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음악들이 있을까? 그 숫자가 궁금해진 것은 오은하의 ‘River’를 듣고 난 이후다. 확인된 바로는 인류는 지난해까지 약 8천2백만 곡을 시장에 내놓았고, 매일 6만여 곡이 새롭게 업로드되었다. 1.4초 만에 한 곡이 음원으로 나오는 세상, 오은하의 ‘River’도 그중 하나였을 것이다.

인용한 통계는 2021년 초 세계 최대 음원 플랫폼인 스포티파이만의 자료다. 그 이전인 2019년에는 하루 4만 곡의 음원들, 상승세를 감안하면 2022년 현재의 추세는 그 이상이리라. 바야흐로 음악은 갠지스강의 모래알처럼 그 수가 늘고 있다.
2021년 6월 1일. 한국의 재즈 피아니스트 오은하가 발표한 싱글 ‘River’는 무수한 음악 가운데 스스로 빛나는 곡이다. 발표 다음 날, 스포티파이의 재즈 플레이리스트인 Rising Jazz에 올랐고, 현재까지도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다. ‘River’가 발표된 지 약 270일, 그 사이 대략 1,600만 곡이 음악 시장에 나왔을 텐데 분명 우리 음악계의 쾌거다.
오은하가 작곡하고 연주한 ‘River’는 사뭇 명곡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첫 세 음만으로도 매료되는 단순한 멜로디로 시작해 이를 변주하고 발전시키면서 강의 여정을 드라마틱하게 시각화한다. 연주력 또한 빛난다. 버클리 음대 유학 시절, 그녀에겐 혹독한 수련과 건반 하나 누를 수 없었던 위기가 있었다, 이를 극복한 예술가의 타건에는 분명 깊은 색깔이 스며있다. 이 곡 ‘River’에서는 잠시 숨을 멎게 하는 뮤트 – 혹은 브레이크 – 가 절묘하다.
강이란 흔한 소재, 풀어나가는 구성 또한 탁월하다. 7분 47초의 긴 연주곡을 듣는 동안 멈추고 싶은 마음보다 다음 소절에 대한 궁금함이 생긴다. 쉽지만 깊고, 짧지만 장대한 곡이 ‘River’다. 세계 재즈계의 신성 오은하, 며칠 전 그녀의 만나 경청할 수 있었다. 혹 다시없을 행운, 긴 대화였으나 짧게 요약했다.

‘River’, 어떤 계기로 창작하였는가.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감흥을 음악으로 표현해 보고자 했다. 영화 속 강인 ‘블랙 풋’이나 곡을 쓰는 동안 걸었던 전주천, 녹음하는 동안 찾았던 양재천도 있지만 특정된 어느 강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River’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인생이다. 소재는 강이지만, 결국 ‘삶’을 말하는 곡이다.
삶의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보편적 문제에 관한 질문과 답 들이다. 예를 들자면, ‘우리는 왜 아침에 눈을 뜨는가?’부터, ‘나는 왜 음악을 하고 있는가?’, 또한 ‘왜 열심히 하는 것인가?’ 등등 삶이란 강을 그려보고자 했다.
음악을 열심히 하는가.
잘하고 싶다. 무엇보다 내가 하는 일이니 음악만큼은 잘하고 싶다.
음악을 잘한다는 것? 이미 잘하고 있지 않은가.
내가 전하고자 하는 것을 잘 표현하고, 잘 연주하는 것이다.
음악만 열심히 하는가.
삶도 열심히 살고 있다. 요즘은 음악 디렉터로 여러 가지 작업에 많은 시간을 쏟다 보니 내 본업에 소홀해진 것 같아 지치기도 했지만 다시 심기일전하고 있다. 그래서 매일 루틴으로 피아노 연습, 게을리하지 않는다.
여러 가지 작업이란.
글로벌 기업과 작업하는 일인데 업무상 보안을 지켜야 하는 조항이 있다. 신뢰를 지켜야 하니 이해해 달라.
‘River’에 대한 반응은 느껴지는가.
음원 유통사 대표로부터 연락을 받고 나서야 스포티파이에 올랐다는 것을 알았다. 저작권 수입은 아주 적지만 그래도 느는 편이고, 신기한 것은 해외 팬을 자처하는 이들로부터 메일이 오는 것이다. 음악가로서 책임감을 느낀다.
‘River’ 이후, 본업은 어떻게 되는가.
올해, 정식 앨범을 낼 예정인데 12곡을 준비하고 있다. 앨범 제목은 이미 정했다. 6월 즈음 < Eun Ha Oh : Piano >라는 이름으로 발표할 계획이다. 오직 창작된 피아노 연주곡만으로 12곡을 담을 것이다.

