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욘세와 카디 비에 힘입어 빌보드 정상을 두 차례 경험했던 메간 더 스탈리온이 이번엔 두아 리파와 함께했다. 과거지향적인 사운드 위에 탄탄한 기본기의 랩과 쉽게 귀에 들어오는 멜로디를 얹은 모습에서 하나가 되기 위해 적당한 타협이 필요했던 두 개성 있는 뮤지션의 고민이 드러난다. 다행히 두 사람 모두 멈출 때를 정확히 판단해야 더욱 힘 있다는 걸 알았다. 음악적으로 참신함은 없었지만 이만하면 성공적인 콜라보레이션이다.
성적인 은유가 곡 내내 도발적으로 흐른다. 메간 더 스탈리온이 그간 들려줬던 일관적인 메시지에 기대어 해석하면 이 곡에서의 농밀한 은유 역시 전복적인 의미를 띈다. 그는 유혹의 주체와 대상의 자리를 바꾸며 여성의 몸을 안전하게 관음하는 뭇 남성들에게 서늘한 조소를 날린다. 이때 ‘나쁜 여자’가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엔 하등 관심도 없어 보이는 모양새가 흥미롭다. 금기를 권력의 도구로 삼은 이들을 조롱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이런 태도가 가장 매력적이다.
2020년 상반기 팝 시장을 레트로로 물들인 두아 리파는 코로나 시대 발길이 끊긴 클럽과 댄스 플로어로 눈을 돌린다. 제목부터 노골적으로 레트로를 표방한 < Future Nostalgia >가 1970년대 디스코 및 신스팝을 적극 수용했다면, 이번 < Club Future Nostalgia >는 1979년 ‘디스코 폭파의 밤’ 이후 음지로 숨어든 이들 음악이 전설적인 디제이들의 손에 재해석되고 믹스되며 하우스(House) 음악으로 거듭나던 역사를 계승, 응용하여 실천한다. 롤러코스터를 탄 듯 짜릿하고 어지러운 ‘퓨처 노스탤지어 클럽’의 메인 게스트는 2016년 < 믹스맥(Mixmag) > 올해의 디제이로 선정된 더 블레스드 마돈나(The Blessed Madonna)다.
이름이 공교롭게도 이 행보는 20여 년 전 전설적인 마돈나가 걸었던 길과 거의 같다. 1980년대 < Like A Virgin >, < True Blue > 전성기의 음악을 가져와 < Music >과 < Confessions On A Dance Floor >의 노스탤지어 품은 전자 음악으로 다듬어내던 인물이 2000년대 초 댄스 플로어 위의 마돈나였다. 심지어 그때 앨범의 홍보 문구는 ‘퓨처 노스탤지어’가 뜨끔할 ‘퓨처 디스코(Future Disco)’였다.
그래도 후배가 기특했는지 마돈나는 ‘클럽 퓨처 노스탤지어’의 게스트 DJ 명단에 본인의 댄스 플로어를 건설한 DJ 스튜어트 프라이스(자크 르 콩)를 추가하고 스스로도 미시 엘리엇과 함께 ‘Levitating’ 리믹스에 참여했다. 복고의 복고, 레트로와 레트로의 퓨전이다.
따라서 이 리믹스 앨범의 전략과 의도는 마돈나의 커리어를 따라온 세대에겐 진부하게, 마돈나를 모르는 신세대에겐 디스코의 진화 과정과 초기 전자 음악의 발전 과정을 담는 교보재 정도로 여겨질 위험이 있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기시감에도 ‘클럽 퓨처 노스탤지어’는 대단히 새로운 공간처럼 느껴진다. 이는 두아 리파가 전면에 나서는 대신 과거 최고의 팝스타들과 현재 최고의 주가를 달리는 디제이, 미래를 이끌 동년배 신예들에게 과감히 자리를 양보하고 샘플 클리어 제약을 해소하며 일종의 자유로운 ‘대안 공간’을 마련한 덕이다.
이미 두아는 < Future Nostalgia >에서 덜어내기의 미덕을 몸소 실천한 바 있다. 토브 , SG 루이스, 줄리아 마이클스, 앤드류 와트, 에밀리 워렌 등 내로라하는 젊은 아티스트들의 곡과 섬세한 프로듀싱 위 두아 리파는 데뷔작보다 훨씬 간결하게 노래했고 소리와 리듬에 앞서 나가려 하지 않았다. ‘Don’t start now’의 건조한 보컬은 올해의 리프로 손꼽힐 베이스 라인 뒤에 있었고 ‘Physical’은 올리비아 뉴튼 존의 유산을 안전하게 계승했다. 레트로 밀레니얼 파티 튠 ‘Levitating’ 역시 단독으로 서기보다 합창을 지향했다.
리믹스에선 더 과감하게 내려놓는다. 블레스드 마돈나의 지휘 아래 몇몇 지점을 제외하면 아티스트의 존재감을 거의 내세우지 않는다. 덕분에 내로라하는 아티스트들이 훌륭한 ‘미래형 복고’ 트랙들을 창의적으로 해체하고 뒤틀며 감각적으로 재구성한다. 히트 싱글 ‘Don’t start now’를 예지(Yaeji)에게 맡겨 조각내 버렸으니 말 다했다.
