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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Lodger’ (1979)

평가: 4/5

뜻밖인 듯 보이지만 < Heroes >의 마지막 트랙에서 예고된 변화일지도 모른다. 디스코 기타 리프를 바탕으로 이국적인 리듬을 그린 ‘The secret life of arabia’의 연장선처럼 느껴지는 이 앨범은 데이비드 보위의 13번째 정규 앨범이자 ‘베를린 3부작’의 대단원이다. < Low >와 < Heroes >의 발매 이후 월드 투어와 그 실황 앨범 < Stage >를 거친 그는 투어가 끝나고 1년간, 영혼의 단짝인 프로듀서 토니 비스콘티, 브라이언 이노와 서둘러 < Lodger >의 작업을 진행했다.

절반이 연주곡으로 채워진 두 전작에 비해 < Lodger >는 접근하기 쉬운 3-4분 남짓의 짧은 곡으로 구성되었다. 이전까지 보여준 독특한 콘셉트와 긴 대곡 대신 일관적으로 빽빽한 노래들을 택한 구성은 보위가 내린 또 하나의 변화다. 언뜻 대중친화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그의 변신 본능을 다 가리진 못한다. 카탈로그에서 가장 많은 장르가 시도된 앨범은 다양한 스타일의 접목이 빛나는 ‘월드 뮤직’의 향연이다.

으스스한 분위기의 ‘African night flight’는 케냐 여행에서 영감을 얻은 아프리카풍의 타악기와 리듬을 입혔다. 톡톡 튀는 훅이 돋보이는 ‘Yassassin’은 은근한 레게 리듬의 활용이다. 그 외에도 영국 싱글 차트 7위까지 오른 히트곡 ‘Boys keep swinging’에서는 기타, 베이스, 드럼의 변칙적인 배합으로 마르지 않는 창의력을 증명하며, 특유의 중후함을 담아낸 ‘Fantastic voyage’는 묵직한 반주에 깊은 목소리로 빚어낸 스탠다드 팝이다.

세계적인 장르의 포용에도 앨범이 ‘베를린 3부작’으로 묶일 수 있는 건 독일의 음악 스타일을 가져온 덕이다. 발칙한 맛으로 흥겨운 ‘DJ’는 독일의 전자 샘플로 비트를 꾸몄고, 브라이언 이노가 대부분을 작곡한 ‘Red sails’도 < Low >와 마찬가지로 독일 밴드 노이(Neu!)의 크라우트 록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1976년도부터 본격적으로 도입한 독일의 전자 음악 스타일로 트릴로지의 마지막 장을 흩트림 없이 장식했다.

< Lodger >는 두 전작에 비해 음악적 쇠퇴라는 평가를 받았다. 앨범을 둘러싼 월드 뮤직의 향기는 낯설었고, < Low >의 압도적 실험 정신에서 온 영향력이나 < Heroes >가 냉전 당시 베를린 모습을 반영하며 보여준 깊은 시대감각 같은 파급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본작을 끝으로 보위와 작별한 브라이언 이노도 “< Lodger >를 통해 베를린 3부작이 작아졌음을 느꼈다”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음반은 영국 앨범 차트 4위라는 준수한 성적과 짧고 개성 있는 팝 넘버들로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무엇보다 레게, 알앤비, 펑크(Funk)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실험성은 여타 아티스트는 흉내 낼 수 없는 보위만의 위업이다. 변화를 시도하면서도 본연의 개성을 잃지 않는, 음악가로서의 가장 큰 요구를 보위는 이 앨범에서도 완벽하게 충족했다.

점잖은 포크 뮤지션과 화성인, < Aladdin Sane >의 중성적인 페르소나와 퇴폐적인 신사 씬 화이트 듀크(Thin White Duke)를 거치며 늘 변화무쌍하던 보위에게 < Lodger >는 1970년대 끝자락을 마무리하는 성과다. 상업적 최전성기를 이루는 1980년대를 맞기 이전 카멜레온이 감행한 작지만 강한 변화였다.

