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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이비 인터뷰

돌아온 걸그룹 전성기, 자신만의 정체성으로 건강한 경쟁구도를 만들어가는 아티스트들 사이에서 트라이비는 발랄함과 패기를 앞세운다. 2021년 2월 < Tri.be Da Loca >로 데뷔하여 이제 막 600일을 넘긴 신인 그룹은 < Leviosa >활동으로 성장의 발판을 마련해 다양한 국적의 팬들을 흡수하고 있다. 희미한 햇빛이 때를 맞아 무지개가 되듯 일곱 명의 밝은 에너지는 서서히 빛을 발하며 더 너른 세상으로 자신들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준비 중이다.

이즘에서 진행한 특집 ‘2010년 이후, 당신이 기억해야 할 K팝 댄스 트랙’의 마지막은 트라이비였다. 그 성장세를 기록한 프로그레시브 하우스 ‘In the air’에는 기존의 강렬함 뒤에 감춰 놓았던 청량함과 순수함이 담겨있다. 평균 나이 18.6세 소녀들의 현재 진행형인 도전과 이루고 싶은 꿈에 대해서 묻기 위해 직접 청담동에 위치한 티알엔터테인먼트 사무실을 찾았다. 아쉽게도 멤버 진하는 건강상의 이유로 참석하지 못했지만 약 두 시간 가량의 긴 대화 중에도 이들의 얼굴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국적도 다르고 자라온 환경도 다른 멤버들의 데뷔 과정이 궁금하다.
송선 : 직접 오디션을 보기도 했지만 감사하게도 여러 회사에서 직접 캐스팅을 해주셨다. 다양한 곳에서 연습생 생활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는 분들이 늘어났고 신사동 호랭이 피디님과도 연이 닿았다. 최종적으로 지금 회사와 잘 맞아 이곳에서 데뷔하게 됐다.

현빈 : 처음에는 아이돌이 아니라 댄서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팀의 단장님이 뜬금없이 오디션을 권해주셨다. 처음에는 부담스러워서 사양했지만 끈질긴 설득에 용기를 얻어서 여러 기획사의 오디션을 봤고 기회를 얻어서 트라이비에 합류했다.

지아: 대만에서 오디션을 보고 한국으로 넘어왔다. 처음에는 취미로만 노래를 했었는데 아는 분이 오디션을 보라고 말씀해 주셨다. 도전에 망설임은 없었지만 학업을 중시하는 부모님을 설득하는 것이 힘들었다. 반대가 심하셨는데 여러 번 말씀 드리니까 기회를 주셨다. 덜컥 붙어버렸을 때 가족 모두가 놀랬다.

켈리 : K팝 아이돌 가수들의 춤을 따라 하다가 가수의 꿈을 키우게 됐다. 대만에서 댄스 학원을 통해 오디션을 봤고 한국으로 와서 2년간 연습생 생활을 했다.

소은 : 학원을 통해서 다양한 기획사의 오디션을 봤다. 여러 곳에서 1차만 합격했는데 아쉽게 최종에서 여러 번 떨어졌다. 그러던 중 감사하게도 지금 회사에서 피디님을 만나 기회를 얻었다.

미레 : 일본에서 학교생활을 하다가 케이팝에 관심이 생겨서 한국의 댄스학원으로 유학 왔다. 한 두 달 수업을 듣다가 당시 학원에서 지금 회사의 오디션 기회를 마련해 줬고 합격해서 이곳 연습생으로 들어왔다. 연습 기간은 제일 짧았던 것 같다. 딱 1년 걸렸다.

가수의 꿈을 심어준 아티스트나 노래가 있다면.
미레 : 초등학교 6학년 때 블랙핑크 선배님을 좋아해서 매일 뮤직비디오나 무대 영상을 찾아봤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국에서 가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알게 된 블랙핑크 선배님의 노래는 ‘붐바야’고 가장 좋아했던 노래는 ‘마지막처럼’이다.

켈리 :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소녀시대 선배님의 ‘I got a boy’ 춤을 췄다. 당시에는 너무 못해서 완전히 익히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힘들었지만 연습하는 과정이 너무 즐거워서 춤 자체를 좋아하게 됐다. 가수의 꿈을 키우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다.

소은 : 초등학교 6학년 때 졸업 공연으로 레드벨벳 선배님의 ‘피카부(Peek-A-Boo)’를 췄다. 잘하진 못했지만, 당시 친구들이 열렬히 응원해줬다. 그 희열이 컸던 것 같다. 무대 자체로도 즐거웠지만 당시의 호응이 가수라는 꿈을 심어줬다.

