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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B 인터뷰

작년 10월. YB의 정규 10집이 발매됐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의 풍향을 따라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밴드로 성장하고 연이어 2003년 정규 6집 < YB Stream >의 수록곡 ‘잊을게’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그들은 이후 17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노래를 쌓았고 음악적 변화를 일궈왔다. 신보 < Twilight State >에는 이러한 이들의 에너지와 세간의 트렌드를 놓치지 않은 영특한 장르의 활용. 그리고 무엇보다 세월의 흔적을 담은 연륜 있는 메시지와 연주가 번뜩였다.

시기는 조금 늦었지만 지난주 화요일 영등포 근처의 한 카페에서 YB의 다섯 멤버 윤도현(보컬), 박태희(베이스), 허준(기타), 김진원(드럼), 스캇 할로웰(기타)를 만났다. 이제 두 자릿수로 접어든 디스코그래피의 소회를 물으니 보컬 윤도현은 멋쩍게 웃으며 “이 음반으로 만든 음악적 성과는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이 앨범을 통해 다음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단 거다. YB의 히스토리는 계속된다”고 말했다. 6년에 걸쳐 탄생한 정규 음반의 제작 비하인드 스토리와 어느덧 데뷔 26주년을 맞이한 그들의 우여곡절을 공개한다.

○정규 10집, “터널을 지나자 길이 보이더라!”

10집 < Twilight State > 발매를 축하한다. 기분이 어떤가?
도현 : 10은 의미를 담아야만 하는 숫자 같다. 근데 사실 그걸 그렇게 크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내놓고 나니까 그제서야 ‘아, 우리가 이렇게 10집을 냈구나’ 싶었다. (웃음)

진원 : 레드 제플린이 음반 라이센스를 9장까지 내고 지미 페이지가 편집 음반으로 10집까지 만들었다. 그러니까 드러머 존 본햄이 살아있을 때를 기준으로 모든 멤버가 함께 한 건 9장이다. 우리도 정규 2집 (YB가 정식 밴드로 구성을 갖춘 건 2집부터였다 -편집자)부터 이제 딱 9장을 낸 거다. 어쩔 수 없이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인 레드 제플린과 비교를 하게 된다. 그들과 같은 기간 동안 음반 활동을 하고 있구나 생각하면 감회가 새롭다. 만감이 교차한다.

허준 : 나는 지금껏 작품을 만들며 이번이 제일 재밌었다. 그냥 과정 자체가 좋았다. 물론 즐겁지만은 않았겠지만 그 전과 비교해봤을 때 훨씬 즐기며 음악을 만들었다. 그동안 앨범을 만들며 조금씩 배워왔던 것들이 있지 않나. 그것들을 통해 머릿속에 있는 사운드를 실제로 구현해가는 과정을 직접 느꼈다. 너무 즐거웠다.

태희의 소감도 궁금하다.
태희 : 난 우리가 지금까지 올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노래를 만들고 쌓아가는 과정이 굉장히 길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한 터널을 지나고 나니까 수월해지더라. 시간이 지나면 어차피 분명 만족스럽지 않은 지점이 생길 테니까 과감하게 밀어붙이자. 여기가 마지노선이다. 생각하니 많은 것들이 미끄럼틀을 탄 듯 흘러내려 갔다. 

그때가 언제 즈음인가?
태희 : 2019년 1, 2월쯤이었다. 마지막 음반 < Reel Impulse >(2013)을 내고 4, 5년은 정말 힘들었다. 노래는 많은데 잘 뭉쳐지지 않으니까. 그러다 2018년 겨울에 도현이 산에 들어갔다. 그만큼 절박했고 그랬기에 이번 앨범을 최종적으로 완성할 수 있던 거 같다.

산에 들어갔다고?
도현 : 이렇게는 도저히 안 되겠더라. 겨울이면 많은 밴드들이 한창 투어를 할 때다. 일부러 그 시기를 골라 산으로 갔다. 투어 등 우리가 해야 할 것들을 포기하고 여기까지 왔는데 안 하면 안 된다 하면서 정말 이를 물고 곡을 쓰고 편곡을 했다. 그때 아마 한 100여 개쯤 노래가 있었는데 정말 열심히 추리고 추려 13개의 수록곡을 골랐다. (웃음)

결과물에는 만족하나? 
태희 : 최선을 다했다. 1, 2개의 타이틀로 앨범 전체의 성격을 보여줄 수 없어 위험한 줄 알면서도 타이틀을 3개로 정하기도 했다. 그만큼 후회는 없다. (프로듀서인 윤도현과 마찰은 없었냐는 질문에) 좋게 말하면 좋은 프로듀서였다. 하하하 (일동 웃음)

도현 : 프로듀싱도 프로듀싱이지만 믹싱 하는데 시간이 정말 많이 걸렸다. 톤 스튜디오의 김대성이 고생을 많이 했다. 이 친구는 예전부터 쭉 록을 만지던 사람이다. 그러다 요즘은 먹고 사는 게 그렇듯 가요부터 록까지 일이 들어오는 대로 다 하더라. 사실 대성은 YB 1집부터 어시스트 엔지니어였다. 우리와는 각별한 사이인데 바빠도 너무 바쁘니 이번에 함께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들더라. 이런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소주 한잔하면서 얘기했다. 그랬더니 “10집인데 내가 목숨 걸고 하겠다” 하더라. 그렇게 다시 뭉쳤다.

본격적으로 수록곡 얘기를 해보자. 기존 인기곡이었던 ‘박하사탕’, ‘잊을게’ 등이 넓은 의미에서 일반적인 사랑의 감정을 담았다면 이번 수록곡은 더욱 개인적인 면모가 많이 느껴진다.
도현 : ‘내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야겠다’ 하며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거창한 주제보다는 ‘사람의 감정’에 치중해보자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고 ‘감정을 통해 시대를 보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다. 그걸 잘 표현할 수 있으면 더 좋고.

설명을 조금 더 이어준다면?
도현 : ‘생일’ 이란 수록곡은 위로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예전에는 이러한 위로가 어떤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배경 삼아 시작했다면 이번에는 완전히 나 자신의 감정을 그 출발점으로 삼았다. 사적인 가사를 느꼈다면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일 거다.

‘생일’의 ‘벗어나지 못하는 이 사막의 중심에서 / 아무도 사랑하지 않을 꺼라고 말했다 / 그러자 모든 것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라는 가사가 참 매력적이다.
도현 : 이응준 시인의 작품이다. 이 시를 읽는 순간 내 마음과 같다고 느꼈다.

특히 이번 음반은 YB의 분투가 느껴진다. 앞서 말한 이응준 시인과의 협업은 물론 세계적인 얼터너티브 록 그룹 스매싱 펌킨스의 제프 슈뢰더(Jeff Schroeder)가 기타 연주로 앨범에 참여(‘야간마차’)하기도 했다. 또한 다국적 밴드로 한차례 유명세를 치른 슈퍼올가니즘의 소울 역시 첫 곡 ‘딴짓거리’에 피처링으로 합류했다. 26년이란 관록의 활동 속에도 끊임없이 변화하려 하는 이들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편집자 

독특하게도 이번 음반에 타이틀이 3개다. 그중 하나는 YB의 히트곡 제조기(‘나는 나비’를 만들었다 -편집자) 태희의 작품인데.
태희 : ‘나는 상수역이 좋다’를 썼다. 앨범에는 6번째 트랙에 위치 하긴 하지만 최종 수록곡으로 묶인 건 맨 마지막이었다. 솔직히 내게 1970년대 아저씨 정서가 있다. 뭐, 내 나이가 있으니까 당연한 거다. 그런 면에서 이 곡이 최종 선발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회사와 멤버들이 잘 봐준 거 같다. (웃음)

멤버들에게 물어보자. 타이틀로 뽑은 이유가 무엇인가?
진원 : 앞서 말했듯, 이번 음반은 한두 곡으로 전체 앨범을 규정할 수 없다. 태희의 곡을 타이틀로 밀어붙인 건 과거 ‘나는 나비’가 그랬듯 이 곡이 가진 편안함과 대중성 때문이었다. 또 다른 대표곡 ‘생일’이 그동안 우리가 해왔던 파워풀한 에너지를 건넬 수 있는 노래였다면 슈퍼 올가니즘의 소울이 내레이션으로 참여한 ‘딴짓거리’는 진화하는 우리의 모습을 담은 곡이다. 주제를 두고 묶기보다는 해보고 싶은 것들을 다 해보려는 마음이 컸다.

그럼 허준이 좋아하는 가장 꽂힌 곡은 무엇인가?
허준 : 워낙 만들 때 공을 많이 들여 그런지 지금은 대부분 다 좋은 거 같다. (그래도 하나만 꼽아 달라고 했더니) 공연했을 때 가장 좋은 건 ‘반딧불 … 그 슬픔에 대한 질문’이다. (웃음) 

○올해의 목표? “공연. 뮤지션과의 생생한 에너지 교감은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다”

말이 나왔으니 공연 얘기를 좀 해보자. 이번 음반 발매 기념 콘서트 후기가 엄청나다.
도현: 한 번도 음반 안에 있는 전곡을 연주한 적이 없다. 무대에서 완전 처음 선보이는 12개의 곡을 연달아 들려 드렸고 그 사이사이 히트곡도 넣었다. 그래서 더 좋게 봐주시는 것 같다. (웃음)

며칠 전 영동대로 공연(2020년 새해 카운트다운 공연으로 YB만 유일한 록 그룹이었다 –편집자)은 또 어땠나. 현장 반응이 정말 좋던데.
도현 : 앞뒤로 다 아이돌, 래퍼여서 그랬는지 현장에서 사람들이 더 반겨준 게 있었다. 록 밴드가 생방송 무대에 선 게 오랜만이기도 하고. 특히 감사했던 건 히트곡 말고 이번 음반의 수록곡인 ‘Jumping to you’, ‘나는 상수역이 좋다’와 같은 신곡도 함께 따라 즐겨주셨다는 거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곡을 통해서도 충분히 교감할 수 있다는 또 한 번의 확신을 얻었다.

그런 측면에서 기성 세대와 젊은 세대를 이어줄 밴드가 바로 YB라고 생각한다. 
도현 : 나도 딸이 있고 애들이 요즘 어떤 노래를 듣고 어떻게 음악을 향유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기회를 열어주는 것뿐이다. YB를 충분히 잘 모르는 어린 친구들도 공연 현장을 왔다 가면 생생한 라이브가 주는 그 에너지에서 느끼는 게 많은 것 같다. 이번 우리 앨범 발매 공연만 보더라도 연령 분포가 20대에서 40대까지 고르게 퍼져있다. 10대도 꽤 되고… 감사한 일이다.