-수록곡-
1. Fantastic Voyage 
2. African Night Flight
3. Move On
4. Yassassin 
5. Red Sails
6. DJ 
7. Look Back In Anger
8. Boys Keep Swinging 
9. Repetition
10. Red Mo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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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The Next Day’ (2013)

평가: 4/5

글램 록(Glam rock)의 화신, 무차별한 변신의 귀재라지만 일흔을 바라보는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에게 더 이상 또 다른 페르소나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1970년대의 지기 스타더스트(Ziggy Stardust)라는 외계인과 씬 화이트 듀크(Thin White Duke)와 같은 이미지가 있다 해도 언제까지 그때와 같은 메이크업과 염색을 시키고 치마와 롱부츠를 착용시켜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변화의 첨단을 걷던 그도 생각해보면 1947년생이다. 할아버지 소리를 들어가며 경로 우대를 받을 그런 시기에 있는 것이다.

오히려 새 앨범 소식을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지 모르겠다.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이 수집가들을 위한 베스트 앨범과 박스 세트로 황혼기를 마무리하지 않던가. 그 와중에 신곡이라도 같이 끼워 나오면 그보다 더 감격스러운 일은 없다. 게다가 데이비드 보위는 심장 수술을 받았던 2004년부터 긴 휴지기에 들어갔다. 디스코그래피의 마지막 스튜디오 앨범 < Reality >도 그보다 1년 전에 발매되었으니 정규 음반이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만 같은 아쉬운 예측도 영 설득력이 없던 낭설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올해 초 등장한 뉴스는 이러한 예상을 단번에 뒤엎었다. 10년 만에 발매하는 앨범은 신곡으로만 온전하게 채운 27번째 스튜디오 음반이 될 계획이라는 것. < Young Americans >, < Low >, < Heroes > 등 명반 행진은 물론, 가장 최근의 앨범들까지에도 연을 잇고 있는 토니 비스콘티(Toni Visconti)가 프로듀서로 내정되었으며 앨범 제작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소식이 빠르게 SNS를 타고 팬들에게 전파되었다. 60대 중반의 움직임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왕성한 활동이 이어졌다. 들뜬 소식이 채 가기도 전에 리드 싱글 ‘Where are we now’와 두 번째 싱글 ‘The stars (are out tonight)’을 차례로 발표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 Heroes > 자켓 위에 제목을 덧씌운 앨범 커버도 공개되었다.

시대감각에 뒤떨어져도 어색하지 않을 나이이건만 데이비드 보위는 여전히 처지지 않는 매끈한 음악을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1970년대와 1980년대를 훑어 내렸던 로큰롤 사운드를 구사하니 음반에 자리하는 것은 단연 관록 있는 옛 실력과 현대적 감각의 조화다. 인트로 ‘The next day’에서부터 그 결과가 단숨에 드러난다. 2010년대에 쓰인 곡은 1973년에 발매되었던 작품 < Aladdin Sane >에 끼워 넣는다 해도 큰 어려움이 없다. 러닝 타임 내내 로킹한 기타 연주가 끊이질 않고, 고저를 오가는 롤러코스터 보컬이 빠르게 분위기를 쥐락펴락한다.

다음이 바로 문제다. 두 번째 트랙 ‘Dirty boys’ 이후부터는 그야말로 킬링 트랙들의 향연이 이어진다.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언급해야할 곡은 바로 세 번째 곡 ‘The stars (are out tonight)’다. 기타와 현악기가 뽑아내는 흡인력 있는 음색에 죽음으로 몰고 간다는 가사, 그리고 이를 닮아 정점에 서서히 올라가는 데이비드 보위의 보컬은 음반을 듣는 팬들에게 최고의 모멘트를 선사한다. 더불어 트랙은 이전의 작품들에서는 접할 수 없는, 2013년에 가장 잘 어울리는 현재의 사운드를 담고 있다. 앞선 ‘The next day’에서 드러난 복고풍과는 어느 정도 대조되는 컨템포러리 넘버랄까. 아티스트로서의 감각이 돋보이는 지점이다.

