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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Moby) ‘Reprise’ (2021)

평가: 3/5

2018년에 창단 100주년을 맞은 LA 필하모닉은 각 분야의 스타들을 모아 혁신적인 공연들을 준비했다. 일렉트로니카의 거장 모비도 베네수엘라 출신의 젊은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과 함께 자신의 대표작들을 편곡하여 오케스트라 데뷔 무대를 가졌다. 이 협연을 계기로 최근 대중 아티스트들과 크로스오버를 선보이고 있는 독일의 유명 클래식 레이블 도이치 그라모폰과 연락이 닿았고 값싼 신시사이저로 녹음했던 과거 곡들은 긴 세월 끝에 실제 악기 연주로 다시 태어난다.

밴드로 음악적 기본기를 다졌던 만큼 모비의 테크노 앨범들은 기계음으로 제작했음에도 인간미가 넘쳤다. 그 진가를 재조명하는 19번째 정규작 < Reprise >는 팬데믹이란 제약적 상황을 뚫고 실존하는 영혼들과 호흡한다. 어쿠스틱 기타와 허밍으로 시작하는 ‘Everloving’부터 가슴 깊숙이 파고드는 현악 4중주를 비롯한 오케스트라가 펼쳐지며 광활한 대지를 질주한다. 소울이 충만한 그레고리 포터와 애미시스트 키아의 듀엣곡 ‘Natural blues’도 퍼커션과 알앤비 질감의 백 보컬까지 가세하며 힘찬 울림을 전달한다.

히트작 < Play >의 시그니처 ‘Porcelain’이 템포를 낮추며 포크 스타일로 변모한 것처럼 악기 구성과 박자의 변화는 폭넓은 감상을 넘어 장르에 영향을 준다. 피아노와 드럼이 이끌었던 ‘Why does my heart feel so bad’는 바이올린과 팀파니로 리듬을 대체하며 합창단의 코러스와 더불어 가스펠의 요소를 끌어올린다. 모비의 리드 싱어 민디 존스가 노래한 ‘Heroes’는 원곡의 기타 리프와 상반된 잔잔함으로 시대의 영웅 데이비드 보위를 향한 그리움을 표한다.

전성기 시절 음악의 대부분은 샘플링 조각에서 결정적 한 방이 터졌지만 신보는 선배들의 유산을 온전히 체화하기 위해 과감히 과거를 지우기도 한다. ‘Natural blues’가 포크 가수 베라 홀의 ‘Trouble so hard’에 집중해서 다채롭게 리메이크한 것에 비해 끝없이 ‘Yeah’를 외쳤던 ‘Go’는 이 도돌이표를 지우며 완전히 탈바꿈한다. 영화와 TV에 자주 등장한 ‘Extreme ways’도 강렬한 현악기 샘플의 비중을 줄이며 서정적인 전개를 보인다. 샘플 없애기의 일환이었던 < Hotel >과 비슷한 기조로 볼 수 있으나 추억까지 들어낸 결단은 본연의 정체성을 약화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전자음악과 함께 태동했던 모비는 예상과 달리 디지털과 거리를 두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내세웠다. 이번 작품에서 아날로그 시절의 영감을 실체화했던 기술력을 사용하지 않고 고전으로의 회귀를 선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클래식 업데이트가 원작들에 필적할 만한 작업은 아니지만 30년 노하우를 담은 마에스트로의 지휘는 일렉트로닉 브랜드의 오랜 업력을 검증한다.

– 수록곡 –
1. Everloving
2. Natural blues (Feat. Gregory Porter, Amythyst Kiah)
3. Go
4. Porcelain (Feat. Jim James)
5. Extreme ways
6. Heroes (Feat. Mindy Jones)
7. God moving over the face of the waters (Feat. Víkingur Ólafsson)
8. Why does my heart feel so bad (Feat. Apollo Jane, Deitrick Haddon)
9. The lonely night (Feat. Mark Lanegan, Kris Kristofferson)
10. We are all made of stars
11. Lift me up
12. The great escape (Feat. Nataly Dawn, Alice Skye, Luna Li)
13. Almost home (Feat. Novo Amor, Mindy Jones, Darlingside) 14. The last day (Feat. Skylar Grey, Darlings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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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 빈센트(St. Vincent) ‘Daddy’s Home’ (2021)

평가: 4/5

미국의 여성 싱어송라이터 세인트 빈센트가 저변을 넓혀가고 있던 2010년 무렵 아버지 리차드 클라크는 주식 조작 등의 혐의로 입건되며 2019년 말까지 수감 생활을 했다. 3집 < Strange Mercy >에서 이 내력을 가볍게 다루긴 했지만 그때는 넋두리에 불과했다. 허나 복역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가장을 마주한 딸은 더 이상 부끄러운 가정사를 어물쩍 넘어가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면회실과 죄수 번호 같은 직접적인 단어들을 나열하며 그날의 솔직한 감정들을 털어놓는다.

그래미 어워드 베스트 얼터너티브 앨범상 수상에 빛나는 < St. Vincent >가 미래적인 소리와 격렬한 연주를 들려줬다면 < Daddy’s Home >은 1970년대 미국의 음악, 즉 아버지 세대의 사운드를 적극 활용한다. 복고적인 스타일과 차분한 전개는 여성 데이비드 보위의 혁신적인 모습을 지워버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인디 밴드 펀의 기타리스트이자 전작 < Masseduction >의 조력자인 잭 안토노프와의 협력으로 개성을 유지하며 새로운 문법을 정립한다.

