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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힙합에서 살아남기’ 혹은 ‘힙합으로 살아남기’

여느 때와 같이 음악을 듣다간 깜짝 놀랄 가능성이 크다. 카디 비와 함께한 싱글 ‘WAP’으로 한 번, 비욘세가 리믹스로 참여해 힘을 실어준 ‘Savage Remix’로 또 한 번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을 수놓은 메간 더 스탈리온(Megan Thee Stallion)의 곡 ‘Body’의 이야기다. 무슨 말인지 궁금한 사람이 있다면 재빨리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재생해보자. 단박에 이유를 알게 될 거다.

여성의 신음이 3분이 채 안 되는 짧은 곡을 가득 채운다. 그야말로 정말 가득 채운다. 잠깐 잠깐의 효과음이 아니라 아예 신음이 사운드 소스가 되고 비트가 됐다. 적나라한 음성에 곡을 멀리하려 해도 이것 참 난감하리만큼 메인 멜로디가 선명하다. ‘하악 하악’하는 교성 위에 ‘Body’를 연음으로 연속해 뱉어 ‘바디야리야리야리’하는 후크 라인을 벗어날 방법이 없다. < 청산별곡 >의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버금가는 중독성이다.

이게 바로 숨어 듣는 명곡인가 하는 생각을 할 때쯤 짜릿한 해방감이 몰려온다.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말하기 위해 그 지난했던 정숙한 여성 되기의 정반대 이미지를 끌어오다니. 시원하고 강렬한 전유이자 날카로운 전복이다. 대중문화 속에서 오랜 시간 관습적으로 규정해온 여성의 이분화, 즉 ‘성녀’와 ‘성녀가 아닌 자’의 프레임을 벗어나 당당히 그 위에 섰다. 그것도 힙합을 통해서.

여성은 언제나 잣대 위에 올랐다. 혹은 일종의 소재나 수단으로 자리했다. 남근의 음악이라 일컬어지는 록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아이코닉한 로고로 여전한 생명력을 과시 중인 영국 밴드 롤링 스톤스의 대표곡 ‘(I can’t get no) satisfaction’에서 그들이 느낄 수 없고 만족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로커의 마초성을 증명하기 위해 여성이 소환됐고 때문에 여성 뮤지션들은 남성처럼 노래하거나 오히려 여성성을 감추는 무성(asexual)의 전략을 취했다. 남성을 흉내 내는 전자는 윌슨 자매가 만든 밴드 하트(Heart), 재니스 조플린이 있으며 후자는 트레이시 채프먼, 수잔 베가 등의 포크 뮤지션이 떠오른다.

그중 힙합은 유달리 경직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물론 TLC, 니키 미나즈, 카디 비 등을 경유해 주체적 여성을 손에 쥐고 달린 음악가들의 궤가 있지만 그에 반하는 여성 대상화의 벽은 견고하다. 여전히 많은 래퍼가 ‘퍽(Fuck)’과 ‘비치(Bitch)’를 마침표처럼 사용한다. ‘이것이 힙합의 정신이다’, ‘표현의 자유다’를 넘어서 ‘진짜 나쁜 여자들을 나쁘다고 말하는데 뭐가 문제냐’ 라는 격론이 앞 다퉈 튀어나온다. 힙합은 원래 그렇다는 본질주의적 접근. 설사 그 본질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성 차별적이라면 변해야 한다.

힙합을 즐기려면 검열과 염려의 과정이 필수적이다. 혹시 내가 ‘비치’는 아닌지, 그들이 말하는 ‘퍽’이 혹시나 나를 향하는 것은 아닐지. 노래 하나 듣는데 뭐 이렇게까지 정치적 올바름을 꺼내오는가 싶기도 하겠지만 언제고 대상화의 대상이 될 수 있기에 힘주어 철창을 걸어 잠그는 쪽의 마음도 편치만은 않다. 힙합의 ‘힙(hip)’함을 따라가기에 장애물이 너무 많다.

‘Body’는 그 장애물을 부수고 뒤집는다. 몸은 가장 먼저 사회에 귀속된다. 요새 회자하는 ‘말하는 몸’이라는 문장은 몸 안에 적힌 역사와 몸에 가해지는 이중, 삼중의 잣대를 잘 대변해주는 표현이다. 스탈리온은 몸을 가져와 말한다.

