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디스코그래피의 과반수를 탈(脫) 록으로 무장한 이들에게 과거를 잣대로 들이미는 것은 무의미한 지적에 가까워 보인다. 애초에 변화란 수명 연장의 전통적 공식일뿐더러, 마룬 파이브만큼 이를 통해 막대한 수익과 인기를 취득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 상업성 편향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떨쳐낸다면 < Overexposed >를 기점으로 공표한 전격적인 팝 이주 프로젝트는 성공적인 통찰로 볼 수 있다. 얼터너티브 록을 표방하던 전신 그룹 카라스 플라워스에서 블랙 뮤직의 그루브가 넘실거리던 < Songs About Jane >으로의 파격이 까마득하게 다가올 만큼, 이들은 또 한 번의 과감한 교체로 본인을 규정하는 새로운 양식을 덧칠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편견을 배제하더라도 이제는 팝 전향의 당위 면에서의 문제점이 앞선다. ‘브랜드화’나 ‘변질’과 같은 혹평이 나은 처사로 여겨질 정도다. < Red Pill Blues >부터 자가당착에 빠진 음악은 더는 캐치한 팝적 감각으로 차트를 호령하지도, 혹은 노련함으로 신흥 세력에게 대항하지도 못한다. 여전히 2010년대 시제에 갇힌 채 팝의 탈을 쓴 양산형 곡을 일차원적으로 배출하는 < Jordi >는 작금의 마룬 파이브가 음악성보다도 화제성과 피처링 진의 유명세에 연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메간 더 스탈리온과의 안정적인 호흡을 맞춘 ‘Beautiful mistakes’와 간결한 캐논 전개 가운데 특유의 음색으로 곡을 이끈 ‘Memories’만이 무난함을 자처하며 명색을 유지한다. 그 외 축 처지는 분위기를 극복하지 못한 채 시종일관 길을 잃는 ‘Lost’나 아련한 잔향 효과로 값싼 감성을 자극하는 ‘Echo’ 등 타성과 진부함에 갇힌 곡만이 지대하게 깔린다. ‘Can’t leave you alone’의 갑작스런 스타카토 고음 처리는 떠나는 청자를 잡기 위해 급조한 과정처럼 보이며, 장르 교합을 펼친 < V >의 행적을 따라 주류 트랩 리듬에 라틴 팝을 접목한 ‘Button’과 ‘Lifestyle’은 어설픈 흉내내기에 실소만 터트릴 뿐이다. 심지어 설득의 노력조차 없이 단일적 구성만을 지향하는 ‘Seasons’는 축적된 나태의 산물이다.
무던한 보편성으로 차트 진입 여부에만 치중한 탓에 개별 트랙의 존재감이 뭉개지고 매몰된다. 대중의 니즈를 겨냥할 의도였다면 명확한 히트 넘버의 존재로 정규작의 무게감을 조정하거나, 아예 자극적 방향으로 소모적인 청취를 현혹하든지, 그것도 아니라면 차라리 노골적인 축가송 ‘Sugar’와 광고 음악에 적합한 ‘Maps’의 사례를 답습했어야 했다. 그나마 ‘Memories’에서 콘서트 마무리 떼창 곡이라도 건졌다고 생각했건만, 다음 타자로 뻔뻔하게 등장하는 리믹스 트랙은 일말의 동정심마저 무참히 깨트리는 요소다.
해를 거듭할수록 모호해지는 집중도와 되풀이되는 작법, 그리고 과거의 영광마저 점차 퇴색해가는 신시사이저의 색채까지. 여기에 마룬 파이브의 의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2017년 세상을 떠난 매니저의 이름을 가져온 음반은 진중함과 가벼움 가운데 어떠한 목적조차 달성하지 못하고 결국 기교만이 난무하는 애덤 르빈의 애처로운 구애의 흔적만을 남길 뿐이다.
– 수록곡 –
1. Beautiful mistakes (Feat. Megan Thee Stallion)
2. Lost
3. Echo (Feat. Blackbear)
4. Lovesick
5. Remedy (Feat. Stevie Nicks)
6. Seasons
7. One light (Feat. Bantu)
8. Convince me otherwise (with H.E.R.)
9. Nobody’s love
10. Can’t leave you alone (Feat. Juice WRLD)
11. Memories
12. Memories remix (Feat. Nipsey Hussle & YG)
13. Button (Feat. Anuel AA & Tainy)
14. Lifestyle (Jason Derulo Feat. Adam Lev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