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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에디터스 초이스(Editors’ Choice)

조금이나마 서로의 거리를 좁힐 수 있었던 한 해였다. 그간 억눌려있던 모든 것들이 터져 나왔듯 음악 역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들 앞에 나타났다. 희로애락으로 가득 찼던 2022년, 이즘 에디터의 일상을 파고든 노래는 무엇일까. 각자 취향을 녹여내 엄선한 플레이리스트지만 필자들이 독자 여러분에게 보내는 소소한 선물이기도 하다. 음악을 사랑하는 모두의 가슴 깊은 곳까지 진심이 전해지길 바란다.

정다열’s Choice

릴 나스 엑스(Lil Nas X) ‘Star walkin”
깜빡일지언정 멈추지 않았던 별들의 서사시.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250(이오공) ‘춤을 추어요’
세월에 익어 물든 기타 연주와 목소리를 벗 삼아.

언텔(Untell) < Human, The Album >
인간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 근본적인 물음에 날을 부딪치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향연.

신해경 ‘리얼러브 (Feat. 청하)’
양극단의 아티스트를 이어준 오작교 위의 황홀경.

그웬노(Gwenno) < Tresor >
익숙한 듯 낯선 미지 세계 속 보물. 위로라는 감정에 언어 장벽이 무슨 소용인가.

장준환’s Choice

MJ 렌더맨(MJ Lenderman) < Boat Songs >
마이크(The Microphones)를 든 채 인도(Pavement) 위 나타난 현대판 ‘마티 맥플라이’.

길라 밴드(Gilla Band) ‘Post Ryan’
어느 날 자택으로 배달된 택배. 그리고 이 불길한 난수 암호에 빠져들게 된 당신.

선과영 < 밤과낮 >
실이 바쁘게 오가듯, 미소가 배시시 오가듯. 그 소박함이 넘실넘실.

펜타곤 ‘관람차 (Sparkling Night)’
빠져들기까지 10초, 벗어나기까지 10개월. 키노 감성의 무서운 마력이란.

파더 존 미스티(Father John Misty) < Chloë And The Next 20th Century >
세기를 연결하는 낭만의 무도회장. 미스터 틸먼, 나와 함께 춤을 추겠어?

염동교’s Choice

킹 기저드 앤드 리저드 위저드(King Gizzard & Lizard Wizard) < Ice, Death, Planets, Lungs, Mushrooms And Lava >
1970년대의 잼(Jam)이 그립다면.

톰 제(Tom Zé) < Língua Brasileira >
MPB와 트로피칼리아(Tropicália)의 거목, 건재함을 과시하다.

FKA 트위그스(FKA Twigs) < Caprisongs >
스멀스멀 중독성 있는 앨범. 자꾸 손이 간다.

메가데스(Megadeth) < The Sick, The Dying… And The Dead! >
역시 메탈리카보다는 메가데스! 여전히 날카롭고 신랄하다.

뷰 파르카 투레, 크루앙빈(Vieux Farka Touré, Khruangbin) < Ali >
나른한 아프로 사이키(Psyche). 결은 다르지만 진저 베이커와 펠라 쿠티의 협연이 떠오른다.

김성욱’s Choice

프로미스나인(fromis_9) ‘Dm’
머리 아픈 콘셉트들 사이 투명하게 빛나는 보석. ‘눈을 못 피하게, 말도 못 돌리게’ 만들었다.

리치맨과 그루브나이스 < Memphis Special One Take Live >
멤피스가 주목한 ‘우리들의 블루스’. 2022 올해의 발견.

야드 액트(Yard Act) < The Overload >
갱 오브 포와 카이저 치프스 그사이 어딘가. 신랄하고 유쾌한 브렉시트 시대의 포스트 펑크.

비치 하우스(Beach House) < Once Twice Melody >
비치 하우스의 모든 앨범을 사랑한다. 이 앨범도 그렇다.

씨에이치에스(CHS) ‘Highway’
‘여름’하면 떠오를 노래가 하나 추가됐다. 8월 휴가철, 꽉 막힌 서울양양고속도로 위에서 들어보자.

임동엽’s Choice

텐투포(10 to 4) < 말하기 듣기 쓰기 >
예측할 수 없는 아름다움.

힙노시스 테라피(HYPNOSIS THERAPY) < Hypnosis Therapy >
정말로 최면에 걸린 줄 알았다.

이권형 < 창작자의 방 >
그저 음악을 할 뿐.

Various Artists < Elvis (Original Motion Picture Soundtrack) >
위대한 유산.

원슈타인 ‘존재만으로’
막힘없이 편안하다.

