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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승근의 하나씩 하나씩 Feature

미드의 주제곡 속으로 (Into The Theme From American Drama Series)

최근에는 한국 드라마가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글로벌 시장을 장악해오고 있는 드라마는 우리가 ‘미드’라고 부르는 미국 드라마(혹은 시리즈)였습니다. 기성세대의 기억에 선명한 < 초원의 집 >, < 600만 불의 사나이 >, < 소머즈 >, < 원더우먼 >, < 미녀 삼총사 >, < 전격 Z작전 >, < 에어울프 >, < A 특공대 >, < 두 얼굴의 사나이 >, < 맥가이버 > 같은 미드는 1970~1980년대 우리나라 텔레비전을 석권했었죠. 이중에는 영화로 제작될 만큼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들도 많아서 젊은 분들도 이 제목을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 미드들이 대중으로부터 사랑받은 이유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와 유머, 액션 그리고 멋진 배우들이었지만 그 못지않게 큰 몫을 담당했던 건 주제음악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 하나씩 하나씩 >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얻었던 미국 드라마의 주제곡을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이 주제를 저에게 선뜻 양보해준 이즘의 ‘귀염둥이’ 필자 염동교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1. 엉터리 슈퍼맨 (The Greatest American Hero)

1978년과 1981년에 영화 < 슈퍼맨 >과 < 슈퍼맨 2 >가 성공을 거두자 여기서 힌트를 얻은 텔레비전 시리즈가 바로 이 드라마입니다. 1980년대 초반에 방송된 이 시리즈는 우리나라에서 < 엉터리 슈퍼맨 >이라는 제목으로 방송됐는데요. 그런데 왜 ‘엉터리’일까요? 우주인은 주인공에게 하늘을 날 수 있는 옷과 그 옷의 매뉴얼을 건네줬지만 실수로 그 설명서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주인공은 제대로 날지도 못했고 착지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착륙할 때마다 땅에 곤두박질쳐서 ‘엉터리 슈퍼맨’이 됐죠.

브라이언 드 파머의 공포영화 < 캐리 >에 출연한 윌리엄 캐트가 주연을 맡은 < 엉터리 슈퍼맨 >은 주제곡이 유명한데요. 컨트리 팝 가수 조이 스카배리가 부른 ‘Believe it or not’은 1981년에 빌보드 싱글차트 2위까지 올랐고 우리나라에서 방송할 땐 전영록이 번안해 불렀습니다. 텔레비전 드라마 음악의 제왕 마이크 포스트가 작곡한 이 노래는 1980년대에 열심히 팝송을 들으셨던 분들이라면 이 따뜻한 멜로디가 생각나실 겁니다.

2. 머나먼 정글 (Tour Of Duty)

< 머나먼 정글 >도 < 엉터리 수퍼맨 >과 비슷한 과정을 거쳐 탄생했습니다. 1986년에 개봉한 영화 < 플래툰 >의 성공에 자극을 받아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제작한 드라마가 < 머나먼 정글 >이죠. 이 미드는 1980년대 후반 국내에서 방송됐는데요. 유명한 배우가 출연하는 것도 아니고 월등한 액션 장면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이유는 오프닝에 나오는 주제곡 덕분입니다.

1966년에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을 차지한 롤링 스톤스의 ‘Paint it black’이 우리나라에 처음 알려진 건 < 머나먼 정글 >의 주제음악으로 사용됐기 때문입니다. 그 이전까지는 금지곡이었거든요. 모든 것을 검게 칠하라는 제목이 허무를 조장한다는 허무한 이유로 가로막혔던 이 노래는 1980년대 후반 민주화 물결에 힘입어 해금됐고 대한민국에서는 ‘Satisfaction’과 함께 롤링 스톤스를 대표하는 노래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3. 맥가이버 (Macgyver)

