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특집 Feature

[무비즘] 리스펙트

코로나 기세가 조금씩 저물자 삭막했던 극장가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지구촌 곳곳에는 흥미로운 작품 소식들이 당차게 고개를 내미는 추세다. 이러한 스크린 흐름에 발맞춰 IZM이 무비(Movie)와 이즘(IZM)을 합한 특집 ‘무비즘’을 준비했다. 시대를 풍미했던 아티스트의 명예를 재건하고 이름을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매주 각 필자들이 음악가를 소재로 한 음악 영화를 선정해 소개한다. 열 두 번째는 아레사 프랭클린의 생애를 스크린으로 복각한 < 리스펙트 >다.

‘소울의 여왕’ 아레사 프랭클린의 발자취를 좇는 < 리스펙트 >는 그의 사후 3년인 2021년 개봉한 전기영화다. 극적인 내용을 중점으로 구성하여 관객을 시종일관 긴장하게 만드는 작품은 연기와 음악이라는 정공법으로 힘을 토해낸다. 생전 자신의 배역을 맡을 이로 직접 지목한 제니퍼 허드슨의 강인한 연기력과 폭발적인 가창력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전설적인 가수를 되살린다. 그의 눈빛에 음악을 사랑하고 종교를 부르짖던, 흑인 여성 아레사 프랭클린이 그대로 들어있다.

음악을 사랑했던
천부적인 재능으로 ‘서른 살의 목소리를 가진’ 열 살의 아레사 프랭클린이 잠에서 깨어나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인종차별과 정치적 이념 대립이 복잡하게 어우러진 1950년대 미국, ‘My baby likes to Be-Bop (And I like to Be-Bop too)’을 출중하게 소화해내는 노래 실력은 아이에게는 행운이었지만 동시에 괴로움이었다. 노래가 끝나자 마자 잠에 들길 강요하는 아버지 클라렌스를 쳐다보는 어린 아이의 눈빛이 생애 내내 이어질 음악과의 복잡한 관계를 서두부터 암시한다. 포레스트 휘태커의 노련함에 지지 않는 아역배우 스카이 다코타 터너의 연기력에 압박감은 초반부터 팽팽해진다.

보는 사람마저 지치게 하는 극적인 플롯을 음악이 해소한다. 테드 화이트와의 연애 장면에서 나오는 ‘Nature boy’는 사랑의 당도를 가득 충전하고, 애틀랜틱 레코드에서의 첫 히트곡 ‘I never love a man (The way I love you)’의 뒤를 잇는 대표작 ‘Respect’의 공연 장면은 정상에 오른 가수의 커리어를 화려하게 선보이며 잠시 숨통을 틔워준다. 제니퍼 허드슨의 뛰어난 목소리가 그 중심을 꽉 지탱한다.

폭력적으로 변한 애인과의 본격적인 갈등 앞에 흘러나오는 ‘Chain of fools’, 그리고 그와의 결별로 해방되는 순간 나오는 ‘Think’ 등 적재적소에 울려 퍼지는 가사 덕분에 작품은 일종의 뮤지컬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특히 후자에서 자유를 부르짖는 순간 어지럼증을 토하나 이내 활력을 되찾는 주인공의 모습은 가장 높은 몰입도를 자랑한다. 전기 영화에서 음악의 역할을 모범적으로 보여주는 예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교를 부르짖은
자유의 땅인 미국에 역설적으로 노예가 되어 끌려온 흑인들이 기댈 곳은 교회였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장소에서만 허용된 노래는 가스펠을 비롯한 여러 흑인 음악의 뿌리가 되었다. 목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아레사 프랭클린 또한 단상 위에서 찬양을 통해 말씀을 전달했다. 신앙의 줄기가 내내 이어진다는 점에서 < 리스펙트 >는 종교영화이기도 하다.

독실한 기독교인에게 잔인한 세상은 끊임없이 비극을 선사했다. 너무나도 어린 나이에 겪은 성폭행으로 인한 임신과 어머니 바바라의 급작스러운 사망, 그리고 이로 인한 실어증이 초반부에 빠르게 등장하며 주인공만이 아니라 관객까지 숨막히게 한다. 애인, 그리고 가족 간의 분쟁이 멈추지 않는 버거운 삶이지만 그는 끝까지 신을 향한 손길을 저버리지 않는다.

