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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IZM 연말 결산 특집 Feature

2020 올해의 팝 앨범

누구도 벗어날 수 없었던 ‘쿼런틴’ 시대의 기록을 단 열 장으로 정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음악 산업은 호황을 달리며 전에 겪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전시했으나 그 와중 창작가들에게는 더없이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짜야 하는 시기, 그 중에도 한 해를 장식할 작품은 있었다. IZM 선정 2020년을 대표할 팝 앨범 10장을 소개한다. 글의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위켄드(The Weeknd) < After Hours >

상처 입은 아티스트의 자기혐오가 만들어낸 이토록 아름다운 공간. 반복된 이별과 결합의 과정 후 광기에 빠진 슈퍼스타는 처절했다. 자기 자신을 비난하며 행한 채찍질은 스스로를 난도질했고 세월을 거쳐 깊게 팬 내면을 마주한 위켄드는 외면하고 있던 고독을 숨기지 않고 세상에 드러내길 마음먹는다. 80년대를 지나 현대, 그리고 장르가 나아갈 방향까지. 시간 제약 없이 음악으로만 귀결되는 열네 개의 수록곡은 개인적 서사의 점을 이어가며 거대한 별자리를 만들어낸다. 성좌의 이름은 < After Hours >, 길에 남을 이야기의 시작이다.

대중과 평단을 모두 잡았다. 유독 디스코의 재현이 돋보이는 한 해였다. 위켄드는 그 중심에 설 뿐만 아니라 신스팝, PB R&B 등 과거 문법부터 트렌디했던 자신의 음악을 모두 집대성하며 흐름을 집중시켰다. ‘Heartless’, ‘Blinding lights’로 이어지는 싱글의 성공과 빌보드 앨범 차트 4주 연속 1위 등의 성과와 함께 각종 음악 매체에 호평을 이끈 < After Hours >는 예술과 상업성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고 대중예술의 근간을 명확하게 실현해냈다. 분명한 건 올해의 앨범에 거론되기 충분한 자격을 갖췄다는 것, 그 근거가 무수히 많은 청자의 지지에 기반을 둔다는 점이다. (손기호)


두아 리파(Dua Lipa)
< Future Nostalgia >

“I wanna change the game(난 이 판을 뒤바꾸고 싶어).” 이보다 더 간결하게 올해의 두아 리파를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Future Nostalgia’의 한 줄은 암울한 2020년을 디스코 댄스 플로어로 건설한 도화선이며, 바람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 선언으로 다시금 명명됐다. ‘Future(미래)’와 ‘Nostalgia(향수)’라는 이질적인 단어의 조합을 엔진 삼아 레트로-펑크 리듬으로 속도를 올리는 가운데, 운전대를 잡은 그의 모습은 여유롭기만 하다.

전초전과 같은 ‘Don’t start now’와 복고를 노골적으로 표방한 ‘Physical’, ‘Break my heart’ 그리고 여성 무브먼트를 담은 ‘Boys will be boys’까지. 침체된 일상을 환기하는 사운드에 자신의 스탠스를 가미한 앨범이 트로피를 거머쥐지 못할 이유가 없다. 무엇보다 마돈나의 디스코 클럽, 올리비아 뉴튼 존의 신스웨이브가 익숙한 세대와 이제 막 뉴트로를 접한 세대 간의 대통합을 이뤄내지 않았는가. (임선희)


맥 밀러(Mac Miller) < Circles >

“At least it don’t gotta be no more
(그러니까 지금은 잠시만 쉴게)

