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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란이 ‘Uptown Girl’ (2021)

평가: 3/5

맨 밑바닥의 소녀에서 부유층의 여자로. 작년 < 쇼미더머니 9 >에서 가난 서사를 앞세운 진솔한 자기 고백으로 많은 이들의 공감과 애정을 끌어냈던 미란이가 변했다. 옆집 친구처럼 어딘가 친근해 보이던 겉모습은 이제 화려한 메이크업과 빛나는 조명이 감싼다. 첫 정규 앨범 < Uptown Girl >의 방향도 이와 다르지 않다. 성공 후의 또 다른 이야기, 미란이 인생 2막의 스토리를 펼쳐낸다.

도전보다 여유가 앞선다. 포문을 여는 ‘Uptown girl’은 힙합보다 댄스에 가까운 팝으로, 주류 걸그룹의 곡을 듣는 듯 안정된 구조를 지향한다. 튕기는 베이스와 매끈한 기타 사운드 위로 덧입혀진 얼핏 헤이즈가 연상되는 보컬 연기는 랩과 노래의 공존 가능성을 입증하지만 곡 흡인력은 중박. 미란이의 개성이 십분 중화된 꼭 그가 아니어도 부를 수 있는 팝이기 때문이다. 타이틀곡 ‘티키타’도 비슷한 흠을 내비친다. 간결한 알앤비 비트와 중독성 있는 후렴구는 무난하지만, 미란이의 첫 막이 더 화끈하기를 기대한 이들에게는 심심하게 들릴 여지를 남긴다.

‘지겨워서 만든 노래’를 분기점으로 이어지는 후반부가 반전을 주도한다. 주무기인 랩 대신 노래가 다수를 차지해 자칫 늘어질 뻔한 구성임에도 짧은 수록곡 안에 표정 변화를 넉넉히 채워 넣어 풍성한 느낌을 준다. 프로듀서 보이콜드의 손길이 낳은 ‘지겨워서 만든 노래’는 이모(Emo) 힙합 성질의 싱잉 랩과 강렬한 일렉트릭 기타 연주가 시원한 질주감을 선사한다. 여기에 장르의 총아인 스키니 브라운의 팝 느낌 물씬한 멜로디도 깊은 만족감을 더한다.

철저히 ‘미란이스러움’을 지키는 가사도 발군이다. 초반부가 무난한 곡들로 안정감을 다진다면 후반부는 사람들에게 각인된 자신의 이미지를 살린 선명한 메시지를 새겨놓는다. ‘Lambo!’는 대표적이다. 트랩 비트 위 중독성 강한 훅으로 ‘돈맛을 알아버린’ 현재를 한껏 만끽하는 노래는 강한 카타르시스가 된다. 변한 삶에 대해 미처 전하지 못한 푸념을 ‘추신’에 비유해 녹여낸 ‘P.S.’, 랩스타가 된 지금도 여전히 남아있는 나름의 걱정거리를 지난 1년간의 발자취와 연결 지어 털어놓는 ‘난 진짜 멋지게’는 심리적 갈등이 특유의 인간적인 캐릭터와 맞물려 입체적으로 펼쳐지는 구간이다.

전술이 상당 부분 안정에 그치지만 정직하기에 울림은 강하다. 대중성을 충분히 의식하며 모난 데 없이 잘 들리는 노래들을 챙겼고, 변함없는 자기표현 능력으로 정체성 확립도 놓치지 않았다. 여전히 자꾸 귀 기울이고 싶은 매력이 있는 미란이의 성장 스토리다.

