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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XCX(Charli XCX) ‘Crash’ (2022)

평가: 3.5/5

늘 두 발짝 앞서 있던 팝의 선구자가 갑작스레 한 발짝 후퇴를 선택했다. 레트로 유행에 편승한 ‘Good ones’, 같은 팬덤을 공유하는 크리스틴 앤 더 퀸즈와 캐롤라인 폴라첵을 대동하여 드림팀을 꾸린 ‘New shapes’, 그리고 밈으로 유명한 ‘Cry for you’를 샘플링한 ‘Beg for you’까지. 남녀노소 과거로 뛰어들던 흐름에 동참하면서 인터넷 문화까지 노골적으로 겨냥한 행보는 자연스레 단어 하나를 떠오르게 만든다. ‘셀아웃(Sell out, 변절자)’.

여기까지가 정확하게 < Crash >가 의도한 그림이다. 대형 레이블에서의 마지막 음반을 위해 그는 ‘악마와의 계약’을 콘셉트로 잡고 상업성을 최상위 목표로 둔 이상적인 팝스타의 틀에 자신을 맞췄다. 싱글을 공개할 때마다 일일이 동봉한 개별 아트워크와 뮤직비디오, 리믹스 없이 새 트랙으로만 채운 디럭스 버전은 2010년대 초중반 가수들의 성실했던 앨범 활동을 그리워하는 팝 키덜트들의 아쉬움을 채워준다.

내실 있는 음악 덕분에 일련의 전략은 허위 광고에 그치지 않는다. 2019년 < Charli >의 첫 트랙 ‘Next level Charli’를 닮은 도입부에서 뉴 잭 스윙으로의 반전을 꾀하는 오프너 ‘Crash’는 화려한 기타 솔로를 추가하며 짜릿함을 극한으로 충전하고, ‘Good ones’는 유리스믹스의 ‘Sweet dreams (are made of this)’의 베이스라인을 재해석하면서도 날카로운 가성을 덧입혀 본인만의 색채를 뚜렷하게 새긴다. 성공을 위해 복고 트렌드를 이용은 하되 결코 몰개성적으로 휩쓸리지는 않겠다는 의지 표명이다.

< Crash >는 그의 지난 음악 세계를 집대성하는 요약본이기도 하다. 데뷔작 < True Romance >의 어두움을 흡수한 ‘Lighting’에서는 완전히 체화된 하이퍼 팝의 리듬을 발견할 수 있다. 끈적한 1980년대풍 베이스의 ‘Yuck’으로는 사랑에 흠뻑 취한 가사를 그려내며 2014년 히트곡 ‘Boom clap’의 달콤한 추억을 되살리기도 한다. 스스로가 거쳐온 자취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뮤지션만이 만들 수 있는 커리어 1막의 훌륭한 피날레다.

명성을 안겨다 준 하이퍼팝에 ‘죽음’을 선포하며 시체가 놓인 관을 두고 군무를 췄던 ‘Good ones’의 뮤직비디오처럼, 찰리 XCX는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거대 자본의 기회를 전격 활용해 소박한 마이너 스타로 만족하기보다 타락한 팝의 하수인으로 부활하기를 택했다. 타협이라는 비판을 감수하며 온 방면에서 끌어모은 노력은 팬들의 열렬한 지지와 함께 첫 번째 영국 앨범차트 1위라는 영예를 그에게 안겼다. 거래는 성공했고, 장례식은 축제가 되었다.

– 수록곡 –
1. Crash (추천)
2. New shapes (Feat. Christine and the Queens & Caroline Polachek)
3. Good ones (추천)
4. Constant repeat
5. Beg for you (Feat. Rina Sawayama)
6. Move me
7. Baby (추천)
8. Lightning (추천)

9. Every rule
10. Yuck (추천)
11. Used to know me
12. Tw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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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XCX(Charli XCX) ‘how i’m feeling now ‘(2020)

평가: 4/5

전염병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코로나19 유행이 가져온 혼란은 우리를 구금시켰고, 이는 연예인과 뮤지션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지독한 자가 격리 속 유명인들은 화려한 드레스 대신 편한 복장 차림의 SNS 게시물을 올리고 소소한 취미 공유, 집에서 하는 운동, 파스타 만들어 먹기 등을 선보이며 소박한 모습으로 우리와 소통하는 중이다.