“Body crazy, curvy, wavy, big titties, lil’ waist
미친 몸매, 매끈, 늘씬, 큰 가슴, 호리호리한 허리”

세상이 원하는 틀에 맞춰 몸을 다져도 이를 부각해서는 안 되는 묘한 엄숙 문화를 뒤틀어 당당하게 자기 어필의 포인트로 삼았다. 힙합에서의 여성이 발화하지 않는 혹은 못 하는 존재였다면 노래 속 그는 다르다. 여성 스테레오타입을 전면에 내세우며 자신감을 뽐낸다. 일면 무례하고 그래서 불경한 여성이 될 수 있겠지만 꼿꼿한 기지에서 힘 있는 균열이 뻗어 나온다. 남성성을 모방하거나 여성성을 거부하지 않으며 관습적인 여성성의 덫을 피해 나가는 그의 서사에 호쾌한 자기다움이 묻어난다.

유로 댄스로 유럽과 미국을 이어낸 디스코의 여왕 도나 섬머의 ‘Love to love you baby’에도 신음이 담겨있다. 이는 불세출의 하드록 밴드 건즈 앤 로지스의 ‘Welcome to the jungle’에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때의 소리는 보컬 액슬 로즈의 작품이긴 하지만 이 연기의 의도만은 다른 곡과 같다. 심지어 그들의 곡 ‘Rocket queen’은 성관계 중인 여성의 신음을 그대로 녹음해 사운드로 삼았다.

이렇듯 신음이 노래에 포함된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그러나 신음이 여성의 권력을 드러내기 위한 도구로 사용된 경우는 많지 않다. ‘Body’의 함의는 이처럼 다채롭다. 그는 은밀한 것으로 치부되던 여성의 신음을 앞세워 자신을 그린다. ‘힙합에서 살아남기’ 위해 몇 번의 빗장을 걸어왔다면 그의 곡은 여성이 ‘힙합으로 살아남기’에 적합한 새 활로를 개척했다.

‘Body’에는 힘센 여성성의 발화가 있다. 그의 존재 앞에 성적 자유인가 혹은 남성의 대상화가 아닌가 하는 물음이 따라붙을 것이며 나아가 예술이냐 외설이냐 하는 철옹성의 논박이 뒤이어 올 것 역시 확실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Body’를 풀어낼 맥락은 많다. 오랜 시간 괄호 치워지고 억압된 여성의 욕망을 멋들어지고 화려하게 해체했다. 여성이 이렇게도 말할 수도 있고 밝힐 수 있다. 아찔하고 짜릿한, 힙합으로 살아남기. 메간 더 스탈리온의 ‘Body’가 신선하고 가치 있는 이정표를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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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있는 목소리 ‘We, Do It Together’

몇 달 전부터 SNS에 심심찮게 공유되는 포스트가 있었다. 여성들이 주축이 되어 만드는 연대의 목소리가 그 키워드였다. 여성 록 컴필레이션 음반 < We, Do It Together >.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텀블벅을 통해 앨범 제작을 위한 자금을 모았고 이는 이들이 쏘아 올린 에너지만큼이나 금방 뭉쳐졌다. 진즉에 애초 목표 금액인 4백만 원을 달성했다. 지난 11월 16일, 이들의 프로젝트는 최종적으로 216%인 8백 6십여 만원의 성금을 모았다. 그만큼 많은 지지가 쏟아졌다.

여성 록 컴필레이션 음반이라고 소개하긴 했지만 12팀의 인디 뮤지션들이 만든 12곡은 록에 한정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음악가부터 활동 기간에 비해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아티스트들까지 고루 모였다.

인디 씬의 태동부터 선 굵은 이미지를 남긴 ‘황보령’, 국악인 이자람이 주축이 되어 만든 ‘아마도 이자람밴드’를 비롯하여 지난해 첫 정규 음반을 발매한 ‘천미지’, 문소문이란 그룹으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는 ‘카코포니’, 다국적 밴드 ‘티어파크’ 등 다양한 색채의 뮤지션들이 한뜻 아래 손을 잡았다.

