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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ZM 필자들이 뽑은 ‘내 가슴에 와닿은 노래 제목’

흔히 ‘인생 곡’이나 ‘인생 앨범’은 매체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반면, ‘인생 제목’이라는 단어는 어딘가 생소하다. 인생이라는 단어가 가진 부담스러운 무게 때문일까, 아니면 습관처럼 제목보다 내용에 더 큰 관심을 가지기 때문일까. 하지만 모든 분야를 불문하고 예술 작품을 접할 때 우리가 처음 마주하는 것은 분명 제목이다. 간단한 단어에서 긴 문장을 오가며 감정을 일렁이고 상상을 주무르는 예술의 일부이자 당당한 대변인인 셈이다.

세상의 위대한 ‘명제목’은 손에 꼽을 수 없이 많기에 조금 범위를 좁혔다. 이번 특집은 각 IZM 필진들의 꼬깃꼬깃한 추억과 모토가 담긴 지극히 개인적인 제목들을 소개한다. 오늘 한 번 플레이리스트를 열어 평소 자주 듣던 음악들의 이름을 지긋이 바라보기를 권한다. 저변에 깔린 창작자의 의도는 물론, 마치 곡이 내게 말을 거는 듯한 진귀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레너드 스키너드(Lynyrd Skynyrd) ‘Simple man’

제목을 처음 봤을 때 나처럼 단순무식하고 어리석은 사람에 대한 노래인 줄 알았다. 그리고 나는 진짜 심플하고 무지했다. 여기서 Simple은 ‘단순한, 간단한’이 아니라 ‘장식 없는, 검소한, 순수한’이라는 의미도 있다는 걸 나중에 알았으니까. 이 곡 때문인지 나는 화려한 것보다는 수수한 것, 복잡한 것보다 간단한 것, 많은 것보다 적은 것이 좋다. 물건도 잘 버리고 이것저것 덕지덕지 붙어있는 것도 싫어한다. 내 머리처럼 백지나 여백이 좋다.

‘느긋하게 마음먹고 너무 빨리 살려고 하지 마. 시련은 오겠지만 곧 지나간다.
부자들처럼 돈 욕심을 버려라. 너한테 필요한 건 네 영혼이야.
걱정하지 마. 너는 네 자신을 찾을 거야.
네 마음 외에는 아무것도 따르지 마라.’

대학 전공과 무관한 일을 하고 다니던 무역회사를 그만둔 이유도 이 노래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부모들이 “숙제 했니? 공부 좀 해라!” 대신 ‘Simple man’의 이 가사처럼 현명한 조언을 해준다면 우리 아이들은 더 훌륭하고 바르게 자랄 것이다. (소승근)

3호선 버터플라이 ‘스물 아홉 문득’

나는 29살이 주는 멜랑콜리함에 취하지 않는 편이다. 아니 이제 29이 넘었으니 취하지 않는 편 ‘이었다’가 맞는 표현인가? 어쨌든 나는 나이에, 숫자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제목만 보면 그렇게 마음 한 켠이 뜨거워진다. 20대 초중반, 스물아홉이 멀게만 느껴지던 때부터 듣던 곡을 이제 서른이 되어 듣고 있다. 세월의 격세지감이 또렷하게 ‘스물 아홉 문득’ 위에 흐르는 것이다!

돌아보면 매년 사는 게 쉽지 않음을 쓰게 배웠다. 경험의 폭이 얇았던 이십 대는 그래서 유난히 더 빡셌다. 그때마다 나를 지켜 준 게 바로 이 곡이다. ‘그 동 안 너 수 고 했 다 고’라는 가사를 하나하나 힘주어 스타카토로 부르는 부분에서는 매번 코 끝이 찡 해진다. 이십 대를 지나 삼십 대에 진입한 지금까지 휴대폰 컬러링의 한 꼭지를 차지하고 있는 노래. 스물아홉이 주는 서정성은 (아마도) 딱 이 곡 안에서만 생긴다. (박수진)

팻보이 슬림(Fatboy Slim) ‘Praise you’

칭찬에 인색한 가정에서 자랐다. 아들의 겸손한 성장을 위해 필연적으로 채택한 교육방식인 것을 지금은 백 번 이해해도 학창 시절엔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 물론 칭찬거리가 많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는 고래도 춤추게 했던 칭찬 한마디가 결핍으로 남아 자화자찬을 남발해가며 거짓된 자존감을 채우기 급급했으니 이 직관적인 제목이 주는 쾌감은 꽤 어색하면서도 짜릿했다.

간단명료한 노랫말로 주입된 ‘칭찬 폭격’의 효과는 굉장했다. 그동안의 갈증이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5분 내내 ‘널 칭찬해줘야만 하겠어’라고 외치는 화자 덕에 말끔히 해소됐다. 경쾌한 비트와 팻보이 슬림 특유의 익살스러운 면모까지 그때는 다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채워지지 않는 공허를 노래로 메웠던 스스로의 처지가 눈물겹다. (김성욱)

장기하와 얼굴들 ‘싸구려 커피’

자유가 많아서 마음이 무거운 어떤 청년은 비싼 커피를 마실 돈이 없었다. 열심히 사는데도 가난해서 퍽 억울했지만 분노한다고 삶이 바뀌진 않았고 그렇다고 로또 당첨 같은 행운을 바라는 것도 요원했다. 그는 향이라곤 탄내가 전부인 싸구려 커피에 만족하는 법을 깨닫고 나서야 인생이 그럭저럭 버틸 만한 거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똑똑하게 화내는 것도, 순진하게 명랑한 것도 싫어서 차라리 무력하길 선택한 청년은 그렇게 고급 커피를 마시는 사람과는 세상을 보는 안경을 다르게 썼다.

기껏 공들여 훈련한 음악을 접을까 말까 고민하던 순간에 ‘싸구려 커피’를 다시 만났다. 곡에서 사용된 단어 중 가장 강한 가치판단이 담긴 싸구려라는 단어을 제목에 박아 넣은 의지에서 얼마간의 자기혐오가 느껴졌다. 가상의 화자가 궁상을 떠는 것에 마음이 아팠던 이유는 이 노래를 들을 때 싸구려와 나를 동일시하는 현상이 내 안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실속을 따져 일부러 저렴한 커피를 마시지만 그때는 다른 수가 없었기에 이런 예상치 못한 자기 인식은 서글펐다. 비가 그친 후 개어가는 하늘을 희끄므레죽죽한 하늘 같지도 않은 무언가로 보았던 모든 사람은 이 곡의 제목을 보면 마음이 쓰다. 아! 첫 문단의 이야기는 절대로 내 이야기가 아니다. (김호현)

신인류 ‘한여름 방정식’

바람이 차가워지는 11월 중순. 애매한 거리를 유지한 채 여의도 한강 공원을 걷던 우리 둘은 전하고 싶은 마음을 반쯤 드러내며 이어폰을 나누어 꼈다. 서로의 음악 취향을 알아가기 위해 차례로 선곡하려던 노래는 뒷전이었고 복잡한 관계의 해답을 찾으려 머리를 굴렸다. 연인 혹은 친구 아니면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모호한 사이에서.

내 차례가 왔고 신인류의 ‘한여름 방정식’을 재생했다. 해가 뉘엿하게 지고 있는 하늘과 곧 차가워질 것 같은 바람 앞에서 계속 속으로만 삼키던 말을 용기내 꺼냈다. 그렇게 영원히 좁혀질 것 같지 않던 평행선의 방정식은 ‘사랑해’ 라는 말로 풀렸다. 2020년 6월에 신인류는 해체를 알렸지만 이들의 음악은 그날의 분위기와 함께 나의 가슴 한쪽에 자리 잡았다. (백종권)

최유리 ‘잘지내자, 우리’

‘잘 지내.’ 긍정을 머금은 작별 인사 한편에 확실한 불안이 맺힌다. 재회를 원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떠나갈 이에게 보내는 마지막 안부엔 슬픔으로 저민 찌꺼기만이 남는다. 담담하게 감정을 되짚는 짙은의 오리지널보다 투명하게 우울을 드러낸 최유리 편곡 버전이 스며든 것은 내 상처가 갈무리되지 않고 울퉁불퉁해서. 가슴 곳곳에 뚫린 커다란 구멍 사이로 ‘잘 지내자, 우리’란 문장이 맴돈다.

