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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 ‘evermore'(2020)

평가: 4/5

‘곡 쓰기를 멈출 수 없었다’는 수줍은 고백과 함께 테일러 스위프트는 해가 가기 전 < folklore >의 자매작(Sister Records)을 공개했다. 비틀즈, 엘튼 존, 톰 웨이츠, 브루스 스프링스틴 등 한 해 두 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했던 전설들의 발자취를 따르며, 고통스러웠던 지난날을 통해 더욱 단단해진 자아로 왕성한 창작욕을 증명하는 기록이다. ‘구전(口傳)’으로 스스로를 치유했던 테일러는 31세의 자신에게 주는 생일 선물과 같은 이 작품으로 ‘영원’을 꿈꾼다. 

< folklore >와 동일한 재료로 지어진 < evermore >의 세계는 언뜻 단순한 속편처럼 들리나 그 아래에는 훨씬 깊고 정교한 세계가 생동감 있게 호흡하고 있다. 자전적인 고백의 메시지가 주를 이루던 전작과 달리 본작에는  ‘Love story’의 하이틴 컨트리 로맨스와 ‘ivy’의 불륜, ‘no body, no crime’의 살인극, 대프니 듀모리에로부터 영감을 받아 조모의 이름을 붙인 ‘marjorie’ 등 다양한 설화가 21세기의 그레이트 아메리칸 송북을 꿈꾸는 태피스트리 위 수놓아진다. 다면의 페르소나를 규합하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지휘 아래 전작의 설계도를 그린 더 내셔널의 아론 데스너, 본 이베어가 조력자의 역할에 충실하다. 실크처럼 부드러운 포크, 재기 발랄한 소녀의 컨트리, 1990년대 얼트 록의 반항기와 일말의 진지함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willow’의 ‘1990년대 트렌드보다 더 강하게 돌아왔다’라는 선언이 조곤조곤하나 굳은 확신으로 가득 찬 이유다. 글로켄슈필, 프렌치 혼, 첼로 등 클래식 악기와 아론 데스너의 미니멀한 정서를 교합하며 데뷔 초 과거의 자취를 가져온 뮤직비디오까지 직접 감독한 이 곡의 주도권은 온전히 테일러에게 있다. 현 연인 조 알윈의 가명 윌리엄 바워리(William Bowery)와 함께한 챔버 팝 ‘champagne problems’에서 캠퍼스 커플의 선택을 애틋하게 바라보다 잭 안토노프의 리듬감 있는 박동 위 부와 명예를 경계하는 ‘gold rush’로 자의식으로의 전환을 가져오며, ‘’tis the damn season’과 ‘cowboy like me’에서는 유년기 내슈빌의 베테랑들이 사사한 보편의 연애담을 읊는다. 

상상과 현실을 분주히 오가는 스토리텔링은 < folklore >의 보편보다 아티스트의 개인과 밀접히 맞닿아있다. 이는 앨범을 더욱 복합적이고 흥미롭게 구성하는 주요 요소다. 가슴 아픈 ‘exile’을 따라 여린 떨림으로 눈물을 삼키는 ‘tolerate it’까지 목가적인 무드 속 여류 시인의 면모에 안심할 때쯤 하임(HAIM) 세 자매와 함께한 ‘no body, no crime’으로 비정한 서부극의 한 장면을 가져온다. 더 내셔널을 초청한 ‘coney island’를 통해 ‘Blank space’로 서랍에 고이 넣어두었던 전 연인들의 명단을 다시금 슬쩍 꺼내보이기도 한다. 

