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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올리비아 로드리고와 새드 걸 팝, 팝은 어떻게 슬퍼졌는가

2021년 < Sour >의 기록적인 데뷔로 음악계를 거세게 강타한 올리비아 로드리고가 세간의 주목을 받는 소포모어 앨범 < Guts >와 함께 복귀에 시동을 걸고 있다. 그 기대에 부응하듯 선공개곡 ‘Vampire’는 어렵지 않게 빌보드 정상에 올랐고, 이어 발표된 ‘Bad idea right?’ 역시 다수의 차트 상위권을 장식했다. 이 정도 기세라면 이번 앨범 역시도 전작만큼의 성과를 이룰 공산이 무척 높아 보인다.

거대한 상업적 성공이 못지않게, 올리비아의 음악은 비평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이어갔다. 등장과 함께 그래미 시상식 3관왕을 차지함은 물론, 데뷔 앨범 < Sour >는 유수의 매체에서 당해 최고작 중 하나로 거론되는 등 상당한 호평을 받았고 차기작 < Guts >의 선공개 싱글들은 그 피치포크마저도 연이어 베스트 뉴 트랙(Best New Track)에 선정할 만큼 음악적으로 더욱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포스트 테일러 스위프트’라는 별칭과 점점 거리를 좁히는 모양새다.

영민하고 매력적인 음악 자체도 수많은 호평을 받았지만 다수의 평론가 및 대중은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이 성공을 Z세대의 세대 의식과 연관 지었다. ‘Drivers license’, ‘Deja vu’ 등 그의 음악에서 강하게 표현되는 비련의 정서가 젊은 세대의 감성에 적중했다는 식의 평가였다.

▶ (좌) 빌리 아일리시 / (우) 로드

비단 올리비아 로드리고뿐만이 아니다. 최근 팝 음악 전반에는 이전보다 어둡고, 우울한 정서가 자욱하게 자리 잡고 있다. 당장 < Sour > 이전 < When We All Fall Asleep, Where Do We Go? >(2019)의 빌리 아일리시와 < Pure Heroine >(2013), < Melodrama >(2017)의 로드(Lorde)가 유사한 평가를 받기도 했고, 이에 영향을 받은 듯 최근 대부분의 팝 신성들은 당연하다는 듯 이별과 우울의 주제를 동반하고 있다. 오죽하면 그래미 어워드를 주관하는 미국 레코딩 아카데미를 비롯, 몇몇 이들이 나서 ‘새드 걸 팝(Sad Girl Pop)’이라는 용어와 함께 해당 흐름을 구획화하려는 시도까지 보이는 상황이다. 케이티 페리를 필두로 한 희망차고 화려한 팝이 위세를 떨치던 10여 년 전 팝 시장에 비하면 결코 적지 않은 변화다.

왜 지금의 젊은 대중은 우울한 정서에 열광하는가

원인은 꽤나 복합적이다. 대부분의 변화가 그러했듯 음악 내부뿐 아니라 여러 사회, 문화의 흐름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우선 이러한 맥락의 배경을 음악 내부에서 찾아볼 때, 가장 먼저 지목돼야 할 이름은 역시 ‘팝의 여왕’ 테일러 스위프트다. < Speak Now >(2010) 이후 컨트리에서 팝으로 노선을 점차 전환한 테일러의 음악적 스타일은 그 진솔한 표현 방식과 함께 당시 젊은 리스너에게 팝의 지향점, 교과서적 존재로 간주되며 이후 음악 전반에 거대한 영향을 미쳤다. 올리비아 로드리고를 비롯 로드, 클레어오, 트로이 시반 등 팝의 수많은 주요 인물들이 테일러식 팝의 뒤를 따르며 지금의 감상주의적 시류가 만들어진 것이다. 단어 그대로 테일러 이전과 이후의 팝이 완전히 다른 영역에 있다고 말해도 어색하지 않다.

▶ (좌) 테일러 스위프트 / (우) 라나 델 레이

지금의 ‘포스트 테일러 스위프트 팝’에 테일러 다음으로 큰 영향을 준 인물인 라나 델 레이의 이력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스스로 ‘새드코어(Sadcore)’라 표현할 만큼 우울한 심상 묘사에 집중한 라나의 방법론은 팝이 더욱 적극적으로 정서 표현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며, 빌리 아일리시, 로드 등 이후 음악에 큰 파란을 일으킨 아티스트들에게도 분명한 견인이 됐다.

이들의 공적은 ‘새드 걸 팝’ 도래의 또 다른 배경인 인디 신과 메인스트림의 결합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영원한 인디 앨범이라는 별칭의 < Folklore >(2020)와 < Evermore >(2020)로 피비 브리저스, 본 이베어, 줄리엔 베이커로 대표되는 인디 포크, 챔버 팝의 질감과 인상을 대중화시키며 그 화학적 결합의 촉매 역할을 하였고, 한때 ‘힙스터의 여신’이라 불렸던 라나 델 레이는 메인스트림으로 자진 침투로 스스로 물리적 매개체 역할을 했다. 전자는 정상의 자리에서, 후자는 정상에 올라서며 장르의 경계를 허물어 낸 것이다.

이와 같은 개인의 노력도 분명한 영향을 끼쳤지만 인디 신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주요 요인은 단연 스트리밍 서비스의 대중화 및 고도화라는 시장의 흐름이다. 유저 성향에 맞춰 개인화된 알고리즘을 매개로 하는 지금의 스트리밍 구조는 듣는 이들로 하여금 다양하고 심도 높은 청취 경험을 제공하며 디깅 문화의 보편화와 함께 비주류 음악의 접근성을 한 차원 끌어올렸다. 인디 신은 이전보다 많은 소비층을 확보하며 더욱 넓고 두터워졌으며, 메인스트림과의 교류도 활발해져 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공유하는 선순환도 이어졌다. 그렇게 주류 팝은 인디의 감성을 장착했고, 인디 신은 메인스트림의 활기를 나눠 받게 됐다.