인생의 대부분을 함께한 친구가 세상을 떠난 뒤 닫혀버린 마음의 틈을 비집고 들어온 인연이 얼마나 특별할지. 만남이 기적이라면 반대로 헤어진 이 순간은 어찌나 고통스러울까. 위로해줬던 사람들이 자꾸만 곁에서 사라져 아직 가누지 못해 어른이 되지 못한 나는 그럼에도 덜어내지 않으려 한다. 깊은 곳에 기억을 새겨 두고 진심으로 행복하길 바라며 다시 만날 때까지 “잘 지내자, 우리.” (손기호)

스텔라장 ‘환승입니다’

사랑이 곧 삶의 전부인 줄 알았던 이십 대 초반에 연애의 끝은 씁쓸한 맛으로 남았다. 여유가 없어졌다며 하루아침에 작별인사를 건넨 사람에게 더 이상의 질문은 의미가 없었다. 여러 밤을 지새웠던 고민은 나의 부족함과 서투른 감정을 향했고 원망 같은 건 쿨하지 못하다며 스스로를 옥죄기도 했다. 잡생각을 잊으려 바쁘게 보낸 어느 날에도 늘 그렇듯 지하철 단말기에 교통카드를 댔다.

“환승입니다.” 매일 듣는 기계 음성은 이 헤어짐에 황당한 가능성을 심어주었다. 스텔라장의 ‘환승입니다’가 이어폰을 타고 흘러나오자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전철을 기다리며 전 연인의 SNS 피드가 주는 충격은 일말의 기대감마저 날려버렸다. 환승의 증거들이 명쾌한 이별의 이유였고 이해할 수 없었던 그간의 행동도 납득이 되었다. 정신을 차리자 어느새 갈아타야 할 열차는 떠났고 나는 덩그러니 플랫폼에 남겨졌다. (손민현)

레인보우(Rainbow) ‘Black sheep of the family’

하얀 양들에 낀 검은 양은 튀어 보일 수밖에 없다. 골칫거리 혹은 이단자를 뜻하는 ‘Black sheep of the family’를 처음 접한 건 1970년대 영미권 하드록에 빠져있던 중학생 때다. 정신의 민감도가 떨어진 의무교육 시기엔 곡명과 무관하게 그냥 멜로디가 신명 나서 좋아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듣는 횟수는 적어졌지만 언젠가부터 곡이 바늘처럼 나를 찔러왔다. ‘나의 길을 가련다.’라는 믿음이 있었지만 사회가 정해 놓은 기준선이 조금씩 옥죄어왔고 ‘어느새 나 혼자 까만 양이 되어버린 게 아닐까?’하는 의문도 가졌다. ‘넌 세후 월급이 얼마니?’ 부동산과 주식을 논할 때 주야장천 예술 얘기만 늘어놓는 것도 괜스레 철없게 느껴졌지만 고뇌도 잠시, 낙천주의와 한량 끼가 결합해 다시금 본연으로 돌아왔다. 그냥 검은 양인 걸 인정하기로 살기로 했다. 한번 사는 인생 남들에게 심한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 유별나 보는 게 어때, 이런 마음으로. (염동교)

김광석 ‘이등병의 편지’

현역 군인이라면 누구나 거쳐갔을 입대송이 와 닿은 건 입대 직전이었지만 제목이 주는 임팩트는 입대 후였다. 정확히는 ‘이등병의 편지’가 아닌 계급장을 달기 전 훈련소 때의 일이다. 자대로 갔을 때는 공중전화도, ‘사지방'(사이버 지식 정보방)도 있었기 때문에 사회와 자유로운 교류가 가능했고 이때가 아니면 언제 하겠냐 싶어 외국에 있는 친구와도 편지를 나눴다. 덕분에 큰 외로움도 없었고 군 생활에 치여 그럴 틈도 없었다.

‘훈련병의 편지’가 슬프지는 않았다. 나는 받지 못했다. 같은 분대의 전우들이 2~3통씩 수령할 때도 내게 온 소식은 자취를 감췄다. 힘들었던 일을 다시 꺼내고 싶지 않아 머릿속에서는 지워버린지 오래다. 이제는 가족들이 왜 안 보냈는지, 왜 못 보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유일하게 내 관물대에 얹어진 종이는 중대장에게 갔어야 할 서신이 내게 잘못 온 것뿐이었다. 아직도 이 노래의 제목만 보면 떠오르는 사연은 있지만 떠올리고 싶은 추억은 없다. (임동엽)

짱유 ‘Kiss my mouth all day’

래퍼 짱유가 오롯이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선물하고 싶었다는 프로듀서 제이플로우의 말처럼 ‘Kiss my mouth all day’는 내게도 편히 머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영롱한 오르골 소리가 시간을 잠시 멈추면 미소를 띤 짱유가 자유분방한 춤을 추며 아픔이 서린 가사를 덤덤히 내뱉는다. 마치 어떠한 삶의 곡절을 직면하더라도 이 노래 앞에서는 그저 영화 속의 한 장면이 될 것만 같은 기묘한 감정과 함께.

그래서일까, 자기혐오와 포기 욕구가 극에 달할 때마다 곡은 매번 벼랑 끝에서 나를 붙잡으며 살아갈 힘을 주곤 했다. 매일 밤 새벽 막차에 지친 몸을 던져 취객들과 함께 엉키던 순간에도, 그렇게 도착한 집 앞 골목길 계단에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던 순간에도, 돌이켜 보면 ‘하루 종일 스스로 키스를 건넬 수 있는’ 그를 상상하며 버틸 수 있었던 셈이다. 어딘가에서 ‘나는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겪고 있는 모든 코리안 키드들에게 나의 저릿한 기억이 담긴 소중한 문구를 조심스럽게 소개한다. (장준환)

샤이니 ‘I want you’

2017년, 우울에 잠식당한 채 애써 웃어보였던 한해였다. 다사다난했던 1년간의 악몽에서 탈출하고자 그해 끝자락인 12월에 홀로 여행길에 올랐다. 맛있는 먹거리와 매서운 칼바람에 마음 속의 짐을 녹여 날려내는 듯했으나 그날 밤 여유가 생긴 나의 공간을 다시 꽉 채워 터뜨린 건 샤이니 종현의 비보였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은 그의 음악으로 위로를 받았던 내게 죄책감까지 들게 했고 복합적인 슬픔에 잠긴 나는 서울행 열차를 기다리다 끝내 눈물을 쏟았다.

그날의 아픔이 어렴풋하게 남아있던 이듬해 여름, 남겨진 4명의 ‘너를 원한다’는 직관적인 한 마디가 겨우 마음을 추스른 나의 코끝을 다시 찡하게 만들었다. 몽글거리는 사운드 위에서 옛 동료를 회상하는 듯한 ‘I want you’는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던 내 진심까지 대변했고 이젠 학창 시절의 워너비를 웃으며 떠나보낼 수 있게 되었다. ‘눈앞에 네가 다시 다가와 그때와 다른 결말이 오길’ 바라는 마음엔 변함이 없지만 이젠 자유로이 하늘 위를 날아다니고 있을 그의 얼굴에 미소만 가득하길 바란다. (정다열)

종현 ‘따뜻한 겨울’

겨울을 싫어한다. 여름만 있는 나라에 10년간 머물었던 기억 때문인지 아니면 유독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 때문인지 그 이유는 찾지 못했다. 12월에는 따뜻한 연말연시 보내라는 인사를 들을 때마다 추위나 외로움이 더 가깝게 느껴졌다. 발 끝에서 질척이는 눈은 짜증스러웠고 여름의 맑은 하늘과 햇살에서 나오는 활기가 그리웠다.