GIRLS INDIE] '홍대여신' 거부하는 12팀 록밴드 프로젝트가 온다 > 뉴스 | 라온미디어 - 인디음악 뉴스

시작은 에고펑션에러의 보컬 김민정이 가진 의문 덕이었다. ‘일본에는 여성 록 컴필레이션 음반이 많은데 왜 국내에는 없을까?’ 작은 의문은 이내 행동으로 옮길 수밖에 없는 필연적 사건들을 만난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을 시작으로 이후 우후죽순 터진 인디 씬 내의 여러 성 관련 문제들을 마주했다. 그는 “홍대에 탈덕 유발자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주기로 마음먹는다. 여성 인권 신장에 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 내고 주체적으로 활동하는 여성 음악가를 더욱 널리 크게 알리자는 목표 또한 겸했다.

빌리 카터의 보컬 김지원을 동반자로, 일렉트릭 뮤직의 대표 김민규를 조력자로 얻었다. 이름하여 ‘WEWEWE 기획단’이 탄생했다. 2018년에는 여성 퀴어 음악가를 위한 기획 시리즈 공연을 두 차례 펼쳤고 2019년에는 여성 음악가, 창작자, 관객이 연대하는 ‘wewewe networking party’를 주관했다. 그렇게 2020년의 끝, 오랜 예열 끝에 < We, Do It Together >가 발매됐다. 앨범 발매 이후 11월 29일에는 ‘WeWeWe festa2020’을 열었다. 코로나 19로 인해 콘서트 현장에는 40여 명의 한정된 인원만 참석했지만 유튜브 생중계로 그 열기를 전했다. 작지만 강한 움직임이 실행됐고 실현된 순간이었다.

멜로디가 부각되는 이모 팝 밴드 아디오스 오디오의 ‘숨’은 ‘너와 나의 숨을 뱉어 / 두려워 하지마’ 노래한다. 어쿠스틱 기타를 중심으로 오묘하게 차올라 어딘지 시린 감정을 삼키게 하는 다브다의 곡 ‘무궁화’, ‘잘 했습니다 / 수고 많았습니다 / 괜찮았습니다’ 직접적인 위로를 건네는 ‘Good night’의 아마도 이자람 밴드 등 음반에는 즐길 노래들 또한 많다. 모두가 이 앨범을 위해 직접 노래를 썼다. 불협화음을 부딪치며 기이한 쾌감을 선사하는 티어파크를 발견할 수 있는가 하면 ‘술에 취했다는 변명 / 먹통의 부끄러움이 왜 우리의 몫인가’ 일갈하는 에고펑션에러의 외침은 전에 없이 시원한 사이다 같은 한방이다.

이유 있는 목소리가 모여 이유 있는 변화를 썼다. 이들 앞에 ‘여성’이라는 프레임을 붙이는 것이 어쩐지 또 다른 무게를 지어주는 것만 같아 고려되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멋지게 새-흐름을 시작했다. < We, Do It Together >. 작지만 강한 조류가 균열을 낸다. 주체성을 필두로 메시지를 전하는 많은 ‘여성’ 음악가들이 있다. 이 음반은 묻게 한다. 왜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는가. 그리고 이들은 듣게 한다. 이들이 설파하는 분노의 메시지와 품에 안은 연대의 마음을. 따뜻하고도 강렬한 등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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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레디의 견고한 메시지, ‘I am strong, I am woman’

오스트레일리아를 대표하는 가수 헬렌 레디는 1972년 여성의 자부심을 고취하는 곡 ‘I am woman’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과 그래미 최우수 여성 팝 보컬 퍼포먼스를 거머쥐었다. 50 여년 전 여권 신장을 노래한 그의 메시지는 오늘날 음악에서 핵심이 된 ‘허스토리(Herstory)’를 상징한다. 대중음악계 여성의 발자취를 짚어나가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과정이다.

영화 ‘섹스 앤 더 시티 2’에서 네 명의 주인공은 각자 여성으로서의 고민을 안고 함께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로 여행을 떠난다. 사만다는 갱년기에 접어들었고, 미란다는 가정을 위해 직업을 포기했으며, 캐리는 남편에게 주기적으로 각자의 시간을 갖자는 요구를 받았다. 샬롯은 고된 육아에 시달려 지칠대로 지쳐있다. 그런 그들은 여행지에서 헬렌 레디(Helen Reddy)의 ‘I am woman’을 열창한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환히 웃으며!

