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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라니 마르티네즈(Melanie Martinez) ‘Death’ (2023)

평가: 2.5/5

독특한 비주얼을 가미한 콘셉트 앨범과 뮤직비디오로 이름을 알렸던 멜라니 마르티네즈가 신곡을 발표했다. 2015년 < Cry Baby >, 2019년 < K-12 >가 펼친 잔혹동화 세계의 주인공 ‘Cry Baby’에 죽음을 선포한 ‘Death’는 새 챕터 < Portals >를 여는 서막이다. ‘죽음에서 다시 돌아왔다’는 메시지를 반복하며 기괴한 판타지 차원으로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인간의 몸에서 기괴한 분홍빛 생명체로 재탄생한 뮤직비디오처럼 음악도 변화가 크다. 미니멀한 사운드에 리듬을 뚝뚝 끊던 기존과 달리 공간감을 키우고 러닝타임도 5분대로 늘렸다. 누 메탈과 인더스트리얼 장르로 전환하는 후렴이 흥미로우나, 한편으로는 몇 년 전 발매된 파피(Poppy)의 ‘I disagree’나 그라임스(Grimes)의 ‘We appreciate power’ 등이 다소 겹쳐 보인다. 영상에 종속된 인트로 성격이 강하다 보니 개별 곡으로 듣는 재미는 덜한 편. 앨범에 대한 호기심을 유도하기에는 화끈함이 조금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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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미컬 브라더스(The Chemical Brothers) ‘No reason’ (2023)

평가: 3/5

케미컬 브라더스는 21세기를 대표하는 전자음악 그룹이다. 일레트로니카 본연의 음향 쾌감에 대중성을 가미해 언더그라운드에 있던 테크노와 하우스를 인기 장르로 끌어올렸다. 프로디지, 팻 보이 슬림과 더불어 전자음악의 한 조류인 빅 비트의 선구자로 불리며 삼십여 년간 롱런하고 있다.

2년 만의 싱글 ‘No reason’도 신나고 감각적이다. 다프트 펑크의 ‘Harder, better, faster, stronger’를 떠오르게 하는 베이스라인에 소리 인장을 채워 넣었다. 깔끔한 편곡이 30년 공력을 발휘했지만 2001년 작 < Come With Us >의 ‘Hoops’나 ‘Star guitar’ 속 인스트루멘탈 마력이나 2015년 곡 ‘Go’의 펀치력이 부재하다. 2021년에 발표한 싱글 ‘The darkness that you fear’와 더불어 신보의 다채로움을 암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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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빈 해리스, 엘리 굴딩(Calvin Harris, Ellie Goulding) ‘Miracle’ (2023)

평가: 2/5

기존의 강렬한 EDM을 덜어내고 펑크(Funk)를 끌어와 휴양의 색채를 직관적으로 담아낸 < Funk Wav Bounces Vol. 1 >는 캘빈 해리스의 커리어의 기록적인 전환점이 됐다. 그러나 연작의 형태로 발매된 < Funk Wav Bounces Vol. 2 >가 얻은 호응은 결코 직전만 못했다. 성공적인 변화를 이룩한 작법을 반복했음에도 쓴맛을 본 그는 이번 ‘Miracle’을 통해 전환 이전으로의 회귀를 시도한다.

익숙한 이름인 엘리 굴딩을 다시 한번 초대하고 고전적인 유럽식 트랜스로 일관하며 초기 명성을 견인한 작법을 재현하나 결과는 확실히 이전만 못하다. 구성과 색채에서 전형성을 강하게 드러내며 ‘This is what you came for’, ‘Outside’, ‘How deep is your love’ 등 이전 트랙들을 자연스레 연상시키지만 초중반부의 보컬과 비트의 결합이 조화롭지 않을뿐더러 소리가 대단히 신선하지도 않기에 만족도는 보다 떨어진다. 중후반부에 와서야 비로소 구색을 갖추는 특유의 폭발력만이 그의 예전 모습을 상기시켜줄 뿐, 이후 행보에 청신호를 켜기에 아직은 역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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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마리, 민니 ((여자)아이들)(Anne Marie, Minnie ((G)I-DLE)) ‘Expectations’ (2023)

평가: 2.5/5

귀에 쉽게 들어오는 깔끔한 분위기의 팝이다. 기타 사운드가 전개의 중심을 잡아주며 곡의 전반적인 감성을 주도적으로 끌고 나간다. 이러한 전개 위에 주체적인 삶을 향한 의지가 드러나는 가사를 얹고, 기술적인 보컬을 도구 삼아 이를 표현한다. 더 다양한 사운드가 섞인 풍성한 편곡을 상상하게 만드는 후반부는 아쉬운 지점이나 곡의 구조적인 안정감이 괜찮다.