김호현’s Choice

해파 < 죽은 척하기 >
불안은 이렇게 사랑을 끌어안고 기어이 잠깐의 휴식을 만들어 낸다.

이수정 & 강재훈 < Stellive Vol.56 | Duology: Live At Stellive >
한국 재즈의 미래를 이끌어 갈 차세대 주자들의 근사한 조합.

제이콥 콜리어(Jacob Collier) ‘Never gonna be alone (Feat. Lizzy McAlpine, John Mayer)’
천재 마케팅을 하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로버트 글래스퍼(Robert Glasper) < Black Radio III >
벌써 세 번째 시즌을 맞이한 최첨단 흑인음악 실험실.

도미 앤 제이디 백(DOMi & JD BECK) < Not Tight >
재즈 역사를 이끈 거인들의 어깨 위에 새로운 세대가 올라서다.

손민현’s Choice

글렌체크(Glen Check) < Bleach >
아직 어른이 되긴 이르다는 근거 없는 확신이 차오른다.

이찬혁 < Error >
어떤 예술가의 기행은 시대를 여유롭게 스쳐가기도 한다, 파노라마처럼.

9와 숫자들 < 토털리 블루 >
코로나에 무뎌진 현대인들을 위한, 시기적절한 푸른 위로 한 가닥.

에이비티비(ABTB) < ⅲ >
더 거세게, 더 열정적으로, 더 록스럽게! 새 연료를 주입한 ABTB의 질주.

키스 에이프(Keith Ape) < Ape Into Space >
해묵은 갈증을 시원하게 해소해 주는 ‘Mull’.

한성현’s Choice

자브 이스…(JARV IS…) < This Is Going To Hurt (Original Soundtrack) >
자비스 코커만의 방식으로 보듬는 ‘따끔’한 세상살이.

1975(The 1975) < Being Funny In A Foreign Language >
괜히 머리 싸매지 말고 쉽게 쉽게 삽시다.

미츠키(Mitski) ‘Glide (cover)’
인간과 로봇,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기억. 에테르는 실존할지도 몰라.

트리플에스(tripleS) ‘Generation’
유닛 시스템, Z세대의 시대정신? 다 떠나서 그냥 즐겁게 랄랄라.

유아 ‘Lay low’
유혹 대신 냉소를 품은 세이렌의 노래지만 홀리는 건 마찬가지.

백종권’s Choice

일삼공공(1300) ‘Rocksta’
시드니에서도 한국 힙합. 음악으로 맺은 FTA.

잭슨(Jackson Wang) < Magic Man >
꾸준한 탈피의 결과물. 장난기 넘치던 악동이 제대로 마이크를 쥐었을 때.

엑스지(XG) ‘Tippy toes’
한국식 제조 과정으로 구현한 미국의 맛. – (Made in Japan)

버둥 < 너에게만 보여 >
올 한 해 발버둥이 석연치 않았다 해도. 나, 너, 우리를 위한 ‘응원’ 소곡집.

사커 마미(Soccer Mommy) < Sometimes, Forever >
웰메이드 얼터너티브 록이 선사하는 평온한 꿈의 체험. 옥에 티는 풋볼 마미가 아니라는 점.

소승근’s Choice

우아!(woo!ah!) ‘별 따러 가자’
이 노래는 우아!가 과소평가받고 있다는 가설을 확인시켜준다.

우연, 민서 ‘Make u move’
브레이브걸스의 ‘운전만해’ 이후 최고의 시티팝.

트라이비(TRI.BE) ‘In the air (777)’
말이 필요 없다. 이게 대중음악이다. 최고의 야구 응원가.

뉴진스(NewJeans) ‘Hype boy’
대중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주요 멜로디와 쉬운 안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이채연 < Hush Rush >
수록곡이 적다는 것이 유일한 단점이다.

정리 및 이미지 편집: 정다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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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2022 올해의 팝 싱글

유난히도 치열한 경쟁이 펼쳐진 한 해다. 예상치 못 한 고지 점령과 아슬아슬한 추격전, 그리고 통쾌한 정상 탈환까지. 주연과 각본이 쉴 새 없이 바뀌며 반전의 반전을 이룩하던 1년간의 드라마는 어느덧 막을 내렸다. 그 크레딧을 천천히 살펴보며, 차트 내외곽에서 활약을 펼친 그 영광의 10곡을 소개하려 한다. 글의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해리 스타일스(Harry Styles) ‘As it was’

새 출발 이후 곧바로 그룹 시절과의 단절을 완수한 해리 스타일스는 올해 ‘As it was’로 완연한 대세에 올라섰다. 자국인 영국에서는 10주 동안 1위를 차지했고, 미국 빌보드 핫 100 싱글 차트의 정상에서는 무려 15주 동안 군림하며 통산 4위의 기록을 세운 것. 심지어 솔로 아티스트로는 최장기간이다. 봄부터 여름을 지나 가을까지, 앨범 제목 < Harry’s House >처럼 1위 자리를 마치 그의 집처럼 드나든 셈이다.

