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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프티 피프티 ‘Cupid’가 영미 차트에 명중한 음악적 이유를 쏘아보다!

피프티 피프티의 고공행진이 계속된다. 2022년 11월 내놓은 데뷔 음반 < The Fifty > 이후 발매한 첫 번째 싱글 ‘Cupid’의 이야기다. 이제 데뷔 6개월 차에 접어든 신인 그룹에, 국내에선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지만 해외 차트에서 먼저 이 곡을 알아보고 상위권에 올렸다. 숏폼 플랫폼 틱톡(Tiktok) 발, 바이럴이 인기의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프리 코러스 부분을 잘라 속도를 올린 스페드업(Sped up, Speed up의 준말로 노래의 속도를 빠르게 올린 음원) 버전을 중심으로 너른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위캔드 & 아리아나 그란데 ‘Die for you’, 핑크팬서리스 & 아이스 스파이스 ‘Boy’s A Liar, Pt. 2’, 코이 르레이 ‘Players’ 등 요새 차트를 수놓은 많은 히트곡이 틱톡의 수혜를 입는다.

하지만 틱톡에서 인기를 끈 곡이 다 차트 상위권을 순항하는 것은 아니다. 빠르게 순위권에 올랐다고 해도 그 수치를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Cupid’는 다르다. 천천히 끓어오르는 중이다. 지난 13일(현지 시각) 공개된 영국의 오피셜 싱글차트 톱 100에 8위로 안착하며 K팝 여성 아이돌 그룹 사상 가장 높은 성과를 내는가 하면, 9일(현지 시각) 미국의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선 19위, 16일(현지 시각)엔 전주보다 2계단 상승한 17위에 올랐다. 올해 2월 24일 발표한 곡으로 한 달여 만에 영미 차트 100위권 안에 오르고 이후 꾸준히 가속도를 냈다. 곡이 좋기 때문에 만들어진 성과다. 풀이하면 완성도 높은 노래였기에 틱톡의 수혜를 입을 수 있었다.

‘Cupid’가 영미권을 지나 세계 음악시장에 화살을 명중할 수 있었던 원인을 좇아본다. 핵심은 ‘음악’이며 그 시작은 ‘프로듀싱’에 있다.

기존 K팝과 다르게

유튜브 공개 2주 만에 1000만 조회수 달성을 앞둔 ‘Live in studio FIIFTY FIFTY’가 실마리다. 처음부터 해외 시장을 염두에 두고 곡을 썼다는 소속사 대표의 말처럼 ‘Cupid’는 한국어 버전과 랩 부분을 빼고 모든 가사를 영어로 쓴 트윈버전(Twin ver.)이 동시에 발매됐다. 영미 차트를 중심으로 외국인들의 관심을 쉽고 빠르게 받게 된 데에는 이 트윈버전의 역할이 컸다. 영상은 ‘Cupid twin ver.’을 멤버들이 직접 라이브로 부르는 장면을 담는다.

현재 이 영상의 제일 핫한 인기 댓글은 “오디오 엔지니어의 월급을 올려줘야 한다”이다. 소리의 톤이 부드럽고 믹싱이 훌륭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피프티 피프티는 데뷔 때부터 이 ‘부드러움’에 강수를 뒀던 그룹이다. 데뷔 음반 < The Fifty >의 대다수 곡 중 특히 타이틀 ‘Higher’가 그랬다. 이 편안함이 이들이 여타 K팝 그룹과 다른 점이었다. 한 번에 시선을 잡아끌 강한 사운드, 또 다른 유희 거리를 만들어 줄 세계관 없이 그룹은 “듣기 편한 음악이라는 것만으로도 현 K팝 신에서 돋보일 수 있는 위치를 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정확한 유효타였다.

이를 위해 이들이 포기한 것은 ‘가창력 어필 포인트’다. 강한 고음으로 내지르는 구간이 없다. 뉴진스의 ‘Ditto’, 트리플 에스의 ‘Rising’ 역시 일정 부분 힘을 뺀 음악이긴 하나 무게 중심이 ‘사운드 톤’에 쏠리지 않았다. 더하여 눈여겨 봐야 할 지점은 가창력을 부각하려 하지 않았음에도 그룹의 가창이 계속해서 관심을 끈다는 사실이다.

심심찮게 이들의 음악에서 197~80년대 뮤지션인 아바, 카펜터스의 향취를 느낀다는 후기가 이어진다. 또한, 메인 보컬 아란, 시오의 음색을 지목하는 댓글도 많다. 각각 중저음, 메조소프라노의 음역을 지닌 이들의 보이스 칼라가 그만큼 돋보인다. 래퍼 라인인 키나, 새나를 향한 애정 어린 후기도 많다. 즉, 각기 다른 음색에 저마다 출중한 보컬 실력을 지녔다는 거다. 보컬의 강조와 보컬에서의 강점. K팝 레드오션에서 그룹이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란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딘, 크러쉬, 예바(YEBBA)와 같은 요새 아티스트를 즐겨 듣는 그룹이 요즘 음악과는 다른 스타일을 들려주게 된 것은 프로듀싱이 의도한 효과일 가능성이 크다. 여러 차례 곡의 프로듀서 안성일(SIAHN)은 “노래 자체의 멜로디와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다른 부분을 최소화 시켰다”고 밝혔는데

그의 이러한 접근이 멤버들의 힘을 뺀 창법으로 이어지며 색다른 K팝의 창조로 이어졌다고 본다.   

디스코 팝을 넘어 그때 그 시절 버블껌 음악까지

이 색다른 K팝은 K보다 ‘팝’ 역사 쪽에 그 기원을 둔다. 현재 이들의 음악을 두고, 2019년 큰 인기를 끈 도자 캣의 ‘Say so’에서 비롯된 디스코팝 계열을 많이 인용하나 이는 반쪽짜리 해석이다. 물론 도자 캣처럼 틱톡을 통해 인기를 끌었고, 그의 음악처럼 소프트한 복고풍의 디스코 사운드를 근간으로 하고 있긴 하지만, ‘Cupid’는 디스코와 곁들여진 드럼 사운드에 귀 기울였을 때 더 맛이 사는 곡이다. 마치 기타 소리를 죽이고 몽환적이고 몽글몽글한 사운드를 들려준 존 메이어의 ‘New light’처럼 말이다.

따라서 굳이 ‘Cupid’의 사운드 핵심을 뽑자면 그건 소프트한 드럼이다. 날카롭기보다는 끝을 뭉툭하게 다듬은 드럼이 곡에 특유의 꿈결(dreamy) 같은 분위기를 완성시킨다. 또 하나 이들 노래가 쉽게 귀에 감기는 이유는 곡이 1960대부터 인기 끈 ‘버블껌 음악’을 떠오르게 한다는 데 있다.

