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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아이드 피스(Black Eyed Peas) ‘Elevation’ (2022)

평가: 3/5

2009년 작 < The E.N.D >는 광풍을 일으켰다. 팝 음악을 덜 듣는 한국의 고등학생들도 ‘Boom boom pow’를 흥얼거렸고 이 곡과 함께 ‘I gotta feeling’과 ‘Imma be’가 빌보드 핫100 정상에 올랐다. ‘Where is the love?’와 ‘Let’s get it started’, ‘Shut up’으로 존재감을 터뜨린 세 번째 정규 앨범 < Elephunk >을 내놓은 지 꼭 6년 만이었다. < The E. N. D >의 일대 현상에 미치지 못했으나 영화 < 더티 댄싱 >의 수록곡 ‘(I’ve had) the time of my life’를 일렉트로 팝으로 바꿔 놓은 ‘The time (dirty bit)’을 대중에 각인했다.

휴지기를 거쳐 8년 만에 발표한 < Masters Of The Sun Vol. 1 >은 대장부 퍼기 대신 필리핀 출신 가수 제이 레이 소울(J. Rey Soul)을 영입해 만든 첫 작품이었다. 그룹의 입지가 내려간 지 오래고 상업적 반응도 미미했으나 본령인 힙합으로의 회귀를 반기는 팬들도 적잖았다. 라틴 음악의 경향성에 영합했다는 지점에서 2020년 작 < Translation >과 궤를 함께하는 신보 < Elevation >은 중독적인 댄스 팝의 연속으로 다시금 대중성을 모색했다.

힙합과 팝, 전자음악의 자연스러운 혼합은 블랙 아이드 피스의 강점이며 여기에 라틴 리듬과 레게톤을 더해 사운드의 폭을 넓혔다. 퍼기의 록적인 음색과 대비되는 제이 레이 소울의 감각적 가창과 랩이 ‘Double d’z’를 관통하고 레게톤의 대표 주자 대디 양키(Daddy Yankee)는 ‘함께 춤춰요’라는 뜻의 ‘Bailar contigo’에 장르 색을 입혔다. 리사 리사 앤 컬트 잼과 릭 제임스의 펑크(Funk) 샘플링에 기댄 전작과 달리 멤버들의 역량을 충분히 분출했다. 샤키라와 프랑스 출신 세계적 디제이 데이비드 게타로 드림팀을 꾸린 ‘Don’t you worry’는 그룹 본연의 국제성과 화합의 주제 의식을 드러냈다.

숱하게 들어왔던 기계음이 고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축적된 내공이 자극점을 꿰뚫지만, 기시감과 키치함을 느끼는 순간 흥분감은 사그라든다. 약점을 포착한 베테랑 프로듀서 윌 아이 엠은 빅비트 밴드 프로디지의 동명의 곡에서 최소한의 기타 사운드를 추출한 ‘Fire starter’와 미니멀한 라틴 트랙 ‘Filipina queen’으로 변주를 꾀했다.

윌 아이 엠 창작력의 고점과 퍼기의 카리스마가 합세한 최전성기의 위력에 미치지는 못했다. 비슷한 질감의 댄스 팝 행렬은 청각적 쾌감과 깊이감 부족의 양날 검을 안고 가나 ‘사반세기 그들 덕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얼싸앉고 춤췄는가?’ 공로를 상기한다. 앨범의 7번 트랙 ‘Guarantee’처럼 블랙 아이드 피스의 음악은 유쾌감을 보장한다.

-수록곡-
1. Simply the best
2. Muevelo
3. Audios
4. Double d’z
5. Bailar contigo
6. Dance 4 u
7. Guarantee
8. Filipina queen
9. Jump
10. In the air
11. Fire starter
12. No one loves me
13. Don’t you worry
14.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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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브 로(Tove Lo) ‘Dirt Femme’ (2022)

평가: 4/5

색깔이 뚜렷한 만큼 토브 로의 음악은 부담감을 동반했다. 두 곡의 싱글을 히트시킨 데뷔작 < Queen Of The Clouds >부터 미니멀한 < Lady Wood >, 퇴폐미를 고밀도로 농축한 < Blue Lips >까지 이어진 위협적인 이미지는 < Sunshine Kitty >로 뿌연 연기를 일부 걷어낸 후에도 끈적한 흔적을 남겼다. 그러나 메이저 음반사를 떠나 스스로 설립한 인디 레이블에서의 첫 작품 < Dirt Femme >은 사뭇 다르다. 제한 없이 펼친 창조력이 오히려 놀랄 만큼 근사한 음반을 만들어냈다.

