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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 컴바인드(Mind Combined) ‘CIRCLE’ (2021)

평가: 3.5/5

대중에게 익숙하진 않지만 피제이와 진보는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데 주저하지 않았고 덕분에 현재는 많은 뮤지션들의 러브콜을 받으며 ‘뮤지션의 뮤지션’이란 칭호를 얻고 있다. 11년 전 첫 번째 앨범 <The Combination>으로 합을 맞춘 이들은 농익은 음악성으로 하고픈 걸 맘껏 펼쳐 보이면서 수준도 높은 앨범의 사례를 제시한다.

피제이가 창조하는 비트는 이미 궤도에 올라 있을 정도로 하나하나 균등하게 맛깔나다. 한 마디에 킥이 두 번 나오며 독특한 리듬을 형성하는 투스텝은 2000년대 초반에 크레이그 데이비드나 베이얼에 의해 유행한 스타일. ‘Waterfalls’는 투스텝 리듬으로 생경한 매력을 형성하고 트럼펫과 신스 베이스, 하우스와 힙합 리듬같이 다른 성질의 요소들을 유기적으로 엮은 두 주인공의 장기는 조화롭다.

퍼지 톤의 신시사이저 음색이 잔향을 남기는 네오 소울 곡 ‘Show me’는 변화가 많지 않은 비교적 선형적인 구조 안에서 감각적인 보컬과 대중적인 코드 진행으로 지루함을 상쇄한다. 드럼 앤 베이스가 연상되는 도입부의 ‘Swiss gold’는 힙합과 재즈가 결합해 1940년대의 스윙 시대부터 21세기 현재까지 시간 여행하는 진귀한 경험을 제공한다. 힙합과 알앤비, 소울 등 흑인 음악의 우산 아래 다양한 스타일을 체득한 진보의 기량을 만끽할 수 있다.

사운드뿐만 아니라 노랫말에도 취향이 확고하다. ‘Singularity’는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의 저서 < 특이점이 온다 >에서 따온  ‘Singularity is coming’을 주문 외듯 반복하고 삶의 다채로움과 행복을 담은 ‘Multiverse’의 라이브 결을 살린 드럼 연주와 기타 리프, 오토튠 조합은 과거와 현재의 이분법을 무색하게 한다는 점에서 다중우주론과 닮았다. 앨범 전체의 소리를 경유하는 과거와 현재 혹은 미래의 조우는 어린 시절의 영향과 현재의 관심사, 미래의 예견을 끌어모아 하나의 거대한 타임라인을 생성한다.

15년 역사가 축적된 음악에 대한 신념과 서로를 향한 믿음은 11년 전 원의 중점에 함께 섰던 그들의 곡선과는 차이가 있지만 다시 한번 원을 그리며 사람들의 손을 맞잡는다.

– 수록곡 –
1. Singularity
2. Multiverse
3. Waterfalls
4. Can you understand
5. Interlude
6. Show me
7. Swiss gold
8. Purple 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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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먼 도미닉 ‘Party Forever'(2021)

평가: 3/5

한결 가볍고 홀가분해졌다. 전작 < 화기엄금 >을 가득 메웠던 타이트한 랩과 무거운 분위기는 사라지고, 미디엄 템포 리듬의 부드러운 싱잉랩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근래 공개된 사이먼 도미닉의 음악 중 가장 힘을 덜어냈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그의 여유가 매끄러운 신스 멜로디 속에 깃들어 있다. 일전에 ‘귀가본능’에서 증명되었던 프로듀서 슬롬과의 합이 이번에도 깔끔한 케미를 불러일으킨다.

