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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락 ‘채플린 영화처럼 (Feat. 정우)’ (2021)

평가: 2.5/5

캡틴락의 음악에는 사람이 있다. 분명 우리가 듣는 것은 가공을 거쳐 하나의 파형으로 결합된 음원일 테지만, 합주 가운데 가볍게 오가는 익살스러운 애드리브나 배후에서 잔잔하게 목소리를 포개는 신예 정우의 피처링에는 여러 명의 향취와 형상, 그리고 농담이 오가는 작업실 현장과 소무대의 복작복작한 광경이 피사체처럼 담긴다. ‘경록절’ 행사 등으로 인디 신의 교류를 지켜온 캡틴락의 행보는 유대를 낳았다. 낭만이라는 명목하에 순수한 호의로 모인 이들은 고독의 키워드를 가진 코로나 시즌에 대적하는 조화의 장을 만든다.

투박한 리듬 패턴의 어쿠스틱 기타가 무성 영화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재치를 부각하되 기승전결의 개요를 따르는 구성은 찰리 채플린의 원테이크 콩트를 연상케 한다. 뮤직비디오는 적확한 시청각 자료다. 1990년대 크라잉넛의 키치한 지점을 고스란히 담은 ‘채플린 영화처럼’은 소소한 추억과 웃음을 빚는다. 다만 ‘C H A P L I N’의 예스런 표현법과 ‘새빨간 장미’ 등의 상투적인 노랫말은 먼 과거의 유행을 복각하고, 후반부까지 거듭 반복하는 동일 프레이즈는 진부함을 유발한다. 과거에 머무른 작법은 곡의 주체성보다는 크라잉넛의 시대를 함께 향유한 이들의 기억에 호소하는 경향이 있다. 독특한 주제에 정확한 재료지만, 캡틴락의 자유로운 개성과 자원에 비해 그 결과물의 매력이 미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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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2020 경록절 – 마포인디대잔치를 가다

2월 10일 7시 30분, 홍대 앞 무브홀에 먼저 도착한 IZM 장준환 에디터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형님, 앞에 사람이 많지 않은데요? 줄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경록절’에 처음 참여하는 녀석은 아직 크리스마스, 할로윈 데이와 함께 ‘홍대 앞 3대 명절’로 꼽히는 이 날의 시작의 시작도 보지 못한 채로 행사장 입구 이곳저곳의 사진을 찍으며 신기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미소를 입에 머금고 답장을 보냈다.

“들어가 보면 알아.”.

‘캡틴락’ 크라잉넛 한경록의 생일잔치 ‘경록절’이 홍대의 명절로 자리한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소문난 주당이자 입담꾼, 사람을 사랑하는 한경록의 생일날엔 술과 음악, 사람이 모여 밤을 지새웠고, 이것이 해를 거듭하며 규모를 키워오는 모습을 지켜본 누군가에 의해 ‘경록절’이라 명명됐다.

클럽 타, 술집 샤에서의 ‘모임’은 홍대 앞 스탠딩 1,000석 규모 무브홀에서의 ‘행사’로 거듭났고, 현재 유수의 악기 업체와 주류 회사들의 후원 아래 크라잉넛을 비롯한 인디 뮤지션들의 논스톱 공연장으로 그 규모를 확장했다.

홍대 앞 밴드 신을 동경했던 학창 시절 ‘경록절’은 선택받은 자만 참석할 수 있는 ‘최종 단계’로 여겨졌다. 잘 나가는 뮤지션, 성공한 인디 밴드, 매일 유수 팀들의 공연을 따라다니는 열혈 마니아들만이 한경록이 직접 보내는 초대 메시지의 주인공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2015년 에반스라운지에서의 첫 ‘경록절’은 그런 무게감과 거리가 멀었다. 한경록이 준비한 40만 cc의 생맥주와 갤럭시 익스프레스부터 김수철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뮤지션들의 공연은 인산인해를 이뤘고, 즐거웠으며, 무엇보다도 무료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한경록이 쏜다’는 유구한 전통이었다.