마지막 장면은 라이브 실황을 담은 1972년 음반 < Amazing Grace >를 녹음하는 내용이다. 마치 성경 속 ‘돌아온 탕아’처럼, 한때 히트곡을 갈망했던 가수는 레코드사의 만류를 단호하게 내치며 상업성과 거리가 먼 가스펠 음반을 제작한다. 신이 응답이라도 한 것일까, 앨범은 아레사 프랭클린의 커리어 사상 최대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제작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 Amazing Grace >는 2018년에야 공개되었다)

흑인 여성이었던
인종차별이 지금보다 더욱 만연했던 시대, 흑인 인권 운동에도 적극적이었던 아레사 프랭클린의 행보 또한 스크린에 그대로 등장한다. 아버지 덕분에 목사 마틴 루터 킹 주니어와도 가까운 사이였던 그는 백인들에 맞서 급진적인 항쟁에 대한 의지를 보이기도 하고, 인권운동가 안젤라 데이비스의 체포 소식을 듣고 분개하기도 한다. 격렬했던 과거 미국을 보여주는 내용이자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 문제가 대두되었던 2020년대의 사회를 또한 관통한다.

연인 테드 화이트의 폭력성이 드러나는 계기도 인종차별이다. 흑인들이 아직도 목화 농장에서 일하던 1967년 앨라배마, 흑인 가수를 달가워하지 않던 세션 음악가들은 노골적으로 불편한 내색을 비췄다. 색소폰 연주자가 치근덕대는 모습을 본 테드는 애꿎게도 아레사에게 격렬한 분노를 토하고, 사과하러 온 스튜디오의 주인 릭 홀과 주먹다툼을 벌이기도 한다.

사회 문제에 대한 아레사 프랭클린의 대답은 간단했다. 음악이다. 편곡을 이끌며 곡의 방향성을 진두지휘하는 모습으로 불만 가득했던 세션들을 침묵하게 했던 그는 댄스 음악에 영합하지 않은 자신만의 음악으로 백인들에게도 사랑을 얻어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의 사후 인권 운동에 대한 스트레스가 코러스 싱어로 활동했던 자매들과의 갈등, 그리고 공연 스케쥴에 대한 강박으로 이어질 정도였다.

이 모든, 아레사 프랭클린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영화는 아레사 프랭클린의 실제 공연 모습을 함께 띄워준다. 감동적인 무대 장면부터 심적 부담으로 인해 알코올에 잔뜩 취해 관객 앞에서 쓰러지는 모습까지, 온갖 산전수전을 자신의 삶인 양 소화해낸 제니퍼 허드슨의 뛰어난 연기가 작품을 아우르나 결국 그 주인공은 아레사 프랭클린인 것이다. 아름다운 음악이 돋보이고, 종교적인 색채 또한 강하며, 시대를 초월한 흑인들의 정신도 함께 담겨있는 영화는 이 모든 것을 제치고 ‘소울의 여왕’에게 바쳐지는 헌사로 자리한다. < 리스펙트 >, 제목처럼 그에게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한다.

– 영화에 사용된 음악 목록 –
1. My baby likes to Be-Bop (And I like to Be-Bop too)
2. 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
3. I’ll be seeing you
4. We’re marching to Zion
5. Ain’t that just like a woman
6. How far am I from Canaan
7. What a friend we have in Jesus
8. There is a fountain filled with blood
9. Go where my baby lives
10. Lonely teardrops
11. Honey
12. Think
13. Ac-cent-tchu-ate the positive
14. This better earth
15. Groovin’ the Blues
16. Rufus
17. Nature boy
18. Hey Joe
19. Anyway you wannta
20. Respect
21. Do right woman, do right man
22. Dr. Feelgood
23. Sweet sweet baby (Since you’ve been gone)
24. (You make me feel like a) Natural woman
25. Drinks at the Ritz
26. Chain of fools
27. My one and only love
28. Puffin’ on down the track
29. Take my hand, precious lord
30. Blues to Elvin
31. Spanish Harlem
32. To be you, gifted and black
33. I say a little prayer
34. Amazing grace
35. Precious memories
36. Here I 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