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식스의 드러머 도운의 첫 솔로 곡이다. 작곡 팀 쏠시레 소속 송희진과의 협력으로 탄생한 이 노래는 드럼 연주자로 그룹을 지탱했던 그가 한 명의 아티스트로서 영역을 넓히려는 포부를 담았다. 콘셉트부터 작업 전반에 자신의 능력을 집중했고 듀엣 곡에서는 직접 보컬을 시도했다. ‘문득’이 갖는 더 크고 중요한 의미다.
인디 밴드 재질의 톡톡 튀는 질감을 구현한 멜로디는 송희진의 명징한 톤과 거북하지 않은 궁합을 이루고 재즈의 터치를 더해 2절에서 모습을 드러낸 도운의 중저음 보이스는 담백한 위로를 건넨다. 후렴구에서 사운드의 다채로움을 위해 악기 편성을 빽빽하게 가져간 선택은 오히려 목소리의 조화를 퇴색시켰지만 도운의 보컬은 가능성을 확인 받았다. 드럼의 비중은 감소했으나 도운의 존재감은 상승했다.
물리학 개념으로 풀어낸 < The Book Of Us > 시리즈는 어느 때보다 격동적이었다. 자연계를 지탱하는 ‘중력’ 아래 모인 청년들은 ‘엔트로피’라는 혼란의 시기를 겪기도 했지만, ‘맥스웰의 악마’와 ’글루온’을 통해 끈끈한 유대를 형성했다. 성장 스토리의 끝은 무질서한 ‘엔트로피’에 반대되는 ‘네거티브 엔트로피’. 혼돈을 집어삼킨 사랑으로 균형을 되찾은 < The Book Of Us : Negentropy>는 팀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다진다.
멤버들의 폭넓은 음역대와 변칙적인 짜임새는 여전한 매력 포인트다. 다툼을 통해 더욱 돈독해지는 관계를 그린 ‘Everyday we fight’는 노랫말이 기타 연주와 살짝 엇박자로 떨어지면서 색다른 단조 구성으로 오프닝을 알린다. 뒤따르는 ‘You make me’ 역시 마이너 감성이 두드러진 록 타이틀이다. 진성과 가성을 오가는 후렴의 가창이 나지막이 깔리는 신시사이저와 대비를 이루며 개개인의 음색을 돋보이게 한다.
언제 어디서든 행복하기를 바라는 ‘구름 위에서’, 따스한 코러스가 감도는 ’둘도 아닌 하나’를 비롯해 디스코 리듬의 ‘Healer’는 평온하게 흘러가는 앨범에 밝은 기운을 불어넣는다. ‘행복한가요 Check/사랑하나요 Yes‘와 같이 관객과 주고받을 수 있는 떼창 구간은 데이식스 식 희망 찬가의 특징을 담았다. 창작에 대한 고뇌가 느껴지는 전작들에 비해 평범하나 가벼우면서도 서정적인 멜로디로 부담을 떨쳐낸 그 결과물은 안정적이다.
지난 3월 리더 성진의 군 입대로 당분간 완전체의 하모니를 기대하기는 힘들어졌다. 그러나 이런 불가피한 상황에도 다가올 역경을 겁내지 않고 맞잡은 손을 놓지 않는 이상 ‘무적’이라고 굳게 믿고 애절한 고백과 덤덤한 독백이 어우러진 발라드 ‘우리 앞으로 더 사랑하자’로 2년에 걸쳐 완성된 단편집에 의연한 마침표를 찍는다.
청춘 일기의 마지막에도 철학적인 담론은 없다. 당장의 솔직한 감정에 충실했고 대중성은 물론 록이라는 개성을 놓지 않았다. 붉게 타오르는 석양을 등진 탓에 20대를 보내는 다섯 남자들의 표정은 알 수 없지만 젊음을 항해하는 밴드에게 잠시 숨을 고르며 감사하고 소중했던 기억들을 되새기는 모습만큼은 낭만적이다.