왜 연주곡만 있는가? (글쓰기도 상당하다는데) 노래는 계획하지 않았는가.
결국 나를 증명하는 것, 우선 피아노다. 의뢰받은 일들을 하는 동안 내 음악에 대한 정체성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글을 쓰는 것과 가사를 쓰는 것은 별개의 능력인 것 같다. 그래서 일단 연주곡이다.
어떤 음악가가 되고 싶은가.
롤 모델로는 피아니스트인 Alan Broadbent, 영화음악에도 관심이 있어 엔리오 모리꼬네처럼 작품을 만들고 싶다. 하지만 무엇보다 먼 훗날에도 ‘오은하의 음악은 좋다’라는 단순 명료한 말을 듣고 싶다.
‘River’를 듣고 오은하를 만나는 동안 음악가는 결국 음악으로 말한다는 불변의 명제가 떠오른다. 거대 기획사도, 특별한 프로모션도 없었다. 해외 진출이라는 선언도 하지 않았다. 차트가 아닌 플레이리스트였으며 한국에는 모르는 이가 더 많은 뮤지션이다. ‘River’는 다만 스스로 흐르며 그 존재 이유를 증명해 나갈 뿐이다. 양적으로 팽창한 한국음악이 이제는 질적 성장과 음악의 가치를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시점,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글로벌 음원회사들이 한국을 대하는 시선은 이미 변화하고 있다. 스포티파이는 오은하의 ‘River’ 발표 직전부터, 사선, 웅산, 이진아 등 한국의 재즈 뮤지션들을 소개하는 플레이리스트 – Jazzy Korea를 선보이고 있었다. 한국산 음악에 프리미엄을 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애플 뮤직도 ‘서울 음악 차트’를 선보이며 한국을 새롭게 대한다. 오은하가 돋보이는 것은 이 같은 어드밴티지 또한 없이 이뤄낸 성취이기 때문이다.
수없이 쏟아지는 음악 가운데 자연스럽게 선택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 시작이 좋고 예감도 남다르다. ‘River’가 오은하의 첫 싱글이지만 혹 이 곡이 21세기 재즈 스탠다드에 추가될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녀의 새 앨범이 일으킬 파장도 기대된다. 모든 불확실성 가운데 다만 분명한 것은 한 가지다. ‘흐르는 강물처럼’의 마지막 대사를 차용하자면,
‘나는 그녀의 곡, River에 넋을 잃었다. I’m haunted by her River’

– 영화 < 흐르는 강물처럼 >에서 오은하의 ‘River’와 연관된 대사들
Good things, like trout as well as eternal salvation, come by grace.
And grace comes by art. And art does not come easy.
송어나 구원 같은 좋은 것들은 은총을 통해 얻어진다. 은총은 예술을 통해 얻어진다. 예술은 쉽지 않으며 인내를 통해서 얻어진다.
I knew clearly that life is not a work of art. and that the moment could not last.
인생은 영원히 지속될 예술이 아니며, 결국 순간임을 알게 되었다.
Eventually all things merge into one, and a river runs through it.
결국 모든 것은 하나가 되고, 그 가운데 강물 한줄기가 흘러간다.
I’m haunted by the waters.
나는 강물에 넋을 잃었다.
■프로필
TV 전주방송 프로듀서 송의성. TV로는 < 개그를 다큐로 받느냐? >의 그 다큐를, 라디오로는 < 테마뮤직 오디세이 >라는 1인 프로그램을 제작해왔다. 록스타를 꿈꾸던 청춘의 시간은 가고, 요즘은 크로매틱과 방구석 잼으로 여생(?)을 즐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