햇빛은 생명의 근원이지만 음식을 상하게 한다. 여름의 열정을 즐길 때 마음의 끝은 조금씩 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겨울을 완전히 내버리지 못하고 이 노래를 찾았다. 신선한 바람과 사람들의 온기를 동시에 머금은 ‘따뜻한 겨울’이 직사광선에 상해버린 마음을 달래 주니까. ‘다시 또 만날 그 날이 약속된 안녕인 거니까’ 추위가 수그러든 지금은 햇살을 맘껏 쬐고 공기가 차가워지면 다시 만나기로 한다. (정수민)

Lady Gaga ‘Marry the night’

고등학교 3학년, 입시의 끝이 다가올수록 내 속에 있던 불안감은 커져갔다. 이러다 공부를 더 하게 될 것 같다는 걱정에 사로잡힌 나는 정말 그런 상황이 온다면 아마 주제가를 ‘Marry the night’으로 삼아야겠다는 자조적인 상상을 속으로 펼치곤 했다. 음반사에게 계약 해지를 당한 후 기회를 찾으며 분투하던 뮤직비디오 속 레이디 가가처럼 밤으로 함축된 고통의 세계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전진하리라는 가사 때문이었다.

대망의 첫 수시 발표날, 탈락을 확인한 나는 좌절을 이끌고 감독 선생님이 안 계신 틈을 타 친구와 몰래 노래방으로 향했다. 그날 ‘Marry the night’을 열창하며 분을 풀었고 집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도 이 노래만 반복해서 들었다. 착잡함이 가시지는 않았지만 그날 나는 밤과 결혼했고, 아픔을 껴안았으며, 나를 조금 더 사랑하기로 결심했다. 힘든 시간을 마주해야 그 다음의 행복을 쟁취할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 (한성현)

정리: 장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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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승근의 하나씩 하나씩 Feature

미드의 주제곡 속으로 (Into The Theme From American Drama Series)

최근에는 한국 드라마가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글로벌 시장을 장악해오고 있는 드라마는 우리가 ‘미드’라고 부르는 미국 드라마(혹은 시리즈)였습니다. 기성세대의 기억에 선명한 < 초원의 집 >, < 600만 불의 사나이 >, < 소머즈 >, < 원더우먼 >, < 미녀 삼총사 >, < 전격 Z작전 >, < 에어울프 >, < A 특공대 >, < 두 얼굴의 사나이 >, < 맥가이버 > 같은 미드는 1970~1980년대 우리나라 텔레비전을 석권했었죠. 이중에는 영화로 제작될 만큼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들도 많아서 젊은 분들도 이 제목을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 미드들이 대중으로부터 사랑받은 이유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와 유머, 액션 그리고 멋진 배우들이었지만 그 못지않게 큰 몫을 담당했던 건 주제음악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 하나씩 하나씩 >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얻었던 미국 드라마의 주제곡을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이 주제를 저에게 선뜻 양보해준 이즘의 ‘귀염둥이’ 필자 염동교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1. 엉터리 슈퍼맨 (The Greatest American Hero)

1978년과 1981년에 영화 < 슈퍼맨 >과 < 슈퍼맨 2 >가 성공을 거두자 여기서 힌트를 얻은 텔레비전 시리즈가 바로 이 드라마입니다. 1980년대 초반에 방송된 이 시리즈는 우리나라에서 < 엉터리 슈퍼맨 >이라는 제목으로 방송됐는데요. 그런데 왜 ‘엉터리’일까요? 우주인은 주인공에게 하늘을 날 수 있는 옷과 그 옷의 매뉴얼을 건네줬지만 실수로 그 설명서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주인공은 제대로 날지도 못했고 착지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착륙할 때마다 땅에 곤두박질쳐서 ‘엉터리 슈퍼맨’이 됐죠.

브라이언 드 파머의 공포영화 < 캐리 >에 출연한 윌리엄 캐트가 주연을 맡은 < 엉터리 슈퍼맨 >은 주제곡이 유명한데요. 컨트리 팝 가수 조이 스카배리가 부른 ‘Believe it or not’은 1981년에 빌보드 싱글차트 2위까지 올랐고 우리나라에서 방송할 땐 전영록이 번안해 불렀습니다. 텔레비전 드라마 음악의 제왕 마이크 포스트가 작곡한 이 노래는 1980년대에 열심히 팝송을 들으셨던 분들이라면 이 따뜻한 멜로디가 생각나실 겁니다.

2. 머나먼 정글 (Tour Of Duty)

< 머나먼 정글 >도 < 엉터리 수퍼맨 >과 비슷한 과정을 거쳐 탄생했습니다. 1986년에 개봉한 영화 < 플래툰 >의 성공에 자극을 받아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제작한 드라마가 < 머나먼 정글 >이죠. 이 미드는 1980년대 후반 국내에서 방송됐는데요. 유명한 배우가 출연하는 것도 아니고 월등한 액션 장면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이유는 오프닝에 나오는 주제곡 덕분입니다.

1966년에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을 차지한 롤링 스톤스의 ‘Paint it black’이 우리나라에 처음 알려진 건 < 머나먼 정글 >의 주제음악으로 사용됐기 때문입니다. 그 이전까지는 금지곡이었거든요. 모든 것을 검게 칠하라는 제목이 허무를 조장한다는 허무한 이유로 가로막혔던 이 노래는 1980년대 후반 민주화 물결에 힘입어 해금됐고 대한민국에서는 ‘Satisfaction’과 함께 롤링 스톤스를 대표하는 노래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3. 맥가이버 (Macgyver)

아마 많은 분들이 제일 먼저 떠올리는 미드 주제음악일 겁니다. 싱글 히트곡도 아니고 음원으로 발표한 적도 없지만 순전히 < 맥가이버 >의 인기로 그 인지도를 획득했죠. 신시사이저 팝으로 제작된 이 주제음악을 들으면 평소엔 관심도 없는 화학공식이 떠오르고 그렇게 증오하던 물리학 법칙과 수학 개념이 제 머릿속을 돌아다는 것 같았습니다. 모든 직장인과 학생들이 싫어하는 일요일 저녁시간을 기다리게 만든 < 맥가이버 >에서 주인공이 자주 사용하는 스위스 군용 칼의 인기도 덩달아 상승했죠. 당시에는 이 칼만 있으면 텔레비전과 라디오도 다 고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리차드 딘 앤더슨이라는 무명 배우를 세계적인 스타로 끌어올린 < 맥가이버 >는 과학적 호기심을 조금이라도 높여 민족중흥의 역사를 일구는데 이바지했습니다.

4. CSI 과학수사대 (CSI)

2000년에 시작한 < CSI 과학수사대 >는 범죄수사극의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탐문수사와 형사의 감으로 범인을 잡는 기존의 수사극과 달리 과학적인 방법으로 범인을 색출하는 과정이 흥미로웠거든요. 라스베이거스, 마이애미, 뉴욕의 3편으로 제작된 이 미드의 주제곡은 모두 더 후의 노래였습니다. 라스베이거스 편은 1978년에 발표한 ‘Who are you’, 마이애미 편은 ‘Wont’get fooled again’, 뉴욕 편은 제 인생의 노래 중 하나인 ‘Baba O’Riley’였죠.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노래가 테마곡으로 쓰인 뉴욕 편은 상대적으로 재미가 덜했습니다.

< CSI 과학수사대 >의 주제곡으로 더 후의 노래를 사용한 것은 제작자 제리 브룩하이머가 더 후의 광팬이기 때문입니다. < 플래시댄스 >, < 비벌리힐스 컵 >, < 탑건 >, < 배드 보이스 >, < 아마게돈 >, < 블랙호크 다운 >, < 캐리비언의 해적 > 등을 제작하며 헐리웃의 실세가 된 제리 브룩하이머는 < CSI 과학수사대 >를 통해 더 후를 향한 사심을 드러낸 거죠.