영국 출신 싱어송라이터 찰리 XCX 역시 삶의 피폐를 막기 위해 본인의 방식대로 일상 지키기에 나섰다. 그는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창조적이어야 한다’라며 참신한 음악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영국과 미국에 엄격한 격리 통제가 내려진 지난 4월 6일, 작곡, 편곡, 믹싱을 단 5주 만에 끝내고 한 장의 앨범을 발매할 것을 비디오 채팅을 통해 선언한 것이다. 또한 그 짧은 기간 동안 온라인상에 데모 파일을 공유하고 팬들이 보낸 일상 사진을 모은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등 매우 투명한 제작 과정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렇게 탄생한 < how i’m feeling now >는 아티스트의 개성과 완숙한 대중 감각, 동시대의 시선이 모두 담긴 빼어난 팝 음반이다.

본 이베어(Bon Iver)와 마일리 사이러스(Miley Cyrus) 등의 아티스트와 협업으로 잘 알려진 BJ 버튼(BJ Burton), PC 뮤직(PC Music)의 창립자 A.G 쿡(A.G Cook)이 조력한 음향 기조는 변함없이 미래를 지향한다. 2016년 미니 앨범 < Vroom Vroom >을 분기점으로 DJ 소피(Sophie)를 비롯한 PC 뮤직 뮤지션의 사운드를 적극적으로 운용하기 시작한 그는 본작에서도 거칠게 갈라진, 돌출되고 기계적인 편곡을 선보인다. 앨범의 킥오프인 ‘pink diamond’와 고립된 일상의 감상을 적나라한 언어로 설파하는 ‘anthems’는 대표적이다. 잔뜩 뒤틀리고 왜곡된 신시사이저가 자극적인 두 곡은 그러나 찰리 XCX의 능수능란한 사운드 스케이프가 꼿꼿이 중심을 잡고 있어 각 요소가 안정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구성적으로도 짧은 기간에 탄생한 만큼 장황하지 않고 간소하다. 더불어 그의 장기인 선명한 멜로디가 작품 곳곳에 숨 쉬어 어렵게 들리지 않는다. 남자친구를 위한 발라드인 ‘claws’는 질서를 갖춘 통통 튀는 편곡 위 잘 들리는 보컬 라인을 전면에 내세워 쉬운 청취를 확보하고, 비슷한 결의 ‘detonate’도 귀를 쫑긋 세운다. 전작의 ‘Click’을 재해석한 ‘c2.0’는 원곡의 뼈대 아래 힘은 덜고 중독성은 더한 흐름이 승리한 인상적인 리믹스다. 그런가 하면 관계의 허무와 불안을 노래하는 가사와 몽롱한 분위기를 섞은 ‘i finally understand’는 비교적 속도를 줄여 작중 쉬어가는 구간을 남긴다.

무엇보다 앨범의 백미인 ‘forever’는 그의 역량이 절정에 다다른 곡이라 할만하다. 팬들이 보낸 일상 사진을 모은, 팬데믹 속에서도 끈끈하게 유지되고 있는 사람들의 연결 고리를 보여주고 있는 뮤직비디오도 중요한 부분이나, 그런 사회적 시선을 걷어내고 듣더라도 곡 자체의 뛰어난 완성도에 넋이 빼앗긴다. 역시 한껏 날이 서 있는 전자음의 겉모양과 달리 속에는 더없이 여리고 순하게 쓰인 선율이 꿈틀대고 ‘영원히 너를 사랑할게 / 네가 옆에 있지 않더라도’라는 미래를 기약하는 노랫말, 4분 안에 완급을 기막히게 조절하는 극적인 전개 과정이 섞여 음반의 감동을 극대화한다. 올해 가장 멋진 연가(戀歌)가 탄생했다.

찰리 XCX가 써낸 흥미로운 코로나 시대 뮤지션 생존기는 혼돈과 불안 속에서도 살아 숨 쉬는 음악적 영감이 빚은 빛나는 한 장이다. 뮤지션과 청취자의 교류를 이뤄내는 데에 성공한 본작은 그의 커리어에서도, 대중음악계에서도 유의미한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일상은 멈춰도, 음악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으니 말이다.

– 수록곡 –
1. pink diamond
2. forever
3. claws

4. 7 years 
5. detonate

6. enemy
7. i finally understand
8. c2.0
9. party 4 u
10. anthems
11. vis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