비결은 ‘무자극’이었다. 1980년대 뉴웨이브부터 요즘 인디 록까지 다양한 재료와 향신료를 한데 넣고 섞어, 따뜻하게 속을 데워주는 깔끔한 수프 같은 곡을 완성했다. 그 중심에 놓인 기름기를 쫙 뺀 해리 스타일스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노래를 찾게 만드는 정겨운 맛을 내줬다. 정점을 찍은 인기와 물오른 실력이 엇갈리지 않고 동시에 만난 흔하지 않은 케이스다. 그러니 연기로의 외도보다는 음악에 집중해주시길. (한성현)

스티브 레이시(Steve Lacy) ‘Bad habit’

강단 있는 알앤비 록스타가 승리를 쟁취한 방법은 무엇일까. SNS, 챌린지, 차트 줄 세우기, 밈, 방송 등 노래의 성공적인 대중화를 위해 각종 플랫폼으로 홍보에 열을 올리는 작금의 시대에서 그가 선택한 방식은 당연하게도 ‘음악’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유행만을 좇는 ‘나쁜 습관’에 영원히 지속 가능한 음악으로 일갈을 가한다.

소울 그룹 인터넷의 멤버로 시작해 켄드릭 라마 등 이름난 뮤지션들과 협업하며 일찍이 실력을 인정 받아 2022년 정상에 올랐다. 오롯이 음악만을 생각한 뚝심의 결과. 트렌드의 부정을 역설(力說)했지만, 역설(逆說)적이게도 스티브 레이시는 스스로 유행의 최전선에 섰다. 아무리 급변하는 세상이라도 좋은 음악은 살아남는다. (임동엽)

원리퍼블릭(OneRepublic) ‘I ain’t worried’

초기 히트 공식을 반복한 작법에 따라붙은 자기복제 꼬리표, 그에 따른 평가 절하에도 걱정 따위는 없었다. 폭넓은 장르 도입 너머 보편적 송라이팅을 최우선으로 추구했던 원리퍼블릭의 정성이 다시금 결실을 거둔다. 놀라울 만큼 쉽고 선명하다. 부단한 담금질의 산물인 생생한 멜로디를 연료 삼아 ‘I ain’t worried’는 37년 만에 개봉한 속편 < 탑 건 : 매버릭 >에 탑승해 스크린을 넘어 박스 오피스와 음악 차트 상공을 쾌속 비행했다.

원리퍼블릭의 ‘탑 건` 라이언 테더의 탁월한 프로듀싱 역량은 거듭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대중적 흡인력을 갖춘 록 선율과 경쾌한 휘파람 사운드를 끌어온 샘플링 기법, 공간감을 연출한 편곡까지 엘리트 조종사의 날 선 감각이 올해 절정에 달했다. 시리즈를 상징하는 사운드트랙 ‘Take my breath away’와 ‘Danger zone’의 아성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민 신흥 클래식 넘버. 찬사와 홀대를 양득하며 쌓아온 노하우가 결정적 한 방을 터뜨렸다. (김성욱)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 ‘The heart part 5’

켄드릭 라마는 음악의 사회적 기능을 믿는다. 밥 딜런과 보노의 궤를 잇는 흑인 사회운동가는 < Good Kid, M.A.A.D City >(2012)와 < To Pimp A Butterfly >(2015), < Damn >(2017)의 명반 퍼레이드로 평단의 찬사를 독식했고 랩 뮤직의 시초격인 소울 뮤지션 질 스콧 헤론(Gil Scott-Heron)과 퍼블릭 에너미가 주도했던 폴리티컬 힙합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그의 파급력을 다시금 공고하게 한 다섯 번째 정규 앨범 < Mr. Morale & The Big Steppers >의 프로모션 싱글 ‘The heart part 5’는 자전적 특성을 담은 ‘The heart’ 시리즈의 5번째 순서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사회의식이 강했던 선배 가수 마빈 게이의 1976년 작 ‘I want you’를 샘플링해 재즈와 펑크(Funk)적 색채가 다분하며 반복적인 리듬 아래 선언문과도 같은 언어를 채웠다. 분노와 일갈을 억누른 랩은 냉소적 시선을 견지해 더욱 날카롭고 성찰적이다. 딥페이크 기술로 화제가 된 뮤직비디오는 로스앤젤레스의 흑인 공동체를 위해 힘썼던 래퍼 닙시 허슬(Nipsey Hussle)과 살인 사건에 휘말렸던 전 미식축구 선수 오제이 심슨(OJ Simpson), 아카데미 시상식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윌 스미스 등 6인의 표상으로 흑인의 삶을 아울렀고 갱 문화를 비롯한 흑인 사회의 그릇된 방향성에 사랑만이 해결법(I want you)임을 제시했다. (염동교)