가라앉은 사회와 함께 침잠한 음악

상술한 주요 아티스트들, 인디 신의 영향도 물론 적지 않으나 가장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한 것은 결국 사회 분위기의 변화다. 경제적 저성장과 1인 가구의 증대, 그리고 SNS의 보급 및 대중화 등은 전반적인 사회의 분위기를 침체시켰고 이는 자연스레 슬픈 음악에 대한 수요로 이어졌다. ‘가장 많이 일하고 가장 적게 버는 세대’가 혼자 사는 것도 모자라, SNS를 통한 상대적 박탈감에도 손쉽게 노출되며 우울이 서식하기에 최적의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심지어 이에 더불어 코로나19라는 강력한 전염병까지 덮치며 사회적 교류마저 통제되자 그렇지 않아도 거대하던 우울은 곰팡이처럼 빠르게 사회 전반으로 번져 나갔다.

수많은 작품의 발매와 공연이 취소되고 연기되는 등 심각한 타격이 있기도 했으나 음악계는 변화한 기류를 기반으로 새로운 해답을 향해 나아갔다. 클레어오, 그레이시 에이브럼스, 리지 맥알파인(Lizzy McAlpine) 등 젊은 베드룸 팝, 포크 아티스트들이 우후죽순 등장했고, 테이트 맥레이, 걸 인 레드, 스티브 레이시, 코난 그레이 등 인디와 메인스트림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슬픈 정서를 주무기로 리스너들의 이목을 끌어당겼다. < How I’m Feeling Now >(2020)의 찰리 XCX나 < Big Time >(2022)의 엔젤 올슨(Angel Olsen) 등 기존 아티스트들 역시도 그들만의 새로운 방법론을 통해 우울함에 생명력을 주입하며 시대에 발을 맞추는 모습을 보였다.

비단 팝뿐만이 아니다. 타 장르를 포함한 다양한 방면에서도 이러한 움직임은 분명히 이어졌다. 우울이 크게 작용하는 인디 록, 포크는 유례없는 원동력을 얻었고 감정의 극단을 달리는 슈게이즈 장르가 인디 신을 중심으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기도 했다. 마초적인 장르로 통하는 힙합마저도 이모(Emo)의 감성을 끌어오며 이모 랩이라는 새로운 국면에 돌입할 만큼 음악계는 우울을 새로운 변화의 계기로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새로운 시대, 음악이 나아갈 길

청년들의 음악 청취에 대해 분석한 국내 연구(최희진, 2021)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조사 대상자들의 75%가량은 증가한 개인 시간을 통해 음악 플랫폼에 더 많이 접속하고, 새로운 음악을 발견하며 능동적으로 찾아 듣고 있었다. 또한 이들은 음악를 통해 스스로의 마음을 치유하고 성찰하며 감정을 공유하며 서로 소통하고 공동체의 의미까지 재발견하고 있었다. 음악계의 멱살을 잡고 흔든 위기 속에서 음악이라는 예술, 산업이 그 유연성을 발휘하며 스스로의 구조를 개편하여 새로운 경로를 설정하고 있던 것이다.

기쁨을 배로 나누던 팝은 이제 슬픔을 반으로 나눈다. 우울을 스스로 표현하고 공유할 때, 또 이를 받아들일 때의 카타르시스는 젊은 세대의 의식과 강하게 공명하며 이제 새로운 하나의 클리셰로 거듭났다. 늘 그랬듯, 음악이 새로운 답을 찾아낸 것이다. 우울의 차가운 빗줄기 이후, 팝의 땅을 단단히 굳힐 올리비아 로드리고와 젊은 아티스트들에게 많은 이들이 기대를 걸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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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절륜(絕倫)의 송라이터 로비 로버트슨(1943-2023)

The weight / Music From Big Pink (1968)
‘더 밴드’라는 무색무취한 이름은 밥 딜런과 관계한다. 로버트슨이 이끌던 록 밴드 더 호크스는 전기기타를 든 밥 딜런의 포크 록 시기에 동행했고, 점차 밥 딜런의 백 밴드(밥 딜런 앤 더 밴드) 이미지가 굳혀진 더 호크스는 자연스레 ‘더 밴드’가 되었다.

릭 당코와 리차드 마누엘, 로비 로버트슨과 가쓰 허드슨, 레본 헬름 5인이 조직한 더 밴드의 < Music From Big Pink > 음악만큼은 데뷔작이 무색한 완성도였다. 사이키델릭 록이 부흥했던 1960년대 말 루츠 록(포크와 블루스, 컨트리의 요소를 담은 록)의 역행도 깊은 음악성 덕에 설득력을 얻었다. 성경 속 인물 나자렛을 등장시킨 문학적 노랫말과 빈틈없는 악곡 전개는 밴드의 상징이자 루츠 록 걸작 ‘The weight’를 탄생시켰다. 많은 이들이 “곡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며 명성을 의문하나 ‘The weight’ 한 곡만으로 그 기준치를 뛰어넘는다.