버블껌 음악은 쉽게 말해 오늘날 아이돌 음악의 효시이다. 10대들이 하거나 또는 그들을 겨냥한 감각적인 음악을 뜻하는 말로 주로 10대들이 좋아하는 풍선껌(버블껌)처럼 달콤하고 쉬운 노래를 의미한다. 당시 굵직한 인기를 끌었던 몽키스, 오하이오 익스프레스를 거쳐 마이클 잭슨이 있었던 1970년대의 잭슨 파이브 등이 다 이 계열에 속한다. 그중 ‘Cupid’에게선 토미 로의 ‘Dizzy’, 아치스 ‘Sugar sugar’, 숀 캐시디 ‘da doo ron ron’ 같이 밝고 달콤한 향이 짙게 묻어난다.  

다시 말해, ‘Cupid’가 응축한 복고는 디스코에서 시작된다기보다 영미권의 그때 그 시절 아이돌 음악을 생각나게 한다는 점에 있다. 틱톡으로 흥한 모든 노래가 차트 상위권에 오르지는 못하지만 틱톡으로 빛을 본 음악은 더 많은 사람에게 가 닿을 가능성이 높다. 이를 뒷받침하듯 곡은 2030 이용자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스트리밍 사이트 스포티파이 데일리 톱송 차트에서 글로벌 4위 미국 8위 영국 10위에 오르는가 하면 연령층이 다소 높은 아이튠즈 다운로드 순위에서도 40위 권을 오르내리며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K팝 열혈 팬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다양한 연령층에게 고루 사랑받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만들어진 성공, 이유 있는 흥행

이들의 성공 옆에 붙는 ‘틱톡’, ‘바이럴’, ‘좋은 음악의 힘’과 같은 수식어는 정확히 만들어진, 의도된 성과이다. 서로 다른 음색을 지닌 멤버들을 모으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고, 그룹의 영어공부에 힘쓴 것은 물론, 이들을 관리하는 이준영 본부장(A&R 총괄), 김지훈 팀장(글로벌 PR 담당) 등을 모두 해외 프로덕션에 최적화 된 인물로 구축했다는 탄생 비화까지 모든 곳에 보이지 않는 땀방울이 묻어있다. 어쩌면 ‘Cupid’를 향한 가장 큰 상찬의 말은 ‘K팝인지 몰랐다’는 댓글일 수도 있다.

처음부터 국내보다 외수 시장을 위해 맞춘 곡으로 영어 발음까지 하나하나 교정해 만든 ‘Cupid’. 해외 유학 없이 전 멤버가 한국에서 자랐고, 이곳에서 꿈을 키운 이들이 일군 성과는 그래서 값지고 그렇게 더 체계적이었다. 현재 틱톡에 업로드된 ‘Cupid’ 관련 영상의 수는 200만 개가 넘는다. 안무를 따라 하고 곡의 일부를 각색해 만든 여러 리액션 비디오 속 인종과 나이대는 손에 잡을 수 없을 만큼 넓다. 이 평이한 댄스 라인과 가사까지 모두 의도된 작품이었다고 하니, 그들의 성공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기대된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중소돌의 기적. 이 흥행이 너무나도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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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사카모토 류이치(1952-2023) 12 곡

지난 3월 28일, 일본 뮤지션 사카모토 류이치가 사망했다. 1970년대 중반부터 경력을 시작한 그는 서구권에 큰 영향을 미친 신스팝 밴드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와 솔로 활동을 겸하며 전자음악의 총아로 떠올랐다. < 마지막 황제 >와 <전장의 크리스마스 >의 영화음악과 앰비언트/클래시컬 뮤직을 아우르는 다작에도 균형감과 질적 수준을 놓치지 않았고 온 장르를 포용하는 융화 미학을 펼쳐갔다.

아시아 음악가들에게 용기를 준 이 입지전적 인물은 < 남한산성 >과 < 안녕, 티라노: 영원히, 함께 >의 사운드트랙을 맡아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투병 중 12개의 음악 일기를 고른 유작 < 12 >(2023)처럼 시작과 끝을 가로지르는 열 두 트랙으로 사카모토 류이치의 작품 세계를 회고한다.

사카모토 류이치 -Thousand knives / Thousand Knives(1978)
프리 재즈 타악기 주자 츠지토리 토시유키, 시티팝 거목 야마시타 타츠로와 협업하며 경험을 쌓은 사카모토 류이치의 1979년 작 < Thousand Knives >는 데뷔작이 무색한 완성도다. 벨기에 시인 앙리 미쇼의 < 비참한 기적 >의 첫 구절에서 제목을 딴 이 음반은 중국 문화대혁명의 기류를 서구 대중음악 음향에 담은 동서양 융합의 시발점이었다. 앰비언트 뮤직의 방향성을 암시한 ‘Island of woods’와 1960년대 피아노 재즈의 영향을 드리운 ‘Grasshopper’, 아기자기한 편곡의 ‘Plastic bamboo’가 돋보인다.

도입부 마오쩌둥의 낭독으로 선언적 성격을 띠는 9분짜리 타이틀 곡 ‘Thousand knives’는 롤랜드 808의 비트와 동양적 멜로디로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를 예견하나, 날이 서 있고 야심 차다. 클래시컬 뮤직 전공자로서 자연스레 커진 곡의 부피를 선율 감각과 사운드 디자인으로 메웠다. ‘Thousand knives’는 신시사이저 팝과 아날로그 피아노 연주 양 진영에서 놀라운 성취를 거둔 음악가의 출사표였다.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 – Tong poo / Yellow Magic Orchestra(1978)
< 베이비 드라이버 >를 연출한 영화감독 에드가 라이트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1978년 ‘Behind the mask’의 실황 영상으로 사카모토 류이치를 추모했다. 라이트뿐만 아니라 수많은 서구의 예술가는 동양인 삼인조의 전자 음향 마법에 심취했다. 에릭 클랩튼과 마이클 잭슨이 ‘Behind the mask’의 리메이크로 이들의 영향력은 요약된다.

그들 경력의 정점으로 인식되는 2번째 정규 음반 < Solid State Survivor >(1979) 만큼이나 데뷔작 < Yellow Magic Orchestra >는 신선했다. 게임 음악의 키치함을 의도한 ‘Computer games’와 ‘Firecracker ‘ 모두 톡톡 튄다. 사카모토가 작곡한 ‘Tong poo’는 동풍(東風)이란 곡명처럼 중국 음악을 연상하게 하는 멜로디에 각종 전자음을 합성했다. 호소노 하루오미의 베이스 기타 덕에 일렉트로-디스코 분위기도 묻어난다.

사카모토 류이치 – Saru to yuki to gomi no kodomo / Left-Handed Dream(1981)
1981년은 또 하나의 기념비적 해였다. ‘Ballet’과 ‘Music plan’을 수록한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의 수작 < BGM > 발매 8개월 만에 세 번째 정규 음반 < Left-Handed Dream >을 내놓았다. 전작 < B-2 Unit >(1980)에 비해 대중 친화적인 < Left-Handed Dream >은 소리와 언어 측면에서 동서양 화합을 표면화했다.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의 드러머 다카하시 유키히로와 뉴웨이브 밴드 M의 로빈 스콧 등 친한 동료를 섭외했고 일본 전통 악기에 신시사이저를 합성했다.

