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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10곡 특집 Feature

라디오 PD들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 #10 주승규 PD

내년 개설 20주년을 앞두고 이즘은 특집 기획의 일환으로 라디오 방송 프로듀서 20인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편을 연재 중입니다. 라디오는 음악과 동의어라는 편집진의 판단에 따라 기획한 시리즈로 모처럼 방송 프로듀서들이 전해주는 신선한 미학적 시선에 독자 분들이 좋은 반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각 방송사의 라디오국에서 음악 프로를 관장하며 15년 이상의 이력을 가진 20인 PD의 ‘인생 곡 톱10’입니다. 열 번째 순서는 MBC 라디오 주승규 프로듀서입니다.

김정호 ‘하얀 나비’

– 무언가를 진짜로 좋아한다는 것
여인의 아버지가 젊은이에게 이렇게 묻는다. 자네는 내 딸이 어디가 그리 좋은가?
볼이 불그스레해진 젊은이는 망설이다가 이렇게 입을 뗀다. 그냥…그냥 다 좋습니다.

1970년대 초 그야말로 혜성같이 나타나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고 짧은 생을 마감한 가수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음악에 매료되었고 어린 나도 그의 팬이 되었다. 아끼고 아껴 몇 달 치의 용돈을 모아 드디어 그의 음반을 질렀고 그것은 내 생에 첫 LP가 되었다.

무언가를 진짜로 좋아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이유 없이 좋은 것, 그냥 좋아하는 것이라 믿는다.
그 대상이 사람이든 음악이든 간에 말이다.

애니멀스(Animals) ‘The house of the rising sun’

– 통기타와 팝송
1970년대는 우리나라에서도 통기타가 붐이었다. 당시 조금 ‘논다’ 하는 젊은이라면 통기타 하나쯤은 다룰 줄 알아야 했기에 공부는 뒷전이요 통기타에 심취한 자녀들 때문에 각 가정마다 분노의 아버지들의 ‘통기타 파손 사건’이 줄을 이었다. 다행히 우리 집에는 그 와중에 살아남은 한 대의 기타가 있었고 아버지가 안 계신 틈을 타 숨죽여 연습했던 곡이 바로 우리말 제목으로 ‘해 뜨는 집’ ANIMALS의 HOUSE OF THE RISING SUN 이었다. 코드도 비교적 평이했고 주법도 단순하여 초보자들의 연습용으로는 안성맞춤이었던 까닭이다. 나에게 기타라는 악기를 알게 해준 곡이다.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Black dog’

– 제목이 무슨 상관이랴
1970년대의 팝송 이야기 중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백판’ (해적음반) 이야기다. 불법 음반인데다 음질을 비롯해 모든 면에서 흡족치는 않았으나 팝송에 목마른 젊은이들에게는 그나마도 아쉬운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고 생각한다.

집에도 형이 애지중지하던 백판이 몇 장 있었는데 요즘으로 말하자면 편집음반인 셈이다. 딥 퍼플(Deep Purple)의 ‘Highway star’,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의 ‘Superstition’, 산타나(Santana)의 ‘Black magic woman’ 등등 기라성 같은 곡들이 담겨있었는데 그중 특히 나의 눈길을 끌었던 곡이 하나 있었다. 음반 편집자의 섬세함이라고 할까 그 자상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사연인즉 이렇다.

팝송의 원제목 옆에는 친절하게도 한자로 된 번안 제목이 이렇게 별도로 표시되어 있었다.

LED ZEPPELIN, BLACK DOG (黑犬)

존 덴버(John Denver) ‘Annie’s song’

– 인수봉에서 만난 한 줄기 바람
익히 알고 있는 대상이라도 특별한 상황에서 만나게 될 때 전혀 다른 존재로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북한산 인수봉을 등반하다 보면 암벽 곳곳에 꽃다운 나이 이곳에서 생을 마감한 젊은 클라이머들을 위한 추모 동판을 만나게 된다. 아마 나의 첫 번째 산행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까스로 오른 정상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맞은편 백운대를 바라보는데 아들을 잃었을 법 한 어머니가 향을 피우며 두 손을 모으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가슴이 먹먹해 졌다. 그때 산 정상을 가득 메운 한 곡의 음악, 그리고 그때 산 정상 한줄기 맑은 바람이 아직도 느껴지는 듯하다.

