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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플로우 인터뷰

2011년만 해도 딥플로우는 EDM만 흘러나오던 ‘홍대 놀이터 옆 코쿤 사거리’에서 호스트 MC로 일하며 힙합과 함께 생존하고자 외로이 투쟁하던 래퍼였다. 4년 후 그는 이 파토스를 인생 전체로 확장한 <양화>를 발표하며 한국 힙합의 중심에 섰다.

평단과 대중의 찬사, ‘당산대형’이라는 굳건한 페르소나 구축, ‘작두’. 그러나 이후에도 삶은 계속되었다. “Crew에서 Company, 두목에서 사장님”(‘대중문화예술기획업’)의 훈장을 얻은 것은 쾌거였으나 거리를 두던 예능 프로그램 출연 후로는 ‘배신자’라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를 감수해야 했다.

변화 속 자신을 돌아본 <FOUNDER>로 딥플로우는 <양화> 이후 지난 5년의 시간을 술회한다. 사업가, 래퍼, 아들, 레이블 대표의 일대기를 입체적으로 펼치며 그간의 질문에 시간의 무게로 답을 한다. 서교동 비스메이저 컴퍼니(Vismajor Company)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에도 그는 거듭 ‘내 이야기’를 힘주어 언급했다.

<양화> 이후 5년 만의 정규작이다.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양화> 이후 정규 음반을 계속 내야겠다는 의무감이 없었어요. “아이디어가 생기면 내야겠다”하는 막연한 마음만 있었죠. 방송 나가고 ‘다모임’ 활동도 하면서 창작욕이 일부 해소된 것도 있었고요. 그러다 정규작에 대한 아이디어가 생겼고, 3년 전부터 작업을 시작해 약 2년간 과정을 거쳐 앨범을 발매하게 됐습니다.

발매가 늦어진 데 다른 이유는 없었나? 그 해 <양화>에 쏟아진 엄청난 반응을 의식했다거나.

순전히 제 선택이었습니다. 제가 사장인데요 (웃음). 컨펌받을 사람도 없고 앨범 내라고 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20대 초부터 랩을 했으니 거의 20년 가까이 한 셈이라 언제든 제가 만들 수 있을 때 앨범 단위의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죠.  

모든 작품은 아티스트가 살아가는 환경, 시대와 충돌하며 빚어진 결과물이라 생각한다. 특히 <FOUNDER>처럼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앨범이라면 더욱 그렇다. <양화> 이후 5년 동안 딥플로우에게도 그런 사회적 화학 작용이 분명 있었을 텐데. 

<양화>는 30대 초반의 제가 20대 초부터 30대 초까지의 삶을 담은 앨범이었죠. 발매 당시엔 “나는 내 할 말을 다 했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말씀하신 대로 분명 화학 작용이 있었죠. 변화에 휩쓸리기도, 뛰어들기도 하면서요. 그렇게 제가 변해가는 모습을 보며 앨범 아이디어를 구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노래 제목만 보면 거의 경제학 앨범이다. 그것도 슬픈 경제학. 앞서 언급한 화학 작용의 결과임이 분명해 보인다.

앨범을 만들며 제 이야기, 제 변화에 집중했습니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말을 해도 이 작품은 변명이 되겠구나 싶었고, 그래서 ‘이 앨범은 VMC 식구들에게 하는 말, VMC 식구들에게 헌정하는 앨범’ 이라는 점에 집중해서 작업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제 힙합은 거리의 메시지가 아니라 ‘나의 메시지’를 담는데 집중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번 앨범도 그런 현상을 잘 대변하는 작품으로 들리고.

최근에 젊은 친구들이 가져오는 음악을 들어보면 정말 ‘음악’, ‘즐거움’ 그 자체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하더라고요. 가사를 쓸 때도 메시지보다는 테크닉과 소리의 차원에서 단어를 활용하고요. 힙합의 시대정신이 바뀌고 있다는 건 몇 년 전부터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거기에 가치 판단을 하는 건 아니에요. 이런 시대가 됐고, 저도 최근에 즐기고 있습니다. 새로운 친구들은 그런 음악을 하고, 저는 제 음악을 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중이에요.

<FOUNDER>는 <양화> 이전부터 이후의 오랜 시간 경과, 아주 어려웠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을 담아낸 앨범이다. 사운드도 고전 소울을 가져오며 그 느낌을 의도한 것처럼 들리는데. 

우선 제가 샘플링을 좋아해서 과거 음악을 많이 들었습니다. 누구 노래인지, 무슨 노래인지도 모르고 그냥 많이 들었어요. 소울, 재즈, 펑크(Funk), 블루스 등등 처음에는 샘플을 따기 위해 듣던 음악이 어느 순간 엄청난 라이브러리로 쌓이고, 제 취향으로 굳어지게 됐죠. 어디 가서 분위기를 내기 위한 음악을 틀어달라고 하면 저는 꼭 소울 음악을 틀거든요. 그러던 와중에 ‘그냥 가져오는 것보다, 내가 만들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로 영화 ‘파운더’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듯 영화는 과거 할리우드 갱스터 영화를 연상케 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마틴 스콜세지의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맞아요. 스콜세지의 영화를 좋아합니다. 소울 음악을 선택한 것도 영화 느낌의 톤 앤 매너를 내기 위한 방법 중 하나였어요. 앨범 커버도 고전 할리우드 영화 포스터 풍으로 그렸고, 그런 영화의 사운드트랙 같은 노래를 만들고자 했죠. 프로듀서에게  <FOUNDER>가 영화처럼 들렸으면 좋겠다고 주문했어요. “영화 같은 걸 해야 해!”, 아예 “OST처럼 들렸으면 좋겠어.”라고도 말했어요.

앨범을 지휘한 프로듀서 반루더(Van Ruther)는 <양화>를 프로듀싱한 티케이(TK)와 동일 인물이다. 전작과 완벽히 다른 장르와 밴드 셋, 트랙을 만들고 랩을 얹는 과정이 모두 새로웠을 텐데 어려움은 없었나.

반루더가 다했죠 (웃음).원래 반루더는 건반으로 작업하는 친구, 피아노맨이에요. 그래서 처음 가져온 곡들은 피아노 기반의 느낌이 강했어요. 저는 마초적인 느낌을 담기 위해 기타를 넣어달라고 강력 주장했죠. 그래서 기타 위주로 테마를 짰어요. 그러면서 록처럼 들리진 않았으면 좋겠고…. 반루더가 이번 앨범의 장르와 사운드 감을 잡기 위해 제 취향의 음악을 듣고 공부하며 백여 곡 정도를 새로 만들었습니다. 이후 미디로 곡의 뼈대를 잡아 비트를 만들고 그 위에 제가 랩을 녹음한 후 세션 작업을 진행했어요. 랩 이후엔 제가 거의 관여를 안 했어요. 제가 어려울 건 없었어요. 반루더가 어려웠죠.

앨범에는 1970년대 스택스 레코드(Stax Records)과 멤피스 소울, 마빈 게이, 필리 소울 등 다양한 스타일이 자연스레 어우러진다. ‘Blueprint’의 경우 모타운의 느낌도 나는데.

맨 마지막 트랙이라 특별히 모타운 스타일을 강하게 주문했어요. ‘커튼콜’ 같은 인상을 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녹음에 들어가니 이미 BPM이 80 중반대로고정되어 있었죠. 랩 녹음을 바꿀 수도 없고, BPM을 바꿀 수도 없고…. 그러다 보니 의도했던 것처럼 나오진 않았네요(웃음).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힙합에 가까워졌죠. 블루 매직(Blue Magic) 풍의 필리 소울 풍도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충분히 멋지지만, 커티스 메이필드(Curtis Mayfield)의 시카고 사운드 풍 곡이 하나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 생각도 했는데 예제가 너무 많았어요. 프로듀서가 자기가 구현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선택을 한 거라고 봐요. 

4월 21일 앨범 세션 밴드 프롬올투휴먼과 함께 ‘네이버 NOW’에서 <FOUNDER>의 곡들을 라이브로 선보였다. 인상적인 무대였는데, 어렵지는 않았나.

오케스트라 같은 대형 무대를 꾸린다면 모를까 지금은 크게 어렵진 않아요. 의도적으로 MR로 하는 라이브는 거절하고 있습니다. 

작사에 시간이 걸렸을 줄 알았는데 사운드 차원에서 작업이 오래 걸린 인상이다. 

가사는 6개월 만에 다 썼어요. 제게는 빠른 페이스였죠. 주제가 워낙 명확한 콘셉트 앨범이었고, 트랙리스트를 미리 만든 다음 가사를 썼기에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쉽지 않았던 곡, 혹은 가장 공들인 곡이 있다면. 

‘Low budget’이 녹음하는 데 어려웠던 기억이 나네요. ‘대중문화예술기획업’은 긴 스토리를 압축해서 들려줘야 했기에 단어 고르는 과정이 오래 걸리기도 했고요. 이외엔 제게는 쉬웠던 것 같습니다. 프로듀서가 앨범을 꾸며주는 후반 작업이 어려웠죠. 가사를 다 쓴 건 작년 6, 7월이었는데 발매는 올해 4월이었으니까요.

가장 마음에 드는 곡은?

‘Big deal’의 랩이 마음에 듭니다. ‘VAT’도 좋고요. 

