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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비둘기연합 ‘999’(2019)

평가: 3/5

‘전국비둘기연합’의 정체성은 2인조라는 편성보단 이름과 행보에서 묻어나오는 태도에서 더 잘 드러난다. 2006년의 어느 겨울날 내리던 진눈깨비에서 비둘기의 비듬을 떠올려 밴드의 이름을 지은 점이나, “인생은 살짝 풀려야 재밌어!” 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전국 투어의 이름을 ‘도라이바’로 지은 점이 그렇다. 이런 희화와 아이러니에 투과된 날카롭고 묵직한 힘은 예전 홍대의 라이브 클럽들에서 자라난 한국 펑크록의 유산을 계승하면서도 이를 다른 장르들과 결합하며 현재의 것으로 만들어간다.

이번 앨범은 제목과 발매일, 수록곡의 개수까지 숫자 9로 맞추며 온 힘을 다해 비둘기의 울음소리를 의태한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가사나, 다소 평면적으로 느껴지는 개별 곡들의 정서 역시 그렇다. 반면, 앨범의 구성은 마냥 비둘기처럼 생각없고 단순하지 않다. 하나의 클럽 공연처럼 질주감의 완급을 조절하도록 곡들의 순서가 정해져 있고, 사운드 또한 지상과 하늘을 오가는 느낌이 들도록 설계되어 있다.

첫 곡 ‘하이퍼 썬’은 여러모로 이 구성에 대한 힌트가 된다. 공연의 오프닝에 걸맞는 에너지 넘치는 곡인 동시에, 기타소리가 왼쪽, 드럼이 오른쪽의 극단에 배치되어 마치 두 악기 바로 앞에 서있는듯한 인상을 준다. ‘망고’에서는 기타리프나 베이스라인, 셰이커등을 통해서 리듬감을 살리면서 힘을 모으고, ‘끼리끼리’에 도달해 에너지가 처음으로 폭발한다. 곡의 중반을 넘어가며 기타 이펙터를 이용해 잠시 웅장한 사운드스케이프가 등장했다가 끊긴다. 비행의 맛을 잠깐 보여주고 단조로움을 탈피하기 위함이다.

가사가 없는 ‘워터마크 파크’와 ‘필 잇’은 멜로디보다는 사운드에 중점을 두며 질주와 비행의 느낌을 담당한다. ‘워터마크 파크’의 파도같은 드럼소리는 앨범 첫 곡을 연상시키고, ‘필 잇’은 포스트록 (post-rock) 특유의 사이키델릭한 기타소리로 확장감과 공간감을 연출해 펑크록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는다. 이 두 곡을 이어주는 ‘페이스타임’은 서프록 (surf rock)의 발랄한 에너지로 앨범을 환기한다. 버스 부분에서 묵직한 베이스로 연주하는 제 2의 멜로디라인이 백미다.

‘끼리끼리’에서 본 폭발적인 에너지는 ‘소용돌이’와 ‘예스 오어 노’에서 다시한번 등장한다. 모든걸 쏟아내야하는 공연의 후반부에 걸맞는 선곡이다. ‘세상을 다 다 달리자’는 카사비안 (Kasabian)이나 오아시스같은 영국 밴드의 문법을 빌어 코러스로 유대감을 조성한다. 앨범 초반부에 등장한 공연장 같던 공간감은 이 곡의 후반부에서 좌우의 소리가 뒤엉키며 해체된다.

전국 비둘기 연합이 < 999 >에서 그려낸 비둘기의 그림은 홍대 앞에서 펑크록 공연들을 보러다니던 자신을 추억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특히 빛을 발할 것이다. 앨범의 폭풍같은 에너지에 내재된 질서는 이런 공감의 맥락을 고려해야만 볼 수 있다.

– 수록곡 –
1. 하이퍼 썬
2. 망고 
3. 끼리끼리
4. 워터마크 파크
5. 페이스타임 
6. 필 잇
7. 소용돌이
8. 예스 오어 노
9. 세상을 다 다 달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