안정감과 편안함이 더해진 사운드는 대중에게 친근함을 유발하는 래퍼 정기석의 이미지로도 이어진다. 그의 생일을 자축하는 의미를 가진 곡이지만, 아무리 많은 사람과 함께 있더라도 근원적인 공허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랩스타의 모순을 노래한다. 아티스트 본인뿐 아니라 현대인들이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이 보편적인 외로움은 ‘짠해’에서부터 대중의 공감을 자아내는 것에 탁월했던 그의 특이점이 다시 한 번 발휘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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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릴고트 ‘죽을힘을 다하여’ (2021)

평가: 3.5/5

아우릴고트가 자리한 작은 공간엔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다. 2020년 8월 첫 번째 정규 < 가족애를 품은 시인처럼 > 이후 6개월여 만에 발표하는 새 앨범 < 죽을힘을 다하여 >는 곰팡이 속에서 피어난 처절한 생존 일지이며, 적어 내려가는 그의 펜촉은 미세한 흔적도 허투루 하지 않기 위해 먼지 한 톨 털어낼 여유가 없다.

타인이 아닌 오로지 자신을 세상에 남기려는 투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직관적인 제목 아래 어두운 트랩 비트 위 의도적으로 긁는 목소리가 늘어뜨리는 가사엔 목표를 두고 가장 밑바닥부터 기어오른 아우릴고트의 손톱자국이 그대로 새겨져 있다. 뚜렷하게 파트를 나누지 않고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주인공’을 시작으로 성공이란 단 하나의 이유가 더 깊게 앨범을 파고든다.

그런 점에서 아우릴고트의 승리 공식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이다. ‘현실의 벽은 안 피해 / 아직도 여전하게 난 깨’란 말처럼 그에게 현재는 탓할 대상이 아니며, 고난의 벽을 부수기 위한 유일한 주체는 ‘바닥에서부터’ ‘죽을힘을 다해’ 묵묵히 ‘행동’하는 그여야만 한다. 배고팠던 과거를 양분 삼아 쉬지 않고 달려왔기에 가능한 선언이다.

완벽하게 빚어내지 않고 음악으로써 작동하는 그의 문장은 운율을 살리기 위해 삭제 혹은 배열의 과정을 거친다. ‘계절 변했고 나이를 먹어’ ‘현실 인지 못 해 온통’ 등 조사의 생략과 ‘필요 없어 유치한 논쟁 / 바퀴를 굴려 없어 공백’의 도치법으로 리듬감을 다지며 이는 훅을 만들어내는 능력과도 연결된다. ‘한 번 사는 생’의 ‘하다 말아 죄다 컨셉 / 즈려밟고 가 난 벌레’를 비롯해 이어지는 2음절 혹은 3음절 단어를 단락 마지막에 배치하는 고전적인 작법은 아우릴고트 특유의 톤과 뭉개지는 발음과 어우러져 고유해진다.

앨범의 일관된 기조로 수록곡마다 비슷한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악착같이’에선 싱잉으로 후렴구를 표현하고, ‘시간은 금’의 불투명하게 전달하는 메시지와 더 거친 음색을 선보이는 ‘버프’ 등 다양한 방식과 호미들, 릴러말즈, 제네 더 질라, 이그니토란 수준 높은 참여진으로 신선도를 유지한다. 편곡을 넘어 믹싱과 마스터링까지 직접 주도한 아우릴고트의 프로듀싱이 돋보인다.

짧은 활동 기간이 믿기지 않는 필모그래피다. 목적에 대한 순수한 열망은 다작이란 노력으로 발현되며 그 결과물에 대한 설득력을 뒷받침하는 건 온전한 그의 재능이다. < 죽을힘을 다하여 >란 아우릴고트의 바른 몸가짐이 허황을 좇는 이들에게 귀감이 된다.

-수록곡-
1. 주인공
2. 진저리 (Feat. 릴러말즈, 제네 더 질라)
3. 바닥에서부터
4. 악착같이 (Feat. 호미들)
5. 처방책
6. 한 번 사는 생
7. 죽을힘을 다하여
8. 단독 (Feat. IGNITO (이그니토))
9. 무덤덤
10. 시간은 금
11. 행동
12. 버프 (Feat. Dbo (디보))
13. 목표로 빼곡한 공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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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에듀케이티드 키드(UNEDUCATED KID) ‘HOODSTAR 2’ (2020)

평가: 3/5

힙합 진영이 여자, 명품, 고가의 자동차를 다루는 건 특별한 일이 아니다. 부와 명성을 과시하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남성적 스토리텔링은 하나의 클리셰이자 축적된 관습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언에듀케이티드 키드는 그 관습에서 다른 질감으로 소재를 다루는 래퍼다. 성공을 향한 그의 집착은 처절함을 넘어서 처연함을 안겨주고 주제에 대한 극한의 밀어붙임은 그의 과거를 궁금하게 한다. < HOODSTAR >와 < 선택받은 소년 : The Chosen One >으로 정체성을 확립한 그는 < HOODSTAR 2 >로 슈퍼스타의 야망을 드러낸다.