거손 킹슬리(Gershon Kinglsey)의 ‘Popcorn’을 비틀어 치명적 아드레날린을 발산하는 ‘2 die 4’, 섭식장애의 악몽을 격렬한 에너지로 털어내는 ‘Grapefruit’ 등의 댄스 튠이 먼저 시선을 끈다. 2022년 발매된 팝 음반 사이 단연 뛰어난 멜로디를 자랑하는 여러 트랙 중 정점은 역시 이견의 여지없이 오프닝 트랙 ‘No one dies from love’가 차지한다. 1980년대 신스팝에 북유럽 전자음악의 향취를 끼얹어 고통 이상의 비극을 빚어내는 곡은 토 로의 최대 역작으로 봐도 무방하다.

다른 포인트는 육체적 쾌락 너머로 시야를 확장한 가사에 있다. 결혼이라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뮤지션은 ‘Suburbia’에서 규격화된 아내와 엄마가 되길 거부하면서도 그로 인해 놓치게 될 기회비용 또한 두려워한다. 적막한 반주의 ‘True romance’로 감정을 토해낸 그는 ‘Cute & cruel’에서 사랑을 하나로 규정짓는 대신 그 복잡함을 그대로 포용한다. 관습적인 프레임에 갇히기를 거부하고 ‘더러운 여성(Dirt Femme)’을 자처했기에 획득한 지혜다.

그렇기에 협업 트랙에서 게스트의 색깔이 우선적으로 묻어나오는 현상은 주도권의 함락 대신 더 큰 자아 형성을 위한 수용의 과정이라는 표현이 더 걸맞겠다. 모국 스웨덴 출신 포크 듀오 퍼스트 에이드 킷과의 하모니는 어쿠스틱 기타와 이루는 뜻밖의 궁합을, SG 루이스가 주조한 두 트랙에서는 스타일을 막론한 소화력을 증명한다. 마냥 직진하는 대신 잠시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가기를 택한 것이 기존 장벽이었던 피로도를 낮추며 더 많은 가능성을 제시하는 혜안이 되었다.

그동안 줄곧 간단한 키워드로 정의하게 되던 아티스트는 단번에 쉽사리 표현할 수 없는 존재로 거듭났다. 마치 직계 선배인 로빈(Robyn)이 그랬던 것처럼, 독자적으로 틔워낸 보금자리에서 스스로 쏘아 올린 축포가 음악적인 성취까지 동반한 셈이다. 팝 신에서 토브 로는 이제 다른 의미로 독보적인 이름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짐작해본다.

-수록곡-
1. No one dies from love
2. Suburbia
3. 2 die 4
4. True romance
5. Graepfruit
6. Cute & cruel (Feat. First Aid Kit)
7. Call on me (With SG Lewis)
8. Attention whore (Feat. Channel Tres)
9. Pineapple slice (With SG Lewis)
10. I’m to blame
11. Kick in the head
12. How l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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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캐쳐(DREAMCATCHER) ‘Apocalypse : Follow Us'(2022)

평가: 2.5/5

드림캐쳐의 생존방식은 양날의 검이었다. 뚝심 있게 밀어붙인 메탈 콘셉트가 케이팝 시장에서 고유한 영역을 구축했지만 매니악한 사운드는 중심부로의 진입을 방해했다. 차근히 다져온 입지를 넓히기 위해 EDM과의 융합을 시도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일방향 콘셉트에서 벗어나 변화의 분기점으로 맞이한 디스토피아 3부작은 그룹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적절한 장르적 변용에 성공한 앨범이었다. 

아포칼립스의 포문을 여는 두 번째 정규음반 < Apocalypse : Save Us > 역시 신스팝 ‘Starlight’와 ‘Together’ 등 전자음악의 비중이 컸지만 중심을 잃지 않았다. 록에 펑크(Funk)를 가미한 ‘Locked inside a door’와 금속성 재질의 메탈 기타가 돋보이는 ‘Maison’은 앨범을 매력적인 첫 에피소드로 만들었다.  