우리나라 록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다고 생각하나? 
도현 : 록 음악 시장이 어렵다고들 이야기하는데 필드에 있는 입장에서는 (늘 그래 와서 인지) 특히 요즘이 더 힘들다는 생각은 안 든다. 물론 나도 트렌드가 힙합이나 아이돌에 치우쳐 있다는 건 느낀다. 하지만 그래도 좋은 밴드들이 계속해서 생겨나는 걸 보면 무조건 덮어두고 침체는 아닌 것 같다. 경제적으로 기울 때가 많고 그런 부분에서 제약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런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니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록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 것까지 부정할 순 없는 것 같다. 당장 YB의 10집만 봐도 매스컴의 주목이 부족했다. 
도현 : 대중적으로 큰 사랑을 받지 못한 건 사실이다. 음반을 내고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우리가 대중음악신과 거리감이 있다는 걸 살갗 근처에서 느꼈고 실제로 어느 정도 서운함이 있기도 했다. (웃음) 그럼에도 우리 음반을 들어준 한 명, 아니 두 명, 아니 세 명, 네 명의 분들이 이 작품을 정말 집중도 있게 감상하고 내려준 고마운 리뷰를 보며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넓은 관심을 받진 못하지만 깊은 관심을 받고 있다면 그걸로 만족이다. ‘잘 만들었다, 잘 냈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아쉬움을 상쇄할 수 있는 건 뭘까?
도현 : 공연. 조금 아까도 부사장님과 진지하게 얘기했다. 올해는 작은 곳, 큰 곳 가리지 않고 단독 공연을 많이 할 예정이다. 생각해보니 활동하면서 클럽 투어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더라. 그래서 지난 연말 공연이 끝나자마자 바로 2020년 공연 대관을 다 마쳤다. 지방의 작은 클럽까지 직접 돌아다닐 예정이니 많이 기대해 달라. (웃음)

○26주년, “YB의 히스토리는 계속된다”

YB가 활동한 지 벌써 26주년이 됐다. 가장 자랑스러운 곡을 하나 뽑는다면?
도현 : 범대중적인 사랑을 받은 곡이 아닐까? ‘나는 나비’. 우리를 대표하는 곡이다.

진원 : 지금은 신보의 ‘야간마차’가 제일 좋다. (예전 앨범까지 포함해 골라 달라고 하니) 너무 많아 못 정하겠다. 유명하고 팬들이 좋아해 주는 곡을 대표곡이라 말 할 수도 있겠지만 커리어를 통틀어 내 마음에 가장 잘 들어오는 노래는 그런 우열순위를 통해 나눌 수 있는 것 같지 않다. 지금만 보자. (웃음) 난 ‘야간마차’다.

허준 : ‘박하사탕’. 내가 막 밴드에 들어와 낸 첫 번째 음반 < An Urbanite >(2001)의 수록곡이다. 연주한 지 오래됐는데 연주할 때마다 새롭고 늘 더 공들여 소리 내게 된다.

끝으로 태희와 스캇의 픽은 무엇인가?
태희 : 글쎄… 오늘 무대에서 부를 노래가 가장 좋은 곡인 거 같다. 이번에 10집을 내면서 느낀 건 어제의 노래는 우리한테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늘, 무대에서 연주할 곡이 언제나 베스트다.

지금 무대에 선다고 가정하고 고른다면?
태희 : 그건 내가 정할 수 없다. (일동 웃음) 멤버들이랑 함께 정하는 거다. 곡들이 저마다 다 흐름을 타고 연결돼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비’도 ‘박하사탕’이 없었다면 나오지 않았을 거고, ‘박하사탕’도 1집 < 가을 우체국 앞에서 >(1994)의 ‘임진강’ 같은 내면의 고통에 주목한 노래 없이 탄생할 수 없었을 거다. 아까 진원의 말대로 한 곡만 뽑기는 너무 어렵다. 

스캇 : 나는 밴드 밖에서 곡을 들었을 때와 내가 직접 연주했을 때, 이 2가지로 나눠 곡을 정해 봤다. 한국에서 처음 본 YB 공연에서 ‘잊을게’를 들었다. 그때 그 곡이 연주되는 광경과 멜로디가 지금도 생생하다. 또한 하드록을 좋아하는 록 키드 출신으로 ‘정글의 법칙’이 가진 시원함을 좋아한다. 연주할 때마다 늘 푹 빠진다. 내 선곡은 이 두 개다. ‘잊을게’와 ‘정글의 법칙’.

‘잊을게’는 인기가 많았던 반면 우려도 컸던 싱글로 기억된다.
도현 : 이게 (윤)일상의 곡이다. 그때는 정말 밴드 음악에 대한 자존심이 강했던 때다. 우리 뿐만 아니라 팬들도 그랬다. 그랬는데 작곡가의 곡을 받는다고? 정말 말이 안 되는 거지. (웃음). 더군다나 당시의 나는 윤일상이 누구인지도 몰랐다. 커리어를 보니까 댄스 음악부터 대중적인 곡을 많이 썼던데 그러니까 더 반항심이 들고 이질감이 생기더라. 사장님이 곡은 받아왔지 녹음은 해야 하지. 하기 싫은 티 팍팍 내며 말 한마디 안 하고 그렇게 레코딩을 했다.

그래도 반응이 정말 좋았다.
도현 : 음반을 내자마자 그 곡이 터졌다. 거의 이효리의 ’10 minutes’와 맞붙을 정도였으니 말 다 한 거 아닌가. 그래서 더 오랜 시간 일상에게 미안함이 있었다. 사랑을 많이 받은 노래니 자연스레 무대에서 부르기도 많이 불렀는데 그때마다 일상이 떠올랐다. 뒤늦게나마 진심으로 내 마음을 전했다. 고맙게도 이해해주더라. 10년 묵은 응어리를 시원하게 풀었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2002년 ‘오 필승 코리아’로 주류 밴드가 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진원 : 앞서 스캇이 말했던 ‘정글 스토리’의 음반이 1996년 6월에 나왔고 그 전에 도현이 1집이 1994년도에 발매됐다. 이후 < 한국 록 다시 부르기 >로 살짝 주목 받은 게 1999년이니까 오래 걸리긴 했다. (웃음)

그렇게 먼 길을 돌아온 정규 10집이다. 음악적 성과가 있다면 뭘까?
도현 : 음악적 성과는 잘 모르겠다. 우리는 과거나 미래를 바라보는 사람도 아니고 지금 이 순간만 직시한다. 그래도 굳이 성과를 꼽자면 이 앨범을 통해 다음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단 거다. YB의 히스토리는 계속된다!

인터뷰 : 임진모, 김도헌, 박수진, 임선희, 임동엽 
정리 : 박수진
사진 : 디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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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인터뷰

누구에게나 내 고통이 세상에서 제일 아프다. 그렇기 때문에 섣부른 위로는 쉽게 선을 넘고 허공으로 흩어진다. 그럼에도 이상은은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힐링과 치유를 노래했고 우리를 위로했다. 그렇게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의 곡들은 지금도 여기, 우리 곁에 살아있다.

‘담다디’의 시원하고 신선했던 등장, ‘언젠가는’으로 전했던 빛바랜 인생의 통찰, ‘삶은 여행’으로 가져온 따뜻한 온기를 거쳐 그는 < 더딘하루 >의 날 것의 로킹함, < 공무도하가 >의 독특한 동양 서사, < 외롭고 웃긴 가게 >의 서늘함을 종횡무진 오갔다. 화려했던 데뷔, 그만큼 치열했던 자기 고민의 시간 속에서 그는 솔직함을 놓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 솔직함은 여전히 이상은의 위로가 유효할 수 있는 이유다. 5년 만에 6곡의 작은 음반으로 15.5집 < Flow >의 출발을 알린 그를 홍대 부근 빅퍼즐 사무실에서 만났다. 타이틀처럼 그가 흘려내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인터뷰는 이 궁금증을 중심으로 수록곡을 하나씩 조명하며 진행됐다.

○소박한 일상의 소중함, “삶 가까이 행복이 있잖아요, 그건 느껴야지만 보이는 거죠”

이상은의 음악에는 늘 가사가 살아있다. 이번에는 뭐랄까? 완전히 자기 얘기 같기도 하고 또 타인에 대한 조언 같기도 했다. 뭐가 됐든 공허한 메아리는 아니다.
데뷔 이후 이렇게 긴 시간 쉰 건 처음이다. 거의 5년 반 만의 신보니까 말이다. 결론적으로는 자, 타의로 휴식기를 가졌는데 나에게는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충남 공주에 있는 부모님 댁과 서울에 있는 우리 집을 오가며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고나 할까? (웃음) 처음에는 불편하고 힘들었는데 자연하고 가까이 살면서 점점 어떤 안정감이 느껴지더라. 진짜로 하고 싶은 것만 해도 되고, 눈치 안 봐도 되고. 내가 어려서부터 일만 해오지 않았나. 살면서 거의 처음 느낀 자유로움이었다.

그런 편안함 덕택인지 노래들이 쉽고 부드럽다.
5년간 멈춰 있으면서 그간 주장해왔던 것을 내려놓게 됐다.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음악도 일부러 찾아 들었다. 그러면서 ‘대중성’이란 단어를 깊게 들여다봤다. ‘도구로 사용되는 대중성’ 이 아니라 음악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했을 때 이것들을 어떻게 잘 버무릴 수 있을까 고민한 거다. 그때 철학 하는 지인이 “내게 음악은 멀리 떨어진, 거기 있든 말든 상관없는 것” 이었는데 내 음악을 통해 노래가 “자기를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하더라. 이 말이 깊게 새겨졌다. 그동안 내가 종종 어떤 계층만 이해할 수 있는 실험적인 곡들을 만들지 않았나. (웃음) 더 많은 사람들이 음악 자체에 가치가 있다는 걸 깨닫게 하고 싶었다. 물론 쉽진 않겠지만 불가능하지도 않을 꺼라 생각한다.

첫 곡 ‘Relax’는 그럼 부모님 댁에서 만들어진 건가?
아니다. 아주 먼 곳에서 만들어졌다. (웃음) 런던에 갔다가 지인이 오로라를 보고 왔는데 너무 좋았다고 한 말에 꽂혀 그대로 핀란드 북쪽인 로바니에미로 갔다. 푸른 하늘, 자연이 주는 영감을 기대하며 갔는데 막상 도착하니 숙소도 허름하고 오로라는커녕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순록이 끄는 썰매 탔는데 웬걸. 바닥에 누워 타는 썰매에다 속도도 아주 느린 게 상상했던 거랑 정반대였다. 날씨도 춥고 피곤하기도 하고… 그렇게 혼자 덩그러니 서 있는데 순간 ‘뻥’하고 머릿속에 진공 상태가 왔다. 그간의 잡념과 고민이 싹 정리됐다고나 할까?