Up on cripple creek / The Band(1969)
더 밴드는 소포모어 징크스를 허락치 않았다. 1969년 발매된 2집 < The Band >는 데뷔작 < Music From Big Pink >와 빅 브라더 앤 홀딩 컴퍼니의 < Cheap Thrills >(1968)을 제작했던 프로듀서 존 사이먼과 멤버들의 기량이 조화롭다. 남북 전쟁 속 남부 백인 하층민을 다룬 ‘The night they drove old Dixie down’과 가난한 농부를 이야기한 ‘King harvest (has surely come)’처럼 진중한 < The Band >에서 ‘Up on cripple creek ‘은 윤활유 역할을 한다. 키보디스트 가쓰 핸더슨의 클라비넷과 보컬 하모니가 음악평가 일 야노비츠(Il Janovitz)의 표현처럼 산뜻하고 캐치한 선율을 빛낸다. 구성원 대부분이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점은 더 밴드의 특징점이자 대표 키워드였다.

The shape I’m in / Stage Fright (1970)
무대공포증이란 뜻의 5번째 스튜디오 앨범 < Stage Fright >는 1970년대의 문을 활짝 열었다. 비교적 밝은 음향은 불안과 긴장을 담은 어두운 노랫말을 중화했고 앞의 두 앨범만큼 만장일치 호평은 못 받았지만 빌보드 200 5위를 획득했다. 싱글 컷 된 ‘Time to kill’의 B사이드 ‘The shape I’m in’은 빌보드 121위에 그쳤으나 무대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골든 레퍼토리가 되었다. 리처드 마누엘의 보컬과 로버트슨의 일렉트릭 기타, 가 핸더슨의 오르간 연주는 각자의 자리에서 은은한 빛을 내뿜음과 동시에 함께 쌓이며 다층성을 빚었다. 밴드의 유일한 미국인인 드러머 레본 헬름은 자서전 < This Wheel’s on Fire: Levon Helm and the Story of the Band >에서 곡을 자포자기(Desperation)로 정의하며 상기한 모순점을 부각했다.

Ophelia / Norther Lights Southern Cross(1975)
다른 뮤지션들을 커버한 4번째 정규 음반 < Moondog Matinee >(1973)은 색다른 시도였지만 완성도는 덜했다. 로버트슨의 작곡으로 독자성을 재확보한 1975년 작 < Norther Lights Southern Cross >는 또렷한 선율과 과하지 않되 안정적인 편곡과 프로덕션을 다시금 천명했다.

두 곡을 기억해야 한다. 캐나다 남동부 노바 스코샤의 분쟁 역사를 담은 ‘Acadian driftwood’와 ‘Ophelia’. < 인생 찬가 >로 알려진 미국 시인 헨리 롱펠로의 대표작 < 에반젤린 >에서 착안한 전자가 고든 라이트풋의 ‘The wreck of the Edmund Fitzgerald’처럼 문학적 서사를 둘렀다면 후자는 악곡 자체가 명징하다. 화려하지 않지만 건반악기와 관악기가 혼합된 맛깔나는 연주가 남부 재즈의 향취를 드리운다. ‘Ophelia’의 진가를 안 마이 모닝 자켓과 빈스 길 같은 후배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포크 록 명작을 리메이크했다.

Fallen angel / Robbie Robertson (1987)
조디 포스터 주연의 < 삐에로 프랭키 >(1980)와 로버트 드니로가 열연한 < 성난 황소(분노의 주먹) >(1980)처럼 사운드트랙 작업에 집중하던 로버트슨은 1987년 솔로 데뷔작 < Robbie Robertson >을 발매했다. 빌보드 200 38위와 캐나다 앨범 차트 12위를 수확한 < Robbie Robertson >엔 더 밴드 시절 동료 릭 당코와 가쓰 허드슨 뿐 아니라 보노를 비롯한 유투의 전 멤버, 최고의 재즈 편곡자 길 에반스와 프랭크 자파와 활동했던 드러머 테리 보지오, 채프먼 스틱이라는 독특한 현악기를 연주하는 토니 레빈 등 특급 지원군을 구성했다.

피터 가브리엘과 공연한 ‘Fallen angel’은 세심한 편곡과 프로덕션을 갖춘 명품 팝록이며 로버트슨과 가브리엘의 잔향이 동등하게 드러난다. 루츠 록 뮤지션 샘 라나스의 백보컬을 입힌 ‘Showdown at big sky’와 캐나다 프로듀서 겸 뮤지션 다니엘 라노이스가 참여한 ‘Somewhere down the crazy river’도 주목할 만하다. 스페인 재즈 퓨전 기타리스트 알 디 메올라는 < Robbie Robertson >을 가장 좋아하는 팝 록 앨범 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

Go back to your woods / Storyville (1991)
경력 내내 딕시랜드 재즈를 비롯한 남부 음악에 뿌리 뒀던 로버트슨 1991년 두 번째 정규 음반의 제목을 뉴올리언스의 유서 깊은 지역 스토리빌(Storyville)로 짓는다. 본격적인 재즈 음반으로 보긴 어렵지만 알렉스 아쿠냐(드럼)과 로니 포스터(해먼드 오르간)처럼 재즈에 기반한 세션 뮤지션을 기용해 악기 듣는 맛을 살렸다.

‘The way it is’의 주인공 브루스 혼스비와 듀엣한 ‘Go back to your woods’는 뉴올리언스 알앤비의 전설적인 뮤지션 워델 퀘제궤의 혼섹션과 펑크(Funk) 그룹 더 미터스의 창립자 아트 네빌의 오르간 연주가 흥겨움을 자아낸다. “스토리빌의 밤이 저물도록 여자들과 즐거운 시간을 못 보낸다면 음악이 대신 너를 흥분하게 할거야(When the night goes down on Stroyville, If the women don’t get you, then the music will get your trills)”란 가사가 곡의 생동감을 요약했다.