위의 곡들이 록 사운드로 강렬하게 귀를 지배했다면 ‘Where are we now?’와 ‘Valentine days’와 같은 곡들은 발라드의 멜로디로 달콤하게 소구력을 끌어 모은다. 특히 두 트랙에서는 데이비드 보위의 능란한 보컬이 큰 빛을 발한다. 느릿한 전개 위에 피아노와 현악 편곡이 조화를 이루는 ‘Where are we now?’에서는 중후한 목소리를, 뒤를 잇는 경쾌한 이미지의 ‘Valentine’s day’에서는 특유의 톡톡 튀는 창법을 활용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 한 포인트. 음반이 다채로울 수 있는 이유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접근법에 차이를 두었던 이 트랙들에 있다.

후반부의 곡들도 놓칠 수 없다. 기타 리프가 돋보이는 ‘I’d rather be high’와 빠른 템포의 ‘Dancing out in space’는 한 차례 숨을 골랐던 로큰롤의 레이스를 다시 펼치고 ‘Boss of me’는 < Station To Station > 시절을 연상시키는, 그러나 사운드의 텍스쳐에 있어서는 그와 다른 2013년의 펑크(funk) 사운드를 보여준다. 1980년대 팝의 느낌이 묻어나는 ‘How does the grass grow?’와 어쿠스틱 기타와 일렉 기타, 현악기의 레이어를 차례로 쌓아올려 아방가르드를 연출한 ‘Heat’ 또한 우열을 가리기 힘드니 그 어떤 트랙을 틀어놓아도 작품은 강한 매력을 흘려낸다.

곳곳에서 보이는 팝적인 센스는 단연 탁월하고 이를 토대로 가지 뻗은 수록곡들의 결과물 또한 흠잡을 곳이 없다. 물론 전성기를 수놓은 화려함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그 빈자리를 연륜이 말끔하게 메웠다는 것이다. 1970년대에도, 1980년대에도 디스코그래피의 어떤 시기에 가져다 놓아도 음반은 밀리지 않으며 데이비드 보위의 대표작으로 손꼽아 내놓는다 해도 아쉬움이 없다. 종합해 보면 아티스트 개인의 성과는 결코 이전에 못지않다.

10여년 만에 등장한 그는 한층 더 과감해졌다. 보위 사운드의 또 다른 변신이라 봐도 무방하다. 이전부터 가져온 특유의 감각도 물론 중요하지만 현대적인 터치를 앨범 전체에 구사해 오늘날에 걸 맞는 작품을 만들었다는 사실 역시 쉽게 무시할 수 없다. 찬사를 보내고자 하는 이유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여전히 훌륭하고 여전히 매혹적이다. 빛깔을 바꿔오며 20세기를 장식한 아티스트는 지금도 시대를 밝게 비추고 있다. 멈추지 않는 변신의 귀재가 던진 새로운 컬러는 바로 < The Next Day >에 있다.

-수록곡-

  1. The next day
  2. Dirty boys
  3. The stars (are out tonight)
  4. Love is lost
  5. Where are we now?
  6. Valentine’s day
  7. If you can see me
  8. I’d rather be high
  9. Boss of me
  10. Dancing out in space
  11. How does the grass grow?
  12. (You will) Set the world on fire
  13. You feel so lonely you could die
  14. H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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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Heroes”‘ (1977)

평가: 5/5

냉전 시대 미소간의 대립과 배우들의 열연이 빛난 영화 < 스파이 브릿지 >는 1960년대 서베를린의 고립 과정을 생생히 그리고 있다. 영문 모른 채로 통행을 제지당한 자유 진영 시민들은 하룻밤새 포위되었고, 많은 동독 주민들은 장벽을 넘으려다 전기 울타리와 총에 쓰러져갔다. 처절한 육지의 섬, 미군의 공군 수송 작전으로만 움직이던 도시, 그 서베를린에 데이비드 보위가 있었다.

