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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 밀러(Mac Miller) ‘Circles'(2020)

평가: 3.5/5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 출신 젊은 래퍼 맥 밀러의 미래는 밝았다. 1992년생 이른 나이에 다수의 정규 앨범과 다수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통해 경력을 다져왔고, 2016년 힙합의 문법에 펑크(Funk), 인디 팝, 재즈, 트립합을 가미한 < The Divine Feminine >을 발표하며 더 넓고 단단한 음악 세계를 예고한 바 있었다. 그 누구도 그가 < Swimming > 앨범 발표 한달 후인 2018년 9월 7일, 캘리포니아 저택에서 약물 과다복용으로 숨진 채 발견될 것이라 상상하지 못했다.

그의 사망은 < Circles >가 사후 앨범으로 급조되지 않은, < Swimming >과 짝을 이루는 앨범으로 계획됐다는 데서 더욱 비극으로 다가온다. 맥 밀러는 전작과 상반된 매력의 신보를 목표로 작업을 시작했고 이것이 마치 ‘원을 그리며 수영하는’ 그림과 닮았다는 이유에서 제목을 ‘원(Circles)’으로 정했다. 거의 같은 시기에 작업한 두 앨범을 발표한 후 ‘순수한 힙합 음반(Pure Hip-Hop Records)’이라 예고된 작품으로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하는 것이 아티스트의 생각이었다.

맥 밀러가 세상을 떠난 후 미완성된 채 남겨진 동그라미는 < Swimming >에 참여했고 3부작을 함께 작업해온 프로듀서 존 브리온(Jon Brion)의 주도하에 완성됐다. 존 브리온은 생전 맥 밀러와의 작업기, 대화를 투명히 공개하며 그의 뜻을 충실히 구현했다. 장르와 신을 이끄는 젊은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했던 유작과 달리 정갈한 신보는 차분한 소프트 록, 로파이, 신스 팝 아래 부드러운 사운드로 정돈된 팝에 가깝다. 랩으로만 채운 곡은 ‘Hands’ 하나뿐이다.

비브라폰 소리와 함께 꿈결 같은 첫 트랙 ‘Circles’와 몽환적인 신디사이저의 마지막 트랙 ‘Once a day´를 수미상관 형태로 배치한 앨범엔 야망과 확장 아래 가려진 젊은 랩스타의 고뇌와 우울이 천천히 원을 그리며 돌고 있다. 존 레논과 플라스틱 오노 밴드의 소리를 닮은 ‘Complicated’와 타이틀 싱글 ‘Good news’, ‘Woods’의 진솔한 번민은 다가올 내일을 걱정하는 현 젊은 세대의 보편 정서를 관통한다.

이런 생전의 고백에서 죽음의 기운을 읽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직접 이를 언급하는 ‘Circles’와 ‘Everybody’는 물론 앨범 전체를 지배하는 생기 잃은 목소리와 우울한 주제 모두가 비극적 결말을 향하고 있다. ‘혼자 있을 때보다 무대 위에서 더욱 외로워진다’는 ‘Surf’, ‘모두 내 탓’이라 읊조리는 ‘That’s on me’ 역시 약물 외 우울을 토로할 곳 없던 아티스트의 위험 징후다.

그러나 앨범 속 맥 밀러는 처절한 새드 엔딩으로 무너지는 대신 일말의 희망을 붙잡고 ‘Woods’처럼 소소한 행복에서 위로를 찾고 있다. ‘Everybody’ 역시 시작은 죽음이나 끝은 사랑이다. 위태로울지언정 삶을 긍정하기에 작품은 단절이 아닌 순환의 의미를 확보하나, 동시에 그 주인공이 더는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짙은 비애를 느끼게 한다.

2015년 노래 ‘Brand name’에서 맥 밀러는 ‘내게 마약을 파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하는데 / 이상한 건 섞지 마 / 27세 클럽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라며 요절하여 신화가 되는 것을 거부한 바 있다. 비록 그 고뇌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지만, 그는 자신의 삶과 감정, 태도를 숨김없이 근면하게 노래하며 자유로이 지금 이 순간을 호흡하고자 했던 래퍼였다. 사후 앨범이지만 사후 앨범 같지 않은 이 작품이 그 순수함을 증명한다. R.I.P. 맥 밀러, 말콤 제임스 맥코믹.

– 수록곡 –
1. Circles
2. Complicated
3. Blue world
4. Good news
5. I can see
6. Everybody
7. Woods
8. Hand me downs
9. That’s on me
10. Hands
11. Surf
12. Once a 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