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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롬(Slom) ‘Weather Report’ (2022)

평가: 3/5

수더분한 성격의 프로듀서 슬롬은 자기를 내보이거나 자극적으로 과장하지 않는다. 도통 알 수 없는 속을 헤아릴 유일한 단서는 정교하게 담금질한 그의 작품뿐. < 쇼미더머니 > 경연곡 ‘회전목마’ 등으로 무대와 차트 모두 합격점을 받아낸 신입생은 자이언티의 레이블 스탠다드 프렌즈에 합류하며 점차 그 접점을 넓혀가고 있다. 래퍼를 빛나게 만드는 감독 역할도 쉬지 않는 동시에 새 보금자리에서 발매한 < Weather Report >는 정돈된 음악 안에 감춰둔 그의 내면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는 보고서다.

일주일 날씨를 상징하는 7개 트랙은 흘러가 버린 시간과 인간관계에 대한 소회를 기록한다. 이 기상예보에 따르면 그가 지나온 일기(日氣)는 대체로 흐림에 가깝지만, 빗방울이 빗발칠 정도는 아니다. 관계의 허무에서 비롯된 ‘아니라고’와 ‘Skit’, 일상이 된 코로나 시대 서글픈 감정을 담은 ‘D.r.e.a.m’ 등 어딘가 다들 처연한 주제를 읊고 있지만 슬롬은 관찰자의 자세로 우중충한 하늘을 담담하게 관조하며 잔잔한 멜로디를 지어낸다. 

서정성은 연주곡이나 악기가 중심을 잡은 부분에 특히 두드러진다. 보컬의 도움 없이 물방울 소리로 빛과 소금의 원곡을 재해석한 ‘그대에게 띄우는 편지’에는 거장에 대한 존경과 함께 엷은 미소가 녹아있고, 마찬가지로 음성이 생략된 마지막 트랙 ‘우산’의 빗소리로 쓸쓸하게 이어진다. 영국 가수 윌 히얼드와 협업한 ‘What do I do’ 후주의 기타 솔로 역시 갈수록 압축되고 짧아져 가는 시대에 반가운 여백의 미를 제공한다. 거세고 날카로운 사운드의 드릴(Drill)이 득세한 요즘 유행과 달리 차별화된 미니멀리즘이 만족스럽다.

먹구름을 비집고 들어온 친구들과 함께 활기찬 외출도 감행한다. 어둑어둑한 공기가 중심을 잡고 있지만 펑키한 베이스 리듬을 몰고 온 조력자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날씨를 재해석한다. ‘아니라고’의 자이언티가 특유의 멜랑콜리함으로 단연 돋보이는 가운데, 퓨전재즈 풍 ‘선인장’에 합을 맞춘 크러쉬와 빈지노도 흐린 날에 느껴지는 온도를 빼어나게 표현했다. 슬롬 표 감성에 담백하게 어울리는 피에이치원과 로꼬 등 래퍼 라인도 다소 부족할 수 있는 내지를 빼곡하게 채웠다.

화려한 피쳐링 진이 한편에 자리 잡았지만, < Weather Report >는 슬롬의 역할과 본연의 미덕을 잘 포착했다. 목소리보다 기악 연주와 음악이 은은하게 빛나며 프로듀서의 존재감을 강하게 부각했고, 그 선율에는 차분한 창작자의 태도가 묻어나 진폭은 얕고 구성은 단출하다. 빼어난 절제미, 늘 대중성과 자기 창작욕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었던 강점을 재차 증명한다. 

– 수록곡 –

1. 아니라고 (Feat. 자이언티)
2. 선인장 (Feat. 크러쉬, 빈지노)
3. Skit (Feat. 이하이, 로꼬)
4. D.r.e.a.m (Feat. 피에이치원)
5. 그대에게 띄우는 편지
6. What do I do (Feat. 윌 히얼드)
7. 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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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Splash of the Year 2022

Splash of the Year : 한 해를 조각내 음악 신의 주목해 볼 사건을 뽑는 이즘 내 연례행사.