‘Good news’의 마지막 소절과 달리 그의 삶은 영원한 안식을 찾아 떠났다. 시작점과 끝점이 같아 한 바퀴를 돌면 만날 수밖에 없는 원의 굴레는 삶에 대해 고뇌하고 번민하며 이를 음악에 녹여낸 맥 밀러의 삶과 꼭 닮았다. 사랑 속에 피어나는 절망, 마약에 갇혔다는 비관 속에서도 끝끝내 자신이 살아남길 바랐던 인간의 모순된 감정은 그가 죽고 나서야 더 깊게 아로새겨진다. 약물 중독이라는 영광스럽지 못한 죽음 앞에서도 우리가 그를 따뜻하게 기억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 Swimming >의 2부작으로 예정되어 있던 < Circles >는 사후 앨범임에도 그 완성도가 훌륭해 그의 음악을 다시는 들을 수 없다는 비통함을 남긴다. 동시에 갑자기 막을 내린 짧은 생이 결코 미완성이 아님을, 찬란한 유작임을 증명한다. 잔잔한 기타와 낮게 읊조리는 베이스 연주의 ‘Circles’, 편안한 멜로디와 사운드를 가진 ‘Good news’로 삶의 날카로움을 매만진다. 부드러운 타원의 곡선을 따라 때로는 미끄러지고, 때로는 자유로이 유영했던 맥 밀러. 죽음은 그를 데려갔지만, 우리에게는 < Circles >가 남았다. (조지현)


피오나 애플 (Fiona Apple)
< Fetch The Bolt Cutters >

재즈의 즉흥성을 표방하는 듯한 온갖 변칙적인 박자와 과감한 타법, 그리고 부드럽고 탁한 질료가 한데 어우러지며 또 한 번의 새로운 파형을 만들어낸다. 홈레코딩이라는 작업 환경 가운데 집안 가구와 일상의 소음은 악기의 일부가 되곤 한다. 이는 시대가 상정해온 관념으로 단단히 틀어막힌 철문을 딸 ‘볼트 커터’를 가져오라 요청하는, < Fetch The Bolt Cutters >의 단상이다. 피오나 애플은 묶이지 않는 리듬 아래 요란하게 춤을 추고, 기억의 파편과 꾸밈없는 어투로 발화(發話)한다.

확실히 쉬운 음악은 아니다. 앨범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흡수하기 위해서는 꽤 많은 시간과 준비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다만 < Fetch The Bolt Cutters >는 평단이 이 작품에 보낸 찬사와 박수갈채가 무색하지 않게, 당신에게 틀을 깨부수는 해방감, 그리고 전투적인 행진에 동참하고 있다는 고양감을 선사할 것이다. 자, 이제 문을 열고 본연의 소리를 통해 당당히 차별에 맞서 대항한 이 개척자의 기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가. (장준환)


하임(HAIM)
< Women In Music Pt. III >

플리트우드 맥이 소셜 미디어의 꿈결(‘Dreams’)을 타고 주류 차트에 돌아온 2020년. 과거 위대한 선배들의 유산과 경쟁해야 하는 현 음악계는 하임과 같은 온고지신(溫故知新) 장인들의 활약을 통해 레트로의 무차별 침공을 버텨낼 수 있었다. 이 캘리포니아 출신 가족 밴드는 레트로의 간섭을 숨기지 않음과 동시에 이를 현대적으로 변용하여 우리의 삶에 적용할 줄 아는데 그것이 아주 탁월하다.  

직관적이고 선명한 팝 록 넘버로 가득한 < Women In Music Pt. III >는 이들이 우리 시대의 플리트우드 맥으로 굳건히 서 있음을 알린다. 그 바탕에는 프로듀서 로스탐의 도움과 세 자매의 탁월한 연주 및 송라이팅이 있고, 주된 문법은 현대 여성의 주체적인 메시지와 고민, 사랑과 자매애로 대체된다. 크리스틴 맥비, 스티비 닉스가 열렬히 환영할 하임은 이 한 장으로 2020년대를 이끌 밴드 대열에 확실히 합류했다. (김도헌) 


찰리 XCX (Charli XCX)
< how i’m feeling now >

찰리 XCX가 ‘쿼런틴 앨범’(quarantine album)으로 공고히 한 음악적 정체성은 올해 다른 뮤지션들이 보여준 모습과는 지향점이 확연하게 다르다. 디스코와 레트로가 지배한 2020년의 음악계에서 그는 팝의 작법으로 미래의 사운드를 주조했다. < how i’m feeling now >는 ‘하이퍼팝’(hyperpop) 장르의 마일스톤이다.

