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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무비즘] 앙코르

코로나 기세가 조금씩 저물자 삭막했던 극장가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지구촌 곳곳에는 흥미로운 작품 소식들이 당차게 고개를 내미는 추세다. 이러한 스크린 흐름에 발맞춰 IZM이 무비(Movie)와 이즘(IZM)을 합한 특집 ‘무비즘’을 준비했다. 시대를 풍미했던 아티스트의 명예를 재건하고 이름을 기억하자는 의의에서 매주 각 필자들이 음악가를 소재로 한 음악 영화를 선정해 소개한다. 아홉 번째는 ‘맨 인 블랙’ 자니 캐쉬와 그의 소울메이트 준 카터의 사랑을 그린 영화 < 앙코르 >다.

자니 캐쉬는 일견 고루한 컨트리 뮤직의 이미지를 깼다. 무대 전 차분함과 상반되는 역동적 퍼포먼스는 록커를 방불케 했고 약자를 지지하기 위해 검은 옷을 입는다는 꼿꼿함과 관습을 거부하는 저항성이 아우라를 부여했다. 로커빌리와 블루스, 포크를 아우르는 다채로움은 나직한 음성으로 한데 묶였고 말년에 나인 인치 네일스의 ‘Hurt’를 자신의 색깔로 커버해 호평받았다. 호아킨 피닉스와 리즈 위더스푼이 직접 노래와 연주를 한 영화 < 앙코르 >는 컨트리 뮤직의 풍운아 자니 캐쉬에 관한 이야기다.

제임스 맨골드의 캐릭터는 늘 어둡다. 장편 데뷔작 < 헤비 >(1995)의 비만 요리사 빅터(프루이트 테일러 빈스), < 처음 만나는 자유 >에서 위노나 라이더가 연기한 경계선 성격장애의 수잔나. 히어로 무비의 탈을 쓴 서부극 < 로건 >의 로건(휴 잭맨)도 고독을 감췄다. 맨골드가 자니 캐쉬를 고를 수밖에 없던 이유다.

맨골드가 영화감독 겸 배우 길 데니스와 각본을 쓴 < 앙코르 >는 감정의 파고(波高)를 드러내는 영화다. < 처음 만나는 자유 >를 비롯한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트라우마가 인물을 흔드는 주요 동인이다.

착실한 형에게서 느끼는 열등감과 형의 비극적 죽음으로부터 시작된 아버지의 증오는 비극의 씨앗이다. 성공한 가수가 된 뒤에도 이미 발아한 씨앗은 계속 그를 괴롭혔다. 카메라는 약물 중독자의 얼굴을 집요하게 포착한다.

리즈 위더스푼이 연기한 준 카터는 한 줄기 빛이다. 캐쉬와 함께 투어를 다닌 준 카터는 블루그래스, 컨트리, 남부 가스펠 장르에 막대한 영향을 준 카터 가족(Carter Family)의 일원으로 이혼의 후유증으로 맘고생을 겪는 가운데에서도 캐쉬의 약을 몽땅 압수해 재기를 돕는다. 두 사람은 때론 무대 위 듀엣으로, 상처를 치유하는 동반자로 영혼의 교류를 이어 나간다.

속으로 아픔을 삭이는 카터와 달리 호아킨 피닉스의 캐쉬는 감정을 드라마타이즈한다. 기물을 파손하고 약에 취해 비틀거리며 굴곡진 삶을 몸으로 토해낸다.

인물 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연출 속에서도 경력의 주요 순간들을 붙든다. 수줍게 연주하다 금세 좌중을 휘어잡는 초기 히트곡 ‘Girl rhythm’, 파노라마처럼 음악 인생을 요약한 ‘I walk the line’, 1963년 빌보드 컨트리 차트 넘버원에 오른 ‘Ring of fire’ 준 카터와 입 맞춘 ‘Jackson’ 같은 대표곡이 나온다. 엘비스 프레슬리와 ‘Great balls of fire’로 유명한 피아노 록의 시초 제리 리 루이스가 시대상을 반영한다.

톱니바퀴 시퀀스는 경력의 분기점과 트라우마를 한데 엮는다. 초점 없는 눈으로 톱니바퀴를 어루만지는 캐쉬의 머리엔 톱니가 달린 목공 기계 오작동으로 사망한 형을 향한 그리움과 죄책감이 맴돈다. 도입부 시퀀스는 톱니바퀴와 캐쉬 앞에서 멈춰 서지만 수미쌍관을 이루는 후반부 시퀀스는 열정적 공연으로 전개된다. 극복의 영화적 시간을 거쳐 캐쉬는 트라우마에서 일시적으로 벗어나 무대에 혼을 쏟는다.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1968년 1월 13일 캘리포니아 폴섬 감옥에서 펼친 공연은 가장 위대한 라이브 앨범으로 꼽히는 < At Folsom Prison >으로 역사에 남았다. 12년 후 공연을 예견하듯 1956년에 발표한 ‘Folsom prison blues’는 ‘나는 단지 그가 죽는 모습을 보기 위해 리노에서 한 남자를 총으로 쏘았지'(But I shot a man in Reno just to watch him die)라는 논쟁적인 가사를 담았지만, 전체적인 맥락은 신중하다. 낙오자 입장에 서본 캐쉬는 수감자도 하나의 인격으로 존중받아야 함을 말한다.

맨골드의 결말은 행복과 슬픔으로 이분(二分)하기 어렵다. < 처음 만나는 자유 >에서 수잔나가 자유를 얻은 것과 달리 리사(안젤리나 졸리)가 정신병원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일견 행복해 보이는 < 앙코르 >의 마지막도 전처 비비안과 남겨진 딸들에게 잔인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영화 밖의 사실은 이렇다. 캐쉬는 준 카터는 35년간 부부로 함께 아이를 기르고, 노래 불렀다. 2003년 준 카터가 먼저 세상을 떠났고 4개월 후에 캐쉬도 그녀를 따라갔다. < 앙코르 >는 이 운명적 인연의 뜨거운 시간을 담았다. 상처 입은 사내가 음악과 한 여인을 통해 삶을 동여맨 시간.

– 영화에 사용된 음악 목록 –
1. Get rhythm
2. I walk the line
3. Wildwood flower
4. Lewis boogie
5. Ring of fire
6. You’re my baby
7. Cry! cry! cry!
8. Folsom prison blues
9. That’s all right
10. Juke box blues
11. It ain’t me babe
12. Home of the blues
13. Milk cow blues
14. I’m a long way from home
15. Cocaine blues
16. Jack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