지아 : 서너 살 때 샤이니 선배님의 ‘누난 너무 예뻐’ 무대를 보고 행복을 느꼈다. 언젠가 나도 저런 무대 위에 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빈 : 부모님께서 음악을 좋아하셔서 금요일마다 뮤직뱅크를 봤다. 덕분에 어려서부터 방송을 통해 많은 선배님의 무대를 접했다. 처음 꿈을 심어준 분들은 원더걸스 선배님들이다. 부모님께서는 적극적인 지지를 해주셨다. 감사하게도 늘 하고 싶은 일을 하게끔 도와주신다. 부모님 덕에 꿈을 키울 수 있었다.

송선 : 어렸을 때부터 소녀시대 선배님의 콘서트나 음악 방송을 많이 보러 다녔다. 당시에는 자리에 계신 많은 팬분이 신기했었다. ‘어떻게 사람이 노래하는 것만 보고 이렇게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지?’ 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니까 나도 화려한 무대 위에서 사랑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부모님 몰래 가수의 꿈을 키웠다. 혼자 연습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예고 입시에 대해서 알아본 것도 그 때문이다. 지원을 위해 처음 부모님께 진로를 말씀드렸을 땐 당황하셨다. 평소에 가족에게 무뚝뚝한 편인데 당시에는 간절하게 말씀을 드렸던 것 같다.

송선 씨는 긴 시간 동안 데뷔를 하지 못했다. 사촌 언니인 소녀시대 유리 씨에게 도움을 부탁을 하고 싶었던 적은 없었는지.
송선 : 그런 부탁을 하기 전에 캐스팅이 된 적도 있었지만 누구를 통해서 들어왔다거나 사적인 연줄을 이용했다는 둥의 이야기를 듣기 싫었다. 입시를 통해 다니게 된 학교에서도 비슷한 소문이 돌았던 적이 있어서 그런 것들에 신물이 났다. 오히려 당시에는 비교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압박이 더 컸던 것 같다.

본격적으로 음악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트라이비의 음악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송선 :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둠둠타’라는 곡은 완벽함을 추구하는 트라이비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 준다. 안무가 숨 쉴 틈 없이 박자 하나하나에 동작이 담겨 있다.

지금까지 발표한 음반 제목이 < Da Loca >, < Conmigo >, < Veni Vidi Vici >, < Leviosa >처럼 모두 라틴어이다.
송선 : 라틴 계열의 이국적 사운드는 트라이비를 차별화한다고 생각한다. 열정적인 음악 스타일을 표현하기 위해 라틴어를 사용했다. 판소리를 외국에서 리메이크 한다면 추임새를 먼저 떠올릴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취지이다.

트라이비의 기존 음악들에 비해 최근 발매한 < Leviosa >의 수록곡 ‘In the air’는 상대적으로 멜로디가 명확하고 대중적이다. 트라이비 변화의 신호탄인지.
송선 : ‘In the air’는 프로그레시브 하우스의 일환으로 최근에 다시 활발하게 제작되고 있는 스타일의 음악이다. 변화의 신호탄이라기보다 트라이비의 음악들과 달리 명확한 멜로디와 떼창을 유도하는 곡의 콘셉트를 강조하기 위한 선택이다.

이전까지는 후렴에 힘을 준 구성보다 비트가 잠깐 멈추는 드롭 부분에서의 퍼포먼스를 강조했다. 뭄바톤과 아프리카 비트 위주의 곡을 주로 선보인 것도 그 때문이다. 트라이비의 다른 곡들이 조금 덜 선명한 선율로 생소하게 비춰질 수 있지만 그룹의 색깔을 더 보여드리고자 한 선택이니 다른 노래들도 많이 좋아해 주셨으면 좋겠다. 물론 ‘In the air’ 같은 곡들 또한 앞으로 더 만들어 갈 예정이다.

‘Got your back’에는 송선 씨가 작곡에 참여했다. 작곡가 입장에서 어떤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송선 : 귀에 잘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래를 들을 때 도입부를 중요하게 여기는 편이어서 인트로부터 1절 까지를 가장 힘줘서 제작했다. ‘Got your back’도 마찬가지다. 더불어 이전에는 보여드리지 않았던 부드러운 면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알앤비스러우면서 팬 분들에게 위로를 드릴 수 있도록 비교적 서정적인 멜로디로 구성했다.

신사동 호랭이 대표는 다수의 히트곡을 제작한 유명 작곡가인데 다른 멤버들도 작사나 작곡에 관심이 있는지 궁금하다.
소은 : 관심을 해소할 수 있도록 피디님께서 자주 기회를 주신다. 어느 날 송선 언니와 점심으로 요거트를 먹고 있었는데 언니가 비트를 틀더니 노래를 불러 보라고 했다. 장난스럽게 곡을 만들어서 피디님께 보내드렸더니 얼마 후에 직접 편곡해서 곡을 주셨다. 팬분들에게 보여드리기 위해 SNS에 업로드도 했다.