– 수록곡 – 1. Everyday we fight 2. You make me 3. Healer 4. 둘도 아닌 하나 5. 구름 위에서 6. 무적 (ONE) 7. 우리 앞으로 더 사랑하자
언뜻 쉬어가는 단계처럼 들린다. 혼돈의 주제 아래 다양한 장르와 요동치는 감정의 파고를 담으며 확장을 추구했던 전작에 비해 신보는 상대적으로 차분하고 어두운 톤으로 정제되어있다. 빛나는 청춘의 한 페이지를 써내려가던 그들이 ‘그저 잠에 들기만을 기다리며 살아’(‘Zombie’)라 체념하고 사랑에 지쳐 ‘때려쳐’라 내지르며 ‘놓을 수도 잡을 수도 없어’(‘Afraid’)라 괴로워하는 모습은 낯설다. 그러나 < The Book of Us : The Demon >은 휴식과 돌아보기에 머무르는 작품이 아니다. 달리기를 잠시 멈췄을 뿐 분명히 한걸음씩 천천히 내딛고 있다.
데이식스가 가져온 ‘맥스웰의 악마’는 기존 작법에 의문을 제시하며 장르 확장과 고뇌의 불안정 상태를 만듦과 동시에 앨범 단위의 안정감을 부여하여 무질서를 줄이는 존재다. 실제로 1980년대 뉴웨이브 및 신스팝 스타일 아래 다양한 스타일이 충돌하지만 첫 곡 ‘해와 달처럼’부터 마지막 ‘Afraid’까지 일관된 거친 톤의 사운드와 혼란스러운 메시지가 짜임새를 갖춘다.
건조한 드럼 비트와 몽롱한 신스 리프를 전개하며 멜로디와 가사에 힘을 준 ‘Zombie’에선 비워내고 EDM의 빌드업-드랍 구조가 선명한 ‘Love me or leave me’에선 채우며, 그루브한 소울을 지향한 ‘Tick tock’과 신스팝 ‘1 to 10’부터 직선적인 ‘때려쳐’와 ‘Afraid’를 대비하는 등 실험을 지속하면서도 튀지 않는다.
쉽지 않은 시도를 뒷받침하는 건 멤버들의 깊어진 기량이다. ‘Zombie’의 공허한 감각은 더 엑스엑스(The XX)처럼 멀어보였던 스타일로부터 가져왔으며 ‘Tick tock’ 가운데 들어간 소리는 비틀즈의 시타르 연주를 의도한 것으로 들린다. 간결한 개러지 스타일 기타 리프의 ‘때려쳐’와 가장 선명한 뉴웨이브의 ‘1 to 10’은 복고의 매력을 품고 ‘해와 달처럼’으로 트렌디한 면모도 놓치지 않는다.
멀티 보컬 체제도 확실한 장점. 영케이의 단단한 목소리가 핵심을 잡고 Jae와 원필의 여린 목소리로 감성을 자극하며 거친 성진의 목소리로 임팩트를 주는 공식이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이다. 특히 ‘Zombie’에서 이런 정교한 보컬 배치가 입체적인 승리를 거두고 있다.
기획된 팀임에도 많은 이들에게 대안으로 여겨지는 이유가 이 앨범에 있다. 체계적으로 매끈하게 다듬어진 소속사의 디렉팅 이전에 자신들의 손으로 더 많은 스타일과 더 좋은 음악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멤버들의 인간적인 고민이 도사리고 있다.
정답 없는 창작의 과정에서 오는 이 불안은 오직 열망해본 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진솔한 감정이고 그렇기에 대중은 데이식스를 아이돌 아닌 아티스트로 인정한다. 노래에선 ‘난 또 걸어 정처없이’라 자조하지만 의미있는 방향을 찾고 있는, 성실한 밴드의 멋진 역설(逆說).
– 수록곡 – 1. 해와 달처럼 2. Zombie 3. Tick tock 4. Love me or leave me 5. 때려쳐 6. 1 to 10 7. Afraid 8. Zombie (English Ver.)
