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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치 ‘수궁가'(2020)

평가: 4/5

퓨전 국악 팀 씽씽의 주축은 소리꾼 이희문과 어어부 프로젝트 출신의 음악 감독 장영규였다. 팀 해체 후 이희문은 민요와 잡가를 주축으로 하여 재즈, 레게 및 펑크(Funk)를 결합하며 활발히 활동을 이어가는 가운데, 장영규는 2018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의 음악극 ‘드라곤 킹’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봤다. 이윽고 각기 다른 개성의 다섯 소리꾼, 드러머 이철희, 베이스 정중엽이 한 데 모였다. 판소리 다섯 마당 중 하나인 ‘수궁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그들은 조선의 판소리 명창 이날치의 이름을 빌려 신명 나는 한 판을 벌인다. 

유튜브 조회수 100만을 넘기며 순항 중인 ‘범 내려온다’를 통해 신세대 소리꾼의 스타일을 살펴보자. 기타 주자 대신 한 명의 베이스 주자를 더 두며 멜로디보다 리듬에 강점을 두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간결한 리프 아래 잘게 쪼개진 드럼 비트는 국악 장단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얼트 디스코와 신스팝의 비트를 이식한다. 문화재청보다 댄스 플로어와 클럽이 가까운 신세대 소리꾼들의 취향과 장영규의 현대적인 감각이 화려한 비주얼과 대비되는 정제된 형태의 판소리를 만들었고 이 전략은 대단히 성공적이다.

사운드가 전면으로 나서지 않는 가운데 중추를 맡아야 할 소리꾼들은 물 만난 별주부, 뭍으로 나온 토끼처럼 신나게 뛰어논다. ‘범 내려온다’의 혼성 교차 코러스가 반복 구조를 지루하지 않게 하고 ‘좌우나졸’에서 속사포처럼 상황을 묘사하며 앞다투어 앞으로 나서는 모습에는 자유롭되 엄격한 질서와 흐름이 있다. 사이키델릭 풍의 ‘어류도감’과 느린 템포의 ‘약성가’에서 여성 소리꾼들과 남성 소리꾼들이 번갈아 중심을 맡으며 감각을 일깨우고, ‘호랑이 뒷다리’와 ‘별주부가 울며 여짜오되’의 재치와 섬세한 감정 표현 역시 판소리의 매력을 전달하기에 손색이 없다. 

이처럼 낯선 것들의 조화로운 공존 지대를 구축한 이날치의 세계가 묘하게 아웃사이더적이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Another brick in the wall pt.2’의 핑크 플로이드보다 그 앨범 < The Wall >의 ‘Comfortably numb’을 경박한 디스코로 리메이크한 시저 시스터스(Scissor Sisters), ‘Groove is in the heart’의 이방인 3인조 디라이트(Deee-lite)와 닮았다. 지배층을 조롱하고 기지를 발휘해 살아 돌아온 토끼의 이야기를 흥겹게 노래하는 이날치의 모습은 신나지만 그 아래에는 전통의 보이지 않는 굴레와 설 자리를 잃어가는 젊은 음악인들의 현실적 고민이 도사리고 있다. 

언더그라운드로부터 출발한 디스코 비트 위에서 이날치는 현세대와의 소통을 원한다. ‘수궁가’의 원래 이야기 흐름을 따르지 않고 주요 장면만을 포착해 앨범 단위 소리의 유기성을 강화한 요소 역시 판소리의 틀에 연연하지 않고 지속 가능한 음악을 추구하겠다는 의지의 결과다. 무거운 국악 보존의 사명 대신 해체와 재조립으로 ‘힙’의 칭호를 얻어낸 2020년의 ‘수궁가’는 과감히 내려놓는 것이야말로 생존과 계승의 첫 단계임을 증명하고 있다. 

– 수록곡 –
1. 범 내려온다
2. 좌우나졸
3. 어류도감
4. 약성가
5. 말을 허라니, 허오리다
6. 신의 고향
7. 호랑이 뒷다리
8. 일개 한퇴
9. 별주부가 울며 여짜오되
10. 의사줌치
11. 약일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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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SG(오방신과) ‘오방神과’(2020)

평가: 4/5

‘허송세월말어라’ 한 곡으로 모든 편견을 무장해제시킨다. 흥겨운 디스코 리듬에 ‘뽕필’ 나는 신스 멜로디와 신민요 ‘사발가’의 가락진 구성, 펑크(Funk) 비트에 펠라 쿠티(Fela Kuti)를 연상케 하는 아프로비트의 색소폰 솔로까지 더해진 노래는 꽉 차있으나 번잡하지 않고, 흥겨우나 가볍지 않다. 화려하고 독특한 복장의 경기 민요 전수자 이희문의 새 프로젝트 OBSG (오방신과)의 멋진 출사표다.

2017년 미국 NPR 음악 프로그램 ‘타이니 데스크’에 밴드 씽씽으로 출연하여 화제를 모은 이희문은 팀 해체 이후 홍대 앞 클럽 공연과 ‘프로젝트 날’ 등 다양한 활동을 거쳐, 2015년 결성된 루츠 레게 팀 노선택과 소울소스와 손을 잡았다. ‘허송세월말어라’ 이후 다수 수록곡들이 빠른 템포보다 느릿한 그루브의 레게 음악으로 주를 이루는 이유다. 토킹 헤즈(Talking Heads)를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던 씽씽의 1980년대 뉴웨이브 지향과 분명한 차이를 둔다.

노선택과 소울소스의 완숙하고도 탄탄한 연주는 두 소리꾼 추다혜와 신승태가 빠져나간 보컬 라인의 공백을 최소화한다. 언뜻 단조로워 보이나 고도의 숙련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끌어나갈 수 없는 바이브다. 여유로운 흐름 속 기승전결을 명확히 두는 ‘건드렁’과 ‘긴 난봉’, 훅 파트에서의 화려한 변주로 확실한 포인트를 짚는 ‘노래, 가락’과 강렬한 기타 연주의 ‘사설난봉’ 등 각 곡마다 확실한 개성이 살아있다. 

이는 지난해 또 다른 소리꾼 김율희와 함께한 < Version > 앨범과도 공통점이 있으나 < 오방神과 >를 독립적인 작품으로 존재하게 하는 것은 이희문의 세속성이다. < Version >이 판소리의 한 부분을 현대 음악으로 옮긴 앨범인 데 반해 < 오방神과 >는 개화기 이후 창작된 신민요 가락이 주를 이룬다. 현대적인 ‘어랑브루지’와 ‘개소리말아라’, 대중에게 익숙한 ‘바람이 분다’ 등 오방신과의 음악은 국악의 범주를 강요하지 않는다. 일찍이 내려놓음의 미학을 깨친 ‘이단아’ 이희문다운 탁월한 선택이다.

‘조선 아이돌’ 놈놈, 허송세월 밴드와 함께하는 이희문은 고고한 예술인의 길 대신 거리의 악사와 광대를 자처한다. 사방팔방의 온 신들을 받아들여 민중의 번뇌를 씻겨 내리고, 남성의 몸으로 여성의 목소리와 의례를 품는 박수의 음악이 < 오방神과 >에 집약되어있다. ‘들을 음악이 없다’는 ‘허송세월’ 말고 이 음악을 들어야 한다.  

– 수록곡 –
1. 허송세월말어라  
2. 나리소사
3. 건드렁
4. 긴 난봉 
5. 나나나나
6. 노래, 가락 
7. 사설방아 
8. 어랑브루지 
9. 사설난봉
10. 타령
11. 개소리말아라  
12. 바람이 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