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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세라핌(LE SSERAFIM) ‘Unforgiven’ (2023)

평가: 2/5

어느 때보다 여성 아이돌의 인기가 뜨거운 지금 르세라핌은 ‘이야기 속 주인공 되기’ 전략으로 차별을 둔다. 에스파가 얼마 전 발매한 신보 < My World >로 가상에서 현실세계로의 이동을 선언했고, 아이브와 (여자)아이들이 ‘주체성’이란 바운더리 내에서 세계관보단 메시지 전파에 열을 올리며 ‘우리 곁의 아이돌’이 된다면 이들은 다르다. 르세라핌이 몰두하는 건 ‘Fearless’ 두려운 것이 없고, ‘Antifragile’ 충격받을수록 더 강해지며, 용서 따위는 바라지 않는 ‘Unforgiven’ 즉, 용서받지 못한 자로서의 ‘나 만들기’이다. 이때 이들의 메시지가 선명해지려면 르세라핌의 세계가 살아있어야 한다. 곤경, 고난, 서사가 맞닿았을 때야 노래의 외피가 두꺼워지기 때문이다.

2022년 데뷔 후 발매한 2장의 EP 수록곡 일부와 7개의 신곡을 묶은 첫 번째 정규음반 < Unforgiven >엔 세계관 정립을 위한 노력이 곳곳에 자리한다. 그 제목부터도 선언적인 ‘The world is my oyster’부터 ‘The hydra’, ‘Burn the bridge’가 대표적이다. 한국어, 일본어, 영어를 혼용해 ‘나는 꺾이지 않아’, ‘나는 점점 더 강해져’, ‘나랑 저 너머로 같이 가자’ 외치는 내레이션은 앨범에 독특한 질감을 형성하며 곡에 서사를 덧댄다. 실제로 앞서 언급한 노래들은 각각 ‘Fearless’, ‘Antifragile’, ‘Unforgiven’의 바로 앞에 배치되며 이어지는 음악의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또 그에 맞는 이미지를 직선적으로 그려낸다.

친절한 안내를 통해 다다른 르세라핌의 ‘현실’은 여기가 아니라 ‘저 너머’에 가깝다. 그룹 세계관을 웹툰으로 그린 < 크림슨 하트>가 수록곡 ‘Blue flame’을 BGM으로 “푸른 반딧불이를 따라 마법의 황야”로 떠나는 여정을 담듯, 이들은 계속해서 ‘저 너머’ 어딘가로 ‘모험’을 떠난다. 신보의 후반부 배치된 신곡들로 미뤄볼 때 금번 이들의 행보는 용서받지 못할지라도 금기를 깨고 앞으로 나아가는 쪽으로 향한다. 타이틀 ‘Unforgiven’의 손을 맞잡고 앞으로 걸어 나가는 퍼포먼스가 이를 증명, 음악관에 힘을 싣고자 한다.

이처럼 음반은 내레이션, 콘셉트 확장을 위한 웹툰, 댄스 퍼포먼스 등 그룹 세계관 형성을 위해 총력을 다하지만 되려 작업의 단합력이 부족하다. ‘Unforgiven’을 두고, 르세라핌을 “용서하지 않은 자가 누구냐”라 질문은 이들이 만들어 나가는 서사의 기반이 탄탄치 않음을 보여준다. 이야기의 빈틈을 메울 만큼 음악이 강하지도 않다. 영화 < 석양의 무법자 >의 메인 선율을 가져오고, 유명 기타리스트 나일 로저스가 참여한 것이 무색하게도 곡에 이 소스들의 잔향은 옅다. 애써 귀 기울이지 않으면 흔적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

다시 말해, “우리들 만의 길을 가겠다”는 르세라핌의 도전이 기존 작업물의 모음집 격인 이번 음반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서사로 여타 아이돌과 구별되는 지점을 만들려 했으나 갑자기 등장하는 흥겨운 브라스 세션 기반의 ‘No-return’이 말하는 모험에 동참하고 싶은 의지가 지금으로써는 잘 생기지 않는다. 뜬금없는 위치에 배치된 팬송 ‘피어나’, 이지 리스닝 계열의 ‘Flash forward’, 라틴 장르를 가져온 끝 곡 ‘Fire in the belly’로 이어지는 구성 역시 헐겁다. 금기를 부수겠다며 강렬한 모습을 보이다 급 힘을 풀어버리니 이들의 외침도 흩어져 버린다.