펑키(Funky)했던 ‘Pretty please’는 직관적인 하우스와 개러지의 두 방향으로 나눠져 유기적인 흐름을 만들고 이 전략은 ‘Hallucinate’에서도 반복된다. 웅장했던 마무리 트랙 ‘Boys will be boys’는 뭄바톤 리듬과 함께 그루비한 댄스 트랙으로 새 생명을 얻는다. 세기말 언더그라운드의 잔향과 미래주의적 터치가 공존한다.
과거와 현재를 바삐 오가는 앨범은 복고적 성향을 더욱 짙게 가져간다. 디미트리 프롬 파리(Dimitri from Paris)가 자미로콰이의 ‘Cosmic girl’과 ‘Break my heart’를 혼합해 ‘Levitating’ 리믹스에 동력을 공급하는데 이 곡의 게스트는 무려 마돈나와 미시 엘리엇이다. 미스터 핑거스의 ‘Hallucinate’ 리믹스에 등장하는 ‘Hollaback girl’은 작품 후반 마크 론슨의 여유로운 1980년대 뉴웨이브 리믹스 ‘Physical’ 속 그웬 스테파니 등장의 복선이다.
이어지는 블랙핑크와의 콜라보레이션 ‘Kiss and make up’은 비기의 ‘Hypnotize’로 더 널리 알려진 허브 알퍼트의 ‘Rise’ 베이스 샘플로 다시 태어나 원곡을 뛰어넘는다. 그 바통을 받아 ‘That kind of woman’을 매만지는 DJ가 바로 자크 르 콩이다.
왁자지껄 휘황찬란한 파티 DJ 셋이다. 1990년대 영국 언더그라운드와 레이브 파티, 2000년대의 레트로 팝스타와 히트메이커, 게이들의 아이콘이 공존하는 이 올스타 라인업은 전세계 어느 곳에서도 전설로 대접받을 리스트다. 다만 클럽에서의 경험이 아니라 앨범 단위의 감상에선 어쩔 수 없는 감점 사항이 있다. 총 15명의 프로듀서들이 17 트랙, 50분 러닝타임에 너무 많은 요소를 더한지라 리믹스나 클럽 셋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의 입장에선 어렵고 복잡하게 느껴진다. 마돈나와 휘트니 휴스턴, 머라이어 캐리도 극복하지 못했던 리믹스의 한계다.
그럼에도 < Club Future Nostalgia >가 그 선배들의 시도보다 훨씬 짜임새 있고 화끈하며 잘 만들어진 앨범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현시대 인기 절정의 팝스타가 과감히 언더그라운드를 천명한 점도 독특하고, DJ 블레스드 마돈나와 아티스트들이 편견과 차별 없는 자유로운 대안의 파티 공간을 구축하며 코로나 시대 희미해져 가는 공동체 경험을 일깨운다는 데서도 의미가 있다. 화려한 유튜브 비주얼라이저로 함께하시길.
– 수록곡 – 1. Future nostalgia (Joe Goddard Remix) 2. Cool (Jayda G Remix) 3. Good in bed (Zach Witness and Gen Hoshino Remixes) 4. Pretty please (Midland Refix) 5. Pretty please (Masters at Work Remix) 6. Boys will be boys (Zach Witness Remix) 7. Love again (Horse Meat Disco Remix) 8. Break my heart / Cosmic girl (Dimitri from Paris Edit) 9. Levitating (The Blessed Madonna Remix featuring Madonna and Missy Elliott) 10. Hallucinate (Mr Fingers deep stripped mix) 11. Hallucinate (Paul Woolford Remix Extended) 12. Love is religion (The Blessed Madonna Remix) 13. Don’t start now (Yaeji Remix) 14. Physical (Mark Ronson Remix featuring Gwen Stefani) 15. Kiss and make up (Remix with Blackpink) 16. That kind of woman (Jacques Lu Cont Remix) 17. Break my heart (Moodymann Remix)
근사한 결합이다. 1981년 같은 영국 출신 인기 가수 올리비아 뉴튼 존의 싱글 차트 10주 간 1위 곡 ‘Physical’을 음악적 영감 삼아 재가공한 이 노래는 1980년대 유로댄스의 찰진 사운드와 중독적인 베이스라인이 결합한 댄스곡이다. 과거 지향적인 신시사이저와 3분 40초의 러닝타임을 단숨에 축약해버린 거침없는 완급 조절을 품고 있으며 이 강단 있는 주조 능력이 노래의 매력을 십분 되살린다. 살랑살랑 힘을 푼 채 선율을 즐기는 뮤직비디오 역시 곡의 맛을 살리는 또 하나의 첨가물. 3월 발매될 2번째 정규음반 < Future Nostalgia >의 선공개 싱글로 복고를 키워드로 한 콘셉트와 딱 맞는 소화력이 여러모로 신보의 기대감을 높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