– 수록곡 –
1. Uptown girl
2. 티키타 (Feat. 릴보이)
3. 지겨워서 만든 노래 (Feat. Skinny Brown)
4. Lambo! (Feat. UNEDUCATED KID)
5. P.S. (Feat. JAY B)
6. 난 진짜 멋지게 
7. Daisy Remix (Feat. Paul Blanco, ASH IS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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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동쿨러 ‘Yeah, I Don’t Want It'(2019)

평가: 3.5/5

보수동쿨러에게는 특별한 게 있다. 이들은 마음을 사로잡는, 그것도 흡입력 있게 단박에 사로잡는 음악을 한다. 누구에게나 꼭 하나 그런 곡이 있기 마련이겠지만 이 밴드의 노래는 뭐랄까 듣는 사람을 푹 빠져들게 만든다. 징글쟁글한 일렉트릭 기타가 대부분의 멜로디와 전체 추진력을 담당하는 구조 안에서 수록곡은 저마다 색다른 매력을 뽐낸다. 에너제틱하며 동시에 사색적인. 그 이중적인 분위기가 음반을 감싼다.

2017년 부산을 기반으로 결성한 밴드는 2019년 첫 EP인 이 앨범을 내놨다. 제목인 ‘나는 그것을 원하지 않아’라는 단호한 거절의 표현은 작품의 중심 태도와 같다. 조금은 삐뚤게 그러나 확실하게 이들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 저항한다. 대상은 때로는 연인에게로 때로는 나에게로 또 때로는 삶으로 향한다. 이때 핵심은 선명한 부정 곁에 함께하는 여유와 낭만. 한 글자씩 입으로 곱씹게 되는 시적인 가사와 멜랑꼴리하고 몽글거리는 기타 톤은 밴드만의 색채를 빠르게 퍼뜨린다.

타이틀 ‘0308’ 은 그룹의 강단을 담았다. 펑키한 리듬 위에 ‘삶은 누구에게나 실험이고 중독의 연속이다’는 가사를 내레이션으로 내뱉는데 2016년 이랑의 ‘신의 놀이’가 주었던 통쾌함과 시원함이 전해진다. 하고 싶은 말들을 툭툭 내뱉다 자신들의 말에 동조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듯 무심하게 던지는 ‘아닌가’란 질문 또한 놓칠 수 없는 매력 포인트. 연이어 ‘도어’는 눈에 그려지는 아름다운 노랫말로 마음을 녹인다. ‘눈 맞춘 적 없던 시간들이 발끝에 멈춰’있을 때 문 앞에서 무언가를 기다려본 사람, 간절함을 손에 쥐어본 이에게 곡은 최고의 위로가 된다.

유독 거친 기타 톤이 흐르는 ‘목화’의 시린 감성과 음반 내 가장 어두운 감정을 분출하는 ‘이 여름이 끝나고’의 맛과 멋을 살린 건 전 보컬 정주리의 소화력 덕택이었다. 그가 떠나고 새 보컬 김민지가 바통을 이어받은 지금 내달 돌아올 신보가 궁금하다. 머리 위로 과감하게 엑스를 그리는 용기와 넘치는 낭만, 유쾌함을 가진 그룹. 잔잔하게 밀려오는 파도처럼 뚝심 있게 밀어붙인 그들의 개성이 부산 밴드의 지평을 더욱 넓혔다.

– 수록곡 –
1.You were here, but disappeared
2. 0308
3. 도어
4. 목화(intro)
5. 목화
6. 이 여름이 끝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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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랑 ‘늑대가 나타났다'(2021)

평가: 4/5

뜨겁고도 차가운 맑은 것들의 힘

이 음반은 많은 것을 묻게 한다. 무엇 때문에 앨범의 지휘자 이랑은 이런 이야기들을 담게 되었는가. 2012년 첫 정규 < 욘욘슨 >,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 노래 부문 수상을 안긴 소포모어 < 신의 놀이 >(2016)에 이어 5년 만에 발매된 세 번째 풀 랭스는 전례 없이 강하고, 세고 어둡다. 늘 그가 손에 쥐고 사용하던 작법들, 어쿠스틱 기타와 첼로를 중심으로 곡을 쌓고 서로 다른 가사를 한 곡에 동시에 넣는 등의 구성은 비슷하지만 그 안에 적힌 메시지의 촉은 어느 때보다 날카롭다. ‘나’를 뚫고 지나 ‘사회’에 닿으려는 듯 갖은 비유를 넣어 목소리를 낸다.

