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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 ‘回 : Walpurgis Night’ (2020)

평가: 3/5

그룹의 모기업화

이 앨범으로 명확해졌다. 올 초부터 시작된 < 回 : 트릴로지 >는, 모기업이 된 빅히트의 A&R을 그룹에게 적용하는 실험의 장이었다는 것을. 앞선 두 장의 EP가 ‘Labyrinth’나 ‘Apple’와 같은 곡으로 조심스러운 개입을 보여주었다면, < 回 : Walpurgis Night >에선 보다 과감히 그 피를 수혈한다. 크레딧엔 빅히트 소속 뮤지션들의 이름이 늘어났고, 다수에 의한 분업체제 비중이 커졌다. 현악세션이나 드라마틱한 구성은 들어낸, ‘열심히’가 아닌 ‘쿨’하고 ‘칠’한 여자친구의 낯선 모습. < 回 : Labyrinth >를 듣고 기존의 정체성을 유지하는구나 생각했던 본인에겐 속았다 싶은 내용물이다.

여기에 방대한 설정 및 스토리텔링이 더해졌다는 건 그야말로 확인사살이다. 상당부분 소속사의 개국공신인 BTS와 그 동생그룹인 TXT의 공식을 이어받은 셈. 그것이 무조건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니 오해는 금물이다. 새로운 경로를 제시하면서도 팀의 구심점인 좋은 멜로디는 무사히 계승. 뭔가 살짝 위화감은 드나, 듣는 재미만큼은 결코 뒤지지 않는 준수한 결과물로 자리하고 있다.

‘MAGO’는 핵심을 함축하는 키 트랙. 요즘 빅히트가 한참 몰두하고 있는 디스코 장르의 곡이나, 현대적인 재해석 대신 과거의 감수성을 그대로 재현하는 쪽에 가깝다. 여기에 트레이드 마크였던 클래식한 가요의 작법은 남겨 설득력 있는 변화를 꾀한 셈. 거친 디스토션의 어프로치가 가해진 ‘Love Spell’에서의 리듬감 역시 이전에는 보기 힘들었던 모습이다.

필리 소울 기반의 시티팝 ‘Three Of Cups’는 개인적인 베스트 트랙. 코러스와 신시사이저가 기분 좋게 교차하고, 베이스와 브라스의 격돌은 의외의 낭만을 연출한다. 무엇보다 가사 속 멤버들의 일상성과 생동감이 플러스 요인. 다소 과도했던 서두의 콘셉트를 중화해주는 중간다리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결은 다르나 특유의 파워풀함을 담아내고 있는 ‘GRWM’ 역시 우리가 알던 익숙한 그들에 더욱 가까운 노래.

유닛 곡들은 노래 본연에 귀를 기울여주기를 바라는 대목이다. 심플한 악기소리 위를 코러스를 동반해 유려하게 타고 넘는 가창의 ‘Secret Diary’, 굴곡진 비트와 날카로운 음색이 맞물려 라틴 팝의 장르적 매력을 극대화하는 ‘Better Me’, 두 사람의 화음이 제목처럼 꿈결 같은 무드를 자아내는 ‘Night Drive’까지. 조합에 따라 달라지는 파장이 듣는 이를 즐겁게 한다. 이어 재수록된 ‘Apple’과 ‘교차로’, ‘Labyrinth’를 지나 자신들의 각오를 재차 다지는 ‘앞면의 뒷면의 뒷면’을 마지막으로, 숨가쁘게 달려왔던 새로운 3부작은 막을 내리고 있다.

이 작품을 들으며 두 번의 반갑지 않은 충돌을 느꼈다. ‘Mago’와 ‘Apple’, ‘Labyrinth’ 등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 가는 메타포와 그 외 수록곡들이 만들어 내는 일상성의 충돌이 첫번째. 변화된 음악성을 보이는 수록곡들과, < 回 : Labyrinth >에선 주축 트랙이었으나 이 작품의 러닝타임에서 만큼은 이질성을 띄는 ‘교차로’와의 충돌이 두번째다. 여기서 던질 수밖에 없는 질문은 이런 것이다. 빅히트는 합병을 통해 합류한 레이블 소속 팀들에게 그 로고를 이토록 선명하게 찍을 것인가? 라는 질문 말이다.