한때 딥플로우는 ‘쇼미더머니’로 대표되는 미디어와 힙합의 유착 관계에 반감을 숨기지 않은 대표적인 래퍼였다. 많은 래퍼들이 방송에 출연해 유명세를 얻고 인기를 누리는 와중에도 그는 “그게 내가 <양화>를 만들 수 있었던 이유(‘불문율’)”라 일갈하며 “진짜 어울려 딥플로우와 힙합 말이야”(‘잘 어울려’)라는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러나 지난 몇 년 간 우리는 TV에 나온 딥플로우, ‘쇼미더머니’에 나온 딥플로우, ‘언프리티 랩스타’에 나온 딥플로우의 모습을 목격했다. ‘변절자’라는비판, 변화의 흐름에 대해 딥플로우는 “지금은 제가 한 발언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담담히 그간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록과 힙합 모두 마찬가지지만 일종의 ‘저렴한 순수성’이란 게 있다. 미디어 출연, 거대 자본과의 협력은 곧 타락으로 보는 시각이다. 최근 딥플로우는 그 순수성 부분에 있어 가장 논쟁이 되는 래퍼다. 

과거에는 이런 여러 활동을 하면 순수함에 위배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아직도 그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고요. 그렇다고 해서 예전에도 TV 출연 자체가 무조건 배신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저렴한’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가 거기에 있다. 대중음악은 대중 상대로 설득을 할 수 있느냐에 따라 성패가 결정된다. 그 설득의 방법 중 하나가 TV 출연이고. 어떻게 보면 본인의 음악을 알리기 위해 미디어에 자신을 노출하는 건데 ‘순수성’을 수호하는 입장에서는 비판의 대상이다. 

‘쇼미더머니’를 예로 들자면 그 프로그램이 시작할 때 힙합 신에는 분명 비판적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꽤 많았고, 저도 동일한 생각이라 반대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런데 그게 ‘쇼미더머니’를 넘어 ‘아예 미디어에 나오면 안 된다’는 식으로 확대 해석되더라고요. 물론 제가 한 말이 달리 해석되고 퍼지는걸 다 주워 담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제 생각은, 우리의 활동이 백 퍼센트 순수 창작예술이라면 저만 듣고 만족하면 되겠지만 결국엔 남에게 들려주는 대중음악이잖아요. 이제는 사실 제 음악을 알리기 위해 계단을 한 발 딛느냐와 열 발 딛느냐는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 그런 시각이 딥플로우를 언더그라운드라는 공간에 가둬놓는 것은 아닐까.

‘딥플로우는 붐뱁을 추구한다’, ‘딥플로우는 언더그라운드의 수호신이다’…. 그런데 제가 기자 회견을 하고 성명서를 낼 수도 없잖아요(웃음). 흘러가게 놔두는 편이죠.

‘쇼미더머니’에 대한 생각은. 
결과론적으로는 사람들에게 힙합을 많이 알렸죠. 방송 당시엔 몰랐지만, 대략 10년이 지난 지금 보니 새롭게 랩을 하고 힙합을 하는 아이들이 많아졌을뿐더러 그들에게 ‘쇼미더머니’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것 같습니다. 물론 래퍼들에게 독과점화 된 플랫폼 등 부정적인 영향도 있어요. 하지만 시대는 계속 변하고 있습니다.

2000년대 초 대거 등장했던 한국 힙합 래퍼들이 현재 3, 40대에 접어들며 과거를 회고하는 듯한 메시지가 두드러지고 있다. “30대 꺾인 래퍼 라인업”으로 출발하는 ’36 dangers’ 역시 의미심장하다. 

타의 반 자의 반으로든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 게 얼마 되지 않았어요. 다모임 활동을 하면서 묘한 연대감을 느꼈죠. 저도 VMC에서 보일링 프로젝트(Boiling Project)를, 더콰이엇은 랩 하우스(Rap House)를 진행하며 각자 나름의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다가왔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는 그냥 각개전투였다면, 이제는 ‘지금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가 다음 세대에게 줄 영향을 결정한다’는 생각이죠. 나비효과처럼요. 자아성찰을 많이 하게 돼요.

딥플로우의 랩은 과거부터 20대 초중반에서 흔치 않은 묵직한 플로우와 음색을 갖고 있었다. 30대의 이야기를 하는 <FOUNDER>에선 ‘넉넉하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본인의 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제 주위 사람들은 워낙 제 랩에 노출되어있다 보니 익숙해해요. 사실 항상 궁금하거든요. 사람들이 내 랩을 어떻게 생각할지, 내가 랩이 어떻게 들릴지를요. 모니터링 과정에서 워낙 좋아해 주는 친구들도 있지만 힙합을 많이 접하지 않은 분들은 제 스타일이 지루하다고 이야기하기도 해요. ‘그게 내 랩의 단점이구나’ 싶을 때도 많아요. 제가 표현하고 싶은 분야는 무척 많은데, 하나의 모드로 굳어져있는 게 아닌가 싶거든요. 그런 점들을 밀도 있게 잘하고 싶은데, 쉽지 않습니다(웃음).

마지막으로 <FOUNDER> 이후의 딥플로우를 전망한다면.

사업가 딥플로우와 래퍼 딥플로우 모두 연결이 되어있어요. 활동 없이 경영만 하면 제가 회사의 핵심 인물이라 사업이 안 될 거고, 그렇다고 활동 안 하고 경영만 할 수도 없죠. 꾸준히 좋은 작품을 발표하며 VMC의 생명을 유지하는 게 목표입니다.

인터뷰 : 임진모, 김도헌, 임동엽, 이홍현
정리 : 김도헌
사진 : 임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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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정 인터뷰

세정은 실제의 ‘균형’을 원한다. 가수에게 필요한 대중적 인기도 분명 인식하지만 스스로 곡 쓰고 자신의 것을 축조하는 ‘자주’도 요구하고 있다. “하고 싶어서 음악을 한다!!” 선우정아가 곡을 쓴 인디 감성의 신곡 ‘화분’은 솔직히 아이돌 가수와 쉬 부합하지 않는다. 모험을 할 줄 아는 이런 약간의 도발이 아이오아이와 구구단 세정이 아닌 ‘솔로 세정’의 입지를 확장해주고 있다.

인터뷰 중에 그가 주로 동원한 어휘는 솔직함, 진심, 공감 그리고 자기 위로였다. 이번 미니앨범은 ‘힐링 뮤지션’의 본격 시작점. 대화 시간 내내, 자신의 음악과 닮아서 미디어가 붙여준 수식 ‘힐링 웃음’은 조금도 놓치지 않았다.

다섯 곡의 미니 앨범이지만 내용은 실하다. 작업과정을 알려 달라
제일 처음 만든 곡은 ‘오늘은 괜찮아’에요. 재작년 말부터 작년 초에 만들었으니 꽤 오래 걸렸죠. 태연 선배님의 ‘U R’처럼 잔잔하고 예쁜, 희망을 줄 수 있는 메시지의 수록곡을 생각했어요. 이 곡을 타이틀로 가자는 이야기도 많이 나왔답니다. 하지만 제 기준으로 이 노래는 수록곡이라고 봤어요.

타이틀 욕심이 없었나
모르겠어요. 확 성이 차지 않았다고 할까? 예술성의 측면에서 완벽하지 않다고도 봤고, 타이틀 곡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었어요. 그렇게 해서 이어서 만든 곡이 ‘SKYLINE’과 ‘오리발’이에요.

‘화분’을 제외한 모든 곡의 작사 작곡에 참여했다.
처음에는 ‘오늘은 괜찮아’ 한 곡만 자작곡으로 수록하고 나머지 노래들은 다른 분들께 받을 계획이었어요. 그런데 이 곡을 타이틀로 하자는 얘기를 듣고 나니, 멍해지더라고요. “이대로 있지 말자. 더 좋은 곡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더 많이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SKYLINE’, ‘오리발’, ‘꿈속에서 널’ 세 곡은 동시에 작업한 곡이에요. ‘오리발’의 1절까지 써놓은 상태에서 작업을 미루게 됐습니다. 이후 객관적인 시각으로 작업을 돌아볼 수 있었고 다시 준비해서 앨범 < 화분 >을 완성했어요. 정말이지 자작곡이 모두 수록될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웃음)

‘화분’은 선우정아가 곡을 만들고 바버레츠의 안신애와 함께 노랫말을 썼다. 타이틀곡도 욕심을 냈을 법한데..
작업을 하며 전문가의 터치가 필요하다는 걸 느꼈어요. 내심 타이틀곡만은 전문가에게 받았으면 했죠. 그러던 중에 회사 A&R 팀에서 먼저 관심있는 아티스트가 있냐며 제안을 주셨어요.

일부에선 타이틀곡 ‘화분’ 대신 ‘SKYLINE’을 타이틀곡으로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목소리도 있던데 들어봤나
‘SKYLINE’을 계속 끌고 갈까 고민도 했어요. 회사에선 ‘화분’을 밀었어요. 타 솔로가수와 차별화되는 지점도 있고, 좀 더 세정다운 색이 ‘화분’에 담겨있다고 본 것 같아요. 저도 물론 그렇게 생각했구요.

‘SKYLINE’이 보다 대중적인 건 맞아요. 웅장하고 벅차오르는 느낌도 있죠. 다만 가슴 깊은 곳을 울리는 찡한 감정은 ‘화분’이 더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와 회사 모두 ‘화분’이 주는 주제와 느낌, 봄이라는 계절감, 시작의 의미 모두가 하나로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어요.