아마 많은 분들이 제일 먼저 떠올리는 미드 주제음악일 겁니다. 싱글 히트곡도 아니고 음원으로 발표한 적도 없지만 순전히 < 맥가이버 >의 인기로 그 인지도를 획득했죠. 신시사이저 팝으로 제작된 이 주제음악을 들으면 평소엔 관심도 없는 화학공식이 떠오르고 그렇게 증오하던 물리학 법칙과 수학 개념이 제 머릿속을 돌아다는 것 같았습니다. 모든 직장인과 학생들이 싫어하는 일요일 저녁시간을 기다리게 만든 < 맥가이버 >에서 주인공이 자주 사용하는 스위스 군용 칼의 인기도 덩달아 상승했죠. 당시에는 이 칼만 있으면 텔레비전과 라디오도 다 고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리차드 딘 앤더슨이라는 무명 배우를 세계적인 스타로 끌어올린 < 맥가이버 >는 과학적 호기심을 조금이라도 높여 민족중흥의 역사를 일구는데 이바지했습니다.

4. CSI 과학수사대 (CSI)

2000년에 시작한 < CSI 과학수사대 >는 범죄수사극의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탐문수사와 형사의 감으로 범인을 잡는 기존의 수사극과 달리 과학적인 방법으로 범인을 색출하는 과정이 흥미로웠거든요. 라스베이거스, 마이애미, 뉴욕의 3편으로 제작된 이 미드의 주제곡은 모두 더 후의 노래였습니다. 라스베이거스 편은 1978년에 발표한 ‘Who are you’, 마이애미 편은 ‘Wont’get fooled again’, 뉴욕 편은 제 인생의 노래 중 하나인 ‘Baba O’Riley’였죠.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노래가 테마곡으로 쓰인 뉴욕 편은 상대적으로 재미가 덜했습니다.

< CSI 과학수사대 >의 주제곡으로 더 후의 노래를 사용한 것은 제작자 제리 브룩하이머가 더 후의 광팬이기 때문입니다. < 플래시댄스 >, < 비벌리힐스 컵 >, < 탑건 >, < 배드 보이스 >, < 아마게돈 >, < 블랙호크 다운 >, < 캐리비언의 해적 > 등을 제작하며 헐리웃의 실세가 된 제리 브룩하이머는 < CSI 과학수사대 >를 통해 더 후를 향한 사심을 드러낸 거죠.

5. 케빈은 12살 (Wonder Years)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건 동양이나 서양이나 마찬가지입니다. < 케빈은 12살 >을 제작한 닐 말렌스와 캐롤 클랙이 자신들의 10대 시절을 시대적 배경으로 한 미드가 < 케빈은 12살 >이거든요. 1988년에 처음 방송된 < 케빈은 12살 >은 베트남 전쟁과 흑인인권운동으로 혼란스런 1960년대 후반을 유쾌하고 정감 있게 담아냈습니다. 평범한 집안, 웬수 같은 형, 짝사랑하는 여자 아이, 재미없는 학교생활까지 전 세계 12살 남자아이가 공통으로 겪는 경험을 유머 있게 그려낸 < 케빈은 12살 >은 오프닝부터 팝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영국의 블루 아이드 소울 가수 조 카커가 비틀즈의 원곡을 걸죽하게 리메이크한 ‘With a little help from my friends’였거든요.

케빈 역을 맡은 프레드 새비지의 똘망똘망한 눈망울이 인상적이었던 < 케빈은 12살 >은 미국인들에겐 추억을 반추하는 드라마였는데요. 드라마에서 케빈이 좋아했던 여학생 위니도 사랑받았고 케빈의 친구 폴이 나중에 마릴린 맨슨이 된다는 휘발성 소문조차 화제가 될 정도로 우리의 기억에 남아있는 미드였습니다.

6. 블루문특급 (Moonlighting)

1985년부터 4년 동안 방송된 < 블루문특급 >은 미국 드라마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입니다. 로맨스, 코미디, 스릴러, 액션, 드라마 등 여러 가지 요소를 잘 버무려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둔 < 블루문특급 >은 < 택시 드라이버 >로 유명한 시빌 셰퍼드와 당시 신인이었던 브루스 윌리스를 정상급 엔터테이너로 만들었는데요. 사설탐정 회사에서 만난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아슬아슬한 러브라인 위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줄거리가 인기요인이었고 사무실 직원 아그네스와 허버트의 어벙하지만 사랑스런 캐릭터도 < 블루문특급 >의 매력 포인트였습니다.