앨범 전체의 트랩 비트는 ‘돈을 왕창 벌어 명품으로 온몸을 휘감자’는 지향점만큼 선명하며 랩 음악 초심자들도 쉽게 감지할 수 있는 라이밍이 더해진다. 뿌리, 루이(Louis), 구찌로 라임을 맞추는 ‘Uneducated arirang’은 아리랑의 가락에 오토튠을 칠한 명품 예찬 송이고 성명을 발표하듯 자신을 각인시키는 ‘U n e d u c a t e d k i d ’ 는 ‘know, more, clothes’로 운율을 조성한다. 명료한 발성을 통한 의미전달 덕분에 허황되어 보이는 내용이 유쾌하게 들린다. 그의 특출함이다.

“음악으로 성공하지 못하면 죽는다는 생각을 갖고 했다”라는 인터뷰처럼 그의 노랫말엔 독기가 서려 있다. ‘I’m back’의 ‘백정으로 태어나서 돼버려 fuckin’ 양반’이란 구절로 입신양명의 욕망을 드러내고 ‘Street kid’에서 ‘난 1등이 안 되면 시작도 안 했어, push the limits’로 폭발적인 추진력도 보여준다. 박재범의 참여로 대중성을 확보한 ‘God bless’의 ‘착하게만 살 수는 없잖아. 성경책을 뜯어 말아 피던 난데’라며 신의 축복을 자조적으로 일축하고 평범한 길에서 이탈한 정신세계를 표현한다.

그의 멈출 줄 모르는 기세는 직설과 가벼움 사이를 진정성으로 줄타기한다. “내 음악으로 위축된 한국 힙합을 깨고 싶다”라는 포부만큼 이번 목표는 야심 차다. 쉬이 잊히지 않는 유별난 정체성에 좋은 비트를 선택하는 안목과 귀에 잘 들어오는 가사 전달까지 장착한 언에듀케이티드 키드는 이제 성공적인 도약을 준비한다.

– 수록곡 –
1. Uneducated arirang
2. I’m back
3. U n e d u c a t e d k i d
4. Street kid (Feat. CHANGMO)
5. God bless (Feat. Paul Blanco & 박재범)
6. Work work (Feat. The Quiett)
7. IQ 80 freestyle
8. BMW (Feat. Northfacegawd)
9. Full of pain
10. First cl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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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살 ‘1Q87’ (2020)

평가: 3.5/5

< 작은 것들의 신 >과 < 쇼미더머니 > 이후 넉살의 자아는 여러 방면으로 갈라졌다. 방송에 출연해 유쾌한 모습으로 대중 앞에 선 예능인 넉살, 1987년 연희동에서 태어난 인간 이준영, 4년 7개월의 공백 기간을 가졌던 래퍼 넉살이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분열되기도 합쳐지기도 했다. 넉살은 이 다면의 삶과 경험을 그와 꼭 닮은 소설 ‘1Q84’로부터 가져온 아이디어와 결합한다.

긍정적인 태도와 희망을 품고 있던 데뷔작과 달리 신보의 기저 무드는 어둡다. 현재의 자신을 격렬한 시간의 흐름 속으로 빠트리는 ‘Bad trip’으로 넉살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프로듀서 버기(Buggy)가 주조한 거친 베이스의 왜곡 속 악에 받친 듯 톤을 교차하는 데서 결코 그의 공백기가 평온하지 않았음을 짐작한다. 그 과정에서 ‘Am I a slave’처럼 ‘쇼미더머니’ 출연 이후 쏟아진 스포트라이트와 힘겨웠던 과거를 교차하여 현실을 돌아보기도, 음울의 최대치인 ‘나’ 같은 트랙에서 끝없이 바닥을 뚫고 내려가 보기도 한다. 