대중음악계 여성의 발자취를 짚어 나가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과정이듯, ‘허스토리(Herstory)’를 이야기하려면 헬렌 레디를 빼놓을 수 없다. 이즘 ‘I am woman’ 코너명의 탄생 배경이 된 헬렌 레디의 일대기를 그려본다.

“한때 나는 바닥까지 내려갔었어요.
누구도 다시는 나를 바닥에 머물게 할 수는 없어요.”

어릴 적 헬렌 레디의 꿈은 가정주부였다. 영화배우였던 어머니, 배우 겸 감독이자 작곡가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적부터 무대에 설 기회가 많았고 실력도 출중했으나 가수의 길은 자의가 아닌 부모의 뜻이었다. 사춘기에 접어든 후 그는 노래 부르기를 거부했다. 비슷한 시기 건강상의 이유로 음악을 그만둘 수밖에 없기도 했다.

헬렌은 스무 살이 되던 해 가정주부의 꿈을 이룬다. 10대 때부터 연애해 온 케네스 위트(Kenneth Weate)와 결혼한 뒤 딸 트레이시(Traci)를 낳았다. 그러나 3년 만에 결혼 생활에 마침표를 찍게 되고 어린 나이에 싱글맘이 된다. 1966년, 어린 딸과 함께 단돈 200달러를 들고 떠난 미국에서 그의 첫 거주지는 허름한 여관방이었다.

그는 살기 위해 음악을 다시 택했다. 어린 딸의 밥을 책임져야 하는 엄마이자,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노래해야 하는 무명가수였다. ‘I am woman’의 노랫말 속 “I am strong, I am woman(나는 강해요. 나는 여자입니다)”라고 외쳤지만, 그의 삶은 결코 강인함만으로 이기기에 쉽지 않은 일들의 연속이었다.

“I Am Woman” singer Helen Reddy performs in 1970.

역설적이게도 그가 본격적으로 음악으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계기 역시 제프 왈드(Jeff Wald)와의 결혼이었다. 남편의 전폭적인 지지로 폰타나 레코드(Fontana Records)에서 첫 싱글 ‘One way ticket’을 발매하게 된 것이다. 미국으로 건너온 지 2년만인 1968년이었다. 그러나 이후 제프와도 이혼하게 되니 참 아이러니하다.

“그래봤자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결심을
더 단단하게 하도록 도와줄 뿐이죠.”

데뷔 싱글로 성공하진 못했으나 이름을 알리는 데는 성공한 헬렌은 1971년 ‘I am woman’을 발표하며 페미니즘 제2의 물결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는다. 페미니즘 제1의 물결이 선거권 및 법적으로 여성의 권리를 인정받기 위한 운동이었다면,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초까지 지속된 미국의 페미니즘 제2의 물결은 편중된 가사 노동으로 직업을 가지지 못하고 가정 내에 국한되는 여성들의 삶을 변화시키고자 했다.

헬렌 레디 역시 주부들의 고충을 너무도 잘 알았다. ‘I am woman’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이야기와 함께 이를 강하게 이겨내고자 하는 의지를 노래한다.

“제때 딱 맞춰 왔어요. 여성운동에 관여하게 됐고, 약한 사람들, 고분고분한 사람들 그리고 약하고 우아한 모든 것들에 관한 노래도 라디오에 많이 나왔죠. 우리 가족 여자들은 전부 강했어요. 그들은 노동을 했고 대공황과 세계대전을 직접 겪었죠. 난 결코 내가 고분고분한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았어요.” – 2013년 시카고 트리뷴 인터뷰 중

이후 헬렌 레디는 주체적인 뮤지션으로서의 삶을 주창한다. 척 베리(Chuck Berry),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케이씨 앤드 더 선샤인 밴드(KC and the Sunshine Band), 비지스(Bee Gees) 등 당대 최고의 아티스트들이 출연한 심야 음악 버라이어티 쇼 < The Midnight Special >에서 1972년부터 1975년까지 고정 호스트를 맡았다. 그뿐만 아니라 1973년 < The Helen Reddy Show >와 1979년 < The Helen Reddy Special>를 통해 자신의 이름을 내건 버라이어티 쇼를 진행한다. 여성들이 직업을 갖지 못하고 가사 노동에 집중되어있던 시기였기에 더욱더 유의미했다.