여자친구는 팀명에서도 알 수 있듯, 거대한 은유나 장대한 세계관이 부재했기에 오히려 반짝반짝 빛나는 ‘일상 속’ 특별한 존재들이었다. 빅히트의 실책은, 이들이 착실하게 쌓아온 그 정체성의 무게를 비교적 가볍게 생각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멤버들의 역량을 동원해 좋은 팝 앨범을 만들어 낸 것은 사실이다. 다만, 갑작스럽게 너무 많은 이야기를 태우려는 시도와 기존의 아이덴티티를 고려하지 않은 듯한 무리한 개입이 이 앨범 그리고 금번의 트릴로지 안에서 가볍지 않은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 분명 신중히 생각해볼 문제다.

변화라는 것은, 그것이 필요하다면 당연히 수반되어야 할 아이돌, 나아가 모든 아티스트의 전략 중 하나다. 그럼에도, 좀 더 최적화된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싶은 것이다. 더군다나 확실한 개성을 가진 그룹인만큼, 좀 더 조심스럽고 영리하게 접근했어야 했다. 빅히트식 기획이 빚어낸 언밸런스함은, 향후 이들이 자신의 산하에 들어오게 될 아티스트들의 A&R 방향성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에 대한 숙제를 남긴다. 콘셉트의 위화감이 듣기 좋게 마감질 된 작품의 접근성을 위협하는 ‘回 Trilogy’의 엔딩. 이번 기획으로 얻은 데이터가 부디 발전적인 방향으로 활용되길.

– 수록곡 –
1. MAGO
2. Love Spell
3. Three Of Cups
4. GRWM
5. Secret Diary
6. Better Me
7. Night Drive
8. Apple
9. 교차로(Crossroads)
10. Labyrinth
11. 앞면의 뒷면의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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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GFriend) ‘Apple’ (2020)

평가: 2.5/5

음악에 있어 변화의 논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변화 뒤에도 아티스트만의 존재감이 잘 보존되어 있는지, 그리고 또 하나는 이러한 변화가 납득 가는지다. 우선 < 回:Song of the Sirens >의 타이틀곡 ‘Apple’는 완성도 자체만 봤을 때 상당히 수려하다. 트렌디하게 짜인 훅과 그루브는 데뷔 5년 차의 능란한 안무와 어우러져 색다른 신비로움을 창출하고, 청순의 고속도로를 세차게 질주하던 과거는 어느덧 기교와 세련미가 가득한 미래에 도달한다.

다만 곡이 끝나고 난 뒤 과연 ‘Apple’이 여자친구의 곡인지에 대한 물음에는 갸웃거리게 된다. 새 소속사에서 새 시작을 꿈꾸는 이들에게 과거 공식을 대입하는 것은 여러모로 참견일 테지만, 학교 시리즈 이후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직 뚜렷한 구심점이나 그렇다 할 정착지를 찾았다는 인상이 들지 않는다. ‘Apple’은 그룹이 상징하던 ‘청순 콘셉트’와는 거리가 멀고, 바로 전작인 ‘교차로’와도 연결고리가 없어 변신을 택한 ‘당위성’ 또한 찾기 힘들다.

그럼에도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볼 가치는 분명하다. 시선을 조금 달리하면, 여자친구는 준수한 퀄리티의 곡으로 변화의 개념을 아득히 벗어난 완전한 틀의 전복, 아예 새로운 세계관에서의 도약을 꾀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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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GFriend) ‘回:Labyrinth’(2020)

★★★☆
데뷔로부터 5년, 꿋꿋하게 그 행보를 이어온 결과 여느 그룹과는 다른 정체성을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전체적으로 탄탄한 러닝타임을 선사하며, 해오던 것과 새로운 것 간의 균형감 또한 뛰어나기에 그렇다. 언제나 발목을 잡는 것 같았던 ‘일관성’은 이제, 언제든지 자신있게 내밀 수 있는 그들의 가장 큰 장점이 되었다.

평가: 3.5/5

케이팝 불감증을 치료해 줄 케이팝 앨범

케이팝은 어느덧 영미 대중음악의 트렌드를 가장 먼저 소화하는 카테고리가 되었다. 현지의 유행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나라 아이돌 음악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 송캠프 시스템을 통한 외국 작곡가들의 기용은 이런 경향을 부채질했고, 세계 진출에 박차를 가할 트렌디한 사운드를 원하는 기획사의 니즈와도 맞아 떨어졌다. BTS의 성공이나 각국에서 환호를 받는 팀들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벤치마킹은 분명 긍정적으로 작용한 측면이 크다. 다만 명이 있으면 암이 있는 법. 특정 곡에 대한 과도한 레퍼런스나 어느 그룹이 불러도 상관없을 것 같은 트랙의 몰개성 등, 듣는 입장에서는 듣는 재미가 상당부분 사라진 것도 사실이다.