원숭이와 내리는 눈, 버릇없는 아이란 뜻의 ‘Saru to yuki to gomi no kodomo’는 몽롱한 키보드 리프에 아트 록 밴드 비-밥 디럭스 출신 빌 넬슨과 < Scary Monsters (And Super Creeps) >(1980) 시절 데이비드 보위의 배킹 트랙을 얹은 듯 신묘하다. 익스페리멘탈 록과 신스팝의 교배 ‘The garden of poppies’와 킹 크림슨의 중기 걸작 < Discipline >(1981)의 기타 연주자 에이드리언 블루가 참여한 ‘Relache’ 도 앨범의 개성을 압축했다.

사카모토 류이치 & 데이비드 실비언 – Bamboo houses / Non-album single(1982)
영국 신스팝 밴드 재팬의 리더 데이비드 실비언은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적 동반자였다. ‘Merry christmas Mr. Lawrence’를 각색한 ‘Forbidden colours’와 1991년 작 < Heartbeat >의 ‘Heartbeat (tainai kaiki II) 등 삼십 년 넘도록 협업이 이어졌다. 사카모토 류이치가 편곡과 연주로 참여한 데이비드 실비언의 네 번째 솔로 앨범 < Secrets Of The Beehive >(1987)도 챔버 록 명작으로 공인되었다.

재팬의 네 번째 스튜디오 앨범 < Gentlemen Take Polaroids >(1980)의 마지막 트랙 ‘Taking islands in Africa’에 이어 두 사람의 두 번째 콜라보로 기록된 ‘Bamboo houses’는 영국 싱글 차트 30위로 상업적 성과도 거뒀다. 실비언 특유의 근미래 적 혹은 공상과학적 소리샘에 오리엔탈 선율을 가미한 이 곡은 펭귄 카페 오케스트라와 엑스티시(XTC)의 음반에 참여한 스티브 나이의 프로듀싱으로 완성도를 더했다.

사카모토 류이치 – Merry christmas Mr. Lawrence / Merry Christmas Mr. Lawrence(1983)
일본 영화의 혁명아 오시마 나기사와의 만남은 필연적이었다. 데이비드 보위와 사카모토 류이치, < 소나티네 >의 기타노 다케시가 출연한 영화 < 전장의 크리스마스 >는 나기사 특유의 파격적 소재에 유려한 영상미를 둘렀다. 사운드트랙을 맡은 사카모토 류이치는 메인 테마 ‘Merry Christmas Mr. Lawrence’로 제37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주제가상의 영광을 안았다. 나기사와 사카모토 류이치는 사무라이 시대 동성애를 다룬 1999년 작 < 고하토 >로 재회했다.

유리창에 은구슬 떨구듯 몽롱한 ‘Merry Christmas Mr. Lawrence’는 일본군 장교 요노이(사카모토 류이치)와 영국 육군 소령에서 포로 처지가 된 자크 세리아즈(데이비드 보위) 사이의 기류를 낭만화한다. 반복적 리듬과 주요부를 중심으로 밀도를 높여가는 방식은 모리스 라벨의 무용가 ‘볼레로’와 닮았다.

사카모토 류이치 – Rain (I want a divorce) / The Last Emperor(soundtrack)(1987)
‘Merry Christmas Mr. Lawrence’와 더불어 국내에 가장 친숙한 선율의 ‘Rain (I want a divorce)’은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이탈리아 거장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영화 < 마지막 황제 >에 삽입되었다. 마이클 더글러스 주연의 < 블랙 레인 > 속 ‘Laserman’부터 국내에서 인기를 끈 <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의 ‘M.a.y in the backyard’까지 영화음악가의 정체성도 이어온 사카모토는 토킹 헤즈의 프론트퍼슨 데이비드 번과 함께 < 마지막 황제 >의 음악감독을 맡았다.

1987년 제60회 아카데미 시상식 주제가상을 받은 < 마지막 황제 >의 ‘Main theme (the last emperor)’는 번의 몫이었으나 사카모토 류이치의 ‘Rain (I want divorce)’도 못지않은 잔상을 남겼다. 마지막 황제의 둘째 부인 문수(비비안 우)의 결단과 해방감을 고전 음악으로 풀어낸 이 곡은 현악기 특유의 비장미를 살렸다. 후에 부드러운 피아노 독주 버전도 사랑받았다.

사카모토 류이치 – Amore / Beauty(1989)
피터 가브리엘과 폴 사이먼처럼 사카모토 류이치의 관심도 월드 비트로 향했다. 이기 팝과의 듀엣 ‘Risky’를 수록한 1987년 작 < Neo Geo >에서 1차 월드 비트 실험을 감행했고, 1996년엔 카보베르데 출신 싱어송라이터 세자리아 에보라와 브라질 음악의 거두 카에타노 벨로조와 함께 무지카 포풀라 브라질레이라(브라질 대중음악)에 전자음을 더한 ‘E preciso perdoar(당신을 용서하겠어)’를 발매했다.

비치 보이스의 브라이언 윌슨과 더 밴드의 로비 로버트슨, 캔터베리 신 아트록 밴드 소프트 머신의 로버트 와이어트 등 록계 거물들의 목소리를 담은 월드뮤직-신스팝 < Beauty >는 스페인 민속음악 플라멩코와 아트로비트로 다채롭다. “Good morning, good evening, where are you?(좋은 아침, 즐거운 저녁, 너는 어디에 있니?)” 의 간명한 언어에 라틴 뮤직과 일렉트로니카를 흩뿌린 ‘Amore’는 사카모토 류이치 식 퓨전의 하이라이트로 남았다.

사카모토 류이치 The sheltering sky theme / The Sheltering Sky(soundtrack)(1990)
사카모토 류이치는 ’21세기의 고전 음악 작곡가’란 칭호도 어울린다. 1983년 영화 < 스카페이스 >를 연출한 브라이언 드 팔마의 < 스네이크 아이즈 >(1998) 와 < 팜므 파탈 >(2002)에서 관현악 중심의 사운드트랙을 들려줬고, 중세음악을 구사하는 앙상블 단서리(Danceries)와 함께 < The End Of Asia >와 < Chanconette Tedesche >을 협업했다. 줄곧 바흐와 드뷔시를 언급한 그는 21세기 들어 관조적이고 세밀한 피아노 연주를 들려줬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와의 세 번째 협업인 < 마지막 사랑 >(1990) 속 ‘The sheltering sky’는 클래시컬 뮤직의 매력을 극대화했다. 선명한 현악 세션과 후렴구는 극 중 부부 포트(존 말코비치)와 키트(데브라 윙거)의 복잡미묘한 사랑 이야기를 청각화한다. 1990년 제48회 골든 글로브 최우수 음악상을 수상하며 영화음악가로서의 입지를 재확인했다.

