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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2023 펜타포트 베스트 7

김성욱 필자

엘르가든(금)
페스티벌의 축포는 엘르가든이 쏘아 올렸다. 지난 2008년 이후 15년 만에 다시 펜타포트 무대에 오른 베테랑 로커들은 과거 국내 CF에 삽입된 ‘Make A Wish’, ‘My Favorite Song’과 같은 히트 메들리와 지난해 신보 < The End of Yesterday >를 교차로 퍼부으며 금요일 밤의 열기를 끌어올렸다. 2008년부터 약 10년의 공백기를 가진 밴드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노련한 무대였다. 지천명의 록스타는 80분의 러닝타임 동안 20곡 이상을 쏟아냈고, 세트리스트 중간 ‘감사합니다’란 인사를 잊지 않으며 관객과 호흡했다. 메인 스테이지를 가득 메운 군중들은 앵콜 타임에 울려퍼진 국내 애창곡 ‘Marry Me’를 끝까지 따라 부르며 최고의 연주를 선물한 헤드라이너에게 경의를 표했다. 한국 내 J팝 열풍을 체감한 엘르가든은 무대 직후 단독 내한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이디오테잎(토)
과거 펜타포트는 하드록 밴드들을 라인업에 대거 포진시키며 ‘록 마니아’의 열렬한 지지를 획득했다. 현재는 대중성을 아울러 진입장벽을 허물었지만 특유의 관객 문화는 DNA처럼 계승됐다. 올해 역시 공연장 곳곳에 슬램 핏이 형성되고 그 사이로 수백의 관중이 부딪히며 슬램을 즐겼다. 페스티벌 기간 슬래머들의 활약이 절정에 다다른 순간은 메탈 밴드도, 당일 헤드라이너인 스트록스도 아닌 국가대표 일렉트로닉 그룹 이디오테잎의 무대다.

둘째 날 저녁 깃발 부대의 도열 속 모습을 드러낸 트리오는 ‘Pluto’로 포문을 연 뒤 프로디지와 케미컬 브라더스, 그리고 다프트 펑크의 클래식 넘버를 고루 배치해 현장을 장악했다. 전주만으로 탄성이 터져 나온 비스티 보이즈의 ‘Sabotage’와 대표곡 ‘Melodie’를 포함해 세 멤버는 별다른 멘트 없이 한 시간 동안 명품 셋리스트를 몰아치며 구름 떼 인파를 지휘했다. 이디오테잎은 2주 전 영국 슈게이즈 밴드 라이드가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대체자로 급히 투입되었다. 이들은 구원투수이면서 동시에 토요일의 지배자였다.

염동교 필자

장기하(금)
전위적인 음악과 안무를 결합한 2022년 < 공중부양 > 콘서트를 펼쳤던 장기하가 록밴드 포맷으로 돌아왔다. 장기하와 얼굴들을 함께했던 드러머 전일준과 기타리스트 하세가와 요헤이가 참여한 싱글 < 해 / 할건지 말건지 >로 록의 갈급을 털어낸 그는 지난 4월 600석 규모의 무신사 개러지에서 단독공연 < 해! >를 펼쳤다.

무신사 개러지에서 송도달빛공원으로 확대된 무대에서 데뷔 16년 차의 프론트퍼슨은 노련했고, 넥스트의 신해철을 연상하게 하는 조련에 관객들은 일사불란했다. ‘빠지기는 빠지더라’와 ‘그렇고 그런 사이’부터 < 공중부양 >의 ‘부럽지가 않아’의 ‘가만 있으면 되는데 자꾸만 뭘 그렇게 할라 그래’의 밴드 버전과 신곡 ‘해’까지 경력을 망라했다. 오래된 전우가 주는 안정감과 밴드 밴디지 출신 신현빈(기타)와 손도현(키보드) 등 젊은 연주자의 활기에 프론트퍼슨의 에너지 레벨도 유독 높아 보였다. 그 에너지가 관객에게도 고스란히 옮아간, 전이(轉移)의 시간이었다.

잠비나이(토)
유일무이. 잠비나이가 생성한 활자다. 짧고 굵은 첫 곡 ‘소멸의 시간’에 마비된 감각은 순서가 끝날 때까지 풀릴 줄 몰랐다. 잠비나이 사운드가 신체 한 바퀴를 크게 훑고 갔달까. 탑에 벽돌을 올리듯 쌓아가는 소리 탑엔 ‘국악 프로그레시브 록’, ‘국악 포스트 록’ 등의 명명이 부질 없었다. 그저 잠비나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리더 이일우의 절규와 국악기와 양악기의 일합이 에어포트 스테이지의 대기를 채웠다. 해금이 신비로움을 발산하다 후반부 기타 굉음과 주문에 가까운 보컬이 오컬트적 색채를 자아내는 ‘온다’와 반복적인 거문고 리듬에 급작스런 메탈 사운드를 끼얹는 ‘그들은 말이 없다’처럼 잠비나이의 음악은 다변적이고 도식화를 거부했다.