도자 캣(Doja Cat) ‘Vegas’

도자 캣의 공세는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 여러 히트곡을 배출한 2021년 < Planet Her >로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 아티스트는 영화 < 엘비스 >의 부름을 받아 입지 확장에 박차를 가했다. 빌보드 싱글 차트 10위까지 올라간 ‘Vegas’는 전쟁터 같은 힙합 세계에서 도자 캣이 이제 슈퍼 루키를 넘어 독보적인 주연에 등극했음을 알린다.

전기 영화다 보니 트렌디한 힙합 사운드의 사용은 키워드만 보면 어색할지도 모른다. 작품에서 ‘Hound dog’의 원곡자 빅 마마 손튼(Big Mama Thornton) 역을 맡은 숀카 두쿠레(Shonka Dukureh)의 목소리를 샘플링한 영민한 비트와 후렴이 일말의 괴리감을 메꾼다. 시대와 인종의 장벽을 넘은 무대 위, 매서운 전달력과 흥겨운 싱잉 랩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래퍼의 실력도 역시 굳건하다. 복고 추세로도 모자라 옛 명곡의 적극적인 차용이 주류로 올라선 오늘날의 흐름 가운데 특히 빛나는 곡이다. (한성현)

덴젤 커리(Denzel Curry) ‘Walkin’

덴젤 커리가 2023 그래미 어워드 힙합 부문 후보에 이의를 제기했다. 자신의 음반을 포함해 올 한해 호평을 받았던 앨범들을 명단에서 제외한 데에 불만을 토로한 것. 어리광으로 치부될 수 있는 발언이지만 그에게는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 < Ta13oo >(2018), < Zuu >(2019) 등의 탄탄한 디스코그래피로 제이 콜, 켄드릭 라마 이후의 컨셔스 래퍼 선두 주자 타이틀을 노리는 그가 이번엔 < Melt My Eyez See Your Future >로 제대로 역량을 터뜨렸다.

그 중 ‘Walkin’은 단연 베스트 트랙이다. 부조리한 세상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자신을 가사에 담아 역설적으로 불합리한 사회를 고발한다. 정통 붐뱁에서 하이햇과 함께 트랩으로 변주하는 사운드, 그에 맞춰 플로우를 바꾸는 랩은 무거운 주제를 전달하면서 일말의 지루함도 허락하지 않는다. 켄드릭 라마의 ‘The heart part 5’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흑인 커뮤니티에 자극을 주며 어느 때보다 눈에 띄는 도약을 만들어냈다. 덴젤의 ‘Walkin’이 올해를 대표할 자격은 충분하다. (백종권)

푸샤 티(Pusha T) ‘Diet coke’

드레이크는 앨범을 (훨씬) 더 많이 팔았다. 릴 베이비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더 많은 노래를 빌보드 차트에 올렸다. 2022년 현재 힙합 신에서 푸샤 티보다 잘 팔리고 인기 있는 래퍼는 많다. 그러나 ‘Diet coke’에서 그의 랩을 듣는다면, 선정을 납득할 것이다.

일로매진(一路邁進)의 승리다. 노래는 그의 바위처럼 단단한 태도와 모든 음악적 특징을 압축한다. 맹수처럼 사나운 랩, 랩에 집중할 여유를 넉넉히 주는 반복되는 비트, 마약상의 경험에서 비롯된 공격적인 텍스트까지. 프로듀서 에이티에잇 키스(88-keys)가 18년 전 만들어 카니예 웨스트와 새로 손본 비트는 빈티지한 느낌을 물씬 자아내고 여기서 래퍼의 목소리는 여느 때보다 자신감과 여유가 넘친다. 축소, 경량화, 단발성이 득세한 힙합 신에서 이런 묵직하고 정직한 카운터 펀치를 날릴 수 있는 래퍼는 많지 않다. 이게 기록이나 수치적 성적을 떠나, 푸샤 티가 항상 승리하는 이유다. (이홍현)

리조(Lizzo) ‘About damn time’

여성을 대표한 뮤지션은 많다. 1980년대 이후 마돈나가 줄곧 여성의 섹스(욕구)를 거침없이 발화 하고 레이디 가가는 ‘태어난 대로 살자’며 ‘Born this way’를 열창, 여성을 넘어 소수자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약간 결이 다르긴 하지만 메간 더 스탈리온, 도자 캣, 카디 비 등의 음악가는 자신의 ‘바디’를 음악적 어필 포인트로, 서슴없이 자기 과시를 행하는 중이다.