그렇더라도 노랫말은 세정이 해낼 수도 있었을텐데.
선우정아님께서 곡을 쓰실 때 세세히 정확하게 계획을 세워두셨더라고요. ‘여기에는 이 음이 들어가고, 이 가사가 들어가야 하고,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여기다.’ 모든 게 이미 짜여 있었죠. 제가 이 곡의 가사를 수정하거나 멜로디를 만지게 되면 전체적인 의도와 내용을 오히려 흐트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럼에도 ‘화분’은 도식적인 다른 발라드들과 다른, 조금은 도발적 터치가 있다. 아이오아이와 구구단, 지금까지 솔로 활동과 견줄 때 새롭다. 사실 이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이유인데..
회사는 ‘꽃길’, ‘터널’ 그리고, ‘화분’으로 이어지는 ‘굳히기’의 의도로 ‘화분’을 제안한 것 같아요. 사실 ‘터널’까지만 이런 위로의 이미지와 주제를 가져가려 했는데, 아직 ‘세정의 노래는 이거다’라는 대중의 인식이 약하지 않냐는 의견을 주셨죠. 저도 수긍했고요. 앨범 단위의 작품은 또 없었기 때문에 그랬구요.

아이오아이와 구구단 활동과 달리 세정의 솔로 커리어는 발라드 장르로 진행되고 있다.
틀에 갇히고 싶진 않아요. 제가 판단하기에 제 목소리의 장점은 목소리만 들어도 어떤 노래를 할지가 연상되는 개성보단, 각 장르에 맞춰 다양하게 부를 수 있다는 점이라 생각해요. ‘세정의 음악’, ‘세정의 노래’가 사람들 사이서 감이 잡히게 되면, 빨리 장르를 넓히고 싶어요.

2018년 작사 작곡의 의사를 처음 내비쳤던 한 매거진과의 인터뷰를 기억한다. 왜 작사 작곡을 하려고 한 것인가
처음에 벽을 너무 높게 잡아서 시작하는 데 굉장히 오래 걸렸어요. 미디도 다룰 수 있어야 할 것 같았고, 믹싱도 제가 할 줄 알아야 될 것 같았죠. 그렇다고 어설프게 시작하고 싶진 않았어요. 할 거면 제대로 배우고 싶었죠.

2년 전쯤 회사 내부에 저만의 자그마한 공간이 생기고 나서부터 본격적으로 작곡을 시작했어요. 작가님들께 부탁해서 장비를 구하고, 프로그램 세팅을 부탁드렸죠. 처음에는 다른 가수분들의 모르는 곡의 인스트루멘탈(연주 대목)에 제 멜로디를 얹으면서 시작했어요. 그렇게 혼자 신나서 몇 곡을 만들어서 친구들에게, 작가분들께 들려주니 세상에 괜찮다는 거예요, 참.. 그리고 나서 회사 내 송캠프 시스템을 추천 받아 본격적으로 들어가게 됐죠. 심장이 뛰고 너무 재미있는 거에요!(웃음). 그렇게 만든 첫 곡이 ‘오늘은 괜찮아’였어요.

‘꽃길’, ‘터널’, ‘화분’ 모두 위로의 주제를 담고 있다. 갑자기 든 생각인데 자기를 위로하기 위해 노래 부르고 작곡하는 것 같다.
어릴 때 저는 진짜 제 상태를 모르고 살아왔던 거 같아요. 모든 걸 다 긍정적으로, “뭐든 이겨낼 수 있어, 해낼 수 있어!”라 받아들였죠. 그러다 보니 가슴 한 켠에 이상한 무언가가 생겨났어요. 현실을 제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좋은 부분만 보려고 한 거에요. 그 닫힌 부분을 확인한 게 스물 두 살 때였을 거예요. 이러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아픈 부분은 치유해야 하구나, 외면하면 병이 나는구나…’.

그러면서 나에 대한 위로, 공감에 시선을 두게 됐어요. 그렇게 저의 솔직한 진심을 마주하고 나니, 이것만은 모든 사람들에게 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어요. 솔직하게 제가 느낀 점을 말하고, 진심을 전하면 공감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모든 걸 음악에 담고 싶었고요.

앨범 속지 속 수록곡 옆에 직접 쓴 에세이를 담고, 팬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동봉한 것도 그런 의도에서인가.
곡을 만들며 가사로 풀어내기 힘든 생각을 담았죠. 왜 제가 이 곡을 쓰게 됐는지,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항상 글을 쓰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회사에서 편지 아이디어를 줬어요. 글을 통해 제 진심을 더 느껴주셨으면 해요. 솔직한 진심이요.

< 화분 >을 준비하며 가장 어려웠던 점은
‘오늘은 괜찮아’는 후반부 진한 가성이 잘 안 나와서 힘들었어요. ‘SKYLINE’은 작업 과정에서 편곡을 많이 바꿔서 그 점이 어려웠고요.

아이오아이와 구구단 활동을 통해 배운 것이 있다면.
사랑의 소중함을 배웠어요. 아이오아이를 하면서는 사람들이 왜 저를 좋아해 주시는지, 어떤 점에서 제가 대중성을 갖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됐죠. ‘항상 긍정적이고 밝아야 한다.’는 잘못된 결론을 내리기도 했지만요 (웃음). 구구단을 하면서는 더 노력하게 됐어요.

가수로서 세정의 롤모델은 누구인가.
늘 아이유 선배님이에요. 어렸을 적에는 인순이 선배님. 인순이 선배님처럼 오랜 시간 음악하고 싶다는 마음을 아주 오래 갖고 있었어요. ‘오리발’이 그 내용을 담고 있어요.

사람들이 미니 앨범 < 화분 >을 어떻게 들어줬으면 하나.
취향 따라 골라 듣는 ‘위로의 뷔페’? 꼭 전곡을 다 안 들어도 돼요. 오늘은 이런 위로의 메시지가, 내일은 저런 위로의 메시지가 필요할 수 있잖아요.

마지막으로 세정이 자주 들었던, 세정의 인생에서 중요한 노래들을 꼽아달라.
폴 뷰캐넌(Paul Buchanan)의 ‘Mid air’는 가장 좋아하고 많이 본 영화 중 하나인 ‘어바웃 타임’에서 주인공이 처음 사랑에 빠질 때 나오는 노래에요. 이 노래를 들으면 마치 내가 운명의 상대를 만나, 시간 속에 그 사람과 단둘만 남은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요.

린의 ‘…사랑했잖아…’는 중 2때 운동장에서 연습했던 저의 첫 곡이에요. 이 때 ‘제대로 실용음악 학원을 다녀야겠다’라고 마음을 먹었어요.

옥상달빛의 ‘괜찮습니다’도 추천해요. 옥상달빛은 저에게 인디라는 장르를 눈 뜨게 해주신 분들이자, 인디 음악을 어색하게 느꼈던 저에게 인디의 담백하고 솔직함을 깨닫게 해주신 분들이에요.

인터뷰 전 IZM SNS를 통해 많은 분들께서 평소 세정에게 묻고 싶었던 질문을 보내주셨습니다. 그 중 선정된 2분의 질문을 직접 물었습니다.

트위터 ‘동달’ 님의 질문 : < 화분 >을 어떤 앨범으로 기억하게 될지?
솔직히 아쉬움이에요. 아쉬움이 남아야 다음에 할 게 더 많은 법이잖아요?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고 새로운 시도도 했지만 그만큼 아쉬움도 큰 앨범이에요. 훗날 돌아봤을 때 이 아쉬움으로 성장한 제 자신을 마주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인스타그램 ‘yssj034’님의 질문 : 위로가 필요할 때 세정이 듣는 노래는?
사실 위로가 필요할 땐 노래를 잘 듣지 않는 편이에요. 대신 글을 많이 써요.

인터뷰 : 임진모, 김도헌, 임동엽, 임선희
사진 : 젤리피쉬 엔터테인먼트 제공
정리 : 임진모, 김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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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인터뷰

지난 12월, 6년 만의 정규 앨범 < Don’t Think Too Much >를 발표한 진보는 갓 맞이한 2020년의 시작을 바삐 보냈다. 그 기간 동안 그는 신보를 소개하는 방법으로 성수동의 뿐또 블루(Punto Blue)에서의 ‘전시회’를 기획하고, 1월 17일과 18일 양일에 걸쳐 대중에 자신의 작품을 소개했다. 으레 하는 공연이나 쇼케이스 대신 예술 작품과 쇼케이스, 설명회를 통해 충실한 앨범 가이드라인을 제공한 전시회를 감상하며, 긴 공백기 동안 오래 축적된 아티스트의 표현 욕구가 얼마나 강렬한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인터뷰는 전시회 이후 21일 진보의 한남동 스튜디오에서 진행됐다. 넓은 스튜디오에는 닥스킴(Docskim)을 비롯해 다양한 프로듀서들과 작곡가들이 작업을 위해 분주히 오가는 중이었다. 치열하고도 여유로운, 묘한 분위기의 스튜디오에서 피처링, 콜라보레이션, 작곡가 크레디트의 진보 대신 인간 한주현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2013년 < Fantasy > 이후 6년 만에 앨범을 발매했다. 공백기가 길었다.
심리적 문제가 컸다. 잘하고 싶은 욕심이 과욕이 됐다. 하루는 고민하다 뮤직비디오를 같이 찍던 박재범에게 대놓고 이렇게 물어봤다. “어떻게 하면 잘돼요?”. 그러니 이렇게 대답하더라. “좀, 담백하게 내야 할 거 같아요. 너무 힘을 줘서 내면 실망할 수도 있으니까…”. 