명쾌하게 정리하기 힘든 1년이 지나갔다. 코로나19를 딛고 일어난 국내 문화계가 서서히 부활의 움직임을 보이기도, 동시에 안타까운 사건 사고가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음악은 계속되고 삶은 흘러가니까. 어느덧 10주년을 맞이한 스플래시와 함께 2022년 가요계를 돌아본다.

배신 또는 오해, 표절 논란
시작은 유희열이었다. ‘생활음악’ 프로젝트로 발표한 ‘아주 사적인 밤’이 류이치 사카모토의 ‘Aqua’와 유사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관련 의혹이 빠른 속도로 불거졌다. 그가 작곡한 성시경의 ‘Happy birthday to you’, < 무한도전 > 가요제 프로젝트 곡인 ‘Please don’t go my girl’ 등도 연이어 도마 위에 올랐다. 이후에도 이무진 등 여러 뮤지션에게 표절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며 2022년 상반기는 여러모로 시끄러웠다.

일련의 사태에 대해 ‘레퍼런스’나 정확하게 판정할 수 없는 문제라는 반론도 곳곳에서 등장했고, 논란을 조회수 삼으려는 각종 유튜브 채널이 다소 억지 프레임을 씌우는 현상도 나타났다. 예술의 특성상 문제를 깔끔하게 종결하긴 힘든 노릇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제 ‘표절’이라는 키워드가 모두의 의식 속에 들어왔다는 사실이다.

드디어 돌아온 페스티벌과 공연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던 공연 문화가 서서히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다. 언택트 공연 등 대체 수단이 등장했지만 현장의 맛을 대신할 수는 없는 법. 서울 재즈 페스티벌부터 인천 펜타포트, 부산 록 페스티벌 등 각종 행사가 개최되었고, 빌리 아일리시와 잭 화이트를 비롯해 여러 굵직한 뮤지션의 공연도 이뤄졌다. 풀리지 않은 규제로 마스크의 답답함은 있었으나 열정과 사랑으로 극복한 순간이었다. 아직은 완전한 정상화를 위한 예열과 시동 단계일 테지만, 억눌렀던 마음만큼 열기도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트렌드의 중심이 된 1990년대
2010년대 초중반부터 시작된 1980년대 신스팝과 디스코, 펑크(Funk) 열풍은 2020년대 본격적인 폭발을 통해 국내에도 유입되었다. 변화를 촉발한 것은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 사이 팝 펑크(Pop Punk)다. 2021년 블링크 182의 드러머 트래비스 바커를 주축으로 영미권의 머신 건 켈리, 올리비아 로드리고 등이 이끈 장르의 재부흥을 K팝 또한 재빠르게 수용했다.

태연의 ‘Can’t control myself’와 최예나의 ‘Smiley’, 우즈(WOODZ)의 ‘난 너 없이’ 등이 강렬한 기타 사운드와 더불어 이모(Emo) 감성을 일부 벤치마킹한 비주얼을 내세웠다. 정점은 단연 (여자)아이들의 ‘Tomboy’. 앨라니스 모리셋 등 록 여성 뮤지션의 정신을 받아들여 매혹적인 팝 선율, 거침없는 펑크(Punk)의 태도를 모두 끌어안았다. 음원에는 삭제된 욕설까지 함께 소리치던 대학 축제 풍경은 화끈함의 극치였다.

가지는 다른 곳으로도 뻗어나갔다. 아이브의 ‘After like’는 댄스 음악 장르인 하우스 리듬을 기반 삼았고, 뉴진스의 ‘Attention’과 ‘Cookie’는 비슷한 시기의 힙합과 알앤비 장르를 채택했다. 큰 유행이 된 Y2K 콘셉트를 여러 팀이 전격 채택한 것은 덤. 윤하의 ‘사건이 지평선’이 역주행한 원인도 비슷하다. 일본 애니메이션 오프닝을 연상케 하는 아련한 분위기가 2000년대 초 TV 만화 채널을 추억하는 젊은 층의 향수를 자극한 것이다. 1990년대생의 문화가 차츰 향수의 대상으로 편입되고 있는 현상을 음악에서도 목격할 수 있었다.