리조 역시 여성을 대표하고 자신을 과시한다. 하지만 그는 그간 다뤄지지 않았던 ‘몸’에 주목, ‘몸 긍정주의(Body Positive)’를 이끈다. 그를 이 분야의 대명사로 만든 앨범 < Cuz I Love You >가 그랬듯 이 곡도 몸의 두께와 상관없이 ‘음악은 키우고 조명은 낮추며’ 신나게 즐기자고 말한다. 1980년대 펑크/디스코 사운드를 골자로 트레이드 마크인 플루트 선율을 담은 점 또한 과거와 맥을 맞춘다. 이 연속성이 반복됨에도 올해 팝은 또다시 리조로 집약이다. 왜? 곡이 가진 독보적이고 힘 있는 메시지 덕분. 시대가 변하지 않는 한 그의 바디 찬가는 계속해서 시대를 대표할 것이다. (박수진)

수단 아카이브(Sudan Archives) ‘Selfish soul’

기록은 오직 인간에게만 허락된 신성한 행위다. 이 뜻깊은 작업을 활동명에 새겨 넣은 뮤지션 수단 아카이브는 방대한 음악 자료 수집을 통해 깨우친 가치를 단 2분 22초 안에 압축했다. 둥둥거리는 베이스로 맥이 뛰기 시작한 트랙은 소울 가득한 목소리, 가스펠 풍의 백 보컬, 그리고 박수 소리에 맞춰 그 박동을 빠르게 이어가고 이내 북동 아프리카의 바이올린과 조우하며 경쾌한 대비를 이룬다. 말미에는 짧은 랩까지 가미해 투철한 실험 정신과 장르를 끌어안는 포용성을 두루 발휘한다.

흑인 음악을 집대성한 만큼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 또한 그들의 공동체 의식을 투영한다. 각기 다른 헤어스타일을 소재로 풀어낸 노랫말은 그 형태와 색깔, 질감으로 다양성 존중을 피력하고, 흑인 여성들과 촬영한 뮤직비디오에서 수단 아카이브는 몸소 삭발과 핑크색 가발 쓴 모습을 번갈아 보여주며 주장에 힘을 싣는다. 흥미로운 ‘내용’, 간결하고도 짜임새 있는 ‘구조’, 여기에 사회를 관통하는 ‘맥락’까지. 기록의 3요소를 완벽히 충족한 현대식 민족음악 아래 새로운 무도회의 여왕이 탄생했다. (정다열)

엔칸토(Encanto) ‘We don’t talk about Bruno’

대중, 시장, 평단의 예상 밖 일치된 환대였다. 차차차 리듬을 내건 살사 음악은 친숙해서 신선하지 않고 가볍게 흘러 평가대상에서 밀려날 듯했다. 실제로 영화 OST를 쓴 작곡가 린 마누엘 미란다도 아카데미상 후보로 딴 곡을 제시했을 만큼 이 곡은 주변의 비핵심 트랙으로 간주되었다. 가수들도 영화 캐릭터의 보이스를 맡은 생소한 인물들이어서 대표곡 지위를 부여하지 않았음이 명백했고 왠지 여럿이 합창하는 곡에 승부를 걸지 않는 디즈니의 규범에도 부합하지 못했다.

반면 대중들은 이 야유적 어투의 쾌활한 아우성에 적극적 갈채를 건네면서 명곡은 범람했어도 디즈니에게 부재했던 빌보드 넘버원 싱글이란 나름의 영예를 안겼다. 무려 5주간 1위였다. (영국은 7주간) 진부할 수 있는 떼창은 오랜만에 접하는 완벽한 앙상블로 해석되어 코로나 시대에 갈구된 가족가치를 일깨우며 선전했다. 유머의 기민성, 가족 모두를 비추는 공평과 다양성, 굿 바이브레이션 사운드 그리고 미스터리 터치가 어우러진 한편의 완벽 크로스오버! 2022년을 사랑스럽게 했다.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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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올해의 가요 싱글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2022년의 한국을 관통하는 슬로건이다. 무너지지 않을 것만 같던 코로나도 조금씩 걷히기 시작한 지금, 그간 꺾이지 않고 재도약을 위해 숨죽이고 있던 음악계는 그 여느 때보다 강한 자생 의지를 드러내며 움츠린 어깨를 펴고 있다. 숨겨둔 화력을 마음껏 뿜어내며 유독 따스함이 감돈 올해, 그 뜨거운 열기를 일조한 가요 10곡을 선정했다. 글의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아이브 ‘Love dive’