< Heroes >의 위대함은 바로 이 시대성에 있다. 베를린 3부작의 시작인 < Low >는 사실 프랑스 샤또 드 에후빌에서 녹음되었고 철학보다는 치밀한 소리 미학의 승리였으며, 브라이언 이노와의 관계가 서먹해진 < Lodger >도 역시 월드 뮤직과 아트 록의 실험적 결합이 가장 먼저 들어온다. 그러나 이 영웅의 서사시는 크라우트록으로부터 펑크 록과 보위 스타일 소울을 더해 뉴 웨이브의 청사진을 그려내면서 1970년대 냉전 시대의 긴장과 분단의 시대상까지 옮겨오는데 성공했다. < Low >로 그려낸 사운드의 바탕 위에 황폐하고 삭막하지만 분명한 심장의 고동을 더하며 인간의 기록으로 남게 된 것이다.

앨범 작업은 < Low >의 올스타 멤버 그대로 장벽 바로 근처의 한자 스튜디오에서 진행되었다. 크라우트록에 대한 보위의 비상한 관심은 베를린 체류 시기 크라프트베르크, 노이! 등 창조자들의 작품을 흡수했고, 이 변신의 귀재 손에서 인공적인 일렉트로닉은 직관적인 록의 터치를 만나게 된다. 여기에 시시때때로 붉은 군대의 감시를 받던 억압된 상황이 더해지며 앨범 전체를 뒤덮고 있는 황망한 아우라가 생성된다.

‘Beauty and the beast’로부터 시작되는 A사이드는 진격의 기타 리프를 앞세운 록 트랙들이다. 프로그레시브 레전드 킹 크림슨의 로버트 프립(Robert Fripp)을 초빙해 만들어낸 소리는 직관적이고, 강렬하면서도 미니멀리즘 철학에 근거해 건조한 사운드를 유지한다. 심지어 이 곡은 영락없는 소울의 코러스, 메인 리프 뒤의 디스코 스타일 기타 연주, 크라우트록의 사운드 왜곡 등 그야말로 보위 노하우의 총동원이지만 어디 하나 튀는 부분 없이 안정적인 폐허를 재건해낸다. 이런 혼합은 곧바로 이어지는 ‘Joe the lion’과 ‘Blackout’에서도 재능을 뽐낸다.

이 어두운 분위기를 더욱 짙게 만드는 것이 인스트루멘탈 위주 구성의 B사이드다. 여기에는 베를린 터키 이민자들의 거주지를 그린 ‘Neukoln’과 일본 전통 현악기를 동원해 동양의 앰비언트를 구상해낸 ‘Moss garden’, 이 트랙 앞에서 더욱 확실한 암울함의 대비를 들려주기 위해 1920년대 독일 표현주의 예술을 신디사이저와 피아노의 결합으로 표현해낸 ‘Sense of doubt’ 등 하나하나 치열한 트랙이 포진되어있다. 카를로스 알로마와 함께 < Station To Station > 시절의 월드 리듬을 일깨우는 ‘The secret life of arabia’의 마무리가 가벼운 전환을 제공하지만, 치열한 하나하나의 인스트루멘탈 실험에는 앰비언트와 아트 록, 크라우트 록의 정교한 결합과 이를 통한 새로운 소리의 대안이 탑재되어 있다.

그러나 보위 군단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증명하는 단 하나의 곡을 꼽으라면 당연히 불세출의 송가 ‘Heroes’를 빼놓을 수 없다. 이 굽이치는 신디사이저 소리의 벽을 세우기 위해 브라이언 이노는 계속하여 기계를 손봤으며, 로버트 프립은 앰프 앞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일명 피드백 효과에 조율을 살짝씩 다르게 하며 입체적 사운드를 만들었다. 여기에 토니 비스콘티는 세 대의 마이크를 순차적으로 활용하며 목소리의 울림을 통해 장대한 구성을 끝마쳤고, 마지막 보위는 ‘장벽 앞에서 키스하는 연인’의 서사시를 통해 시대에 강한 울림과 거대한 대서사시의 울림에 마침표를 찍었다. 전설로 남은 이 곡 하나에 사실상 앨범의 전체 정의가 압축되어있다 하겠다.