이는 작품과 동명의 타이틀 ‘늑대가 나타났다’부터 선명히 드러난다. ‘이른 아침 가난한 여인이 굶어 죽은 자식의 시체를 안고 / 가난한 사람들의 동네를 울며 지나간다’는 내레이션으로 문을 연 노래는 합창단의 웅장한 코러스와 만나며 어떤 뜨거움을 전한다. ‘내 친구들은 모두 가난합니다 / 이 가난에 대해 생각해보세요’. 여기에는 명백히 개인을 넘어 세상을 향한 소리침이 담겨있다. 쿵쿵 울리는 드럼과 거기에 맞춘 여러 사람의 호흡은 힘을 주어 ‘우린 쓸모없는 사람들이 아니요’라며 분노를 토한다.

좁게 자신 주변의 것들을 다뤘던 데뷔작을 지나 < 신의 놀이 >가 적나라하게 가족과 죽음 등을 소재로 다뤘다면 이번 작품은 그 자체로 사회를 본다. 그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앨범에는 솔직한 분노와 공감할 수밖에 없는 울분이 가득하다. ‘환란의 세대’는 지금껏 발표한 곡 중 가장 굵고 거친 이랑의 보컬이 담겨있다. ‘목도 안 메도 되고, 불에 안 타도 되고, 손목도 안 그어도 되고’란 가사가 연이어 펼쳐지는 와중 몇몇 사람의 얼굴들이 떠오른다. 그러니까 애써 고개 돌린 누군가의 삶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특히나 이 곡은 코러스 버전으로도 실렸는데 노래의 끝, 두텁게 중첩된 기괴한 합창단의 울림이 마치 인생의 고통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또 하나 돋보이는 변화는 독백의 적극 활용. ‘의식적으로 잠을 자야겠다’, ‘어떤 이름을 가졌던 사람의 하루를 상상해본다’ 등에 사용된 감정 없이 내뱉는 독백들은 음반에 가득 채워진 ‘말하고자 하는 욕망’ 혹은 ‘전하고자 하는 욕망’들과 다름없다. 그만큼 앨범은 메시지를 전하려 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는 적확하게 우리에게 온다. 영화감독으로, 에세이 작가로, 또 음악인으로 존재하며 그가 풀어낸 ‘내 얘기’들은 산재한다. 누구든 그를 볼 수 있다. 아니 누구든 그를 ‘온전히’ 볼 수 있다. 이랑의 서사는 언제나 티끌 없이 맑고, 거짓 없이 온전하게 공개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번 앨범의, 나아가 ‘이랑’이란 아티스트의 핵심이다. 끊임없이 토해내는 그의 이야기들은 솔직함을 타고 더할 나위 없이 온전하게 다가온다. 삶에 밀착해 회고하는 친구, 가족, 죽음, 가난, 사랑, 일 따위의 것들이 이랑을 통해 순수하게 투영된다. 끝없이 그의 음악이 환호받는 것은 이 정제되지 않은 고백에서 시작될 것이다. 하나하나 곡이 쓰인 배경을 묻고, 듣고 싶게 한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그래서 사회적이며 정치적인 음반. 착실하게 두 땅에 발을 붙여 올곧게 ‘나’를 외쳤고 되돌아 울려 퍼지는 메아리는 그렇게 ‘우리의 것’이 된다.

  • – 수록곡 –
    1. 늑대가 나타났다 
    2. 대화
    3. 잘 듣고 있어요
    4. 환란의 세대
    5. 빵을 먹었어
    6. 의식적으로 잠을 자야겠다 
    7. 그 아무런 길
    8. 박강아름
    9. 어떤 이름을 가졌던 사람의 하루를 상상해본다 
    10. 환란의 세대(Choir 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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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디판다(Khundi Panda) ‘Modm : Original Saga’ (2021)

평가: 3.5/5

쿤디판다는 최근 힙합 신에서 가장 돋보이는 행보를 보이는 래퍼다. 1997년생 젊은 뮤지션임에도 몇 년 사이 집적한 확고한 커리어로 슈퍼 루키 이상의 존재가 됐다. 올해 시상한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랩&힙합 음반 역시 정규 앨범 < 가로사옥 >으로 호평받은 그의 차지였다.

