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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러쉬(Crush) ‘with HER(2020)’

평가: 3.5/5

군 입대를 앞두고 발매한 크러쉬의 미니 앨범은 다섯 수록곡을 모두 여성 뮤지션들과의 듀엣으로 채운다. ‘그녀와 함께’라는 제목이 은유하듯 초대한 그녀들과 남녀의 사랑에 대한 저마다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콘셉트 앨범이다. 화려함 없이 절제한 악기 편성은 통일된 음향으로 가수가 주인공으로 존재할 공간을 마련하고, ‘Tip toe’와 ‘Step by step’ 등의 곡으로 1990년대 알앤비를 재현하며 장르에 대한 아티스트의 강한 애착을 드러낸다.

세련되면서도 귀에 잘 들어오는 멜로디 메이킹이 장점인 그는 본작에서도 감도 높은 보컬 라인을 곳곳에 새겨놓았다. 작품에서 가장 대중친화적이라 할 수 있는 태연과의 듀엣곡 ‘놓아줘’는 대중적인 곡 구성과 선명하게 살아있는 선율로 타이틀로서의 기능을 충족하고, 최근 AOMG에 합류한 이하이와 호흡 맞춘 ‘Tip toe’는 따라 부르기 좋은 훅(Hook)을 무기로 중독을 담보하며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질 수 있는 강한 전염성을 지니고 있다.

전체적인 멜로디 흐름이 이전 크러쉬 노래와 다르지는 않으나, 그러한 자신이 잘 쓰는 리듬을 근간으로 해 가창에 자신감이 넘친다. 흠잡을 데 없이 가히 훌륭한 보컬 연기가 이번 음반의 핵심이다. 그 면모는 신예 뮤지션 비비(BIBI)와 협업한 ‘She said’에서 정점을 이루는데, 가수의 톤에 최적화된 리듬과 진성, 팔세토, 랩을 자유자재하게 오가는 완급 조절, 편곡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변모해 나가는 감정선이 남녀의 야릇한 로맨스를 매우 입체적으로 전달한다.

단순히 듣기 좋은 싱잉이 아닌 곡 테마를 선명하게 듣는 이에게 전하는 표현력이다. 그런가 하면 이소라와 꾸민 ‘춤’에서는 크러쉬의 트렌디한 발성과 담담하게 가라앉힌 객원 가수의 목소리가 안정적인 궁합을 이루며 이별에 대한 성숙한 시선을 내비친다.

헤어짐에서 만남까지 사랑의 통일된 주제 아래 복합적인 감정을 엮어낸 전개 과정을 장르적 특성과 배합해 높은 완성도와 아티스트의 캐릭터를 모두 잡았다. 다섯 곡의 짧은 분량에도 꽉 찬 감상을 전하는 알앤비 앨범이다. 자극 없는 사운드와 ‘Step by step’의 보다 비대중적인 얼개는 많은 사람들을 대번에 사로잡을 스타일은 아니나, 그것이 크러쉬가 다수 대중과 비교적 비주류의 취향을 가진 리스너에게 고르게 선택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히트곡을 뽑아내는 송라이터인 그는 한편으로 이렇게나 아티스트적 고집이 있는 뮤지션이기도 하다.

– 수록곡 –
1. 놓아줘 (with 태연)
2. Tip toe (with 이하이)
3. 춤 (with 이소라)
4. Step by step (with 윤미래)
5. She said (with BI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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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Single

크러쉬(Crush) ‘자나깨나 (feat. 조이 of Red Velvet)'(2020)

평가: 2.5/5

크러쉬도 여간 집에만 있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나 보다. 옛 레코드를 재생하듯 나른하게 늘어진 관악 사운드와 복고풍 뮤직비디오, 여기에 힘을 잔뜩 뺀 조이의 목소리가 1980년대를 추억하며 맘껏 뛰어놀던 과거를 회상한다. 재치 있는 뮤직비디오와 가사 덕분에 정체된 일상이 조금이나마 유쾌해진다.

다만 크러쉬의 색이 두드러지지 않아 아쉽다. 물론 ‘자나 깨나’와 같이 힙합과 접목한 최신 알앤비(말 그대로 컨템포러리 알앤비다)는 어딜 가나 유행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리치 브라이언의 ‘History’와 비슷한 어레인지나, 1980년대 홍콩 영화를 오마주 하는 조지(Joji)의 영상만큼이나 키치한 스타일의 뮤직비디오는 미국의 아시안 중심 채널인 88라이징(88rising)이 추구하는 음악상과 닮아있다. 

크러쉬는 크러쉬다. 그저 ‘아시안 레거시’의 부흥을 꾀하는 요즈음의 흐름에 단순히 편승하기엔 그간 쌓아온 자아가 너무도 견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