Theme for Irishman / The Irishman (Original Motion Picture Sound)(2019)
로버트슨은 영화 감독 마틴 스콜세지의 죽마고우였다. 더 밴드의 1978년 콘서트 < The Last Waltz >를 다큐멘터리로 만든 < The Last Waltz >(1978)에서 로버트슨은 사운드트랙 프로듀서를 역임했다. < 코미디의 왕 >(1983)과 < 컬러 오브 머니 >(1986) 등으로 지속된 협업의 마지막은 올해 10월 개봉 예정인 신작 < 플라워 킬링 문 >(2023)이었다.

로버트 드니로와 알 파치노가 출연한 2019년 작 < 아이리시맨 >의 메인 테마는 두 배우만큼이나 무게감 있다. 연륜과 품격을 담은 곡조엔 1930~40년대 미국 누아르의 고전미가 흘렀고, 프레더릭 요넷의 하모니카에서 레지 헤밀턴의 베이스로 이어지는 구성이 절묘하다. 배철수는 영화 음악에 활발했다는 측면에서 로버트슨을 랜디 뉴먼과 비교했다. 뉴먼은 < 토이스토리 >의’You’ve got a friend in me’ 등 픽사 애니메이에서 활약한 작곡가.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1943년생으로 나이가 같다.

국내에서의 인지도는 미약하지만 로비 로버트슨은 록 역사의 위대한 작곡가로 추앙 받으며, 그에 따른 관련 미디어가 많다. 캐나다 영화 감독 다니엘 로허가 연출한 다큐멘터리 영화 < 로비 로버트슨과 더 밴드의 신화(Once Were Brothers: Robbie Roberston And The Band >(2019)는 로버트슨의 2016년 회고록 < 증언 >을 기초로 했고 그의 내레이션도 들을 수 있다. 로버트슨의 음악 세계를 이해하는 지침서 역할을 할 것이다. 로버트슨의 마지막 정규 음반 < Sinematic >(2019)에 동명의 ‘Once were brothers’가 실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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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래시 메탈 명곡 13선(1)

메탈리카 – Master of puppets / Master Of Puppets(1986)
9회의 그래미 수상과 약 1억 2천 5백만장의 음반 판매고를 수확한 메탈리카는 어느 스래시 메탈 밴드도 범접할 수 없는 상업적 성과를 거뒀다. 스래시 인장을 땐 록으로 범위를 넓혀도 대중음악 역사상 위대한 밴드 중 하나로 꼽히는 이들은 2023년 현재에도 록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로 열정을 불사르고 있다.

< Kill Em All > 속 잠재력은 ‘For whom the bell tolls’와 ‘Creeping death’가 수록된 소포모어 작 < Ride The Lightning >의 소구력으로 수직 상승했다. 이 음반과 프로그레시브 메탈의 복잡한 구성으로 더욱 깊은 음악성을 표현한 4집 < And Justice For All….>(1987)은 때에 따라 최고작으로 꼽히기도 하나 상징성의 측면에서 3집 < Master Of Puppets >를 따라가기 힘들다. 스래시 메탈 불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이 음반으로 메탈리카는 메탈 최강자가 되었다.

거칠게 내달리는 오프너 ‘Battery’와 비장한 ‘Welcome home (sanitarium)’, 짜임새 있는 연주곡 ‘Orion’까지 완벽한 구성을 자랑한다. 앨범의 타이틀 곡 ‘Master of puppets’는 오랜 기간 공연 셋리스트의 피날레를 장식할 만큼 메탈리카를 상징하는 곡. 전율의 도입부터 으스스한 웃음소리의 결말에 이르는 8분 35초에 이르는 대곡 지향적 구성은 드림 시어터와 핀란드 심포닉 메탈 밴드 아포칼립티카 등 다양한 밴드들이 리메이크했다.

메가데스 Holy wars… the punishment due / Rust In Peace(1991)
메탈리카에서 쫓겨난 데이브 머스테인(Dave Mustaine)은 절치부심 이를 갈았다. 베이시스트 데이비드 엘렙슨(David Ellefson)과 결성한 메가데스의 1집 < Killing Is My Business… And Business Is Good! >(1985) 엔 메탈리카 ‘Four horseman’의 원곡 ‘Mechanix’를 수록하며 소심한 복수를 감행했다. 냉소와 자조 등 밴드의 정체성을 결정한 1986년 작 < Peace Sells… But Who’s Buying? > ‘Peace sells’와 ‘Wake up dead’, ‘The conjuring’으로 메탈리카와는 완연히 다른 음악색을 선보이며 진정한 리벤지에 성공했다. 쌍뱀처럼 절묘하게 엮어들어가는 머스테인과 크리스 폴란드(Chris Poland)의 기타 연주는 치밀한 악곡에 날개를 달았고 원년 멤버 엘렙슨은 저 유명한 ‘Peace sells’의 베이스 인트로와 리듬 섹션을 책임졌다.

2집으로 더 올라갈 고지가 안 보이는 듯했지만, 인스트루멘탈 록 밴드 캐코포니 출신 마티 프리드먼(Marty Friedman)의 영입은 메가데스를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안내했다. 1980년대 말 메탈 뮤직의 마지막 불꽃과 너바나의 < Nevermind >(1991)가 위시한 그런지 사이에 있는 1990년, < Peace Sells >와 더불어 밴드의 양대 명반으로 회자되는 걸작 < Rust In Peace >가 발매된다.

