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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핑크(BLACKPINK) ‘Born Pink'(2022)

평가: 2/5

아이돌의 아이돌, 블랙핑크의 원대한 걸음은 아직 진행형이다. ‘뚜두뚜두’가 빌보드 차트에서 첫 발자국을 남긴 이래로 꾸준히 펼쳐온 로컬라이징 전략은 어느덧 후발 주자라면 반드시 참고해야 할 성공 신화가 되었고, 그들이 내건 걸크러시 이미지는 K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요 키워드로 자리 잡았다. 막강한 팬덤 파워와 브랜드 협업으로 쌓아 올린 견고한 첨탑. 그 위에 선 블랙핑크는 유유히 동시대 경쟁자들을 관망한다.

커버에 그려진 뱀 이빨만큼이나 여전히 날 서있고 배고픈 < Born Pink >는 다음 먹이를 정확히 포착한다. 팝 시장을 고려한 영어 위주의 가사, 안정적인 반응을 위해 꾸린 무난한 작법 체계, 선두자 역할에 걸맞은 트렌드 반영과 화려한 뮤직비디오까지. 얼개만 본다면 전작에 이어 굳히기에 돌입하려는 평범한 후속작처럼 보인다. 다만 조금 더 자세히 바라보면 관점은 달라진다. 이빨 앞에 놓인 것은 먹음직스럽게 차려진 화제의 상찬이 아닌 바로 스스로의 목덜미기 때문이다.

모든 수록곡이 그간 커리어의 아류 수준에 가깝다. 그룹의 고유 정체성과 팝스타 지향성을 적정선에서 조율한 전작 < The Album >에서 더 강한 상업적 노선을 취하자 기존 특색이 퇴색된 셈이다. 모든 히트곡을 거푸집에 넣어 한 데 녹인 선공개 타이틀 ‘Pink venom’을 보자. 익숙한 스트링과 브라스 사운드, 둔탁한 트랩 비트, 매번 비슷한 파트 분배와 빠르게 고조되는 부분 모두 그 여느 때보다 기시감이 짙다. 나름의 킬링 파트를 위해 숨 가쁘게 ‘그라타타’를 연호하는 지점은 그 괴팍한 센스에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다.

최근 K팝에서 시도되는 클래식 접목의 결과물인 ‘Shut down’은 파가니니의 ‘라 캄파넬라’를 소재로 삼았으나, 최소한의 완급 없이 원곡의 포맷을 그대로 가져간 탓에 3분가량의 광고 음악으로 전락하고 만다. 게임 회사와의 콜라보 하에 추진되어 메타버스 개념을 도입했지만 공허함만 남는 EDM 트랙 ‘Ready for love’ 역시 급하게 추진된 느낌을 감출 수 없다. 유행을 위시한 기획에 자주 쓰던 재료만 얼추 섞은 뒤 신곡으로 결재안을 올린 양상이다.

복구처가 되었어야 할 중반부의 밋밋함도 치명적이다. 정상급 아이돌의 여유로운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 차분하게 잡은 작법과 영어 가사가 되려 창의성의 부재로 작용했다. 한 마디로 ‘케이’스러운 매력을 풍기지도, ‘팝’처럼 대중적이지도 않은 구간이다. 자극적이더라도 확실한 인상을 남기는 데 능했던 과거와 달리 시종일관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기에 간극은 더욱 크다. 주력 무기를 가져왔으나 차별성이 부족한 ‘Typa girl’, 팝 록 계열로 청춘 송가 ‘Lovesick girl’의 성공 사례를 이어가려는 ‘Yeah yeah yeah’, 꽤 성공적인 스타일 변화에도 뚜렷한 멜로디나 완급이 없어 특색 없는 발라드에 그치고만 ‘The happiest girl’이 그렇다.

현지화를 택했다면, 이보다 더 좋은 팝은 많다. 오리엔탈리즘의 신비를 마케팅으로 삼은 것이라면, 그 의도부터 편협함이 가득하다. 화려한 비주얼라이징과 스타일만을 노린 것이라면, 자신을 가수보다도 협찬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양방향 발전 가능성을 모두 내포하던 하이브리드작 < The Album > 이후 2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블랙핑크의 파괴 전차는 여전히 같은 곳에 머무른 듯 보인다. 겸손한 정착과 당당한 선도, 그 어디에도 명쾌한 해결책을 남기지 못한 채 말이다.