매년 믹스테이프와 컴필레이션 작품을 발매하는, < 쇼미더머니 9 > 출연 직후에도 서리의 < The Frost On Your Kids >에 참여하는 성실함도 성실함이지만, 지지를 사는 이유는 무엇보다 실력에 있다. 그의 확실한 개성과 탄탄한 기본기에 리스너들은 반응한다.

첫 EP < Modm : Original Saga >는 전작만큼의 깊이를 배제한 한결 경량화된 작품이다. 흥미로운 콘셉트에서부터 ‘오락용 음악’이라는 아티스트의 첨언을 이해한다. ‘게임’을 주제로 가상 캐릭터 ‘소모즈(Somozu)’를 낳아 자신을 투영했고, 비디오 게임 해설을 연상하게 하는 피치 업 보컬과 조밀한 효과음으로 전자오락의 현장감을 소환했다.

프로듀서 야간캠프와 디제이 웨건(DJ Wegun) 등을 주축으로 주조된 프로덕션 역시 큰 부피를 그리기보다 자글거리는 샘플과 전자음을 가깝게 들리도록 배치해 직관성에 뜻을 두고, ‘원시의 힘’에서 드러나는 돌출된 일렉트로닉 사운드는 전자음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그의 지향점을 보다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럼에도 마냥 가볍기만 한 것은 아니다. 촘촘하게 쪼개진 래핑은 자신의 역량을 강조하는 데에 강수를 둔다. 그의 레이블 데자부 그룹이 소개한 대로 과연 ‘랩 도장 깨기’다. 특유의 곤두선 하이 톤을 몰아치는 강성의 플로우와 타격감 있는 발음, 안정적인 라이밍이 작정하고 단어들을 귀에 내리꽂는다. 두 곡을 이어놓은 듯 전위적인 ‘Somozu combat’의 한 구절 ‘정공법은 안 통해 / 내가 다 갖고 있거든 클래식함도’가 납득되는 이유다.

듣는 맛 이상의 팀워크를 다지는 정상급 래퍼들의 가세도 막강 캐릭터들이 뭉친 파티다. ‘Yucked up clan!’에서 버무린 버벌진트와 최엘비, 퍼프대희의 한국 힙합 크루 양상에 대한 조소적인 시선에 베이고 나면 ‘원시의 힘’의 화나와 개코에게서 세 래퍼 색깔이 균형적으로 섞이는 현장을 목격할 수 있다. 팀원의 맹활약 속에서도 자기 맞춤형 비트 덕에 쿤디판다의 주객 양보는 없다. 그레이와 넉살이 각각 참여한 ‘메인풀’과 ‘Rarebreed’에서도 백미는 쿤디판다의 고감도 훅(Hook)이다.

소위 말하는 ‘빡센 랩’을 밀어붙이는 음반이지만 그 감상은 부담스럽지 않다. 자칫하면 청취 집중력이 떨어질 수 있는 긴박하고 자극적인 스타일에도 랩 실력 너머의 신선한 콘셉트와 흐트러짐 없는 견인력으로 탈출구를 고안했다. 근면한 행보만큼이나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빛난 당당한 퀘스트 클리어다.

– 수록곡 –
1. Modm intro
2. Somozu combat 
3. 메인풀 (Feat. GRAY) 
4. 트럼프쥬스
5. Yucked up clan! (Feat. 최엘비, Puff Daehee, 버벌진트)
6. Gacha Lord : 운칠기삼 (Feat. Summer Soul)
7. Rarebreed (Feat. 넉살) 
8. 원시의 힘 (Feat. 화나 & 개코) 
9. 토끼공주 빈데어 (Feat. DJ Wegun)
10. Beta for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