자유자재로 톤을 바꾸는 ‘Pay your way in pain’과 툭툭 끊기는 신시사이저로 상승하는 ‘Down’의 그루브 넘치는 진행도 흥미롭지만 신보는 노랫말이 전하는 울림에 집중한다. 숨 막히는 발라드 ‘Live in the dream’은 사이키델릭 특유의 몽롱한 음색에 기대다가 기타 솔로로 극적인 마무리를 찍는다. 잔잔한 컨트리 트랙 ‘Somebody like me’ 역시 목소리를 강조하기 위해 단순한 구조를 취하며 서정적인 하모니를 선사한다.

앨범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친숙한 질감은 지난 날을 되돌아보는 지점을 마련한다. 스코틀랜드 출신 여가수 시나 이스턴의 대표곡 ‘Morning train (9 to 5)’의 보컬 멜로디를 인용한 ‘My baby wants a baby’는 원곡과 상반된 매력으로 향수를 자극한다. 민권운동을 펼쳤던 최고의 재즈 가수 니나 시몬이 가사에 등장하는 ‘The melting of the sun’은 고난과 맞서 싸웠던 여성 뮤지션들을 향한 존경이면서도 약물을 사용하는 스스로에 대한 고백성사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부터 끈끈한 유대를 다져온 부친의 징역살이는 혼란 그 자체였다. 하지만 10여 년이 흐른 지금은 지나간 과거를 너그러이 용서하고 나아가 음악적 성찰을 위한 자극제로 사용한다. 팽팽하기만 했던 세인트 빈센트의 기타줄은 느슨해졌으나 전위적 아티스트의 용감한 고전 참조는 시대를 풍미했던 스타들과 함께 소용돌이치며 교훈 섞인 가족극 한 편을 완성한다.

– 수록곡 –
1. Pay your way in pain
2. Down and out downtown
3. Daddy’s home
4. Live in the dream
5. The melting of the sun
6. Humming (Interlude 1)
7. The laughing man
8. Down
9. Humming (Interlude 2)
10. Somebody like me
11. My baby wants a baby
12. …At the holiday party
13. Candy darling
14. Humming (Interlude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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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Lodger’ (1979)

평가: 4/5

뜻밖인 듯 보이지만 < Heroes >의 마지막 트랙에서 예고된 변화일지도 모른다. 디스코 기타 리프를 바탕으로 이국적인 리듬을 그린 ‘The secret life of arabia’의 연장선처럼 느껴지는 이 앨범은 데이비드 보위의 13번째 정규 앨범이자 ‘베를린 3부작’의 대단원이다. < Low >와 < Heroes >의 발매 이후 월드 투어와 그 실황 앨범 < Stage >를 거친 그는 투어가 끝나고 1년간, 영혼의 단짝인 프로듀서 토니 비스콘티, 브라이언 이노와 서둘러 < Lodger >의 작업을 진행했다.

절반이 연주곡으로 채워진 두 전작에 비해 < Lodger >는 접근하기 쉬운 3-4분 남짓의 짧은 곡으로 구성되었다. 이전까지 보여준 독특한 콘셉트와 긴 대곡 대신 일관적으로 빽빽한 노래들을 택한 구성은 보위가 내린 또 하나의 변화다. 언뜻 대중친화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그의 변신 본능을 다 가리진 못한다. 카탈로그에서 가장 많은 장르가 시도된 앨범은 다양한 스타일의 접목이 빛나는 ‘월드 뮤직’의 향연이다.

으스스한 분위기의 ‘African night flight’는 케냐 여행에서 영감을 얻은 아프리카풍의 타악기와 리듬을 입혔다. 톡톡 튀는 훅이 돋보이는 ‘Yassassin’은 은근한 레게 리듬의 활용이다. 그 외에도 영국 싱글 차트 7위까지 오른 히트곡 ‘Boys keep swinging’에서는 기타, 베이스, 드럼의 변칙적인 배합으로 마르지 않는 창의력을 증명하며, 특유의 중후함을 담아낸 ‘Fantastic voyage’는 묵직한 반주에 깊은 목소리로 빚어낸 스탠다드 팝이다.

세계적인 장르의 포용에도 앨범이 ‘베를린 3부작’으로 묶일 수 있는 건 독일의 음악 스타일을 가져온 덕이다. 발칙한 맛으로 흥겨운 ‘DJ’는 독일의 전자 샘플로 비트를 꾸몄고, 브라이언 이노가 대부분을 작곡한 ‘Red sails’도 < Low >와 마찬가지로 독일 밴드 노이(Neu!)의 크라우트 록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1976년도부터 본격적으로 도입한 독일의 전자 음악 스타일로 트릴로지의 마지막 장을 흩트림 없이 장식했다.