테일러의 짓궂은, 또는 야심으로 가득한 구성은 앨범의 끝단에서 분명한 반전을 의도한다. 잘게 부서지는 노이즈로 충격을 안긴 다음 언제 그랬냐는 듯 태연하게 5/4박자의 차분한 전반부로 돌아가는 ‘Closure’, 작품을 마무리하는 ‘evermore’에서는 전작에서 잔잔히 테일러와 호흡을 맞추던 본 이베어에게 소용돌이치는 혼란과 고독을 허락하며 짙은 흔적을 남긴다. 서두의 고백이 더 이상 수줍게 들리지 않는 지점이며, 지적인 < evermore >의 세계가 충동과 파토스 대신 정교하게 쌓아 올린 로고스와 야심의 건축물임을 체감하며 감화를 멈추게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 일말의 이질감은 전체적으로 < folklore >의 상징성과 견줄, 훌륭한 적응 및 확장의 면모를 보이는 이 작품 앞에서 덮고 넘어가도 될 정도의 흠이 된다. 아티스트가 완벽히 타인을 연기했다면 그 인공미가 두드러졌을 터나, 그는 분명히 수많은 등장인물들 속에 본인의 페르소나를 은은하면서도 선명하게 투영하고 있다. 빠른 노선 전환과 다작(多作) 속 풍부히 끌어안고, 섬세히 세공하며, 끝내 자신의 정체성으로 빚어내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창작 과정은 그가 우리 시대 드문 탁월한 재능의 팝스타임을 증명하고 있다. ‘영원’을 위한 발걸음이 신중하고도 찬찬하다.

-수록곡-
1. willow
2. champagne problems
3. gold rush
4. ’tis the damn season
5. tolerate it
6. no body, no crime (feat. HAIM)
7. happiness
8. dorothea
9. coney island (feat. The National)
10. ivy
11. cowboy like me
12. long story short
13. marjorie
14. closure
15. evermore (feat. Bon I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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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 ‘folklore’ (2020)

평가: 3.5/5

2010년대를 지배한 테일러 스위프트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미스 아메리카나’로 고독한 정상의 위치와 세간의 시선에 입은 상처를 고백하며 평온한 팝 앨범 < Lover >를 발표했다. 그리고 떠들썩했던 20대를 차분히 마무리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30대 테일러 스위프트의 첫 작품이 세상에 나왔다. 많은 이들에게 알리지 않고 차분히 써 내려간 이 모노톤의 노래 모음집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가져온 무거운 침묵과 고립, 적막의 시대를 관통하는 구전(口傳)이다. 

< folklore >에는 잔잔하고 차분한 포크와 진중하고 고전적인 블루스의 색채, 세상을 관조하는 테일러의 독특한 시각과 숨결이 맴돈다. 풋풋한 도전기 < Red >, 화려한 뉴욕의 < 1989 >, 독기 어린 < Reputation >의 두꺼운 메이크업을 모두 걷어냈다. 요란한 전자음과 여러 장치들은 사라지고 소문자로 쓴 앨범과 수록곡이 의도하듯 차분한 어쿠스틱 기타와 커버처럼 짙은 잔향이 작품 전체를 감싸고 있다. 

전작 < Lover >의 낙관 혹은 여유와 달리 건조 또는 음울이 짙게 배어있고, < Fearless >와 < Speak Now > 시절이 언뜻 스쳐가기도 하나 느낀 대로 고백하던 풋풋한 청소년기와 달리 산전수전 모두 겪은 베테랑 팝스타의 언어와 스토리텔링은 과거의 자신 또는 가상의 캐릭터를 정제된 형태로 회상한다. 내슈빌보다 1960년대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 조니 미첼과 같은 선배 포크 싱어송라이터들, 1990년대 케이디 랭이나 사라 맥라클란의 잔상이 스친다. 

< 롤링 스톤 >의 롭 셰필드가 언급한 것처럼 이 앨범엔 팝송이 전혀 없다(No pop songs at all). 히트메이커 맥스 마틴이 떠나간 자리엔 묵직한 시선의 밴드 내셔널(The National)의 아론 데스너가 이름을 올렸다. 잔잔한 피아노와 어쿠스틱 기타로 자연스레 책장을 여는 ‘the 1’부터 병치를 활용한 사색의 타이틀 싱글 ‘cardigan’, 이에 주석을 달며 구전의 성격을 강화하는 ‘seven’ 모두 아론의 손을 거쳤다. 토리 에이모스가 연상되는 ‘hoax’ 역시 그의 작품이다. 

