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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팬서리스(PinkPantheress) ‘Heaven Knows’ (2023)

평가: 4/5

알을 깨고 태어나는 새처럼, 틱톡이라는 세계를 떠나 힘찬 날갯짓을 시작한 핑크팬서리스가 성공적인 고공비행을 이어 나간다. 첫 정규앨범 < Heaven Knows >는 2020년대의 대중음악 트렌드로 자리매김한 UK 개러지의 선봉을 넘어 천국과도 같은 이상에 닿고자 하는 꿈이 드러난다. 틱톡 스타의 자리에서 머무르지 않고 팝 아티스트로서 뚜렷한 정체성을 보유하려는 의지가 과욕으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준수한 모습이다.

믹스테이프 < To Hell With It >에서의 여리고 불안한 감성이라는 원료는 그대로 가져가되, 음악 자체를 촘촘하게 바느질하며 더욱 거대하고 아름다운 옷을 완성한다. 연인의 죽음으로 인한 공허함을 그린 첫 번째 트랙 ‘Another life’는 다른 생에서 재회를 소망하는 다소 극단적인 가사가 무리하게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짜임새가 좋다. 장례식을 연상케 하는 오르간 사운드에서 드럼 앤 베이스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초반부 구성으로 이번 작품에 구축된 또 다른 세상의 문을 연다. 떠나간 연인 입장에서의 불안감을 토로하는 레마(Rema)의 랩 피쳐링, 하늘에 손을 뻗는 듯 극적으로 치솟는 후반부의 기타 솔로도 훌륭하게 제 역할을 수행한다.

핑크팬서리스가 만들어 낸 세계는 결핍, 갈망, 공허, 불안으로 버무려진 감정선에서 이탈하지 않는다. 동경하는 스타에게 처절하리만큼 애정을 갈구하는 ‘True romance’, 망가진 우정에 관한 후회와 개선 의지를 그린 ‘The aisle’ 등 관계의 불균형으로 발생한 집착과 우울을 주저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다. ‘Bury me’, ‘Nice to meet you’를 포함한 여러 곡에서는 곪은 마음의 종착지로써 죽음을 암시하거나 직접적으로 그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슬픈 사랑의 이야기들 틈새에 급작스러운 성공으로 얻은 부와 명예에 관한 혼란도 끼워져 있다. 가진 것이 많아도 소중한 사람이 없으니 되려 죽은 것과 같다고 느끼는 ‘Mosquito’가 그렇다. 명성이 높아진 자신에게 매달리는 팬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하지만, 그렇다고 관심이 마냥 나쁘지만은 않은 감정을 노래하는 ‘Internet baby’의 작법은 특히 직접적이다.

부정함의 늪 속에서도 사랑의 달콤함이 느껴진다. 핑크팬서리스의 부드러운 보컬은 멜랑꼴리하고 매혹적이다. 영락없이 사랑에 빠진 사람의 목소리를 받쳐주는 멜로디는 가볍고 아름답다. 진정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익사하는 비극을 맞는 < 햄릿 >의 인물, 오필리어를 모티브로 한 ‘Ophelia’가 그렇다. 황홀한 하프를 들려주며 아름답게 시작하지만, 선명하던 비트가 점점 흐려지는 구성은 물에 잠기며 생명이 꺼지는 듯하다. 타의에 의한 죽음임이 확실해지자 들려오는 사이렌과 아웃트로의 기포 소리는 이야기에 섬뜩한 몰입감을 더한다.

자신만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가득한 핑크팬서리스는 그것을 해냈다. 풍부한 스토리텔링, 트렌디한 음악의 강화, 새로운 세대의 시선, ‘Boy’s a liar pt. 2’로 대표되는 메가 히트곡이자 킬링트랙 등 < Heaven Knows >에는 데뷔 앨범만이 가질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현 유행의 지속 기간에 대해서는 하늘만이 알고 있겠지만, 일단 지금은 그 하늘을 유유히 날아다니며 비행운을 만들어 내는 핑크팬서리스의 궤적을 즐겁게 따라갈 뿐이다.

– 수록곡 –
1. Another life (feat. Rema)

2. True romance
3. Mosquito
4. The aisle
5. Nice to meet you (feat. Central Cee)
6. Bury me (feat. Kelela)
7. Internet baby (interlude)
8. Ophelia
9. Feel complete
10. Blue
11. Feelings
12. Capable of love
13. Boy’s a liar p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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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니어스(Boygenius) ‘The Record’ (2023)

평가: 4/5

1970년대 록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슈퍼그룹’이란 단어가 익숙할 것이다.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진 연주자들이 의기투합한 일종의 드림팀을 일컫는 말로 영국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아시아처럼 오랜 기간 유지되는 사례도 있으나 대부분 단발성 프로젝트로 끝맺음했다. 인디 포크계의 걸출한 세 작가 피비 브리저스와 줄리언 베이커, 루시 데이커스가 조직한 보이지니어스는 보기 드문 여성 슈퍼그룹으로서 21세기의 문화적 담론의 향방을 제시하며, 첫 번째 정규 앨범 < The Record >는 시작점의 선언문과도 같다.