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인 < Apocalypse : Follow Us >는 구심점이 흔들린다. 인트로에서 록 음악의 기악적 요소를 덜어내고 신시사이저와 전자드럼을 전면에 내세워 완전한 변화를 꾀하나 싶다가도 이어지는 ‘Vision’에서 부조화스러운 전자음이 메탈 사운드와 혼재해 애매한 방향성을 남긴다. 발라드곡 ‘이 비가 그칠 때면’ 역시 앨범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동떨어져 물음표가 찍힌다. 

장르적 스펙트럼을 넓히려는 시도가 궤도를 잃고 헤매는 결과를 낳았지만 중반부에 수록한 ‘Fairytale’과 ‘Some love’가 흔들리는 선체를 바로 잡는다. 비교적 데뷔 초 향취를 유지한 두 곡의 선명한 멜로디와 직선적인 록 사운드가 드림캐쳐만의 색깔을 유지한다.

독특한 시도에 그칠 수 있던 모험수로 자신만의 영역을 확장해왔다. 케이팝 시장의 본격적인 글로벌화와 맞물린 배경 덕도 있지만 그룹이 나아가는  방향에 대한 확신으로 이루어낸 성공이다. 기존의 훌륭하게 사용해왔던 무기를 등질 필요 없이 어지러운 아포칼립스를 그들만의 방식으로 헤쳐 나아가야 한다.

-수록곡-
1. Intro:Chaotical X
2. Vision
3. Fairytale
4. Some love
5. 이 비가 그칠 때면 (Rainy day)
6. Outro:Mother n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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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um KPOP Album

유하 ‘Love You More,'(2022)

평가: 3.5/5

오래도록 숨죽이던 유하는 마침내 꿈에 그리던 춤사위를 만개했다. YG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으로 10년을 보낸 그는 때늦은 데뷔에 조급할 법도 하지만 새 방향을 차분히 모색해왔고 유니버셜 뮤직의 손을 잡으며 알앤비 가수로 노선을 변경했다. 매혹적인 음색을 갖춘 싱어송라이터로 성장하던 중 첫 EP < Love You More, >를 꺼내든 그는 가장 편안한 무대 위에서 아름다운 상실을 노래하며 다음 단계로 나아갈 준비를 마쳤다.

낯익은 장르인 신스 팝을 정돈하여 안정적인 궤도로 안착한다. 이전 싱글 ‘Island’와 ‘오늘 조금 취해서 그래’의 상기된 톤은 깔끔하게 가다듬었고 세련된 기계음이 찍어내는 멜로디, 타격감을 강조한 드럼, 그리고 간질간질한 음색을 첨가하여 익숙한 느낌으로 신보를 꾸몄다. 성대를 세밀하게 활용하여 요소마다 듣는 재미도 놓치지 않았다.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서 ‘위’의 멜로디 리프를 흉내내거나 가성을 유려하게 뽑아내는 등 곳곳에 적합한 맞춤형 목소리를 준비해두었다.

고심해서 골라낸 재료들은 음반 커버의 묘한 표정과 타이틀곡 ‘Last dance’가 암시하는 복합적인 정서로 배합된다. 묵직한 베이스 라인이 먹먹한 마음을 뒷받침하고 여리여리한 맛을 살린 후렴구의 보컬은 떠나는 이에게 추는 마지막 춤을 형상화하면서 헤어진 이의 알 수 없는 내면을 묘사한다. ‘내가 널 놔줄 것 같아?’하고 서슬 퍼렇게 내뱉는 나레이션 역시 긴장감과 함께 또 다른 상상의 여지를 남긴다. 일반적으로 사랑의 끝을 표현하는 슬픔이나 분노에 그치지 않고 자기 감정을 다채롭게 해석하고 표출하겠다는 의지가 생생하다.

주제와 대조적으로 힘차게 밤하늘을 유영하는 듯한 반주는 유하의 독특한 감수성에 강한 설득력을 부여한다. 화자의 음성과 가사에 명시된 서글픈 감상들은 청량하게 가공된 사운드를 만나 밝게 전환된다. 상승하는 신시사이저 음계와 가슴을 울리는 드럼은 ‘꽃비’의 어두운 그림자를 순식간에 뒤집어 경쾌한 바람을 불어오고, ‘위’나 ‘Satellite’처럼 고공행진하는 이미지에는 가뿐하게 올라탄다. 예상되는 흐름과 극적인 반전을 이루는 작법에서 보통의 이별 노래와 차별점이 선명하게 살아난다.