한 방을 노리는 게 아니라 잽 날리듯 가볍게, 부담 없는 자세가 필요했던 것인가. 
(자세를 취하며) 너무 이렇게, 힘주고 있었던 거다(웃음). 3년에 한 번쯤 도끼(Dok2)를 찾아가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친구도 박재범과 비슷한 조언을 해줬다. 

도끼와 박재범 모두 진보보다 어린 뮤지션이다. 개방적인 성격이 인상적이다. 
본성이 그런 게 8이라면 일하다 보니 생긴 성격이 2다. 퀸시 존스, 퍼렐 윌리엄스 등 내가 존경하는 아티스트들을 보면, 그들은 꾸준히 자신을 물갈이하며 롱런의 초석을 닦는다. 항상 새로운 인물과 친분을 쌓으며 새로운 무기를 장착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것은 잃지 않는다. 나에겐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꾸준한 신진대사 활동과 같다.

여러 조언에도 불구하고 < Don’t Think Too Much > 발표가 늦어진 또 다른 이유가 있어 보이는데. 
KRNB > 두 번째 파트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새 정규 앨범을 발표하는 것에 대한 부담도 있었다. 원래는 앨범 한 장으로 발표하고자 했는데, 싱글로 나눠 발표하다 보니 시간이 더 걸렸다. 

실제로 단일 앨범으로 발표됐던 2012년 < KRNB >와 달리, 이번 두 번째 시리즈는 싱글 단위로 공개 중이다. 한 작품이 진행되는 가운데 새 단독작을 준비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처음엔 < Don’t Think Too Much >를 믹스테이프로 기획했다. 10월쯤에는 앨범의 90%가 완성된 상황이었다. 과거 만들어 둔 곡이 많다. ‘Don’t think too much’는 2012년에 스케치를 마쳤고, ‘Coolest fire ever’ 역시 미국에서 공부하던 시절 친구들과 함께 만든 곡이다. OST를 염두로 만든 곡, 시대를 앞서간 곡, 기획사에 보냈던 곡 등… ‘갈 곳 없는 친구들이 모인 앨범’이다(웃음). 

< Don’t Think Too Much >의 핵심은 무엇인가. 
음악 자체보다 그 안에 담긴 메시지가 중요하다. ‘너무 생각하지 말자. 그냥 하자. 그냥 해! 실패해도 돼. 안 좋아도 뭐 어때.’다. 오늘 입고 온 나이키처럼 ‘저스트 두 잇(Just Do It)’이다(웃음). 

지난 시간 동안 알게 모르게 타인을 너무 많이 의식해왔다. 후배 뮤지션 누구는 이렇게 잘하는데, 존경받는 선배라면 더 멋진 걸 만들어야 하는데… 그런 생각을 떨쳐내자는 의지가 앨범의 주제다. 전시회에서 전시한 ‘숙변’이라는 제목의 작품도 기억이 난다. 이 앨범은 나에게 ‘숙변’ 같았다. 그 묵은 변을 시원하게 ‘플러쉬(Flush)’한 작품이다.  

방금 언급한 대로 1월 17일과 18일, 성수동에서 전시회 형태로 앨범을 소개했다.
보다 많은 분들께 내 작품을 소개하고 설명하고자 했다. 앨범을 소개하는 매거진 형식의 설명서도 만들었고, 정규 앨범 트랙리스트를 살짝 바꾼 음반도 수록했다. 솔직한 나의 이야기를 담았다. 예전보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하고 편하게 얘기할 수 있게 됐다.

진보는 힙합 알앤비 씬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침과 동시에 2012년 소녀시대의 ‘Gee’를 리메이크한 ‘Damn’을 시작으로 SM 엔터테인먼트와 함께 협업해왔다. 소속사를 대표하는 샤이니, 에프엑스, 레드벨벳의 노래가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방탄소년단의 ‘Pied piper’, ‘Anpanman’은 물론 멤버 제이홉의 ‘Chicken noodle soup’ 역시 진보의 작품이다. 당시 메이저 시장과의 교류가 드물던 언더그라운드에서 진보의 콜라보레이션은 분명 독특한 행보였다. 현재도 그는 청담과 홍대, 이태원을 바삐 오가며 주류와 언더그라운드를 자유로이 활보하고 있다.

진보는 “처음 대형 기획사와의 협업할 땐 나 자신을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30대 중반이 되고 나서, ‘나는 안 바뀌는구나!’하는 자신감이 생겼다.”며 후배 뮤지션들에게 메이저 시장으로의 접점을 넓힐 것을 주문했다. 그는 이센스의 < The Anecdote >를 프로듀싱한 덴마크 프로듀서 오비(Daniel Obi Klein)의 격려를 소개하면서, “수익원을 다각화하지 않으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없다. 방탄소년단과의 작업이 신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라 강조했다.

다양한 스타일이 종합된 < Don’t Think Too Much >에서 가장 새로웠던 도전이 있다면? 
발라드 곡 ‘눈을 감아도’다. 한국 사람들에게 노래방에서, 대학가에서, 술집에서 익숙하게 들려오는 멜로디, 정서 아닌가(웃음). 지금까지 필사적으로 그 느낌을 피하려 노력해왔는데, 이번 앨범에서 ‘힘을 빼자’는 마음을 가지며 새로운 시도를 더해보고자 했다. 평소 음악에 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기타리스트 김승현이 곡을 만들고 많이 격려해줬다. 전시회에 방문하신 어머니께서도 ‘눈을 감아도’에 대해 코멘트를 더해주셨다.

평가는 어땠나. 
‘아쉽다’였다. “더 풍부한 해석과 감성을 담아야 한다.”라고 뼈 있는 조언을 해주셨다. 칭찬 좀 해주시지…(웃음)  

지금까지 진보는 < KRNB > 시리즈를 통해 과거 한국 가요에서의 ‘한국 정서’를 자신의 스타일로 정제해왔다. ‘눈을 감아도’는 본인의 스타일로 한국 정서를 담고자 노력한, 반대 지점에 있는 곡이다.
과거 ‘내가 덜 한국적이다’는 생각을 갖고 살아왔기에 ‘눈을 감아도’를 마주하기 더욱 어려웠던 것 같다. 많은 발라드 가수들과 비교되지 않을까 두렵기도 했다. 지금은 훨씬 여유도 생겼고,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어 만족스럽다. 무서웠던 걸 해낼 때의 뿌듯함이 있다.

유부남에 대한 찬가 ‘Baby’에서도 한결 여유로워진 진보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Baby’는 < 쇼미 더 머니 > 시즌 4 우승자 베이식(Basick)의 의뢰로 만든 곡이다. 베이식도 유부남이다. 이후 일본의 그룹 에그자일(EXILE)에게 노래를 보내는 과정에서 뼈대에 살을 붙였고, 출산과 육아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담아 곡을 완성했다. 이런 얘기를 ‘유부 Flow’ 팔로알토에게 들려주며 ‘유부남의 사랑을 표현해달라’고 요청했다. 

여유로운 트랙이 변화를 상징한다면 ‘Coolest fire ever’는 젊은 힙합 팬들에게 화제다. 스윙스, 저스디스, 쿤디 판다 등 다양한 래퍼들의 단체곡이다. 
LA에 유학할 때 친해진 친구들이 있다. 한 명은 < Fantasy > 앨범에 참여한 래퍼 젯투(Jet2), 그리고 또 한 명은 션 ‘스파이더맨’이었다. 당시 학교에서 가장 ‘쿨’했던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만든 곡이 바로 ‘Coolest fire ever’다. 스케이트보드 바퀴 소리를 비트로 삼았고, 2000년대 힙합의 바이브를 의도했다. 젬(GEM), 심바 제이(Symba J) 등 다양한 아티스트들도 소개하고 싶었다. 

언급한 것처럼 최근 2020년대를 맞아 2000년대 초 스타일이 상당 부분 돌아오고 있음을 체감한다. 이모 코어, 엔이알디(N.E.R.D.) 등 한 시대를 풍미한 음악이 다시 유행으로 자리하는 모습인데. 
다양한 부분에서 유행이 돌고 돈다는 걸 확인하고 있다. 이펙트를 예로 들자면, 한동안은 리버브 강한 웻(Wet)한 느낌이 강세였으나 최근엔 드라이(Dry)한 사운드로 가는 추세다. 멜로디도 마찬가지다. 지난 10년간 아주 단순한 진행의 선율이 대세였으나 한계에 부닥친 모습이다. 전체적으로 우울했던 곡 분위기 역시 달리지고 있다. 여러 단서를 통해 2000년대의 유행을 체감한다.

얼터너티브 록이 힙합의 영역으로 들어온 ‘사랑꾼’에서도 그 무드를 확인할 수 있다.
‘사랑꾼’은 2014년 경 밴드 워크맨십(WRKMS)의 프로젝트로부터 출발했다. 당시 워크맨십이 “모스 데프(Mos Def)를 생각하며 만들었는데 형이 필요해”라며 피처링을 부탁한 곡인데, 프로젝트가 무산되면서 내가 갖고 있던 곡이다.

< Don’t Think Too Much >에는 국내 아티스트들은 물론 다양한 해외 아티스트들의 이름이 올라있다. 그간 타 아티스트 작품에 참여한 경력은 많지만, 진보가 자신의 작품에 타 아티스트들과 이처럼 많은 협력을 진행한 것은 처음이다.