“나는 현명해요. 그 지혜는 아픔에서 온 거죠.
나는 강해요. 나는 여자입니다.”

헬렌 레디가 인정받을 수 있었던 건 단순히 페미니즘 메시지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투사임과 동시에 재능있는 뮤지션이었다. ‘I am woman’과 동일 앨범에 수록된 ‘I don’t know how to love him’이 뮤지컬 < Jesus Christ Superstar > OST 앨범에 수록되며 이름을 알리는 데 일조했고, 풍성한 코러스와 온화하고도 파워풀한 가창력이 돋보이는 ‘Delta dawn’, 마이너한 편곡과 의미심장한 가사가 돋보이는 ‘Angie baby’는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기록했다.

음악뿐만 아니라 영화에도 출연했다. < 에어포트 75 >, <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 >에 출연했고, 그중에서도 < 피터의 용 >에서는 주연을 맡으며 OST인 ‘Condle on the water’로 아카데미 주제가상 후보에 오르는 업적을 남겼다.

싱글맘으로의 삶, 세 번의 결혼을 겪은 헬렌 레디는 세상에 “See me standing toe to toe(정면으로 세상에 맞서는 날 봐).”라 선언했다. 그는 음악의 힘으로 나약한 현실을 강인함으로 승화했다. 시카고 트리뷴 인터뷰에서 ‘I am woman’이 이토록 성공을 거둘 줄은 몰랐다고 고백했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이 노래를 여성들의 연대를 이끈 결정적인 노래로 기억한다. “나는 현명해요. 그 지혜는 고통에서 온 거죠. 나는 강해요. 나는 여자입니다. “ 페미니즘 이슈가 계속 화두 되는 세상 속 ‘I am woman’의 메시지는 견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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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목소리를 가진 강인한 투사, 사라 맥라클란

오스트레일리아를 대표하는 가수 헬렌 레디는 1972년 여성의 자부심을 고취하는 곡 ‘I am woman’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과 그래미 최우수 여성 팝 보컬 퍼포먼스를 거머쥐었다. 50 여년 전 여권 신장을 노래한 그의 메시지는 오늘날 음악에서 핵심이 된 ‘허스토리(Herstory)’를 상징한다. 대중음악계 여성의 발자취를 짚어나가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과정이다.

유대 신화에는 여성 악마 릴리스(Lilith)가 존재했다. 아담이 이브와 결혼하기 전 첫번째 부인이었던 릴리스는 아담과의 성관계에 있어 여성은 따르기만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아담을 떠나 혼자 살며 많은 남자를 유혹하는 악마를 자처한다. 다소 노골적인 이 신화 이야기에는 남성 상위 문화에 반기를 들고 주체적인 여성으로 자리하고자 하는 페미니즘적 의미가 담겨있다.

분노의 얼터너티브 록이 활개를 치던 1990년대 초반, 음악 신에도 릴리스가 있었다. 캐나다의 포크 가수 ‘사라 맥라클란’이 바로 그 주인공. 신화 속 강렬한 이미지의 릴리스와는 달리 잔잔하고 조용한 음악을 선보이는 그는 긴 무명의 끝에 네 번째 정규 앨범 < Surfacing >으로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2위를 차지한다. 이 도약은 그가 진짜 ‘릴리스’로서의 활약을 펼치게 될 기원이 된다.

#1. 천사의 목소리를 가진 강인한 투사로, 릴리스 페어(Lilith Fair)

짧은 머리에 수수한 차림, 어깨에 걸쳐 맨 어쿠스틱 기타. 사라 맥라클란은 미소를 띠며 그에게 그래미 최우수 여성 팝 보컬 퍼포먼스 상을 안겨준 ‘Building a mystery’로 무대를 연다. 1997년 시작되어 1999년 막을 내린 여성 음악 페스티벌 릴리스 페어(Lilith Fair)의 첫 장면은 이토록 인상 깊다. 1990년대의 음악 시장은 남성 뮤지션들에게만 유독 관대했다. 사라 맥라클란을 비롯해 토리 에이모스, 트레이시 채프먼 등 쟁쟁한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이 넘쳐났지만 무대도, 라디오도 그들의 것이 아니었다.