절정에 달한 머스테인의 곡 구성 능력에 마티 프리드먼의 동양적 선율을 얹은 음반은 인트로 곡 ‘Hangar 18’부터 숨 막힐 정도로 밀어붙인다. 기타리스트들에게 좌절감을 안겨준 속주곡 ‘Tornado of souls’와 재즈 퓨전 향취가 묻어나는 ‘Five magics’ 등 개성적인 곡들로 가득하지만 3부로 구성된 ‘Holy wars… The Punishment Due’는 메가데스 음악성 정점이다. 복잡하면서도 정교한 곡 전개와 이스라엘과 북아일랜드의 종교 갈등에서 모티브를 얻은 노랫말에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사운드가 어우러진 이 곡은 2023년 롤링 스톤이 선정한 ‘가장 위대한 헤비메탈 100곡’ 중 28위에 선정되었다.

슬레이어 – Raining blood / Reign in blood (1986)
DC코믹스 < 왓치맨 > 로어셰크의 음산함 풍기는 밴드 슬레이어는 확고한 콘셉트로 팬베이스를 다졌다. 사타니즘과 테러리즘의 주제의식에 맞물리는 미국 화가 래리 캐롤의 앨범 재킷은 어둡고 불길한 슬레이어만의 색채를 확립했다. 메탈계 최고의 드러머로 언급되는 데이브 롬바르도(Dave Lombardo)와 제프 한네만(Jeff Hanneman), 케리 킹(Kerry King)의 기타 듀오는 콘셉트를 받칠 굳건한 대들보였다.

2017년 롤링스톤에서 선정한 ‘가장 위대한 메탈 앨범’ 6위로 선정된 1986년 작 < Reign In Blood >는 1990년 작 < Seasons In The Abyss >와 더불어 이들의 명반으로 공인받는다. 롬바르도표 스피드 드러밍이 구현한 펑크 질감과 데스메탈의 광포(狂暴)를 접붙인 사운드는 탄탄한 송라이팅과 만나 스래시 메탈 마스터피스를 제창했다. 피비린내를 흩뿌리듯 사악한 기운의 ‘Raining blood’는 육중한 기타 리프와 톰 아라야(Tom Araya)의 보컬 퍼포먼스로 ‘Angel of death’와 더불어 앨범의 대표곡으로 남았다.

앤스렉스 – Caught in a mosh / Among The Living(1987)
슬레이어를 듣다가 앤스렉스를 접하면 ”이게 스래시 메탈이야?’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상기한 밴드들이 헤비급이라면 앤스렉스는 크루저급 혹은 라이트헤비급이랄까? 역설적으로 이 경량화가 차별점이 되었다. 스래시 메탈의 지나치게 진지하고 무거운 이미지에서 벗어나 능글맞고 유쾌한 사운드를 확립한 앤스렉스는 메탈이 ‘창궐’하던 1980년대의 몇 안 되는 메이저 밴드로 기록되었다.

실패한 1집 < Fistful Of Metal >(1984)를 끝으로 떠난 보컬리스트 닐 터빈(Neil Turbin)의 공석을 넓은 음역의 파워 보컬 조이 벨라도나(Joey Belladonna)가 채운 건 신의 한 수였다. 빌보드 200 113위에 오른 2집 < Spreading The Disease >(1985)로 전기를 마련한 앤스렉스는 2년 후 그들의 최고작으로 불리는 < Among The Living >을 발매한다. 드림 시어터의 전 드러머 마이크 포트노이(Mike Portnoy)의 존경을 는 실력파 드러머 찰리 베난테(Charlie Benante)의 기량을 만끽할 수 있는 이 음반은 ‘I am the law’와 ‘Indians’ 등 또렷한 멜로디와 대중성도 챙겼다. 박자 변화로 다이내믹스를 강조한 ‘Caught in a mosh’는 리듬과 선율을 동시 포획한 메탈 명곡이다.

판테라 – Cowboys from hell / Cowboys From Hell(1990)
판테라는 드림 시어터, 메탈리카와 더불어 가장 영향력 있는 1990년대 메탈 집단이다. 기타리스트 다임백 데럴(Dimebag Darrell)과 프론트퍼슨 필립 안젤모(Phillip Anselmo)의 원투펀치에 비니 폴(Vinnie Paul), 렉스 브라운(Rex Brown)의 리듬 섹션을 결합한 당시 판테라는 천하무적의 위용이었다. 스래시 메탈로부터 헤비메탈의 원초적 파워에 넘실대는 리듬을 더해 그루브 메탈을 모색한 이들은 특유의 카리스마와 뛰어난 연주력으로 메탈헤드를 규합했다.

멤버들이 흑역사로 여기는 1~4집을 지나 실질적 정규 데뷔 음반에 해당하는 1990년 작 < Cowboys From Hell >은 그루브와 스래시 메탈 양 진영에서 명반 대접을 받는다. 다임백의 면도날 기타와 리듬섹션의 유연성까지 확보했고 중간중간 뿌려주는 안셀모의 그로울링은 판테라의 상징이 되었다. 이 곡과 더불어 ‘Domination’, ‘Cemetery gates’ 등 수작을 포함한 < Cowboys From Hell >은 미국에서만 130만장에 육박하는 판매고를 올리며 < Vulgar Display Of Power >(1992)와 < Far Beyond Driven >(1994)으로 이어지는 전성기의 시발점을 끊었다. 현재 판테라는 필립 안셀모와 렉스 브라운의 원년 멤버에 오지 오스본의 기타리스트였던 블랙 레이블 소사이어티의 잭 와일드(Zakk Wylde)와 앤스렉스의 드러머 찰리 베난테와 함께 북미 투어를 진행중이다.