중요한 건 마인드 셋, 거장의 귀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적어도 음악에서는 그렇다. 베테랑 뮤지션들이 돌아오면서 오랜 세월 쌓은 관록만큼이나 식지 않은 에너지로 대중을 놀라게 했다. 먼저 꾸준한 바이닐과 시티팝 유행에 힘입어 5월에는 빛과 소금이 26년 만에 새 정규 앨범 < Here We Go >를 발표했다. ‘공유’의 시대를 거슬러 음악을 ‘소유’하려는 자연적인 수요와 맞닿은 점에서 의미가 깊다. 송골매 또한 ‘열망’ 콘서트로 전국을 누비며 기성세대 못지않게 젊은 세대까지 관객석으로 초대했다. 7월 서울 공연을 시작으로 11월 인천 공연까지 성행하며 곳곳에서 환호성이 이어졌다.

방송 업계에서도 컴백은 이어졌다. KBS의 < 불후의 명곡 >이 2012년 은퇴 선언을 했던 패티김을 초청해 3부에 걸쳐 특집을 꾸렸고, 그 또한 무대에 올랐다. 이미자 또한 TV조선의 러브콜을 받아 데뷔 63주년 기념 특별 공연을 개최했고, MBN의 트로트 프로그램에서는 심수봉을 심사위원으로 캐스팅하기도 했다.

그리고 역시 ‘가왕’은 ‘가왕’. 조용필이 스무 번째 정규 앨범의 예고편으로 신곡 ‘찰나’와 ‘세렝게티처럼’을 선보인 데에 이어 KSPO 돔에서 밴드 위대한 탄생과 함께 압도적인 규모의 콘서트를 개최했다. 전혀 늙지 않은 음악으로 돌아온 그, ‘영원한 오빠’ 수식어는 2020년대에도 공고했다. ‘물리적 나이보다 마인드 셋이 중요’해진 오늘날의 새로운 가치를 느껴본다. 어찌 보면 키워드는 ‘귀환’이 아니라 ‘소통’이다.

여성 아이돌 르네상스
엠넷 < 프로듀스 > 시리즈의 성공 이후 여러 그룹이 팀 단위보다는 개별 멤버 위주의 팬덤 구축과 세계화에 힘을 서서히 쏟기 시작했다. 쉽게 읽히지 않는 ‘세계관’과 가끔 난해하기도 한 콘셉트에 여성 아이돌이 예전만큼 대중적 지지를 받기는 힘들 것으로 보였다. 이러한 흐름을 깨고 돌아온 2022년 걸그룹 르네상스는 그래서 더욱 반갑다.

‘Love dive’와 ‘After like’를 연속 히트시킨 아이브가 선두 주자로 올라선 가운데 같은 아이즈원 파생 그룹 르세라핌은 데뷔 초 여러 논란을 딛고 ‘Antifragile’을 흥행에 성공시키며 재빠르게 입지를 굳혔다. 남다른 방식으로 첫선을 보인 뉴진스 또한 ‘Attention’과 ‘Hype boy’로 동시에 돌풍을 일으키며 대세 자리를 놓고 전투를 벌였다. 스테이씨의 ‘Run 2 u’, 있지의 ‘Sneakers’, (여자)아이들의 ‘Tomboy’와 ‘Nxde’ 등 신세대 걸그룹의 치열한 각축전으로 바쁜 1년이었다.