일상을 잡고 있던 긴장들을 확 풀어졌다고 느껴진다.
말 그대로 생각이 다 날라 갔다. 거기가 영하 20도에 춥기도 엄청 추웠고 가뜩이나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봤다. 다들 연인, 가족끼리 오는데 내가 혼자 달랑 배낭 하나 메고 가서 그런가? 어쨌든 방도 가장 구석에 작은 거로 주고 다들 나를 피하더라. 열 받아서 조식도 몰래 먹고 그랬다. (웃음) 그랬는데 그 고생과 허탈함이 순식간에 ‘아, 별거 아니구나’ 하는 울림으로 다가온 거다. ‘Relax’의 가사에는 계획대로 되는 게 없는, 소박하고 무심코 지나가는 것들에 ‘빛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하는 내 경험이 녹아있다.

오로라를 잃고 순록과 경험을 얻은 셈이다.
제대로 깨달았다. 순록은 크지만 아주 느리다. 하하하.

반면 ‘일상 노마드’는 일상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곡 같다.
이번 음반은 개인적으로 내게 도전과도 같았다. 예전에는 작업을 좀 하다가 2주쯤 짬을 내서 일본도 가고 태국도 다녀왔는데 그사이 시대가 바뀌었더라. 빠르고 압축적이다. 오랜만의 컴백이니 욕심이 나기도 해서 몸을 안 아끼고 밤새워 가며 곡만 만들었다. 주구장창 떡볶이만 먹으면서 말이다. 그렇게 힘들게 쥐어 짜내다가 잠깐 마트나 나가볼까? 하고 집 앞 슈퍼에 갔다. 세상에나. 모든 게 다 너무 아름다웠다.

평소 여행을 많이 다니지 않나. 그 여행지에서 느끼는 환기와 무엇이 다른 건가?
일상을 발견한 거다. 의욕이 없이 쓰러져 있더라도 태도만 긍정적이면, 동네 마실만으로도 환기가 된다. 난 하와이나 미국에 가면 꼭 ‘홀 푸드 마켓(Whole foods market)’에 간다. 여기에 가면 물건들이 깨끗하고 예쁘게 정리되어 있다. 일본 로컬 문화 중에는 카페에서 벼룩시장을 여는 게 있는데 이렇게 동네 일상에서 느끼는 기쁨이 내겐 너무 소중하다. 왜 ‘텐바이텐'(아기자기한 물건을 파는 종합 문구 매장-편집자)에 가면 사람들이 일상을 이렇게 귀엽고 소중하게 꾸미려 하는구나 느껴지지 않나? 삶 가까이에 행복이 있다. 이런 건 느껴야지만 보이는 거다. (웃음)

○음악을 통한 위로, “상처를 음악으로 치유했거든요, 제게 음악이 그랬던 것처럼 돌려주는 거죠”

트레몰로(같은 음을 같은 속도로 빠르게 연주하는 것-편집자) 사운드가 인상적인 ‘가을 수채화’는 딱 이상은 표 노래다.
11집 < 신비체험 >의 ‘비밀의 화원’을 떠올리며 쓴 곡이다. 가사들로 연결 관계를 짓거나 한 건 아니지만 분위기를 좀 바꿔보려 했었다. 그 곡이 봄이라면 이건 가을 느낌이라고나 할까? 내 노래를 많이 들어오셨던 분들이라면 편하게 같이 호흡할 수 있는 곡이다.

반면, ‘넌 아름다워’는 기타 톤도 그렇고, 멜로디도 그렇고 참 좋다! 이번 음반에서 가장 대중적인 곡을 꼽자면 이 노래이지 않을까?
기타는 ‘언니네 이발관’에서 활동하기도 한 (이)능룡이 연주했다. 깔끔하고 담백하게 사운드를 잘 잡아줬다. 다만 그런 것에 비해 뚜렷한 후크(멜로디 라인)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 곡뿐만 아니라 사실 많은 내 노래들이 그렇다. 글자가 너무 많은 거지. (웃음) 요즘 젊은 사람들이 내 곡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건 아마도 이런 메인 선율의 부재 때문일 거다.

이상은에게는 천진난만하지만 강한 목소리와 선명한 메시지가 있다. 젊은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내 목소리가 그런가? 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한다. 악기를 통해 표현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목소리만으로 표현되는 ‘감성’ 또한 있다. 내가 어떻게 인식을 해서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가 그렇게 들어준다면 감사한 일이다. 어쩌면 본능적으로 보이스칼라를 다루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목소리에 대한 지적은 처음이다. 설명을 조금만 더 해준다면?

한마디로 꾸밈없는 보컬이다. 힘을 풀고 고음을 지를 때 기존 음색과는 다른 지점들이 나타나는데 이게 쾌감을 준다. 나이를 잊어버리게 되는 개방성이라고나 할까? 그런 어떤 틀 지우기가 이상은의 노래를 일상 속으로 끌어당긴다.
(눈이 둥그레지며) 정말 좋은 칭찬이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어려서부터 내가 여행을 많이 다니지 않았나. 그러면서 늘 마음속에 품고 있는 책이 있었는데 그 책에 이런 문장이 있다. ‘그 사람은(주인공) 할아버지와도 젊은 사람과도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 문장이 너무 좋았다. 사람으로서 내게도 어떤 한계들이 늘 존재한다. 나는 언제나 그걸 넘어서고 싶었고, 또 넘어서 왔다. 음악으로 젊은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다가가는 중이다.

그렇다면 이번 음반에서 어린 친구들에게 가장 추천해주고 싶은 곡은 무엇인가?
공교롭게도 방금 이야기 나눈 ‘넌 아름다워’다. 어릴 때는 슬프면 슬프고, 기쁘면 기쁘고 그랬다. 모든 감정들이 오롯이 온 거다. 그런데 어른이 돼서 보니까 기분 조절이 가능해지더라. (웃음) 반복적으로 괴롭다고만 말하면 정말 괴로워진다. 가사를 보면 ‘마음을 따라가 / 완벽한 것은 따스하지 않아’라는 부분이 있는데 실제로 우리가 완벽할 수는 없지 않는가? 그래도 스스로의 기분은 본인이 만들 수 있다. 그걸 말해주고 싶었다.

음반 명은 < Flow >인데 타이틀은 또 ‘넌 아름다워’다. 수록곡 ‘Flow’가 타이틀이 되지 못한 이유가 있는 건가?
다 만들고 보니 음반에서 가장 대중적인 곡이 ‘넌 아름다워’와 ‘Flow’였다. 타이틀로 뽑지 않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웃음) 개인적으로 이 곡은 내 상처와 관련이 있다. 오랜 시간 함께 했던 친구와 좋지 않게 끝을 맺었는데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 그러면서 우리나라 자살률이 떠올랐다. 왜 사회는 잘 성장하고 있다는데 자살률 같은 건 떨어지지 않는 걸까? 내 노래로 그것들을 줄이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정확하게 들었다.

이 곡에서 명대사가 나온다. ‘ 오늘 , 지금을 살면 잊혀져 ‘(‘Flow’ 가사 중 – 편집자 ) 풀이를 좀 더 부탁한다.
나는 내게 남겨진 상처를 늘 음악으로 치유해왔다. 내게 그랬던 것처럼 음악으로 이걸 돌려주고 싶었다. 지금을 살아야 정신건강에 좋다. 과거로도 미래로도 가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거다. 너무 많이 돌아보면 버겁고 불안해지지 않나. 지금을 사는 아이들처럼 다들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가끔은 분절로, “그래도 삶은 흐른다!”

그렇다면 이상은이 말하는 < Flow >는 무엇인가?
흐른다는 건 좋은 거다. 생각해보면 내가 막혀있을 때마다 주변에서 늘 나를 흘러갈 수 있도록 해줬다. 멈춰져 있고 막혀있는 입장에서 무언가가 흘러들어와 준다는 건 정말 고맙고 감사한 일이 아닌가. 굳어져 가는 걸 막을 수 있게 내가 그들(대중)에게 일종의 흐름을 전달해주고 싶다.

음반이 발매된 지 한 달 정도 지났는데 팬들의 반응은 어떤가? 상은의 의도대로 반응이 오고 있는지.
작가인 팬이 코멘트를 남겨줬다. ‘내가 겪어본 아픔과 치유만이 다른 사람에게 위로를 줄 수 있다’고 말이다. 이런 반응들이 내 음악의 힘이다. 한번은 실연을 당해 죽어야지, 죽어야지 했던 팬이 내 콘서트를 다녀간 후기를 읽었다. 그렇게 고통스러웠는데 내 공연을 보고 다음 날 < 개그콘서트 >를 보며 깔깔 웃고 있었다는 거다. 음악이 주는 힐링이 내가 원하는 것들이다. 잘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웃음)

마지막 곡 ‘오아시스의 밤’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가사들 중 가장 비유가 많은 것 같은데.
가끔은 세상과 분리되는 순간들이 필요하다. 분리를 히브리어로 ‘카도시’ 라고 하는데 영어로는 ‘Holy’다. 즉, 속물 사회와 분리시키는 순간들이 ‘홀리’하다는 거지. (웃음) 조금 어려울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오아시스는 무슨 뜻인가?
오아시스는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다. 음반을 준비하면서 때로는 내가 세상과 분리되어있는 것처럼 느꼈다. 내가 여기 있는데 분리되어 있는 건 뭐지? 그렇다면 이건 나쁜 건가, 좋은 건가? 그런 꼬리의 꼬리를 무는 고민을 했는데 내가 내린 결론은 가끔의 분절이 평범함과 비범한 순간의 경계를 준다는 거였다. 삶 자체가 사막이고 때로는 여기서 의도적으로 분리되어 오아시스를 만나보자. 그래도 괜찮다, ‘괜찮습니다’ 노래한 거다.

왜 사람들이 상은에게 기대는지 알겠다. 힘들어도 괜찮다는 메시지, 나 대신 세상에 맞서 싸워 주는 사람 같다.
하하하. 감사할 뿐이다. ‘담다디’로 한 번에 세상에 알려지고 이후 혼자서 길고 긴 창작활동을 해오면서 나름의 질곡이 많았다. 이 시간들을 지나오며 내가 나를 버티게 해준 음악을 이제 다른 사람들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매개체로 잘 만들고 싶다. 염세주의로만 빠지지 말자. ‘세상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의 길을 갈 수 있게, 가끔은 예쁜 것도 보고 일상도 쓰다듬어 주면서 그렇게만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그래도 삶은 계속 흐른다!