아이코나 팝(Icona Pop), 셀레나 고메즈, 숀 멘데스(Shawn Mendes)등 영미권 팝스타는 물론이고 투모로우바이투게더, 트와이스 등 케이팝 그룹에게도 곡을 제공하며 증명한 팝 작곡 능력이 빛을 발한다. 고장 난 기계 소리를 닮은 글리치(glitch)의 요소가 연출하는 공포감은 찰리 XCX의 탁월한 대중적 감각을 만나 고혹스럽게 탈바꿈한다. 앨범을 채우는 찢어질 듯한 신시사이저 소리에는 디지털 시대 하위문화의 한 축을 담당하는 사이버펑크 특유의 쇠 비린내가 진하다. 찰리 XCX는 그런 소수의 문화를 다수가 향유할 수 있는 형태로 다듬어 끌어올렸다. 2020년에 바라본 팝의 미래가 이 앨범에 담겨있다. (황인호)


피비 브리저스 (Phoebe Bridgers)
< Punisher >

1994년생 미국 싱어송라이터 피비 브리저스(Phoebe Bridgers)는 소중한 경험들을 광활한 내면의 바다로 던져 넣는다. 엘리엇 스미스의 음악, 기르던 강아지를 떠나보낸 순간, 혹은 즐겨 듣던 코미디 팟캐스트와 시끌벅적한 할로윈의 기억까지. 3년간 숨가쁘게 거쳐온 여러 프로젝트 그룹과 다양한 아티스트와의 협업 또한 예외는 없다. 넘실거리는 감정의 바다로 떨어진 영감들은 심연으로 가라앉고, 이내 바다의 일부가 되어 파고의 세밀한 주름 속으로 녹아들기 시작한다. 

균일한 수평선 아래 여러 단면이 생생히 살아숨쉰다. 애수를 머금은 기타 선율에서 기성의 먼지 쌓인 문체가, 진솔한 노랫말에서는 아이의 순수한 시선이 떠오른다. 피비는 본인을 ‘열성팬’, 혹은 ‘카피캣’ 같은 아마추어스러운 별명으로 소개하지만, 완급에 따라 섬세하게 배치된 세션과 일관된 가공으로 프로의 역량을 여실히 증명하기도 한다. < Punisher >는 한 명의 생애를 다룬 깊고 따뜻한 수필이자, 포크의 세대 교차가 이뤄지는 광경이 된다. 명실상부한 올해 인디 포크계의 신성. (장준환)


배드 버니 (Bad Bunny)
< YHLQMDLG >

2020년 스포티파이 기준 올 한 해 가장 많이 스트리밍 된 아티스트는 배드 버니다. 전 세계에서 83억 회 이상 그의 음악이 재생됐다. 그럼 올해 가장 많이 스트리밍 된 앨범은? 역시 배드 버니다. 33억 번이나 청취된 < YHLQMDLG >는 ‘Despacito’ 열풍으로 폭발한 레게톤 열풍이 팝 시장에 꾸준히 균열을 내며 새로운 뉴 노멀로 자리 잡았음을 선언했다. 케이팝 열풍과도 일맥상통하는 얼터너티브의 흐름이다. 하지만 단순히 인기가 많다고 올해의 한 자리를 내줄 수는 없다. 

앨범은 제목 그대로 ‘하고 싶은 대로(Yo hago lo que me da la gana)’ 모든 것을 다 쏟아낸 작품이다. 긁어내는 보컬부터 유연한 랩까지 팔방미인의 퍼포먼스를 오색찬연 레게톤, 알앤비, 어두운 트랩과 밝은 신스 터치로 그려낸다. ‘The girl from ipanema’를 가져온 ‘Si veo a tu mama’는 천연덕스럽고 ‘Safaera’의 변화무쌍함은 레게톤의 교향곡과 같다. 황홀한 신세계로의 급행열차 같은 이 작품으로 배드 버니는 2020년대 ‘라티노 인베이전’의 역사에 영원히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김도헌)