선배들도 만만치 않았다. 레드벨벳이 ‘Feel my rhythm’으로 클래식 샘플링 트렌드를 이끌며 여전한 저력을 보여준 한편 블랙핑크는 미국과 영국 앨범 차트 1위에 모두 올라 글로벌 시장 점령을 이어 나갔다. 트와이스의 나연은 숏폼 플랫폼에서 안무 챌린지를 적극 활용해 첫 솔로 싱글 ‘Pop!’을 화려하게 터뜨렸다. ‘Forever 1’으로 15주년을 풍성하게 기념했던 소녀시대와 7년 만에 다시 모인 카라까지, 신예들과 익숙한 이름의 공존에 2022년 K팝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이에 반해 타겟층이 일반 대중에서 구매력이 높은 팬덤으로 많이 기울어진 남성 아이돌은 상대적으로 싱글 차트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물론 각종 콘텐츠의 범람으로 소비자층이 세분화됨에 따라 ‘국민가수’나 ‘국민가요’가 만들어지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고, 애초에 보이그룹의 목표가 공연이나 음반으로 옮겨간 지도 오래다. 그러나 이를 감안하더라도 보이그룹의 목소리가 예전처럼 거리에서 울려 퍼지던 시절이 그리워지는 것은 사실이다.

꺾이지 않는 장기 지배, 힙합 정권 40년
얼마 전, 요즘 초등학교에서 여학생들이 걸그룹 안무를 따라 한다면 남학생들은 지코의 ‘새삥’ 챌린지에 열심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국내 음악 시장에서 힙합이 이제 하나의 별종이 아니라 굳건한 주요 장르가 되었다는 사실의 방증이다. 올해 무려 열한 번째 시즌을 방영 중인 < 쇼미더머니 >와 여러 밴드가 나선 경연 프로그램 < 그레이트 서울 인베이전 >의 시청률 차이만 봐도 명확하다. 해외 못지않게 국내에서도 주도권은 힙합에게 완전히 넘어왔다.

1980년대 중반 국내에 처음 알려진 이후로 서태지와 아이들을 타고 본격 유입을 겪은 힙합/알앤비는 40여 년 동안 꾸준히 자리를 넓히며 세력을 키웠다. 비오의 ‘Love me’, 빅 나티의 ‘정이라고 하자’, 그리고 크러쉬의 ‘Rush hour’ 등 차트에는 아직도 여러 히트곡이 포진해 있다. 록 페스티벌의 부활 사이 함께 돌아온 대구 힙합 페스티벌까지, 어느덧 익숙해진 힙합 강국의 면모다.

BTS 병역 논란
엄밀히 말하면 ‘가요’계 사건은 아니지만, 방탄소년단의 병역 문제가 올 한 해 계속해서 화두에 올랐다. 국위선양의 공로를 높게 사 병역 면제를 논하는 입장과 형평성을 거론하며 반대하는 측의 논쟁이 활발히 벌어지며 일반 대중에게도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유승준과 MC몽 등 남성 뮤지션의 입대 문제로 여러 차례 논란을 겪었기에 어쩔 수 없이 떠오른 문제였다.

사안은 결국 방탄소년단의 입대로 끝을 맺었다. 맏형인 진이 12월 13일 최전방인 연천 지역 신병교육대에 입소한 것. 같은 날 솔로곡의 가사가 도마 위에 올랐던 멤버 슈가는 어깨 수술을 근거로 공익 판정을 받았다. 나머지 멤버들의 계획은 아직 미정이나 그룹 활동의 중단 이후 여러 멤버가 솔로 음반을 발표하면서 개인 커리어를 확장해가는 중이다.

다른 예술/체육 분야의 병역 특례와 엮이며 제도 자체의 존폐 여부까지 나왔던 주제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풀리지 않는 숙제를 끄집어냈다. 성별과 세대 갈등까지 연결되는 두 글자, ‘군대’. 그러나 병역이 아직까지 ‘의무’인 국가에서 이를 일종의 ‘형벌’의 차원으로 보는 시선도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다. < 100분 토론 > 임진모 평론가의 말처럼, ‘대중에게서 기억되고, 인정과 사랑을 받는 것이 가장 큰 특혜’ 아닐까.

사각지대 속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아티스트 착취
‘연예인 걱정은 하는 게 아니’라는 말도 있지만 최근 뉴스에서 떠오른 헤드라인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먼저 11인조 보이그룹 오메가엑스의 갑질 피해 소식이었다. 소속사 대표에게 멤버들이 폭행당했다는 사실이 해외 소셜 미디어를 통해 알려졌고, 이후 온갖 피해 내역에 대해 직접 입을 열었다. 성희롱부터 시작해 코로나19 감염에도 불구하고 강압적으로 무대를 섰다는 사실, 온갖 폭언과 협박 내역이 밝혀졌다.