지기 스타더스트와 영화 배우, 씬 화이트 듀크 시절과 비교해 1978년의 보위는 풍족하지 못했다. 예술을 위해 찾은 베를린은 살벌했고 마약 중독을 이겨내야 했으며 재정적으로도 파산 상태였다. 그러나 그의 곁에는 이기 팝, 토니 비스콘티, 브라이언 이노가 있었고 분단의 도시가 제공하는 예술의 영감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데이비드 보위에게는 치열한 예술의 혼이 있었다. 제도권을 넘어 새로움을 창조하였고 외계인과 인공의 탈을 벗은 인간 그대로의 시선이 있었다. 우리 시대의 음악 영웅은 이토록 치밀하고도 따뜻했다.

-수록곡-
1. Beauty and the beast 
2. Joe the lion 
3. “Heroes” 
4. Sons of the silent age
5. Blackout 
6. V-2 Schneider
7. Sense of doubt
8. Moss garden 
9. Neuköln 
10. The secret life of Arab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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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Low’ (1977)

평가: 5/5

베를린 3부작 : 천재에서 예언자로

1976년 데이비드 보위는 향락에 가득했던 하얀 백작 시대를 폐기하고 스위스 제네바 호수에서 안정을 취했다. 수많은 가십과 당시의 상황이 대변하듯 그는 정상이 아니었고, 마약이 할퀴고 간 심신은 풀 한 포기 나지 않을 정도로 황폐해져 있었다. 공허한 상업적 성공을 뒤로하고 그가 찾은 탈출구는 아이러니하게도 더욱 악명높은 ‘육지의 섬’ 서베를린이었다. .

< Station To Station >으로 깔아놓은 변화의 촉매제는 1970년대 한창 부상하던 크라우트 록이었다. 히피 시대의 허망함을 채운 화려함이 글램이었다면 그 이후 해체주의, 전위주의의 포스트 모던은 독일의 실험적이면서도 난해한 일렉트로닉-신스팝으로 발현했다. 최첨단 과학 기술을 빌려 과학 기술을 비판하는 현대적인 전자음악은 이전부터 보위의 레이더망에 포착되어 있었다.

흔히 이런 독일의 일렉트로닉 때문에 보위가 서베를린으로 건너갔다는 이야기가 지배적이지만 사실은 다르다. 1970년대 당시의 서베를린은 동독으로부터 둘러싸인 ‘육지의 섬’이었고 미군의 조달 물자에 의존하는 도시였으며, 게다가 노이나 크라프트베르크 같은 팀의 본거지는 서독의 손꼽히는 부유한 도시 뒤셀도르프였다. 사실 서베를린 선택은 쾌락에 중독된 미국에서의 삶을 청산하고 고립된 환경에서 작업에 집중하려는 의도가 컸다.

지친 과거의 스트레스를 승화라도 하듯 보위는 ‘육지의 섬’에서 심혈을 기울였다. 완벽한 실험의 결과를 위해 보위는 명실상부한 음악 실험자이며 디자이너인 브라이언 이노를 초청하였고 글램 록 시기 영광을 함께했던 프로듀서 토니 비스콘티를 다시 불렀다. 자칫 거칠고 소외될 수 있었던 실험을 깔끔한 배치와 구조로 잡아내며 3부작에 불멸을 부여했다. 만반의 준비를 끝낸 3인조가 향한 곳은 중세시대 영주의 성을 전위 음악가 미셸 마네가 개조한 프랑스의 스튜디오, 샤또 드 에후빌이었다.

황량한 감정에 오싹한 ‘초자연적인 경험’까지 더해진 < Low >는 이미 발매 당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혁신으로 중무장한 앨범이었다. 그런데도 난해하기는커녕 기존 보위 스타일을 이어가며 새로운 요소들을 맞춰가는 ‘지속 가능한 진화’의 모습이 주를 이룬다. 이러한 진입 장벽 낮추기는 사이드 A면에 집중되는데, 2분에서 3분 내외의 구성, 인스트루멘탈과 가사의 왕래를 통해 유기적인 흐름을 형성한다.