< Lodger >는 두 전작에 비해 음악적 쇠퇴라는 평가를 받았다. 앨범을 둘러싼 월드 뮤직의 향기는 낯설었고, < Low >의 압도적 실험 정신에서 온 영향력이나 < Heroes >가 냉전 당시 베를린 모습을 반영하며 보여준 깊은 시대감각 같은 파급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본작을 끝으로 보위와 작별한 브라이언 이노도 “< Lodger >를 통해 베를린 3부작이 작아졌음을 느꼈다”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음반은 영국 앨범 차트 4위라는 준수한 성적과 짧고 개성 있는 팝 넘버들로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무엇보다 레게, 알앤비, 펑크(Funk)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실험성은 여타 아티스트는 흉내 낼 수 없는 보위만의 위업이다. 변화를 시도하면서도 본연의 개성을 잃지 않는, 음악가로서의 가장 큰 요구를 보위는 이 앨범에서도 완벽하게 충족했다.

점잖은 포크 뮤지션과 화성인, < Aladdin Sane >의 중성적인 페르소나와 퇴폐적인 신사 씬 화이트 듀크(Thin White Duke)를 거치며 늘 변화무쌍하던 보위에게 < Lodger >는 1970년대 끝자락을 마무리하는 성과다. 상업적 최전성기를 이루는 1980년대를 맞기 이전 카멜레온이 감행한 작지만 강한 변화였다.

-수록곡-
1. Fantastic Voyage 
2. African Night Flight
3. Move On
4. Yassassin 
5. Red Sails
6. DJ 
7. Look Back In Anger
8. Boys Keep Swinging 
9. Repetition
10. Red Mo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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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

데이비드 보위를 추억하다 Vol. 2

데이비드 보위의 수많은 순간들로부터 여섯 가지의 키워드를 뽑았다. 아티스트의 이력을 설명할 단어들은 수없이 많지만 개중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몇 가지를 가져왔다.

우주
‘There’s a starman waiting in the sky’

그 무렵 세계는 우주 시대의 절정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1968년에 스탠리 큐브릭은 영화 < 2001: A Space Odyssey >를 통해 지구인 박사들과 인공지능 컴퓨터 ‘HAL’로 구성한 탐사대를 머나먼 우주로 날려 보냈으며 1969년에 세 명의 미국인은 아폴로 11호를 타고 달에 착륙해 위대한 발걸음을 남겼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데이비드 보위는 가상의 우주비행사 톰 소령의 이야기를 담은 곡 ‘Space oddity’를 발표한다.

데이비드 보위의 신화에는 우주라는 테마가 굵직하게 자리한다. 많은 사람들도 데이비드 보위를 얘기할 때면 우주를 먼저 떠올린다. ‘Space oddity’로 영국 싱글 차트 5위의 성적을 기록, 세간의 큰 관심을 처음으로 끌어 모았던 아티스트는 1970년대에는 스스로 지구 밖 화성에서 온 로큰롤 스타로 분해 대성공을 거두더니 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는 아예 별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 우주적인 이미지를 달고 우주적인 아우라를 자아내며 한평생을 살았기 때문일까. 데이비드 보위의 죽음이 실재로 다가오지 않는다. 지기 스타더스트처럼 저 멀리 검은 하늘 어딘가에서 눈빛을 반짝이다 지구 어딘가로 또다시 불시착할 것만 같다.

글램 록
결정적으로 데이비드 보위에게 성공을 가져다 준 것은 글램 록이었다.

1970년대로 진입하며 아티스트는 반짝이는 화장, 복장으로 꾸민 외모에 각양의 퍼포먼스를 결합해 글램 록의 기본 요소들을 구축해나가고 있었다. 당시 해당 장르의 선구 대열에는 마크 볼란의 밴드 티 렉스 또한 존재했다. 이윽고 1972년이 되었을 때 데이비드 보위는 화성에서 온 지기 스타더스트라는 페르소나를 끌어와 스타일의 화려함을 극대화 시켰고 서사를 담은 콘셉트 앨범 < Ziggy Stardust >로 대성공을 거두며 자신과 글램 록의 전성기를 열어젖혔다.

아티스트의 글램 록 시기는 대개 < The Man Who Sold The World >를 발표한 1970년에서부터 < Diamond Dogs >를 내놓은 1974년까지로 한정되나, 데이비드 보위는 그 이후로도 글램 록의 최소 단위인 외관이라는 인자를 놓치지 않았다. 음악 못지않게 비주얼 콘셉트에서도 그는 완벽을 기했다. 변화무쌍하게 옷을 갈아입은 덕분에 데이비드 보위는 패션계에서도 빠지지 않는 단골 명사가 되었다.

토니 비스콘티와 믹 론슨
둘을 빼놓고는 결코 데이비드 보위의 이력을 논할 수 없다.

데이비드 보위가 한 단계씩 발전할 때마다 토니 비스콘티는 바로 옆에 있었다. 데이비드 보위와 도저히 떼어낼 수 없는 이 프로듀서는 아티스트의 장래성에 자극을 주었고 주요한 음악적 변신에 동참했으며 막바지에까지 예술적으로 교류를 나누었다.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알린 < David Bowie >, 지기 스타더스트의 청사진을 그렸던 < The Man Who Sold The World >, 소울로의 변화를 감행한 < Young Americans >, 크라우트록을 활용했던 베를린 시기의 위대한 3부작과 < Scary Monsters (And Super Creeps) >, 2000년 이후의 모든 정규 음반 등 디스코그래피의 중요한 순간순간에 토니 비스콘티의 터치가 서려있다. 토니 비스콘티만큼이나 길고 깊게 아티스트의 세계관과 감각을 공유했던 동반자는 없다.