5. 케빈은 12살 (Wonder Years)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건 동양이나 서양이나 마찬가지입니다. < 케빈은 12살 >을 제작한 닐 말렌스와 캐롤 클랙이 자신들의 10대 시절을 시대적 배경으로 한 미드가 < 케빈은 12살 >이거든요. 1988년에 처음 방송된 < 케빈은 12살 >은 베트남 전쟁과 흑인인권운동으로 혼란스런 1960년대 후반을 유쾌하고 정감 있게 담아냈습니다. 평범한 집안, 웬수 같은 형, 짝사랑하는 여자 아이, 재미없는 학교생활까지 전 세계 12살 남자아이가 공통으로 겪는 경험을 유머 있게 그려낸 < 케빈은 12살 >은 오프닝부터 팝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영국의 블루 아이드 소울 가수 조 카커가 비틀즈의 원곡을 걸죽하게 리메이크한 ‘With a little help from my friends’였거든요.

케빈 역을 맡은 프레드 새비지의 똘망똘망한 눈망울이 인상적이었던 < 케빈은 12살 >은 미국인들에겐 추억을 반추하는 드라마였는데요. 드라마에서 케빈이 좋아했던 여학생 위니도 사랑받았고 케빈의 친구 폴이 나중에 마릴린 맨슨이 된다는 휘발성 소문조차 화제가 될 정도로 우리의 기억에 남아있는 미드였습니다.

6. 블루문특급 (Moonlighting)

1985년부터 4년 동안 방송된 < 블루문특급 >은 미국 드라마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입니다. 로맨스, 코미디, 스릴러, 액션, 드라마 등 여러 가지 요소를 잘 버무려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둔 < 블루문특급 >은 < 택시 드라이버 >로 유명한 시빌 셰퍼드와 당시 신인이었던 브루스 윌리스를 정상급 엔터테이너로 만들었는데요. 사설탐정 회사에서 만난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아슬아슬한 러브라인 위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줄거리가 인기요인이었고 사무실 직원 아그네스와 허버트의 어벙하지만 사랑스런 캐릭터도 < 블루문특급 >의 매력 포인트였습니다.

2017년에 세상을 떠난 위대한 재즈 보컬리스트 알 자루가 부른 주제곡도 작품만큼 유명한데요. 도시의 야경과 와인이 떠오르는 세련된 재즈팝 ‘Moonlighting’은 텔레비전 드라마 음악을 많이 맡았던 리 호드리지와 알 자루가 함께 작곡했고 디스코 그룹 쉭의 리더였던 나일 로저스가 프로듀싱을 맡았습니다.

7. 경찰특공대 (S.W.A.T.)

경찰특수기동대를 뜻하는 S.W.A.T.는 Special Weapons And Tactics의 이니셜입니다. 이 특수부대를 소재로 한 < 경찰특공대 >는 1975년에 방송된 액션수사물인데요. 우리나라에서도 MBC를 통해 방송돼서 꽤 인기를 얻었습니다. 긴박감 넘치고 역동적인 주제음악을 연주한 리듬 해리티지는 흑인과 백인으로 구성된 펑크(Funk) 밴드인데요. 1976년에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오른 ‘Theme from S.W.A.T.’는 고든 파크스가 감독한 영화 < 샤프트 >의 주제음악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스릴 넘치는 스트링 연주와 관악기, 와와페달을 사용해 긴장감을 극대화한 기타 연주는 1970년대 액션 수사물의 주제음악 패턴으로 자리했죠. 2003년에는 사무엘 L. 잭슨과 콜린 파웰이 주연한 영화로도 리메이크됐습니다.

8. 보난자 (Bonanza)

기성세대가 아직도 기억하는 < 보난자 >는 1959년부터 1973년까지 제작됐고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대에 방송됐습니다. 당시만 해도 미국 서부시대에 대한 인식이 좋았기 때문에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누렸죠. ‘번영’, ‘대박’, ‘광맥’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 ‘보난자’를 제목으로 정한 것만 봐도 이 드라마가 미국의 골드러시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 보난자 >에서 아버지 역할을 맡았던 론 그린은 이 작품으로 인기배우 반열에 올라섰고 아들 역을 소화한 마이클 랜든은 나중에 < 초원의 집 >에서 아빠 역할로 더 유명해집니다.

이 주제음악은 세계적으로 히트했고 나중에는 주연을 맡았던 배우 론 그린이 걸죽한 바리톤 음색으로 불렀는데요. 1962년에는 컨트리 가수 저니 캐시가 리메이크하기도 했습니다. 주제음악 ‘Bonanza’를 만든 제이 리빙스턴과 레이 에반스는 캐롤의 고전 ‘Silver bells’와 냇 킹 콜의 노래로 유명한 ‘Mona Lisa’, 데비 레이놀즈가 부른 ‘Tammy’, 도리스 데이의 ‘Que sera sera’를 만든 유명한 작곡 콤비입니다.

9. 5전선 (Mission Impossible)

1966년에 탄생한 < 제5전선 >이 원제 < 미션 임파서블 >이란 이름으로, 주연을 맡은 피터 그레이브스보다는 탐 크루즈가 더 친근해진 이유는 1996년에 제작된 영화 덕분입니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는데요. 바로 주제음악입니다. 아무리 음악을 안 듣고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랄로 시프린이 만든 이 테마곡을 들으면 다 알 정도로 유명하죠. 탐 크루즈가 주연한 영화 사운드트랙에서는 유투의 베이시스트 아담 클래이튼과 드러머 래리 뮬렌이 리메이크해서 빌보드 싱글차트 텝 텐에 올랐습니다.

1966년부터 텔레비전을 통해 방송된 < 제5전선 >은 1960년대 중반 당시 소련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동서냉전의 시대를 반영한 작품이었습니다. 양쪽 진영의 스파이 활동은 전 세계를 극단적인 감시 사회로 만들었고 그에 따른 큰 희생을 감수해야 했죠. 하지만 소련이 무너진 후에 개봉한 영화 < 미션 임파서블 > 시리즈에서는 인류에게 위협이 되는 가상의 적이 등장해 시대상을 반영했습니다.

10. 하와이 오공수사대 (Hawaii 5-0)

이 주제음악도 < 제5전선 >만큼 유명합니다. 요즘의 10대와 20대 젊은이들에게 들려줘도 어디선가 들어본 음악이라고 할 정도로 널리 알려진 곡인데요. 지금도 텔레비전 예능을 비롯해서 수많은 프로그램의 배경음악으로 쓰여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겐 ‘Walk don’t run’, ‘Pipeline’, ‘Apache’로 시대를 풍미한 벤처스가 리메이크해서 1968년에 빌보드 싱글차트 4위까지 올랐습니다.

1968년부터 1980년까지 12년 동안 롱런한 < 하와이 오공수사대 >는 하와이를 배경음 한 범죄수사물인데요. 경제발전이 한창이던 1970년대에 우리나라에서 방송되어 하와이를 선망하는 여행지로 만든 일등공신입니다.

11. 프렌즈 (Friends)

종영한지 18년이 된 < 프렌즈 >가 최근에 다시 회자되는 이유는 방탄소년단의 김남준 덕분입니다. 해외생활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김남준이 미국인처럼 영어를 구사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 < 프렌즈 >를 보면서 영어를 배웠다고 밝혔기 때문이죠. 1990년대를 살아가는 20대 청춘의 이야기를 시트콤으로 재미있게 풀어간 < 프렌즈 >는 북미 지역에선 하나의 ‘현상’이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방송되지 않아 그 입소문과 주제곡만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밝고 경쾌한 주제곡 ‘I’ll be there for you’는 10년 이상 활동해온 미국의 모던 록 듀오 램브란츠에게 첫 번째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게 만들었고 그 후광으로 그들의 앨범이 우리나라에서 라이센스로 발매됐습니다.

