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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 셰이크(070 Shake) ‘Modus Vivendi’ (2020)

평가: 3.5/5

뉴저지의 ZIP 코드를 의미하는 ‘070’ 크루 소속이자 GOOD 뮤직 사단의 일원인 070 셰이크(070 Shake)는 정규작의 이름으로 ‘Modus Vivendi(모두스 비벤디)’를 가져온다. 라틴어로 ‘생활 방식’이라는 뜻이자 동시에 ‘일시적 합의’를 의미하는 외교 용어다. 이 구절로 비추어 본 작품은 마치 그가 가진 재능이 한 데 공존할 수 있도록 타인의 것을 잠시 빌려 마련한 타협의 장으로 보인다. 이제 막 자리를 잡으려는 한 신인의 색을 규정하기 위해 사운드 스케이프 위로 맺은 일종의 평화 협정처럼 말이다.

2016년도 작 EP < Glitter >의 셰이크는 표현이 서툴렀다. 본인이 가진 보컬이란 원석을 어떻게 가공할지 제대로 된 방법론조차 없던 신인 시절이다. 그가 지금의 방향성을 얻은 건 카니예 웨스트의 앨범 < ye >에 참여하게 되면서부터인데, ‘Ghost town’의 마지막 벌스부터 이어지는 ‘Violent crimes’의 도입부가 그렇다. 셰이크는 등장과 함께 특유의 허스키하고 중성적인 보컬로 단숨에 곡을 압도하고, 몽환적인 감각으로 곡에 이름을 아로새긴다. 바로 이 지점이 운명처럼 찾아온 ‘모두스 비벤디’의 3분이다. 타인의 토양 위에서 발견한 자신의 열쇠이자, 잃어버린 퍼즐 한 조각을 찾은 순간이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 Modus Vivendi >의 토대는 잔향 중심의 몽롱한 분위기와 간단한 음성 변조 시스템이다. 카니예 웨스트의 전반적인 프로듀싱을 담당한 마이크 딘(Mike Dean)에게 앨범 마스터링 지휘권을 맡기며 당시의 환경을 재현하려 노력한 결과다. 그는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라면 모방도 마다하지 않는다. 프랭크 오션(Frank Ocean) 식의 부유하는 앰비언트와 보컬 이펙트를 차용한 ‘Don’t break the silence’를 지나 카니예 웨스트 풍 불안한 노이즈와 오토튠이 강렬하게 흔들리는 ‘Come around’와 ‘Morrow’, ‘The pines’는 그가 거쳐 간 타 아티스트들의 흔적이다.

탄탄한 사운드적 뒷받침 너머, 전작에 비해 돋보이는 요소는 그가 매 트랙의 기조에 맞춰 보컬을 자유자재로 다루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셰이크는 나른한 진행의 ‘Guilty conscience’에서는 늘어지는 멜로디에 맞춰 길게 잡아끈 목소리로 짙은 호소력을, 몽롱함을 자극하는 트랩 ‘Rocketship’과 투박한 노이즈의 ‘Daydreamin’에서는 힘을 빼고 전자음을 가미한 래핑으로 신비감을 자아낸다. 잔잔한 풍경의 ‘Flight319’에서는 읊조리듯 낮게 깔며 가뿐히 몽환경에 탑승하기도 한다. 보컬이 지닌 미묘한 질감을 구분하여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것이다.

보석을 얻기 위해 과감하게 도려낸 멜로디 라인과 여운을 살리는 잔상 위주의 작법은 분명 기시감을 우려낸다.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결과적으로 셰이크는 결국 타인의 장점에서 본인의 장점을 구상하고, 타인의 캐릭터에서 본인의 캐릭터를 정립하며, 타인의 작법으로 본인만의 앨범을 완성한다. < Modus Vivendi >는 한 신인의 존재감을 자리매김한 영리한 책략으로 남을 것이다.

– 수록곡 –
1. Don’t break the silence
2. Come around
3. Morrow 
4. The pines
5. Guilty conscience 
6. Divorce
7. It’s forever
8. Rocketship
9. Microdosing
10. Nice to have
11. Under the moon
12. Daydreamin
13. Terminal B
14. Flight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