사카모토 류이치 & 야마시타 요스케 & 빌 라스웰 – Chasin’ the air / Asian Games(1993)
일본 프리 재즈 피아니스트 요스케 야마시타와 자 워블, 아프리카 밤바타와 작업하며 레게의 분파 덥에서 일렉트로니카에 이르기까지 기묘한 경력을 쌓아온 빌 라스웰. 사카모토 류이치는 1993년 개성파 뮤지션 두 사람과 < Asian Games >를 합작했다. 믹 재거의 솔로 작 < She’s The Boss >(1985)에 참여했던 세네갈 출신 퍼커셔니스트 아이브 징이 아프로큐반 타악기 콩가를 연주했다.

1980년대를 걸쳤던 사카모토 류이치의 아프로비트 연구가 프리 재즈와 만나 더욱 불규칙적 형태를 빚었다. 아방가르드 재즈 ‘Asian games’와 허비 핸콕의 일렉트로를 오마주한 ‘Ninja drive’, 징이 퍼커션 울타리를 친 ‘Napping on the bamboo’ 등 퓨전 성향이 짙다. 사카모토 류이치가 요스케 야마시타와 공동 작곡한 ‘Chasin’ the air’는 긴박감 넘치는 퍼커션 공중에 어지러운 건반 연주를 흩뿌리며 앨범의 전위적 성격을 강조했다.

사카모토 류이치 – Psychedelic afternoon / Sweet Revenge(1994)
동시대성과 작품성의 공존은 말처럼 쉽지 않다. 대가들도 번번한 실패로 분루를 삼키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존 케이지, 존 루리가 참여한 실험작 < Heartbeat >(1991)로 90년대 문을 연 사카모토는 1995년 앨범 < Smoochy >로 질감은 다르나 후배 플리퍼스 기타나 피쉬만스같은 ‘젊고 감각적인’ 사운드를 구현했다. 시대 감응의 개가였다. 월드 비트와 다운 템포를 여유 있게 꾸려낸 1994년 작 < Sweet Revenge >는 카멜레온처럼 시시각각 변하는 음악성의 방증이다.

오랜 음악적 파트너이자 시티팝 명곡 ‘4am’의 오누키 타에코와 쟁글 팝 밴드 아즈텍 카메라의 로디 프레임 등 다채로운 음악가들이 힘을 보탰다. < 마지막 황제 > 사운드트랙에서 조우한 데이비드 번 작사의 ‘Psychedeic afternoon’는 보사노바 리듬에 리버풀 출신 신스팝 밴드 프랭키 고스 투 더 할리우드의 보컬 홀리 존슨을 담았다. “Psychedelic afternoon, let’s all sing a hippy tune(나른한 오후에 모두 함께 히피 노래 불러요)”라는 후렴구가 대중적이다.

사카모토 류이치- World citizen – I won’t be disappointed / Chasm(2004)
1990년대 중반 실내악 < 1996 >(1996)과 컨템퍼러리 계열 < BTTB >(1999), 앰비언트 성향의 < Comica >(2002)처럼 대중성과 먼 음반을 발표한 사카모토 류이치는, 2004년 1970년대 말 뉴욕의 전위적 음악 장르를 일컫는 노 웨이브의 대표적 밴드 DNA의 아르뚜 린지와 < Chasm >을 협업했다. 균열 혹은 수렁이란 뜻의 < Chasm >은 노이즈를 활용한 전자음악 글리치에 아날로그 피아노의 선율감을 덧대 거리감을 줄였다.

한국 래퍼 MC 스나이퍼와 함께한 대중적 넘버 ‘Undercooled’와 시종일관 긁어대는 글리치’Coro’ 앰비언트 ‘Chasm’ 가 하이브리드 정체성을 재확인했다. 2003년 EP < World Citizen >에 수록된 바 있는 ‘World citizen – I won’t be disappointed’는 미니멀한 일렉트로니카 텍스쳐에 수필 같은 데이비드 실비언의 읊조림과 피아노 연주를 곁들였다. 마리네티의 미래주의에서 착안한 1986년 작 < Futurista >의 차가움이 미래의 낙관으로 녹아내렸다.

사카모토 류이치 – Async / Async(2017)
2009년 작 < Out Of Noise > 이후 인후암으로 8년간의 공백기를 가진 사카모토 류이치는 19번째 정규 앨범 < Async >가 마지막 음반이 될 것임을 언급했다. 선물 같은 유작 < 12 >(2023)이 그 예견을 벗겨냈으나, 조화(Sync)의 강박에서 벗어나 소리와 음악을 향한 새로운 접근법을 도모한 < Async >은 음악 구도자의 초탈이다 . 피에르 셰페르의 뮤직 콩크레테(구체 음악)에 기원을 둔 필드 레코딩(자연음 혹은 인간의 음성을 현장녹음한 것)과 의도적 앰비언스가 병존했다.

거룩한 분위기의 ‘Andante’와 데이비드 실비언의 목소리를 담은 ‘Life, life’과 일본 전통 현악기 소리를 담은 ‘Honji’ 등 트랙마다 다른 구성을 취한 < Async >에서 흐름 혹은 일관성을 찾기 힘들다. 비동기라는 의미의 ‘Async’속 전위적이고 불친절한 사운드는 음악을 향한 새로운 세계관의 주제 의식을 반영했다.

이미지 작업: 백종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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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재즈의 거장 웨인 쇼터(1933-2023)

지난 3월 2일 재즈 색소포니스트 웨인 쇼터가 사망했다.1933년생이니 구십 가까운 노익장이었다. 선배인 찰리 파커나 존 콜트레인에 동년배인 소니 롤린스와 더불어 모던 재즈 역사상 가장 위대한 색소포니스트로 꼽히는 쇼터는 밴드 리더와 조력자를 오가며, 하드 밥과 퓨전 재즈를 아우르며 원대한 음악 세계를 구축했다. 웨인 쇼터의 역사는 곧 모던 재즈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50년대 말부터 시작된 경력의 대표작 7곡을 소개한다.

재즈 메신저스 – A night in Tunisia / A Night In Tunisia(1960)
위대한 드러머 아트 블래키를 중심으로 색소포니스트 행크 모블리와 트럼페터 케니 도햄, 피아니스트 호레이스 실버 같은 명인들이 거쳐간 음악 집단 재즈 메신저스는 삼십 년 넘게 장르의 전파자 역할을 수행했다. 1961년, 쇼터가 재적할 당시 재즈 메신저스는 당시로선 드물게 일본에서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디지 길레스피가 작곡한 ‘A night in Tunisia’는 많은 재즈 연주자가 레퍼토리로 연주하는 ‘스탠더드’가 되었고 클리포드 브라운과 덱스터 고든 등 여러 음악가가 각자의 개성을 담아냈다. 재즈 메신저스의 버전은 블래키의 활화산 같은 드러밍에 스타일리스트 리 모건의 트럼펫이 색소폰과 대화하듯 가락을 주고받는다. 재즈 메신저스에서 쌓은 경험은 경력의 밑거름이 되었다.