음악과 서사가 합쳐져 시너지를 낼 때, 르세라핌의 모험은 생명력을 얻는다. 그것이 이들이 데뷔 이래 지금껏 몰두하는 단 한 가지 가장 큰 지향이다. 목적지가 어딘지 불확실한 지금, 이 연대에 손을 얹기가 어렵다. 장황하다. 캐릭터 혹은 주인공 만들기에 급급해 중심이 흔들린 음반. 정리가 필요하다.

– 수록곡 –
1. The world is my oyster
2. Fearless
3. Blue flame
4. The hydra
5. Antifragile
6. Impurities
7. Burn the bridge
8. Unforgiven (Feat. Nile Rodgers)
9. No-return (Into the unknown)
10. 이브, 프시케 그리고 푸른 수염의 아내
11. 피어나 (Between you, me and the lamppost)
12. Flash forward
13. Fire in the be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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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세라핌(LE SSERAFIM) ‘Atifragile’ (2022)

평가: 2/5

데뷔 약 두 달 만에 5인 체제를 감행했다. 신인그룹으로서 치명적인 출혈이었지만 전면에 내세운 슬로건처럼 행보는 두려울 것이 없었다. 첫 주 17만 장이라는 전무한 기록의 음반 판매량과 아이즈원 출신 김채원, 사쿠라의 인지도를 등에 업은 팬덤은 주체성을 강조한 메시지에 비해 수록곡의 설득력이 부족했던 < Fearless >의 갑론을박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무거운 짐을 벗고 한결 가벼운 발걸음을 내딛는 이들의 두 번째 캐치프라이즈는 충격을 가할수록 더 강해진다는 의미의 < Antifragile >이다. 시의성을 고려한 제목처럼 보이지만 음반은 일찍이 짜놓은 정교한 설계도 위에 있다. 첫 번째 미니 앨범 < Fearless >를 잇는 메시지와 전작을 닮은 앨범 커버, 수록곡의 짜임새가 직전 활동으로 그려낸 강인한 이미지에 컬러감을 더한다. 그룹의 세계관을 구축하고 두 핵심 멤버의 과거 색채를 흐리는데 전념하는 제작이다.

치밀한 계획표 덕에 시선은 정방향이지만 걸음걸이는 흔들린다. 연작으로써 통일감을 의도해 인트로에 삽입한 나레이션은 1990년대 특촬물을 보는 듯 부자연스러우며, 앨범 전반적으로 음절 수를 채우기 위해 억지로 끼워 넣은 듯한 영어는 청각적 쾌감도, 유의미한 메시지도 이끌어내지 못하며 감흥에 제동을 건다. 

이는 타이틀인 ‘Antifragile’에서 가장 선명하다. 아프리카 특유의 변칙적 리듬을 사용한 아프로 EDM 사운드와 강렬한 보컬이 화려하게 시작을 끊은 데에 비해 ‘걸어봐 위엄 like a lion / 눈빛엔 거대한 desire’를 위시한 몇 개의 라인들이 노래에 녹아들지 못하고 부유한다. 보컬의 문제라기보다는 파트 나누기에 급급해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를 배치한 탓이다. 팝펑크 스타일 수록곡 ‘Celestial’에서 다시 반복되는 문제점은 중독성을 꾀한 의도적 메이킹이라는 명목으로 포장해도 쉽게 가려지지 않는 흠이다.       

매끄러운 만듦새는 아니지만 자신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설득력을 더했다는 점은 성공적이다. ‘겁이 없음’을 구실 삼아 카디 비와 도자 캣의 이미지를 모방했던 선정적 퍼포먼스보다 멤버들의 과거, 강점을 적극 이용한 안무와 가사가 르세라핌으로서의 강함을 완성한다. 과도한 치장 없이 각각의 자연스러운 목소리를 잘 담아낸 알앤비 ‘Impurities’는 앨범의 테마를 강화하는 곡이다.

기독교 품계에 따르면 6개의 날개를 가지고 있는 ‘세라핌(Seraphim)’은 천사 중 가장 높은 위계에 있다고 전해진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그중 하나를 떼어낸 르세라핌이 더 이상 천사의 완전무결한 이미지에 얽매일 명분 또한 사라졌다. 부담 없이 두려움 없는 행보를 이어 갈 수 있게 된 이들에게 < Antifragile >은 더 단단해지기 위한 주조 과정이다. 

 -수록곡-
1. The hydra
2. Antifragile
3. Impurities
4. No celestial
5. Good parts (when the quality is bad but I 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