운 팀이 팬 위주의 K팝 씬에서 여전히 대중성을 따라가는 것은 분명 모순이다. 음악은 힙합, 하우스, 뭄바톤 등 대중적인 장르를 혼합했으며 ‘마.피.아. In the morning‘의 캣우먼 이미지는 기성 걸그룹을 따른다. 그런데도 특유의 에너지와 파급력이 있지라는 이름을 내세울 만한 근거를 형성한다. 뻔뻔함과 당당함이 매력적인 이들은 남들과 다르고 싶지만 유행에 뒤처지고 싶지도 않은 Z세대의 이중적인 면을 닮았다.
– 추천곡: ‘Loco’, ‘달라달라’, ‘Not shy’, ‘Nobody like you’
스트레이 키즈 (Stray Kids)
동명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데뷔한 JYP 7인조 보이그룹 스트레이 키즈의 초반 성적은 기대에 못 미쳤다. 국내 K팝 팬들조차 데뷔곡 ‘Hellevator’의 반항기 어린 심오함과 ‘부작용’에서 계속 되뇌는 ‘머리 아프다’라는 직관적인 가사를 우습게 여겼기 때문. 심상치 않은 해외 인기 지표를 보이던 이들은 일명 ‘마라맛 K팝’이라고 불리는 ‘神메뉴’를 발매하며 국내 입지를 넓혔다. 파워풀한 EDM 사운드와 음악을 신의 요리에 비유한 가사가 그룹의 유쾌한 매력을 성공적으로 어필한 결과다.
이 독특한 정체성은 팀 내 프로듀싱 그룹 쓰리라차(3RACHA)로부터 나왔다. 힙합과 EDM을 좋아하는 세 멤버는 연습생 때부터 함께 작업하며 그룹의 음악적 기둥으로 성장해 올해 엠넷에서 방영된 < 킹덤 : 레전더리 워 >의 우승까지 견인했다. 스트레이 키즈는 최근 발매한 ‘소리꾼’으로 상승세를 이어가며 K팝의 차세대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했다. 자신을 깎아내리는 말은 듣지 않겠다는 듯 ‘퉤 퉤 퉤’하는 ‘소리꾼‘의 가사가 대중에게 개성을 관철하는 데 성공한 이들의 자신감을 드러낸다.
– 추천곡: ‘소리꾼’, ‘神메뉴’, ‘Back door’, ‘청사진’
더보이즈 (THE BOYZ)
2017년 데뷔 이후 별달리 주목받지 못했던 더보이즈는 작년 엠넷에서 방영된 < 로드 투 킹덤 > 출연으로 터닝포인트를 맞이했다. 밀도 있는 기획을 바탕으로 360도 스테이지를 활용한 이들의 무대는 카메라의 시선이지만 맨눈으로 보는 듯 깊은 몰입을 유도했다. 그 결과 11인조 그룹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1위를 거머쥐며 무관중 퍼포먼스의 본보기라는 명성을 얻었다.
그룹 이름에는 그 어떤 수식어도 없다. 더보이즈는 그저 소년이 가진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이미지를 소화하며 팀의 신선함을 유지한다. < 로드 투 킹덤 >에서 가장 반응이 좋았던 태민의 ‘괴도’ 커버 무대를 벤치마킹한 ‘The stealer’의 퍼포먼스는 감탄을 자아내고 최근 발매한 ‘Thrill ride는 끌리는 멜로디의 청량감으로 가볍게 접근한다. 매번 새로운 전략과 이미지를 선보이는 더보이즈의 성장기는 소년만화 한 편을 보는 듯 흥미진진하다.
‘달라달라’로 쾌조의 출발을 알렸던 있지의 여정은 순탄하게 흘러가는 듯했다. 그러나 난해한 사운드로 글로벌 시장을 노렸던 ‘Not shy’부터 조금씩 경로를 이탈하더니 주체적이고 당당한 ‘나’에서 ‘마피아’라는 특정 타자로 분했던 < Guess Who >에서는 방향의 좌표마저 잃어버린 모습이었다. 그룹을 지탱해 온 정체성마저 흔들리는 혼돈의 시기에 내놓는 첫 정규앨범은 정체된 성장세를 회복하기 위한 고민이 엿보이는 결과물이다.
전작의 혹평을 만회하기 위한 정공법으로 초심을 택했다. 그룹의 대표곡 ‘달라달라’와 ‘Wannabe’를 탄생시킨 별들의 전쟁과 다시 손을 잡고 힙합, 라틴, 뭄바톤이 합쳐진 화려한 사운드로 성공 공식을 또 한 번 따르고자 한다. 타이틀곡 ‘Loco’는 히트곡의 형태를 답습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나 2000년대에 머물러 있는 듯한 뽕끼 어린 멜로디가 후렴구에 등장하며 몰입을 떨어뜨린다. 한껏 미쳐야 하는 곡이지만 튀는 구간 없이 안전하게 흘러가는 구성을 취해 저돌적인 메시지를 생동감 있게 전달하지 못한다.
타이틀곡이 끊은 불안정한 시작은 무던한 수록곡들의 전개를 통해 여유를 되찾는다. 테일러 스위프트가 떠오르는 기분 좋은 멜로디의 틴 팝 ‘Sooo lucky’는 있지를 상징하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한껏 발산하며 벅차오르는 리듬을 활용해 드라마틱한 효과까지 살린다. 몽환적인 건반 연주에 호소력 짙은 보컬을 조명한 ‘Love is’, 이매진 드래곤스의 ‘Thunder’를 연상시키는 톡톡 튀는 박자감의 ‘Chillin’ chillin’’ 등 산뜻한 기운을 지닌 곡들에서 자연스러움이 묻어난다.