끝으로 앞으로 활동 계획을 묻고 싶다. 이번 음반이 EP이니까 16집도 비슷한 연장선상으로 기대하면 될까?
(고개를 저으며) 완전 새로운 작품이 나올 거다. (웃음) 이건 내가 5년 만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하는 신고식 같은 앨범이다. 오래 쉬었으니 싱글 작업도 하고 노래도 많이 만들어보려한다. 이건 비밀인데 조만간 가사 비디오도 나올거다. 반겨줘서 고맙다. 기쁨은 짧고 슬픔은 긴 이 시대에 다시 만날 때까지 잘 살아보자.

인터뷰 : 임진모, 박수진, 손기호
사진 : 손기호
정리 : 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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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데이식스 인터뷰

‘아이돌을 넘어 그냥 ‘좋은 밴드’를 발견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이즘이 2017년 ‘올해의 가요 앨범’으로 데이식스의 < Sunrise >를 선정하며 남긴 평이다. 대형 기획사 출신의 아이돌 밴드는 항상 그 진정성에 물음표가 따라붙지만, 2015년 홍대의 라이브 클럽 데이(Live Club Day)에서 데뷔 쇼케이스를 가진 이래로 데이식스는 여타 밴드가 그러하듯 치열한 노력과 실전으로 그들을 가다듬었다. ‘믿고 듣는 데이식스’라는 훈장은 결코 쉽게 얻어낸 것이 아니다.

네 장의 미니 앨범과 두 장의 정규 앨범, 데뷔 후 첫 월드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두 번째 대규모 팬 미팅을 앞둔 데이식스를 서교동 빅퍼즐연구소에서 만났다. 성진(기타), Jae(기타), Young K(베이스), 도운(드럼), 원필(건반) 다섯 멤버들은 바쁜 일정 속에도 쾌활한 모습으로 데이식스의 과거와 현재를 풀어놓았다.

데이식스는 모든 멤버가 보컬을 담당한다. 작곡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성진 : 대부분 작업 과정은 모두가 함께한다. 리프와 멜로디 등 다양한 부분에서 공동의 의견을 반영하려 노력한다. 물론 개별적으로, 유닛의 형태로 곡을 만들기도 한다. 곡의 ‘포인트’마다 참여 비중이 달라진다.

작곡에서의 ‘포인트’를 언급했다. 그 중점은 대중적 히트인가, 혹은 곡의 완성도인가.
성진 : 개별 곡마다 다른 것 같다. 대부분은 그 둘을 함께 고려하고, 각기 다른 멤버들의 취향도 녹여내려 노력한다. 아무래도 각자 좋아하는 장르가 조금씩 다르다 보니, 함께 작업하고 나면 각자의 색이 다르게 나와서 그것들을 깎아 ‘다듬어’내는 작업을 중점으로 둔다.

멤버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구체적으로 말해준다면.
성진 : 모던 락, 브리티시 팝을 좋아한다. 라디오헤드, 콜드플레이, 에드 시런…
원필 : 비슷하다. 예전엔 알앤비를 정말 좋아했는데, 지금은 담백한 느낌의 노래, 유행타지 않는 노래를 찾게 된다.
Jae : 포크 음악을 좋아한다. 최근 가장 인상적으로 들은 앨범은 제레미 주커(Jeremy Zucker)와 첼시 커틀러(Chelsea Cutler)의 < brent > EP였다. 진심이 담긴 음악을 선호한다.
도운 : 트랩부터 퀸 XCII(Queen XCII)까지 다양하게 듣는다. 일렉트로닉을 좋아하고, 과거에는 EDM도 많이 들었다.
Young K : 어린 시절부터 힙합, 펑크 록을 많이 들었고 브릿팝도 많이 들었다. 최근에는 밝은 음악, 틀었을 때 기분 좋고 편안한 음악을 선호한다. 와이 돈 위(Why Don’t We) 같은 보이 밴드들로부터 화음을 쌓는 과정을 배우고, 루디멘탈(Rudimental)의 밝은 분위기를 가져오려 한다.

멤버들의 취향이 사뭇 다른데, 결성 후 합을 맞추는 과정에서 갈등은 없었나.
원필 : 많았다. 마음을 맞추는 과정부터가 오래 걸렸다. 멤버마다 서로 다른 음악의 취향, 성향을 갖고 있다 보니 작곡 작사 과정에서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그런 거 없이 잘 맞는다. 밴드 준비하는 과정에서 미리 갈등 과정을 겪어서 그런지, 지금은 화목하고 즐겁게 활동하고 있다.

데이식스 멤버들이 처음 JYP에 입사했을 땐 밴드 팀이 아닌 댄스팀, 보컬팀이었다.
성진 : 향후 오디션으로 합류한 도운을 제외하면 타 멤버들 모두 노래를 부르는 걸 좋아했다. 노래가 좋아서 회사에서 연습하다 악기를 배우고, 작사 작곡을 공부하게 됐다.

도운은 팀 내 유일한 음악 전공자다.
도운 : 중2때부터 드럼을 쳤다. 시쳇말로 놀면서 했다(웃음). 잘 치지는 못한 것 같다.
Young K : 데이식스의 유일한 전공자다. 도운이 합류하고 나서 곡 만들어지는 속도가 비약적으로 빨라졌다.

기타를 맡은 Jae는 본인의 기타 플레이를 어떻게 평가하나.
Jae : 멀리 내다볼수록 부족함을 느낀다. 점차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다.

베이스를 치는 Young K는 어떤가.
Young K : 사실 나 자신을 베이시스트로 자각하기까지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연습하면서 베이스가 밴드 내에서 갖는 연결의 역할, 비어있는 자리를 채우는 중요한 역할을 깨닫게 됐다.

2015년 < The Day > EP로 데뷔했으니 벌써 5년 차 밴드다. 두 장의 정규 앨범과 4장의 미니 앨범은 물론, 2017년 에브리 데이식스(Every Day6) 프로젝트로는 25곡의 자작곡을 발표했다.
도운 : 에브리 데이식스 프로젝트는 회사의 아이디어로부터 출발했다. 그전에도 꾸준히 곡을 만들고 있었는데, 회사에서 일련의 결과물을 듣고는 ‘곡이 좋은데, 매 달 발매해도 좋지 않을까?’라는 제안을 줬다.
성진 : 아무래도 정규작이나 미니 앨범은 많은 곡 중 타이틀곡을 정해야 하지 않나. 공들여 만든 노래들을 한 곡 한 곡 대중에게 들려주고픈 마음도 있었다.
Young K : 여담이지만 우리는 회사 내에서 박진영 PD님과 가장 접점이 적다. 그런데도 회의 때마다 PD님께서 ‘데이식스 노래 틀 때가 기다려져!’라 말씀해주신다. 감사하다.
성진 : ‘반드시 웃는다’를 PD님께서 굉장히 좋아하셨던 기억이 난다.

데이식스가 꼽는 본인들의 인기곡, 혹은 이만큼의 인기를 예상치 못한 곡이 있다면.
성진 : 아무래도 ‘예뻤어’, ‘I loved you’, ‘좋아합니다’가 반응이 좋다.
Jae : ‘I wait’는 후자다. 우리는 좋은 곡이라 생각했지만 이만큼의 인기는 예상치 못했다. 많은 분이 사랑해주셔서 감사하다.

프로젝트를 갈무리하는 2017년 첫 정규 앨범이 < Sunrise >다. 그해 이즘이 ‘올해의 국내 앨범’으로 선정한 작품이다.
성진 : 프로젝트 동안 공개했던 싱글, 그리고 이전에 작업했던 곡들의 최종 버전을 수록했다. 공들여서 완성된 결과물을 보여주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녹음도 새로 하고, 파트도 재정리했다. 데이식스의 다양한 모습을 담아내고자 노력했는데, 좋은 결과가 따라왔다. 이즘의 연말 결산 특집과 리뷰를 읽으면서 감사했던 기억이 있다.

과거와 비교하면 그 수가 늘었지만 케이팝 신에서 밴드 활동은 아직도 낯선 느낌이 있다.
Jae : 작업 과정에서 그런 배경이나 ‘아이돌’ 개념을 깊이 생각하진 않는다. 사실 각 그룹도 그런 점을 자각하진 않는다. 좋아하는 음악을 표현하는 것이다. 록을 좋아하면 록, 팝을 좋아하면 팝.

실제로 데이식스의 음악에선 록의 터치 아래 아이돌 팝의 면모도 발견되는데.
Jae : 분석의 과정으로 봐주셨으면 한다. 아이돌 적인 면모, 록적인 면모 이렇게 나누기보다, 기억에 남는 부분을 담고자 여러 음악 스타일로부터 영감을 가져온다. 그렇게 장점을 아울러서 ‘데이식스의 음악’을 만들고 싶다.

가장 최근의 작품은 두 파트로 나눠 발매한 < Youth >다. 강렬한 ‘Shoot me’와 복고풍 신스팝 ‘행복했던 날들이었다’ 등 다양한 음악 시도가 인상적이다.
성진 : 다양한 음악을 들으면서 ‘이게 끌린다!’라는 직감이 올 때가 있다. 그렇게 소재를 정한 후, 따로 규칙을 두지 않고 데이식스의 색을 입혀 우리만의 시도를 하려 노력한다.

앞서 언급한 와이 돈 위, 파이브 세컨즈 오브 섬머(5 Seconds of Summer) 등 최근의 젊은 밴드들은 팝 펑크보다 신스팝의 논조를 가져가는 경우가 많다.
Young K : 어떤 장르든 준비는 되어 있다. 확실히 최근 해외 밴드들은 전자음을 많이 쓴다. 반응이 오는 장르임은 확실하다. 그러나 마냥 대세, 유행만 좇아가면 또다시 정체될 것이다. 폭넓은 시도를 통해 밴드의 색을 넓히고 같은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자 한다.

데이식스의 색을 언급했는데, 20대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풀어내는 가사가 이 팀을 상징하는 메시지라 생각한다. 밴드라면 거대한 메시지, 사회적 의견에도 욕심이 나지 않나.
Young K : 데뷔 전에는 큰 담론도 이야기하고 싶었다. 실제로 시도도 해봤다. 하지만 생각이 너무 많이 들어가고, 다른 사람들이 알아듣기 어렵다면 그것은 실패한 가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박진영 PD님도 그런 쪽으로 많이 조언해주셨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솔직한 감정을 노래로 담아내고 싶다.