웨인 쇼터 – Speak no evil / Speak No Evil(1964)
깊고 푸른 빛에 쇼터와 일본 여성 테루코 나카가미를 담은 앨범 재킷이 도회적이다. 포스트 밥, 모달 재즈의 명작으로 인정받는 1964년 앨범 < Speak No Evil >은 재즈 명가 블루노트 레코드에서 1964년 발매되었다. 마일즈 데이비스의 두 번째 퀸텟에서 합을 맞춘 피아니스트 허비 핸콕과 콘트라베이시스트 론 카터에 트럼펫 연주자 프레디 허바드와 드러머 엘빈 존스의 드림팀을 구축했다. 코드 대신 모드를 사용하는 모달 재즈 ‘Speak no evil’은 인상적인 도입부를 매개로 하나둘 모드의 탑을 쌓아나간다. 사방팔방 흩어지는 대신 조금씩 공간을 확보하는 방식은 과유불급의 미학. 쇼터는 모던재즈의 핵심을 꿰뚫었다.

마일즈 데이비스 – Frelon brun / Filles De Kilimanjaro(1968 UK, 1969 US)
마일즈 데이비스 퀸텟은 재즈 역사상 가장 화려한 라인업으로 알려져 있다. 마일즈(트럼펫)를 중심으로 존 콜트레인(색소폰), 레드 갈란드(피아노), 폴 체임버스(베이스) 필리 조 존스(드러머)로 구성된 1기는 비밥 시대를 관통했고, 웨인 쇼터(섹소폰), 허비 핸콕(피아노), 론 카터(베이스), 토니 윌리엄스(드럼)의 2기로 포스트 밥과 재즈 록을 탐험했다.

쇼터는 < In A Silent Way >(1969), < Bitches Brew >(1969)와 같은 1960년대 말 재즈 혁명의 지원군이었다. 불어로 ‘킬리만자로의 소녀들’이라는 뜻의 1968년 음반 < Filles De Kilimanjaro >는 포스트 밥과 퓨전 재즈의 중간지대를 절묘하게 낚아챘고 ‘갈색 왕벌’을 의미하는 ‘Frelon brun’은 긴장감 넘치는 토니 윌리엄스의 리듬워크를 마일즈와 쇼터가 양분했다. 트럼펫과 색소폰의 소리 특질과 대조가 돋보인다.

웨인 쇼터 & 밀톤 나시멘토 – Tarde / Native Dancer(1975)
쇼터는 친구 허비 핸콕처럼 장르 탐험에 의욕적이었다. 존 맥러플린의 마하비시누 오케스트라, 칙 코리아의 리턴 투 포에버와 함께 삼대 퓨전 재즈 그룹으로 꼽히는 웨더 리포트로 활동하는 틈틈이 솔로작을 발표했다. 브라질 팝의 걸작 < Clube Da Esquina >(1972)의 밀톤 나시멘토와 합작한 1975년 작 < Native Dancer >는 재즈와 펑크(Funk), 라틴을 아우른 음악성으로 에스페란자 스팔딩과 어스 윈드 앤 파이어의 모리스 화이트에게 영감을 주었다. 포르투갈어로 오후를 뜻하는 수록곡 ‘Tarde’는 포근한 색소폰 음색과 나시멘토의 입체적인 목소리가 조화롭다. 두 거장의 여유로운 산책 같은 곡이다.

웨더 리포트 – Black market / Black Market(1976)
마일즈 데이비스의 재즈 록 걸작 < In A Silent Way >(1969)와 < Bitches Brew >(1969)에서 합을 맞춘 오스트리아 출신 건반 연주자 조 자비눌과 웨인 쇼터는 1971년 웨더 리포트를 결성했다. 여타 퓨전 재즈 밴드처럼 체코 베이시스트 미로슬라브 비투오스와 브라질의 퍼커셔니스트 에알토 모레이라 등 수많은 멤버들이 이합집산했으나 자비눌과 쇼터의 중심은 굳건했다. 재즈 베이스 계의 혁명아 자코 파스토리우스가 처음 참여한 1976년 작 < Black Market >은 빌보드 200 42위와 빌보드 재즈 앨범 차트 2위의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다. 동양적 선율을 가미한 ‘Black market’은 중후반부 색소폰으로 응축해 온 긴장감을 터뜨렸다.

스틸리 댄 – Aja / Aja(1977)
세련된 록 음악의 대명사와도 같은 스틸리 댄은 1972년 < Can’t Buy A Thrill >을 시작으로 1970년대 내내 수작을 배출했다. 페이건과 월터 베커 2인조에 다양한 스튜디오 뮤지션들을 초빙한 형태로 제작된 1977년 작 < Aja >는 ‘Peg’과 ‘Deacon blues’, ‘Josie’같은 팝적인 곡들로 빌보드 200 3위를 성취했다. 페이건의 지인이었던 한국인 ‘애자’에서 음반 명을 따온 재밌는 일화도 있다. 8분의 러닝타임에 스티브 개드의 드럼과 래리 칼튼 기타, 조 샘플의 키보드 연주를 담은 ‘Aja’는 쇼터의 테너 색소폰 솔로로 곡의 격조를 높였다. 쇼터가 참여한 앨범의 유일한 곡이기도 하다.

조니 미첼- The dry cleaner from Des Moines / Mingus(1979)
작가주의 포크 음악으로 알려진 조니 미첼의 촉각은 재즈로 향했다. 1972년 작 < For Your Roses >로 시작해 1976년 작 < Hejira >에 이르러 결실을 보았다. 독보적 포크-재즈 음반이었다. < Mingus Ah Um >(1959)을 남긴 재즈 사의 거인 찰스 밍거스와 협업한 1979년 앨범 < Mingus >는 밍거스의 마지막 흔적을 담았다. < Native Dancer > 이후 오랜만에 조우한 쇼터와 허비 핸콕, 자코 파스토리우스와 콩가 연주자 돈 앨리어스가 세션으로 참여했다. 자코의 베이스 연주와 직접 설계한 관악기 편곡이 두드러진 ‘The dry cleaner from Des Moines’는 웨더 리포트에서의 환상 하모니를 재현했다.

이미지 작업: 백종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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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라디오를 켜봐요] Vol. 5 – 이즘 에디터의 라디오 시그널

전성기는 지났다. 스마트폰의 중심으로 무수히 쏟아지는 영상 플랫폼과 OTT 서비스에 더 익숙한 젊은 층에게 ‘라디오’는 세대를 나누는 낡은 매체의 기준처럼 다가올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 오늘날에도 라디오는 수많은 팬과 함께 굳건히 존재한다. 매일 꾸준하게 습관처럼 챙겨 듣는 마니아부터 문득 향수에 젖어 다시금 찾아오는 방문객 그리고 그 아날로그적인 특색에 반해 접하기 시작하는 호기심 많은 입문자까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 작디작은 전파 속 흘러나올 음악과 이야기를 기다린다.