넉살은 혐오, 광기, 편견, 질병에 병들어가는 현대 사회에도 검은 퀘스쳔 마크를 띄운다. ‘Bad trip’과 함께 앨범의 뼈대를 형성하는 ‘Akira’의 염세적인 태도가 대표적이다. 아프로비트의 리듬감으로 펑키(Funky)하게 다듬어낸 이 트랙에서 넉살은 ‘모두가 미쳐가고 있어’를 외치고 훅을 담당한 개코는 ‘그냥 출근이나 할래요’라며 붉은 오토바이를 타고 무채색의 도시를 질주한다. 

그렇기에 앨범은 ‘1Q84’와 더불어 조지 오웰의 디스토피아 ‘1984’와도 가까워진다. 다만 그 정서는 과격한 비판보다 우원재와 오디가 참여한 ‘Won’ 속 ‘대충 살고 싶어 나 좀 내버려두어’의 조소와 가깝고 어떻게든 새로운 하루를 살아나가는 현대인들의 현실적인 고민과 맞닿아 있다. 외부 관찰이 아니라 내부에서 시스템의 일원임을 인정하는 휴머니즘적 태도다. 이것이 넉살의 새 작품이 어두울지언정 음울하지 않고, 용이한 접근성과 사유의 조각을 같이 제공할 수 있는 으뜸의 요인이다.

앨범 중반부터 후반까지 잔잔한 테마 아래 진행되는 인간 이준영의 고백으로부터 그 인간적인 터치와 활기를 찾을 수 있다. 클래식한 붐뱁 스타일 비트 위 삶의 공간, 일상의 궤적을 그리는 ‘연희동 Badass’에서의 넉살은 악동의 타이틀 아래 여느 때보다 자유로이 랩을 뱉고, 이어지는 비스메이저 동료들과의 ’브라더’에서 형제애를 과시하며 세간의 시선과 개인적 고민을 떨쳐버리고 희망을 품는다. 코드 쿤스트의 차분한 비트 위 사랑의 다양한 의미를 고민하는 ‘너와 나’, 자전적인 메시지의 ‘거울’을 거쳐 마지막 트랙 ‘추락’의 흐름 역시 넉살 개인은 물론 그의 삶을 듣는 이들에게 허무함 대신 새로운 의미를 고민하게 만드는 구성이다. 

복잡다단한 지난날들의 경험과 느낌, 심경을 고백하는 자전적인 작품이다. ‘말론 브란도’, ‘리썰 웨폰’, ‘갈릴레오’ 등 독특한 개인의 기호를 메시지에 대거 활용하고 톤을 넘나들면서도 또렷하고 날 선 랩 스킬이 기본을 탄탄하게 잡고 있어 ‘뮤지션 넉살’의 정체성을 다시금 각인하는 의미도 있다. 

비록 그 하고픈 말이 일관되어있다는 느낌은 약하고 완결된 서사는 아니지만 오히려 그것이 결국 털고 일어서야 할 시간의 한 페이지였다는 점에서 자연스럽기도 하다. 그렇게 < 1Q87 >은 모노 톤의 물음표로부터 출발하여 굳은 느낌표로 각인된다. 여느 확장 속에도 굳게 중심에 위치할 정체성, 넉살이 결코 ‘팔지 않아’라 외칠 소중한 자산 말이다.

– 수록곡 –
1. Bad trip
2. Am I a slave
3. Won (Feat. 우원재 & ODEE)
4. Akira (Feat. 개코)
5. Crack kids (Interlude)
6. Dance class
7. 연희동 Badass
8. 브라더 (Feat. Don Mills & Los)
9. 나
10. 거울 (Feat. 화지)
11. 너와 나 (Feat. 거미)
12. 추락 (Feat. DeVi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