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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IZM 연말 결산 특집 Feature

Splash of the Year 2020

올해를 돌아보면 온갖 날카로운 단어들이 떠오른다. 전염병, 자연재해, 거리두기. 격변의 한 해였다. 새로운 10년을 여는 2020년은 코로나 19의 창궐로 전 세계를 움츠러들게 했고, 우리 삶에 여러 변화를 안겼다. 대중음악계에도 피할 수 없는 지각 변동의 순간이 있었다. 혼란의 시기에도 계속해서 구르며 기억할만한 이슈를 남긴 2020년의 가요계를 돌아본다.

세계 정상 방탄소년단,
보통명사가 된 케이팝.

더 오를 곳이 없다. 적어도 차트 성적에서는 그렇다. 방탄소년단이 세계 정상을 정복했다. ‘Dynamite’ 이전 네 개의 노래를 빌보드 싱글 차트 톱 10에 진입시키고 네 장의 음반을 앨범 차트 1위에 올려놓은 데에 이어 빌보드의 왕관이라 할 수 있는 싱글 차트 고지에 깃발을 꽂았다. 영어 가사가 가진 범용성의 이점과 코로나 19 팬데믹에 지친 사람들이 쉽게 위로받을 수 있는 밝고 경쾌한 디스코 리듬을 주무기로 ‘Dynamite’는 2주 연속 왕좌를 굳건히 지켰다. 그 이후에도 조시 685(Jawsh 685), 제이슨 데룰로(Jason Derulo)와 꾸민 ‘Savage love’ 리믹스와 한국어 가사의 ‘Life goes on’를 같은 성적에 안착시키며 멈출 줄 모르는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케이팝의 세계화를 이끈 그룹은 방탄소년단뿐만이 아니다. YG의 블랙핑크는 올해 정규 음반으로 미국 시장에 확실한 출사표를 내던지고 셀레나 고메즈(Selena Gomez)와 함께한 ‘Ice cream’으로 싱글 차트 13위에 이름을 새겼으며, SM의 슈퍼엠과 엔시티 127 역시 각각 빌보드 앨범 차트 2위와 5위에 올랐다. 더욱 많은 뮤지션이 세계에서 입지를 다지며 케이팝은 도약에 도약을 거듭, 글로벌 시장에서 확실한 주류 문화로 자리매김하는 중이다.

올해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케이팝이 발휘하는 영향력의 확장이다. 2020년 해외 케이팝 팬들은 미국 사회에 관여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Black Lives Matter’ 캠페인과 관련한 조직적인 움직임이 대표적이다. 방탄소년단과 빅히트 엔터테인먼트가 해당 캠페인에 대한 지지 의사로 100만 달러(한화 약 12억원)를 기부했는데, 그것을 본 팀의 팬덤 아미(A.R.M.Y)가 그들과 똑같은 금액을 모금, 쾌척하며 흑인 인권 운동을 지원했다. 또한 BLM을 비꼬기 위해 탄생한 백인 우월주의 집단의 ‘White Lives Matter’ 인스타그램 해시 태그를 좋아하는 케이팝 뮤지션의 사진으로 도배해 범람시키는 등 인종 갈등이 심화한 미국에 다양한 방식으로 목소리를 냈다.

케이팝 팬들이 국제 사회적 문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만큼 활동 범위가 넓어졌음을 시사한다. 이와 관련해 < 뉴욕 타임스 >는 이들이 감행하는 이러한 정치적 움직임을 ‘팬덤 문화가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주려는 일종의 노력’이라 진단했다. 진보적이고 비교적 소수의 인종이 모여 있으며, 해외 문화에 개방적인 이들이 기존 아이돌 문화가 가지고 있던 ‘성숙하지 못한 어린 아이들의 문화’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시대에 의미 있는 바람을 불러일으키려는 행동이라는 분석이다. 케이팝의 도약은 음악 자체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싼 사회적 맥락에서 살펴봤을 때 더욱더 유의미하다.

완벽한 과거 시제,
가뭄 속의 실험.

올해도 대중음악은 끊임없이 과거를 탐색했다. 팝 시장의 주축이었던 디스코 음악에 위켄드(The Weeknd)와 두아 리파(Dua Lipa), 방탄소년단 등이 발맞췄고, 최근 새로 개정한 < 롤링스톤 500대 명반 >은 마빈 게이와 스티비 원더 등 지금의 대중음악에 중심으로 녹아들어 있는 흑인 음악을 대거 재조명했다. 계속되는 레트로 유행에 이제는 옛 것이 옛날만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가요계도 완벽한 과거 시제를 지향했다. 작년이 시티팝의 해였다면 올해를 정의하는 키워드는 단연 트로트. TV 조선의 < 미스터트롯 >이 임영웅, 영탁 등의 스타를 낳으며 지난 해 < 미스트롯 >으로 ‘트롯 바람’이 난 대중에게 성인가요의 인기를 더욱 불어넣었다. 마찬가지로 텔레비전 전파를 타며 부캐 열풍을 일으킨 < 놀면 뭐하니? >의 프로젝트 그룹 싹쓰리의 ‘다시 여기 바닷가’, 쿨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 슬기로운 의사생활 > OST 조정석의 ‘아로하’ 역시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댄스, 발라드를 재현한 복고의 영역이다.