2018년에 발매한 데뷔 EP < The Rest > 이후 4년 반 동안 구성원 각자 쌓은 음악적 성숙은 < The Record >의 완성도를 높였다. 2021년부터 본격적으로 재개된 3인조 활동은 존중과 화합을 토대로 한 긴 소통을 거쳐 < The Record >로 완주되었다. ‘$20’부터 ‘Cool about it’까지 순차적 싱글 발매로 기대감을 끌어올린 측면도 영리했다.

보컬 하모니와 멤버별 인장이 공존한다. 데이커스의 True blue’가 온기를 드리운 반면 베이커의 음울과 침잠을 녹인 ‘Anti-curse’는 이십여년을 접어 피제이 하비의 얼터너티브 록을 모색했다. 브리저스는 ‘Emily I’m sorry’를 통해 < Punisher >(2020) 의 선율 감각을 드러냈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The Boxer’를 오마주한 ‘Cool about it’과 레너드 코헨의 ‘Anthem’을 부분 발췌한 ‘Leonard Cohen’처럼 영감의 대상에 존경도 표했다.

“네 집부터 리노(미국 네바다 주 도시)까지 멈추지 않고 달렸지(It’s an all-night drive from your house to Reno)”로 해방감을 표현한 ‘$20’과 “천사일진 몰라도 신이 될 수 없어(Always an angel, never a god)”이란 의미심장한 구절을 담은 ‘Not strong enough’같은 강한 질감의 곡들은 부드러운 인디 팝에서 아메리카와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의 포크 록으로 영지를 확대했다.

밴드는 하나의 인격체다. 피비 브리저스와 줄리언 베이커, 루시 데이커스의 세 이름이 스르르 흐릿해진 40 여분의 시간에 보이지니어스의 활자가 음각된다. 공동체의 융합을 이룬 < The Record >는 담백하고도 담대한 음반명처럼 사상과 소리 그 본질에 천착한다. 보이지니어스는 이제 시작이다.

-수록곡-
1.Without you without them
2.$20
3.Emily I’m sorry
4.True blue
5.Cool about it
6.Not strong enough
7.Revolution 0
8.Leonard Cohen
9.Satanist
10.We’re in love
11.Anti-curse
12.Letter to an old po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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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일리 미노그(Kylie Minogue) ‘Tension’ (2023)

평가: 3.5/5

카일리 미노그는 대중의 기대와 본인의 강점이 만나는 지점에 정확히 서 있는 아이콘이다. 30여년이라는 오랜 활동기간 동안 음악적 외도가 없진 않았으나 곧 관성처럼 댄스 플로어로 돌아와 밝게 빛났다. 가벼운 도발 < Kiss Me Once >, 무난한 캐럴 < Kylie Christmas >, 나쁘지 않은 컨트리 < Golden >, 미러볼이 반짝이는 < Disco >를 거치며 자신을 제련하던 그가 마침내 다이아몬드가 되어 대중 앞에 다시 나타났다.

< Tension >의 초반부는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즐거운 분위기로 화려하게 빛난다. 그 시작은 ‘Padam padam’이다. 4/4박자로 단순하게 내리꽂는 비트는 심장 소리와 절묘하게 융합되어 지루함이 없고, 중독성 강하면서도 깔끔한 훅은 카일리 미노그의 도발적인 이미지와 맞아떨어진다. 서정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가 인상적인 ’Hold on to now’, 복고적인 신스 팝의 골조를 지닌 ‘Things we do for love’와 ‘You still get me high’, 축제의 분위기를 이어나가는 기쁨의 하우스 ‘One more time’, 모두 선명한 멜로디와 함께 한 치의 과잉 없이 강렬한 존재감을 지닌다.

도자 캣이 연상되는 ‘Hands’부터 다소 빛이 바랜다. ’Green light’는 안전한 흐름 위에 색소폰 소리만 공허하게 맴돈다. 앨범의 하이라이트가 되어야 했을 ‘Vegas high’는 이미 식은 분위기를 되돌리지 못하는 뻘쭘한 댄스가 되어버린다. 2010년대의 하우스로 자리를 옮기는 ’10 out of 10’ 역시 다른 곡들과 제대로 섞이지 못한 상황에서 홀로 열심히 몸을 흔들 뿐이다. 다행히 마지막 트랙 ‘Story’가 다시 형태를 되잡고 아름답게 반짝인다. 멋진 워킹 도중에 발을 헛딛었지만, 그럼에도 고고한 아우라를 잃지 않고 다시 멋지게 마무리하는 슈퍼모델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아이콘의 부활 선포다. 커리어의 집대성이자 그의 강점만 효과적으로 뽑은 세련된 초반부가 그 근거다. 그 순간만큼은 2010년대의 수작인 < Aphrodite >를 넘어서며 최고 전성기인 2000년대의 < Light Years >, < Fever > 두 앨범에도 가까이 다가간다. 아쉬운 선택들도 포착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디스코를 비롯한 현재의 댄스 팝 트렌드와 오랜 관록이 맞물려서 생긴 좋은 결과 자체에 더 주목하게 된다. < Tension >은 유행이 한 바퀴 돌 때마다, 카일리 미노그도 다시 한 바퀴 돌아온다는 증거로 아주 적절하다. 그 모습은 어렵거나 난해하지 않다. 리듬에 맞춰서 행복하게 놀면 그만이다.