현빈 : 언제든 기회가 된다면 꼭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 ‘In the air’의 떼창 파트를 녹음을 할 때도 피디님께서 따로 디렉팅 없이 원하는 대로 하라고 하셨다. 크고 작은 기회를 많이 주신다. 수록곡 ‘-18’도 소은이랑 내게 써보고 싶은 가사가 있으면 적어 보라고 먼저 권하셨다. 우리가 성인이 되면 하고 싶은 일들을 담아서 나온 노래가 ‘-18’ 이다.

‘-18’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다.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현빈, 미레, 소은의 유닛 곡인데 모두 성인이 됐을 때 하고 싶은 음악이 있다면.
현빈 : 지금의 자신감 넘치는 메시지도 좋지만 성인이 되면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우리가 아직 어리다보니 대표님은 그런 곡은 잘 주려고 하지 않는다. 표현하기 어려울 수 있겠지만 트라이비만의 색다른 느낌을 담아 보고 싶다.

소은 : 20대에만 가능한 트라이비의 느낌을 표현하고 싶다.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무엇이든 도전하고 싶다. ’10대의 트라이비가 이런 느낌이었다면 20대의 트라이비는 이런 느낌을 낼 수 있습니다’라는 인상을 주고 싶다.

미레 : 발라드도 좋지만 평소에 잘 듣는 장르가 아니어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섹시하면서 그루브 있는 음악에 도전해보고 싶다. 비비 선배님의 음악처럼.

트라이비의 무대는 역동적인 퍼포먼스가 눈에 띈다. ‘In the air’는 미레 양이랑 현빈 양이 안무를 제작했는데 먼저 나서서 해보겠다고 제안한 것인지 궁금하다.
현빈 : 연습생 때부터 미레와 안무 짜면서 노는 걸 좋아했다. 회사에서도 그걸 알았는지 1주년 기념으로 팬 분들을 위해 수록곡의 안무를 만들어보라고 제안했다. 처음에는 반대했다. 트라이비의 안무는 파워풀하고 화려하기 때문에 그 정도를 해 낼 자신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회사는 신경 쓰지 말고 할 수 있는 대로 만들어 보라고 해서 진행하게 됐다.

데뷔 후 짧은 시간 만에 프로젝트 송을 두 곡이나 참여했다. 코카콜라와 협업해 퀸 노래를 리메이크 한 ‘A kind of magic’과 애니메이션 < We Baby Bears >의 오프닝곡 ‘The bha bha song’의 제작 경위가 궁금하다.
현빈 : ‘A kind of magic’의 제작 뒷얘기를 나중에 들었는데 그쪽해서 트라이비의 메시지가 코카콜라 캠페인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내용과 같다고 들었다. 평소 우리가 무대에서 발산하는 에너지를 좋게 본 것 같다.

퀸의 노래를 리메이크하는 것이 부담되지는 않았는지.
현빈 : 퀸의 원곡을 다 같이 모여서 들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못 따라잡을 것 같아서 오히려 쉽게 접근하자고 생각했다. 트라이비만의 ‘A kind of magic’을 보여주고 싶었다.

‘The bha bha song’의 제작 과정과 소감이 궁금하다.
미레 : 너무 좋은 기회로 < We Baby Bears >와 함께 하게 돼서 일본어와 중국어, 영어, 한국어 이렇게 4개 국어로 녹음했다.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애니메이션의 주제곡을 부르는 것이 즐거웠지만 다른 나라의 언어로 녹음하는 것은 조금 힘들었다. 서로 발음을 조언하면서 도왔다.

4개 국어로 녹음했다고 했는데 제일 어려운 발음은 어느 나라였는지.
현빈 : 랩을 했는데 각 언어별로 음절수가 맞지 않아서 힘들었다. 발음 같은 경우에는 각 나라의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멤버들조차 어려운 단어도 있었다. 심지어 중국어는 성조 때문에 조금만 틀려도 다시 녹음을 했다. 피디님께서 “우리 노래인데 왜 굳이 다른 언어로 노래해야 돼?”라고 하셔서 랩 파트는 모두 한국어로 녹음했다.