기타리스트 카를로스 알로마의 진한 기타 솔로를 통해 어두운 감정을 형상화한 ‘Breaking glass’와 특유의 경쾌한 피아노 연주로부터 출발해 강렬한 로큰롤을 뽑아내는 ‘Be my wife’ 등은 기존 팬들에게도 익숙한 즐거움을 안겨준다. 특히 펑크(Funk) 기타 리프에 소울 풍의 보컬을 더한 ‘Sound and vision’은 이 시기 데이비드 보위를 대표하는 싱글 중 하나다.

브라이언 이노의 신시사이저는 때로는 공허하게, 때로는 활기차게 곳곳에 배치되지만, 전체 그림을 깨지 않을 정도의 기막힌 균형을 맞춘다. ‘What in the world’의 리드 부분에서 오묘함과 기괴함을 더하면서도 훅 부분에서는 절묘하게 자리를 비울 줄 알고, 익살스러운 멜로디를 전개하면서도 밥 딜런 스타일의 보컬에 마약 중독 시기 실화를 노래하는 ‘Always crashing in the same car’의 중간 부분에서는 비장미를 가득 품는다. 제목 그대로가 데이비드 보위의 상황을 상징하는 ‘A new career in a new town’은 하모니카 연주와 더불어 약간의 설렘과 자유로운 분위기를 투영한다.

사이드 B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미니멀리즘 실험을 집대성한다. 브라이언 이노의 무의식과 데이비드 보위의 치열한 곡 설계로 꾸며진 6분짜리 아트 록 교향곡 ‘Warszawa’는 그야말로 압권으로, 100가지 버전의 목소리와 네 장의 파트, 신비로운 노랫말을 담은 베를린 3부작의 하이라이트다.

여기에 반복적인 신시사이저 루프가 짙게 내려앉은 ‘Art decade’, 가곡 ‘Scarborough fair’의 멜로디를 창의적으로 변용한 ‘Weeping wall’, 재즈 색소폰 연주와 대비되는 비장미의 ‘Subterranean’의 앰비언트 3형제가 실험을 무사히 호위한다.

< Low >는 대중이 기대하는 팝과 아티스트 본연의 실험 정신을 한데 버무려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당대의 미학 기조와 철학계의 기조까지 부합했다. 핑크 플로이드의 프로그레시브나 성난 펑크 록 대신에 보위는 앰비언트를 설정했고 펑크 사후의 포스트-펑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1980년대의 뉴 웨이브와 1990년대 암울한 앰비언트, 일렉트로닉, 트립합 등은 모두 이 앨범의 녹을 먹었다.

피폐한 정신의 천재 백작이 육지 한가운데 차가운 냉전의 섬에서 예언자로 거듭난 것이다. 글램 록 시대 이후 데이비드 보위 앨범 중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며, ‘베를린 3부작’ 중에서도 가장 큰 의미를 지닌다.

– 수록곡 –
1. Speed of life 
2. Breaking glass 
3. What in the world
4. Sound and vision 
5. Always crashing the same car
6. Be my wife 
7. A new career in a new town 
8. Warszawa 
9. Art decade
10. Weeping wall 
11. Subterran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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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Young Americans’ (1975)

평가: 4/5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던 커버곡 모음집 < Pin-Ups >의 충격을 끝으로 한 시대가 종말을 고했다. 지기 스타더스트는 사라졌고, 주요한 음악 파트너 믹 론슨과 화성에서 온 거미 밴드는 해고되었다. 포스트 지기 시대의 막을 올린 < Diamond Dogs >는 현대에서는 재평가받으나 발매 당시에는 ‘괴작’이라는 악평을 피하지 못했다. 위기라면 위기라 할 수 있었던 1975년의 음악적 공백기, 하지만 데이비드 보위의 관심은 대중의 예측을 아득히 벗어나 있었다.