트랙의 완성도에 비해 두 가수의 조합은 다소 어색하다. 기계적인 파트 분배, 뉘앙스가 따로 노는 연결부 등 서로의 보컬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연주가 내내 이어진다. 연주 자체는 훌륭하지만 이 서먹한 앙상블의 겉도는 양상이 가창력보다 먼저 귀에 걸린다. 각자의 솔로 곡으로 발매했으면 더 좋았을 트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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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um POP Album

캐롤라인 폴라첵(Caroline Polachek) ‘Desire, I Want To Turn Into You'(2023)

평가: 4/5

환상적이다. 다채로운 사운드와 영롱한 목소리의 합동 일격이 단숨에 청자를 매혹하고 고장 난 비행기처럼 탑승객을 이리저리 휘저어 놓는 변칙적인 구조가 정신을 혼미하게 한다. 미국의 인디 밴드 체어리프트의 프론트우먼을 거쳐 2019년 발매한 < Pang >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솔로 활동을 개시한 캐롤라인 폴라첵의 음악 세계다. 신인처럼 보이지만 비욘세, 트래비스 스콧에게 곡을 써준 화려한 이력을 가진 그는 소포모어에서 팝 음악에 대한 날카로운 이해도, 확고한 개성, 담대한 실험 정신을 모두 눌러 담는다.

독특한 철학과 개성 강한 사운드로 사랑받는 PC 뮤직(PC Music)의 프로듀서 대니 엘 할과 협력한 사운드스케이프는 정교하고 변덕스럽다. 로킹한 비트와 처절한 비명이 울리다가(‘Welcome to my island’) 새소리와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고(‘Bunny is a rider’), 충돌과 긴장의 전개 뒤 언제 그랬냐는 듯 평화로운 합창이 메아리친다(‘Billions’). 갑작스럽게 플라멩코의 후끈함을 가져오는 ‘Sunset’, 부유하는 전자음에서 소극장의 어쿠스틱 밴드 차림으로 얄궂게 변조되어 장엄한 백파이프 솔로로 종결되는 ‘Blood and butter’까지 모든 전개가 예측을 벗어나 있다.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 어디에 시선을 둬야 할지 모르겠는 총천연색 구성은 감상을 넘어 차라리 체험에 가깝다.

그가 뷰욕과 케이트 부시 같은 선배 거장 옆에 거론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려한 멜로디, 공들인 편곡으로 귀를 즐겁게 하면서도 무엇보다 장르를 겁 없이 훨훨 넘나든다. 신스팝 혁명가 그라임스의 맹랑함을 빌려와 말끔한 드럼 앤 베이스 비트를 버무린 ‘Fly to you’와 UK 개러지 트랙 ‘I believe’가 일렉트로니카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증명하고, 명상적인 발라드 ‘Crude drawing of an angel’에서는 남다른 멜로디 주조 능력을 뽐낸다. 캐치한 ‘Smoke’를 비롯해 대부분의 곡이 감도 높은 선율로 저마다의 위치에서 확실한 퍼즐 조각으로 기능한다. 롤러코스터, 퍼레이드가 연상되는 저돌적인 전개에도 선명히 살아 숨 쉬는 송라이팅의 정교함이 경이와 감탄을 부른다.

보컬리스트로서의 역량도 빼놓을 수 없다. 케이트 부시보다 세련되고 뷰욕보다 부드러운 둘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듯한 그의 목소리는 선배의 영향을 자신만의 색깔로 승화하기 위한 가수 노력의 결실이다. 압도적인 보컬 레인지로 급작스레 상승해 귀를 찌르는 칼날 같은 소프라노, ‘Pretty in possible’에서 선보인 기묘한 발음법 등 거부할 수 없는 매력 요소가 가득하다. 직선적인 기타 리프와 나른한 오르간 사운드로 데이비드 보위의 잔상을 피워내는 파워 발라드 ‘Butterfly net’의 보컬 연기는 특히 열정적. 전자음이 뿅뿅거리고, 각종 자연의 소리가 윙윙대는 광경 속에서도 중앙에 선연히 빛나는 건 명창의 백옥같은 목소리다.

캐롤라인 폴라첵을 새 시대 팝의 선두주자로 규정할 흠잡을 데 없는 앨범이다. < Pang >이 일궈낸 애호가들의 호응과 평단의 찬사에도 여유롭게 자신의 한계를 한 걸음 더 뛰어넘으며 소포모어 징크스를 격파했다. 거대한 야망을 담은 담대한 음악적 모험. 캐롤라인 폴라첵은 팝 음악계에 무시할 수 없는 족적을 남기며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중이다.

– 수록곡 –
1. Welcome to my island 
2. Pretty in possible
3. Bunny is a rider
4. Sunset 
5. Crude drawing of an angel
6. I believe
7. Fly to you 
8. Blood and butter 
9. Hopedrunk everasking
10. Butterfly net
11. Smoke
12. Bill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