– 수록곡 –
1. Pink venom
2. Shut down
3. Typa girl
4. Yeah yeah yeah
5. Hard to love
6. The happiest girl
7. Tally
8. Ready for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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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핑크(BLACKPINK) ‘Pink venom’ (2022)

평가: 2/5

노래 말고 이미지를 만들고자,

그룹의 시그니처 사운드인 ‘Blackpink in your area’와 ‘Blackpink is the revolution’이 맞붙으면 승자는 필히 후자다. 블랙핑크는 우리 ‘근처’에 있지 않고, ‘혁명’의 주인공이자 ‘뚜두뚜두’, ‘라타타타’ 주술을 외는 천상의 앰버서더를 향해 나간다(혹은 나가고자 한다).

9월 16일 발매될 정규 2집의 선 싱글인 이 곡이 이러한 블랙핑크의 지향을 정확히 나타낸다. 묵직한 거문고 선율로 문을 연 노래는 강렬하고, 자극적인, 더 인상 깊은 무언가를 계속 쏟아내는 뮤직비디오를 통해 콘셉트와 퍼포먼스의 승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흔히 여성적인 것이라 연상되는 ‘핑크’와 독이라는 의미를 가진 ‘베놈’을, 그러니까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닌 두 이미지를 연결해 ‘블랙핑크’만의 영역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이를 아주 화려하게 포장한다.

결론적으로 노래에는 대중이 무엇에 열광하는가, 대중에게 무엇을 꺼내 보여야 새로운 자극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한 기색이 역력하다. 구태여 거문고 사운드를 끌어오고, 뮤직비디오 해시계, 자개 네일을 담아 ‘K스런’ 무언가를 담으려 했지만 이들이 노리는 건 전 세계 음악 팬을 사로잡을 ‘이미지’다. 노래 말고 이미지를 만들고자 달려 나가는 그룹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더 높은 곳만 바라보는 이들의 혁명가에 일단은 피로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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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핑크(BLACKPINK) ‘The Album’ (2020)

평가: 3/5

새로운 신화를 이룩하려는 블랙핑크의 발걸음은 여느 때보다 확고하다. 전신 그룹 투애니원의 그늘에서 벗어난다는 일차원적 시각을 넘어, 신구의 세대 교차, 팝 독재의 종식까지 과감히 선포하며 야망을 드러낸다. 방아쇠가 당겨지고 탄환이 오가는 현장, < The Album >이라는 전쟁터 속에서 우리는 케이팝이라는 변방 세력이 전지구적 영토를 점령하기 위해 펼치는 열띤 전투를 포착할 수 있다.

데뷔 이후 첫 정규작이자 세계가 주목하는 출사표인 만큼 단 한 장으로 독자적 스타일을 각인하겠다는 욕심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중점이 되는 작법은 과거 커리어를 잘게 분해한 뒤, 그룹만의 차별적인 사운드 지점을 골라 재조립하는 공정이다. ‘Kill this love’의 뒤뚱거리는 텍스처 증폭은 ‘How you like that’의 몫으로, ‘뚜두뚜두’의 파괴적 에너지는 ‘Pretty savage’의 직접적인 오마주로 재현되며 작중 잠깐 등장하는 동양풍 솔로 파트는 ‘Crazy over you’에 이르러 메인 테마 단계로 격상하기도 한다.

또한 두아 리파와 레이디 가가와의 협업으로 정찰을 마친 블랙핑크는 순식간에 화력을 퍼부어 서구 시장이라는 목표물을 점사하기 시작한다. YG 특유의 향신료를 제거하기 위한 토미 브라운(Tommy Brown) 등의 해외 프로듀서진 대거 투입, 로제와 리사의 이국적인 음색을 돋보인 연출, 그리고 높아진 영어 가사의 비중이 그 예시다. 이러한 로컬라이징 전략은 셀레나 고메즈(Selena Gomez)가 참여한 ‘Ice cream’, 그리고 카디 비(Cardi B)가 참여한 ‘Bet you wanna’의 캐치한 멜로디 라인과 평탄한 팝 문법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과감히 행해진 변화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균형은 우수하다. 각 지향점을 다르게 둔 여덟 트랙은 나란히 팔방으로 분사되며 그룹의 과거 발자취와 앞으로 나아갈 미래의 행보를 전부 요약한다. 서너 가지 효과음이 분주하게 오가던 기존 사운드의 일부를 의도적으로 게워내고, < The Album >만의 전담 작법이 여백을 채우며 은은한 새로움을 주조하는 데 집중한다. 여러 양상이 체계적이고 치밀하게 뭉쳐, 결과적으로 의도에 상응하는 하나의 ‘완성’되고 ‘차별’적인 이미지를 얻는다.