요약하면 밴드의 지금을 ‘젊음’과 ‘청춘’으로 대표할 수 있겠다. 데이식스가 생각하는 ‘청춘’, 그리고 이 테마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음악이 궁금하다.
성진 : 청춘은 ‘열정’이다. 나이든다고 해서 열정이 사라지진 않는다. 마음 속 열정을 간직해나간다면 언제나 청춘이다.
원필 : 청춘은 ‘계속 걸어가는 것’이다. 좋은 일이 있다가도 나쁜 일이 일어난다. 주어진 일에 감사하며 견뎌내고 걸어가는 시기라 생각한다.
Jae : 성진의 ‘열정’에 동감한다. (웃음) 덧붙이자면,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모든 것에 경중을 따지기 어렵다. 모든 게 다 거대하게 느껴진다. 중요한 만큼 열심히 해나가야 할 시기이기도 하다.
도운 : 청춘은 ‘하고 싶은 걸 다 해보는 시기’다. 이런 일, 저런 일, 도전하고 싶은데 할 수 있을까? 하고 망설이는 경우가 많지 않나. 주저하지 않고 일단 해보자! 이런 마음가짐이 청춘이다.
Young K : 청춘은 ‘성장하는 시기’다. 그래서 정의하기가 어렵다. 청춘이 끝나는 순간은 계속해서 배우려 하지 않고, 더 성장하지 못하고 정체되는 때라고 본다. 그래서 이 시기를 더욱 잘 살아야 한다.

데이식스는 오는 6월 29일 잠실 체육관에서 국내 두번째 팬 미팅을 개최한다. 2018년 9월 첫 팬 미팅 장소가 고려대 화정체육관이었으니 두 배 이상의 규모다. 팬덤 마이데이(My Day)와 함께할 시간에 즐거워하는 멤버들의 모습에서 차근차근 성장해나가는 젊은 밴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가장 최근 타이틀곡의 제목처럼, 그들은 훗날 이 시기를 돌아보며 ‘행복했던 날들이었다’라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시간을 살아가고 있었다.

인터뷰 : 임진모, 김도헌, 조지현, 임선희
정리 : 김도헌
사진 : 김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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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제이클레프 인터뷰

제이클레프는 누구와도 같지 않았다.‘무대 위에 산다는 듯 / 어필 없이는 못 살고 / 보여주고 싶어 하는 모습은 / 실존하지 않는’ 뮤지션들과 거리가 멀었고, ‘생각의 고리는 너무 많이 돌아 / 제자리로만 거듭 다시 돌아와’라는 치열한 고민도 깊었다. 인간 허영진의 독백은 비록 어둡고 날이 서 있었지만, 현실과 이상의 간극을 메우고자 투쟁을 이어나간다는 점에서 불안한 청춘에게 건네는 가장 진실한 위로의 메시지기도 했다. 독자적인 행보로 2018년 힙합 씬에 선명한 족적을 남긴 래퍼, 제이클레프를 4월 2일 연희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소속사 얘기부터 해보자. 콕재즈, 스윔래빗과 함께 크래프트앤준(Craft And Jun)에 합류했다.
크래프트앤준은 회사 미팅을 하면서 유일하게 먼저 들어가고 싶다고 얘기했던 회사였다. 꽤 오랫동안 회사를 찾지 않고 있었는데, 주변 사람에게 많은 영향을 받는 편이라 아무 기반 없이 우주를 표류하는 것보다는 우주선을 하나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해서 크래프트앤준에 합류하게 됐다.

회사 합류 외 최근 근황은 어떻게 되나.
새로운 곡에 대한 추상적인 그림을 많이 그리고 있다. 가장 최근의 활동으로는 3월 28일 네이버 < 온스테이지 >를 통해 새로운 라이브 콘텐츠를 공개했다.

작년 10월 클럽 소프(Soap)에서의 무대부터 12월의 단독 콘서트, 네이버 < 온스테이지 >까지 다채로운 라이브를 선보이고 있다. 아무래도 실황과 녹음은 확실히 다를 텐데.
단독 콘서트를 통해선 편곡 면에서 더 많이 보여주고 싶었고 전체적 곡의 전개를 풀어놓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런 곡의 예를 들자면 우선 나에게 가장 극적인, 그러니까 영화 같은 곡이라 할 수 있는 ‘Dive in island’가 있다. ‘지구 멸망 한 시간 전’의 경우도 ‘지구 멸망 1시간 전에 정말 초연할 수 있을까?’ 했던 감정, 사랑하는 사람의 눈을 바라보는 광경을 슬로우모션으로 천천히 지켜보는 감정, 그런 감정을 라이브로 전달하고 싶었다. 곡을 만들 때의 느낌 대신 완성된 곡을 듣고 받았던 새로운 느낌도 전달하고 싶었고.

그 새로운 감성의 전달은 12월 콘서트 때 구체화된 것인가.
맞다. 크게 결이 다른 것은 아니지만. 앨범을 만들 때는 나 자신이 수동적인 주체라고 느낄 때가 많았다. 트랙을 받고, 편곡을 하고, 아이디어를 추가할 수는 있지만 적극적으로 제작 과정 전체를 주도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밴드 세션과 함께 공연하면서 다이나믹에 대해 더 신경도 쓰게 되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을 악기로 채우는 것 또한 좋았다. 2016년에도 일찍이 밴드 세션으로 공연한 바 있어 낯설지 않았다.

향후에도 밴드 사운드를 많이 활용할 예정인지?
조금 더 연구를 하고 ‘무르익었을 때'(웃음) 한 번 해보고 싶다. 밴드 사운드에 대한 이해가 더 필요하다.

그렇다면 최근 많이 들은 밴드 음악이 있나.
예전에 테임 임팔라를 좋아했어서 다시 많이 듣는다. 블러드 오렌지(Blood Orange). 인터넷(The Internet)은 항상 좋아했고. 앤더슨 팩(Anderson. Paak)의 < Malibu >와 킹 제임스(King James)도 즐겨 듣는다. 재지한 쪽으로는 에이프릴 + 비스타(April + Vista)와 배드 배드 낫 굿(Bad Bad Not Good)도 추천한다.

조금 이르긴 하지만 이즘 공식 질문인 ‘인생의 음악’을 질문해도 될까.
20대 초에는 프랭크 오션의 < Channel Orange >, 더 어렸을 때는 뮤지크 소울차일드(Musiq Soulchild)의 첫 앨범 < Aijuswanaseing >이었다. 인터넷의 < Ego Death >, 앤더슨 팩의 < Malibu >도 인상적이다. 프랭크 오션의 < Endless >도 좋았다. 개인적으로는 < Blonde >보다 더 쉽게 들었다.

제이클레프라는 이름을 처음 봤을 땐 푸지스의 와이클레프 장(Wyclef Jean)을 떠올렸다.
와이클레프 장은 전혀 아니다. 그냥 내 이름이 영진이라서 영진의 제이(J), 음계의 클레프(clef)를 합쳐서 제이클레프다.

음악은 언제부터 시작하게 됐나.
어릴 때부터 음악을 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결사반대와 여러 상황이 있어 대학교 입학 후에 시작했다. 학내 음악 동아리에 들어가서 활동을 시작했는데, 당시 ‘래퍼는 가사를 써야 하고, 보컬은 커버를 한다’는 규칙이 있어서 보컬로 들어갔지만 래퍼의 길을 걷게 됐다.

공대생이라고 들었다. 음악 하는 데 있어 공대생의 이점이 있다면.
하나도 없다. 방해된다.(웃음) 사람들이 되게 신기해하니 그 반응을 보면 즐겁긴 하다. 아무래도 판에 박힌 그런 삶을 탈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보니. 그런데 그렇게까지 신기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전공을 질문한 이유가 있다. 구조적이고 철학적인, 문학적 표현이 상당히 많은 편인데.
인문 쪽을 굉장히 존경한다. 나랑 관련 없고 ‘나는 절대 못할 거야!’라고 생각했던 분야였다. 사실 철학적인 내용을 써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오랜 기간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고, 자연스레 그런 내용이 음악에 녹아 나온 것 같다.

본인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시선이 흔한 것은 아니다.
주어진 환경에서 자라온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옳다고 봤다. 써야만 하는 표현으로 여겨지는 것들도 많이 배제했고, 트랩 계열 비트도 많이 받지 않았다.

제이클레프의 첫 정규 앨범은 ‘흠(flaw)’과 ‘화’로 부터 출발한다. 근간을 이루는 감정에 대해 설명해달라.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만들면서 생각한 건 아닌데, 최근 앨범을 들어보면서 ‘동행자’의 마지막 구절 ‘누구나 다치는 걸 원치 않아 / 상처 입을 자신을 감싸며’가 꽤 날카로운 지점이라 느꼈다. 정상적이고 평범한 모습, 어느 정도의 권력을 갖춘 모습을 바라는 과정에서 균열이 발생한다. 그 흠을 만들게 하는, 그 균열을 결함이라 느끼게 하는 여러 구조나 감정에 대해 일종의 회의적인 시선, 화를 내비친 앨범이다. 그런 걸 흠이라고 한다면, 대체 흠 없는 건 어떤 건가 하는 고민이 있었다.

그 결함과 분노는 현재 본인의 상태인가, 아니면 음반 만들던 당시의 본인인가.
어느 시점부터는 제 모습 중 하나가 됐다고 생각한다. 23세 24세 이후로는 항상 바탕에 깔려있는 감정 같기도 하다.

이와 같은 감정을 문학적 표현으로 풀어놓은 것이 인상적이다. 영향을 받은 문학 작품이나 작가가 있다면.
신형철 문학 평론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평소 나는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 있다는 데 회의적이었다. 갖다 붙인 말이다 하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었고 ‘뭐가 그렇게 명확하지?’하는 의심도 있었다. 신형철의 책을 읽고 많이 변했다. 내가 익히 겪은 감정을 글로 멋지게 표현한다는 점이 멋졌다. 그와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었다.

‘No one sees me like you’를 보면 감정은 아니지만, 자신의 영감(inspiration)이라는 추상적 개념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 곡은 믹스테잎 < Canyon >에도 수록되어있던 오래된 곡이다. 영감은 신기하다. 마치 사고가 나듯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에 떠오르고, 그 순간에 대해 집착을 해서 노래가 나오고 글도 나오고 영화도 나오지 않나.

