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토록 무한한 사랑과 연민의 대상은 ‘나’ 자신일지 모른다. 싱어송라이터 저드(Jerd)는 음악을 거울삼아 스스로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파헤친다. 하이라이트 레코드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그는 힙합과 알앤비, 그리고 전자음악까지 매개체로 삼아 자기 이야기를 풀어냈고, 사람들은 이 내면의 외침에 조용히 귀를 기울인다. 몸담은 레이블이 해체된 지 1년이 지난 2023년 5월, 그는 특유의 진녹색 매력을 덧칠한 < Bomm >으로 다시금 홀로서기를 선언한다.
우울하지만 비관으로 치닫지 않는 음악을 듣다 보면 그가 어떤 삶을 살고 어떤 이야기에 주목하는지 궁금해진다. 이즘(IZM)에서는 철저할 정도로 냉철한 자기 객관화를 통해 끊임없이 인간 정소연에게 물음을 던지는 저드를 직접 만났다. 실제로 마주한 그의 모습에서는 음악을 포함해 삶의 모든 것에 있어 상당히 계획적이면서 여유가 넘치는 면도, 두려워하면서 당당한 면도 함께 비친다. 복합적인 내면을 풀어 멜로디와 가사에 녹여낸 그의 음악관과 삶에 대해 깊이 파헤쳐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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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5월 새로운 앨범 < Bomm >으로 돌아왔다. 복귀 소감이나 주변 반응이 궁금하다.
사실 아직까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전작 < A.M.P. >와 다른 스타일이라 걱정했는데 주위 아티스트 분들이 좋게 들어주신 것 같다. 발매 후에는 오롯이 내 삶을 즐기고 있는데 장기 휴가를 떠나온 것처럼 후련하다.
하이라이트 레코드 해체 후 자유의 몸이 되었다. 집단과 독립 생활, 둘 중 어느 것을 선호하는지?
집단에 있는 것보다 솔로 활동이 더 어울려 보이지 않는가(웃음). 앨범 제작을 위한 소통부터 음악 작업까지 모두 혼자 해야 하니 물론 불편하긴 하다. < Bomm >을 만들 때도 내가 만든 음악에 대해 논의할 수 없고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점이 가장 힘들었다. 대신 구성과 기획 전부 자유다. 아마 누군가가 개입했다면 중간에 장르가 갑자기 바뀌는 ‘영업 안 합니다’는 음반에 수록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치고 음악 고등학교에 진학했으니 취미로도 음악은 줄곧 놓지 않았다. 그러다 미디(MIDI)에 흥미가 생겨 독학도 하고 레슨도 받다가 20대 초반 본격적으로 싱어송라이팅을 시작했다. 당시 사운드 클라우드가 활성화되는 단계였고 퓨처 알앤비도 유행했을 때라 ‘한 번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시작하게 됐다.
그러면 주로 어떤 음악을 들으며 자랐는가?
오버클래스 크루가 활동하던 시절쯤일까, 소울컴퍼니와 가리온부터 시작해서 국내 힙합을 많이 들었다. 장르 별로 가리지 않고 많이 찾아 들었는데 해외로 넘어가자면 칸예 웨스트부터, 퍼렐 윌리엄스, 질 스캇(Jill Scott), 에리카 바두(Erykah Badu) 등도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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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거나 음악적으로 영향 받은 아티스트나 앨범이 궁금하다.
한 명만 꼽자면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Tyler, the Creator), 그렇게 보면 또 퍼렐 윌리엄스의 영향 아래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좋아하는 음반은 프랭크 오션 < Blonde >, 브록햄튼 < Saturation II >,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의 < IGOR > 이렇게 세 장을 뽑고 싶다.
작곡부터 작사뿐만 아니라 시작부터 끝까지 앨범을 손수 준비하는데, 보통 작업은 어떻게 시작하는가?
먼저 전체 그림을 그리고 시작한다. 주제부터 정하고 어떤 내용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먼저 정리가 되어야 한다. 그런 마음가짐을 가져야 본격적으로 앨범을 만들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보통 싱글이 되는 편이다.
싱글 단위 활동이 많은 요즘 아무래도 음반의 중요도가 낮아지고 있는데, 그럼에도 앨범의 역할과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뮤지션마다 각자 장단점이 있지 않은가. 아티스트로서 내 장점은 앨범 스토리부터 직접 만들어 내는 기획력이기 때문에 스스로가 싱글로 승부할 아티스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 A.M.P. >가 여러 방향에서 거울로 비춰본 ‘나’의 모습이라면, < Bomm >은 어둑한 분위기가 일체감을 이끈다. 청자 입장에서 앨범 이해의 단서를 제공해 줄 수 있다면?
어떻게 들어달라는 의도는 사실 없었다. 듣는 재미를 위한 장치가 몇 개 있긴 하지만 그걸 또 굳이 설명하고 싶지는 않고 들리는 대로 듣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번 앨범은 전체적인 분위기를 중시했는데 선명하지는 않지만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느낌은 계속 이어지게끔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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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애정이 쏠리는 트랙이 있는지.
