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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BIBI) ‘홍대 R&B’ (2023)

평가: 3.5/5

과거의 영광이 사라진 홍대 거리에는 처연함만이 남았다. 낮게 가라앉은 보컬, 전면에 내세운 우울한 기타 톤, 그리고 현실적으로 묘사한 가사가 제대로 어우러진다. 자신의 처지와 비교하며 쓴 노래이기에 그 진심은 더욱 진하게 다가온다. 비판적인 시각을 과감하게 음악으로 승화하던 비비의 능력이 다시 또 한 번 힘을 발휘한다.

기운 없이 내뱉는 넋두리 닮은 노래와 랩에서도 솔(soul) 감각은 여전히 날이 선채 살아있다. 인디 음악의 메카에서 겉만 번지르르한 번화가로 변해버린 홍대에서 스스로를 비춰보며 하는 자아성찰이 직설적이다. 유명했던 음악의 성지에서 꿈을 꾸던 그가 꿈이 사라진 그곳에서 새로운 꿈들을 향해 쏟아내는 취중진담이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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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BIBI) ‘Lowlife Princess’ (2022)

평가: 3/5

데뷔 후 3년 반의 예열 끝에 낸 첫 번째 정규 음반 < Lowlife Princess: Noir >는 자의식에 충실하다. 전곡 작사와 몇 트랙의 작곡으로 지분을 높였고 영화적 구성으로 삶의 관점과 시선을 드러냈다. 오디션 프로그램 < 더 팬 >에서의 활약과 꾸준한 음원 발매로 지명도를 확보한 알앤비 뮤지션 비비에게 분기점이 되어줄 음반이다.

‘못된 놈’을 뜻하는 영어단어 ‘Lowlife’와 공주를 결합해 이미지를 굳혔다. 이상적 아름다움 대신 까칠하고 기센 캐릭터를 확립했지만, 그 곁에 인간적 면모가 공존했다. “얼마나 더 벌어야 쳐담아야 외롭지 않아지려나”라는 ‘Lowlife princess’ 속 공허감과 숨 막히는 셀럽의 삶을 표현한 ‘마녀사냥’은 화려하고 힙한 젊은 뮤지션 이전의 한 인간으로서의 고민이다.

직설화법과 우회적 표현이 교차했다. “포도주의 빵과 배부른 돼지들의 춤 / 죽어라 따라줘 악마들의 춤사위”의 은유로 사회상을 풍자한 ‘가면무도회’는 알앤비의 감각을 극대화하고 “춤추는 저 장미를 꺾어 완성한 왕관 나의 것 / 다시는 얼씬 못하게 가시를 친 성관”의 ‘나쁜X’에선 애정의 광기를 드리웠다.

전체적으로 일관된 트랙별 러닝타임과 인터루드(Interlude) 성격의 1분대 곡들로 구성적 측면을 강조했다. 누아르 분위기의 서사는 톡 쏘는 비비의 캐릭터와 만나 선명도를 높였고 간결한 피아노 반주에 국악적인 색채를 더한 ‘불륜’와 록 풍의 ‘City love’로 트랩 비트와 레게톤의 트렌디한 사운드 사이에 다양성을 심었다.

대중 음악가에게 브랜딩은 중요하다. 실력과 카리스마를 두루 갖춘 비비는 솔직한 노랫말과 감각적인 사운드로 토양을 다졌고 신보 < Lowlife Princess: Noir >로 정체성을 확고하게 했다. 알앤비와 힙합 양쪽을 오가며 거침없이 풀어내는 서사로 MZ세대에 소구력을 발휘했다.

-수록곡-
1. Intro
2. 철학보다 무서운건 비비의 총알
3. 나쁜X
4. 가면무도회
5. 모토스피드 24시
6. 불륜
7. Loveholic’s hangover (starring 샘김)
8. Wet nightmare
9. 마녀사냥
10. Lowlife princess
11. 조또
12. City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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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BIBI) ‘가면무도회’ (2022)

평가: 3/5

가식이 만연한 사회에 관한 냉소적인 시선을 담은 ‘가면무도회’는 한국의 대중음악 현장에선 흔치 않게 사회적인 폭력을 정면으로 다룬다. 조지 오웰의 소설을 떠올리게 하는 곡의 부제 ‘Animal farm’은 이 사회가 거짓과 위선으로 희생자를 양산하는 실패한 혁명의 결과와 다를 바 없다는 메시지를 넌지시 드러낸다. 고전적인 소울 음악의 형식 위에 세련된 보컬을 얹어 잔인하고 염세적인 가사를 처연하게 내뱉는 모습이 흥미롭다. 아티스트의 강한 의지가 없으면 시도하기 힘든 용기 있는 방식이다.