이글스(Eagles) ‘Hotel California’

– 무스탕 라디오의 추억
믿기 어렵겠지만 어제 라디오 인기 팝송 프로그램을 듣지 않았다면 친구들 사이 이야기에 낄 수 없던 시절이 있었다. 어제 무슨 프로그램에서 무슨 음악을 들었다는 것이 주요 화제일 정도로 중 고등학교 학생들의 세계에선 팝음악, 팝음악 프로그램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리고 이를 듣기 위한 FM라디오가 인기였는데 학생들 사이에선 나만의 FM라디오 갖기가 하나의 로망이었다.

방과 후 친구들과 함께 온 종로를 뒤져 마침내 최신형 “무스탕 라디오”를 손에 넣게 된 날,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새롭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검은 색 무전기 스타일 포스 가득한 무스탕 라디오의 스위치를 켠 순간 거기서 퍼져 나온 그 음악이란…

다이어 스트레이츠(Dire Straits) ‘Sultans of swing’

– 라디오에 신청곡 보내 보셨나요?
요즘이야 그렇지 않지만 엽서가 라디오 청취자들의 주된 프로그램 참여방법이던 시절이 있었다. 방송국에 엽서를 보내고 신청곡이 방송되기를 목이 빠지게 기다리는 것이다. 나의 경우 즐겨하던 프로그램에 엽서를 보내고 어느 때처럼 라디오에 귀 기울이다가 나의 이름이, 나의 사연이, 나의 신청곡이 방송되던 순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 순간의 느낌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음악을 스스로 찾아 듣는 것과 방송으로 신청하여 듣는 것은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차원이라 믿는다. 혹 아직도 경험해 보지 않은 분이 있다면 꼭 한번쯤 시도해 보시기를 권한다.

조지 윈스턴(George Winston) ‘Thanksgiving’

케니 로긴스(Kenny Loggins) ‘The more we try’

– 나의 라디오PD의 절반은 여기에서 배웠다입사 후 맡았던 첫 단독 프로그램은 당시의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 이수만의 팝스투나잇 >이었다. 1년 남짓 그리 길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라디오 방송 사상 최초의, 그러나 이제는 식상해져 버릴 정도로 전형이 되어버린 타이틀 멘트를 생략한 오프닝, 당시로선 파격적인 디지털 음원의 도입, 그리고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연스럽고 새로운 진행방식으로 이른바 DJ 프로그램의 패러다임을 바꾼 프로그램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DJ의 음악에 대한 선구안도 탁월해서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사랑을 받게 된 음악들도 여럿 있었는데 가장 기억나는 음악을 꼽는다면 프로그램 클로징 음악으로 사용했던 것이 위 두 곡이다. 나의 라디오PD의 절반은 여기에서 배웠다.

모차르트, 교향곡 제25번 (영화 아마데우스)

– 음악은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오프닝 장면에 절묘하게 사용된 교향곡 25번을 비롯하여, 영화 곳곳에서 기존의 모차르트의 음악을 그대로 사용함에도 마치 이 장면을 위하여 만든 음악인 듯 정교한 방식의 연출은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음악은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던져준 영화, 그리고 음악…

영화 < 정복자 펠레 >의 테마

– 음악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아늑한 앞날이 보장될 수도 있을 농장의 수습감독 직을 마다하고 가난과 부조리의 땅을 떠나기로 결심한 소년, 그는 눈 덮인 벌판에서 늙은 아버지와 포옹하며 작별 한다. 농장으로 되돌아가던 아버지는 아쉬운 듯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고 그 사이 소년의 눈 덮인 덮인 대지 위, 작은 점이 되어 조그맣게 멀어져 간다. 그리고 화면을 가득 메우는 영화의 엔딩음악

삶이 시시하게 느껴질 때마다 이 영화를 꺼내 본다는 어느 시인의 말이 생각난다. 특히 그의 표현 중에 ‘주먹으로 눈물을 닦으며’ 라는 표현이 특히 인상 깊었는데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그 의미를 충분히 공감하시리라 믿는다.

가끔 이런 질문을 할 때가 있다.
음악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는 음악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그럴 땐 이 영화를 떠올려 보곤 한다.

우리는 음악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연출
MBC < 이수만의 팝스 투나잇 >, <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 >, < 영시의 데이트 >, < 별이 빛나는 밤에 >, < 정오의 희망곡 >, < FM 모닝쇼 >, < 배철수의 음악캠프 >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