‘Aria’를 제일 좋아한다. 하지만 내가 만든 앨범에는 타이틀이 없다고 봐주시면 좋겠다. 1집도 전곡이 타이틀이었고, 개인적으로 타이틀을 정해두는 것에 크게 동의하지 않는다. 듣는 사람들이 각자 좋아하는 곡을 타이틀로 생각해 주면 좋을 것 같다. 그래서 이번 앨범에도 홀수 번호에만 타이틀을 붙였다.
‘Aria’의 초반부에는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이를 활용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갑자기 ‘G선상의 아리아’ 인트로가 떠올랐고 이에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 사실 ‘Aria’는 1번 트랙으로 정해두고 만든 곡인데 시를 쓰듯 금방 가사까지 완성해서 작업도 수월하게 끝난 편이었다. 음가를 붙일 수 없는 구조라 멜로디만 따오고 조금 편곡해서 내 음악으로 쓸 수 있게 재구성했다.
‘비처럼 음악처럼’을 리메이크하기도 했는데, 관련하여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을까.
하이라이트 레코즈 활동 당시 커버 콘텐츠로 구상했기 때문에 앨범에 실릴 곡은 아니었다. 만들어 놓고 보니 쉬어가는 구간에 넣으면 재미있을 거 같아서 수록하게 되었고, 한국음악저작권협회를 통해 원곡자 박성식 선생님께 기적적으로 연락이 닿았다. 유튜브에서 저를 찾아봤다고, 목소리가 너무 멋있고 바뀐 곡도 아주 마음에 드신다고 감사하게도 허락해 주셨다.
최근에는 DJ 활동도 활발하고 최근에는 전자음악 색채도 강하다. 전자음악의 매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 A.M.P. >를 내고 나서 너무 일에만 매몰되어 살았다. 외향적으로 사람들과 만날 수도 있고 일도 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하다 마침 전자음악도 좋아하고 DJ의 꿈을 이루고 싶어서 클럽에서 DJ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또 이번에는 전보다 더 얼터너티브한 앨범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장르 경계가 허물어져 있고, 수용성이 높은 일렉트로니카와 잘 어울렸고, 작곡의 입장에서는 코드가 같아도 사운드나 편곡으로 변용을 줄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저드의 음악에는 언어도 빼놓을 수 없다. ‘X됐어’, ‘Bridal shower’에 나타나듯 자기 비판과 성찰적인 태도가 굉장히 짙은데, 본인이 생각하는 < Bomm >의 키워드는 무엇인가?
‘자기객관화’다. 객관적으로 자아를 바라보는 게 항상 정답은 아니지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Bomm >을 만들면서도 이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지나고 보니 ‘나’를 마주하는 그 과정이 스스로 ‘테라피’가 되었다. 앨범을 관통하는 주제가 우울이지 않은가, 다 만들고 듣다 보니 ‘아, 내가 이런 감정과 상태에 놓여 있었구나’하고 깨닫고 덤덤해지더라. 이렇게 음반을 만드는 건 내 두려움을 없애는 과정과 같았다.
가사를 읽다 보면 경험담이 구체적으로, 그리고 실감 나게 다가온다. 그래도 자기 이야기를 ‘객관화’해서 쓰고 공개적으로 내보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뮤지션은 늘 용감해야 하고 무대에서 멋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두려울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를 마냥 피해봤자 남는 건 없고 피할 수도 없다. 그래서 오히려 내 단점을 음악에 걸어두고 하나씩 깨부수고 있다. 그런 경험을 계속 거듭하고 나니 자연스레 치유가 되더라.
가사에 욕을 자연스럽게 사용한 이유도 비슷한 이유에서인가.
욕만큼 감정 전달이 쉬운 말이 또 없다. 여러 감정을 표현할 수가 있어서 그런 의도로도 넣었지만, 또 팝 가사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직설적인 가사는 다소 없지 않은가. 가사에서 오는 외국 음악과의 차이도 없애보고도 싶었다.
본인을 더 알리고 싶은 욕심은 없는가?
아티스트로서 음악의 퀄리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내가 더 열심히, 좋은 음악을 만들어야 하는 시기라고 본다. 내 음악에 완전 자신이 있을 때 비로소 뭐든 할 수 있는 걸 도전해 볼 것 같다.
지금과 다른 사람이 되고 싶은가, 혹은 비슷해도 괜찮을 것 같은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누구나 생각하지 않나. 사실 돌이켜 보면 1집과 2집 모두 울적한 이야기를 담았다. 지금은 그때보다는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한 여정에 한 걸음 나아간 것 같다. 다음 음반에서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담을 가능성도 있겠다.
이제 곧 20대의 끝자락이다. 이후 계획이 있는가?
이후에 말할 거리가 생기면 앨범은 계속 만들겠지만, 장기적인 계획은 조금 쉬다 결정할 예정이다. 아, 올해 안에 단독 공연은 꼭 열고 싶다.
진행: 손민현, 장준환, 임동엽, 염동교, 정다열
정리: 손민현
사진 제공: 저드(Je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