스트록스(토)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의 핵심, 새천년 가장 스타일리시한 밴드라는 상징성은 더 스트록스를 ‘꼭 한번 라이브 보고싶은 밴드’에 올려놓았다. 2006년 펜타포트에서 첫 내한을 펼쳤으니 여러모로 이 축제와 인연이 깊은 스트록스는 건반이 두드러진 신스팝 ‘The adults are talking’ 2020년 근작 < The New Abnormal >의 ‘Bad decisions’ 이 20년 역사를 가로질렀지만 역시 데뷔작 < Is This It >에서 커다란 호응이 터져 나왔다. 명징한 베이스라인의 ‘Someday’와 ‘Is this it’이 소환한 < Is This It >과의 첫 기억, 그 흥분감은 ‘Last nite’에서 절정에 달했다.

호불호가 갈렸다. 나사 풀린 듯한 줄리안 카사블랑카스의 퍼포먼스(술에 취했다는 루머가 있다)와 앙코르 포함 14곡의 적은 숫자도 아쉬움을 남겼지만, 후지 록과 펜타포트를 함께 다녀온 이에 의하면 줄리안의 컨디션 자체는 후자가 나았다고. 여러 가지 결함에도 기타리스트 알버트 해먼드 주니어의 톤 메이킹을 위시한 다채로운 음악색과 포스트 펑크와 뉴웨이브를 가로지르는 스펙트럼이 돋보였다.

진저 루트(GINGER ROOT)(일)
펑키(Funky) 리듬에 눈이 번뜩 뜨였다. 맷 카니(드럼)와 딜런 호비스(베이스), 카메론 류(보컬, 키보드)로 이뤄진 미국 인디밴드 진저 루트는 베이퍼웨이브와 퓨처 펑크 류의 복고 음향으로 송도달빛공원의 밤하늘을 채색했다.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와 버글스를 반추하는 오토튠과 각종 디바이스가 연결된 포터블 신시사이저는 듣는 재미를 배가했다. 일본 시티팝 풍 무대 영상은 ‘Loneliness’의 낭만성을 부각했고 ‘Everything’s alright (meet you in the galaxy ending theme)’엔 공상과학물과 소녀만화의 심상이 공존했다.

두 곡을 비롯해 2022년에 발매한 EP < Nisemono > 수록곡을 셋리스트 대부분으로 꾸린 진저루트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사카모토 류이치와 그가 소속했던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의 트리뷰트 메들리도 준비했다. ‘Tong Poo’와 ‘Firecracker’, ‘Rydeen’의 재해석은 아시아계 중국인을 프론트퍼슨으로 둔 밴드의 음악 원천과 지향성을 가리켰다.

김창완밴드(일)
상투적 표현이나 ‘살아있는 전설’보다 적합한 표현이 있을까. 산울림의 맏형 김창완을 주축으로 한 김창완밴드는 3일 축제의 대미를 장식했다. ‘아니벌써’ 와 ‘너의 의미’ 등 산울림 클래식부터 김창완밴드의 ‘중2’까지 40여 년 타임라인을 80분에 농축했다.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의 전주의 주술에 걸린 듯 몸을 비틀어 댔고, ‘개구쟁이’에선 모두 함께 하늘 위로 솟았다. 베테랑 멤버들은 산울림의 아마추어리즘과는 또 다른 질감의 음악성을 드러냈고 어쩌면 산울림보다는 김창완밴드가 펜타포트 같은 대형 축제엔 더 잘 어울릴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바로 옆 소녀 “새소년 보고 집에 돌아가려고 했는데 미안해요. 아저씨”를 외쳤다. 그는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의 신비로움에 감화되었고, ‘기타로 오토바이타자’의 진보성에 충격받았을 테다. 한국적 가락과 사이키델릭이 뭉쳤던 1977년 곡 ‘청자’는 46년이 흐른 현재의 무대에서 국악인 안은경의 태평소를 곁들인 ‘아리랑’으로 현신했다. 마지막까지, 김창완다웠고, 산울림다웠다.