1997년 그의 나이 30살, 주어지지 않으니 창시하기에 이르렀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공연과 라디오에 거부당한 사라 맥라클란의 분노는 1,6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는 성공적인 여성 음악 축제를 낳는다. 오롯이 여성만 출연할 수 있으며, 남성 출연자들은 연주를 보조하는 세션으로만 허용되었다. 트레이시 채프먼, 셰릴 크로우, 수잔 베가, 시니어드 오코너, 폴라 콜 등 내로라하는 여성 가수들이 출연해 남성이 주도하고 있는 록 신에 반기를 들며 음악계 안에서의 여권 신장에 연대하고 화합한다.

하지만 인터뷰에서 그가 직접 언급했듯, 릴리스 페어는 여성의 힘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었다. 무대 위 남성 뮤지션들을 무대 아래서 바라봐야 했던 여성 뮤지션들의 자유로운 무대를 갈망했다. 비단 그들이 얻은 건 무대뿐만이 아니다. 흔히 여자들이 모이면 서로를 적대시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출연자들은 서로 사랑과 기쁨을 공유했다. 무대 위에서는 기쁨의 노래를, 무대 아래에서는 속 깊은 대화로 서로의 삶을 나눴다.

릴리스 페어는 여성을 ‘위한’ 페스티벌보다 여성 ‘중심의’ 페스티벌에 가까웠고, 이 이상의 다양한 인권을 인정하는 평등의 장이었다. 흑인 알앤비의 대표적인 여성 뮤지션 인디아 아리(India arie)는 릴리스 페어를 기점으로 모타운과 계약을 체결했고, 영국 밴드 모치바(Morcheeba)의 결정적인 인물 스카이 에드워즈(Skye edwards)는 “나는 흑인임에도 싱어송라이터가 된 게 아니라, 그저 싱어송라이터인데 마침 흑인인 것뿐이다”라며 릴리스 페어 인터뷰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각인시켰다. 당시 무명이었던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또한 1999년 릴리스 페어에 설 기회를 얻었다. 무명과 흑인, 그리고 여성. 이유 없이 약자가 되었던 그들도 릴리스 페어에서는 그저 한 명의 뮤지션이었다. 여성의 인권을 넘어서 모두의 인권을 통용한 아름다운 페스티벌로 남았다.

#2.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결국엔 음악

‘Adia I do believe I failed you / Adia I know I’ve let you down (이디아, 내가 널 저버리고 / 실망시켰다는 걸 알고 있어)’ 언뜻 보면 연인에게 바치는 화해의 노래 같지만, 사실은 친구의 전 남자친구와 결혼해 미안한 마음을 담은 ‘Adia’ 속 가사이다. 그렇게 결혼한 남편과의 이혼, 딸의 탄생과 맞물린 어머니의 죽음까지. 녹록지 않은 그의 개인사는 수준 높은 음악으로 승화됐다.

2010년 발매된 7번째 정규앨범 < Laws Of Illusion >에 수록된 ‘Changes’로 이혼의 심정을 토로하고, 다음 작인 < Shine On >의 ‘Song for my father’로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한다. 그의 상처와 허물은 자전적인 음악을 성취해냈다. 릴리스 페어를 창시하고, 음악학교를 설립하는 등 사회적 활동을 더욱 빛나게 해준 건 무엇보다도 탄탄하게 다져진 음악적 능력이었다.

상업적 음악인 틴 팝, 라틴 팝의 유행으로 주어진 곡을 부르는 여성 가수들이 대부분이었던 당시, 직접 곡을 쓰는 그의 행보는 독립적이며 주체적이었다. 그렇게 뽑아낸 양질의 음악은 OST에서의 활약을 이끌었다. 영화 < City Of Angel >의 OST로 알려진 ‘Angel’은 헤로인 과다복용으로 사망한 스매싱 펌킨스의 키보디스트 조나단 멜보인으로부터 영감을 얻었고, < 토이스토리2 >에 수록된 ‘When She Loved Me’는 애절한 목소리로 장면의 몰입을 도와 평단의 긍정적인 평가를 얻었다.