믹 론슨의 기타는 데이비드 보위의 또 다른 목소리였다. 둘의 협력은 < The Man Who Sold The World > 즈음에서 시작해 < Pin Ups >로 막을 내리는 약 3년, 결코 길지 않은 기간에 그친다. 그러나 데이비드 보위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이 짧은 시간 안에서 이루어졌다. 지기 스타더스트의 밴드, 스파이더스 프롬 마스의 기타리스트로서 믹 론슨은 록 스타의 훌륭한 조력자가 돼주었다. 지기가 목소리를 낼 때에는 하드 록 기타 배킹으로 탄탄하게 사운드를 받쳐주었으며 지기가 마이크를 내려놓을 때에는 날렵한 솔로잉으로 보컬을 대신해 노래했다. 무대 위에서도 둘은 각양각색의 수많은 퍼포먼스를 보였다. 데이비드 보위는 후일 인터뷰를 통해 롤링 스톤스의 믹 재거와 키스 리처드, 건스 앤 로지스의 액슬 로즈와 슬래쉬 만큼이나 훌륭했던 록 듀오로 지기와 믹을 회상했다.

변신
그 무대에 우리가 아는 데이비드 보위는 없었다.

변신. 이 두 글자만큼이나 정확하고 적확하게 그의 음악 여정을 요약할 수 있는 단어는 없다. 데이비드 보위는 그 자신과 예술에게 한 시의 진부함도 허락하지 않았다. 남들이 하지 않았던 것을 만들어내려 했고 남들이 채 보지 못 한 너머에 시선을 던지려 했고 남들이 가지 못 했던 영역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반복 없는 모습을 반복하기 위해 아티스트는 변신의 문법을 모든 창작활동에 이식시켰다. 아티스트의 이력을 구분하는 주요한 분기점에는 늘 음악적 변화가 놓여있다.

사이키델릭 포크, 하드 록을 덧댄 글램 록, 소울과 펑크(funk), 크라우트록, 디스코, 일렉트로니카와 인더스트리얼, 앰비언트, 아트 록, 재즈. 모두 아티스트가 이력 내내 굵직하게 건드린 장르들이다. 단순하게 이것저것 건드려보는 시험적 차원에서 변이가 이뤄졌다고 해석한다면 곤란하다. 데이비드 보위는 각양의 사운드를 완전히 이해했고 더 나아가 이를 자신의 컬러로 완벽히 재조합해 체득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변이가 짧게는 2,3년 길게는 4,5년 안에서 행해졌다는 점. 변신의 귀재인 그만이 이루어낼 수 있는 위업이다.

변신은 음악적인 수준에서만 이뤄지지 않았다. 충격을 선사하기 위해 아티스트는 자기 자신을 지우는 파격까지 행했다. 가장 유명한 페르소나는 역시나 1970년대 초 < Ziggy Stardust >와 함께 탄생한 지기 스타더스트. 우주에서 온 탈을 뒤집어쓴 채 무대 위로 올라간 순간부터는 데이비드 보위라는 존재는 사라지고 지기 스타더스트가 등장한다. 게다가 믹 론슨을 비롯한 밴드 멤버들에게도 더 스파이더스 프롬 마스라는 가면을 씌워 페르소나의 캐릭터를 완벽에 가깝게 만들었다. 이후 < Diamond Dogs >에서 선보인 외눈의 할로윈 잭과 Station To Station >과 함께 등장한 깔끔한 외모를 한 광기의 신사 씬 화이트 듀크 역시 유명하며, 영화 < 지구에 떨어진 사나이 >에서의 외계인 뉴턴이나 < 라비린스 >에서의 고블린 왕 자레드도 인상적인 데이비드 보위의 가면으로 알려져 있다.

콜래보레이션
넓고 깊은 안목의 증거.

수많은 거물들과 함께 데이비드 보위는 훌륭한 결과물들을 남겼다. 앰비언트 음악의 창시자 브라이언 이노, 아트 록의 대가인 킹 크림슨의 로버트 프립, 창의적인 소리를 구사하는 기타리스트 애드리언 벨루, 펑크(funk)-디스코를 대표하는 쉭의 기타리스트 나일 로저스 등이 아티스트의 이력에 순간순간 등장해 데이비드 보위의 사운드들을 완성하는 데에 힘을 보탰다. 더불어 예스에 참여하기 직전까지 릭 웨이크만은 아티스트의 초창기 작품들에 참여해 경력에 시동을 걸었고, 훌륭한 팝 세션으로 명성을 쌓아가던 젊은 데이비드 샌번도 1975년 < Young Americans >에 참여해 이름을 더욱 알렸으며, 날개를 필 기회를 엿보고 있던 스티비 레이 본도 1983년 < Let’s Dance >의 크레디트에 리드 기타리스트로 이름을 남기며 성공의 실마리를 잡는다. 명장(名匠)들의 재능과 데이비드 보위의 안목은 늘 시너지 효과를 낳았다.

더 나아가 데이비드 보위는 프로듀싱에도 능했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에서의 상업적인 실패로 쓴맛을 본 루 리드를 데이비드 보위와 믹 론슨이 프로듀싱 한 < Transformer >가 일으켜 세웠다. 또한 펑크 록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1977년, 아티스트가 프로듀싱한 < The Idiot >과 < Lust For Life >가 펑크의 대부 이기 팝의 이름을 다시금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연이은 참패로 밴드의 생명줄을 놓으려던 모트 더 후플에게 닿은 글램 록 시대의 영광은 데이비드 보위가 만들어 준 것이었다. 모트 더 후플의 전환점이 된 < All The Young Dudes >을 프로듀싱하고 글리터 록의 앤섬 ‘All the yound dudes’을 써주며 아티스트는 밴드에 큰 힘을 보탰다.