진보는 앨범에 참여한 해외 아티스트들을 소개하며 “이 친구들은 나에게 단순한 피처링 가수들이 아니라, 정말로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다”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동시에 그는 이와 같은 행보가 자신이 설립한 슈퍼프릭레코드(Superfreak Records)의 국제적인 지향점과 일치함을 강조했다. “나와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전 세계적으로 유의미한 공조를 이루고 싶다”는 계획은 상세하고도 구체적이었다.

슈퍼프릭레코드 설립 후 꽤 긴 시간이 흘렀다. 처음 제작사를 설립했을 때와 현재를 비교한다면. 
슈퍼프릭레코드의 핵심 가치가 있다. 첫째는 진보적인 스탠스다. 계속해서 새로운 음악을 개척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사일리(Sailli), 다울(Daul), 비앙(Viann) 등이 2010년대 꽤 성과를 낸 영역이다. 두 번째는 국제주의다. 그간 도달하기 힘든 부분이었는데, 지난해 찰리 태프트(Charli Taft)가 함께한 다울의 < In Touch > 앨범과 이번 < Don’t Think Too Much >로 청사진을 제시했다. 세 번째는 낭만주의다. 음악을 할 때 차가운 무드, 실리주의적인 모습보단 따뜻한 성격의 음악을 추구한다. 뷰티풀 디스코(Beautiful Disco)가 음악으로 이런 온기를 전하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이번 앨범으로 ‘인터내셔널’의 초석을 닦은 셈이다. 작품에 참여한 해외 아티스트들을 소개해달라. 
‘Bed shaker’에 참여한 런던 출신 피닉스 트로이(Phoenix Troy)는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보다도 낮은 목소리를 가졌다. 2009년 경 마이스페이스(Myspace)를 통해 만난 친구인데, 그가 추천해주는 노래는 정확히 내 취향을 겨냥한다. 지난 10년 동안 ‘무드 뮤직 프릭스(Mood Music Freaks)’라는 유닛을 계획하며 협업을 의논해왔는데 이제야 함께하게 됐다. 

‘해주면 돼’의 파리 출신 누누 패리스(Nounou Paris)는 한국 알앤비와 가요에 관심이 많다. 돈을 모아 파리와 한국을 오가며 활동 중이고, 한국에서 프로듀서로 성공하고자 분주히 노력하는 아티스트다. 피닉스 트로이와 함께 나의 ‘소울 프렌드’다. 

‘갈매기’에 함께한 LA 출신 디지털 대브(Digital Dav)는 ‘3년 안에 무조건 뜬다(Im’ma blow up in 3 years)’는 자신만의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미국 예능 프로그램이나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서도 꼭 이 한마디를 빼놓지 않는다. 미국적인 정서, 한국적인 정서 모두 잘 맞는 친구다.

‘잊어버려’의 킨타로(Kintaro)는 더 인터넷(The Internet)의 전 멤버다. 형이 썬더캣(Thundercat)이고 아버지도 유명한 재즈 뮤지션인 천재 집안이다. 이 친구와는 ‘특이한 것을 좋아한다’는 점에서 통한다. 평범한 진행을 싫어하고 독특한 스타일을 추구한다. 킨타로의 ‘이상한’ 음악을 듣다 보면 집에 온 것처럼 마음이 편안하다. 화려하고 대담하지만 진지하다.

진보는 일찍이 고교 재학 중 자신의 아티스트 이름을 정했다. 이후 그는 끊임없이 고정관념과 편견에 맞서는 괴짜(Freak)로 혁신을 만들어왔다. “2005년 데뷔할 때 사람들은 ‘한국말로 알앤비를 할 수 없어’라 말했다. 2012년 < KRNB >를 발표했을 때 사람들은 ‘한국 가요는 세련되지 않아’라 여겼다. ‘언더그라운드와 메이저는 섞일 수 없어’라는 고정관념에 맞서 협업을 진행했다.”. 다사다난했던 커리어에 대한 진보의 회고다.

“앞으로 10년은 음악보다 더 큰 표현을 하는 사람, 자유로운 존재를 지향할 것이다. ‘지금까지 진보는 뮤지션인 줄 알았는데, 진보가 표현하고자 하는 영역은 훨씬 깊고 넓었구나!’라는 깨달음을 주고 싶다.”. 진보의 목소리는 여느 때보다 확신에 차 있었고 또한 여유로웠다. 새삼 영화 < 기생충 >의 명대사,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가 절로 흘러나왔다.

진보가 최근 즐겨 들었던 음악, 관심 있는 장르는?
친한 친구가 소개해준 정보에 의하면 최근 뉴욕의 트렌드는 하우스 음악, 그중에서도 백인이 아닌 흑인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하우스 음악이라 한다. 최근 UFC 선수 코너 맥그레거가 올린 영상을 보면 그가 직접 고용한 디제이들이 트는 음악이 모두 그런 블랙 하우스 음악이다. 관심 있게 듣고 있고, 탐구할 생각에 설렌다. 또 인상 깊게 들은 아티스트는 영국 싱어송라이트 라브린느(Labrinth)다. 음악에 대한 레벨을 한 단계 높였다. 요즘 아프리카 아티스트들의 음악도 즐겨 듣는다. 비욘세의 < The Lion King : The Gift > 앨범에 참여한 버나 보이(Burna Boy)를 중심으로 찾아 듣고 있다.

튼튼하고도 다양한 시도를 지속하며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커리어를 쌓아 올린 진보다. 끝으로 < Don’t Think Too Much >의 새 출발을 통해, 진보의 세계를 가요계에 어떻게 각인하고 싶나.
사람들이 ‘진보’라는 단어를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진보는 말 그대로 나아간다는 뜻이다. 그 누구도 뒤로 가고 싶은 사람은 없다. 퇴보하고 싶은 사람도 없다. 나도 마찬가지다. 계속해서 전진하고 발전하며 나아가고 싶다. ‘진보’라는 단어를 상징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고, 진보라는 단어를 재정의하고 싶다. “너 진보? 나 보수”하는 진보가 아니라(웃음).

둘째로는 표현주의자로 새겨지고 싶다. 아티스트, 뮤지션 등 다양한 직함이 있지만 그 이름에 나를 다 담을 수 없다고 본다. 내가 존경하는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도 커리어 초기엔 자신을 작곡가로 인식했다. 끊임없이 의문하고 시도하며 부수는 사람, 그것을 전시회, 앨범 등으로 다채롭게 표현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자 한다. 정력적인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인터뷰 : 임진모, 김도헌, 임동엽
정리 : 김도헌
사진 : 임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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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정아 인터뷰

선우정아의 음악적 역량은 넓다. 그는 감정의 폭을 노래로 정확히 그려내는 보컬리스트이자 대부분의 곡을 직접 작사 작곡하는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하다. 자기 것을 진두지휘 하는 것에서 나아가 대중 가수와의 협업도 많다. 투애니원, 아이유, 토이 등과 함께 작업했고 최근에는 음악 예능 프로그램 < 복면가왕 >, < 놀면 뭐하니 >, < 사운드 오브 뮤직 : 음악의 탄생 > 등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리고 있다.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그는 결코 대중에게서 멀어진 적이 없다. 음악에 담긴 솔직함 덕택이다. 연일 바쁘게 작업실과 공연장을 오가는 와중 얼마 전 그의 정규 3집 < Serenade >가 발매됐다. 대외적인 성공과 별개로 음반의 속내를 열어보니 짙고 어두운, 때로는 외롭기까지 한 그의 현재가 담겨 있었다. 유난히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1월 17일. 홍대의 이즘 사무실에서 그에게 그 감정들의 원인을 물었다. 답변은 ‘나’ 그리고 ‘여기’에서부터 시작됐다.

지난 2016년 이즘 인터뷰 이후 3년 반 만에 다시 만났다. 바뀐 게 있다면?
방송을 많이 하게 됐고 주류 미디어에 노출도 많이 됐다. (원치 않았는데 생긴 것도 있느냐 물으니) 감사하게도 많지 않은 거 같다. 단순하고 금방 사라진 불만들은 조금 있지만 오래 붙잡아두고 아파할 고민들이 (지금 당장은) 없다. 감사할 일이다.

요즘 활동 궤적만 놓고 보면 완전한 상승세다. 그런데 발매된 음반 < Serenade >는 주저하고 아파하는 선우정아의 모습이 더 많이 보인다.
욕심 때문인 것 같다. (웃음) 나도 내가 왜 이런 걸까 스스로에게 많이 질문한다. 일도 잘 되고 좋은 무대에도 자주 서는데 왜 이렇게 불만이 많고 불안한 걸까? 고민을 곱씹어 보며 내가 아직까지 현실적으로 이뤄낼 수 있는 것 이상의 것들을 계속 꿈꾸고 있기 때문이란 결론을 내렸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 여기서 오는 마찰도 종종 느낀다.

그런 점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던 정규 2집 < It’s Okay, Dear >의 밝은 분위기와 상당히 대조되기도 하는데.
시쳇말로 이번 작품에 더 꼬여있는 내가 담겨 있다. 원래 앨범 제목도 세레나데가 아니었다. 음반 작업을 시작하면서 내 안에 얽히고설켜있는 복잡한 감정들을 많이 느꼈고 그런 쪽의 우울한 모습을 숨김없이 표현하려고 했었다. 그러던 중 ‘Serenade’를 완성했다. 이곡을 다 만들고 가사, 멜로디 등을 보니 오히려 새롭게 환기시킬 지점들이 보이더라. 그래서 전반적으로 분위기를 조금 더 밝게 끌어왔다. 결론적으로는 어느 정도 밝고 어두움의 균형을 맞췄다고 생각한다.