엑소더스 – Bonded by blood(1985)
1979년 캘리포니아 리치먼드에서 결성된 엑소더스는 미국 스래시 메탈 계의 상위 4개 팀만큼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엑소더스까지 껴서 빅5로 불러야 하는 것 아니냐?”, “앤스렉스 대신 엑소더스가 들어가야 한다” 등의 논쟁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메탈리카의 기타 플레이어 커크 해밋(Kirk Hammett)이 잠시 활동하기도 했던 엑소더스는 테스타먼트에 재적했던 스티브 소우자(Steve Souza)와 원년 멤버인 드러머 톰 헌팅(Tom Hunting) 기타리스트 게리 홀트(Gary Holt)의 라인업으로 2021년 < Persona Non Grata >까지 꾸준히 앨범을 발매했다.

스티브 소우자와 드러머 겸 리드 보컬 톰 헌팅, 현재 제너레이션 킬에서 활약 중인 롭 듀크스(Rob Dukes) 등 많은 보컬이 거쳐 갔지만, 최고작의 영광은 데뷔작 < Bonded By Blood >(1985) 이후 곧바로 해고된 폴 발로프(Paul Baloff)에게 돌아간다. 수록곡 대부분의 작사를 하기도 한 발로프의 정제되지 않은 가창은 열악한 레코딩과 맞물려 날 것 그대로의 질감이 확연하다. 혈맹을 의미하는 타이틀 곡 ‘Bonded by blood’는 가창보다 연기에 가까운 발로프의 보컬 퍼포먼스에 둔기를 연상하게 하는 블랙 사바스 풍 사운드를 장착했다.

오버킬 – Elimination / The Years Of Decay(1989)
1980년 미국 동부 뉴저지에서 결성된 오버킬은 보컬 바비 엘스워스(Bobby Ellsworth)와 베이시스트와 배킹 보컬을 겸하는 카를로 디디 베르니(Carlo “D.D.” Verni )를 중심으로 현재까지 활동 중인 장수 밴드다. 상업적 성과는 미약했지만 스래시 빅4와 더불어 장르의 기틀을 닦았다. 엘스워스의 폭넓은 보컬 레인지와 바비 구스타프손(Bobby Gustafson)의 빽빽한 기타 연주가 전체적인 완성도를 높였다.

1988년 작 < The Years Of Decay >는 전작들보다 한층 더 진화한 음악성으로 3년 후 발매한 < Horrorscope >와 더불어 밴드의 고점을 경신했다. 육중한 기타 톤에서 블랙 사바스의 영향이 감지되는 10분짜리 대곡 ‘Playing with spiders/skullkrusher’와 장엄한 분위기의 ‘Who tends the fire’ 등 대곡 지향적인 곡이 수록된 야심작이다. < The Years Of Decay >의 두 번째 트랙 ‘Elimination’은 메탈리카의 ‘Master of puppets’의 주요 리프와 닮았다는 결함에도 브레이크 장치 없이 몰아붙이는 직선 에너지가 강력하다.

이미지 작업: 백종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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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이 시대의 위대한 가수 토니 베넷(1926-2023)

2023년 4월 세상을 떠난 해리 벨라폰테에 이어, 또 한 명의 대중음악 거장이 세상을 떠났다. 미국을 대표하는 이지리스닝 싱어 토니 베넷은 말년에 알츠하이머병을 앓으면서까지 노래하며 생의 모든 연료를 음악에 소진했던 예술가요, 수 세대에 걸쳐 영향력을 지속한 국가대표 크루너(부드럽고 매끈한 창법의 가수)였다.

베넷이 갖는 동시대성은 장기간 활동으로만 설명될 수 없다. 노래를 향한 천착과 새로운 방향성 모색을 동력 삼아 쇄신을 거듭했다. 팝스타 레이디 가가와 함께한 두 장의 음반 < Cheek To Cheek >(2014) 과 < Love For Sale >(2021)은 연륜의 재확인이며 새로운 세대에 전하는 재즈 스탠더드의 매력이었다. < Cheek To Cheek >로 베넷은 자신이 갖고 있던 ‘최고령 빌보드 200 1위’ 기록을 경신했다.

다이애나 크롤과의 합작품 < Love Is Here To Stay >(2018)에서 ‘I got rhythm’과 ‘Love is here to stay’같은 조지 거슈윈의 작품을 리메이크한 베넷은 브로드웨이 음악과 틴 팬 앨리의 1920년대와 1960년대 사이 명곡을 모은 ‘그레이트 아메리칸 송북’에 몰두했다. 만 89세에 나이에 발매한 < The Silver Lining: The Songs Of Jerome Kern >(2015)은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의 뮤지컬 < 쇼보트 >의 음악가 제롬 컨을 소환했고, 1999년 작 < Bennett Sings Ellington: Hot & Cool >에서 듀크 엘링턴의 명 레퍼토리를 재조명하는 등 미국 대중음악사의 매개자 역할을 수행했다.

재즈 명장들과의 교류도 두드러졌다. 카운트 베이시 오케스트라와의 1959년 협연 < Strike Up The Band > 속 스윙과 보컬 재즈의 조화, 빌 에반스의 피아니즘과 베넷의 그윽한 음성으로 재탄생한 ‘My foolish heart’를 수록한 < The Tony Bennett/Bill Evans >(1975)가 대표적이다. 빌리 조엘과 입 맞춘 ‘New york state of mind’, 에이미 와인하우스와 신구 융화를 이룬 ‘Body and soul’도 경력을 수놓은 모멘텀들이다.