존경을 마지않았던 존 레넌과의 ‘Fame’, 퀸과의 ‘Under pressure’, 마사 앤 더 반델라스의 곡을 역동적으로 리메이크한 믹 재거와의 ‘Dacing in the street’도 물론 이 맥락에서 빼놓을 수 없다. 큐어의 로버트 스미스, 픽시스의 블랙 프랜시스, 소닉 유스, 데이브 그롤 등 후배 뮤지션들과 함께 만든 자신의 50주년 생일 콘서트 무대나, 데뷔 앨범 < Funeral >을 대량 구매해 직접 주변에 돌릴 정도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후배 밴드 아케이드 파이어와의 음악적 협업 또한 데이비드 보위의 너르고 깊은 교류의 단편들이다.

다작
놀라운 창작력과 왕성한 활동량이 만났을 때.

긴 시간을 거쳐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아티스트가 있는가하면 왕성한 활동량을 토대로 무수한 작품을 연이어 만들어내는 아티스트도 있다. 데이비드 보위는 후자의 경우에 해당한다. 데이비드 보위의 디스코그래피를 보면 앨범 간의 시간 격차가 그리 크지 않다. 음반 제작의 순환이 대체로 2,3년 안에 이루어졌다.

아티스트의 반짝이는 창작력은 언제나 그 자신을 록계의 선두권에 자리하게끔 했고 동세대 동료들의 음악적 수명이 하나 둘 꺼져갈 때에도 그 자신을 살아남게끔 했다. 심장 수술을 겪고 긴 회복기를 가져야 했던 2004년부터의 약 10년에 가까운 공백기만이 그의 손을 오래 쉬게 했다. 몸을 추스르고 나온 데이비드 보위는 다시 < The Next Day >와 < Blackstar >이라는 2010년대의 두 명작을 연이어 내놓았다.

프론트 맨으로 활동했던 틴 머신에서의 두 앨범까지 합산해 데이비드 보위는 총 스물일곱 장의 정규 음반을 발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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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보위를 추억하다 Vol. 1

데이비드 보위는 늘 순간을 만들어냈다. 쉴 새 없이 다채롭게 변신을 했고 수많은 명곡들과 명작들을 낳았다. 아티스트의 시선이 머무른, 손길이 닿은, 발걸음이 지나간 시공간은 모두 로큰롤 실록의 중요한 페이지가 되어 결국엔 모먼트의 자격을 획득했다. 비단 팝 역사서에서만 이었으랴. 사람들의 머릿속에다가도 데이비드 보위는 매번 인상적인 획들을 그었다. 천재가 남긴 아름다움들은 인상이 되고 기억이 되고 추억이 되어 오랫동안 팬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이즘 에디터들에게 순간으로 남은 데이비드 보위의 열다섯 곡으로 리스트를 꾸렸다. 조금은 개인적인 필자들의 소회를 담은 특집이기도 하다.

Space oddity (1969)

영화계에 <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가 있다면, 음악계에는 < Space Oddity >가 있었다. 인류는 우주 시대가 열리기도 전에 ‘톰 소령’의 손에 이끌려 신비로운 우주의 공허함과 모종의 공포를 맛봤다. 세대를 초월해 우주 마니아들을 응집, 열광시키며 많은 영감의 원천이 된 불멸의 클래식은 급기야 2013년 실제 우주비행사에 의해 우주에서 울려 퍼지며 그 생명력을 입증했다.

몇 해 전, “우주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은 없다.”라고 말하던 친구가 있었다. 별을 사랑해 우주여행을 꿈꾸던 그가 ‘Space oddity’에 이끌린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멋진 커버 영상을 찾으면 감상을 공유하며 그 시절 보위의 상상력과 천재성에 함께 감탄하곤 했다. 며칠 전 ‘톰 소령’이 영영 우주로 돌아가버렸다는 소식에 문득 그의 소식이 궁금해졌다. 분명 그 또한 무척이나 슬퍼했을 테다. (정민재)

The man who sold the world (1970)

‘도대체 데이비드 보위가 누구야?’

90년대 얼터너티브 록에 심취되어 있었던 고등학생 때의 나는 너바나가 커버한 ‘The man who sold the world’를 듣고 난관에 봉착했다. 어디서 주워들은 적만 있었던 그 이름. ‘That was a David Bowie song’. 아무것도 모르던 나에게 처음으로 데이비드 보위를 소개해 준 것은 커트 코베인이었다. 호기심이 가득했던 나는 데이비드 보위의 < The Man Who Sold The World > 앨범을 사러 음반점으로 향했다.