트로트와 댄스, 발라드는 비교적 대중에게 친숙한 소재다. 그러나 언더그라운드 신에서는 더욱 화끈한 복고 바람이 불었는데, 국악이 그 주인공이다. 소위 ‘굿 음악’이라 불리는 무가(巫樂)를 재즈, 펑크(Funk), 레게의 요소로 재탄생시킨 추다혜차지스와 ‘국악계 이단아’로 불리며 전통 음악의 정격을 깨부순 오방신과의 활약이 어느 때보다 돋보였다.

판소리 다섯 마당 중 하나인 < 수궁가 >를 현대적 댄스 리듬으로 재해석한 이날치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올해의 인물. 이들의 음악은 한국관광공사가 제작한 한국 홍보 공익 광고 시리즈 ‘필 더 리듬 오브 더 코리아(Feel The Rhythm of Korea)로 대대적인 주목을 받았다. 세계 네티즌들에게 반향을 불러일으켜 현재 도합 2억 3천만 회가 넘는 유튜브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새로운 것을 원하는 대중이 가장 쉽게 그 갈증을 해소하는 방법이 과거를 돌아보는 일이다. 그동안 홀대했던 옛것 중 좋은 것을 발굴해 새 흐름으로 재창조하는 것은 독창적인 창작에 목마른 현 음악계에 가뭄 속의 실험과도 같다.

코로나 여파,
멈춰버린 인디 공연.

거리가 텅 비었다. 번화가의 화려한 불빛도, 클럽가를 메운 북적이는 음악 소리도 없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차가운 말 앞에 공연이 줄줄이 무산됐고 음악가들은 팬들과 한 발자국 떨어져 다음 만날 날을 기약했다. 코로나 19가 가져온 2020년 대중음악계 모습이다.

사태의 장기화는 누구보다 인디 뮤지션과 공연 관계자에게 직격탄이 됐다. 인디 뮤지션들에게 공연은 단순 수익의 매개체를 넘어 자신이 새로 쓴 노래와 준비한 기획을 선보이는 거의 유일한 창구다. 온라인 공연 등을 열면 언제든 홍보를 통해 이를 적극적으로 알릴 수 있는 대형기획사와 달리 작은 레이블 아티스트나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음악인에게는 그럴 방법이 한정적이다. 유흥업소를 제한한 정부의 지침에 비해 이들을 향한 실질적인 지원은 병행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5월 이태원발(發) 코로나는 결정적이었다. 이태원 클럽을 시작으로 확산한 2차 대유행은 이태원 클럽을 향한 인식 악화를 낳았고, 그 화살은 고스란히 그 일대를 무대 삼아 활동하던 디제이들과 관계자들에게 돌아갔다. 이를 극복하고자 이태원 공동체는 서로 뭉쳐 연대했다. 6월 소프가 이끈 ‘서포트 이태원(Support Itaewon)’ 프로젝트와 클럽 케이크샵이 주도한 ‘리플라이 이태원(Reply, Itaewon)’ 커뮤니티 기획은 혼돈의 시기에도 이들이 끈끈한 연결고리를 지탱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홍대와 이태원 등 개성 강한 뮤지션과 여러 장르가 집결하는 소규모 커뮤니티는 가요계의 다양화를 선도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역동적인 활기로 가득하던 그들의 모습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언택트 시대의 대안,
온라인 콘서트.

한숨이 깊어지는 공연 업계에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른 것은 온라인 콘서트였다. ‘방방콘 더 라이브’로 무산된 월드투어를 대체한 방탄소년단, SM 엔터테인먼트가 네이버와 손잡고 진행한 ‘비욘드 라이브’ 시리즈. 그리고 지난 8월에는 JYP와 SM이 ‘비욘드 라이브'(Beyond LIVE)를 위한 전문 회사 ‘비욘드 라이브 코퍼레이션'(Beyond LIVE Corporation·BLC)을 설립하며 양 소속사가 이례적인 협업을 펼치기도 했다. 그 밖에도 CJ ENM이 기획한 한류 축제 ‘케이콘택트 2020 서머’ 등도 성공리에 막을 올리며 사태와 장기간 공생해야 하는 ‘위드 코로나’(With Corona) 시대인 만큼 대형 기획사들이 앞으로의 공연 문화를 앞장서 주도했다.

케이팝 온라인 공연은 다양한 IT 기술을 동반한다. 증강현실(AR) 기술을 활용한 3인칭의 화려한 시각 연출을 자아내고, 다중 화상 연결 시스템으로 팬들과 서로 얼굴을 맞대고 그들의 댓글을 읽으며 실시간으로 소통한다. 단순 오프라인 공연 실황 비디오와는 구분되는, 비대면 공연만의 대안적인 차별화를 더한 ‘새 시대의 쇼’다.

물론 아직 부족한 점도 많다. 온라인 콘서트는 관객과 떨어져 진행되는 만큼 생생한 열기를 실현하기 어렵다. 또한 조명과 연출 등에 많은 돈이 드는 데에 비해 티켓 가격은 오프라인보다 훨씬 낮게 책정되기 때문에 수익성이 저조한 것 역시 풀어야 할 과제다. 수용 인원에 제한이 없어 언뜻 무한한 수익을 올릴 수 있어 보이지만, 모두가 방탄소년단의 ‘방방콘’처럼 75.6만 명의 관객을 모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비교적 팬덤 규모가 작은 아이돌이나 아티스트에게는 진입 장벽이 높고, 오히려 적자가 날 수 있는 장사다.

코로나 19가 끝나도 온라인 공연이 우리 생활 속에 녹아들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새 시대의 공연 문화로 부상한 만큼 그에 걸맞은 적합한 개선방안 마련을 위해 산업에 대한 대중음악계 전체의 면밀한 고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