영감은 붙잡지 않으면 사라지지 않나. 이 앨범도 어떻게 보면 제이클레프 영감의 기록인데.
같은 믹스테잎의 수록곡 ‘Canyon’의 배경도 그렇다. 미국 그랜드 캐니언에 가서 뮤직비디오를 찍어야 하는 상황이 있었는데, 당시 너무 자존감이 낮았고 좋지 않은 일도 겹쳐 있었기에 그 절경이 배신당하고 꺾인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신기하다. 정규 앨범도 나중에 들으면 이런 느낌일 것 같다. 나의 신기함, 나의 영감, 나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었다. ‘No one sees me like you’의 ‘you’ 역시 영감일 수도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경외감으로 읽을 수도 있다.

믹스테이프의 감정처럼 < flaw, flaw >의 제이클레프는 다른 세상을 꿈꾸지만 기존 현실에 갇혀있다는 우울, 갑갑한 심정을 토로한다.
인간은 반복되는 무언가가 지속되면 거기에 질려버리고 벗어나고 싶어 하는 동물인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향에 가도 분명 무슨 고민이 있을 거다. 그렇다고 꿈을 포기할 순 없다. 단어 그대로 ‘이상향’이니까. 하지만 반복되는 현실과 부대끼는 건 또 어렵고. 그런 감정이 들어갔다.

현실에서 다른 세계를 꿈꾸는 누군가가 여행을 떠나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를 만나 치유받기도 또는 실망하기도 하는 서사를 보면 훨씬 단단해진 모습도 볼 수 있다.
트랙 순서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사운드적인 흐름도 신경 썼지만, 제일 많이 신경 쓴 건 서사적인 부분이다.

‘주스 온 더 락’ 가사를 보면 그 여행의 과정이 마냥 괴롭지는 않은 것 같기도 한데.
‘주스 온 더 락’도 비판적인 면모가 있다. 겉으로는 칵테일 한 잔과 함께하는 여유로운 삶을 노래하는 것 같지만, ‘허나 난 뭔가에 취해 생기는 연에 매인 적 없지’에 뜻이 있다. 인간관계에서 술에 취하든 돈에 취하든, 그런 외적인 요소 없이 진지하게 감정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를 바라는 내용이다. 실제로 곡 작업도 술 한 잔 못하는 오하이오래빗과 함께 했다. 정말 술 한 잔 못하는 사람과 작업하고 싶었다.

언급한 김에 오하이오래빗을 소개해준다면.
오하이오래빗은 나와 비슷한데 더 슬프다. 많은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친구다. 대화를 나누면서도 여러 감정을 설명할 때 애써서, 덧붙여서 다시 말할 때가 있지 않나. 오하이오래빗은 그럴 필요 없이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다.

제이클레프의 태도는 ‘동행자’에서 다시 한번 두드러지는 것 같다. 이 곡의 ‘너’는 동행자보다 제이클레프 자기 자신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노래를 만들 때 항상 ‘어떻게 서술할 것인지’에 대해 중점을 둔다. ‘동행자’는 가장 자연스러운 형태의 자기표현이다. 동행자를 데리고 다니면서 내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 물론 그 주인공은 실존 인물로부터 따왔지만 서술 방식은 내가 나 자신과 나누는 대화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간접적으로는 세상을 비판하고 싶기도 했고.

워낙 앨범이 사회 비판을 많이 한다(웃음).
깔 게 많다. (웃음)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도 자전적인 이야기가 강조된다. ‘나는 말하기를 강요받아왔어’, ‘이런 건 대화라 불리면 안 될까’ 같은 표현들.
나는 큰 미래를 그리지 않는 성격이다. 연속적인 삶의 결과를 신경 쓰지 큰 그림을 그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숲을 잘 보는 사람은 계획을 잘 세우고 나무를 보는 사람은 섬세하다지 않나(웃음).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도 이런 느낌이 있다. 성공한 사람들의 자서전을 보면 이런저런 코스를 밟아서 이렇게 저렇게 성공했다고 하지 않나. 그런 부분에 대한 회의감이 많았고 지금도 좀 불편한 마음이 있다. 이를테면 ‘뭐가 될 거냐’, ‘너가 모르면 누가 아느냐’ 같은 질문들.

‘Dive in Island’는 래퍼 최엘비가 발매한 ‘Dive Island’를 편곡하여 만든 곡이다.
원래 그 곡의 1절에 내가 참여를 하는 계획이었는데 모종의 이유로 무산이 되어 아예 새로 만들었다. 프로듀서 낸시 보이(Nancy Boy)가 곡의 뒷부분을 영화처럼 만들어줬고 나를 잘 반영한 스토리를 위에 얹었다. 앨범 발매 후 더 많이 듣는 노래인데, 많은 여운이 남고 짠한 느낌이 온다. ‘쿵’하고 내려앉는 부분이 있다.

최엘비는 실제로 < 오리엔테이션 > 앨범을 통해 대학 생활을 실감 나게 표현하기도 했다. 제이클레프가 보는 최엘비는 어떤 사람인가.
최엘비는 너무 순수하다. 동갑이지만 애기인 친구가 있는 것 같다. 사람이 실제 나이와 인상이 다르지 않나. 사람은 훨씬 어른스러울 수 있는데, 굉장히 순수하고 어린아이의 시선을 갖고 있다. 싫은 말을 하는 걸 무서워하는 느낌이랄까. 곡 쓰고 가사 쓰는 것도 신경 써서 보고 있다. 티 없이 맑은 영혼의 소유자!

이런 결함에 대한 고민과 분노는 결국 ‘지구 멸망 한 시간 전’의 재난과 묵시록으로 마무리가 된다.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했다. 누가 누구를 깎아내리고 비난한다고 해서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가 안 되는 순간이 있지 않나. 서로가 서로의 상황으로 살아볼 수도 없는 거고. 그걸 다 터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먼 우주로부터 운석이 날아오는 극단적인 순간을 빌려서라도. 그 순간에서 지배적인 허무한 감정, ‘사랑만을 두고 떠나지’ 같은 표현처럼 허무한 감정 등을 그려봤다. 2절의 가사는 모든 걸 끝내버리기 전에 세상에 대한 냉소와 일갈을 다 풀어내는 거고. 귀여운 비트와 함께(웃음).

하지만 이어지는 ‘프리-퀄’은 나름 자전적이고 긍정적인 매조지 아닌가.
시간 순서대로 가자면 ‘프리-퀄’은 1번 트랙이었어야 했다. 하지만 ‘Flaw, flaw’가 완벽한 1번 트랙이라고 생각했기에, 역설적으로 마지막 트랙에 ‘프리-퀄’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톱 트랙은 아니지만 서사적으로는 맨 처음에 있는 곡으로 이해해주면 좋겠다. 20대 초반 느꼈던 낯선 감정들 – 대학생이 되고, 취업을 준비하는 그런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이방인으로 살아가기 시작했던 시기의 느낌을 담고 있는 곡.

요약하자면 앨범은 ‘결함을 의식하면서 불완전의 미학을 깨달아나가는 과정’으로 보인다.
엄청 솔직히 말하면, 지금의 나 자신이 그 불완전함을 다 예뻐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그렇게 되고 싶은 마음이 크지. 편견 없이 무언가를 보고 노력하는 것이 하루아침에 되는 일은 아니지 않나. < Flaw, Flaw >는 나의 취향 혹은 나의 선호를 갖게 해 줬던 작업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향하는 것을 분명히 하고, 같이 하고 싶은 사람들에 대해 알아가고, 싫어하는 것도 알게 되는 과정. 결국 ‘나’에 대해 알아가는 앨범이었다.

< flaw, flaw >로 한국대중음악상을 비롯한 각종 시상식에서 상을 받았고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음악을 계속해도 될지에 대한 고민이 항상 있었다. 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게 음악이니까 오기를 갖고 열심히 만든 앨범이었고, 많은 분들이 인정해주시고 상도 주셔서 감사했다. 음악을 더 해도 좋을 것 같다는 느낌. ‘충격을 주었다’는 사실에 뿌듯했다.

앞으로의 음악 계획이 있다면?
잘 모르겠다. 지금 말하기엔 다 시기상조 같다. 생각은 계속하는 단계다.

앨범 속의 제이클레프는 불안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데 서툰 모습을 보였고 그 불안정성이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렀다. < flaw, flaw >를 만들면서 본인을 더 사랑하게 된 것 같나.
치유에 많은 도움이 됐다. 감당하기 힘든 감정으로 만든 앨범이었는데 만들고 나니까 ‘뭐 어때?’ 하게 되더라. 평소 ‘왜 살지?’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음악을 만들 때도 이게 세상에 가치가 있나, 필요가 있나 하는 고민을 항상 했는데 그 고민에 대한 답이 사랑으로 되돌아왔다. 연애, 사랑, 팬, 인터뷰, 모든 관심이 나에게는 사랑이다.

< flaw, flaw >를 이렇게 많이 들어주실 줄 몰랐다. 하지만 지금처럼 평가받지 못하고 인기가 없었더라도 나에게는 많은 도움이 된, 소중한 작품이다. 중간에 발매일이 미뤄지기도 했고 슬럼프도 있었지만 발매하고 나니 굉장히 후련했다.

인터뷰 : 김도헌
사진 : 박설희
정리 : 김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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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민 인터뷰

‘독창성과 신선함을 갈구하는 음악계가 이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재주를 전설 속 ‘젊음의 샘’처럼 여기는 것도 과한 일은 아니겠다.’ < Your Home > 리뷰의 말미에서 수민을 소개한 문장이다.

표현 그대로 수민은 2018년 한 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메이저 씬과의 협업은 물론 독창적인 첫 솔로 앨범, 그리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기린과의 협업 < Club 33 > 발매까지 그의 족적은 화려하고 넓었다. 성실한 확장을 꿈꾸는 수민을 11월 18일 경리단길 카페 프레지던트(Cafe President)에서 만났다.

최근 다양한 활동으로 바쁜 수민이다. 근황을 알려준다면.
콘서트 마무리 후 8일 정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다녀왔고, 이후로는 쭉 작업 모드다. 너무 많은, 다양한 음악을 만들고 있어서 어떤 식으로 풀고 콜라보레이션 할지를 고민하고 있다.

미국행은 음악 작업을 위해서였나.
8일 내내 작업만 했다. 하루에 작업 2개씩, 잼도 많이 하고, 밤에는 신나게 놀았다. 쉬려고 갔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많이 하게 됐고.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한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얼마 전 발매된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 Aliens > 수록곡 ‘미끄럼틀’에 참여했다.
원래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오랜 팬이라 항상 밴드에게 곡을 주고 싶다는 로망이 있었다. 나잠수 오빠가 동네에 술 마시러 와선 ‘X나 어려운 걸로 빨리 내놔!’라고 해서 열심히 만들었다.