‘내 여자라니까’로 데뷔해 한때 ‘국민 남동생’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던 이승기 또한 소속사 후크 엔터테인먼트에게서 음원 수익을 전혀 정산받지 못한 사실이 언론에 드러났다. ‘적자 가수’라는 비하 발언을 했던 대표는 현재 수익 횡령 의혹까지 불거졌다. 상황이 채 식기도 전에 이번에는 한창 여러 방송에서 활약 중인 가수 츄가 소속 그룹 이달의 소녀에서 강제로 퇴출되는 일이 벌어졌다. 큰 물의를 일으켰던 연예인이라 하더라도 대부분 중립적인 언어로 계약 해지 사실을 밝혔던 여러 선례에 비하면 ‘제명’과 같은 언어를 사용한 블록베리 엔터테인먼트의 글은 다소 악의적으로 보인다. 소속사의 입장문이 주변인들의 증언으로 반박되며 나머지 이달의 소녀 멤버들이 계약 해지 소송에 들어갔다는 소문도 퍼진 사이, 1월로 예정된 그룹의 컴백 소식이 갑작스레 공개되어 혼란을 야기했다.

한때 범람했던 가요계 계약 문제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지만 음악과 뮤지션이 돈의 논리에 의해 지나치게 좌지우지되는 모습은 착잡함을 안긴다. 정녕 음악이 순수한 존재로 남을 수는 없을까, 바란다면 너무 비현실적인 것일까. 다가오는 2023년에는 조금 더 깨끗하고 공정한 음악 산업 소식이 많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어본다.

이미지 편집: 정다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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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아이디(J.I.D) ‘The Forever Story’ (2022)

평가: 4/5

신의 스포트라이트와 ‘드림빌 특급 유망주’라는 칭호. 최근 몇 년 사이 일궈낸 힙합 팬들의 열띤 지지가 부담으로 다가올 법도 하지만 제이아이디는 그 모든 기대를 찬사로 맞바꾼다. 2017년 제이 콜이 이끄는 드림빌 레코드 입단을 발판 삼아 정규작 < The Never Story >와 < Dicaprio 2 >를 발매하며 주가를 올린 그의 신보는 그가 그저 유망주가 아닌 어느덧 신을 이끌 수 있는 리더로 성장했음을 천명하는 작품이다.

야심이 그 여느 때보다 거대하다. ‘네가 엄마를 위해 연주할 노래를 가져왔지 / 여자들에게 들려줄 노래도 가져왔지 / 약쟁이들에게 팔 것도 가져왔지'(‘I got the sh*t you could play for your mama / I got the sh*t you could play for the hoes / I got the sh*t you could sell to the trappers’)라는 ‘Raydar’의 가사를 보라. 이 말이 허풍이 아닌 게, 음반은 자기 과시 트랙과 진심 어린 발라드, 가슴 시린 가족 이야기까지 실로 다양한 주제를 아티스트의 일취월장한 역량과 연결 지어 눌러 담는다. 제이아이디의 커리어 최고작이라는 평가도 평단과 애호가들 사이에서 속속 나온다.

초반부의 자기 과시 트랙들은 래퍼로서의 제이아이디에 주목하는 구간이다. ‘Never’나 ‘Off deez’ 등 이전의 뱅어에서 드러난 그의 랩은 한 방 카운터보다 스피드와 잽에 능한 복서처럼 묵직하기보다 가볍게 툭툭 치는 듯한 발성과 촘촘한 플로우가 특징. 본작에서도 그 주무기는 강력하다. 무거운 베이스 위로 날렵하게 라임을 내리꽂는 ‘Raydar’, 이전과 비교해 힘을 뺀 랩이 21 새비지와 찰떡궁합을 이루는 ‘Surround sound’가 중독성 있다. 특히 2절의 예측 불가한 플로우 스위치로 그의 재능을 유감없이 펼친 ‘Dance now’는 올해 최고의 힙합 싱글 중 하나.