본격적으로 앨범 작업에 돌입한 시기는 언제인가?
‘쌤쌤’을 쓰면서부터였으니 2019년 1월쯤이다. 그 노래를 만들고 ‘이제 정규 3집을 낼 수 있겠다’는 확신이 섰다. 사실 내게 미발매 곡들이 정말 많다. ‘배신’, ‘생애’ 등은 20대 초, 중반에 적은 노래다. 그렇게 일기장 쓰듯 쌓인 것들이 많았고 아까 말했듯 그 안에는 정말 개인적인 아프고 외로운 소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번 작품은 ‘나’, ‘선우정아’에서 출발해 결국 ‘대중’에게 들려주고 싶은 것으로 향했다. 발매 과정이 아니라 ‘과정을 발매’한 거다.

수록곡이 많은 이유는 뭔가?
이번 음반의 첫 번째 규율은 ‘수록곡을 많이 넣자’ 였다. 내가 내 곡에 대한 집착이 좀 있다. (웃음) 내 노래들을 내가 너무 사랑하는 거다. 그러다보니 활동하는데 있어서 선우정아의 것에 역으로 갇히는 경우도 있고 한계에 젖어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다. 아웃풋이 있어야 새로운 인풋도 생기지 않나. 나의 일부를 털어내고 싶었다. 또 다른 시작을 위한 해소가 필요했다.

수록곡 얘기를 해보자. 사람들에게 가장 들려주고 싶은 곡을 하나만 뽑는다면?
‘Serenade’다. 음반에서 유일하게 남을 위해 썼다. (웃음) 30대가 되고 주위를 둘러보니 어제까지만 해도 비슷한 위치에 있던 친구들과 서 있는 계단, 활동하는 공간이 많이 달라져 있음을 느꼈다. 어떻게 보면 내가 누군가에 비해 빨리 조명을 받은 것도 있고 또 그러다보니 함부로 위로의 말을 건네기 힘든 상황들이 종종 있었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도 내가 좋아하는, 좋아했던 사람도 “그냥 모두 다 잘 잤으면” 좋겠다는 염원을 담았다.

반대로 완전히 개인적인 곡도 궁금하다.
살면서 아주 가끔씩 빠져나올 수 없게 우울해질 때가 있다. 그날이 딱 그랬다. 나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긴 인터뷰를 하게 되었는데 잠도 못자고 마음도 푸석한 게 말이 제대로 나올 리가 없었다. 정말 횡설수설 하다가 끝이 났다. 근데 또 역설적으로 그 인터뷰의 반응이 정말 좋았다. 차라리 내 꾸며진 모습을 대중이 좋아해줬다면 심적으로 편했을 텐데 나의 꺼내고 싶지 않은 빈틈이 보여 졌을 때 누군가가 열광한다는 게 솔직히 편안하지만은 않았다. ‘Interview’에 그때 느낀 감정이 잘 정리되어 있다.

스스로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어려서부터 늘 자존감이 낮았다. 그래서 학창시절에 죽어라고 열심히 했다. 끊임없이 나를 증명하려 하려했고 ‘저 다 잘해요’ 하며 칭찬을 (장난스런 표정을 지으며) 갈구했다. (웃음) 특히 20대 때 그런 나쁜 열정이 정점을 찍었는데 그래서 힘든 것도 있었고 또 그래서 성장한 부분도 있었다.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보면 될까?
나쁘게 표현하면 회피형 인간이다. (웃음) (이유를 묻자) 내가 겁이 많다. ‘To zero’를 들어보면 안다. 살다보면 상처와 잡음들을 우리가 껴안을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 이고 져야할 때가 있다. 그건 싫은데 그렇다고 만남을 그르칠 수도 없고 그냥 우리 서로의 좋은 점만 기억하며 헤어지자.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건 어떨까 상상하다가 그 노래를 썼다.

콜라보도 회피한 건가? 대중 활동이 많아졌으니 자연스레 한 두곡쯤 피처링을 쓸 줄 알았다.
내가 음악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다. 특히 사람들과 관계 맺는 게 너무 힘들다. 차라리 내가 힘든 건 참을 수 있는데 누군가에게 실례가 되는 건 견딜 수 없다. 내가 미련한 거다. 하하하. 그래도 꼭 필요하다면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넣었을 꺼다. 다만 이번 음반은 시작점 자체가 내 내면의 깊은 한 구석에 찍혀있어 단독으로 가는 게 나았다. 이렇게 된 바에야 완전 내 이야기, 해보고 싶은 나만의 이야기를 실컷 해보자 하며 혼자 꾸렸다.

음악 안에 담긴 자신 만의 이야기. 바로 거기에서 대중들이 열광하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다. 내 큰 욕심 중 하나도 이와 비슷하다. 남녀노소를 따지지 않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 전하기. 감사하게도 공연을 하면 다양한 나이대의 분들이 현장을 찾아와 준다. 얼마 전에는 바이올린을 공부하는 10대 아이가 부모님과 함께 공연을 보러 오기도 했다.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도 있었고. 그럴 때면 도대체 내가 뭐라고 이런 사랑을 받나 싶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매번 더 진실 되게 노래를 쓰고 부르려 노력 중이다.

작곡가로서의 행보도 놓칠 수 없다. 최근 아이유를 필두로 이문세, 박정현 등 다른 뮤지션들에게 곡을 많이 주고 있는데 내 곡과 타인의 곡을 나누는 기준이 있다면.
솔직함의 정도 차에 따라 나뉘는 것 같다. 정규 1집 < Masstige >를 발매하고 본격적으로 내 생각들을 곡으로 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가장 염두에 둔 것은 언제나 솔직하게, 부끄러움까지 솔직하게 적자는 것이었다. 노래를 완성해보면 ‘아 이건 100% 선우정아의 스토리다’ 혹은 아니다 하는 게 느껴진다. 내 연대기에서 비켜나가는 건 내가 직접 불러도 맛이 살지 않는다. 그럴 때는 다른 적임자에 양보한다. 때로는 포기의 미덕도 필요하니까.

어떻게 보면 데뷔 작 < Masstige >에 가장 선우정아 색이 없다.
1집을 발매했을 때가 21살 22살 즈음이었다. 그때는 아무 것도 몰랐다. 앨범을 내자고 하니까 일단 시작했고 그러면서 휘뚜루마뚜루 휩쓸린 것도 많았다. 그 앨범을 내고 7년 정도 (웃으며) 수행을 했다. 크고 작은 공연도 많이 하고 다채로운 음악도 많이 시도했다. 어떻게 보면 그 긴 무명의 시간이 오늘 내 음악의 가장 큰 자양분이 됐다.

그렇게 이번 정규 3집까지 왔다. 음악적 지향점대로 잘 흘러가고 있는 것 같나?
앞으로 내가 어떤 음악을 하게 될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러니까 지금 잘 가고 있는 지를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는 거다. 한 가지, 감사한 상황인 건 확실하다. 이번 < Serenade >만 보더라도 작업적인 것에서의 아쉬움이 (당연히) 있다. 언제나 최상의 완벽함은 불가능하지 않나. 하지만 2019년의 선우정아 그 자체를 그대로 담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뿌듯하다. 재밌었고 즐거웠고 시원했다. 내가 이 음반으로 받은 위로가 음악을 듣는 여러분들에게도 잘 전해진다면 더 바랄게 없다.

2020년의 선우정아는?
대중 예술은 늘 어렵다. 돈을 받고 음악을 만든다. 혹은 음악을 만들고 돈을 번다는 구조 자체에서 어떤 딜레마를 느낀다. 그래도 내 작품을 통해 선우정아라는 사람이 이렇게 생각하고 흔들리며 살고 있구나 보여주며 위로를 주고 싶다. 내가 그렇게 받아왔으니 주는 방법도 내게 온 것처럼 나갈 수밖에 없다. 재밌는 프로젝트들을 많이 준비 중이다. 녹슬지 않고 자주 찾아 오겠다. (웃음)

인터뷰 : 임진모, 김도헌, 박수진, 장준환, 손기호
사진 : 김도헌
정리 : 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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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호 인터뷰

2010년대 말 시티팝의 유행은 하나의 큰 성과를 남겼다.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와 1990년대까지, 과거 한국 대중음악계의 대표적인 음악가들을 젊은 세대에게 ‘레전드’로 각인한 것이다. 이들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자발적으로 과거의 이름과 곡을 발굴하며 잊힌 전설들을 다시금 무대로 소환했다. 김현철, 윤상, 윤수일의 이름이 십 대와 이십 대 음악 팬들 사이에서 오르내린다.

빛과 소금은 그 흐름 속에서도 단연 인기다. 불세출의 스테디셀러 ‘샴푸의 요정’의 멜로디를 어렴풋이 기억하던 팬들은 고급스럽고 세련된, 소위 ‘한국 감성이 아닌’ 빛과 소금의 음악에 감탄하며 음악을 찾고 LP 판을 앞다투어 구매하고 있다. < 나는 가수다 >의 자문 위원으로 장기호를 알던 어린 마니아들은 이제 그가 1986년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의 초대 멤버, 1989년 1집을 발표한 빛과 소금의 중추, 솔로 커리어 장기호밴드와 KIO(키오)를 전개한 레전드 뮤지션이라는 사실을 안다.