어려운 곡이라고 설명했지만 실제로 노래는 간결하고 멜로디도 잘 들리는데.
멜로디는 쉽게 쉽게 풀면서도 괴상하고, 후렴부에서는 야한 느낌도 넣고 싶었다. 실제로 이 노래를 야한 노래라 생각하고 만들기도 했다. 잠수 오빠가 말하는 ‘어려운’ 느낌은 화성이나 보이싱, 세련된 코드부터 시작해서 BPM 변화나 트랜지션(장르 혼합) 등을 일컫는데, 다행히도 잠수 오빠가 굉장히 좋아해서 다행이었다. 워낙 까다로운 사람인데.

실제로 ‘포장을 벗기다’, ‘딱딱하다’ 등 다양한 성적 은유가 내포되어 있다. 수민이 ‘딱딱하다’라 노래하는 부분은 젠더 관념을 뒤집는 재미도 있다.
사실 이 곡은 제 피처링이 계획에 없었다. 잠수 오빠 입장에서 가사를 써봤는데 그 파트를 ‘네가 불러!’ 해서 부르게 된 거다.

나잠수는 < Your Home >의 마스터링을 맡기도 했다. 나잠수와의 작업은 어땠나.
보통 믹스와 프로듀싱까지 내가 하는 편인데, 워낙 자극적인 사운드를 좋아한다. 담백한 타입도 좋아하지만 거칠 때도 많고, 그런 즉흥적인 면이 작업 과정에서 많이 묻어난다. 잠수 오빠는 반대다. 수치로 보이는 걸 좋아하는, 딱 이공계 스타일이다. ‘수치상 데시벨 몇을 내리고 피치를 몇 올려줘’라 말하는 게 평소 잠수 오빠라면, 나와의 작업 과정에선 ‘조금만 이렇게 해줄 수 있어?’라고 말해줬다.

가장 최근으로는 보아의 < Woman > 수록곡 ‘U&I’에 참여한 것이 눈에 띈다.
2016년 에프엑스 멤버 루나의 ‘Free somebody’를 좋아한다. 그 당시 들었던 가요 중 최고였다. 뮤직비디오, 프로듀싱, 비주얼 세팅 모든 것이 완벽했다. 너무 좋아한 나머지 사운드클라우드에 그 곡을 내 스타일로 해석해서 올렸는데 그게 대박이 났고, 그 버전을 오리지널 작곡가 패밀리(The Family)라는 부부 팀에게 들려줬는데 반응이 굉장히 좋았다. 그렇게 SM 송 캠프에서 함께 작업하게 됐다.

처음 SM에서는 레드 벨벳과 보아 둘을 가이드로 제시했는데 보아를 염두에 두고 곡을 만들었다. 나는 보아 팬클럽 점핑보아 출신이고, 팬을 넘어 보아의 보컬 프로덕션, 영향, 톤을 모토로 잡았던 사람이었기에 보아의 스타일을 미리 머리에 넣었던 것 같다. 보아가 될지 레드 벨벳이 될지는 모르는 일이었는데, ‘U&I’가 보아에게 가는 걸로 결정이 되고 디렉팅을 하게 되자 정말 긴장했다. 웬만해서 긴장을 잘 안 하는 편인데 보아와의 작업에선 ‘다다다다 다시 갈게요!’ 이럴 정도였다. (웃음)

‘U&I’는 콜라보레이션 곡 중에서 제일 템포가 빨랐던 곡 같다.
패밀리의 린네아 뎁, 조이 닐 미트로 뎁 부부는 스웨덴 출신이다. 스웨덴 특유의 BPM 구역과 사운드의 특징 – 컴프레스와 리미트도 거의 걸지 않는 스웨덴 특유의 BPM과 청량하고 깔끔한 사운드가 특징이다. 덕분에 정말 재미있게 작업했다. 나와 진보가 멜로디, 가사를 만들었다.

케이팝 프로덕션과 많은 작업을 했다. SM과의 작업은 물론 2016년 방탄소년단의 ‘Lie’에도 참여했는데, 케이팝이 수민의 음악에 끼친 영향이 있다면.
나는 한국사람이고 내 음악은 가요, 케이팝에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시절 경험이 적었을 땐 케이팝을 무시하는 경향도 있었다. 그러다 스무 살 샤이니의 ‘누난 너무 예뻐’를 보고 충격을 받은 거다. 테디 라일리, 마이클 잭슨이 생각나면서 ‘한국에서 어떻게 이런 팀이?’ 싶었다. 그 이후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노력하는 모습, 끈기, 열정 등에서도 매력을 느꼈고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들은 저희처럼 자유로운 입장이 아니다. 지정된 시간 안에 많은 음악을 들어야 하니까 듣는 자세도 열정적이고, 훌륭한 음악을 나보다 많이 알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뭘 해도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덕션 부분도 항상 주목한다. UK, US차트에 있는 노래들을 다 들어보지만 한국처럼 구성이 오밀조밀한 노래가 없다. 3분 30초 내에서 지루함을 느낄 포인트가 하나도 없는 음악이 케이팝이다. 백반집에 갔는데 반찬이 많아서 뭐부터 먹어야 할지, 행복한 고민을 하는 거랄까. 그런 다채로움을 수용한 노래가 ‘Seoul, Seoul, Seoul’다. 어렵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지만 실은 케이팝의 영향이 크다. 차가운 보컬 프로덕션, 믹스 스타일도 나의 성격과 잘 맞다.

케이팝이 글로벌적으로 주목받으면서 최근 MNEK, 바지(Bazzi) 등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케이팝으로부터의 영향을 적극적으로 어필하고 있다.
세계적인 현상이다.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케이팝 자체가 애초에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보니 비디오도 잘 나올 수밖에 없다. 지루할 틈이 없다. 무대 연출도 음악에 맞춰서 수준이 더 높아지고 카메라, 조명 등 음악에 관여하고 있는 분야들이 동시에 발전하는 거다.

레드 벨벳의 데뷔곡 ‘행복(Happiness)’에 N.E.R.D의 채드 휴고가 참여한 것도 굉장한 충격이었다. 이후에도 송 캠프 참여 뮤지션들의 리스트를 보면 한국에서 보기 힘든 아티스트들이나 프로듀서들이 있다. 이렇게 하는 곳이 SM밖에 없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 좀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방탄소년단과의 작업은 어땠나.
빅히트와 작업을 했다기보다는 당시 프로덕션 팀을 하고 있던 닥스킴(DOCSKIM)에게 요청이 와서 리드대로 작업했고, 메인 프로듀서 피덕(Pdogg)과 몇 번 만나 회의도 했다. 아무래도 방탄소년단이다 보니까 수정 사항이 많았는데, 살짝 힘들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잘 나왔고 재미있었다.

‘Lie’의 스타일은 독특하다. 비장하고 어둡다. 수민에게는 낯선 모습인데.
지금 준비하고 있는 음악이 살짝 어둡다. < Your Home > 작업은 사랑을 찬미하는 청량한 가사가 주였고 당시 인터뷰도 이런 식으로 얘기를 많이 했었다. 시간이 지나다 보니까 여러 모습이 나오게 된다. 아직도 밝고 사랑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사운드는 어두운 느낌이 늘었다. 음악적으로는 다크 하지만, 드럼 베이스는 여전히 세다 (웃음).

< Your Home > 앨범 리뷰 서두에 융합, 보컬과 멜로디, 메시지 이 세 가지 키워드를 제시했다. 먼저 융합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상당히 다채로운 장르가 공존하는 앨범인데.
사실 음악적인 테마는 없었다. ‘Seoul, Seoul, Seoul’만 빼면 사랑이라는 주제, 그 안에서 발생하는 애증, 슬픔, 헤어짐…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고자 했다는 것이 유일한 공통점이다. 새롭게 쓴 노래들도 있지만 ‘Mirrorball’, ‘In dreams’ 같이 전에 만든 곡들도 있다.

앨범 발매 직전에 트랙 리스트를 쭉 봤는데 ‘일치감이 든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하지만 굳이 모든 곡이 일맥상통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장르적으로도 마찬가지고. 보컬이 모든 곡을 아우르고 있으니 음악적인 부분은 조금 달라도 기틀을 잡아줄 수 있으리라 믿었다. 물론 세세하게 보면 보컬 믹스나 코러스의 유사함을 찾아낼 수도 있겠다. ‘다채로움’이 매력인 앨범으로 즐겨주셨으면 좋겠다.

타이틀 곡 ‘너네 집’은 1980년대 복고풍 신스팝 풍이고, 신세하(Xin Xeha)의 버전과 솔로곡이 다른 인상을 준다.
한동안 신스팝 음악을 듣기는 했지만 영향을 받아서 만든 건 아니고, 갑자기 빠르게 쓴 곡이다. 작업 과정에서 신디사이저가 들어가면 좋겠다 생각했고. 의외로 노래를 만들 때 고민으로부터 출발한 건 아니다. 만드는 과정에서 고민이 첨가됐다.

신세하와는 잘 아는 사이가 아니었다. 피처링 자체를 많이 하는 친구가 아니라서 연락 전에 많이 고민했지만 세하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1절을 만들고 바로 인스타그램 메시지를 보냈는데, 며칠 후 너무 마음에 든다는 답이 왔다. 사실 나 자신이 신세하의 팬이기에 세하에게 보다 많은 파트를 주려 했는데, 작업 과정에서 세하가 자기는 딱 여기까지만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앞서도 N.E.R.D 이야기가 나왔는데, ‘I hate you’의 미니멀하면서 파편화된 리듬 파트는 넵튠스를 떠올리게 한다.
N.E.R.D의 작년 12월 새 앨범이 한국에 풀리자마자 현대카드 라이브러리로 달려가서 미친 듯이 듣고 만든 곡이다. 지금의 넵튠스 스타일은 좀 다르지만 초창기 넵튠스의 비욘세, 브리트니 스피어스 노래들을 들어보면 기타 싱글 노트나 리프 하나에 드럼, 보컬 코러스를 중심으로 곡을 전개한다. ‘I hate you’의 경우는 감칠맛을 내기 위해 후렴구 전까지는 베이스라인을 하나도 넣지 않았다. 2000년대 음악의 확실한 각인을 담아보고자 한 곡이다.