밝은 팝 장르에서의 소화력이 상대적으로 뛰어남에도 전작에 이어 여전히 힙합에 포커스를 둔다. 미국 여성 래퍼 사위티(Saweetie)의 ‘Best friend’와 비슷한 ‘Swipe’는 틱톡에서 인기를 끌 법한 사운드의 전형에 가깝고 ‘#Twenty’는 빠른 템포의 트랩 비트와 래핑이 엉성한 조화를 이룬다. 한마디로 전문 래퍼가 아닌 멤버들의 어색한 랩과 곡이 부조화를 일으킨다. Z세대 다운 솔직한 가사로 위트를 더했지만 소재의 재미만으로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남들보다 일찍 맞이한 성공은 이른 성장통이 되어 돌아왔다. 당당한 틴프레시 이미지를 기반으로 발랄한 댄스 음악을 넘어 스펙트럼의 확장을 시도했으나 그룹에게 맞아떨어지는 해답은 여전히 탐색 상태에 놓여있다. 향후 안정적인 포지셔닝을 위해 강박적으로 콘셉트와 장르 변화에 신경을 기울이고 있지만 일정한 틀에 이들을 끼워 맞추려는 행보는 오히려 그룹의 색깔을 가리고 있다. 그룹을 관통하는 키워드인 ‘난 나야’가 자연스럽게 돋보일 때, 있지는 진정으로 미칠 수 있다.
– 수록곡 – 1. Loco 2. Swipe 3. Sooo lucky 4. #Twenty 5. B[oo]m-boxx 6. Gas me up 7. Love is 8. Chillin’ chillin’ 9. Mirror 10. Loco (English ver.) 11. 달라달라 (Inst.) 12. Icy (Inst.) 13. Wannabe (Inst.) 14. Not shy (Inst.) 15. 마.피.아. In the morning (Inst.) 16. Loco (Inst.)
JYP 출신 걸그룹의 핵심은 스타성이다. 실력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특장점을 파악하고 뽐낼 줄 아는 엔터테이너적 면모를 우선시한다. 있지 또한 사랑에 목매지 않던 ‘달라달라’부터 다채로운 사운드의 ‘Not shy’까지 당돌함이라는 무기를 앞세워 주체적인 MZ세대의 그룹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정해진 연출을 수동적으로 따라야 하는 < Guess Who >는 다섯 소녀의 생동감을 제어한다.
추리극의 시작부터 2년에 걸쳐 정립한 메시지를 흐린다. 소속사 선배 그룹 투피엠의 ‘하.니.뿐.’의 작명이 떠오르는 ‘마.피.아. in the morning’은 긴장감을 더하는 사이렌과 808 베이스 위에서 난해한 가사로 사랑의 주문을 건다. 2000년대 후반에 유행했던 후크송 작법으로 중독을 노리지만 ‘ICY’처럼 그루브 넘치는 리듬 전개나 ‘Wannabe’같이 격렬한 댄스 브레이크가 없다. 메인 보컬 리아의 음색이 낮은 음역대에 조화롭게 스며들면서도 나머지 멤버들의 랩과 대비를 이루지 못하며 반전을 조성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손으로 총을 만들어 쏘는 동작은 블랙핑크의 ‘뚜두뚜두’나 ‘Kill this love’가 겹치고 검은 가죽과 스판 재질의 의상에선 에이오에이의 ‘사뿐사뿐’이나 에버글로우의 ‘La di da’의 잔상이 머무른다. 냉혹하게 그려져야 할 범죄조직 세계를 카리스마 있는 여전사나 캣우먼같이 식상한 설정으로 표현한 것. 개성으로 똘똘 뭉친 대형 기획사의 창작물이라고 하기엔 안일하고 나태한 결과물이다.
그나마 틀에 얽매이지 않은 곡들이 전작의 기조를 이어간다. 기타 리프와 박수가 어우러진 ‘Wild wild west’는 가까이하기엔 위험한 선인장에 빗대어 노래하며 자유분방했던 < Not Shy >의 연장선에 선다. 트렌디한 ‘Shoot!’은 플루트 소리와 공간감으로 맛을 살린 코러스가 몽환적인 무드를 형성하지만 힙합 비트의 ‘Kidding me’는 후렴 부분의 드롭과 박자를 잘게 쪼개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후반부가 블랙핑크의 ‘How you like that’과 닮아 있다.
태생부터 ‘달라달라’를 외쳤지만 그 주장에 합당한 근거를 제시한 적은 드물다. 그럼에도 팀의 성장을 이끈 원동력은 개개인의 역량을 뛰어넘는 패기와 열정이었고 뻔뻔한 듯 당당한 태도가 그들의 진정한 매력이다. ‘Wannabe’의 노랫말처럼 굳이 뭔가 될 필요는 없다. 정체성까지 흔들리며 콘셉트에 사로잡혀 있기엔 시간이 많아 보이지 않는다.
– 수록곡 – 1. 마.피.아. in the morning 2. Sorry not sorry 3. Kidding me 4. Wild wild west 5. Shoot! 6. Tennis (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