다양한 나라에서 사랑 받고 있다. 한편으로 국내에서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것이 아쉬운데 그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송선 : 데뷔 당시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국적으로 유행했기 때문에 국내 팬들을 직접 만날 기회가 없었다. 이번 < Leviosa > 활동을 통해 처음으로 대면 활동을 시작했는데 직접 팬들과 마주하는 시간이 늘면서 더 많은 분들이 조금씩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 같다. 앞으로 그런 기회가 더 많아지면 국내에서도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연습생 기간까지 포함하면 짧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지금까지 가장 행복했던 순간 그리고 가장 좌절했던 순간은 언제인가.
미레 : 가장 힘들었던 시간은 비활동 기간이다. ‘우주로’ 활동이 끝나고 10개월 정도였는데 그 사이 연습실에서 연습만 했다. 팬들을 만날 수 없다보니 슬럼프까지 왔다. 잘하고 싶은데 잘 안 되니까 스스로에게 화도 났고.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이번 < Leviosa > 쇼케이스다. 처음 트루(팬덤 이름)분들을 직접 만나니까 새로 데뷔한 느낌이었다. 드디어 내가 원했던 아이돌이 된 것 같았다.

지금까지 트라이비로 활동하면서 이룬 크고 작은 목표들이 있을 것 같다.
소은 : 별거 아닐 수 있지만 백스테이지 뒤에서 인이어를 체크하고 마이크를 차는 것이 꼭 이루고 싶었던 것 중 하나다. 데뷔 전에는 무대 뒤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경험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꿈 꿔왔던 방송국 대기실도 쓰고 가수들이 사용하는 인이어와 마이크를 사용한다. 행복한 일이다.

여러분들 노래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트라이비 노래와 그 이유가 궁금하다.
미레 : ‘-18’이다. 현빈, 소은과 함께한 유닛곡이지만 트라이비 전체의 색깔을 잘 표현한 노래라고 생각한다. 춤추기에도 좋아서 정말 좋아한다.

현빈 : ‘Got your back’을 뽑고 싶다. 작곡에 참여한 송선 언니에게 음원이 나오기 전부터 곡이 너무 좋다고 여러 번 말했다. 서정적인 진행이 취향에 맞고 가사가 마음에 와 닿아서 지친 날에는 항상 ‘Got your back’을 듣는다.

켈리 : ‘Lobo’라는 노래를 가장 좋아한다. 각 파트별로 멤버들의 음색이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처음 들었을 때부터 우리 노래라고 느꼈다.

소은 : ‘In the air’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다. 처음 아이돌을 꿈꿨을 때부터 이 곡처럼 밝은 분위기의 노래로 데뷔하고 싶었다. 트라이비의 이전 음악들은 대부분 힘 있는 노래들이어서 조금만 무대에서 흐트러져도 카리스마가 무뎌지곤 했다. 그래서인지 좋은 곡들인데도 노는 듯 노래하고 싶은 마음을 충족해주지는 못했다. 반면 ‘In the air’는 즐기듯이 무대 할 수 있어서 좋다. 이 곡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행복해진다.

송선 : ‘In the air’다. 무대에서 이 곡을 하고 나면 왜인지 모르게 벅차오른다. 청명하고 밝은 곡이지만 춤을 추면서 노래를 들었을 때 가슴 한 켠이 뭉클하다.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느껴지는 음악이다.

지아 : 팬송 ‘True’라는 곡을 좋아한다. 데뷔 때부터 팬송을 만들고 싶다고 여러 번 얘기했는데 바람을 이루게 돼서 좋다. 내가 선호하는 장르이기도 하고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가사도 담겨 있다.

그 외에 살면서 힘이 되었거나 좋게 들었던 인생곡이 있을 것 같다.
송선 : 보아 선배님의 ‘아틀란티스 소녀’가 생각이 난다. 첫 입시 곡이기도 하고 이 노래를 통해서 아이돌이라는 꿈을 키웠다.

지아 : 샤이니 종현 선배님의 ‘하루의 끝’이라는 노래다. 연습생 생활을 하면서 힘들 때마다 많은 위로를 받았다.

소은 : 팬들한테 자주 추천했던 아리아나 그란데의 ‘Santa tell me’다. 평소에도 크리스마스의 특유의 분위기를 좋아하는데 이 노래에는 그런 느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들을 때마다 벅차고 희망찬 느낌을 받는다.

켈리 : 블랙핑크 선배님의 ‘휘파람’을 정말 좋아한다. 언제 들어도 강렬하다.

현빈 : 영화 < 국가대표 > OST의 ‘Butterfly’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졸업한 중학교에서 매년 졸업생을 위해 후배들이 이 노래를 불러줬다. 부를 때는 감정이 없는데 3학년이 돼서 듣는 입장이 되니까 가사가 와 닿으면서 눈물이 났다. 우연이겠지만 그때 노래를 듣고 난 이후로 일이 잘 풀렸다.

