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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 시런(Ed Sheeran) ‘-‘(2023)

평가: 3.5/5

무언가를 덜어내기란 늘 어렵다. 아무리 세계를 호령한 팝스타 에드 시런일지라도, 이 잔혹할 정도로 공평한 명제 앞에서는 한없이 평범해지기 마련이다. 수수한 덧셈으로 시작해 한껏 곱하고 나누며 쉴 새 없이 쌓고 압축하기를 반복하던 10년의 대장정은 < = >와 함께 마무리되었지만, 그 기나긴 수식 어디에도 유독 뺄셈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만큼 ‘빼기’라는 기호가 가진 의미와 무게는 성공 가도가 가리키는 방향과 정반대에 위치했다.

데미안 라이스의 후예를 자처하며 통기타 한 대를 들고 나타난 앳된 야심가는 어느덧 거장의 칭호마저 탐낼 높은 위치까지 올라섰다. 그렇기에 마지막 남은 퍼즐, ‘덜어내기’의 과업을 달성하려는 에드 시런의 자세는 더욱 진중하다. 지금껏 쌓아 올린 성취의 모래탑을 다시 깎아내어 초심의 깃발을 발굴하려는 진정한 윤회. 본인의 근간을 이루던 잔잔한 어쿠스틱 사운드와 부드러운 목소리만을 남기는 고된 해체 작업이 시행된다.

꾸밈없는 구성으로 진중하고도 강인한 의지를 드러내는 ‘Boat’와 ‘Salt water’를 지나, 산뜻한 스트링 사운드 위로 고조를 찬찬히 녹여내는 ‘Eyes closed’까지. 시작부터 정갈하고 투박한 포크 팝으로 연신 펀치를 꽂아 넣는 모습에서 고심의 흔적이 포착된다. 작법과 재료 모두 오렌지색 전경으로 차분히 세상을 관찰하던 < + >와 닮아 있지만, 울림의 세기가 좀체 남다른 이유다. 과거 호기롭던 이십 대 에드 시런이 아닌, 인생의 희로애락과 숱한 경험을 모두 거친 오늘날 에드 시런의 시선에서 다시 써 내려간 일기장은 지난 세월만큼이나 빛바랜 노랑으로 가득하다.

그런 의미에서 오랜 팬이라면 반가울 수밖에 없는 앨범일 것이다. 초기 스타일 회귀라는 거창한 주제는 기본, 앞서 말했듯 노련하게 다듬어진 여러 트랙에서 그간 축적한 성장의 척도와 지금껏 거쳐온 커리어의 잔상이 여울지기 때문. ‘Drunk’ 훅의 담백한 연장선과도 같은 ‘Salt water’, ‘Thinking out loud’의 멜로디 라인을 계승한 ‘Life goes on’은 디스코그래피를 토대로 제작한 어쿠스틱 리믹스와도 같다. ‘End of youth’는 독특한 랩 파트가 등장했던 ‘You need me, I don’t need you’의 문법을 빌려 감각적인 팝 넘버로 희석한다.

세밀한 부분에서도 솜씨가 드러난다. 정석적 완성도와 스타일 분배, 특히 이 두 요소를 이용해 처음부터 끝까지 유려하게 흘러가도록 조율한 트랙 간 균형과 완급 조절이 빼어나다. 앨범 중앙에 위치한 ‘Colourblind’가 건반과 현악 세션의 도움을 받아 희망찬 풍경을 그려내고, 이내 비교적 리드미컬한 ‘Curtains’가 일렉 기타와 드럼을 투입해 색다른 흥을 부여하면, 그 뒤로 깔끔한 고음과 서정적 분위기의 ‘Borderline’이 등장한다. 계속 국면이 뒤바뀌지만 연결짓는 매듭과 굴곡이 자연스러워 남다른 몰입감을 선사한다. 오랜 송라이팅과 앨범 단위의 제작 경험에서 노련미가 빛을 발했다.

작품 전반에 깔린 습윤과 침울, 단 한 명의 피처링조차 기용하지 않은 진지함의 기원을 두고 에드 시런은 한 매체의 인터뷰에서 “제작 당시 겹친 여러 힘든 일을 극복하기 위한 치유의 앨범”이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앨범을 전부 들어본다면, 그 ‘치유’의 대상이 단순 악재의 극복을 향한 것만이 아닌 늘 그의 음악을 항상 즐겁고 춤추기 좋은 상업적 팝으로만 규명하던 주위 시선에 대한 반발임을 눈치챌 수 있다. < – >에는 어떠한 멋들어진 치장이나 화려한 홍보 요소도 없다. 오직 정공법에 일관할 뿐이다.

에드 시런은 그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빼어난 감각’과 ‘뛰어난 한 방’이 아닌, 단출함만이 가지는 매력의 중요성을 말한다. 가벼운 어쿠스틱 기타와 호소력 있는 보컬의 조합이 선보일 수 있는 표현의 범위는 분명 좁고 심심할 수 있어도 누구보다 다른 깊이를 가진다. 이제 전혀 다른 높이에 서 있는 그이지만, 오히려 작고 초라하던 시절 본인을 알아봐 준 이들에게 그 순수함의 위력을 더 완벽히 재현하려는 증명은 비로소 < – >로 귀결된다. 특별할 것 없이 기본에 충실하기가 얼마나 어렵고도 위대한지, 그 진리를 깨닫는 순간이다.