프로듀서 크리스토(Christo)가 총괄하고 캐나다 연주 밴드 배드배드낫굿, 베이시스트 썬더캣 등 재즈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한 프로덕션은 옛 재즈와 소울의 향취로 고풍스럽다. ‘Bruddanem’에서는 신스 펑크(Funk) 그루브 위 흡사 앤더슨 팩처럼 노래하기도 하고, 모스 데프가 피쳐링해 무게감을 살리는 ‘Stars’에서는 부유하듯 몽환적인 오케스트레이션이 일품이다. 올드 힙합과 블랙 뮤직에 대한 헌사는 ‘Surround sound’에서 본격적으로 행해지는데, 아레사 프랭클린의 ‘One step ahead’를 모스 데프의 1999년 작 ‘Ms. Fat Booty’와 거의 동일한 방식으로 샘플링했다. 옛 힙합 팬들에게는 반가움을, 신세대 리스너들에게는 신선한 감흥을 전달할 신구를 아우르는 전략이다.

음악적 완성도와 더불어 세밀하고 진심 어린 가사도 깊은 인상을 남긴다. 주된 글감은 각별한 가족 이야기. 전작에서도 자전적인 메시지를 드러낸 바 있는 그이지만 본작에서는 일곱 남매로 자란 어린 시절 배경을 더욱 구체적으로 풀어내며 서사의 밀도를 높였다. ‘Crack sandwich’는 이웃과의 다툼을 통해 더욱 끈끈해진 남매의 일화를 생생한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고, 음울한 비트와 제임스 블레이크의 몽환적인 후렴구가 공존하는 ‘Sistanem’에서는 돈을 벌고 유명해질수록 소홀해진 여형제와의 관계를 한탄한다. 이 분야에서 백미는 단연 ‘Kody blu 31’. 언뜻 빌 위더스의 ‘Lean on me’가 연상되는 포근한 멜로디로 일찍 세상을 등진 친구의 아들을 애도하는 노래는 ‘그럼에도 삶은 계속해서 나아가야 한다’는 강인한 메시지를 새기며 단연 앨범에서 가장 진한 여운을 남긴다.

힘들었던 과거에 마냥 사로잡힐 수는 없기에, 그는 나은 미래를 소망하고'(‘Better days’) 인생의 많은 낙관에도 ‘사랑을 느껴라’ 청자를 독려한다.(‘Lauder too’) 그가 앞날을 향해 새긴 한 줄 희망의 언어가 보편의 메시지로서 제이아이디 자신을 넘어 우리에게 닿을 때 기품 있는 엔딩 크레딧이 장식된다. 만개한 기량과 깊어진 서사가 빛을 발하는 올해 최고의 랩 앨범 중 하나다. 드림빌 에이스의 성장이 절정에 달했다.

– 수록곡 –
1. Galaxy
2. Raydar
3. Dance now (Feat. Kenny Mason) 
4. Crack sandwich
5. Can’t punk me (Feat. EarthGang)
6. Surround sound (Feat. 21 Savage, Baby Tate) 
7. Kody blu 31 
8. Bruddanem (Feat. Lil Durk)
9. Sistanem 
10. Can’t make u change (Feat. Ari Lennox)
11. Stars (Feat. Yassin Bey, BadBadNotGood)
12. Just in time (Feat. Kenny Mason, Lil Wayne)
13. Money
14. Better days (Feat. Johnta Austin) 
15. Lauder too (Feat. Raven Lenae, Allen K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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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 모쉬핏 ‘AAA’ (2022)

평가: 3.5/5

몇 년 전부터 방송 프로그램과 음악계에 ‘부캐 놀이’ 유행이 휘몰아쳤다. 트렌드의 맥이 끊기기 직전, 프로듀싱 팀 그루비룸의 휘민은 ‘Achoo remix’에서 래퍼의 면모를 드러냈던 릴 모쉬핏으로 다시 등장했다. 갑작스러운 데뷔 앨범 발매 소식이 만우절 장난이라는 추측도 있었으나 이번엔 예상했던 래퍼가 아닌 힙합 프로듀서로서 < AAA >를 내놓았다.