미레 : 일본 가수 아이(Ai)의 ‘Story’라는 노래가 있다. 영화 < Big Hero 6 >의 일본 버전 엔딩곡인데 오래된 노래지만 정말 좋아해서 오디션 볼 때도 그 노래를 불렀다. 지금도 재생할 때마다 열심히 노력했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다양한 감정과 개인적인 경험이 담겨 있어서 가끔 울컥할 때도 있다.

마지막 질문이다. 가수로서 음악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레 : 좋아해서 한 것 같다. 늘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겠다고 생각했다. 트라이비로 데뷔하고 목표를 이룰 수 있어서 행복하다. 가수라는 직업을 오랫동안 하고 싶다.

현빈 : 인생을 즐기고 싶어서다. 원치 않은 일을 평생 해야 한다면 한 번뿐인 인생이 아까울 것 같다. 꼭 이루고 싶었던 꿈이 현실이 됐으니 내 삶의 즐거움을 위해서라도 앞으로 더 열심히 할 생각이다. 꼭 트라이비의 팬이 아니어도 행복을 드릴 수 있는 좋은 음악을 하고 싶다.

켈리 : 다른 멤버도 모두 비슷할 것 같다. 노래 부를 때나 음악을 들을 때 항상 행복했기 때문에 이 일을 시작했다. 이렇게 가수라는 직업을 가질 수 있게 돼서 감사하다.

소은 :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힘을 합쳐 무언가를 성취했을 때 말로 표현하기 힘든 행복을 느낀다. 누군가는 혼자 모든 일을 해내기도 하지만 트라이비의 음악은 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닿았을 때 더 멋있는 노래가 완성된다. 팬들을 포함한 다양한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가수라는 직업의 매력 때문에 음악을 하고 있다.

지아 : 내가 샤이니 선배님의 모습 보고 행복 했듯이 트라이비의 무대와 음악을 통해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싶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드리고 싶어서 음악을 한다.

송선 : 평소에 노래를 통해 위로받는다.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분들께 우리 노래로 병들고 지친 마음을 위로해드리고 싶다.

인터뷰: 소승근, 임동엽, 정다열, 백종권
촬영: 임동엽, 백종권
정리: 백종권, 소승근, 정다열
영상 편집: 정다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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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ZM이즘x문화도시 부평] #27 나의 노랑말들

웹진 이즘(IZM)이 문화도시 부평과 함께 하는 < 음악 중심 문화도시 부평 MEETS 시리즈 >는 인천과 부평 지역 출신이거나 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티스트들을 순차적으로 인터뷰하는 시리즈 기획이다. 지금까지 이곳 출신의 여러 뮤지션들이 자리해 자신의 음악 이야기와 인천 부평에 대한 추억을 들려주었다. 이번 스물일곱 번째 주인공은 엉뚱발랄한 상상력의 3인조 밴드 나의 노랑말들이다.

“난 누나의 노랫말들이 좋더라.”
“잉? 나의 노랑말들?”


베이스를 연주하는 러버맨과 보컬, 작사, 작곡을 겸하는 백노루양의 우연한 해프닝에서 출발한 그룹, 나의 노랑말들. 이들의 정체성은 백노루양의 가사, ‘누나의 노랫말들’에 있다. 밖으로 쉽게 표출할 수 없는 감정들의 일기장 < 행복회로 > 시리즈로 스스로 찌질한 노래라 규정할 만큼 키치한 매력을 발산한 이들은 차근히 작업을 이어가며 부산 인디 신에서 조금씩 이름을 알려가고 있었다.

듀오의 야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보다 화려한 무대, 더욱 큰 인기를 갈구하는 이들은 올해 초 드러머 뚜드를 영입하며 3인조로 팀을 재편했고, 거처까지 인천 부평으로 옮겨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펼치고 있다. 고향 땅을 벗어나 중부의 또 다른 해양 도시로 올라온 세 청년. 홍대 인근 카페에서 열정과 현실이 공존하는 상경기를 나누며 훗날의 도약을 다짐했다.

▶ 왼쪽부터 뚜드(드럼), 백노루양(보컬, 작사, 작곡), 러버맨(베이스, 코러스 보컬)

나의 노랑말들은 어떻게 결성하게 된 팀인지.

러버맨 : 고등학생 때 부산에서 음향 스태프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그 당시 노루(백노루양) 님이 행사팀으로 왔었다. 그 이후 몇 번 마주치면서 친해졌고 무대에 같이 서기도 했다. 그러다 코로나로 오프라인 공연이 줄다 보니 그 대안으로 같이 곡을 써서 음악창작소 음반 제작 지원 사업에 신청해 보자고 제안했다. 덜컥 선정이 되면서 급히 팀을 꾸렸고 그렇게 시작한 게 지금까지 왔다.