9년 전, 이즘에서 진행한 [라디오를 켜봐요] 시리즈의 마무리를 짓는다. 특집을 처음 시작할 때와는 많은 것이 바뀌었고 필자마저 전부 다르지만 저마다 라디오를 들으며 자라왔다는 사실만큼은 모두 같다. 저마다 추억과 애정이 꼬깃꼬깃하게 담긴 사연과 함께 이즘 필자들이 기억하는 ‘시그널 송’을 조심스레 소개한다. 자, 지금 이 주파수를 고정하기 바란다.

KBS 2FM 나얼의 음악세계 / 나얼 ‘Love dawn’
KBS 2FM에서 진행된 < 나얼의 음악세계 >를 들은 사람은 분명 흑인 음악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다지 유명하지도 않은 오래전의 알앤비를 묵묵히 틀어주던 나얼의 진행은 흑인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 이라면 버티기 힘들 정도로 지루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새벽엔 좋은 음악이 있었다. 나얼 솔로 정규 1집에 수록된 인스트루멘탈 ‘Love dawn’은 침전하는 기분을 음악으로 집중시키는 시그널이다. 이 곡의 차분한 사운드를 듣고 있으면 순수함을 향한 그날의 동경이 떠오른다. (김호현)

KBS 2FM 볼륨을 높여요 / 바버렛츠 ‘Summer love’
학업에 집중하리라 마음을 먹기만 하면 주변의 온갖 것들이 흥미롭게 느껴지고는 한다. 그래서 그랬을까, 저녁 식사를 마치고 펜을 집어들 때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KBS 2FM의 < 볼륨을 높여요 > 속 악동뮤지션 수현의 목소리는 애석하게도 매일같이 나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그렇게 들뜨는 마음을 애써 외면하다가도 수현과 바버렛츠의 ‘Summer love’가 방송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면 나는 손에 쥔 펜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넷의 산뜻한 하모니가 나의 결심을 번번이 무너뜨릴 만큼 달콤했으니까. (이승원)

MBC FM4U 태연의 친한 친구 / 텐시러브(Tensi love) ‘Cake house’
학창 시절 조용한 자습실에서 두근대며 문자 사연을 보내던 기억은 꽤나 강렬하다. 라디오를 처음 접했던 중학생은 당시 소녀시대 태연이 진행하던 MBC FM의 < 친한 친구 >에 사연을 보냈고 설레는 마음을 안고 MP3 이어폰으로 전파를 찾았다. 흘러가는 야간 자율 학습 중에 3부 오프닝 곡 텐시러브의 ‘Cake house’가 흘러나왔고 무료한 시간을 버티게 해준 청취 이후에도 기계음으로 가득한 초창기 일렉트로니카 음악을 자주 흥얼거리곤 했다. 비록 사연은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라디오가 주는 동시성과 생동감은 특별한 경험으로 남았다. (손민현)

KBS 클래식FM 세상의 모든 음악 / 마이크 배트(Mike Batt) ‘Tiger in the night’
모 뮤직바 사장님의 단골 질문은 “< 세상의 모든 음악 > 알아요?”다. 마침 질문받을 당시 늘 듣던 종류 밖의, 클래식, 재즈 외 다른 여러 나라의 음악이 궁금하던 차였다. 덕분에 그 이후 오후 6시면 KBS 클래식FM을 찾았다. 시그널 음악은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마이크 배트(Mike Batt)가 작곡하여 로열 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Tiger in the night’. 하프와 오보에, 클라리넷이 두런두런 모이는 모양은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는 DJ의 변함없는 인사말과 어울린다. 얼마 전, 사장님은 나와는 오래 보는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건네왔다. 새삼스러웠다. 같은 주파수로 접어들 때마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여러 수단 중에서도 라디오는 밤의 호랑이처럼 여전히 밝게 빛나고 있다. (신하영)

KBS 2FM 이기광 가요광장 / 데이비드 포스터(David Foster) ‘Winter games’
노래 듣는 것에 권태를 느낄 때는 라디오로 기분을 환기하곤 한다. 운이 좋으면 취향을 저격하는 음악을 발견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근황을 듣거나 새로운 정보를 얻기도 한다. < 이기광의 가요광장 >은 점심시간에 편안한 목소리와 트렌디한 선곡으로 라디오로서 역할은 물론 연예계 활동으로 다져온 입담을 통해 재미까지 놓치지 않는다. 하루 중 가장 생기 있는 시간대에 걸맞게 시그널 송은 위대한 작곡가 데이비드 포스터의 19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 주제가 ‘Winter games’를 사용한다. 시카고의 ‘Hard to say I’m sorry’, 휘트니 휴스턴의 ‘I will always love you’ 등 그의 수많은 대표곡에 비하면 덜 유명하지만 파워풀한 건반은 태양이 가장 높이 떠 있는 시간에 울려 퍼져 활력을 더한다. (백종권)

SBS 러브FM 정엽의 LP카페 / 정엽 ‘회전목마’
레코드판을 수집하는 입장에서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 이름이다(DJ와 같은 ‘엽’자를 써서 그런 것도 있지 않을까). 개인 소장 바이닐을 가지고 실제로 공개 방청까지 다녀왔다. 턴테이블을 통해 음악을 틀어준다는 것과 더불어 다양한 라이브 무대가 특징이다. 디제이가 가수인 점을 살려 오프닝 시그널은 정엽의 노래가 SBS 러브FM의 103.5 MHz를 타고 매일 밤 저녁 6시 5분에 흘러나온다. ‘회전목마’라는 제목에 맞춰 놀이공원에서 들릴 법한 도입부 뒤 분위기는 잔잔하게 가라앉으며 진행자의 목소리와 프로그램의 무드에서 일맥상통하는 따스함이 전파를 타고 단번에 퍼진다. 아날로그, 라디오, LP, 음악, 뉴트로, 레트로. 옛것이 현재로 돌아온 지금의 대중문화를 반영해 그 시절의 자글거리는 감성을 간직했다. 오늘도 ‘카페’에 들러 음악 한 모금을 마신다. (임동엽)

KBS 1FM 생생 클래식 / 모차르트(Mozart) ‘The London sketchbook, K.15a’
누군가의 우아함을 사모하다 덩달아 고상해지는 경우가 있다. KBS TV < 특파원 보고 세계는 지금 >의 열혈한 애청자인 나는 유려한 말솜씨를 가진 진행자 윤수영 아나운서를 동경하게 됐고 곧 그가 KBS 1FM < 생생 클래식 >의 오랜 MC라는 걸 알게 됐다. 정오를 알리는 이 라디오는 모차르트가 런던에 머물 동안 쓴 스케치 시리즈로서 제목이 없어 a부터 ss번까지 문자로 대신해 부르는 희유곡의 ‘K.15a’를 시그널로 삼았다. 영국의 지휘자 네빌 마리너의 통솔 아래 관현악기가 수다스럽게 빗발치며 한낮의 태양을 환희한다. 가끔 삶을 축복하고 싶을 때 들을 만한 음악이 추가됐다. 타인의 기품, 다정함, 전문성을 닮고 싶어 맞춰 놓은 주파수가 클래식 문외한에게도 취향이란 걸 심어주었다. (박태임)