새 페르소나로 음반을 발매한 것은 두 자아를 근본적으로 구분 짓기 위한 선언이다. 릴 모쉬핏은 그루비룸을 대표하는 감각적이고 대중적인 팝 대신 음울하고 거친 분위기와 해외 유행을 이식한 세련미를 장착했다. 나아갈 방향을 알리듯 서두부터 조준점이 명확하다. 인트로 ‘Moshpit only’는 피에르 본식의 트랩 비트와 폴 블랑코의 자신감 넘치는 랩으로 마초 이미지를 불러온다.

본체의 그림자를 완전히 거둬들이지는 않았다. 단짝 박규정과 함께 프로듀싱하며 듀오의 정체성을 유지하되 전체적인 콘셉트 설정은 단독 권한으로 가져왔다. 래퍼 혹은 프로듀서 이상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고 싶다는 인터뷰처럼 릴 모쉬핏은 국내 힙합 플레이어들을 조명하고 외국 힙합의 트렌드를 끌어와 큐레이터의 역할을 맡았다.

키드밀리, 소코도모 등 국내 래퍼부터 미국의 에이셉 앤트, 스트릭까지 힙합 본토와의 연결고리를 마련했다. 유명세를 묻지 않고 기용한 신예 프로듀서들의 신선한 사운드도 든든하다. 특히 비엠티제이와 구스범스가 만든 ‘Yooooo’의 중독적인 신시사이저와 ‘Bo$$’의 분위기 전환은 히트메이커의 번뜩이는 직감을 보여준다. 하트코어 레디와 스월비의 호흡에 세사미의 비트를 더한 ‘Die hard’ 역시 킬링 트랙.

흑인 음악 뮤지션으로 채워 넣은 크레디트와 내적 요소 모두 국내 힙합의 최전선을 포착한다. 최신 경향을 보여주는 모범적인 지표지만 균열 또한 같은 지점에서 일어난다. 앨범의 제목인 ‘All Arena Access’의 개척적인 의미와 달리 외국 힙합의 규격을 넘어서는 대범함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시너지를 일으킬 모험적인 시도는 없었지만 스타와 신예, 국내와 해외를 결합한 영역 확장에는 성공했다.

-수록곡-
1. Moshpit only (Feat. Paul Blanco)
2. Gotta lotta shit (Feat. Dbo, Sokodomo, Kash Bang)
3. Yooooo (Feat. 키드밀리, Sokodomo, Polodared)
4. A-Team freestyle (Feat. A$ap Ant, Bill Stax, Strick, 미란이) (추천)
5. Slatty slut (Feat. 식케이)
6. On the block (Feat. 쿠기, Ourealgoat, Leellamarz)
7. Die hard (Feat. Reddy, Swervy) (추천)
8. Bo$$ (Feat. Saay, Big Naughty, Goosebumps) (추천)
9. Back in my area (Feat. Ggm Lil Dragon, Lil Gimchi, Skinny Brown, June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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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들 ‘Generation'(2021)

평가: 2.5/5

공정성의 시대, 호미들이 사랑받는 법
오늘날 서사 없는 ‘머니 스웩(swag)’은 인정받지 못한다. 특히 스웩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힙합에서 스웩이 스웩으로써의 역할을 하려면 제대로 된 디딤돌이 있어야 한다. 음악 청취자가 그들의 자기과시를 인정하고, 동경하고, 그리하여 그들을 ‘진정한 래퍼’로 받아들였을 때 스웩은 스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00년 출생으로 동네 친구 셋이 모여 만든 호미들에게 스웩의 디딤돌은 가난했던 어린 시절이다. 처음 대중의 관심을 끈 EP < Ghetto kids >를 비롯해 이들이 계속해서 끌어오는 게토(빈민가) 서사는 호미들 스웩의 진정성을 만든다. 즉, ‘주머니가 무거워서 바지가 안 올라가'(‘빽’)는 삶을 사는 현재는 ‘매일 밤 날 태우고 여주로 데려가던 그때 그 봉고차'(‘내 목소리가 들리지’), ‘가끔 영등포 폐가 때처럼 땀 흘리며 인나'(‘말했었잖아’)던 시절과 등치가 되며 그들만의 정체성이 된다.