그리고 두 번째 난관이 찾아왔다. 앨범 커버엔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구분할 수 없는 긴 머리의 사람이 여성 드레스를 입고 S라인을 뽐내며 요염하게 누워있었기 때문이다. 당황스러웠다. 거장의 근엄함 따윈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여장을 한 일개 개그맨처럼 저렴해 보였다. ‘이것이 커트 코베인이 커버한, 그 데이비드 보위가 맞나?’ 앨범의 여기저기를 살펴보던 나는 커버에 ‘데이비드 보위’라고 크게 박혀있는 것을 확인하고 앨범을 제자리에 둔 다음 집으로 향했다. 나와 데이비드 보위의 잊을 수 없는 첫 만남은 이러했다. (이택용)

Life on Mars? (1971)

1960년대 말, 인류는 달 착륙에 성공했고 세상의 화두는 지구 밖의 어딘가로 초점을 모았다. 우주 시대의 열기가 정점에 달한 그 시절, 그리고 데이비드 보위의 우주 공상도 구체화돼 여러 노래로 우리 앞에 등장했다. 내 데이비드 보위는 미지의 세계에 대해 노랫말을 쓰고 멜로디를 붙여 만든 아티스트의 곡들로부터 시작됐다. 아폴로 11호와 함께 우주선을 쏘아올린 ‘Space oddity’에서 출발해 이어지는 ‘Life on Mars?’, 급기야 자기 스스로 외계인이 돼버렸던 지기 앨범에서의 ‘Starman’, ‘Ziggy Stardust’와 같은 넘버들이 어렸을 적의 내 CD 플레이어와 MP3 플레이어를 차지했다.

‘Life on Mars’를 들으며 느꼈던 기묘함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득하게 울려 퍼지는 릭 웨이크만의 피아노, 풍성한 사운드로 곡을 뒷받침하는 스트링, 절제미가 엿보이는 믹 론슨의 기타 솔로, 드라마틱한 보컬 퍼포먼스로 좀처럼 알 수 없는 가사를 내뱉는 데이비드 보위의 가창, 이 모든 파트들에 서려있는 서정적인 멜로디. 이들이 주는 신비감에 사로잡혀 아티스트와 함께 ‘Is there life on Mars?’를 읊조리고, 우주를 상상하고, 그 후 지기 스타더스트까지 따르게 되었던 것 같다. (이수호)

Ziggy stardust (1972)

‘지기 스타더스트’라는 가상 인물을 담은 이 노래로, 데이비드 보위는 글램 록의 아이콘이 된다. 징글 거리는 기타 연주와 보컬은 기묘하면서도 매혹적이다. 전성기의 그를 동경하고 즐겨들었던 이들에겐 대표곡으로 거론된다.

이 곡은 내가 보위를 처음 접했던, 그 첫인상을 온전히 담고 있어 각별하다. 많은 사람들 역시 독특한 의상과 오렌지색 머리, 진한 화장으로 그를 기억한다. 데이비드 보위는 독보적인 스타일을 가진 뮤지션이자 퍼포머였다. 음악뿐만 아니라 비주얼까지 확장시켰고 지금의 음악과 패션, 예술계 곳곳에 영향이 묻어있다. 화려하게 반짝였던 그를 추억한다. (정유나)

Aladdin Sane (1973)

우리 인생은 짧고, 비참하다. 그리고 그다음은 죽는 것뿐이다.
– 영화 < 트레인스포팅(Trainspotting) >(대니 보일, 1996) 중에서

미니멀리즘과 무질서가 공존하는 곳. 날것의 애정으로 메우는 소음의 방. 혼란스러운 순간에 듣는 ‘Aladdin Sane‘은 더할 나위 없이 찬란하다.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듯, 고통을 고통으로써 갚아나가는 것이다. 위로가 된다. 놀랍게도.

이 곡의 백미는 역시 마이크 가슨의 전위적인 피아노 연주다. 원테이크로 녹음한 만큼 우연성과 직관이 만들어낸 순간의 폭발적인 음향이 담겨 있다. 동시대에 발표된 딥 퍼플의 ‘Highway star’와는 또 다른 의미의 짜릿한 플레이다.

한때 스스로를 괴롭히던 아이가 공감이라는 코드로 사랑했던 곡이다. 라자루스가 된 포도나무께 경배를. (홍은솔)

Rebel rebel (1974)

단숨에 귀에 감기는 기타 리프와 멜로디, 어딘지 모르게 반항적인 분위기까지. 라디오에서 처음 접했던 데이비드 보위는 내게 ‘지기 스타더스트’이기 전에 ‘핼러윈 잭’이었다. 뜻도 모르면서 신나게 ‘레블 레블’을 흥얼거렸다. 비록 형인 듯 누나인 듯 화려한 모습에 적잖이 놀랐지만, 금세 그의 음악에 깊숙이 빠져들었다. 보위의 힘은 이 지점에 있었다. 페르소나와 콘셉트가 어떠하든, 완성도 높은 음악만으로도 강한 파괴력을 발휘했다.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 그의 부고 이후 가장 많이 들은 곡도 ‘Rebel rebel’이었다. 이 곡으로 보위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이 노래로 그를 잃은 슬픔을 달랬다. 마돈나에게 선수를 뺏겼지만, 나 역시 이 노래의 가사를 인용하며 그에게 감사와 작별을 전하고 싶다. “Hot tramp, I love you so!” (정민재)

Fame (With John Lennon, 1975)

어려웠다. 그의 이름을 알게 된 1975년, 당시 고교 1학년생으로서는 재래식 멜로디 패턴의 일반 팝송과는 확연히 다른 이 거무튀튀하고 까칠한 곡을 쉬 당긴다는 것은 무리였다. 신고식은 호됐다. 이후 3-4년이 더 지나 청각의 확산을 기할 때까지 데이비드 보위는 솔직히 ‘가끔씩’ ‘허세를 보충해야 할’ 순간에나 듣는 ‘장롱’ 음악이었다. 게다가 이런 변칙적이고 변태적인 음악이 빌보드 차트(그에게는 첫) 1위에 올랐다는 정보에 더욱 이리저리 심란했다 (난 수준이 낮다!!)