한편 호불호가 갈리는 뮤직비디오에선 폭력을 다루는 방식에 다소 얄팍한 측면이 있다. 오마주한 것으로 보이는 영화 < 킬빌 >이 과거 액션 영화들에 대한 헌사로 충분한 빌드업 과정을 거친 폭력의 미학을 보여준 것에 반해 ‘가면무도회’의 뮤직비디오에선 피가 낭자한 충격적인 이미지만을 선택적으로 차용한다. 이에 사뭇 진지한 가사가 가려져 끈적한 붉은 빛만이 의미를 상실한 채로 부유한다. 뮤직비디오로 음악을 감상했을 때 감동이 배가 되는 것이 일반적이나 ‘가면무도회’는 음악만 재생되었을 때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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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BIBI) ‘인생은 나쁜X’ (2021)

평가: 3/5

SBS 프로그램 < 더 팬 >의 준우승자이자 펭수와 타이거JK가 함께한 ‘펭수로 하겠습니다’로 이름을 알린 싱어송라이터 비비가 2019년 공개한 <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지침서 > 이후 2년 만에 발매한 음반이다. 앨범 단위로는 2년 만이지만 그간 독특한 소재를 자신만의 색깔로 재치 있게 풀어내며 ‘사장님 도박은 재미로 하셔야 합니다’, ‘사랑의 묘약’ 등 싱글을 거의 매달 발표해 왔다. 우울함이 기저에 깔린 몽롱한 음악을 통해 세상의 부조리를 날카롭게 이야기했던 전작들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해왔고 이번 작품도 그 연장선에 있다. 깊게 팬 볼, 멍이 든 눈을 표현한 메이크업, 흐르는 눈물로 고난과 역경을 표현한 앨범 커버가 이를 잘 나타낸다.

수록곡마다 배경이 되는 단편 소설이 존재하는 콘셉트 앨범이라는 점이 신선하다. 20대로 살아가며 느낀 감정을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냈고 이 짧은 소설들은 음악과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살면서 다양한 삶의 굴곡과 마주한 주인공은 ‘인생은 다 똑같다’는 말로 우울함을 극복하고 이 모든 것은 ‘인생이 나쁜X’이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며 자신은 가고 싶은 길을 갈 거라는 다짐과 함께 마무리한다.

동시에 앨범 전체가 일관된 편곡을 선보이며 첫 곡 ‘Umm…life’부터 마지막 노래 ‘인생은 나쁜X’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듯한 음악적 서사를 연출한다. 자신이 겪은 정신적 괴로움과 극복 과정을 순차적으로 풀어내기 위해서다. 최소한의 악기구성은 수록곡 사이에 유기성을 더하지만 노래마다 세부적인 사운드 소스를 추가하여 차별점을 부각한다. ‘Birthday cake’는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로 슬픈 감정을 표현하고 ‘인생은 나쁜X’은 현악기를 적절히 배치하여 자신이 힘든 건 인생 때문이라며 감정을 고조시키며 앨범에 무게감을 준다.

12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이지만 여운은 길다. 비비는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담아내 듣는 이의 공감을 끌어내려 노력한다. 현재 20대에게는 위로를, 앞으로 20대를 맞이할 이들에게는 힘든 순간을 극복할 수 있도록 조언이 되어줄 음반이다.

– 수록곡 –
1. Umm…life
2. Bad sad and mad
3. 피리
4. Birthday cake
5. 인생은 나쁜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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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 ‘사랑의 묘약’ (2021)

평가: 2.5/5

뮤지션의 개성은 간혹 예상치 못한 궤도에서 확대된다. 타이거 JK, 윤미래가 이끄는 레이블 ‘필굿뮤직’ 소속인 비비는 건강기능식품 브랜드인 필리브와의 협업으로 이 곡을 발표했다. 다만 ‘사랑이 부족하면 나를 / 빠르고 간편하게 삼켜 주세요’라는 가사에서도 알 수 있듯 직접적으로 브랜드를 드러내지 않아 이질감 없이 들을 수 있다.

‘쉬가릿’과 ‘사장님 도박은 재미로 하셔야 합니다’에서 보여준 강렬한 인상은 엷어졌지만, 또 다른 매력이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당도가 높아 오래 두고 먹기보다는 가끔 생각날 때 찾고 싶은 묘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