< 프렌즈 >로 인기를 얻은 재니퍼 애니스톤은 브래드 피트와 커플이 됐고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1984년도 히트곡 ‘Dancing in the dark’의 뮤직비디오로 데뷔한 배우 커트니 콕스는 스타로 등극해 영화 < 스크림 >에도 출연했죠. 우리나라에서는 < 프렌즈 >에서 영향을 받은 국내 시트콤 < 세 남자 세 여자 >가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12. 마이애미의 두 형사 (Miami Vice)

이 미드는 우리나라와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퇴폐적인 분위기, 마약 거래, 프리섹스, 거리의 총격전까지, 억압과 통제가 자행되던 5공화국 현실과는 어느 것 하나 맞지 않았거든요. 그래서였는지 MBC에서 방송됐지만 큰 인기를 얻지 못하고 곧바로 폐지됐죠.

1984년부터 1990년까지 방송된 수사 드라마 < 마이애미의 두 형사 >는 배우 멜라니 그리피스의 남편이었던 돈 존슨을 당시 최고의 섹시스타로 등극시켰는데요. 사실 이 미드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이유는 주제음악과 사운드트랙 덕분입니다. 체코 출신의 건반주자 얀 해머의 테마곡은 1985년에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을 차지했고 이글스 출신의 글렌 프라이가 부른 ‘You belong to the city’는 2위에 올랐죠. 여기에 극 분위기에 어울리는 필 콜린스의 ‘In the air tonight’과 티나 터너의 ‘Better be good to me’가 수록되어 있어서 OST의 가치를 높였습니다.

요즘에는 텔레비전을 보는 사람이 많이 줄었죠. TV 말고도 유튜브나 넷플릭스 등 여러 플랫폼으로 원하는 시간에 보고 싶은 영상을 볼 수 있으니까 애써 공중파 방송을 고집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으면 그 시간에 맞춰서 텔레비전 앞에 가야 했고 좋든 싫든 가족들이 다 모여서 하나의 채널을 봐야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서 되돌아보니까 그때 가족들과 함께 봤던 프로그램이 기억에 남습니다. 누구와 무슨 대화를 하면서, 뭘 먹으면서, 어떤 자세로 봤는지도 떠오르네요. 이렇게 사소한 것까지 생각나는 걸 보니까 저도 돌아올 수 없는 그 시절이 그립나 봅니다.

여러분도 지금 자주 챙겨 보는 프로그램이나 영상 있죠? 주위에서 영상을 너무 많이 본다고 잔소리를 해도 무시하고 많이 보세요. 시간이 흐르면 그 프로그램은 여러분의 ‘화영연화’를 만들어주는 추억의 조각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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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김진성의 영화음악 – #2 접속(The Contact, 1997)

이즘은 개설 20주년을 맞아 특집 가운데 하나로 < 김진성의 영화음악(Historical Cinema Music) >을 연재합니다. 영화 역사를 수놓은 작품들 중에서 영화 자체는 물론 특히 영화음악으로 역사와 대중의 기억에 오래 남아 있는 30개의 작품을 골라 음악을 집중 분석합니다. 독자들의 반응을 기대합니다. 두 번째 편은 < 접속 >입니다.

1997년 9월13일 추석시즌부터 겨울 12월까지 장기상영에 들어가 서울에서만 67만 관객을 동원, 그해 한국영화 최고의 흥행작이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영화의 사운드트랙에 사용된 노래와 연주곡을 묶어낸 OST(오리지널 사운드트랙)앨범이 80만장 이상 판매되며 영화의 흥행기록에 버금가는 명성을 획득했다. 그야말로 쌍끌이 히트, 겹경사였다. 한석규와 전도연, 두 남녀주연배우의 호연이 물론 영화의 흥행에 중대한 견인차 역할을 했지만, 영화음악의 영향력 또한 간과할 수 없는 화제의 명화.

폴라로이드 즉석카메라와 PC통신을 주요 소품으로 활용해 시대상을 반영한 영화 <접속>은 동시대의 낭만적 사랑이야기 속으로 관객을 초대했다. 극에서 차지하는 음악의 지분도 마찬가지, 로맨틱한 무드로 사랑의 감정을 불러내는 노래들이 적재적소에 사용되었다. 그렇게 영화의 장면에 유효 적절히 조응하도록 삽입된 노래들은 연이어 인기를 누리면서 영화팬과 음악애청자들의 취향을 저격했다.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한 X세대 남녀의 러브스토리에 음악은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충만했다. 그야말로 시대를 초월해 구관이 명관임을 다시금 인지하게 만든 셈. 얼터너티브 록(Alternative Rock)과 테크노(Techno) 음악이 최신 유행하던 1990년대 후반, CD가 음반시장을 재편하던 그 대세 안에서 “길보드” 차트를 점령할 만큼 그 여파는 실로 대단했다.

사라 본(Sarah Vaughan)의 ‘A Lover’s concerto’와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의 ‘Pale blue eyes’는 그중에서 가장 큰 사랑을 받은 곡으로, 이후 라디오 신청곡으로도 꾸준히 애청되면서, 영화의 주제가처럼 각인되었다.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피카디리 극장 앞 광장에서의 종영장면과 함께 울려 퍼진 ‘연인들의 협주곡’과 카페에서 읊조리듯 흘러나온 ‘연푸른 눈동자’는 우리에게 그렇게 영화음악으로 기억에 새겨졌다.

영화는 한석규가 출연한 라디오 심야프로그램 PD 동현과 전도연이 분한 홈쇼핑 콜센터 상담사 수현을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옛사랑을 잊지 못하는 동현과 친구의 애인을 남몰래 짝사랑하는 수현은 각각 “해피엔드”와 “여인 2”라는 대화명으로 인터넷 PC통신에서 만나 서로에게 점점 빠져든다. 사랑의 아픔을 지닌 둘은 모두 상실과 외로움 속에 사이버 채팅을 통해 마음 속 비밀까지 공유하는 사이로 발전하고, 음악은 두 남과 여의 관계에서 중요한 매개역할로 작용한다.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속 깊은 마음 속 이야기를 털어놓을 만큼 인터넷에서 둘은 자유롭게 대화하지만, 실상 현실에서는 모순되게도 서로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스치듯 지나가고, 둘의 엇갈림을 가장 잘 표현한 장면이 연출되는 장소가 레코드가게 좁은 계단이라는 점도 음악적으로 관심을 집중시키는 대목. 신인 감독 장윤현의 섬세한 연출력과 더불어, 영화 장면 속에서 주인공의 심리에 접속해 공감할 수 있게 한 선곡이 특출하다. 우선 영화에 주제곡처럼 쓰였을 뿐만 아니라, 동현과 수현의 만남을 가능케 했던 곡이 바로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의 ‘Pale blue eyes’다.

동현의 옛 연인 영혜가 즐겨듣던 이 곡을 수현이 방송에서 우연히 듣게 되고, 다음날 “여인 2”라는 아이디로 이 곡을 신청하면서 동현과의 연인이 시작된다. 루 리드(Lou Reed)가 소곤거리듯 낮게 읊조리는 가창이 조용히 가슴에 와 닿는 이 곡은 한석규의 동현을 위한 곡이다. 이 노래로 관객은 떠나간 옛 사랑에 대한 동현의 그리움과 다가오는 새로운 연인을 향한 기다림의 정서를 미리 짐작하게 된다. 특히 영화의 인물설정 상 라디오 음악프로그램 PD인 남자주인공의 이 곡에 대한 애정은 진정한 애호가가 아니면 잘 몰랐던 밴드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대중적으로 알렸다는데 의미가 남다르다.

PC통신으로만 얘기를 나누던 남여주인공이 서로 만나게 되는 엔딩장면에 쓰인 곡은 1966년 재즈 가수 사라 본(Sarah Vaughan)이 다시 불러 히트한 재즈 풍의 노래, 원래 바흐(Johann Sebastian Bach)가 두 번째 아내 안나 막달레나를 위해 작곡한 춤곡(Minuet)을 1965년 흑인 여성 3인조 그룹 토이즈(The Toys)가 노래해 빌보드 핫100차트 2위까지 올려놓은 ‘A lover‘s concerto'(연인들의 협주곡)다. 밝고 경쾌하게 박진하는 리듬과 호소력 짙은 그녀의 보컬은 행복한 결말과 함께 빛나면서 이 곡을 최고의 라디오 애청곡 목록에 올려놓았다.