남자 아이돌이 일대 부진의 늪에 빠진, 걸그룹 천하에서 아이브는 경쟁자들의 선풍적 인기몰이나 사회적 트렌드 세팅은 아니었어도 선례가 없을 독자적 표현프레임을 구축하며 웅비했다. 토대는 대중가요에서 거부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곡’ 흡수력의 부각. 가사를 빼도 이야기가 잡힐 정도의 ‘사운드 스토리텔링’을 구현해낸, 변화무쌍하고 벅찬 기승전결 구성이 그 시작이었다. 순식간에 인식의 단계가 인정의 단계로 점프하면서 한해 내내 음반과 음원의 폭발적 호응이 둘러쌌다.

부단한 가사 전달의 노고, 고저가 교차하는 보컬의 분발, 동시대 곡 어디에도 부재한 어두움(다크 팝?)은 비장함마저 피워 올렸고 열다섯-스물의 풋풋한 하이틴들임에도 30대들마저 끌어들이는 윗세대 소구력도 뿜어댔다. 그 어떤 포장과 퍼포먼스보다는 우선 곡이 양질이어야 한다는 음악 예술의 보편이성과 오랜 성공도식을 환기시켰다. ‘괴물’ 신인에 의한 ‘정상’가동이라는 비대칭의 지혜를 일깨우며 ‘올해의 신인’을 단박에 ‘올해의 아티스트’로까지 밀어 올린 ‘올해의 노래’!! (임진모)

크러쉬 ‘Rush hour’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올 한해 크러쉬의 ‘Rush hour’ 챌린지에 동참한 연예인을 줄 세운다면 운동장 한 바퀴는 거뜬할 것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나 유튜브를 통해 이름을 알린 인플루언서까지 더한다면 두말할 것도 없다. 제이홉이라는 슈퍼스타의 지원 사격, 제대 후 첫 복귀라는 화제성 등 그 파급의 진원을 다양하게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본질적인 승리의 근거는 완성도 있는 음악이다.

이토록 강렬한 크러쉬의 펑크(Funk)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의 마지막 정규 음반이 고요한 새벽에 내면을 들여다봤던 < From Midnight To Sunrise >이고 입대 직전에 발매했던 EP가 아련한 사랑 테마의 < With Her >임을 생각하면 더욱 놀라운 방향 전환이다. 꾸준히 업템포의 리듬으로 고취되어 있는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안무를 추는 크러쉬라니. 단순 바이럴을 위한 곡이 아닌 기악 요소의 적절한 배치와 매끄러운 변주, 이미 여러 번 검증을 마친 보컬의 유려한 콜라주이다. 컴백과 동시에 한 해를 대표할만한 노래를 완성했다. (백종권)

뉴진스 ‘Attention’

뉴진스(New Jeans)의 ‘New’라는 단어에 K팝에 반향을 일으키겠다는 자신감이 가득하다. 전복의 대상은 구세대부터 동세대까지 아우르되 모순은 직관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뉴트로, 하이틴 등 최신의 키워드를 거침없이 전면에 내세우며 입체적인 방식으로 차별성을 피력한다. 이미지적으로는 Y2K 감성의 피처폰, 고전 포털 사이트 등 2000년대 대표 청소년 문화가 현대의 생활양식에 자연스럽게 섞였고, 음악적으로는 1990년대 뉴 잭 스윙과 하우스 리듬을 현대적으로 믹싱한 비트에 다시 1990년대 알앤비의 향취를 얹었다.

그럼에도 미니멀하다. 다섯 명의 보컬이 하나의 음을 투과하여 화음을 이루는 코러스 외에는 멜로디를 최소화하고 10대 멤버들은 2030세대의 청소년기 문화를 위화감 없이 즐기며 청춘의 아름다움을 여과 없이 전달한다. 노스탤지어와 선구안의 결합은 관성적인 새로움으론 꿰뚫을 수 없는 대중의 잠재된 갈망을 자극했다. ‘민희진 걸그룹’이라는 기대와 부담을 환호로 맞바꿀 뿐만 아니라 본질적인 접근으로 현재 K팝 기획의 고착화된 패러다임을 뒤흔들었다. (정수민)

보수동쿨러, 해서웨이 ‘월드투어’

오늘날 인디의 근거지는 홍대가 아니다. 세이수미의 범지구적 활약을 거쳐 인디의 메카로 떠오른 부산은 검은잎들, 소음발광 등의 괴물 신인과 각양각색의 작업물을 내놓으며 독자적인 로컬 신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그중에서도 한 작은 클럽에서의 지연(知緣)으로 시작해 서로의 대표작과 지역색을 합한 지연(地緣) 앨범으로 돌아온 두 밴드, 보수동쿨러와 해서웨이는 부산 밴드 명단에서 빼놓을 수 없는 화제의 아티스트다.