MBC FM 임국희의 팝스퍼레이드 / 러브 언리미티드 오케스트라(Love Unlimited Orchestra) ‘Love’s theme’
1980년대 중반, 매일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MBC FM에서 방송된 < 임국희의 팝스퍼레이드 >는 나에겐 반 토막 프로그램이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면 1부는 듣지 못했기 때문에. 아나운서 출신인 임국희 디제이의 약간 냉정한 진행과 선곡되는 노래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시원한 현악기로 시작하는 시그널 음악이 마음에 들었다. 이 곡은 저음으로 유명한 소울 가수 배리 화이트가 이끌었던 러브 언리미티드 오케스트라(Love Unlimited Orchestra)의 초기 디스코 스타일의 ‘Love’s theme’이다. 내가 주말을 기다렸던 이유 중 하나는 정각 오후 4시에 세련된 이 음악을 들을 수 있어서였다. (소승근)

MBC FM4U 세상을 여는 아침 최현정입니다 / 타카피 (T.A.-COPY) ‘케세라세라’
새벽 다섯 시. 하루를 온전히 마무리한 퇴근자의 안도와 이른 출근길의 불안과 설렘이 뒤섞이는 지점에 ‘세상을 여는 아침 최현정입니다’가 있었다. 아나운서 최현정은 특유의 나긋한 목소리로 각자가 지닌 선을 이어주며 청취자를 다독였다. 무엇보다 생각이 깊어질 무렵. 펑크 밴드 타카피가 부른 2부의 여는 곡 ‘케세라세라’는 직선적이고도 흥겨운 리듬으로 고민에 빠진 이들을 ‘될 대로 돼라’며 응원했고 작곡 학원에 다니고자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초짜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생에게 더할 나위 없이 큰 격려가 됐다. 오랜 세월이 지나 잠시 잊고 있었지만 불현듯 떠오른 그때의 온도와 풍경이 여전히 생생하다. (손기호)

CBS FM 한동준의 FM POPS / 어 플록 오브 시걸스(A Flock Of Seagulls) ‘Space age love song’
중학교 시절 처음 접한 CBS 음악FM의 < FM POPS >는 도회적이었다. 디스크자키 김형준의 쿨함은 저녁에서 밤으로 넘어가는 서늘한 시간과 어울렸고 프로그램이 소개한 레벨 포티투(Level 42)의 ‘Love games’ 덕에 퓨전 재즈와 소피스티-팝에 매혹되었다. 나른한 오후 2시를 유쾌 상쾌로 깨우는 < 한동준의 FM POPS >에 이르기까지 방송의 시작을 알리는 노래는 같았다. 리버풀 출신 뉴웨이브 밴드 어 플록 오브 시걸스의 ‘A space age love song’은 신시사이저와 각종 소리 효과, 펑키(Funky) 기타의 합세로 가슴을 두드렸다. 제목처럼 공상과학적 사운드스케이프였다. 리드 보컬 마이크 스코어의 헤어스타일을 비롯해 멤버들의 패션도 시각적이었다. (염동교)

MBC FM4U 배철수의 음악캠프 / 비엔나 심포닉 오케스트라(Vienna Symphonic Orchestra) ‘(I can’t get no) satisfaction’
나에게 ‘Satisfaction’은 롤링 스톤즈가 아니라 비엔나 심포닉 오케스트라의 곡이다. 당연히 < 배철수의 음악캠프 > 때문이다. 해외 음악을 접하겠다는 일념으로 무턱대고 라디오를 듣게 되면서 ‘Satisfaction’은 내 안에 오프닝 시그널 송으로 먼저 뿌리를 내렸다. 마치 ‘헛, 둘, 셋’처럼 들리는 인트로부터 위트 넘치는 베이스, 현란한 현악 연주가 차례로 날리는 일격에 당하고 나니 나중에 찾아 들은 원곡과는 친해질 수가 없었다. 사실 오케스트라 버전도 2분 30초를 넘어가면 마치 마스크 벗은 맨얼굴을 처음 보는 느낌이다. 배철수 DJ의 “출발합니다!” 없이는 영 어색하다. (한성현)

MBC FM4U 푸른밤 종현입니다 / 샤즈(Shazz) ‘Heaven’
자정이 되기 직전 끝난 야간 자율 학습, 지친 하루가 끝나면 기숙사 룸메이트는 MP3로 라디오를 틀었다. 시그널송 샤즈(Shazz)의 ‘Heaven’으로 시작하는 MBC FM4U < 푸른 밤 종현입니다 >. 피아노 선율이 이끄는 포근한 재즈 사운드는 오늘과 내일 사이의 아늑한 공간으로 초대했다. 매일 도착하는 사연들과 그들의 고민을 함께 나누는 목소리는 다정하고 진중했다. 라디오는 늦은 새벽까지 공부할 때면 적막한 틈을 메웠고,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우리의 또 다른 친구가 되기도 했다. 여전히 ‘Heaven’을 들으면 3년 동안 자정을 지켜줬던 DJ의 사려 깊은 말들이 떠오른다. (정수민)

MBC 표준FM 강석, 김혜영의 싱글벙글쇼 / 폴 모리아(Paul Mauriat) ‘Please return to Pusan port’
몇몇 기억은 어렴풋한 흔적으로 시작해 평생을 함께하는 문신이 된다. 어린 시절 차에 타기만 하면 뒷자리로 꾸물꾸물 넘어가 어머니에 기대 누운 채 그 조용한 떨림을 만끽하며 한가로이 졸던 나는 부모님이 즐겨 듣던 라디오 < 강석, 김혜영의 싱글벙글쇼 >의 시끌벅적한 만담을 자장가로 삼곤 했다. 1984년 출항을 알린 이 장수 프로그램의 시그널은 프랑스의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폴 모리아가 첫 내한을 앞두고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경음악으로 편곡한 버전이다. 아직도 그 도입부만 들으면 강석과 김혜영의 힘찬 오프닝 멘트와 함께 여러 광경이 산발적으로 떠오른다. 반쯤 감긴 시야 너머로 핸들을 잡고 계신 아버지의 커다란 뒷모습, 앞유리창에 부딪혀 사방으로 퍼져 나가던 햇살, 그 사이를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가로수까지. 원곡의 쓸쓸함이나 편곡의 경쾌함보다 내게는 기분 좋은 포근함으로 기억되는 이유다. (장준환)