이런 시점에서 바라보면 이 팀은 주된 흐름과는 항상 거리를 두고 있었던 편이다. 국내 뮤지션들을 메인으로 기용해 오래도록 호흡을 맞춰가는 경향이 그렇다. 초기에는 이기와 용배, 지금은 노주환과 이원종이라는 송라이터 팀의 색깔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이는 마치 1세대 아이돌인 신화와 유영진의 케미를 보는 듯한, 지금의 케이팝에선 찾기 힘든 단일 작곡가/스탭과의 서사를 엿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러블리즈 – 원피스/스페이스 카우보이 체제와 함께 이러한 흐름을 리드하고 있는 형국인 셈이다.

이와 같은 꾸준한 방향성은 충실한 음악적 결과물이 탄생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섬세한 감각가 번뜩이는 아이디어에 의존하기 보단, 드라마틱한 구성과 좋은 멜로디에 중점을 둔다. 일순간의 화려함으로 눈을 속이는 대신,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해내는 그룹의 캐릭터와 맞물려 차별화가 성립되는 지점이다. 사실 ‘열대야’는 이런 흐름에 반하는 곡이었고, 그런 탓에 다소 어울리지 않는 옷이기도 했다. 그래서 꺼내든 카드는 ‘교차로’. ‘밤’과 ‘해야’를 잇는 현악 세션 중심의 비장한 댄스튠이다. 자신들의 정체성을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BGM으로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다.

일부 자가복제라는 비판도 있을 수 있겠지만, 다행히 ‘교차로’는 그런 불평을 들을 정도의 어설픈 곡이 아니다. 소리의 공백과 폭격이 긴장감 있게 교차하고, 통렬한 선율은 뛰어난 가창력을 타고 퍼져 나간다. 규정 지어진 자신들의 캐릭터를 벗어날 수 없다면, 그 안에서 최대치를 해내겠다는 의지의 산물이다. 애잔한 감성이 공간감 있게 펼쳐지는 ‘Here we are’와 이색적인 톤의 신스 사운드가 어두운 밤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Dreamcatcher’는 잔꾀 없이 ‘좋은 노래’의 공식을 열심히 지키고 있는 트랙들이다.

꽤나 과감한 시도도 있다. EDM과 록의 조합으로 선명한 인상을 남기는 ‘Labyrinth’가 대표적. 케야키자카46의 ‘不協和音(불협화음)’이 연상되는 건 다소 아쉬우나, 기타의 디스토션으로 역동성을 더해 부족함 없는 리드곡을 완성했다. 생소한 악기들을 활용한 ‘지금 만나러 갑니다’ 역시 탱고의 이국적인 느낌을 팝의 테두리로 안에서 매력적으로 풀어낸다. 잔잔한 어쿠스틱 위 멤버의 목소리가 호소력 있게 다가오는 ‘From me’의 진솔함 역시 그룹만의 것. 어느 한 곳 집중력을 잃지 않은 상태로 러닝타임이 마무리된다.

국경 밖의 음악과 뮤지션에 집중하고 있는 주된 흐름에서 한 발 떨어져, 클래식한 가요의 작법을 유지해 나아가고 있다는 점은 분명 특별하다. 사실 활동 초기엔 이러한 직관성의 유지가 쉽지 않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렇게 데뷔로부터 5년, 꿋꿋하게 그 행보를 이어온 결과 여느 그룹과는 다른 정체성을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이 작품은 그것을 한눈에 보여주고 있는, 음악적 내실이 충실한 앨범으로 자리한다. 전체적으로 탄탄한 러닝타임을 선사하며, 해오던 것과 새로운 것 간의 균형감 또한 뛰어나기에 그렇다. 언제나 발목을 잡는 것 같았던 ‘일관성’은 이제, 언제든지 자신있게 내밀 수 있는 그들의 가장 큰 장점이 되었다.

– 수록곡 –
1. Labyrinth
2. 교차로(Crossroads)
3. Here we are
4. 지금 만나러 갑니다(Eclipse)
5. Dreamcatcher
6. From 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