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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승근의 하나씩 하나씩 Feature

헤비메탈로 춤을 추게 만든 밴 헤일런

현지 시각 2020년 10월 6일 밴드 밴 헤일런(Van Halen)의 기타리스트 에디 밴 헤일런이 향년 65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IZM은 기타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고인을 추모하며 과거 업로드 되었던 특집을 모바일 페이지로 공개하고자 합니다. 두번째 글은 2013년 1월 IZM 소승근 대표가 기고한 ‘헤비메탈로 춤을 추게 만든 밴 헤일런입니다.

“뭐? 헤비메탈에 춤을 춰?”

열혈 메탈 팬들은 이 제목이 매우 거북할 겁니다. 하지만 1980년대에는 정말로 젊은이들이 팝 메탈에 맞춰 열정을 불태웠고 그와 함께 발을 비벼대던 신발에는 구멍이 뚫렸죠. 그 이전인 1970년대에는 고고장에서 딥 퍼플의 ‘Highway star’와 ‘Smoke on the water’에 몸을 맡긴 적도 있었거든요.

1980년대에 폭발한 팝 메탈의 씨를 뿌린 밴드가 밴 헤일런입니다. 이들의 명성은 시간이 흐를수록 태핑이라는 기타 주법으로만 수렴되는 경향이 있지만 밴 헤일런은 육중했던 헤비메탈의 무게를 가볍게 줄여 대중성을 취득한 일등공신이죠. 물론 당시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밴 헤일런은 대중음악 그룹입니다. 미국에서만 5,600만장, 전 세계적으로 8,600만장의 앨범 판매고를 기록하고 빌보드 록 차트에서 가장 많은 넘버원을 배출한 밴 헤일런은 2007년에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올랐죠.

이번 하나씩 하나씩에서는 미국 록 밴드 중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밴 헤일런의 핵심적인 노래들을 소개해 드릴까합니다.

You really got me

영국 밴드 킹크스가 1964년에 발표한 이 원곡을 자신들의 데뷔 싱글로 선택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많은 음악 관계자들이 최초의 헤비 기타 리프로 꼽는 ‘You really got me’를 내세워 자신들의 음악적인 뿌리를 대중들에게 확실하게 각인시키기 위해서죠. 이 곡을 만든 킹크스의 레이 데이비스는 밴 헤일런의 버전을 더 좋아했다고 밝혀서 화제가 됐습니다.

Eruption

1분 40초짜리 이 연주곡은 지미 헨드릭스 이후, 기타 연주의 틀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이 음악은 태핑 주법으로 유명한데요. 사실 이 태핑은 원래 바이올린에서 시작된 연주법이죠. 이것을 기타로 도입한 것은 1960년대 후반 재즈 기타리스트들과 아트록 밴드 제네시스의 기타리스트 스티브 하켓이었는데 에드워드 밴 헤일런은 이 태핑을 양손으로 연주해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라이트 핸드 주법이라고도 하죠.

드러머 카마인 어피스가 이끌었던 록 밴드 캑터스가 1970년에 발표한 ‘Let me swim’의 도입부를 차용한 ‘Eruption’은 에드워드 밴 헤일런이 공연 전, 리허설 할 때 손가락을 풀기 위해서 연습하던 곡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녹음하고 싶지 않았지만 프로듀서 테드 템플만의 주장으로 음반에 수록됐죠. 미국의 기타 전문지 < 기타 월드 >에서 집계한 ‘위대한 기타 솔로곡 100’에서 2위를 차지했고, < 롤링 스톤 >지에서 선정한 ‘위대한 기타 트랙 100’에선 6위를 차지했습니다.

Running with the devil

1978년에 공개한 데뷔앨범의 1번 트랙입니다. 밴 헤일런을 발굴하고 도움을 준 하드 록 밴드 키스의 보컬리스트 진 시몬스의 아이디어로 자동차 경적 소리를 인트로에 삽입한 이 곡의 제목은 ‘Love rollercoaster’로 인기를 얻은 흑인 펑크(funk) 밴드 오하이오 플레이어스의 ‘Running from the devil’에서 착안했습니다. 빌보드 싱글차트에선 84위까지 밖에 오르지 못했지만 데이비드 리 로스의 사포처럼 거친 보컬과 정중동을 지키는 마이클 앤소니의 탄탄한 베이스와 알렉스 밴 헤일런의 드럼 그리고 날카로움을 갖춘 에디 밴 헤일런의 칼날 같은 기타는 그들의 정체성을 확립했습니다.