이외에도 그의 행보는 멈추지 않는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밴쿠버 아이들이 무상으로 음악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사라 맥라클란 음악학교(Sarah McLachlan School of Music)‘를 설립하고, ‘World on fire’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하기 위한 15만 달러의 예산 중 제작비 15달러를 제외한 금액을 자선 단체에 기부하기도 했다. 단지 그는 의자에 앉아 기타를 치는 모습이 전부이고, 세계 각국에서 고통받는 아이들의 모습과 함께 기부금이 어떻게 쓰였는지 담아낸 뮤직비디오는 좋지 못한 품질에도 마음을 울린다.

2010년, 밴쿠버에서 열린 동계 올림픽 개막식에서 그의 ‘Ordinary miracle’이 울려 퍼졌다. ‘삶이란 매일 우리를 위해 포장된 선물 상자이고, 열어보고 베푸는 방법은 스스로 터득해야 한다‘는 노랫말처럼 그의 음악사는 언제나 자유로이 날갯짓했다. 여성은 수동적이며, 무언가를 해내지 못할 거라는 시대의 편견을 무참히 무너트렸고, 시대를 이끄는 주체가 될 수 있음을 주지시켰다. 온화한 미소의 그는 사실 착하기만 한 ‘Angel’이 아니라 고요하지만 강인하게 움직이기를 멈추지 않았던 ‘Lilith’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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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러 스위프트의 ‘The man’이 들여온 메시지

오스트레일리아를 대표하는 가수 헬렌 레디는 1972년 여성의 자부심을 고취하는 곡 ‘I am woman’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과 그래미 최우수 여성 팝 보컬 퍼포먼스를 거머쥐었다. 50 여년 전 여권 신장을 노래한 그의 메시지는 오늘날 음악에서 핵심이 된 ‘허스토리(Herstory)’를 상징한다. 대중음악계 여성의 발자취를 짚어나가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과정이다.

지난 2월 27일 공개된 미국의 팝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의 싱글 ‘The man’ 뮤직비디오가 화제다. 맨(man)이라는 단어에서 드러나듯 이 곡과 영상은 남자를 주제로 삼는다. ‘내가 남자였다면 / 영웅이 될 수 있을 테니까 / 난 영웅이 될 꺼야’라 노래하는 와중 가사보다 더 다층적 메시지를 품은 뮤직비디오가 눈에 띈다.

지하철에서 다리를 쩍 벌리고 않은 남성, 아무데서나 방뇨하는 남성, 폭력을 리더십으로 활용하는 남성 등 이 작품에서 테일러 스위프트는 그간 여성에게 제한적이고 남성에게 관대했던 여러 프레임의 전복을 시도한다. 

이외에도 재작년 소속사 이전 과정에서 불거진 스쿠터 브라운(한 때 테일러 스위프트를 희롱한 문제로 여러 차례 설전을 벌였다. 현재 테일러 스위프트의 초창기 저작권 상당수가 스쿠터 브라운 소유다)과의 마찰도 뮤직비디오의 중요한 소재가 된다. 이처럼 오늘 날의 그는 여성으로서 개인으로서 사회인으로서 소리 내기에 주저함이 없다.

taylor swift fearless 이미지 검색결과

2006년 16살의 나이로 데뷔한 그는 미국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자국의 전통성을 가진 ‘컨트리’를 주무기로 삼았고 수려한 외모를 지녔으며 무엇보다 적당히 조명주기 좋은 싱어송라이터였기 때문이다. 또한 어디에도 반항은 없었다. 초기 커리어의 인기곡 ‘White horse’, ‘Love story’, ‘Fearless’ 같은 곡이 그 증명이다. 건조한 컨트리를 질료 삼아 적재적소에 가미한 록, 팝적 요소가 음악의 접근성을 높였고 풋풋한 사랑을 담은 가사가 컨트리에 거리를 둔 십대의 취향까지 사로잡았다. 