“저는 눈물이 안나요… 정말 바보 같죠.”란 독백에서 전해지는 것처럼 수현의 아픔을 온유하게 보듬어 주는 곡은 ‘The look of love’(사랑의 모습), 영국이 낳은 위대한 소울 여가수 더스티 스프링필드(Dusty Springfield)가 라틴 룸바 리듬을 실은 재즈 반주에 맞춰 불렀다. 작곡가 버트 바카락(Burt Bacharach)과 작사가 할 데이비드(Hall David) 명콤비가 공작해낸 사랑의 발라드로, 이 노래 역시 많은 팝송 팬들의 심금을 울리며 애청되었다.

이외에도 탐 웨이츠(Tom Waits)의 작별과 회한을 노래한 ‘Yesterday is here'(어제는 여기에)와 록 밴드인 트록스(Troggs)의 1966년 발표 히트곡 ‘With a girl like you'(당신 같은 여인과 함께)까지, 다양한 팝의 클래식들이 수현과 동현의 내면을 대변하는 한편, 송지예와 방대식이 두 남녀주인공이 되어 대화하듯 부른 ‘나보다 더 외로운 사람에게’는 ‘The look of love’와 유사한 라틴 재즈풍의 곡으로 영화에 일관된 기조의 분위기를 유지해준다.

별도의 사운드트랙앨범으로 발매된 음반에서도 파악할 수 있듯 영화 <접속>의 분위기를 아우르는 음악은 재즈, 엄밀히 퓨전 재즈적 감성으로 충만하다. 피아노와 어쿠스틱 기타, 드럼과 베이스를 기본 악기구성으로 ‘연인들의 협주곡(A lover’s concerto)’과 바흐의 클래식원곡의 느낌을 함유한 연주곡 ‘사랑의 송가’는 그 대표적 증거. 이 곡을 필두로 ‘거리에서’, ‘해피엔드&여인 2’, ‘방황’로 이어지는 Cucina Acoustica(쿠치나 어쿠스티카)의 연주가 때론 밝게 때론 차분한 사색조로 화면을 채워준다. 이들 곡에서 느껴지는 감성적 터치는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Leaving Las Vegas)나 <사랑의 행로>(The Fabulous Baker Boys)의 음악처럼 영화에 대한 시각적 인상을 도회적 세련미로 물들이는 한편, 극적으로 그 끝을 알 수 없는 불안한 로맨스 스토리를 관통한다.

사실 영화의 사운드트랙에 실린 스무드 재즈(Smooth Jazz) 스타일의 반주와 숨은 명곡들을 선정해 결합해낸 음악감독 조영욱의 뛰어난 감각과 노고가 아니었다면 영화 <접속>을 지금까지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영화 색깔에 어울리게 화려하지 않고 단순하면서도 개인적인 느낌을 주는 음악을 고른 것이 젊은 관객들의 감성과 맞아떨어진 것 같다”고 어느 인터뷰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이 영화의 성공의 반은 국내최초 영화음악 프로듀서로 공인된 조영욱의 공이 컸다.

추억에 매달리는 주인공들의 인물됨과 취향에 맞춰 옛 노래이면서도 당시 젊은이들에게는 새롭게 가닿을 수 있는 노래를 주로 선택한 사운드트랙 구성이 주효했던 것이다. 또한 노래에 대한 ‘저작인접권’이나 원곡 작곡가가 지닌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당시, 빈약한 영화음악예산으로 영화의 질과 음악의 상업성을 모두 만족시키려한 노고의 결실이었다. 그렇게 영화 <접속>은 만인들의 마음에 음악으로 접속했다.

– 수록곡 –
01. Prologue
02. Cucina Acoustica – 사랑의 송가
03. 수현의 독백
04. Dusty Springfield – The Look of Love
05. Cucina Acoustica – 거리에서
06. Cucina Acoustica – 해피엔드 & 여인2
07. 폴라로이드
08. The Troggs – With A Girl Like You
09. 운명의 반전
10. The Velvet Underground – Pale Blue Eyes
11. Tom Waits – Yesterday is Here
12. 손지예, 방대식 – 나보다 더 외로운 사람에게
13. Cucina Acoustica – 방황
14. 수현의 전화
15. Sarah Vaughan – A Lover’s Concerto6.
16. J.S.Bach – 2 Minuet G Major & g minor BWV 114 & BWV 115
17. Cucina Acoustica – 방황(Take 2)
18. Title (Instrumen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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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김진성의 영화음악 – #1 오즈의 마법사(Wizard of Oz, 1939)

이즘은 개설 20주년을 맞아 특집 가운데 하나로 < 김진성의 영화음악(Historical Cinema Music) >을 연재합니다. 영화 역사를 수놓은 작품들 중에서 영화 자체는 물론 특히 영화음악으로 역사와 대중의 기억에 오래 남아 있는 30개의 작품을 골라 음악을 집중 분석합니다. 독자들의 반응을 기대합니다. 첫 편은 < 오즈의 마법사 >입니다.

월트 디즈니(Walt Disney)의 <백설 공주와 일곱 난장이>(Snow White And The Seven Dwarfs)가 놀라운 상업적 성공을 거둠에 따라 MGM 스튜디오 임원인 루이스 메이어(Louis Mayer)는 그에 필적하는 작품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는 즉시 엘. 프랭크 바움(L. Frank Baum)의 소설<오즈의 위대한 마법사>(The Wonderful Wizard of Oz, 1900)에 대한 판권을 사들였다. 노엘 랭리, 플로렌스 라이어슨(Noel Langley, Florence Ryerson)과 에드가 앨런 울프(Edgar Allan Woolf)가 각본을 쓰고, 베테랑 감독 빅터 플레밍(Victor Fleming)이 연출을 맡았다.

이제 전설이 된 출연배우에는 도로시(Dorothy) 역에 주디 갈란드(Judy Garland)를 비롯해, 마블 교수 마블/오즈의 마법사 역에 프랭크 모건(Frank Morgan), 허수아비 역에 레이 볼거(Ray Bolger), 양철 나무꾼(Hickory/Tin Man) 역에 잭 헤일리(Jack Haley), 겁쟁이 사자(Zeke/Cowardly Lion) 역에 버트 라(Bert Lahr), 북쪽의 착한 마녀 글린다(Glinda) 역에 빌리 버크(Billie Burke)와 서쪽의 사악한 마녀 알미라 걸치 역에 마가렛 해밀턴(Margaret Hamilton)이 캐스팅되었다.

배역을 정한 영화는 그런데 원작 소설에서 바움이 실제 장소로 구상한 오즈를 꿈의 풍경으로 변모시켰다는 점에서 상호 거리감이 있었다. 각색된 꿈의 세계를 무대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토네이도를 타고 캔자스 집에서 놀라운 오즈 왕국으로 이송된 어린 소녀와 강아지의 마법적이고 환상적인 모험극으로 그려진다. 시골의 현실에서 오즈라는 판타지의 세계로 장소를 옮긴 소녀 도로시는 북부의 착한 마녀 글린다의 도움을 받아 위대한 여정을 시작한다. 충견 토토와 함께 에메랄드 도시에 사는 오즈의 마법사를 찾아가 집으로 되돌아가게 해달라는 소원을 말하기 위해서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두뇌를 찾는 허수아비, 마음을 찾는 양철 나무꾼, 용기를 찾는 비겁한 사자를 만나 친구가 된다. 서쪽의 사악한 마녀 걸치가 도로시의 소원성취를 방해하지만, 도로시와 친구들은 뜨거운 우정과 눈부신 협력으로 고난과 역경을 헤쳐 나간다. 절박한 공존의 필요성 속에서 믿음과 진심으로 각자의 콤플렉스를 극복해내는 주인공들. 여러 모험을 겪은 끝에 마침내 도로시는 신고 있던 루비 구두를 이용해 가족이 있는 캔자스로 돌아올 수 있게 된다.