– 수록곡 –
1. Boat
2. Salt water
3. Eyes closed
4. Life goes on
5. Dusty
6. End of youth
7. Colourblind
8. Curtains

9. Borderline
10. Spark
11. Vega
12. Sycamore
13. No strings
14. The Hills of Aberfel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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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라이프(Westlife) ‘My hero’ (2021)

평가: 2.5/5

다년차 아티스트에게 필연적으로 ‘변화’와 ‘고수’라는 기로가 찾아온다고 가정한다면, 2018년 재결성 소식을 알리며 활동을 재개한 팝 보컬 그룹 웨스트라이프의 선택은 전자에 가깝다. 에드 시런이 작곡에 참여해 EDM 스타일로의 개편을 꾀한 ‘Hello my love’을 전작 < Spectrum >의 타이틀로 내건 것부터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겠다는 의지는 충분했다. 실제로도 이 작품에 속한 ‘Dance’나 ‘L.O.V.E.’ 등의 트랙은 그룹이 가진 연차와 네임밸류를 눈치채기 어려울 정도로 당시 현존하는 팝 경향에 맞닿아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12번째 정규작 < Wild Dreams >의 발매에 앞서 선공개된 ‘My hero’는 중도의 입장에 가깝다. 그들의 시그니처와도 같은 건반과 공명을 버무린 진득한 발라드를 주된 작법으로 내걸었지만, 현 주류 시장에 어울릴 만한 공정을 거쳤다. 이름이 비슷한 히트 넘버 ‘My love’와 비교해보면 분명한 차이를 감지할 수 있다. 팝 신의 최전선에서 활약하고 있는 애드 시런과 초기작부터 연을 맺어온 스티브 맥(Steve Mac)의 참여가 정직하게 반영된 결과인 셈이다.

창의적인 멜로디나 화음부에서의 임팩트는 조금 부족하다. 다만 향후 발매될 앨범을 위한 소개로는 나쁘지 않아 보인다. 20년 넘게 활동을 펼치고 있는 수많은 장수 그룹 중 지금의 웨스트라이프는 분명히 자생의 기준을 충족하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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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 시런(Ed Sheeran) ‘Bad habits’ (2021)

평가: 2.5/5

송곳니를 드러내며 짙은 눈 화장을 확인하는 금발의 뱀파이어. 파격적인 이미지 변신이 적갈색 머리 아티스트의 모습을 지울 수도 있지만 이번 기회를 발판 삼아 과도기에 접어든 음악을 투영하며 새 시대를 열지만 강렬한 콘셉트만큼 음악은 화려하지 않다. 여러 아티스트와 협업했던 최근작 < No.6 Collaborations Project >처럼 신곡 역시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는 만듦새로 다가올 다섯 번째 정규 앨범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믹싱을 거친 기타 사운드와 정직한 박자로 떨어지는 드럼과 베이스 라인은 한층 부드럽고 익숙해진 가창과 대비를 이루며 어두운 분위기를 주도한다. 무난하게 흘러가는 곡 전개에서 뚜렷한 포인트가 부족한 것이 약점. 둔탁한 하우스 비트는 절제미보다는 느슨함에 가깝고 오르내리길 반복하는 멜로디는 히트곡 ‘Shape of you’의 리듬에 비해 처진다. 대중성에 맞는 정체성을 구현하려 하지만 슈퍼스타의 목소리에만 의존한 평범한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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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 시런(Ed Sheeran) ‘Afterglow’ (2020)

평가: 3.5/5

2020년은 변이와 혼란의 해였다. 희망은 잠식되는 듯 보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는 뜻하지 않게 전 세계를 연대로 이끌었다. 그럼에도 내년이면 조금은 나아질 거라는 소망이 담긴 한 해의 끝에 에드 시런은 깜짝 선물을 선사했다. ‘And we’ll burn so bright ’til the darkness softly clears(우리는 밝게 타오를 거야 어둠이 부드럽게 걷힐 때까지)’라는 가사로 지친 이들의 마음을 위로한다.

따뜻한 질감의 어쿠스틱 기타가 주를 이루는 ‘Afterglow’는 초기 에드 시런의 포크 성향을 다시 꺼내온다. 가장 최근의 정규앨범인 < No.6 Collaborations Project >는 그 노선을 달리했었기에, 이 곡이 더욱더 반가운 이유다. 기타 한 대만으로 사운드는 폭넓은 포물선을 그리고, 포물선을 따라 자유롭게 유영하는 멜로디는 마음에 깊은 울림을 남긴다.

작년에 쓴 곡이라지만 1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꼭 알맞은 따뜻한 위로송이다. 언제나 고난과 역경은 있듯이 우리의 삶에 계속해서 유효할 음악. 조용한 연말에 찾아온 기분 좋은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