많은 세월이 지나서야 그의 음악세계에 가까스로 진입했다. 대중적 친화력은 몰라도 매혹의 측면에서는 압권이었다. 그 무렵 매니지먼트 문제로 심적으로 매우 불편한 환경에서 이런 결과물을 냈다는 것도 놀랍다. 이 곡을 넘버원으로 등극시켜준 본고장 음악 인구가 마침내 이해되었다. 녹음실에서 만나 친교를 맺었다는 존 레논은 후반 코러스에서 존재감이 나타나지만 전적으로 보위 재능의 산물이다. 이 곡 이후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난 무조건 보위를 ‘천재’로 부른다. (임진모)

Golden years (1976)

라디오에서 간혹 접하다가 처음으로 돈 내고 구입한 보위의 앨범(백판)은 베스트 앨범인 < Changes’one’bowie >였고 그해 좀 더 일찍 나온 그의 통산 10집 < Station To Station >이었다. 아마 고2 때인 1976년 11월 혹은 12월이었을 것이다. 실은 어쩌다 들은 ‘Golden years’ 때문이었는데 나와 맞든 안 맞든 무조건 앨범을 사야 한다는 게 그때의 심정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보위가 파고든 소울과 펑크(Funk) 노선에 닿아있지만 이후 독일 전자음악의 영향 아래 신시사이저 기반의 음악으로 달려가기 때문에 이런 풍은 거의 마지막이라는 점에서 기념비적이다. 기존 록 라인업에 콩가와 퍼커션을 이용한 리듬워크를 강조하고 음산하면서도 독창적인 코러스에다 살짝 휘파람까지 입히는 장난과 재치는 역시 비범하다. 아프로(afro) 비트가 물씬한데도 어찌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즉 외계적인 느낌이 드는 걸까. 그게 개성일 것이다. 그것도 아주 가혹한 개성! (임진모)

Be my wife (1977)

데이비드 보위는 늘 갑작스럽게, 그리고 회전각 크게 변화를 감행했다. 급격한 아티스트의 변신은 당대의 대중들에게도 그랬던 것처럼, 디스코그래피를 따라 (뒷북으로) 정주행하던 내게도 적잖은 충격을 줬다. 베를린 3부작이라 칭하는 < Low >와 < “Heroes” >, < Lodger >에서의 크라우트록 사운드도 내게 충격을 선사한 또 하나의 지점이었다. < Young Americans >, < Station To Station >에서의 소울, 펑크(funk)가 준 낯섦이 채 가시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리고 글램 록의 화신이자 화성에서 온 록 스타 버전의 데이비드 보위에 더 익숙한 상태에서 그 지점에 손을 뻗어 아티스트의 큰 변이를 느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데이비드 보위는 결코 사람을 밀어내는 실험을 하지 않았다. 독특하게 사운드를 바꿔오면서도 대중을 자기편으로 만들었고 변혁을 결국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완급을 조절해가며 다채로운 컬러를 주조해내 위화감과 친숙함을 동시에 자아내는 멋진 실험가의 면모를 아티스트는 매번 보였다. < Low >에 같이 수록된 ‘Speed of life’나 ‘Warszawa’, ‘Art decade’, ‘Weeping wall’ 등에 비해 ‘Be my wife’는 보다 쉽고 대중적인 싱글이다. 멜로디의 형태가 분명하고 그루비한 베이스 라인이 캐치하며 음반 전반에 녹아있는 노이! 식의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덜하다. 앨범의 맥락을 고려해보면 ‘Be my wife’는 조금 튀는 곡이기도 하나 한편으로는 베를린 3부작에 어렵지 않게 다가갈 수 있는 곡이기도 하다. (이수호)

“Heroes” (1977)

매일 샤워를 할 때마다 음악을 틀어 놓아야 하는 이상한 강박이 있다. 음악이 없는 불완전한 샤워는 왠지 중요 부위가 덜 씻긴 듯한 찝찝함으로 끝나버리기 일쑤였다. ‘샤워 송’에도 조건이 있었다. 길어야 하고, 시원시원한 사운드에, 멜로디는 따라 부르기 쉬워야 한다. 이러한 까다로운 조건을 거쳐 선정된 샤워 송 플레이리스트의 처음은 항상 ‘”Heroes”‘이었다. 위의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완벽한 샤워 송이다. 특히 피치가 높아지는 중반부, 스트레이트하게 내지르는 ‘I, I will be king’은 항상 따라 외쳐야 속이 시원했다. 아마 우리 집 화장실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이 아닐까.

지금부터 내가 어디로 갈지는 모른다. 하지만 지루하진 않을 것이라고 약속한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데이비드 보위는 10분 남짓한, 그 짧은 시간에도 날 즐겁게 했다. (이택용)

Under pressure (With Queen, 1981)

데이비드 보위는 모를 수 있더라도 TV나 라디오에서 원곡이든 CM송이든 가리지 않고 흘러나오는 이 노래를 들어보지 않은 한국인은 없을 테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베이스라인이 흘러나올 때부터 심장은 자연스레 그 주파수에 공명한다. 이후 위대함이라는 미사여구조차 수식하기 힘든 거장 듀오는 억압 하에 살아가는 사람, ‘그 사랑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줄 순 없을까?’라는 분명한 메시지로 치열한 삶 속에 자의식을 환기시켜주었다.