그렇게 행복한 결말을 맞는 영화 <오즈의 마법사>는 개봉당시보다 이후 TV를 통해 방영되면서 최다 상영과 최다관객동원이라는 기념비적 기록을 세웠고, 영화 예술의 걸작으로 칭송받으며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대중의 반향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작품상을 포함해 아카데미상 6개 부문 후보에 지명된 영화는 무엇보다 최우수 음악(Best Music)상 2개 부문 트로피를 모두 석권했다는데 의미가 깊다. “스코어(Original Score)”와 “원곡/주제가(Original Song)”, 두 부분을 공히 수상함으로써 명실공이 뮤지컬영화 최고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특히 ‘Over the rainbow’의 주제가상 수상은 이 영화에 상징적 가치를 더할 뿐만 아니라, 후대에 길이 빛날 시대의 명화가 될 신호탄임을 확증했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뮤지컬이 될 것이라는 것이 결정되었다. 그래서 많은 노래를 작곡하기 위해 작곡가 해롤드 알렌(Harold Arlen)과 작사가 입 하부르크(Yip Harburg)로 구성된 신뢰할 수 있는 팀이 고용되었다. 작곡가 허버트 스토다트(Herbert Stothart)는 자신이 쓴 스코어의 패턴 내에서 노래를 조정하고 통합하는 임무를 맡았다. 전체적으로 영화의 등장인물들과 무대가 되는 배경에 맞춰 다양한 라이트모티프(leitmotif)의 연주곡을 단편적으로 사용해 극의 장면전개를 보강하는 한편, 작곡가 스토다트는 유명한 고전음악을 발췌해 넣기도 하고, 알려진 대중음악도 사용했다.

슈만(Schumann)의 ‘The Happy Farmer'(행복한 농부)에서 발췌한 부분을 영화의 초반 몇몇 장면에 사용했는데, 도로시와 토토가 걸치 여사를 만난 후 집으로 돌아오는 오프닝 장면과 토토가 그녀에게서 탈출 할 때, 그리고 집이 토네이도를 타고 날아갈 때 삽입되었고, 토토가 마녀의 성에서 탈출했을 때는 멘델스존(Mendelssohn)의 ‘Opus 16, #2’에서 발췌한 곡의 일부가 들어갔다. 또한 도로시, 허수아비, 양철 나무꾼, 비겁한 사자가 마녀의 성에서 탈출하려 할 때는 무소르그스키(Mussorgsky)의 ‘Night on bald mountain'(민둥산의 밤)에서 발췌한 주요 악절을 지시악곡에 결합해내기도 했다.

차이코프스키(Tchaikovsky)의 ‘Waltz of flowers'(꽃의 왈츠)가 도로시, 양철 나무꾼, 허수아비, 비겁한 사자 토토가 양귀비 밭에서 잠들 때 사용된 것도 간과할 수 없는 대목. 도로시와 허수아비가 의인화 된 사과나무를 발견할 때 ‘In the shade of the old apple tree'(오래된 사과나무의 그늘에서), 마법사가 도로시와 친구들에게 상을 수여할 때 학생찬가로 유명한 ‘Gaudeamus Igitur'(가우데아무스 이기투어), 캔자스에 있는 도로시의 집에서 폐막하는 장면의 일부에 ‘즐거운 나의 집’으로 매우 친숙한 ‘Home! Sweet Home!’이 기성고전가요로 차용되었다.

알다시피 뮤지컬로 제작된 영화는 이야기가 전하고자 하는 주제와 그 주제에 얽힌 노래가 풍부하다. 북방의 선한 마녀로서 천상의 특성으로 그녀의 페르소나를 강조하는 글린다(Glinda)의 테마를 위시해 서쪽의 사악한 마녀 걸치(Gulch)의 테마, 장난꾸러기 강아지 ‘토토의 테마’, ‘마블 교수(Professor Marvel)의 테마’, 그리고 허수아비와 양철 나무꾼, 겁쟁이 사자 등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 각자에게 특징 있는 주제적 악상을 주고, 그 주제곡들을 변주해 영화 전반에 골고루 배치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메인테마 ‘Over The Rainbow‘는 갈란드(Garland)가 1막에서 부른 노래에서 파생되어 나온다. 영화의 스코어 역사상 가장 숭고한 가사와 멜로디의 조화라고 할 수 있는 이 곡은 도로시의 테마 역할을 하고, 작곡가 스토다트는 “꿈은 실현된다.”는 이야기의 메시지를 관객에게 상기시키기 위해 오케스트라로 반주된다.

이 주제곡은 영화의 개막을 알리는 ‘메인타이틀'(Main Title)에서도 연달아 이어지는 여러 테마들과의 조화 속에서 최고의 순간을 제공한다. 그리고 주디 갈란드(Judy Garland)의 가창과 더불어 관객들은 목가적인 것에 대한 그녀의 열망을 듣고, 영화 내러티브의 정서적 핵심을 포착할 수 있다. 도로시 역의 갈란드가 하늘을 향해 노래할 때 그녀의 뛰어난 보컬은 완벽한 영화의 순간을 만든다.

「무지개 너머 높은 곳 어딘가에
자장가에서 한 번 들었던 땅이 있습니다.
무지개 너머 어딘가 하늘은 파랗고
감히 꾸는 꿈들이
정말로 이루어집니다.

언젠가 별을 향해 소원을 빌 겁니다.
그리고 저 너머 구름에서 깰 거예요.
걱정이 레몬 방울처럼 녹아버리고
굴뚝 꼭대기 저 위에
당신이 나를 찾을 수 있는 곳이죠.
무지개 너머 어딘가에 파랑새가 날고,
새들이 무지개 너머로 날아갑니다.
왜 그때, 오, 나는 날아가지 못하는 걸까요?
행복한 작은 파랑새가 무지개 너머로
날아가는데, 왜, 오, 왜 난 못하는 거죠?」
 -“Over the rainbow”노랫말 중-

입 하부르크(Yip Harburg)의 가사와 해롤드 알렌(Harold Arlen)의 작곡이 탄생시킨 주제가 ‘Over the Rainbow’가 아니었다면 이 영화가 지금까지 대중들의 기억에 각인되었을지는 미지수다. 그만큼 영화에서 주제가가 주는 파장은 실로 대단하다. 영화가 전하고자하는 함의를 오롯이 내포한 이 노래는 ‘AFI(American Film Institute)’의 100년… 100곡과 미국 음반 산업 협회의 “세기의 365곡”에서 1위를 차지했다. 2017년 3월, 주디 갈란드가 부른 ‘Over the Rainbow’는 “문화적, 역사적 또는 예술적으로 중요한” 음악으로 선정돼 국회도서관의 “내셔널 레코딩 레지스트리(National Recording Registry)”에 등재되었다.