2008년 2번째 정규 음반 < Fearless >로 그래미 어워드의 본상 중 하나인 ‘올해의 음반’을 수상한다. 그의 나이 18살의 일이다. 승승장구하던 행보는 2009년 래퍼 카니예 웨스트에 의해 타격을 입었다. MTV 뮤직 어워드 ‘올해의 여성’ 부문 수상자로 무대로 오른 테일러 스위프트의 소감이 카니예 웨스트의 “이 상은 비욘세가 받아야 했다”는 망언으로 얼룩졌기 때문. 그의 등장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테일러 스위프트의 얼굴이 그대로 전파를 탔다. 악재는 계속 됐다. 2012년에는 임신설에 휘말렸고 2013년에는 라디오 진행자 데이비드 뮐러에게 성추행을 당한다.

taylor swift 1989 이미지 검색결과

고난은 깨달음이 됐다. 테일러의 앞장서기는 2014년 즈음 서서히 기지개를 편다. 변화의 시작은 정규 5집 < 1989 >(2014)의 수록곡 ‘Welcome to New York’에서 드러난다. 컨트리의 색채를 완전히 지우고 ‘팝’으로 노선 변경을 시도한 음반의 첫 곡으로 흥겨운 신시사이저 멜로디에 맞춰 그는 이렇게 노래한다. ‘뉴욕에 온 걸 환영해 / 너는 네가 원하는 누구든지 될 수 있어 / 남자든 여자든’. 그의 두 번째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곡인 ‘Shake it off’ 역시 마찬가지다. 상황이 어떻든 ‘흔들자’ 말하는 이 노래는 막힌 청춘의 고민을 뚫어주는 시원한 ‘치얼 업 송’이자 더 이상 웅크리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이었다.

실제로 그는 거침없이 위기 상황을 뚫고 나갔다. 앞서 언급한 라디오 DJ 뮐러는 2013년 테일러 스위프트를 자신의 부당한 해고에 일조했다는 명목으로 3백만 달러에 가까운 손해배상금을 요구하며 고소한다. 이에 테일러 스위프트 역시 2015년 그를 맞고소하는데 요구한 배상금은 단 1달러뿐이었다. 돈이 아닌 여성 인권의 가치를 주목시키려는 의도였다. 결과적으로 뮐러는 패소했고 테일러 스위프트는 이를 기념하며 한 자선단체에 (액수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큰돈을 기부한다. 

그는 점점 더 강해졌다. 2017년 ‘올드 테일러는 죽었어’ 선포하며 돌아온 정규 6집 < Reputation >에서는 일렉트로니카를 적극 가미해 이미지 변신을 하는가 하면 타이틀 ‘Look what you make me do’에선 그간 자신을 괴롭혔던 인물들과 정면 대결을 신청한다.

사전 동의가 있었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지만 또 한 차례 ‘Famous’란 곡으로 그를 성적 대상화한 카니예 웨스트가 그 목록에 올랐으며 네티즌 역시 그의 화살을 빗겨가지 못했다. 노래의 뮤직비디오에서 테일러 스위프트는 SNS상에서 뱀의 이미지로 폄하되던 자신의 아이콘을 역으로 끌어와 스스로 뱀이 되어 타올랐다. 도를 넘은 비난이 도리어 성장의 기폭제가 된 것이다.

그렇게 2019년 발매한 정규 7집 < Lover >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현재이자 데뷔 초와는 상상할 수도 없게 진화한 당당한 여성의 자화상이다. 밀어두었던 컨트리를 다시 가져와 성숙한 사랑을 노래하고 LGBTQ, 여성, 인권 그리고 무엇보다 평등함의 중요성에 대해 소리 높인다. 2018년에는 데뷔 이래 처음으로 정치색을 밝히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공개된 ‘The man’의 뮤직비디오는 테일러 스위프트가 세상에 날린 묵직한 ‘한 방’이다. 착한 여성은 없다. 날선 비유로 성 고정관념을 개조하는 그의 행보가 여기, 바로 이 자리에 생생한 경종을 울렸다. 앞으로 나아가는 여성의 목소리. 테일러 스위프트의 귀환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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