성공적인 마지막 춤은 곧 새로운 시작이다. < Love You More, >는 당초의 목표에 완연히 도달했을 뿐만 아니라 확실한 정체성을 구축하며 미래를 제시한다. 말과 음악을 세심하게 버무린 과정에는 노력의 흔적이 묻어나고, 완성된 결과물이 뿜어내는 도도한 세련미는 다른 아티스트와 차별화된 빛을 발하고 있다. 꾹꾹 눌러쓴 이별의 연서를 간직한 채, 아리따운 무희로 재탄생한 유하가 가뿐하게 그다음 발걸음을 내딛는다.

– 수록곡 –

  1. Satellite
  2. Last dance
  3. 꽃비
  4. Nu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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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 ‘Midnights’ (2022)

평가: 3.5/5

실로 야심 차다. 깊이 있는 포크 음악으로 작품성을 인정 받았던 < folklore >와 인디 록의 풍모를 지닌 < evermore >로 2020년을 휩쓸더니 다음 해엔 십 대 시절 발표했던 < Fearless >와 중기를 대표하는 앨범 < Red >를 테일러의 버전(Taylor’s Version)이란 부제를 달아 재발매했다. 10분이 넘는 ‘All too well (10 minute version)’은 자기 주도를 향한 일종의 선언. 감정에 관한 서사와 그에 상응하는 사운드로 콘셉트 앨범 적 성향이 짙은 신보 또한 장르의 스펙트럼과 음악적 깊이가 병존한다.

그래미 올해의 앨범상을 세 차례 받은 현재진행형 전설의 10번째 정규 앨범 < Midnights >이 그려낸 푸른 가을밤엔 고독과 몽환이 맴돈다. 전반적으로 어쿠스틱한 < folklore >와 < evermore >와 달리 1980년대의 신스팝을 토대로 칠 아웃과 드림 팝의 영역까지 뻗어나갔지만 때로 기악의 비중이 목소리를 압도했던 과거의 전자음악과 달리 가창의 주도권을 잃지 않았다.

복고적인 사운드가 앨범 전체에 감돈다. 전자음의 무드 조성으로 라운지 뮤직의 성격을 띄지만, 레니 크라비츠의 딸로도 잘 알려진 배우 겸 뮤지션 조 크라비츠(Zoe Kravitz)의 코러스가 빛나는 ‘Lavender haze’와 과거 지향적 리듬 트랙의 ‘Anti-hero’가 흡인력 있다. 신시사이저의 너른 활용으로 한밤의 블루(Blue)를 그려냄과 동시에 직전 작품들과의 대비 효과도 모색했다.

특유의 가감 없는 표현법은 신보에도 적용된다. 만남과 이별의 여과물은 ‘나는 요즘 복수를 위해 화려하게 치장해(Lately I’ve been dressing for revenge)’라는 ‘Vigilante shit’과 디스 송 ‘Karma’처럼 직설적으로 드러나지만, 힙스터 여왕 라나 델 레이와 공연한 ‘Snow on the beach’처럼 허공에 부유하기도 한다. 어두운 앨범 안에서 ‘You’re on your own, kid’와 ‘Bejeweled’는 테일러 특유의 밝은 에너지를 선사한다.

영혼의 단짝인 그룹 펀 출신 프로듀서 잭 안토노프와 지향점이 명확한 사운드를 구축했고 해당 장르의 소화력을 증명했다. 준수한 트랙들의 연속에도 테일러의 이름이 내거는 보편성이 장르의 심연에 가닿지 못해 신스팝 걸작으로 칭하기 망설여지나 아티스트의 긍정적 자의식과 야망을 다시금 목도한다.

-수록곡-
1. Lavender haze
2. Maroon
3. Anti-hero
4. Snow on the beach (Feat. Lana Del Rey)
5. You’re on your own, kid
6. Midnight rain
7. Question…?
8. Vigilante shit
9. Bejeweled
10. Labyrinth
11. Karma
12. Sweet nothing
13. Master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