리드 글 : 김성욱
글 : 김성욱, 염동교
사진 : 예스컴이엔티 제공, 염동교(스트록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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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IZM이즘x문화도시 부평] #30 조유진

웹진 이즘(IZM)이 문화도시 부평과 함께 하는 < 음악 중심 문화도시 부평 MEETS 시리즈 >는 인천과 부평 지역 출신이거나 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티스트들을 순차적으로 인터뷰하는 시리즈 기획이다. 지금까지 이곳 출신의 여러 뮤지션들이 자리해 자신의 음악 이야기와 인천 부평에 대한 추억을 들려주었다. 이번 서른 번째 주인공은 대한민국 대표 록밴드 체리필터의 프론트우먼 조유진이다.

코로나로 주춤했던 공연계가 다시금 기지개를 켜면서 수많은 축제 마니아들이 각지의 스테이지로 몰려들고 있다. 특히 그 부활의 신호탄으로 작용한 <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은 무더운 날씨에도 엄청난 인파를 끌어모으며 억눌려있던 음악팬들의 갈증을 해소했다. 다채로운 라인업 가운데 가장 눈에 띈 팀은 단연 체리필터. 2000년 데뷔해 지금까지 멤버 변동 한번 없이 무대에 오를 수 있었던 건 탄탄한 보컬로 그룹의 정체성을 지탱하는 조유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와 이즘이 20년 만에 다시 만났다. ‘낭만고양이’로 대히트를 친 이후에도 가수로서 맹렬한 소신을 드러냈던 과거 인터뷰만 봐도 이번 만남은 예견된 재회였다. 위치는 달랐지만 음악 하나로 굳건히 자리를 지켜온 가수 조유진과 평론가 임진모는 서로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며 회포를 풀었다. 호쾌한 웃음소리만 가득했던 그날의 인터뷰를 공개한다.

페스티벌 무대에서 정말 오랜만에 만난 느낌이다.
희한하게 큰 규모의 록 페스티벌과는 연이 없었다. 한창 활동하던 때엔 주류 시장과 더 많이 엮여서 그쪽 공연이나 행사를 많이 뛰었다. 물론 1년에 1~2번씩은 계속 단독 공연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꾸준히 와주셨던 분들에겐 익숙한 그림이었을 것이다.

체리필터 하면 떠오르는 레퍼토리를 선보였다.
‘이물질’, ‘오리 날다’, ‘피아니시모’, ‘Happy day’, ‘달빛소년’, ‘낭만고양이’. 이렇게 여섯 곡을 준비했다. 처음엔 리스트가 좀 달랐다. 비사이드도 조금씩 넣어서 하려다가 시간이 초과되면 안 되니까 다 걷어내고 단독 공연에서 자주 하는 엑기스들만 추렸다. ‘오리 날다’ 때는 관중분들이 다 정신없이 뛰셨는데 그 에너지에 압도 당해서 우리도 같이 광분하게 됐다.

열기가 엄청났나 보다. 체력적인 부담은 없었는지.
연출 분들이랑 몇 번 얘기했을 정도로 해가 쨍한 시간대에 공연하는 게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너무 뜨거워서 일사병으로 사망했다고 뉴스에 나오는 거 아닌가. (웃음) 뭔가 록밴드로서 낮에 하는 페스티벌 무대에 대한 로망이 있긴 했는데 막상 실제로 하려니까 살짝 겁이 났다.

무대에서 인천 출신이라 언급할 정도로 고향을 향한 애정이 큰 것 같다.
완전히 인천 토박이다. 지금의 차이나타운인 동인천 북성동, 송월동 쪽에서 나고 자랐고 초중고도 다 여기서 나왔다. 조부모님들께서 이북 분이셨는데 아버지 어릴 적에 인천 쪽에 정착하셨다고 한다. 엄마는 서울 분이셔서 매번 서울로 이사 가기를 희망하시는데 아버지께선 인천에 살아온 세월도 있고 친구, 직장 동료분들도 많고 하셔서 벗어나기를 싫어하신다.

살아오면서 느낀 인천의 이미지는 어떤가.
록적인 인상이 굉장히 강하다. 한때 동인천, 주안 쪽은 완전 록의 메카였다. 당시에 콜라나 커피를 팔면서 록 음악만 틀어주는 음악 방 같은 데가 있었다. 소파에 앉아서 온종일 뮤직비디오만 봤었는데 그때 들었던 음악의 영향이 크다. 저녁 시간대는 DJ가 나와서 직접 노래도 틀어줬다고 하는데 어릴 땐 늦게까지 남을 수가 없어서 밤 분위기까진 잘 모른다.

일찍이 록의 세례를 받았다.
집에서 라디오로 팝송을 듣기보다 현장에서 앰프가 쏘아대는 울림을 온전히 몸으로 받아서 그런지 헤비메탈 같은 강렬한 음악도 굉장히 좋아했다. 사실 제대로 음악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1990년대 이전의 노래들은 거의 몰랐다. 한동안 얼터너티브 중심으로 메이저 성향만 듣다가 점점 폭을 넓혀갔다. 애초에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해서 일본 애니메이션 음악, 트로트 같은 장르들도 가리지 않고 듣는다.