정규 1집 < Generation >엔 그런 정체성이 가득 차 있다. 또한 이는 그들 스웩에 서사적 완결성을 부여한다. ‘Business man’의 ‘쟤네들은 가사 쓸 때 전부 허위로 / 우린 우리만의 노력으로 전부 이뤄’나 ‘뚝’의 ‘바쁜 척해 술 리에서 보여 매일 / 우린 여전히 작업해 / 나는 직접 만들어 내 돈’이란 발화는 가난했던 시절과 맞닿으며 무결한 성장 서사로 완성된다. 누구와 달리 정말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회고하며 래퍼로서의 진정성을 내세우는 것이다.

‘진정성’은 호미들에게 있어 양날의 칼이다. 가난이 그들만의 ‘정체성’이자 ‘진정성’의 토대가 될 수 있지만 이후 이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지나치게 전형적이다. 차, 명품, 가족, 여자. 부와 명예를 과시하기 위해 소환하는 소재가 지극히 평범하고 익숙하다 못해 일면 시대착오적이란 느낌까지 든다. ‘Intro’부터 ‘리제로’로 이어지는 전반부는 가히 레퍼런스의 반복이자 누구나 쓸 수 있는 비유의 절정.

‘벌고서 보니까 이거만 한 게 없더라 ** 최고야 명품과 사치 ferrari 488′(‘Generation’), ‘우리가 바지 내릴 때 넌 앞머리나 내리고'(‘No hook’), 등 차나 명품을 향한 예찬을 힙합 문화의 허슬에 엮어 해석하더라도 거의 모든 곡에 쓰이는 혐오 표현은 호미들이 대표하고자 하는 대상이 누구인가 묻게 한다.


‘리제로’의 다음 표현을 보자. ‘밥 먹을 땐 아무거나 먹지만 / 하룻밤을 보낼 땐 언제나 미식가’. ‘RPM 8000’은 ‘그녀는 먹고 싶어 해 내 빠삐코 / 백화점으로 산책 화장실 갈 때 아니면 1층만 가네’라고 말한다. 이 외에도 그들의 곡 안에서 여성은 ‘싼 티가 나는 여자 BJ'(‘다 그대로’)로, ‘bitch’로, 나아가 ‘hoe girl’로 차용될 뿐이다.

결국 이들이 대표하고 연대하고 손을 얹는 것은 ‘차용되지 않고 차용할 수 있는, 차용하는 것을 꿈꾸는 자’들 이다. 음반 명인 ‘세대(generation)’가 지칭하는 것 역시 앞선 예시의 사람만을 포함한다. 결국 ‘난 끝까지 너네의 힘이고'(‘하루가 달리’)와 ‘이젠 우릴 믿고 도전해 my friend'(‘Outro’)로 이어지는 음반의 마무리까지 어떤 청취 층은 끝끝내 비가시화된다.

공정성의 시대 호미들의 성공이 ‘특정 세대’에게 사랑을 받는 건 ‘한 세대’의 모습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가난, 성공, 책임감, 여성의 수단화 등등. 이 앨범은 그 쓰라린 초상을 보여주고 그 초상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호미들의 넥스트 스텝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 건 그들이 이 배제를 어떻게 풀어가며 ‘가난 서사’를 어떻게 발전시키느냐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호미들의 머니 스웩, 진정성, 정체성이 짙어지느냐 흩어지느냐는 이 음반을 시작으로 다시 출발선 앞에 섰다.

– 수록곡 –
1. Intro
2. Generation(Prod. by Leansmoke)
3. No hook
4. 빽! 
5. 쟤넨 다 바보
6. 리제로
7. 말했었잖아 
8. 내 목소리 들리지 
9. 다 그대로 
10. Business man
11. RPM 8000
12. 뚝
13. 하하호호
14. 하루가 달리
15. Out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