2017년에 세상을 떠난 위대한 재즈 보컬리스트 알 자루가 부른 주제곡도 작품만큼 유명한데요. 도시의 야경과 와인이 떠오르는 세련된 재즈팝 ‘Moonlighting’은 텔레비전 드라마 음악을 많이 맡았던 리 호드리지와 알 자루가 함께 작곡했고 디스코 그룹 쉭의 리더였던 나일 로저스가 프로듀싱을 맡았습니다.

7. 경찰특공대 (S.W.A.T.)

경찰특수기동대를 뜻하는 S.W.A.T.는 Special Weapons And Tactics의 이니셜입니다. 이 특수부대를 소재로 한 < 경찰특공대 >는 1975년에 방송된 액션수사물인데요. 우리나라에서도 MBC를 통해 방송돼서 꽤 인기를 얻었습니다. 긴박감 넘치고 역동적인 주제음악을 연주한 리듬 해리티지는 흑인과 백인으로 구성된 펑크(Funk) 밴드인데요. 1976년에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오른 ‘Theme from S.W.A.T.’는 고든 파크스가 감독한 영화 < 샤프트 >의 주제음악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스릴 넘치는 스트링 연주와 관악기, 와와페달을 사용해 긴장감을 극대화한 기타 연주는 1970년대 액션 수사물의 주제음악 패턴으로 자리했죠. 2003년에는 사무엘 L. 잭슨과 콜린 파웰이 주연한 영화로도 리메이크됐습니다.

8. 보난자 (Bonanza)

기성세대가 아직도 기억하는 < 보난자 >는 1959년부터 1973년까지 제작됐고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대에 방송됐습니다. 당시만 해도 미국 서부시대에 대한 인식이 좋았기 때문에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누렸죠. ‘번영’, ‘대박’, ‘광맥’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 ‘보난자’를 제목으로 정한 것만 봐도 이 드라마가 미국의 골드러시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 보난자 >에서 아버지 역할을 맡았던 론 그린은 이 작품으로 인기배우 반열에 올라섰고 아들 역을 소화한 마이클 랜든은 나중에 < 초원의 집 >에서 아빠 역할로 더 유명해집니다.

이 주제음악은 세계적으로 히트했고 나중에는 주연을 맡았던 배우 론 그린이 걸죽한 바리톤 음색으로 불렀는데요. 1962년에는 컨트리 가수 저니 캐시가 리메이크하기도 했습니다. 주제음악 ‘Bonanza’를 만든 제이 리빙스턴과 레이 에반스는 캐롤의 고전 ‘Silver bells’와 냇 킹 콜의 노래로 유명한 ‘Mona Lisa’, 데비 레이놀즈가 부른 ‘Tammy’, 도리스 데이의 ‘Que sera sera’를 만든 유명한 작곡 콤비입니다.

9. 5전선 (Mission Impossible)

1966년에 탄생한 < 제5전선 >이 원제 < 미션 임파서블 >이란 이름으로, 주연을 맡은 피터 그레이브스보다는 탐 크루즈가 더 친근해진 이유는 1996년에 제작된 영화 덕분입니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는데요. 바로 주제음악입니다. 아무리 음악을 안 듣고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랄로 시프린이 만든 이 테마곡을 들으면 다 알 정도로 유명하죠. 탐 크루즈가 주연한 영화 사운드트랙에서는 유투의 베이시스트 아담 클래이튼과 드러머 래리 뮬렌이 리메이크해서 빌보드 싱글차트 텝 텐에 올랐습니다.

1966년부터 텔레비전을 통해 방송된 < 제5전선 >은 1960년대 중반 당시 소련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동서냉전의 시대를 반영한 작품이었습니다. 양쪽 진영의 스파이 활동은 전 세계를 극단적인 감시 사회로 만들었고 그에 따른 큰 희생을 감수해야 했죠. 하지만 소련이 무너진 후에 개봉한 영화 < 미션 임파서블 > 시리즈에서는 인류에게 위협이 되는 가상의 적이 등장해 시대상을 반영했습니다.