내셔널 음악의 정수는 최소한의 장치만을 활용하면서도 건반을 누르는 소리, 어쿠스틱 기타의 줄을 튕기는 소리 등 사소한 장치들을 극대화하여 감상을 확장하는 것에 있다. 이런 장인의 사운드 메이킹이 앨범 곳곳에 숨결을 불어넣는다. 세간의 편견에 대해 분노하는 ‘mad woman’과 코로나바이러스가 가져온 혼란의 시기를 천천히 응시하는 ‘epiphany’, 쏟아지는 대중의 시선을 담담히 감내하는 ‘peace’가 2000년대 < Boxer >와 2017년 < Sleep Well Beast > 사이를 오간다. 진중하고 묵묵하게 미국 사회를 노래해온 밴드의 영향이다. 

동시에 < 피치포크 >의 설명처럼 ‘영원한 인디 앨범으로 기억될’ 작품은 아니다. 새 파트너들이 개성을 더하는 와중에도 테일러 고유의 진솔한 이야기 전달과 직관적인 멜로디, 빠르게 많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보컬은 여전한 팝의 영역에 있다. 아론 외에도 검증된 파트너 잭 안토노프가 앨범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  아무리 코로나 확산세 속 우울한 사회 속에서 치유와 위로를 원하는 이들이 많다 해도 < folklore >가 빌보드 싱글 차트 – 앨범 차트 – 아티스트 100위 차트를 모두 석권하는 기염을 토한 데는 분명 노메이크업 아래 치밀하게 재단된 팝의 터치가 있다. 

본 이베어로 활동하는 저스틴 버논과 함께한 ‘exile’ 역시 인디라기보다는 ‘인디를 받아들인 테일러’의 사례다. 테일러 커리어에서 가장 슬픈 러브송 중 하나일 이 곡은 닉 케이브 앤 더 배드 시즈의 잔향과 본 이베어 커리어 초창기의 포크가 혼합되어 있으나 곡 전개는 잔잔하되 빠르고 멜로디 역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감정을 전달하고 있다. 잭과 아론이 함께한 ‘Betty’도 2000년대 컨트리 테일러의 추억을 되살려 흥미롭게 다가온다. < Lover >의 잔향을 길게 이어가는 ‘Mirrorball’과 ‘August’도 달라진 테일러가 낯설 이들에게 단비처럼 여겨질 곡들이다.

빌보드 싱글차트 1, 4, 6위를 차지하고 앨범 전곡을 100위권 내 진입시킨 < folklore >의 대성공은 2010년대 끊임없는 변신과 도전을 시도한 테일러 스위프트의 행보를 연장하며 또 다른 형태의 진솔함과 아티스트 이미지를 부여한다. 컨트리 기반을 갖고 있다 해도 인디펜던트의 감성을 적극 수용하여 개인의 서사와 시대 배경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것은 아티스트의 견고한 세계와 탁월한 재능이 바탕에 있기에 가능한 작업이다.

다만 영미권 평론의 열광은 작품 자체의 평가보다 < Lover >의 수록곡 제목처럼 전례가 없었던 ‘잔인한 여름(Cruel Summer)’을 보내는 우리의 현실에 상당수 기반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흘려보내기, 편안한 감상의 의도일 수 있으나 개별 싱글 멜로디의 힘은 커리어 중 가장 낮다. ‘cardigan’, ‘august’, ‘betty’로 세 인물을 제시하며 본인의 이야기를 모두의 것으로 전유하려 하는 시도 역시 독특하지만, 테일러를 오래 지켜본 팬이 아닌 이상 아티스트 입장에 완전히 이입하고 공감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인디펜던트의 도움을 받아 꾸준히 다져온 자아의 가장 깊은 내면을 내비치는 < folklore >는 커리어의 정점보다 달라진 세계 속 새로운 기지개를 킨 작품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뜨겁게 소비하기보다 긴 호흡으로 오래 곁에 두고 싶다.

– 수록곡 –
1. the 1
2. cardigan
3. the last great american dynasty
4. exile (feat. Bon Iver)
5. my tears ricochet
6. mirrorball
7. seven
8. august
9. this is me yrying
10. illicit affairs
11. invisible string
12. mad woman
13. epiphany
14. betty
15. peace
16. hoa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