조유진을 뮤지션으로 이끈 음악은 무엇인지.
지금 들어도 촌스럽지 않은 멜로디의 팝 록이 1990년대에 꽃을 피웠다. 주류 시장에서도 성공한 세미소닉, 라디오헤드, 너바나를 좋아했고, 앨라니스 모리셋, 셰릴 크로우 같은 여성 로커들도 엄청 동경했다. 밴드적인 측면에선 셜리 맨슨이 프론트우먼으로 활약한 가비지의 ‘Push it’을 즐겨 들었다. 윤복희 선생님, 한영애 선생님, 이선희 선생님 같은 우리나라 대선배들도 너무 존경한다.

요즘엔 나이 들어서도 계속 무대에 서는 분들은 다 멋있어 보인다. 아직까지도 활동하는 하트의 앤 윌슨이 라이브 하는 걸 들으면 너무 잘해서 눈물이 난다. 사생활 다 배제하고 보면 에어로스미스의 스티븐 타일러가 제일 멋있다. 나이가 들었음에도 로커 특유의 각이 살아있다. 미친 것 같다. (웃음) 나도 치밀하고 섬세하게 준비해서 더 나이 들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유지하고 싶다.

추구하는 음악 스타일은 어떤지.
특별히 무언가로 규정하고 있진 않지만 단순하게 스트레이트를 꽂으려고 한다. 굳이 따지자면 복잡하지 않은 팝 얼터너티브를 추구하는 편이다. 점점 큰 시장에 몸담으면서 가사나 악곡 형태에 완급 조절을 가하긴 했지만 대중들과 멀어지는 걸 바라진 않았기 때문에 공연에서 다 같이 질러댈 수 있는 음악으로 초점을 맞췄다.

지금까지의 작업물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곡은.
직접 곡을 쓴 사람에겐 다 소중한 작품들이다. 전체적인 완성도로 봤을 땐 ‘Happy day’가 실린 4집 < Peace N’Rock N’Roll >을 가장 아낀다.

차기작은 언제쯤 만나볼 수 있을지.
곧 나올 거다. 노래는 산더미처럼 있어서 빨리 내보려고 발악 중이다. 이제는 음악, 앨범 하나하나에 성격을 규정하기 보다 그냥 체리필터의 노래를 남긴다는데 의미를 두고 싶다.

많은 후배들이 체리필터의 뒤를 이어 열심히 활동 중이다. 선배 입장에서 현재 우리나라 음악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아날로그가 아닌 디지털을 지향하면서 확실히 곡 쓰기가 편해졌다. 드래그 앤 드롭으로 보컬, 랩 녹음은 물론이고 각종 효과들까지 자유자재로 배치할 수 있게 되면서 모두가 쉽게 음악을 만들고 있다. 접근성이 좋아진다는 건 분명 좋은 일이지만 이런 싱어송라이팅의 세계는 굉장히 절망적이다. 잊을만하면 터지는 표절 의혹들도 어느 정도 유사한 맥락에서 발발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비전 자체는 굉장히 좋다고 본다. 인디 뮤지션들이 대기업의 자본에 의존하지 않고도 자신만의 색깔을 표출할 수 있는 방법이 많아졌다. 풀 렝스 앨범이 아닌 싱글로 자주 소통하고, 아예 외국 기업과 계약해서 해외 중심으로 활동하는 등 가수 생활의 반경이 확실히 넓어졌다.

세월이 흐르면서 달라진 게 있는 걸까.
옛날에는 좀 까칠하고 성격도 모난 구석들이 있었는데 요즘은 자취를 감췄다. 먹고살기 괜찮고 남들처럼 살면 확실히 음악을 오래 하기 힘든 것 같다. 그렇다고 일부러 어려울 필요는 없으니까 남들과는 다르게 사고할 수 있는 사람들, 철없는 사람들이 하는 게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조유진에게 음악은 무엇인지.
이제는 되게 ‘치사한 것’. 뭔가 친구 같다가도 자꾸 삐져서 안 풀리고, 친절한 것 같으면서도 불친절하고 그러더라. 옛날에 이때쯤 되면 호텔에 살면서 월드 투어하자고 했었는데 맘처럼 쉽지 않았다. 그래도 음악 하는 사람은 남한테 굳이 안 들려주고 본인이 만든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도 성취감이 엄청나다. 그런 면에서 예나 지금이나 항상 진심으로 임했다는 건 자부할 수 있다.

진행: 임진모, 임동엽, 정다열
정리: 정다열
사진: 임동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