– 사운드트랙에 수록된 노래 곡명 –
1. ‘Over the Rainbow'(무지개 너머) – 주디 갈란드(Judy Garland), 도로시 게일(Dorothy Gale)
2. ‘Come Out…'(나와…) – 빌리 버크(Billie Burke), 길린다(Glinda)와 먼치킨스(the Munchkins)
3. ‘It Really Was No Miracle'(정말 기적이 아니었어) – 주디 갈란드(Judy Garland), 빌리 블레처(Billy Bletcher) 그리고 먼치킨스(the Munchkins)
4. ‘We Thank You Very Sweetly'(매우 감사합니다) – 프랭크 쿡시(Frank Cucksey)와 요셉 코지엘(Joseph Koziel)
5. ‘Ding-Dong! The Witch Is Dead'(딩-동! 마녀는 죽었다) – 빌리 버크(Billie Burke)와 먼치킨스(the Munchkins)
6. ‘As Mayor of the Munchkin City'(먼치킨 시의 시장으로서)
7. ‘As Coroner, I Must Aver'(검시관으로서 나는 주장해야한다)
8. ‘Ding-Dong! The Witch Is Dead'(Reprise) – 먼치킨스(The Munchkins)
9. ‘The Lullaby League'(자장가 리그)
10. ‘The Lollipop Guild'(롤리팝 길드)
11. ‘We Welcome You to Munchkinland'(먼치킨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 먼치킨스(The Munchkins)
12. ‘Follow the Yellow Brick Road/You’re Off to See the Wizard'(노란 벽돌 길을 따라서/마법사를 만나러 간다) – 주디 갈란드(Judy Garland)와 먼치킨스(the Munchkins)
13. ‘If I Only Had a Brain'(내가 뇌가 있다면) – 허수아비 레이 볼거(Ray Bolger)와 도로시 주디 갈란드(Judy Garland)
14. ‘We’re Off to See the Wizard'(마법사를 만나러 간다) – 주디 갈란드와 레이 볼거
15. ‘If I Only Had a Heart'(내게 심장만 있다면) – 양철 나무꾼(the Tin Man) 잭 헤일리(Jack Haley)
16. ‘We’re Off to See the Wizard'(Reprise 1) – 주디 갈란드, 레이 볼거, 원래 양철 나무꾼 버디 엡슨(Buddy Ebsen)
17. ‘If I Only Had the Nerve'(내가 신경만 가졌다면) – 겁쟁이 사자 버트 라(Bert Lahr), 양철 나무꾼 잭 헤일리, 허수아비 레이 볼거, 그리고 주디 갈란드
18. ‘We’re Off to See the Wizard'(Reprise 2) – 주디 갈란드, 레이 볼거, 버디 엡슨, 버트 라.
19. ‘Optimistic Voices'(낙관적 음성) – 엠지엠 스튜디오 합창단(MGM Studio Chorus)
20. ‘The Merry Old Land of Oz'(오즈의 즐거운 옛 땅) – 마차 기사 프랭크 모건(Frank Morgan), 주디 갈란드, 레이 볼거, 잭 헤일리, 버트 라, 그리고 에메랄드 도시 주민들(the Emerald City townspeople
)
21. ‘If I Were King of the Forest'(내가 숲의 왕이었다면) – 버트 라, 주디 갈란드, 레이 볼거, 잭 헤일리
22. ‘The Jitterbug'(지르박) –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삭제된 노래지만, 일부 확장판 편집 CD에 수록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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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 한동윤의 러브 앤 어택

‘노랫말싸미’, 참신한 기획, 아쉬운 구성

2월 10일 tvN의 음악 예능 < 케이팝 어학당 – 노랫말싸미 >가 처음 전파를 탔다. 이 프로그램은 물릴 대로 물린 가창력 대결의 장이 아니다. 순위를 매기지도 않는다. 특정 출연자를 깎아내리는 가혹한 연출도 없다. 소란스러운 순간이 이따금 발생하지만 대체로 차분한 담소가 이어진다. 훈민정음의 서문 첫 문장을 익살스럽게 바꾼 제목이 암시하듯 이 프로그램은 노랫말, 즉 가사를 주된 소재로 삼는다. 기존 음악 예능이 다루지 않은 분야라서 참신하다.

제목에 들어간 ‘케이팝’과 ‘어학당’이라는 단어는 프로그램의 취지와 형태를 구체적으로 일러 준다. < 노랫말싸미 >는 김종민, 이상민, 장도연이 진행을 맡는 가운데 독일, 미국, 영국, 칠레, 콩고민주공화국, 폴란드, 프랑스 등 일곱 개 국가에서 건너온 외국인들 총 10인이 패널로 출연한다. 여기에 매회 새로운 가수가 강사라는 직함을 달고 나온다. 스튜디오에 모인 이들은 강사로 초대된 가수의 노래를 매개로 한국어와 외국어를 배우고, 우리나라와 타국의 문화를 알아 간다.

첫 방송은 백지영이 강사로 나섰다. 그녀는 2008년 발표한 7집 수록곡 ‘총 맞은 것처럼’과 이듬해 낸 2PM 옥택연과의 듀엣 ‘내 귀에 캔디’로 강의를 열었다. 강의 시작에 앞서 외국어 번역기로 번역한 노래 일부 가사를 해당 언어를 쓰는 외국인 출연자가 읊고, 외국어로 바뀐 가사를 토대로 패널들이 어떤 노래인지 유추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과정은 출연자들뿐만 아니라 시청자들한테도 각 나라의 언어를 경험하고, 이런저런 표현을 이해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을 듯하다.

유익함은 그것으로 동났다. 전반적으로 방송은 ‘백지영의 노래 교실’에 지나지 않았다. 백지영은 직접 노래를 부른 뒤 노래 속 화자의 상태나 기분 등을 설명하며 어떤 식으로 불러야 하는지 신경 써야 할 포인트를 짚어 줬다. 간단한 교습이 끝나면 외국인들이 노래를 따라 부른다. 이 활동이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두 번째 노래 ‘내 귀에 캔디’를 배울 때에는 춤에 초점이 맞춰졌다. 댄스음악이니 그럴 만하다. 하지만 두 명씩 짝을 짓기 전 각자 춤 실력을 뽐내고 커플 댄스를 소화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데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마치 명절이면 편성되곤 하는 외국인 장기 자랑 방송 같았다.

1회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 노랫말싸미 >는 우리나라 아이돌 가수들의 무대를 편집한 영상과 함께 “노래를 통해 한국을 이해하고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는 문화의 어울림을 만들려 합니다.”, “노래로 배우는 문화 이야기” 등의 자막을 띄우며 기획 의도를 밝혔다. 그러나 이날 방송에는 교양에 보탬이 될 나라별 문화, 사회상은 얼마 만나 볼 수 없었다. ‘총 맞은 것처럼’을 언급할 때 콩고에서 온 조나단이 자기네 나라는 내전이 심해서 총을 보유한 사람이 많아졌다고 말한 것이 한 나라의 특수한 사정을 알 수 있는 소식의 전부였다.

출연자들의 얘깃거리는 거의 연애에 국한된다. 다른 나라에서는 사귀는 사람과 진도를 나가고자 할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 어떤 식으로 애교를 부리는지, 어떤 외모가 이성한테 인기를 끄는지 등 1, 2, 3회 모두 연애를 주제로 한담을 나누는 데 바빴다. 지금까지의 방송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성 얘기가 꽃피는 춤추는 노래 교실’이다. 물론 연애도 문화의 하나지만 그 이상의 깊이와 다양성을 확보하지 못해서 아쉽다.

신통찮은 대화만 나눠 가뜩이나 따분한 상황에서 홍진영이 강사로 초대된 2회에서는 편향적인 정보마저 담겨 답답함이 가중됐다. 홍진영은 ‘사랑의 배터리’를 설명할 때 “흥으로 시작해서 흥으로 끝나는 것이 트로트예요.”라며 트로트는 흥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댄스음악의 인자를 들인 경쾌한 스타일이 트로트의 부흥을 이끌며 인기 양식으로 자리 잡긴 했어도 모든 트로트 노래가 그런 것은 아니다. 차분한 분위기를 띠거나 애수를 핵심 정서로 둔 노래도 많다. 홍진영의 정의는 트로트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심어 줄 소지가 다분했다.

이제 3회, 두세 술에 배부르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헛헛함은 계속 감돌 듯하다. 교양 프로그램이 아닌 예능이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이 가볍게 감상할 수 있거나 재미를 느낄 만한 장치에 신경 쓰느라 취지 구현은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진행자들, 혹은 패널들의 시시하고 유치한 설정 연극이 거듭되는 것이 프로그램의 선천적 한계를 나타낸다.

< 노랫말싸미 >가 이 약점을 극복하고 내실 있게 문화를 교류하는 장으로 성장하려면 노래 선정에 더 공을 들여야 한다. 대중음악에서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는 제재는 사랑이기에 강의에 쓰이는 노래도 대체로 사랑 노래에 한정될 것이다. 하지만 사랑을 재료로 하는 노래 중에 단순한 감정 표출 외에 사회의 양상이나 특정 세대의 생활 습관을 기록한 작품들도 존재한다. 그런 노래를 골라야 문화에 관한 소통이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