MBC 표준FM 이윤석, 신지의 싱글벙글쇼 / 코요태 ‘순정’
인생 절반 이상을 < 싱글벙글쇼 >로 써 내려간 강석과 김혜영, 30년 넘는 세월의 호흡을 단숨에 이어받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전설을 고스란히 따라갈 수는 없는 법. 진행자를 교체해가며 방향을 잡아간 지 10개월이 지난 2021년 3월 뜻밖의 시그널이 울려 퍼졌다. 우렁찬 말 울음소리와 함께 ‘디스코 타임’을 알리는 코요태의 명곡 ‘순정’, 혼성 콤비의 부활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원곡자인 신지와 개그맨 정준하는 시트콤 < 거침없이 하이킥 >에서 이미 연기로 합을 맞춰본 만큼 재치 넘치는 만담으로 점심시간을 달궜고 20여 년 전 인기곡까지 소환하며 청취자층을 폭넓게 끌어안을 수 있었다. 2022년 9월부터 정준하 대신 동료 이윤석이 신지와 함께하고 있는 ‘최장수 라디오 프로그램’은 여전히 그 시절 그리고 오늘날의 순정을 담아 유쾌한 전파를 날리고 있다. (정다열)

MBC 표준FM 조PD의 비틀즈 라디오 / 루카 콜롬보(Luca Colombo) ‘Blackbird’
< 조PD의 비틀즈 라디오 >와 함께한 새벽 두 시는 불투명한 미래가 주는 압박에서 잠시나마 자유로워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심야 라디오가 지닌 포근함이 심적 안정을 제공했고 우상으로 삼았던 비틀스의 음악에 집중할 수 있어 더없이 아늑했다. 매일 밤 리버풀 청년들의 위대한 유산을 소개해준 조정선 디제이는 최고의 명사였으며 방송의 문을 연 폴 매카트니의 걸작 ‘Blackbird’는 잠 못 드는 새벽 네 명의 비틀과 나를 이어준 징검다리가 되었다. 원곡과 달리 찌르레기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프로그램 시그널은 이탈리아 기타 명인 루카 콜롬보의 핑거스타일 커버 곡을 사용했다. (김성욱)

SBS 파워FM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 / 제프 & 마리아 멀더(Geoff & Maria Muldaur) ‘Brazil’
기타 반주가 한쪽 귀를 어루만지며 시작한다. 휘파람과 함께 모든 세션이 합쳐지면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라는 나긋나긋한 오프닝 멘트가 들린다. 기분 좋은 아침을 만드는 음악과 목소리. 테리 길리엄의 영화 < 브라질 >의 삽입곡인 제프 & 마리아 멀더 부부의 ‘Brazil’은 암담한 회색 도시에 내리쬐는 따스한 한 줄기 햇살이 잘 표현된 곡이다. <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 > 또한 빌딩 숲에 둘러싸인 채 바쁘게 살아가는 이들의 편안한 쉼터다. 수더분한 말씨로 사연을 읽어주는 ‘아침창 아저씨’ 김창완과 부드러운 포크 ‘Brazil’의 오랜 동행은 20년 넘게 이어져 지금까지도 순조롭다. (김태훈)

MBC FM4U 4시엔 윤도현입니다 / 윤도현밴드(YB) ‘오늘은’
윤도현의 목소리는 멋지고 입담도 화려하다. 하지만 < 4시엔 윤도현입니다 >를 처음 들었을 때 무엇보다 내가 반긴 건 시그널 송 ‘오늘은’이었다. 11년 전 중학교 시절 처음 듣고 자유분방한 가사에 반한 ‘오늘은’. 경쾌하면서도 어딘가 나른한 데가 있는 이 노래를 하교 후 해가 지기를 기다리며 4시에 들었는데 11년이 지난 지금 똑같은 시간, 우연히 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 4시엔 윤도현입니다 >에서는 노래가 보컬 없이 반주만 나온다. 그래서 열심히 대본을 준비했을 윤도현 디제이와 작가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프로그램이 시작할 때면 오프닝 멘트는 깡그리 무시하고 왕왕대는 기타 연주에 맞춰 그저 이 노래의 벌스(Verse)를 읊조리곤 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YB의 곡도 ‘오늘은’이지만 윤도현도 가장 아끼는 곡이 ‘오늘은’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묘한 유대감이 든다. (이홍현)

정리 : 장준환
이미지 편집 : 백종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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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셀럽이 사랑한 Bag & Shoes 전시회 강연 – 팝 역사의 거목들과 그들의 음악스타일

대중문화는 종종 고급문화와 비교되며 천대받곤 한다. 관련 전시회도 상대적으로 적다. 문화 예술 관련 방대한 컬렉션을 자랑하는 이랜드 뮤지엄의 < 셀럽이 사랑한 Bag & Shoes >는 마이클 잭슨과 마이클 조던 같은 대중문화 기라성의 소장품으로 화제를 모았다. 임진모 음악평론가의 강연< 팝 역사의 거목들과 그들의 음악스타일 >는 < 셀럽이 사랑한 Bag & Shoes >의 대중음악 부문에 깊이를 더했다.

1980년대 대중문화는 두 MJ가 요약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 평론가의 표현대로 마이클 조던은 흑인을 뛰게 했고, 마이클 잭슨은 흑인을 춤추게 했다. 최고의 농구 실력과 카리스마로 GOAT(Greatest Of All Time)가 된 조던은 이름을 딴 브랜드로 파급력을 지속했다. 마이클 잭슨은 전 연령 다인종 팬덤을 이룩했다. 마빈 게이나 스티비 원더도 이루지 못한 성과였다. 두 MJ는 시대를 통합했다.

21세기 미디어는 20세기 명곡에 주목한다. 케이트 부시의 1986년 작 ‘Running up that hill (A deal with god)’은 미드 < 기묘한 이야기 >에 힘입어 빌보드 핫 100 3위를 역주행했고,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 사운드트랙은 아예 7080 팝 명곡을 긁어모았다. 전시회장에도 영화 < 록키 3 > 수록곡인 서바이버의 ‘Eye of the tiger’가 흘렀다. 젊은 세대들에겐 새롭고 기성세대의 향수를 자극했다.

대중음악 노랫말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밥 딜런과 아프리칸 아메리칸의 음악 유산인 가스펠과 블루스를 대중음악에 녹인 레이 찰스. 데뷔 앨범 < Ramones >(1976) 로 펑크(Punk) 록의 상징이 된 라몬즈와 클래식과 재즈를 도입한 프로그레시브 록의 대표 밴드 핑크 플로이드의 손때 묻은 소장품을 만났다. 대중음악의 계보도가 그려지는 굵직한 이름이다.

대중음악은 시대를 읽는 열쇠다. 마빈 게이는 < What’s Going On >(1971)은 베트남전을 논했고 빌리 홀리데이의 ‘Strange fruit’은 인종 차별을 꿰뚫었다. 2000년대 초 라틴 음악의 인기엔 미국의 경제 호황과 히스패닉의 구매력에 연결된다.

핑크 플로이드의 명반 < The Dark Side Of The Moon >(1973)를 좋아한다는 이십 대 청년은 “본 전시회를 통해 대중음악의 폭넓은 이해를 고대한다”라고 했다. 프랭크 시나트라와 아레사 프랭클린부터 올해 그래미 최다수상자에 등극한 비욘세와 21세기의 알파걸 레이디 가가를 아우르는 < 셀럽이 사랑한 Bag & Shoes >는 세대 간 교류를 내포했다.

취재: 염동교, 백종권
사진: 백종권
정리: 염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