그 합작의 서막을 여는 ‘월드투어’는 올해의 발견이다. 딸깍거리고 자글거리며 각자의 톤을 자랑하는 기타는 광활한 사막을 가로지르는 낭만의 로드 트립을 펼치고, 혼성 보컬을 자연스레 포갠 합창은 대가족의 ‘혈연’까지도 넘보는 듯하다. 8년 전,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캐러밴’이 밟은 서툰 글래스톤베리행 초행길이 떠오른다. 그때와 달리 홍대와 부산, 더 나아가 세계로까지 뻗어가며 발전을 거듭한 한국의 인디. 이제는 거짓이 아니게 된 ‘세계진출’과 그 소박한 염원과 설렘, 그리고 ‘우리는 어디에 있어도 / 다정한 친구가 되는 거야’라는 따뜻한 코멘트에는 오랜 인디 팬들이 경유할 수 있는 감동과 헌사가 담긴다. (장준환)

(여자)아이들 ‘Tomboy’

멤버 수진이 탈퇴하고 흔들리는 상황에서 발표한 ‘Tomboy’는 이전 노래들과는 달랐지만 (여자)아이들을 걸그룹 최상위 포식자 반열에 올려놓았다. 위기에서 공개한 ‘Tomboy’가 국민 히트곡이 된 아이러니는 우여곡절이 많은 우리 인생과 닮았다.

다른 그룹들이 뭄바톤 비트를 바탕으로 한 제3세계 리듬과 드롭, 트랩 스타일을 탐닉할 때 (여자)아이들은 20여 년 전에 유행한 팝 펑크로 자신들의 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했다. 어렵지 않은 안무와 쉬운 주요 멜로디가 히트 공식의 기본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 ‘Tomboy’는 2022년 최고의 히트곡이다. 반대의견은 있을 수 없다. (소승근)

비오 ‘Love me’

‘Counting stars / 밤하늘에 펄’, 2021년 힙합계에 새로운 별이 떴다. < 슈퍼스타K >를 넘어 국내 대표 음악 경연으로 자리 잡은 < 쇼미더머니 >의 10번째 시리즈를 통해 화려하게 비상한 주역, 그가 바로 비오다. 단숨에 블루칩으로 떠올라 레드벨벳의 슬기, 소유 등 대중 음악 곳곳에 소리를 남기며 노래하듯 랩 하는 싱잉랩(Melodic rap)의 유행 속 자신의 자리를 공고히 다지고 있다.

저스틴 비버와 더 키드 라로이의 ‘Stay’를 닮은 비트 위에서 부드러운 톤으로 매끄러운 랩을 펼치며 자신의 매력을 온전히 발휘한다. ‘Counting stars’에 이어 에픽하이를 연상케 하는 멜로디 감각도 확실하게 돋보인다. 이런 젊고 유능한 뮤지션이 끊임없이 나오는 곳이 여기 대한민국 K-힙합 신(Scene)이다. 쇼미(< 쇼미더머니 >) 10년이 강산은 못 바꿔도 음악이 흐르는 물길은 바꿔버렸다. (임동엽)

빅 나티 ‘정이라고 하자 (Feat. 십센치)’

그리움을 완결된 추억으로 만들기 위해선 스스로 납득할 만한 단어로 그 마음을 정확하게 포착해야 한다. 빅 나티와 십센치는 그들의 식어버린 기억을 ‘정이라고 하자’고 말하며 감정을 똑바로 직시했을 때 생기는 어떤 미적 경험을 만들어낸다. 사무치는 이별을 주제로 한 가사는 차트에 이미 가득하기에 관계의 세심한 극복을 다룬 이 곡이 크게 사랑받은 건 반가운 일이다.