팝 스모크 (Pop Smoke)
< Shoot For The Stars, Aim For The Moon >

시카고의 트랩 신이 거칠고 어두워지며 나온 드릴 뮤직이 영국에 이어 브루클린에 자리 잡았다. 이 장르의 새 얼굴로 뉴욕을 접수한 팝 스모크는 팝스타의 영광을 앞에 두고 2020년 2월 20살의 나이에 하늘의 별로 떠났다. 그렇게 첫 정규 앨범 < Shoot For The Stars, Aim For The Moon >은 유일한 정규 작품으로 남았고 그의 깊은 영감은 드릴 신을 넘어 세계로 향했다. 팝 스모크의 안타까운 죽음은 그의 노래를 더욱 특별한 이미지로 만들었지만, 마지막 발자국이 무의미함 속에 잊히지 않고 추억할 기회가 생겼다는 점에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돈 자랑과 허세 짙은 가사가 음악을 지배하는 것과 달리 그는 세상에 선한 에너지를 남겼다. 거리를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건전한 삶을 위해 동기를 부여했고, 사후에는 팝 스모크의 뜻을 기리며 ‘Shoot for the stars’ 재단을 설립했다. 음악적인 관련이 없음에도 그의 ’Dior’이 BLM의 저항 송가 중 하나로 불렸다는 사실 또한 생전에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말해준다. 시작은 반이고, 남은 반은 우리가 그의 음성을 들으며 채워갈 것이다. (임동엽)


퍼퓸 지니어스 (Perfume Genius)
< Set My Heart On Fire Immediately >

이 음반은 아름다움의 기준을 어쩌면 벗어난다. 잘 보이고 잘 만질 수 있는 것을 통해 ‘미(美)’를 발견한다고 했을 때 작품은 분명 어긋난다. 선율을 잡아내는 것이 어렵다. 또 때로는 기이하게 늘어지고 때로는 힘을 움켜쥐고 부르는 보컬에 숨이 막히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결국 아름다움에 닿는다. 그리스계 미국인으로서 겪은 소수자의 피로함과 커밍아웃을 통해 받은 세상의 멸시가 배경이 됐다. 거친 디스토션을 쓸망정 결코 날카롭게 사운드를 밀어붙이지 않는 그의 작법 속에서 빛나는 섬세함이 느껴진다. 쉬이 그려내기 어려운 아픔을 그림 그리듯 음결을 채색하며 만들어냈다. 한없이 기괴하고 한없이 아름다운 음반.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게 하는 근사한 파운드 푸티지와 다름없다. (박수진) 


2020 올해의 가요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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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특별 기획 ‘미국’] 5. Intersectionality: 여러겹의 정체성이 교차하는 음악

억압받는 약자에 대한 담론 중에서 페미니즘은 오늘의 대중에게 가장 익숙한 단어 중 하나다. 그 의미나 정의에 대한 합의는 요원하지만, 일단 사람의 경험이나 정체성을 읽어낼 때 성별에 더 무게를 두고 해석하는 담론은 널리 퍼져있다. 뮤지션들 역시 자아를 음악에 담아내기에, 이들의 작품과 페르소나를 이해할 때도 페미니즘은 유용한 인식의 틀을 제공한다. 그러나 사람의 정체성은 입체적이기에, 성별이라는 단일차원에서 바라보면 반드시 놓치는 부분이 생긴다. 정체성의 상호교차성(intersectionality)을 이해하면, 음악에 담긴 이야기들과 이를 둘러싼 논란들의 맥락이 보다 명료하게 드러난다.

미투 운동이 세상을 휩쓴 후, ‘페미니스트 뮤지션’의 브랜드를 획득한 인물들이 몇 명 있다. 타임지가 미투 운동을 조명해 ‘침묵을 깬 사람들’을 2017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을 때 표지에 얼굴을 올린 테일러 스위프트가 그중 하나다. 2013년 MTV 비디오 뮤직 어워즈(VMA) 무대에서 로빈 시크(Robin Thicke)와의 무대에서 파격적인 트월킹을 선보이며 전통적인 여성상에 대한 반론을 내놓은 마일리 사이러스 역시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열렬한 페미니스트’라고 인터뷰했다.

팝스타의 반열이 아니더라도, 피오나 애플(Fiona Apple)은 8년 만에 내놓은 새 앨범 < Fetch The Bolt Cutters >에서 모두 ‘절단기를 들고 와’서 직접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라는 메시지를 보내 평단의 사랑을 받았다. 라나 델 레이(Lana Del Rey)는 2019년 발매한 후 그 내용이 ‘부드러운 페미니즘'(soft feminism)의 필요성을 강조한다고 말해 논란에 불을 지폈다.