Dance the night away

제목처럼 이 노래는 댄스곡이라고 해도 별 무리가 없을 정도로 흥겨운 리듬감을 놓치지 않습니다. 대단히 팝적이어서 그랬는지 에디 밴 헤일런은 이 곡을 만들어 놓고도 음반에 싣고 싶지 않았지만 상업적인 결과물을 기다린 음반사의 요구로 2집에 수록했죠. 플리트우드 맥의 ‘Go your own way’에서 영감을 받은 이 노래의 원래 제목은 ‘Dance, lolita, dance’였다고 합니다.

Jump

삶을 비관한 남자가 빌딩 옥상에 서 있는데 옆에 있는 사람이 그를 설득하지 않고 “Jump, go ahead jump!”라고 말한다면 자살방조죄죠? 밴 헤일런의 ‘Jump’는 바로 이런 노래입니다. 긍정적인 의미의 점프가 절대 아니죠. 1980년대 팝 메탈의 시작을 알린 이 곡에서 그 유명한 건반 연주는 에디 밴 헤일런이 직접 했는데요. 어렸을 때 피아노를 배운 것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사실 밴 헤일런은 그 이전 노래들에서도 신시사이저를 도입했지만 ‘Jump’가 건반 연주를 강조했기 때문에 당시 많은 팬들이 실망했는데요. 에디 밴 헤일런이 홀 & 오츠의 대릴 홀에게 전화를 걸어서 ‘Kiss on my list’의 건반 연주를 사용해도 되겠냐고 양해를 구해 허락을 받고 탄생한 노래입니다.

Why can’t this be love

1985년에 보컬리스트 데이비드 리 로스가 솔로활동을 위해 밴드를 탈퇴하자 밴 헤일런은 1970년대부터 활동한 싱어송라이터 새미 해거를 영입합니다. 기타리스트이자 작곡에도 실력을 갖추고 있는 그의 가세로 밴 헤일런의 음악은 한층 더 뚜렷한 멜로디와 힘이 넘치는 보컬을 장착했는데요. 1986년에 빌보드 3위에 오른 ‘Why can’t this be love’는 바로 이 두 가지를 증명하는 시작점에 있는 노래죠.

When it’s love

1988년에 공개한 8번째 앨범에 대해 사람들은 ‘도대체 이건 또 무슨 뜻이야?’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Oh, you ate one too!”를 발음되는 대로 적은 이 문장의 뜻은 ‘오! 너도 한 방 먹었네’ 정도 되겠죠. 음반의 첫 싱글로 전미 차트 5위에 랭크된 ‘When it’s love’는 에디와 알렉스 형제가 건반과 드럼으로 먼저 곡 구조를 만든 다음에 새미 해거가 그 위에 멜로디와 가사를 붙여 탄생하게 된 곡입니다.

Right now

밴 헤일런은 1991년에도 말장난을 이어갑니다. 9집은 < For Unlawful Carnal Knowledge >라는 타이틀로 발표했는데요. 이걸 해석하려고 문법 지식을 동원할 필요는 없습니다. 각 단어의 이니셜을 따면 모든 지구인들이 다 아는 하나의 낱말이 되거든요. 이 음반에서 세 번째로 커트한 싱글은 ‘Right now’인데요.

사실 밴 헤일런은 파티, 술, 담배, 여자, 자동차 같은 남자들의 로망을 대변하는 노래들을 많이 불렀죠. 그런데 새미 해거는 ‘Right now’를 공개하면서 “우리는 싸구려 섹스 노래에 질렸다. 에디와 나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곡을 만들고 싶었다”라고 밝혔습니다. 긍정의 힘을 설파한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는 내용에 맞게 대단히 공익광고스러운 스타일로 제작됐는데요. 그해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 건스 앤 로지스의 ‘November rain’을 제치고 올해의 뮤직비디오를 수상합니다.

Can’t stop lovin’ you

샴쌍둥이를 표지로 내건 1995년도 앨범 < Balance >는 밴 헤일런의 전성기에 마침표를 찍은 음반입니다. 여기선 빌보드 30위까지 밖에 오르지 못했지만 국내에선 유독 사랑받은 ‘Can’t stop lovin’ you’가 수록돼 있죠. 이 곡은 에디 밴 헤일런이 ‘I can’t stop loving you’를 부른 레이 찰스를 존경해서 그에게 바치는 의미로 제목을 비슷하게 정했는데요.

이 ‘I can’t stop loving you’는 원래 돈 깁슨이라는 컨트리 가수가 1958년에 발표한 오리지널을 레이 찰스가 리메이크한 겁니다. ‘Can’t stop lovin’ you’는 멤버들 간의 사랑과 우정에 대한 노래라고 밝혔습니다. 에디와 알렉스 밴 헤일런, 안소니 마이클은 얼마 후에 새미 해거를 해고하고 그룹 익스트림의 보컬리스트였던 개리 셰론을 3대 보컬리스트로 맞이해서 1998년에 < Van Halen Ⅲ >를 발표했죠.