다만 취지와는 별개로, 개개 트랙이 24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을 비집고 차지할 정도의 임팩트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선뜻 답하기 어렵다. ‘Ice cream’에서의 셀레나 고메즈는 포지션이 겹치는 탓에 존재감이 희미해지고, 몸집을 부풀리고 한껏 변형을 거친 ‘How you like that’의 사운드는 일견 부담스레 다가온다. ‘Crazy over you’의 신파적인 공격 지점도 예상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중심축이 되는 단일 요소보다 자잘한 킬 포인트를 여러 겹 중첩하며 중독성을 각인하려는 구조는 화려함으로 치장한 비주얼 측면에 비하면 다소 가벼운 선택으로 보인다.

결국 핵심은 블랙과 핑크의 유연한 농도 조절이다. 피아노 선율로 ‘아니길’의 감성 노선을 가져와 현대적 사운드를 담백하게 결합한 ‘You never know’의 비율이 모범적일 것이다. 전형적인 고조와 드롭이 운용되는 방식이라도 ‘Don’t know what to do’ 프리 코러스의 물방울 신시사이저 효과와 아이코나 팝(Icona Pop)이 연상되는 합창을 조합한 ‘Lovesick girls’의 만듦새는 과거 작품과 비교해 훨씬 직관적이다. 특히 2010년대 초 틴 팝의 고양감을 되살리는 투박한 정공법은 전술한 트랙이 미처 채우지 못한 ‘임팩트’를 한 곡에 압축해 눌러 담는다.

진부한 노랫말과 과도기적인 기획의 한계점은 분명 4년간의 기다림을 완전히 충족하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 The Album >은 ‘케이’의 기시감에 ‘팝’의 생경함을 성공적으로 이식하며 하이브리드적 면모를 수행하고, 동시에 그룹만의 뚜렷한 정체성과 방향성을 찾아내겠다는 포부를 달성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그 근거가 퀄리티보다 기세에 몰려 있다는 점이 조금 불안 요소지만, 본작의 등장은 케이팝이 ‘수동적 태도’에서 차트를 흔드는 ‘주체적 면모’로 당당히 거듭나기 시작했음을 알리고 있으니. 어쩌면 이 앨범을 기점으로 많은 것이 바뀔 거라는, 그런 예감이 든다.

– 수록곡 –
1. How you like that
2. Ice cream (with Selena Gomez)
3. Pretty savage
4. Bet you wanna (Feat. Cardi B) 
5. Lovesick girls 

6. Crazy over you
7. Love to hate me
8. You never k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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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핑크(BLACKPINK) ‘How you like that’ (2020)

평가: 3/5

초반부만 들으면 왠 ‘Kill this love’의 재탕인가 싶지만, 갑작스레 치고 나오는 보컬 파트가 빠르게도 오해를 불식한다. 빅 룸 위주의 EDM 트렌드를 적극 활용하는 건 이전과 동일하긴 하다. 이전이 랩 – 보컬 – 드랍의 구성이었다면, 이번엔 영리하게 랩을 뒤로 빼며 보컬 – 드랍 – 랩의 구성을 취해 간단하면서도 체감되는 변화를 취한 것. 더불어 각 좋은 선율과 꽉 짜인 플로우에서 나오는 중독성이 만만치 않다. 평소엔 조금 억지스럽게 여겨졌던 멤버들의 강한 억양도 무리없이 녹아들어가 있다는 점이 프레이즈의 완성도를 실감케 한다.

다만, 늘어뜨리는 듯 잡아당기는 듯 예상이 되지 않는 텐션의 매력을 접어두고 후반부에 굳이 피치를 올려야 했나 싶긴 하다. 빅뱅의 ‘뱅뱅뱅’이 연상되는 갑작스런 파티 분위기는 화려한 피날레엔 어울리지만, 앞서 만들어 온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약간의 사족처럼 느껴지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