적은 수의 코드와 귀에 쉽게 들어오는 멜로디라는 타율 높은 상업적 전략에 터 잡아 유행의 최전선을 달린 스타일의 흑인 음악 터치를 더했다. 대중의 마음을 선명하게 볼 줄 아는 가수들의 조합이라 곡의 내부 요소 간 앙상블도 적절하다. 빅 나티의 선율감이 도드라지는 보컬, 십센치의 언제나 풋풋한 감성, 그리고 따뜻한 어쿠스틱 편곡이 조화를 이룬다. 이보다 듣기 편한 곡을 상상하기 힘들다. (김호현)

윤하 ‘사건의 지평선’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던 어린 혜성은 방향을 잃고 궤도를 이탈했다. 그럼에도 윤하는 고독히 ‘우리’를 중심으로 공전했다. 간결하게 귀를 사로잡는 최근 트렌드와 정반대로 5분이란 시간 동안 숨 쉴 새 없이 쏟아내는 록 사운드의 ‘사건의 지평선’은 절대 흔들리지 않고 간직한 그의 음악 세계로 쌓아 올린 견고한 우주였다. 사건의 지평선 내부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일도 외부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만, 표류했던 과거로부터 보낸 구조 신호가 마침내 두꺼운 경계를 뚫고 몇 광년을 거쳐 지금 도달했다.

굴곡진 인생을 말미암아 굵게 새긴 서사는 재개된 축제의 열기를 타고 울려 퍼져 거대한 필연처럼 대중의 마음과 감응한다. 희망은 언제나 곁에 머문다. 주변을 잠식한 절망은 분명 두텁지만, 그보다 밝은 빛이 존재하기에. 산전수전을 겪고도 포기하지 않았던 아티스트의 긍정적인 목소리가 명확한 지침서가 되어 모두를 내일로 이끌기 시작한다. 이에 윤하는 더 이상 외롭지 않다. (손기호)

한로로 ‘입춘’

눈이 녹아 비가 되기 직전의 찰나, 새 출발을 알리는 봄이 본디 그러하듯 모든 시작엔 추위와 온기가 동시에 서려 있다. 갓 첫걸음을 내디딘 아리따운 스물셋 소녀 한로로 역시 이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섭리를 마주한다. ‘아슬히 고개 내민 내게 첫 봄인사를 건네줘요’, 자신의 발화(發花)를 기록하기 위한 곡이라 밝힌 데뷔 싱글 ‘입춘’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한 설렘과 불안을 노래한다.

복잡한 속사정은 여리다가도 폭발하는 호흡 끝에 담겨 있다. 마음 녹여줄 누군가를 기다리던 목소리는 따스한 기타에 포개지며 피어날 준비를 마쳤고, 드럼이 꽃봉오리를 두드리는 순간 목청을 높여 작은 바람이 간절한 열망으로 피어오르게 한다. 간주를 장식한 일렉트릭 기타 솔로는 감정선을 더욱 극적으로 이끌어내고 직후의 가창에선 성대와 음을 살짝 비틀며 가슴을 냉랭히 찢어발긴다. 꽃놀이의 화사함으로 기억하던 계절의 현실은 차디찼지만 굳건한 뿌리의 민들레는 시들지 않았다. 오늘을 넘어 다가올 내일에 용기의 홀씨를 흩뿌린 올해 최고의 청춘 송가. (정다열)

조용필 ‘찰나’

한국대중음악사와 함께 걸어온 발걸음의 무게와 다르게 청춘처럼 산뜻한 ‘가왕’의 복귀다. < Hello > 이후 9년 만에 돌아온 조용필은 자신을 사랑한 이들이 빠져든, 그리고 빠져들 ‘찰나’를 조각하여 모두가 함께할 추억을 현재에 새겨 넣었다. 물론 2022년을 대표하는 자리에 거장의 이름을 올려둔 것은 역사적 가치나 명망에 따른 전관예우의 혜택은 아니다. 기대감을 늘 확신으로 뒤바꿔온 도전정신, 몇 번이고 격변한 시대와의 호흡 등 완숙해질수록 더 치열해지는 그 오랜 노력에 보내는 찬사다.

영원한 열정을 쏟아부었을 ‘찰나’ 역시 칭호에 걸맞게 절륜하면서도,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도도하다. 도시의 밤공기를 머금은 듯 활기찬 록 선율과 옅게 흩뿌리는 코러스가 각자의 자리에서 화려하게 반짝이고, 그 가운데 환희에 찬 보컬이 유려하게 완급을 조절하며 관록을 뿜어낸다. 갈고닦은 재료들이 단방향의 선율로 매끄럽게 조합되어 모든 세대의 귀를 만족시킬만한 트랙이 탄생했다. 정규 20집으로 향하는 왕도, 그 첫걸음에 울려 퍼진 행진곡은 역시 단 한 치도 빗나가지 않았다. (손민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