[유병열의 기타리스트 열전]
Van Halen의 에디 밴 헤일런(Eddie Van Hal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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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열의 기타리스트 열전] Van Halen의 에디 밴 헤일런(Eddie Van Halen)

현지 시각 2020년 10월 6일 밴드 밴 헤일런(Van Halen)의 기타리스트 에디 밴 헤일런이 향년 65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IZM은 기타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고인을 추모하며 과거 업로드 되었던 특집을 모바일 페이지로 공개하고자 합니다. 첫번째 글은 2010년 6월 기타리스트 유병열 씨가 IZM에 ‘유병열의 기타리스트 열전’ 코너에 기고한 ‘Van Halen의 에디 밴 헤일런(Eddie Van Halen)’입니다.

Eddie Van Halen Recalls '1984' Battles With Producer

에디 밴 헤일런(Eddie Van Halen)은 1980년대 초반 내가 막 일렉 기타에 막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서울 혜화동 로터리 소재의 < MTV >라는 음악카페에서 라이브 영상으로 처음 만났다. 당시 첫 느낌은 “어떻게 기타를 저렇게 칠 수가 있지?”라는 생각뿐이었다. 혀를 내두르게 하는 신기(神技)의 플레이였던 것이다.

1955년생인 에디 밴 헤일런은 친형인 드러머 알렉스(Alex) 밴 헤일런과 주축이 되어 밴드 명을 자신들의 성인 밴 헤일런으로 내걸고 본격적인 음악을 시작한다. 그는 네덜란드 출신으로서 어렸을 때부터 부모로부터 클래식 교육을 혹독하게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간 두 형제는 1972년 캘리포니아 주 파사데나에서 밴드를 조직해 동네 파티 등의 행사를 다니며 아마추어 클럽 밴드로서 10대 시절을 보낸다.

그러다가 1976년 우연하게도 할리우드 클럽의 공연을 본 전설의 밴드 키스(Kiss)의 진 시몬스(Gene Simmons)에게 발탁되어 데모 테이프를 만들게 되고 ‘워너 뮤직’에 의해 1978년 세상에 첫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당시 밴 헤일런의 등장은 음악계에 하나의 매머드 쇼크였고 유수의 록 평론가들은 에디 밴 헤일런을 ‘지미 헨드릭스 이후에 가장 혁신적인 기타리스트’로 평가했다. 나 개인적으로도 기타 연주 방법론의 혁신이라는 측면에서 역사에서 에디 밴 헤일런의 높이에 오를 자가 없다고 단언한다.

그는 각종 기타 플레이어 부문상을 싹쓸이 하다시피 했다. 음악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았을 뿐 아니라 상업적으로도 크게 성공하여 1984년에 발표한 앨범 <1984>에 수록된 곡 ‘Jump’는 록 밴드로서는 드물게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오르는 흥행대박을 터뜨렸다. 이후에도 대중적인 성공 행진은 멈추질 않았다. 원년 멤버인 보컬 데이비드 리 로스(David Lee Roth)가 탈퇴하고 새로운 보컬 새미 헤이거(Sammy Hager)를 교체하는 진통 속에서 발표한 앨범 < 5150 >(1986년)도 엄청난 성공을 지속해 밴드의 상징인 보컬이 바뀌면 망한다는 징크스를 깨기도 했다. 팬들이 ‘밴 헤일런에 에디 밴 헤일런이 있으면 문제가 없다’고 간주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실로 밴 헤일런에 없어서 안 될 핵 중의 핵인 인물로 새로운 기타 테크닉 시대를 열어준 인물이다. 그의 플레이는 온통 실험성으로 가득했고 기타로 낼 수 없는 소리에 도전했으며 결국을 그것을 일궈내 자신의 스타일을 확립했다. 많은 기타지망생들을 미치게 한 그의 트레이드마크 플레이는 말할 것도 없이 라이트핸드 주법(피크를 쓰지 않고 양손 해머링, 플링을 이용한 속주 플레이)과 태핑(Tapping, 오른손으로 기타 플랫을 때려서 내는 옥타브 음)에 의한 하모닉스주법이다. 이것은 그냥 연주기법이 아니라 역사적 위업이라고 난 감히 단정하고자 한다.

Eddie Van Halen's 20 Greatest Solos - Rolling Stone

또한 당시엔 비브라토 성으로서만 사용된 트레몰로 아밍(Arming) 주법의 틀을 깬 그만의 아밍 주법 또한 빼놓을 수 없다. 현재도 많은 기타리스트들은 하이테크닉 교본과도 같은 플레이로 그의 주법을 공부한다. 가히 기념비라고 할 데뷔 앨범의 연주곡 ‘Eruption’을 들어보면 라이트핸드 주법과 아밍 주법이 불을 뿜는다. 특히 후반부는 사람들을 몰아지경으로 이끄는 경이의 순간을 선사한다.