치열한 경쟁에 사교육으로 점철되는 대한민국 교육제도에 울분을 토하던 ‘수레바퀴 아래서’ 해방구는 음악이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처음으로 가사를 통째로 외웠으며 아직도 종이와 펜이 있으면 습관처럼 적어 내려가는 팝송. 그들의 인생은 짧았지만 예술은 영원할 것임을 믿는다. (이기찬)

Let’s dance (1983)

우리나라에서 가장 알려진 곡이라면 고민 없이 이 곡을 꼽을 수 있다. 디스코 열풍이 가득했던 1983년, 마이클 잭슨의 ‘Beat it’을 밀어내고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에 오른 곡이다. 시크(CHIC)의 리더 나일 로저스(Nile Rodgers)가 공동으로 프로듀서를 맡았고, 스티비 레이 본(Stevie Ray Vaughan)이 기타 솔로를 녹음했다. 끊임없이 변신을 원했던 그는 동시대의 트렌드를 받아들여 자신의 스타일을 완성했고, 대중들은 이를 열렬히 환영했다.

어딘가 도시적이고 향락적인 노래에 비해 뮤직비디오의 메시지는 경건하다. 호주를 배경으로 원주민 남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자연과 도시를 대비시키며 타락한 자본주의를 경고한다. 짜인 군무가 아니라 자유롭게 음악에 몸을 맡기는 사람들, 아찔한 절벽 위에서 춤추는 남녀의 모습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결국 그가 추자고 했던 ‘춤’은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한 유혹의 몸짓도 과시의 수단도 아니었다. 즐거움의 발현이자 행복을 위해 버둥거리는 아름다운 몸부림! “Let’s dance, for fear tonight is all” (춤을 추자, 오늘 밤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 (김반야)

Dancing in the street (With Mick Jagger, 1985)

‘틈’이 느껴지는 일탈의 곡이다. 멋지고 신비롭게만 보이는 그가 이 노래에 맞춰서 아이처럼 계단에서 뛰어내리고 경박하게 몸을 흔든다. 한때 염문설(?!)의 주인공이기도 했던 믹 재거(Mick Jagger)와 장난꾸러기같이 해맑은 표정으로 춤을 춘다. 취지 또한 하나의 이벤트로 시작됐다. 1985년 ‘Live Aid’ 자선 콘서트를 위해 마사 앤 더 반델라스 (Martha & The Vandellas)의 곡을 리메이크해서 내놓았다.

이 노래는 미국 흑인들 사이에는 인권 운동가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두 로커는 이를 에티오피아 난민의 기아 문제를 위해 힘을 보태기 위해 불렀다. 특히 뮤직비디오가 흥미롭다. 뭔가 어설프고 재밌다. 노래도 스텝이 착착 맞기보다는 흥에 겨워 목청을 돋워 내지르고 춤도 나오는 대로 막 흐느적거린다. 그 모습이 얼마나 신나고 즐거운지 지켜보는 사람도 낄낄대며 웃게 만든다. 그에 대한 기억을 넘기며 가장 인간적이고 즐거워보였던 순간. 그 감정과 숨결이 담겨 있다. (김반야)

Little wonder (1997)

1990년대 데이비드 보위를 대표하는 < Earthling > 속 1번 트랙 ‘Little wonder’다. 독특하게도 이 곡을 드럼 앤 베이스라는 장르를 공부하다 접했다. 브레이크 비트가 달리며 만들어내는 긴박함은 으스스한 뮤직비디오와 감상하면 더욱 강렬히 느낄 수 있다. 당시는 유행을 쫓는다는 이유로 좋은 평을 받지 못했지만, 글램 록 외의 다양한 영역으로 자신을 알록달록 덧입혔기에 지금 더 특별하게 기억된다.

노래와 함께, 유니언 잭 코트를 멋지게 소화해낸 보위의 앨범 표지도 찾아보시길. 개인적으로 꼽는 그의 베스트 패션 중 하나다. (정유나)

Thursday’s child (1999)

한 남자가 거울을 바라본다. 꿈과 현실은 겹쳐지고 이어 펼쳐지는 상상의 나래. 지쳐가는 중년은 바스러지어 찬란했던 그 시절로 돌아왔고 일생의 동반자는 그 옛날 피앙세로서 곁에 서있다. 하지만 이는 단지 호접몽에 지나지 않을 뿐. 결국 우리가 살아갈 곳은 현실이며 의지할 사람은 당신 바로 옆 그 사람일 테다.

데이비드 보위의 디스코그래피 중 가장 아끼는 곡. 나 역시 영국에서 구전으로 전해지는 ‘슬픈 숙명을 타고난 목요일의 아이’로 태어났기에 동질감을 느꼈다. 과거를 놓아버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단 한 가지 이유는 바로 구태의연한 일상을 견디게 해주는 당신이지 싶다. 그 당신이 누군지, 이미 떠나버린 건 아닌지 이제는 알 수 없더라도. (이기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