그룹의 근간이 되는 ‘누나의 노랫말들’, 작사를 비롯한 곡 작업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러버맨 : 노루 님이 써둔 가사로 전체적인 밑그림을 그려 놓으면 내가 기타랑 베이스를, 뚜드 님이 드럼을 얹으면서 악기를 배치하고 정렬한다. 그 위에 가이드 보컬이나 추가로 생각한 멜로디를 펼치면 대략적인 틀이 갖춰진 데모가 완성된다.

백노루양 : 평소에 생각나는 단어나 구절이 있으면 휴대폰에 적어놓고 적절히 조합하거나 완전히 비틀어서 만드는 편이다. 일상은 물론이고 만화에서도 영감을 많이 얻는다. 돈까지 내가면서 웹툰을 구독할 정도고 밴드 홍보를 위해서 직접 연재하기도 했다. 최근엔 바빠서 거의 못 올리고 있지만 말이다. (웃음)

그렇게 채워가고 있는 < 행복회로 > 시리즈,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음악인지.

백노루양 : 솔직히 말하면, 느낌 가는 대로 만든 곡들을 모아 발매한 시리즈라 원대한 무언가를 계획한 것은 아니다. 우리 색을 어떻게 잡아가야 할 지 고민하던 중에 초기의 ‘퉤퉤’나 ‘띠부띠부씰’과 비슷한 계열의 곡은 < 행복회로 터지는 중 >에, 조금은 어둡고 진지한 분위기를 곡들은 < 행복회로 불타는 중 >에 수록하여 두 개의 노선으로 나눠서 공개했다.

러버맨 : 팀 결성부터 첫 EP < 행복회로 돌리는 중 >까지의 과정이 매우 즉흥적이었다. 때문에 발매 당시엔 음악적인 무언가 다져져 있지 않은 상태였다. 이후 공개한 < 행복회로 터지는 중 >과 < 행복회로 불타는 중 >도 뼈대에 살을 덧대는 과도기 격의 작품에 가깝다. 처음부터 시리즈물을 기획한 건 아니다.

그래서일까,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함이 느껴진다.

백노루양 : 누구나 매일매일 기분이 달라지듯이 성장하면서 생각하는 것도 달라지지 않나. 나는 어떤 게 좋다가도 조금만 지나면 금세 다른 게 좋아지는 사람인 것 같다. 어느 한 가지로 인생을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계속 변하니까.

뚜드 : 소속 멤버가 아닐 때도 부산에서 알고 지내던 팀이어서 몇 번 공연을 봤었는데, ‘퉤퉤’의 가사는 정말 충격이었다. 속뜻이 궁금해서 물어봤는데 단순히 외설적인 내용을 표방하는 게 아니더라. 심오한 의미 속에 기본적으로 우울한 기조가 있다. 밝은 노래를 쓰더라도 긍정보단 부정에 가까운 수식어들이 많이 등장한다. 탁한 배경에 여러 블록들을 쌓아올리는 느낌이다.

올해 초부터 정식으로 드러머 뚜드를 영입했다.

러버맨 : 둘이서 라이브 무대를 온전히 채우기 부족하다고 느꼈다. 여기에 드럼만 있어도 뭔가 더 많은 에너지를 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합류를 부탁하게 됐다.

백노루양 : 둘 밖에 없었을 땐 어딜 가더라도 뭔가 기가 죽고 위축되는 느낌이 들었다. 이젠 쪽수가 하나 더 생겨서 든든하다. 그리고 다른 밴드들처럼 여럿이서 우르르 몰려다녀보고 싶기도 했다.

3인조 재편 후 느낀 변화는.

러버맨 : 다가올 정규 앨범 작업을 하면서 느낀 건데 종전 음반들에 비해 록의 색채가 강해졌다. 기존 곡들처럼 유쾌한 기조도 유지하되 사운드는 록적인 면으로 발전하지 않을까 싶다.

뚜드 : 러버맨이나 나나 록 사운드를 좋아하다 보니 음악 뒷부분으로 갈수록 고조되는 빌드업 구조를 더 탄탄히 이끌어 가려고 하게 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심벌 소리도 많이 들어가는 것 같다.

좋아하는 아티스트나 앨범을 꼽는다면.

백노루양 : 다프트 펑크와 고릴라즈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앨범 단위로 듣지는 않는다. 앞서 얘기했듯이 좋아하는 게 맨날 달라져서 노래를 들을 때 마음에 드는 것만 골라서 듣는 편이다. 오늘은 미국 애니메이션 < 스티븐 유니버스 > OST 모음집을 들으면서 왔다.