홀로 빛난 순간도 많다. 크리스마스 캐럴 음반의 고전으로 사랑받는 스테디셀러 < Snowfall: The Tony Bennett Christmas Album >과 1963년 제5회 그래미에서 올해의 레코드 상과 최우수 남자 보컬 퍼포먼스를 안겨준 <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 >(1962)와 이듬해 발매되어 빌보드 200 5위에 오른 < I Wanna Be Around >에서 오롯이 그의 음색과 가창을 느낄 수 있다.

종종 불꽃 같은 순간의 재능 폭발을 예술가에게 대입하곤 하나 토니 베넷은 그 반대에 있다. 칠십여 년간 음반을 냈고 무대에 섰다. 지속성과 헌신, 노력은 스무 개의 그래미 트로피와 5천만 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로 귀결했다.

사진 속 토니 베넷은 늘 웃음 짓고 있다. 폴 매카트니와 빌리 조엘을 비롯한 많은 후배가 그의 인품을 칭송할 만큼 푸근한 이미지는 듀엣 파트너와 듣는 이들에게 편안함을 가져다주었다. 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은 목소리로 대중에게 감동을 안겨준 위대한 가수 토니 베넷은 하늘 위에서도 인자한 미소로 후배 가수들과 가상 듀엣을 펼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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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

피프티 피프티 ‘Cupid’가 영미 차트에 명중한 음악적 이유를 쏘아보다!

피프티 피프티의 고공행진이 계속된다. 2022년 11월 내놓은 데뷔 음반 < The Fifty > 이후 발매한 첫 번째 싱글 ‘Cupid’의 이야기다. 이제 데뷔 6개월 차에 접어든 신인 그룹에, 국내에선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지만 해외 차트에서 먼저 이 곡을 알아보고 상위권에 올렸다. 숏폼 플랫폼 틱톡(Tiktok) 발, 바이럴이 인기의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프리 코러스 부분을 잘라 속도를 올린 스페드업(Sped up, Speed up의 준말로 노래의 속도를 빠르게 올린 음원) 버전을 중심으로 너른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위캔드 & 아리아나 그란데 ‘Die for you’, 핑크팬서리스 & 아이스 스파이스 ‘Boy’s A Liar, Pt. 2’, 코이 르레이 ‘Players’ 등 요새 차트를 수놓은 많은 히트곡이 틱톡의 수혜를 입는다.

하지만 틱톡에서 인기를 끈 곡이 다 차트 상위권을 순항하는 것은 아니다. 빠르게 순위권에 올랐다고 해도 그 수치를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Cupid’는 다르다. 천천히 끓어오르는 중이다. 지난 13일(현지 시각) 공개된 영국의 오피셜 싱글차트 톱 100에 8위로 안착하며 K팝 여성 아이돌 그룹 사상 가장 높은 성과를 내는가 하면, 9일(현지 시각) 미국의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선 19위, 16일(현지 시각)엔 전주보다 2계단 상승한 17위에 올랐다. 올해 2월 24일 발표한 곡으로 한 달여 만에 영미 차트 100위권 안에 오르고 이후 꾸준히 가속도를 냈다. 곡이 좋기 때문에 만들어진 성과다. 풀이하면 완성도 높은 노래였기에 틱톡의 수혜를 입을 수 있었다.

‘Cupid’가 영미권을 지나 세계 음악시장에 화살을 명중할 수 있었던 원인을 좇아본다. 핵심은 ‘음악’이며 그 시작은 ‘프로듀싱’에 있다.

기존 K팝과 다르게

유튜브 공개 2주 만에 1000만 조회수 달성을 앞둔 ‘Live in studio FIIFTY FIFTY’가 실마리다. 처음부터 해외 시장을 염두에 두고 곡을 썼다는 소속사 대표의 말처럼 ‘Cupid’는 한국어 버전과 랩 부분을 빼고 모든 가사를 영어로 쓴 트윈버전(Twin ver.)이 동시에 발매됐다. 영미 차트를 중심으로 외국인들의 관심을 쉽고 빠르게 받게 된 데에는 이 트윈버전의 역할이 컸다. 영상은 ‘Cupid twin ver.’을 멤버들이 직접 라이브로 부르는 장면을 담는다.

현재 이 영상의 제일 핫한 인기 댓글은 “오디오 엔지니어의 월급을 올려줘야 한다”이다. 소리의 톤이 부드럽고 믹싱이 훌륭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피프티 피프티는 데뷔 때부터 이 ‘부드러움’에 강수를 뒀던 그룹이다. 데뷔 음반 < The Fifty >의 대다수 곡 중 특히 타이틀 ‘Higher’가 그랬다. 이 편안함이 이들이 여타 K팝 그룹과 다른 점이었다. 한 번에 시선을 잡아끌 강한 사운드, 또 다른 유희 거리를 만들어 줄 세계관 없이 그룹은 “듣기 편한 음악이라는 것만으로도 현 K팝 신에서 돋보일 수 있는 위치를 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정확한 유효타였다.

이를 위해 이들이 포기한 것은 ‘가창력 어필 포인트’다. 강한 고음으로 내지르는 구간이 없다. 뉴진스의 ‘Ditto’, 트리플 에스의 ‘Rising’ 역시 일정 부분 힘을 뺀 음악이긴 하나 무게 중심이 ‘사운드 톤’에 쏠리지 않았다. 더하여 눈여겨 봐야 할 지점은 가창력을 부각하려 하지 않았음에도 그룹의 가창이 계속해서 관심을 끈다는 사실이다.