10. 하와이 오공수사대 (Hawaii 5-0)

이 주제음악도 < 제5전선 >만큼 유명합니다. 요즘의 10대와 20대 젊은이들에게 들려줘도 어디선가 들어본 음악이라고 할 정도로 널리 알려진 곡인데요. 지금도 텔레비전 예능을 비롯해서 수많은 프로그램의 배경음악으로 쓰여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겐 ‘Walk don’t run’, ‘Pipeline’, ‘Apache’로 시대를 풍미한 벤처스가 리메이크해서 1968년에 빌보드 싱글차트 4위까지 올랐습니다.

1968년부터 1980년까지 12년 동안 롱런한 < 하와이 오공수사대 >는 하와이를 배경음 한 범죄수사물인데요. 경제발전이 한창이던 1970년대에 우리나라에서 방송되어 하와이를 선망하는 여행지로 만든 일등공신입니다.

11. 프렌즈 (Friends)

종영한지 18년이 된 < 프렌즈 >가 최근에 다시 회자되는 이유는 방탄소년단의 김남준 덕분입니다. 해외생활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김남준이 미국인처럼 영어를 구사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 < 프렌즈 >를 보면서 영어를 배웠다고 밝혔기 때문이죠. 1990년대를 살아가는 20대 청춘의 이야기를 시트콤으로 재미있게 풀어간 < 프렌즈 >는 북미 지역에선 하나의 ‘현상’이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방송되지 않아 그 입소문과 주제곡만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밝고 경쾌한 주제곡 ‘I’ll be there for you’는 10년 이상 활동해온 미국의 모던 록 듀오 램브란츠에게 첫 번째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게 만들었고 그 후광으로 그들의 앨범이 우리나라에서 라이센스로 발매됐습니다.

< 프렌즈 >로 인기를 얻은 재니퍼 애니스톤은 브래드 피트와 커플이 됐고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1984년도 히트곡 ‘Dancing in the dark’의 뮤직비디오로 데뷔한 배우 커트니 콕스는 스타로 등극해 영화 < 스크림 >에도 출연했죠. 우리나라에서는 < 프렌즈 >에서 영향을 받은 국내 시트콤 < 세 남자 세 여자 >가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12. 마이애미의 두 형사 (Miami Vice)

이 미드는 우리나라와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퇴폐적인 분위기, 마약 거래, 프리섹스, 거리의 총격전까지, 억압과 통제가 자행되던 5공화국 현실과는 어느 것 하나 맞지 않았거든요. 그래서였는지 MBC에서 방송됐지만 큰 인기를 얻지 못하고 곧바로 폐지됐죠.

1984년부터 1990년까지 방송된 수사 드라마 < 마이애미의 두 형사 >는 배우 멜라니 그리피스의 남편이었던 돈 존슨을 당시 최고의 섹시스타로 등극시켰는데요. 사실 이 미드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이유는 주제음악과 사운드트랙 덕분입니다. 체코 출신의 건반주자 얀 해머의 테마곡은 1985년에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을 차지했고 이글스 출신의 글렌 프라이가 부른 ‘You belong to the city’는 2위에 올랐죠. 여기에 극 분위기에 어울리는 필 콜린스의 ‘In the air tonight’과 티나 터너의 ‘Better be good to me’가 수록되어 있어서 OST의 가치를 높였습니다.

요즘에는 텔레비전을 보는 사람이 많이 줄었죠. TV 말고도 유튜브나 넷플릭스 등 여러 플랫폼으로 원하는 시간에 보고 싶은 영상을 볼 수 있으니까 애써 공중파 방송을 고집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으면 그 시간에 맞춰서 텔레비전 앞에 가야 했고 좋든 싫든 가족들이 다 모여서 하나의 채널을 봐야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서 되돌아보니까 그때 가족들과 함께 봤던 프로그램이 기억에 남습니다. 누구와 무슨 대화를 하면서, 뭘 먹으면서, 어떤 자세로 봤는지도 떠오르네요. 이렇게 사소한 것까지 생각나는 걸 보니까 저도 돌아올 수 없는 그 시절이 그립나 봅니다.

여러분도 지금 자주 챙겨 보는 프로그램이나 영상 있죠? 주위에서 영상을 너무 많이 본다고 잔소리를 해도 무시하고 많이 보세요. 시간이 흐르면 그 프로그램은 여러분의 ‘화영연화’를 만들어주는 추억의 조각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