‘설탕분수’는 벨기에 프로듀서 폼라드(Pomrad)와 함께했다. 리듬이 변칙적이고 베이스 조작도 많이 들어간 독특한 곡이다. 인연이 궁금한데.
나는 폼라드의 광팬이다. 그분은 천재다. 재즈, 가스펠은 물론 트랩도 섭렵한다. 노래를 잘 만드는 건 물론이고 기계를 워낙 잘 다뤄서 공연까지 혼자 다 한다. 한동안 이태원 소프(Soap)에 공연 다니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폼라드의 팬이라는 걸 말하고 다녔는데, 어느 날 소프 앨범 기획을 하는 과정에서 폼라드 내한 소식을 들었고 지인 분이 폼라드의 오프닝 아티스트로 나를 추천했다. 어떻게든 폼라드에게 나를 알리고 싶어 오프닝 셋리스트도 폼라드가 좋아할 만한 리스트를 짰다.

공연 마치고 일부러 한 마디도 안 하고 집에 갔다. 다음날 다음 날 메시지를 보냈는데 답이 안 오는 거다. 열흘이 지나도 답이 안 오다가 메일함을 정리하는데 답장이 와있었다. 알고 보니 내가 메일 보낸 같은 날에 작업 제안을 보냈는데 내가 확인을 못한 거였다 (웃음). ‘설탕분수’라는 제목은 폼라드가 ‘Sugar fountain’을 그대로 번역한 거다. 따지고 보면 팬으로서 시작한 것이 많다. 보아, 술탄 오브 더 디스코, 폼라드까지. 성덕(성공한 덕후)이다.

이제 보컬 파트로 넘어가 보자. 과거 ‘박수민’으로 활동할 때와 지금의 수민은 분명 다른 보컬이다. 알앤비 보컬로부터 보다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범용성을 확보한 인상이다.
아무래도 당시엔 곡을 쓰지 않았고 보컬리스트에 국한돼있던 시기였다. 제 음악이 아니다 보니 그런 것 같다. 스스로 음악을 만들게 되면서 나를 표현하려다 보니 여기에 어울리는 적재적소 이펙트를 사용하게 됐다. 보컬 자체도 변했다. 과거는 지금보다는 좀 퍼져 있다고 해야 하나. 모든 아티스트들이 다 그런 것 같다. 1-2년 정도 차이는 눈에 확 띄지 않지만, 5-6년 정도가 지나면 변화가 눈에 들어온다. 특히나 나는 많이 변한 축이다.

진보(Jinbo)와의 콜라보도 뺄 수 없다. ‘U&me’ 싱글부터 < KRNB2 Part. 1 >에 참여했다.
진보도 엄청난 팬이다. 모두가 진보의 팬이었고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언젠가 진보와 꼭 작업을 해보겠다는 로망이 있었다. 진보는 지금보다 그때가 더 신비로운 인상이었는데, 세상에 얼굴도 잘 안 비추고, 혼자만의 세계관이 있었다. 접근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러브존스 레코드 시절 진보에게 ‘Fxxk me’라는 노래를 보낸 적이 있었는데, 거절당했다. 당시 진보는 사랑스럽고 따뜻한 노래 ‘봄이 오는 소리’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내가 어둡고 선정적인 노래를 보낸 거였다. 전후 사정을 몰랐던 때라 기분이 살짝 상하기도 했다. 나 같아도 거절했을 텐데 (웃음)

진보를 포기할 수 없어서 다음에 써서 보낸 곡이 ‘U & me’고 드디어 콜라보를 하게 됐다. 그 인연으로 < KRNB2 > 앨범에도 참여했다. 진보는 나와 비슷한 점이 많다. 음악을 듣고 어떤 부분을 왜 만들었는지 말하지 않아도 진보는 알고 있다. 그렇게 음악적으로 소통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최근 얼터너티브 알앤비 장르는 멜로디 힘 자체가 약하다는 인상이 있는데, 수민의 곡은 멜로디 라인이 선명하다.
다른 아티스트에게 곡을 줄 때는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인데, 내 앨범을 만들 땐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 멜로디 라인이 많든 적든 내 귀에 잘 들리면 된다. 단순하게 생각한다. 물론 가사를 쓰는데 멜로디에 공백이 생기면 그때는 좀 쪼개기도 한다.

보컬 이펙트를 많이 활용했다. 어떤 트랙에선 보컬을 사운드 샘플로 쓰는 느낌이다.
맞다. 완전 의도적이다. 보컬리스트로 인식되는 전형적인 개념을 없애고 싶었다. 보컬은 음악을 표현하는 하나의 부분이다. 그게 주도적으로 나오는 곡들도 있고 아닌 곡들도 있는 거다.

메시지 차원으로 넘어가 보자. ‘통닭’은 신선한 비유를 보여주는데, 쿤디 판다의 랩이 직설적이라면 수민의 파트는 은유적이다.
남성의 몸을 비유한 게 맞다. 노래를 만들 때 항상 섹슈얼한 요소를 염두에 두는데, 처음 나오는 훅 가사가 ‘You’re so slippery / Your tan skin’이다. 내가 좋아하는 남성의 몸을 표현하고 싶었다.

슈퍼프릭 레코즈(Superfreak Records)의 프로듀서 비앙(Viann)과 통닭집에서 통닭을 먹은 적이 있었는데 너무 맛있는 거다. 마침 그 친구에게 곡을 받자마자 이 노래 제목은 무조건 ‘통닭’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치킨이란 주제 아래 이중적인 메시지를 넣었고 쿤디가 랩으로 확인사살을 해줬다. 잘 모르고 들으면 그냥 치킨에 대한 노래다.

이중적 메시지 활용이 두드러지는 반면 ‘Woo’ 같은 직접적 표현도 있다.
사실 모든 노래가 훅 빼고는 다 직접적이다. 관계를 할 때 내가 아래일 수도 있고 위일 수도 있다. 벌스에서는 상황을 묘사했고 훅에는 도끼로 찍어버리듯이 확실하게 갔다.

‘Seoul, Seoul, Seoul’의 메시지도 독특하다. 서울을 노래하는 여러 곡들 중에도 수민의 서울은 좀 다르다.
나는 서울 길동에서 태어났다. 태어나고 자라면서 느낀 서울의 이미지는… 서울 사람들 혹은 한국사람들은 감정에 대해 교류하지 않는다. 지하철 타면 모두 스마트폰만 보고 있다. 골목길에서 차가 마주하면 무조건 빵빵거린다. 만약 그 둘이 서로 알고 있는 사이라면 결코 그렇게 경적 울리지 않을 텐데. 조금만 참고 양보하면 되는 건데도 말이다. 처음부터 가사가 ‘왜 그렇게 화가 나있어’다. 다들 인상 쓰고 있고, 자기 공간을 침범하면 바로 화내고. 옛날엔 이렇게 심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내가 봤을 땐 이 상황이 더 심해지지 않을까 싶다.

그러다 가사가 한 번 바뀐다. ‘지하철 바깥 한강을 봐 그리고 하늘을 봐’. 부정적 인상도 있지만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이 편리한 도시라는 모순적인 감정도 들었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봐도 서울처럼 제반 시설 잘 갖춰진 도시가 드물다. 한국의 독특한 특징을 표현해봤다.

수민의 하루 작업량이 대단할 것 같다. 하루에 얼마나 작업하나.
하루에 1절씩은 꼭 만든다. 마음 같아서는 쉬지 않고 계속 만들고 싶다. 때로는 하루 안에 한 곡을 다 쓰기도 한다. ‘Sparkling’이 그런 곡이다. ‘너네 집’도 사실은 세하한테 일단 보내야 하니까 빨리 작업에 들어갔다. 세하가 거절할 수도 있다는 전제 하에 1절까지만 생각해 둔 건데 세하가 좋다고 해서 다 만든 거다. 나보다 더 열심히 하는 분들도 많다(웃음).

발매 예정인 차기작이 있나.
기린과의 작업은 끝난 지 오래됐다. 지금은 음악 외적으로 비주얼적인 것들에 신경 쓰는 단계다(12월 9일 < Club 33 > 발매). 이제 막 곡을 준 사람들이 몇 명 있는데, 평소에 좋아하는 뮤지션들이거나 성향이 반대인 아티스트들도 있다. 그게 세상에 나왔을 때 어떤 반응을 얻을지 너무 기대가 된다.

나 스스로도 내가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기에 앞으로 뭘 할지는 잘 모르겠다. 내년 초에도 다양한 음악이 나온다. 여러 가지 협업들도 예정되어 있고. 내 차기작에 피쳐링 아티스트가 많지는 않겠지만, 그중에도 반전 아티스트가 있다. 작업은 항상 재미있다. 예상 가능한 아티스트들과도 작업을 하지만 나와 다른 세상에 있는 사람들과의 작업은 더 기대가 된다.

최근 1-2년 사이에 젊은 아티스트들이 씬을 형성하고 있다. 예전에는 각자의 바운더리가 명확했고 독립된 형태였다면, 최근에는 하나로 묶여서 무형의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것 같다. 단순 언더그라운드 음악이 아니라 얼터너티브, 대안적 음악으로 자리하는 모습인데.
조금은 단독적이고 싶은 것이 내 생각이지만 현상 자체는 긍정적이다. 장단점이 있지만 확실한 건 예전보다는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음악을 포함한 예술 계통의 모든 것들이 가면 갈수록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 기획자들 중에도 진보적 성향의 사람들이 많고, 한국에서 활동하는 교포 출신 아티스트들의 수도 늘었다. SNS의 발달로 국제적 협업도 가능하며 다양한 예술 레퍼런스를 접할 수 있다.

길고도 유익한 인터뷰였다. 마지막으로 수민이 추구하는 음악을 정의하자면.
하고 싶은 음악은 너무 많아서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최대한 모든 것들을 건드리고 싶고 새로운 것들을 만들겠다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다. N.E.R.D가 자기들 음악은 별종이면서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건,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협업하고 프로듀서로 참여했을 때 뮤지션을 이해하려는 마음가짐 덕분이다. 이런 아티스트가 되기가 정말 힘들다. 그래서 N.E.R.D의 존재가 나에게는 큰 힘이 된다. 하나의 주제에 대해서 하나의 답을 내는 게 아니라, 여러 관점에서 보고 얘기 하고 싶다. 애증 역시 사랑이듯이.

오랜만에 돌아온 이즘 공식 질문이다. 최근 수민이 좋아하는 아티스트나 잘 들었던 앨범을 추천해달라.
아노말리에(Anomalie)의 < Metropole, Pt. ll >. 폼라드 주니어 같은 느낌이다. 굉장히 유연하다. 제임슨(JMSN)도 좋아하고.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 Aliens >도 잘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N.E.R.D의 < No One Ever Really Dies >는 명반이다.

인터뷰 : 김도헌, 정연경
사진 : 최관호
정리 : 김도헌

(201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