심심찮게 이들의 음악에서 197~80년대 뮤지션인 아바, 카펜터스의 향취를 느낀다는 후기가 이어진다. 또한, 메인 보컬 아란, 시오의 음색을 지목하는 댓글도 많다. 각각 중저음, 메조소프라노의 음역을 지닌 이들의 보이스 칼라가 그만큼 돋보인다. 래퍼 라인인 키나, 새나를 향한 애정 어린 후기도 많다. 즉, 각기 다른 음색에 저마다 출중한 보컬 실력을 지녔다는 거다. 보컬의 강조와 보컬에서의 강점. K팝 레드오션에서 그룹이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란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딘, 크러쉬, 예바(YEBBA)와 같은 요새 아티스트를 즐겨 듣는 그룹이 요즘 음악과는 다른 스타일을 들려주게 된 것은 프로듀싱이 의도한 효과일 가능성이 크다. 여러 차례 곡의 프로듀서 안성일(SIAHN)은 “노래 자체의 멜로디와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다른 부분을 최소화 시켰다”고 밝혔는데

그의 이러한 접근이 멤버들의 힘을 뺀 창법으로 이어지며 색다른 K팝의 창조로 이어졌다고 본다.   

디스코 팝을 넘어 그때 그 시절 버블껌 음악까지

이 색다른 K팝은 K보다 ‘팝’ 역사 쪽에 그 기원을 둔다. 현재 이들의 음악을 두고, 2019년 큰 인기를 끈 도자 캣의 ‘Say so’에서 비롯된 디스코팝 계열을 많이 인용하나 이는 반쪽짜리 해석이다. 물론 도자 캣처럼 틱톡을 통해 인기를 끌었고, 그의 음악처럼 소프트한 복고풍의 디스코 사운드를 근간으로 하고 있긴 하지만, ‘Cupid’는 디스코와 곁들여진 드럼 사운드에 귀 기울였을 때 더 맛이 사는 곡이다. 마치 기타 소리를 죽이고 몽환적이고 몽글몽글한 사운드를 들려준 존 메이어의 ‘New light’처럼 말이다.

따라서 굳이 ‘Cupid’의 사운드 핵심을 뽑자면 그건 소프트한 드럼이다. 날카롭기보다는 끝을 뭉툭하게 다듬은 드럼이 곡에 특유의 꿈결(dreamy) 같은 분위기를 완성시킨다. 또 하나 이들 노래가 쉽게 귀에 감기는 이유는 곡이 1960대부터 인기 끈 ‘버블껌 음악’을 떠오르게 한다는 데 있다.

버블껌 음악은 쉽게 말해 오늘날 아이돌 음악의 효시이다. 10대들이 하거나 또는 그들을 겨냥한 감각적인 음악을 뜻하는 말로 주로 10대들이 좋아하는 풍선껌(버블껌)처럼 달콤하고 쉬운 노래를 의미한다. 당시 굵직한 인기를 끌었던 몽키스, 오하이오 익스프레스를 거쳐 마이클 잭슨이 있었던 1970년대의 잭슨 파이브 등이 다 이 계열에 속한다. 그중 ‘Cupid’에게선 토미 로의 ‘Dizzy’, 아치스 ‘Sugar sugar’, 숀 캐시디 ‘da doo ron ron’ 같이 밝고 달콤한 향이 짙게 묻어난다.  

다시 말해, ‘Cupid’가 응축한 복고는 디스코에서 시작된다기보다 영미권의 그때 그 시절 아이돌 음악을 생각나게 한다는 점에 있다. 틱톡으로 흥한 모든 노래가 차트 상위권에 오르지는 못하지만 틱톡으로 빛을 본 음악은 더 많은 사람에게 가 닿을 가능성이 높다. 이를 뒷받침하듯 곡은 2030 이용자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스트리밍 사이트 스포티파이 데일리 톱송 차트에서 글로벌 4위 미국 8위 영국 10위에 오르는가 하면 연령층이 다소 높은 아이튠즈 다운로드 순위에서도 40위 권을 오르내리며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K팝 열혈 팬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다양한 연령층에게 고루 사랑받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만들어진 성공, 이유 있는 흥행

이들의 성공 옆에 붙는 ‘틱톡’, ‘바이럴’, ‘좋은 음악의 힘’과 같은 수식어는 정확히 만들어진, 의도된 성과이다. 서로 다른 음색을 지닌 멤버들을 모으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고, 그룹의 영어공부에 힘쓴 것은 물론, 이들을 관리하는 이준영 본부장(A&R 총괄), 김지훈 팀장(글로벌 PR 담당) 등을 모두 해외 프로덕션에 최적화 된 인물로 구축했다는 탄생 비화까지 모든 곳에 보이지 않는 땀방울이 묻어있다. 어쩌면 ‘Cupid’를 향한 가장 큰 상찬의 말은 ‘K팝인지 몰랐다’는 댓글일 수도 있다.

처음부터 국내보다 외수 시장을 위해 맞춘 곡으로 영어 발음까지 하나하나 교정해 만든 ‘Cupid’. 해외 유학 없이 전 멤버가 한국에서 자랐고, 이곳에서 꿈을 키운 이들이 일군 성과는 그래서 값지고 그렇게 더 체계적이었다. 현재 틱톡에 업로드된 ‘Cupid’ 관련 영상의 수는 200만 개가 넘는다. 안무를 따라 하고 곡의 일부를 각색해 만든 여러 리액션 비디오 속 인종과 나이대는 손에 잡을 수 없을 만큼 넓다. 이 평이한 댄스 라인과 가사까지 모두 의도된 작품이었다고 하니, 그들의 성공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기대된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중소돌의 기적. 이 흥행이 너무나도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