1975년 발매된 아홉 번째 정규 앨범 < Young Americans >는 플레이 버튼을 누른 수많은 이들에게 당황스러울 정도의 새로움을 안겨주었다. 부드러운 필리 소울의 고향 필라델피아에서 흑인음악에 심취한 보위는 당대 최고의 세션 멤버들과 함께 블루 아이드 소울 싱어의 작품을 구상하기에 이른 것이다. < The Man Who Sold The World > 이후 연이 없었던 프로듀서 토니 비스콘티와 재결합했고, 최고의 세션 베이시스트라 평가받는 윌리 윅스(Willie Weeks)와 전설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의 드러머 앤디 뉴마크(Andy Newmark)까지 합류했다. 심지어는 대단한 비틀스까지.

비록 그 자신은 ‘플라스틱 소울’이라 명명하며 겸손했지만, 그 결과물은 여느 백인 아티스트들이 따라올 수 없는 수준에 있었다. 그루브 넘치는 드럼과 퍼커션 리듬 위에서 색소폰이 하늘하늘 춤을 추고 가스펠적 코러스가 터져 나오는 톱 트랙 ‘Young americans’부터 의심스러운 눈빛은 녹아내린다. 유명 재즈 색소폰 주자 데이비드 샌본(Daivd Sanborn)과 < Aladdin Sane >부터 함께한 건반주자 마이크 가슨의 대단한 투톱 연주에 보위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그야말로 천상궁합이다.

1970년대 중반을 휘어잡던 디스코와 펑크 리듬도 빼놓을 수 없다. ‘Fascination’은 훗날 세계적 R&B 스타로 거듭나는 루더 반데로스와 함께 펑키한 기타 리프로 매혹스러운 리듬을 빚는다. 제임스 브라운의 유산으로 만들어낸 후렴구의 ‘Right’과 1950년대 두웁 밴드 더 플레어스(The Flairs)의 기타리프를 빌려 보위의 첫 미국 차트 1위 곡이 된 ‘Fame’ 등, 텐션을 조절하며 원류의 느낌을 살리고 감칠맛을 더한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매니저로 더욱 명성을 얻은 평론가 존 랜도(John Landau)는 이 앨범에 ‘소울에 빠진 영국 팝, 결론은 배척 대신 융합’이라는 평을 내렸다. 비록 작품은 데이비드 보위의 커리어 중 특정 장르의 느낌이 가장 두드러지는 작품이지만, 카멜레온이라는 별명의 소울과 R&B에 깊은 멜로디를 버무리며 확고한 이름을 새긴다. 부드러운 팝 발라드 ‘Win’과 가스펠의 느낌이 더욱 도드라지는 ‘Somebody up there likes me’, 산들산들 한 기타 리프와 스트링 사운드가 감미로운 ‘Can you hear me’ 등에서 앨범 커버의 중후한 신사 보위를 느낄 수 있다.

‘Young americans’ 후반부 ‘I read a news today, oh boy’ 한 줄로 예고된 존 레논의 참여는 장르적 변화에 색다른 스타의 손길을 더했다. 오노 요코와의 별거 기간이었던 ‘잃어버린 주간’ 시절, 엘튼 존과 믹 재거 등 다양한 아티스트와 교류하던 존 레논은 ‘Across the universe’ 리메이크와 ‘Fame’에 공동 작곡, 백보컬로 참여하며 데이비드 보위에게도 비틀즈의 은총을 내렸다. 글램 록의 화려함에 다소 저평가 받던 보위의 음악에 ‘립스틱을 칠했을 뿐인 로큰롤’이라는 정확한 분석을 제공한 것은 덤.

과감한 변신이었음에도 < Young Americans >는 영국 앨범 차트 2위, 미국 빌보드 앨범 차트 9위에 올랐으며 다채로운 요소들을 통해 든든한 음악적 가교를 놓았다. 순조롭게 신무기를 장착하고 난 보위는 이제 더 큰 세계로의 발걸음을 내딛는다. 술과 코카인, 헤로인의 백색 가루에 취한 두 번째 페르소나, ‘씬 화이트 듀크(Thin White Duke)’의 등장이다.

– 수록곡 –
1. Young americans 
2. Win
3. Fascination 
4. Right 
5. Somebody up there likes me
6. Across the universe 
7. Can you hear me
8. Fa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