작년 12월 27일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과 함께 오랜만에 박성식과 빛과 소금의 이름으로 함께한 < Reunion > 앨범 역시 화제였다. 고 전태관의 기일에 맞춰 과거 동지들에게 바치는 음악은 제목 그대로 오랜 음악 팬들에겐 ‘동창회’이자 ‘오래된 친구’, ‘보고 싶은 친구’들에게 건넨, 반가운 인사였다. 여느 때보다 더욱 현재의 이름으로 호흡하고 있는 그는 “솔로 활동기엔 장기호의 색채를 짙게 가져가려 했다. 하지만 앞으로 빛과 소금 활동을 통해선 같이 늙어가는, 추억을 먹고사는 세대를 위해 대중적 감각을 더할 계획이다”라 설명했다.

시티팝 유행으로 젊은 음악 팬들의 지지를 얻음과 동시에 봄여름가을겨울과의 콜라보레이션도 화제다.
나 혼자보단 나와 박성식, 그리고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이 함께했다는 사실이 더 주목받은 것 같다. 지난해 12월 27일 기자간담회를 열었을 때 사실 놀랐다. 100여 명 넘는 기자들 앞에서 인터뷰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과거 가요계에선 봄여름가을겨울, 빛과 소금의 사이가 그리 좋지 못하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봄여름가을겨울의 음악을 들어보고 빛과 소금의 음악을 들어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서로가 주장,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다르다. 그 원하는 바를 조화롭게 만들지 못했고. 추구하는 바가 달랐다. 음악적으로 보면 우리는 세련된 화성과 선율을 강조했다면, 당시의 봄여름가을겨울은 드럼과 기타의 리드미컬한 록 스타일에 가깝다.

물론 음악 말고도 다른 문제도 있었다. 박성식의 학업 문제도 있었고, 김현식이 건강 문제로 봄여름가을겨울을 함께하지 못하게 되자 음악을 그만두려 했던 내 상황도 있었다. 당시 김현식 없는 봄여름가을겨울은 엔진 없는 자동차라 생각했다. 이후 김종진이 봄여름가을겨울 첫 앨범에서 김현식을 대신해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김현식의 3집을 만들 때 추천 받은 인물이 김종진, 전태관, 유재하, 그리고 장기호다. 박성식은 초기 멤버가 아닌 것으로 안다.
원래 시작 멤버는 위 멤버가 맞다. 당시 박성식은 군 복무 중이었다. 당시 나와 김종진, 전태관은 김수철의 작은 거인에서 1개월 정도 활동 중이었다. 그때 김현식은 ‘돌개바람’이라는 클럽 밴드와 함께 새 앨범을 준비 중이었다. 나와 이야기하면서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젊은 친구들과 함께 공연을 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김종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작고한 전태관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30여 년을 함께 해왔다는 것, 그리고 그들의 활동이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나라 대중음악사에 기록될 만한 인물이다. 이제는 우리나라에도 정말 실력 있는 대중음악인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아이덴티티 확보에 실패했다면 대중은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 면에서 김종진과 봄여름가을겨울은 정체성 확보에 성공한 밴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33년 만에 함께하여 전태관의 기일에 맞춰 새 앨범을 발표했다. 협업해보니 어떤가.
음악을 만들 때 집중하는 부분이 달라졌다. 예전 같았으면 분명 테크닉 적인 부분에서 마찰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그게 다 소용없다고 결론 내렸다. ‘우리 모두의 추억을 위해 의기투합하자’ 하는 마음으로 작업에 임했다. 음악적 욕심보다 음악을 통한 공감대를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어덜트 컨템포러리 사운드 창출에 집중했다.

그룹 활동 이후 KIO(키오), 장기호 밴드 활동과는 사뭇 다른 태도다.
그때의 활동은 예술 대학 전임 교수로 14년을 재직하며 만든 기록이다. 예술 대학 학생이면 그 또래 중에선 그래도 가장 잘하는 친구들 아닌가. 학생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영감을 주어야겠다, 교수로서 “교육적 가치가 담긴 음악을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작업했다. < Chagall Out Of Town > 시리즈에는 당시 수업시간에 가르치던 내용이 집약 되어있다. 학생들 취향에 맞을지는 모르지만 대중 지향적 취향에선 멀어졌다.

빛과 소금으로 함께 했지만 일각에서는 장기호와 박성식의 콜라보레이션 역시 낯설다는 반응이 있다.
박성식도 나도 교편을 잡고 있었기에 함께 활동하기가 쉽지 않았다. 우선 물리적으로 그 친구는 천안에, 나는 서울에 있었다. 둘째로 시간의 문제다. 교수는 방학이라고 스케줄을 자유로이 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셋째 이유는 경제적인 문제이다. 제한된 상황에서 음악을 만들고 공연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당시 내가 만들던 음악들은 대중 취향 저격용이 아니고 홍보가 제대로 된 것도 아니다 보니 투자비용을 뽑기가 쉽지 않았다. 마음은 늘 새로운 빛과 소금의 음악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면서도 이렇다 할 결과물을 만들지 못한 변명이다.

박성식은 불세출의 명곡 ‘비처럼 음악처럼’을 만든 히트 작곡가다. 그렇다면 장기호의 걸작은 ‘샴푸의 요정’인가.
잘 모르겠다. (웃음)’비처럼 음악처럼’만큼 메가톤 히트를 기록한 건 아니지 않나. 다만 ‘비처럼 음악처럼’이 한번 크게 터졌다면, ‘샴푸의 요정’은 세월에 걸쳐 여러 번 히트했다고 본다.

현재 ‘샴푸의 요정’은 젊은 음악 팬들이 시티팝을 이해하는 결정적인 곡으로 자리를 굳혔다. 1989년 당시에도 록의 주류 문법과 거리를 두고 있던 세련된 음악이었다. ‘가객’ 김현식과 ‘가왕’ 조용필과도 달랐다. 빛과 소금의 음악에선 한국인의 ‘뽕’, 대중적 멜로디는 물론 세련된 서구의 스타일을 동시에 찾을 수 있었다. 한마디로 ‘별종’이었다.

장기호는 당시 문화부, 연예부 기자들의 질문을 회상하며 “‘빛과 소금의 음악으로 어떻게 대중을 설득할 거냐’는 이야기를 늘 들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많은 후배 가수들이 ‘샴푸의 요정’을 리메이크했고, 젊은 친구들에 의해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라며 곡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샴푸의 요정’을 곧 타임리스(Timeless)한 음악이라 말하고 싶다.
그렇게 표현해주니 감사하다. ‘타임리스’ 음악을 위해 갖춰야 할 두 가지가 있다고 늘 생각한다. 바로 음악적 정체성과 예술적 완성도다. 팝 음악들 중에는 세대를 거슬러 계속 불려지는 ‘올디스 벗 구디스(Oldies But Goodies)’라는 음악들이 있다. 그런 곡들은 공통적으로 음악가들의 선명한 정체성과 튼튼한 음악적 완성도를 갖추고 있다고 본다.

재즈와 펑크(Funk)의 느낌이 더 들어갔다면 빛과 소금은 한국의 스틸리 댄(Steely Dan)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스틸리 댄은 내가 정말 존경하는 팀이다. 철저하게 계산된, 그리고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연주와 편곡, 그야말로 도널드 페이건의 완벽주의를 소리로 듣는 듯하다. 스틸리 댄은 분명 재즈 정신이 깃들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즉흥적인 사운드보다 계산된 사운드가 주를 이룬다. 나도 같은 맥락의 음악을 추구한다. 물론 그 정도 음악을 만들려면 개인 음악공부만으로는 안 될 것 같다. 사회, 문화적 배경과 지식, 경험이 모두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곧 국력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런 스틸리 댄의 스타일과 감성을 한국에서 처음 구현한 곡이 바로 ‘샴푸의 요정’이다.
대가 중의 대가 스틸리 댄과 빛과 소금의 비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 곡의 주 멜로디는 동요와 다를 바가 없다(웃음). 쉬운 멜로디지만 그 음악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음악적 배경인 어레인지먼트, 프로듀싱에 공을 들인 작품이다. 음악 유학을 떠난 것도 그 영역을 더 광범위하게 공부하고 싶어 서였다.

1989년 빛과 소금의 첫 앨범을 다시 들었다. 장기호가 쓴 노래, ‘샴푸의 요정’과 ‘내 곁에서 떠나지 말아요’, ‘그대 떠난 뒤’ 등을 들으며 문득 ‘왜 장기호는 유재하처럼 되지 못했나’하는 아쉬움이 컸다.
생전 유재하와 밤새 음악 얘기를 하다 보면 추구하는 음악 방향도, 서로 갖고 있던 CD도 너무 비슷해서 놀라웠던 기억이 난다. 아마 내가 대중의 눈높이와 감성 저격에 눈을 늦게 뜬 것 같다. 그러나 해외 관계자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한 번은 < Chagall Out Of Town > 앨범을 홍보하던 PD가 일본의 한 프로듀서에게 음반을 들려준 적이 있었는데, 관계자가 놀라워하며 ‘한국에 이런 아티스트가 있었나. 마이클 프랭스(Michael Franks)와 콜라보를 계획하겠다’며 이력서를 받아간 적도 있다.