올해 ‘경록절’의 규모는 ‘마포인디대잔치’라는 이름만큼 더욱 커졌다. 수제 맥주 탭 기계로 준비한 생맥주 100만 cc, 고량주 300병, 사케 잔 1000개가 무브홀 입구부터 위용을 뽐냈다. ‘아무도 없다’는 밖과 달리 내부는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 이 날의 주인공 한경록이 분주히 손님을 맞이하고 인사를 나누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평소 술을 즐기지 않는 (것으로 가장한) 장준환 에디터는 어느새 맥주 두 캔을 해치웠다. ‘경록절’은 이래야지, 암.

“아직 덜 취한 거 같은데!”. 자축 무대를 위해 올라온 크라잉넛 박윤식의 일갈에 무브홀의 모두가 잔을 높이 들었다. ‘마시자’를 시작으로 지난해 발표한 ‘다음에 잘하자’의 ‘샴페인 풍덩, 테킬라 원샷, 생맥주 마셔, 인생 즐겨’의 합창 아래 장내 분위기는 무아지경으로 빠져들었다.

뒤편에서 흥이 오른 채 무대를 지켜보다 참을 수 없어 맨 앞 슬램 존으로 뛰어들었다. 몸과 몸이 부딪치고 모두 함께 ‘말달리자’를 터질 듯 소리치는 순간이 잊고 있던 로큰롤 열정을 다시금 깨웠다.

이 날 가장 인상 깊었던 모습은 행사의 주연임에도 조연을 자청했던 한경록의 모습이었다. 유수의 유명 뮤지션이 무대를 빛냈던 지난 ‘경록절’과 달리 이 날은 신예 뮤지션들이 대거 등장해 무브홀의 관객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이미 목이 쉰 한경록은 피싱걸스, 더 바이퍼스, 정우, 더사운드, 와우터, 자니스펑크의 무대에 올라 ‘옛날 드럭에서 공연하던 생각이 난다’라 격찬하며 후배들을 격려하고 자리를 양보했다.

“공연 많이 보러 와 주세요!”와 함께 ‘한 곡 더’를 외치며 무대를 함께하는 그의 모습에서 ‘경록절’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됐다. 한때 음악인들로 가득했던 홍대 인디 문화는 상업화로 인해 젠트리피케이션의 가속화로 급속히 해체됐다. 인디 역사와 함께한 클럽들이 문을 닫고 밴드들이 설 무대는 갈수록 줄어든다. 시대의 문법도 록 대신 힙합, 일렉트로닉의 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오랜만에 참전한 ‘경록절’은 아직 그 문화가 사라지지 않았음을, 로큰롤과 ‘캡틴록’의 낭만이 살아 숨쉬고 있음을 증명하는 자리였다. 베테랑 뮤지션의 생일잔치가 이제 팬들에겐 하나의 축제로, 어려운 환경에서도 악기를 잡고 노래를 부르는 인디 뮤지션들에겐 흔치 않은 기회로, 문화 관계자들에겐 한데 모여 생존과 아이디어를 교류하는 구심점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나날이 삭막해지는 시대에 아랑곳 않고 술과 음식, 음악과 무대를 아낌없이 베푸는 한경록의 모습이 한 명의 ‘인생 선배’로 더욱 멋져 보였음은 물론이다.

‘경록절’과 술에 흠뻑 취한 후배를 데리고 무브홀을 나왔다. 입구에 들어설 때만 해도 신기하다는 표정을 짓던 그는 “형, 진짜 재밌어요. 이런 자리인 줄 몰랐어요!”라며 여흥을 즐기고 있었다. 다음엔 록 페스티벌도 들러보고, 홍대 앞 공연도 더 많이 가 볼 생각이라고 했다.

한경록이 있음에, ‘경록절’이 있음에 감사하다. 생일 축하합니다. 락앤롤!

사진 = 박규성
제공 = 캡틴락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