밝은 결의 팝 록을 소구력 있게 풀어낸 < Sunrise >와 < Moonrise > 시리즈로 데이식스는 밴드 체제가 결국 유의미한 선택이었음을 증명했다. 멤버 개개인이 악기를 다룰 줄 안다는 자유도에 기반한 ‘안정적 밴드 사운드’와 세 개의 기타로 얻어낸 ‘명확한 멜로디 라인’. 이는 밴드 아이돌이라는 양면적 입지에서 록의 개성과 팝의 대중성을 모두 끌어낸 영리한 접근법이었다.
중요한 건 그럼에도 이들이 계속해서 보인, 스스로 정립한 공식에 안주하지 않으려는 탈노선의 행보다. 앞서 발매된 ‘What can I do(좋은걸 뭐 어떡해)’의 퍼지 톤 도입부나, ‘Shoot me’의 독특한 구성, 그리고 보코더와 신시사이저를 사용한 ‘포장’과 ‘Best part’ 등이 그 흔적인데, 물론 이러한 실험들이 크게 주목되지 않은 데는 ‘중력’처럼 깊게 자리 잡은 밴드의 청춘 이미지가 탈선을 막는 방어 기제로 작용한 이유다.
그렇기에 < The Book of Us : Entropy >의 존재는 더욱 두드러진다. 이름에서부터 직접 일컫는 반항적 성질 ‘엔트로피’. 한 마디로, 이 작품은 본격적인 일탈의 기록이다.
저음의 베이스와 디스토션이 가미된 피킹으로 시작하는 팝 메탈 ‘Deep in love’와 마이 케미컬 로맨스(My Chemical Romance)의 ‘Dead!’가 연상되는 네오펑크 ‘Sweet chaos’부터 강렬함을 피력한다. 이들은 신시사이저로 잔뜩 풀을 먹인 ‘Emergency’로 갑작스레 팝 사운드를 배치하기도, ‘Rescue me’로는 다시 묵직한 헤비메탈을 가져오기도 한다. 어지럽게 뒤섞인 무질서적 트랙 배치와 기조 변화는 분명 사랑으로부터 야기된 ‘혼란’의 정서를 대변하는 장치지만, 화려해진 드러밍과 현란해진 리프는 이를 넘어서는 변모의 의지를 내포한다.
격동의 과정이 끝나고 앨범은 주 장르인 팝 록으로 다시 회귀하지만, 격렬한 전반부에 비해 다소 무난할 수 있는 후반부를 위해 절충안을 삽입하는 방안으로 낙차의 충격을 완화한다. 교두보 역할을 하는 레게풍의 ‘365247’과 ‘아야야’ 등이 그렇다. 데이식스는 이 외에도 작품의 몰입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친절함을 곳곳에 배치하는데, ‘Not fine(나빠)’나 ‘마치 흘러가는 바람처럼’ 같이 본래 스타일을 정확히 가져온 곡으로 기존 팬들이 즐길 거리를 마련하기도 한다.
데이식스는 콘셉트를 방패로 그간 꾸준히 지속해오던 형식적 문법에서 잠깐 벗어나 창작의 갈증을 해소하고, 환기의 시간을 가진 뒤, 안식처로 돌아옴으로써 짧은 여행을 마친다. 확실한 보험을 두고 펼친 모험이기에 큰 위험 부담도 없을뿐더러, 본인들이 가진 지도를 넓힘으로써 어느 방향으로도 뻗어 나갈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는다. 아이돌 밴드 그 이상의 영역을 노려온 데이식스, 그렇기에 분명 이 음반은 좋은 양분이 될 것이다.
– 수록곡 – 1. Deep in love 2. Sweet chaos 3. Emergency 4. Rescue me 5. 365247 6. 지금쯤 7. 아야야 8. Not fine(나빠) 9. 막말 10. Not mine 11. 마치 흘러가는 바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