향후 음악 활동에 대한 계획은.
올해 빛과 소금 30주년이다. 빛과 소금의 새로운 음악이 담긴 미니앨범을 구상 중이다. 그리고 최근 발표한 “봄여름가을겨울과 빛과 소금” 의 미니앨범으로 당분간은 김종진과의 3인조 체제로도 갈 것 같다.(대중의 요구가 관건이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김종진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줬다. 사실 나는 그동안 실용음악 교육에 전념하느라 오랜 기간 연주를 하지 않았고’ 다시 무대에 서겠다’는 계획은 거의 접은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김종진의 미니앨범 제의가 나에게 다시 음악활동을 생각하게 하는 점화가 되었다.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을 다 합하면 6명이다. 김현식, 유재하, 나, 박성식, 김종진, 전태관, 그중 세 명이 하늘나라로 떠났다. 하늘나라에 있는 현식 형, 재하, 태관이에게 음악을 통해 우리들의 메시지를 전달해야겠다 는 생각을 했다. 그게 서로에게 상당한 공감대를 불러왔다. 그 과정에서 종진이가 제작총괄 역할로 굉장히 애를 썼다. 연습이 완료되면 다양한 활동을 재개할 예정이다. 공연과 방송은 물론 우리의 음악이 필요로 한 곳이라면 어디든 가려 마음먹고 있다.

시티팝에 빠진 음악 팬들은 1980년대 경제 호황기의 낭만과 희망을 그리워한다. 장기호는 그때를 “그래도 뭔가 될 것 같아 보이던 때”라 회상했다. 2020년대를 맞이하는 지금은 위기다. 음악인들의 삶은 ‘비정규직’이라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 불안하다. 인터뷰에 참여한 임진모 음악평론가는 “빛과 소금과 같은 한국 대중음악계의 레전드 아티스트가 돌아왔다는 사실이 기쁘다. 젊은 친구들에겐 존경할만한 선배가 필요하다!”라며 그들의 컴백을 환영했다.

‘존경할만한 선배가 필요하다’는 말을 어떻게 생각하나.
물론 맞는 말이다. 나 에게도 존경하는 음악선배들이 있었기에 여기 까지 온 것 같다. 다만 세대가 바뀌면서 음악적 존경의 패러다임이 바뀐 건 아닐까, 이런 우려도 든다. 우리 때 중요하게 여겼던 음악의 요소들이 현재는 크게 관심 받지 못하는 것 같다. 완성도의 차원만 놓고 봤을 때 과거 빛과 소금의 음악이 펜티엄 컴퓨터라면, 지금은 오히려 단순한 386세대로 회귀한 기분이 든다.

‘386과 펜티엄’의 비유가 재미있다.
요즘 음악은 복잡한 내용이 별로 없는, 기계로 치면 기능이 단순한 기계로 음악을 찍어내는 것 같다. 면적은 넓어졌지만 깊이는 깊지 않은 느낌이다. 예전에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는 그 어떤 방식으로도 공부를 해야만 풀 수 있는 퍼즐이 있었다. 토토(Toto) 같은 밴드의 음악을 귀동냥으로, 컴퓨터로 재현할 수 있겠나. 그들의 퀄리티를 어느 정도라도 따라가기 위해선 그들만큼 공부하고 경험하고 각고의 음악적 노력이 필요하다. 음악을 하나의 언어라 생각하고, 그것을 익히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했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비유한 것이다.

그럼에도 빛과 소금의 이름을 2020년대 다시 꺼낸 것은 바로 그 젊은 세대 아닌가. ‘좋은 음악’의 기준은 세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지난 2019년 서울 레코드 페어에 빛과 소금의 앨범을 모두 LP로 복각하여 한정 판매를 한 적이 있다. 30년이 지난 오래된 음반을 구입한 대부분은 20대 젊은이였다는 사실이 나를 놀라게 했다. 현재의 젊은 청소년들에게도 30년 전 빛과 소금이 가치 있게 느껴졌다는 사실에 그동안 음악 했던 보람을 느낀다. 물론 시대에 따라 가치관이 달라지고 문화가 바뀌는 상황에서 좋은 음악에 대한 기준도 어느 정도 바뀐다고 본다. 그러나 음악 본질적인 차원에서 논한다면 명곡은 언제 어느 시대에도 명곡으로 남는다. 그건 진리다. 지금 레트로 라는 단어가 다가오고 있다. 다시 빛과 소금의 시대가 오면 좋겠다.

‘샴푸의 요정’은 물론 최근 ‘디깅클럽서울’ 등 1980년대 가요 리메이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어떻게 보나.
몇 곡은 들어봤다. 원곡을 능가한다는 느낌은 별로 못 받았다. 원곡이 갖고 있는 이미지가 여전히 강했다. 지난해 후배 가수들이 ‘샴푸의 요정’을 많이 리메이크하지 않았나. 모두 본인들의 음악적 감각과 개성으로 해석을 잘 해냈지만, 곡의 핵심에는 다다르지 못했다는 개인적 견해다. 그 중에도 유일하게 나의 의도를 꿰뚫어 본 곡이 하나 있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시도했던 데이브레이크의 ‘그대에게 띄우는 편지’ 리메이크다.

언급한 대로 젊은 음악가들은 기술적으로는 향상되었으나 감동을 주지 못한다는, 핵심에 다가가지 못한다는 점을 고민하고 있다.
< 나는 가수다 > 자문위원장 시절 많이 언급했던 부분이다.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가수들과 함께하면서 느낀 점인데, 가창력이 좋다고 늘 감동을 주는 건 아니다. 반대로 가창력이 뛰어나지 않아도 감동을 주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하늘이 내린 선물과도 같다고 본다. 소위 ‘카리스마’라고 하는 것인데 그것은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다. 가르칠 수도 없는 부분이다. 그래서 진짜 최고의 가수, 또는 아티스트는 어떤 면에서 타고나는 것 같다. 음악 프로듀서들은 그런 면을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장기호에게 빛과 소금의 의미는.
빛과 소금은… 나의 내면이 담긴 음악 세계를 나의 음악 언어로 풀어내는 매개체이며 그열매다. 처음 팀을 결성할 땐 ‘대중음악 의 빛과 소금이 되자’는 취지가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유행을 따라가지 않고 미래지향적인 음악을 만들자는 목표를 삼았다. 비록 대중적이라는 평가는 받지 못했지만, 그러나 빛과 소금이 음악 행보를 계속 이어가는 이상 우리나라 대중음악계에 진정한 빛과 소금의 역할과 임무를 다 해 내리라 믿는다.

‘나의 음악’, 다시 말해 ‘Me’ 음악을 이어나간 것이 결국 빛과 소금의 성공 요인 아닐까.
나는 어린 시절부터 어떤 특별한 소리에 민감했던 것 같다. 나의 귀를 건드리고 갔던 거의 모든 음악의 공통점이 있었다. 멜로디와 하모니의 오묘한 조화라고 할 수 있는데 음악적으로 표현하면 후기 낭만적 기법에 민감했던 것 같다. 낭만기의 음악들은 대부분 회화적이고 몽환적이기까지 하다. 그리고 어떤 소설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묘한 마력이 내재되어있는 음악이다. 그런 음악적 효과를 대중음악에 함축하려는 나의 시도는 분명하다. 그래서 유학기간 동안 오히려 후기 낭만기와 현대 음악에 더 깊이 관심을 가졌다.

1993년 빛과 소금의 3집에 수록된 ‘슬픈 영화를 보고 나면’에서 박성식이 쇼팽의 프렐류드를 연주한 것도 낭만주의적 대표적인 작품이다. 유학 시절 공부하며 그 낭만주의 음악이론의 계보가 이미 다 정리되어있는 것을 확인하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런 이유로 빛과 소금의 음악에선 크로매티시즘(반음계기법) 을 많이 확인할 수 있다. 반음계적인 기법은 듣는 이로 하여금 환상의 세계로 인도하는 주요한 기법인 듯하다. 아직도 나는 이 부분에 관련된 음악이나 이론 공부를 하고 있다. 미래의 빛과 소금의 음악을 위해서.

마지막으로 음악 선생님으로서, 젊은 세대에게 추천할 음악을 소개해달라.
나는 클래식, 팝 재즈, 현대음악 등 다양한 음악을 즐기는 편이지만 대중적 관점에서 볼 때에 추천할 만한 음악들은 브라질의 이반 린스(Ivan Lins)와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Antonio Carlos Jobim)이다. 보사노바 재즈의 강렬한 로맨티시즘을 동경했다. 이를 미국적 정서로 담아낸 아티스트가 마이클 프랭스(Michael Franks)다. 한국에선 ‘Antonio’s song’으로 유명하지만, < Abandoned garden > 같은 앨범은 꼭 들어봐야 한다.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이 세상을 떠난 뒤의 음악세계”를 ‘버려진 정원’으로 비유하다니… 너무 멋지지 않은가. 브레드, 아메리카, 토토, 스티비 원더도 나의 쏭라이팅 관점에서의 연구대상이다.

프로듀싱, 작, 편곡 적 차원에서 비교적 완성도와 창의력이 높다고 생각되는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퀸시 존스의 ‘Ai no corrida’
마이클 잭슨의 ‘Rock with you’
알 자로의 ‘Breakin away’
어스 윈드 앤 파이어의 ‘After the love has gone’
세르지오 멘데스의 ‘Never gonna let you go’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Old and wise’ etc..

인터뷰 : 임진모, 김도헌, 임선희
정리 : 김도헌
사진 : 임동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