스케일은 펜타토닉(반음을 제외한 5개 음) 스케일과 반음을 이용한 블루 노트 스케일 그리고 도리안(3도와 7도가 플랫 된 음) 스케일 또한 즐겨 쓴다. (도리안 음계는 클래식적이면서도 영화음악 느낌의 선율이 가능해서 프로그레시브 스타일에 많이 쓰인다) 이것은 어쩌면 그가 네델란드라는 유럽 태생이라서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러한 스케일의 활용도 중요하지만 결국엔 즉흥성과 독자적인 맛을 내기위해 불협화음적인 요소를 두려워하지 않고 아밍 주법에 의해 곡의 순차적인 뻔한 진행의 틀을 바꿔 놓기도 한다. 편곡 시 기타 리프(곡 반주의 굵은 뼈대)를 만드는 기술과 아이디어도 빼어나다는 점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당시 유행했던 메탈적인 파워코드 리프보다는 아르페지오 성 리프들과 누구나 들어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팝적인 리프들의 짜임새는 그가 최고의 기타리스트로 발돋움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두말할 것 없이 먼저 마이클 잭슨의 ‘Beat it’ 초반부를 들어보라.

Subt Rock on Twitter: "Happy Birthday Eddie Van Halen. #runningwiththedevil  #eruption #unchained #ainttalkinboutlove #atomicpunk #littledreamer  #andthecradlewillrock #beautifulgirls #panama #jump #hotforteacher  #vanhalen #evh #eddievanhalen #subtrock ...

리듬감 또한 훌륭해서 리프 연주 시 뿐만 아니라 솔로 연주할 때에도 엄청난 그루브 감이 살아있고 다이내믹함을 느낄 수 있다. 보통 당시의 록 기타리스트들은 마디에 충실한 스타일인 반면 에디의 스타일은 리듬을 끌고 가는 연주 즉 싱커페이션(전 마디 박자를 물고 들어가는)과 엇박(정박을 비껴나가는)에 의한 밀고 댕기는 듯한 거침없는 연주 또한 탁월하다.

기타 볼륨과 딜레이를 이용한 볼륨 주법 또한 획기적인 테크닉이었다. 왼손으로 지판을 때리고 오른손으로 볼륨을 올리면 어택이 늦게 따라 나오면서 마치 신디사이저 같은 소리가 만들어지는 이 테크닉 역시 기타리스트들의 혼을 뺐다. 기타 톤(소리) 또한 당시의 거칠고 헤비한 톤이 아닌 부드러우면서도 팝적인 톤으로, 기타 이펙터의 활용도 다채로운(다시 말해 이펙터를 넓게 사용할 줄 아는) 기타리스트이기도 하다.

그의 플레이는 마치 기타를 떡 주무르듯 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기타를 가지고 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지금은 보편화되었지만 당시로서는 엄두도 못 낼 엄청난 플레이였고 상기한 것처럼 마이클 잭슨의 ‘Beat it’에서의 명 리프와 기타솔로 하나만으로 팬들을 충격의 도가니에 빠지게 했다. 기타를 과격하게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곡에 충실한 해석력을 가진 멀티 플레이어로 신디사이저를 직접치기도하고 결국에는 밴 헤일런 스타일의 신디사이저 페턴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실제로 이후 팝계에선 밴 헤일런 스타일의 신디사이저 소리가 많이 쓰였다)

Rocker Eddie Van Halen, Battling Cancer, Celebrates Birthday with First  Posted Photo Since the Summer | SurvivorNet

아메리칸 하드록 밴드라고 정리하기엔 너무도 다양한 스타일을 구사하는 에디 밴 헤일런은 기타리스트로서 뿐만 아니라 뮤지션으로도 만능이라는 생각이 든다. 제2의 록 씬에 새로운 스타일의 지표를 열어준 기타리스트, 엄청나게 테크니컬 하지만 선율의 중요성을 살릴 줄 아는 기타리스트, 편안한 무대 의상에 스텝을 밞아가며 점프를 즐겨하고 늘 웃는 얼굴로 하이 테크닉을 편하게 연주하는 기타리스트가 에디 밴 헤일런이다.

암 투병을 하면서 힘겹기도 했었지만 그는 여전히 최고 록 기타연주자로 추앙받고 존경받는다. 나부터 존경의 염은 깊다. 적어도 지미 헨드릭스 이후 ‘기타연주의 혁신’이란 말은 누구도 아닌 오로지 그에게만 붙여야 할 수식 아닐까. 그는 그것으로 명성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역사를 창조했다.

헤비메탈로 춤을 추게 만든 밴 헤일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