어떤 사람이나 발언이 ‘페미니스트’인지에 대한 대략적인 이미지는 이미 대중문화 속에 퍼져있다. 예컨대 자신의 욕망과 생각을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걸크러쉬’에서 조금 진화한 여성의 모습이다. 테일러 스위프트, 마일리 사이러스, 피오나 애플, 라나 델 레이 같은 뮤지션들이 페미니스트 아이콘으로 조명받는 이유 역시 이들이 그 이미지에 잘 들어맞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들은 여성성 이외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모두 포크 음악과 관련 있는 백인이라는 점이다.

이들 여성의 목소리가 의미 없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이들이 모든 여성을 대표하는 것으로 일반화하기엔 너무 많은 맥락이 지워진다. 예를 들어, 마일리 사이러스가 트월킹을 하면서 내놓은 ‘얌전하지 않은 여성’의 이미지는, 영미권에서 백인 여성들이 항상 가정적이고 수동적인 역할을 강요받아온 역사의 연장선이다. 반면 이세벨 스테레오타입(Jezebel stereotype), 옐로우 피버(yellow fever) 등의 시선으로 언제나 극한의 성적 대상화를 당해온 흑인이나 동양계 여성의 경험을 마일리 사이러스가 제대로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라나 델 레이가 ‘부드러운 페미니즘’을 옹호했을 때 논란이 일어난 것 역시 그가 이런 맥락을 무시하는듯한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 Norman Fucking Rockwell! >이 학대를 미화한다는 비판에 대해 그는 비욘세, 도자 캣(Doja Cat), 카밀라 카베요 등 유색인종 뮤지션들을 언급하며 이들이 ‘섹시’를 앞세워 차트 1위를 했고, 자신도 13년간 여성의 입장에 대해 노래해 왔는데 왜 자기만 욕을 먹어야 하냐는 반응이었다. 정체성의 상호교차성(intersectionality)에 대해 무감각한 언사다.

상호교차성(intersectionality)은 사실 법조계에서 처음 사용된 단어다. 그 계기는 1976년 자동차 제조사 제너럴 모터스(GM)가 흑인 여성에게 채용상 불이익을 준 일인데, 흑인에 대한 차별 금지법도, 여성에 대한 차별 금지법도 이를 막을 만한 근거가 되지 못했다. GM이 흑인 남성과 백인 여성을 채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차별을 바라볼 때 모든 흑인, 모든 여성이 그룹별로 같은 방식으로 차별받는다고 생각한다면, 흑인 여성을 포함한 유색인종 여성의 경험들은 지워질 수밖에 없다. 형태주의에서 말하는, 전체는 그 부분의 합 이상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백 명의 사람이 있다면 백 가지의 페미니즘이 있기에, 모든 여성 뮤지션의 메시지가 저마다 의미 있다.

인종이나 사회, 경제적 배경 등을 고려하고 여성 뮤지션들의 음악을 보면 다채로운 페미니즘을 볼 수 있다. ‘Run the world (Girls)’가 흑인이자 걸어 다니는 대기업인 비욘세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곡이 실제로 전달하는 메시지는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과연 정말 세상을 주도하는 것은 여성인가, 아니면 비욘세인가?). 미츠키(Mitski)가 강렬한 기타 톤을 앞세워 외롭다고 소리치는 모습 역시 동양인 여성들은 얌전하고 가부장에게 복종하는 이미지가 있기에 훨씬 강렬하게 다가온다. 성 소수자자 Z세대인 킹 프린세스(King Princess)가 부르는 사랑 노래는 화자의 입장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뻔하게 들린다.

‘페미니스트 뮤지션’의 전형으로 다시 돌아와 보면, 이 단어의 실체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어쩌면 오히려 여성의 목소리를 지켜내는 접근법일 수도 있겠다. 여성성 하나로 정의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음악에 담긴 이야기를 여성성 하나에 대한 이야기로 해석하면 당연히 많은 부분이 지워진다. 여성에 대한 이야기로 논리를 전개했지만, 상호교차성은 정체성 그 자체에 대한 인식의 틀이다. 그 어떤 개인도 절대적인 약자, 혹은 강자일 수 없다. 이분법을 벗어나 음악에 담긴 사람을 온전히 직시했을 때 그의 이야기가 더 또렷하게 들리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