뚜드 : 기본적으로 메탈 같은 강렬한 록이 취향에 가깝다. 밴드적으로는 미국 하드 록 그룹 얼터 브릿지의 ‘Poison in your veins’를 가장 좋아한다. 국내로 넘어오면 발라드도 굉장히 즐겨 듣는 편이다.

러버맨 : 러버맨이란 활동명은 내가 좋아하는 비틀스 < Rubber Soul >과 노엘 갤러거스 하이 플라잉 버즈 ‘River man’의 앞뒤를 합친 이름이다. 이외에도 폴 매카트니 앤 윙스의 < Band On The Run >, 그리고 메가데스의 < Rust In Peace >, 오아시스의 < Definitely Maybe > 정도를 말할 수 있겠다.

별도의 공연 없이 오직 나 자신의 만족을 위해 홈레코딩으로 제작한 솔로 앨범이 있는데 여기에도 그때그때 좋아했던 음악 취향을 녹여냈다. 첫 앨범인 < Nine Is Lucky Number >는 브릿팝이나 드림팝, 두 번째 작품 < Rubberland >는 스래시 메탈이나 하드코어 펑크의 느낌을 강하게 살렸다.

여담이지만 두 분 닉네임의 탄생 비화를 또 안 들어볼 수 없겠다.

백노루양 : 나의 경우에는 인터넷에서 유행했던 ‘플라잉 노루’에서 따왔다. 말 그대로 날아다니면서 로켓을 쏘는 노루인데 그냥 멋있어 보였다. 그리고 노루들이 밤에 은근히 기행을 즐기는 모습 역시 어딘가 나와 닮아있는 것 같았고. (웃음)

뚜드 : 그냥 드럼을 두드리니까 ‘뚜드러’ 어떠냐는 이야기가 나왔고 거기에서 ‘러’까지 뺀 ‘뚜드’가 입에 잘 달라붙어서 예명으로 정했다.

음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러버맨 : 초등학교 5학년 즈음에 한 친구가 브릿팝을 소개해 줬다. 라디오헤드나 오아시스 같은 유명 팀들을 시작으로 이것저것 찾아 들어보기 시작했고, 점점 깊이 들어가다 보니까 기타를 너무 치고 싶었다. 그래서 중학생 때 부모님을 졸라서 어쿠스틱 기타를 사게 됐고 이후에 다른 악기들과 화성학 교본을 독학으로 익히면서 지금처럼 음악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뚜드 : 드럼 스틱을 처음 잡아본 건 대학생 때다. 동아리 가두 모집이 열렸을 때 친구가 옆에 있어 달라고만 해서 밴드 동아리 부스에 앉았는데 활발한 선배들의 입담에 넘어가 얼떨결에 신청하게 됐다. 신청서에 좋아하는 악기를 쓰는 칸이 있었고 막연히 드럼을 적어 냈다. 중학교 때부터 일본 밴드 래드윔프스의 드럼 소리를 좋아했는데 은연중에 떠올랐다. 그렇게 시작한 드럼에 재미를 붙이게 되었고 군 전역 후 아예 드럼 쪽으로 진로를 틀게 되었다.

백노루양 : 중학생 때 잠깐 플루트를 배운 것 말고는 음악과 연이 없었다. 그러다 취미로 알아봤던 밴드 활동을 하면서 재미를 붙였고 러버맨에게 미디를 배워서 음악을 직접 만들 수도 있게 되었다. 배움에 있어 꽤 소극적인 자세로 살아왔던 내겐 상상도 못 했었던 일이었는데 옆에서 러버맨이 알려주는 걸 조금씩 따라 하다 보니까 어떻게든 하게 되더라. 너무나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확실히 음악에 있어선 모두 독립적으로 성장한 느낌이다. 인디 뮤지션으로서 힘든 부분이 있다면.

러버맨 : 아무래도 경제적인 부분이 가장 크다. 올해는 대중음악 인력 분야 지원사업 덕분에 노루 님이랑 ‘랏도의 밴드뮤직’에서 6개월 계약직으로 일하게 되었다. 운 좋게 정기적인 수입도 생기고 정규 앨범 제작도 할 수 있게 됐는데, 이런 수혜를 못 받고 완전 독립적으로 음악을 하려고 했다면 상당히 힘들었을 것 같다. 인디 신에서 계신 분들이라면 모두 공감하실 거다.

백노루양 : 게다가 음악을 하면 정기적인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 일한다고 공연 하나를 놓칠 때마다 우리를 알리고 인지도를 끌어올릴 수 있는 상황을 놓치는 거나 다름이 없다. 지금이야 같은 음악 분야 회사라 이해해 주지만 지원 사업이 끝난 후에는 또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물론 당장 돈 많이 못 번다고 후회는 없다. 음악 하는 죄로 돈을 못 번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납득시킨다.

이런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 소통 창구를 다각적으로 활용 중이다. 특히 매주 일요일마다 인디음악 플랫폼 ‘랏밴뮤’에서 진행하는 라디오 < 무지개 같은 선데이 나이트 >가 꽤 인기를 끌고 있다.

러버맨 : 이 역시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참여하게 된 경우다. 당시 랏밴뮤에서 지역 아티스트들을 모셔서 라디오 겸 라이브를 꾸미는 프로젝트 < 이상고온현상 >을 진행했었다. 그때 일일 DJ로 참여하며 연이 닿았다가 감사하게도 10월 즈음에 정규 DJ 제안을 주셔서 거의 1년 가까이 매주 일요일 밤 2시간을 책임지고 있다.

라디오 만의 매력은 무엇인가.

러버맨 : 라디오도 라디오지만 플랫폼의 매력이 더 큰 것 같다. 랏밴뮤 청취자 중에 서브컬처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다. 대중 사이에서 하위문화를 얘기하면 반응이 없을 수 있지만 그런 흐름에 익숙한 사람들끼리 모여 있어서 그런지 단합력이 매우 좋다.

뚜드 : 청취자 입장에서 볼 때 채팅 쳐주시는 분들이 밈을 굉장히 좋아한다. 매주 밈이 하나씩 생성되고 그게 쌓이니까 방송이 더 재밌어지는 것 같다. 직접 출연할 때도 이런 부분을 알고 참여해서 더욱 시너지가 난다.

백노루양 : 시답지 않은 헛소리도 유쾌하게 받아주는 친구들이랑 노는 기분이다. 잘게 쪼개진 나의 디지털 친구들. (웃음) 이제 벽이 사라져서 청취자분들이랑 채팅으로 서로 놀리고 그런다.

부산에서 활동하다 인천 부평으로 올라오기로 결심한 계기는 무엇인가.

러버맨 : 작년 6월에 마포문화재단에서 진행한 인디음악 프로젝트 < 2021 인디열전 >에 출연했는데 그 이후에 부산보다 서울에서 자잘 자잘 한 접점들이 많이 생겨났다. 오고 갈 때마다 시간과 경비가 많이 소모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거점을 옮겨서 활동을 해보자는 얘기가 나왔다.

인천 외에도 주변 도시가 많은데 그중에서도 부평을 택한 이유는.

러버맨 : 우선 주요 공연 거점이나 랏밴뮤 사무실까지 이동하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가 관건이었다. 그리고 당연한 얘기지만 경제적인 부담을 최소화하는 것도 중요했다. 서울은 너무 비싸다 보니까 그 주위로 찾아보게 되었고 음악 관련 지원이 많다고 느껴진 문화도시 부평으로 터를 옮기게 됐다. 실제로 곧 열릴 예정인 공연 < 페스티벌 륙 >도 인천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진행되는 공연이다.

확실히 공연 횟수가 늘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백노루양 : 공연 때 노란색 옷이나 말 가면을 맞춰 입고 오시는 분들도 있다. 직접 슬로건을 제작해서 펼쳐주는 등 팬분들이 이벤트 준비도 많이 해주셨는데 그때마다 음악 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뚜드 : 아무래도 팀 합류 이후에 처음으로 참여했던 공연이 제일 인상 깊다. 새로 들어왔다는 소식을 알리는 일환으로 무대에 나올 때 포승줄에 묶여 백노루양에게 이끌려 나왔었다. (웃음)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

러버맨 : 예정되어 있는 공연들을 소화하면서 다가올 정규 앨범 < 행복회로 고치는 중 > 작업에 힘을 쏟게 될 것 같다. 종전의 음악들과 상이한 부분도 있고 그만큼 가능성이 확장된 느낌을 많이 받아서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최종적으로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인가.

러버맨 : 원래는 스타덤에 올라서 인기몰이를 하고 싶기도 했는데 라디오를 하면서 그런 욕심이 오히려 사라졌다. 지금 같은 생활을 오래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백노루양 : 나는 여전히 스타가 되고 싶다. 음악으로 들어오는 돈이 개인당 한 달에 이백만 원만 됐으면 좋겠다. (웃음) 그리고 무엇보다 아프지 말고 재미있고 행복하게 살다 가고 싶다.

뚜드 : 음악적인 활동으로 일정 수준의 생활을 영위하는 것만큼 행복한 게 있을까. 본인이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삶까지 유지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축복인데 나도 그 축복을 받아보길 꿈꾼다.

진행: 정다열, 장준환, 정수민
정리: 정다열
사진: 정수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