– 수록곡 –
1. Padam Padam
2. Hold on to now
3. Things we do for love
4. Tension
5. One more time
6. You still get me high
7. Hands
8. Green light
9. Vegas high
10. 10 out of 10
11.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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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싱크(N Sync) ‘Better place (From Trolls band together)’ (2023)

평가: 2.5/5

21년 만에 모여서 발표한 ‘Better place’는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목소리로 출연하는 애니메이션 < 트롤 밴드 투게더 >의 삽입곡으로 그가 쉴비백, 에이미 알렌과 공동으로 작곡했고 옛 동료들과 함께 노래도 불렀다. 처음부터 끝까지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입김이 작용한 이 곡은 마치 엔 싱크의 멤버 중에서 가장 성공한 그가 상대적으로 빛을 보지 못한 친구들에게 적선하는 자선 싱글 같다.

더 위켄드 풍의 곡 진행과 도자 캣 스타일의 리듬 기타를 앞세워 복고적인 댄스팝으로 탄생한 ‘Better place’는 현재 대중음악의 유행을 끌어 모은 트렌드의 용광로다. 여기에 K-팝 보이밴드들의 인기에 자극 받은 엔 싱크가 예전에 자신들도 있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확인받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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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얄 블러드(Royal Blood) ‘Back To The Water Below’ (2023)

평가: 2.5/5

지속성에 의문이 따라붙었던 로얄 블러드의 베이스, 드럼 2인조 구성은 크고 작은 시도를 통해 생명을 연장했지만, 그들에 대한 대중적 관심도는 앨범을 낼수록 오히려 하향선을 그렸다. 퀸스 오브 더 스톤 에이지의 프런트맨 조시 하미의 프로듀싱하에 급진적인 변화를 택한 < Typhoons >는 과감했고 결과물도 준수했으나 이미 멀어진 관심을 돌려놓지 못했다. 야심 차게 기획한 댄스파티가 끝났으니, 집에 돌아갈 일만 남았다. < Back To The Water Below >, 그들은 2년 만에 물밑으로 되돌아간다.

본인들이 직접 프로듀싱을 맡아 초기의 하드 록으로 돌아갔으나 9년 전의 데뷔작 < Royal Blood > 만큼의 화끈함은 줄었다. 그 당시 완벽하게 만든 본인들의 흥행 공식이라는 껍데기만 다시 뒤집어쓴다. 시작부터 휘몰아치며 질주하는 ’Mountains at midnight’는 맛 자체는 강렬할지언정 참신한 요소가 없다. ‘Shiner in the dark‘ 역시 기존에 해오던 방식의 반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선명한 멜로디와 보컬리스트 마이크 커의 가성이라는 보장된 조미료로 그나마 버틴다.

수면 아래 잠든 피아노가 몸을 일으키는 ’Pull me through’부터 분위기가 달라진다. 잘게 부서지는 피아노가 애절함을 더하는 ‘The firing line‘, 록 오페라와 같은 구성으로 후반부를 장식하는 ’There goes my cool’과 ’Waves‘까지, 피아노의 도입으로 넓어진 음악적 표현 범위를 확인할 수 있다. 슬픔이 배인 마이크 커의 보컬도 건반 아래로 녹아든다. 문제는 피아노가 중심에서 울려 퍼짐과 동시에 이들의 기존 강점이 사라지면서 그저 조금 더 얇은 목소리의 뮤즈처럼 변모한다는 것이다.

결국 앨범의 꽃은 피아노를 변방으로 밀어낸 하드 록에서 피어난다. 초반부의 무미건조한 재탕과는 달리, 이번 작에서 거의 유일하게 초기작의 혈기가 고스란히 담긴 ‘Triggers’는 축 처지는 중반부 사이에서도 번뜩이는 멜로디로 고고하게 매력을 발산한다. 앨범의 절정 파트를 담당하는 ’High waters’는 앨범 내내 등장하는 물의 심상으로 응축된 감정을 폭발시킨다. 피아노 중심은 곧 강점 소멸이고, 피아노를 밀어내니 기존 작법의 재탕이다. 게다가 그 재탕의 결과물이 더 준수하니, 혁신이 아닌 딜레마와 마주하게 된다.

멜로디메이킹 면에서의 감각이나 보컬의 뛰어난 호소력은 여전히 증명하고 있지만, 결과물이 애매하다. < Typhoons >처럼 뚜렷한 변신을 한 것도, < How Did We Get So Dark? >처럼 데뷔앨범부터 완성한 자신들의 공식을 대놓고 다시 쓰는 것도 아니다. 두 명이 악기 두 개로 만들어 내는 강렬한 록 사운드가 강점이었던 그들에게 추가된 피아노의 존재는 재도약의 날개라기보다는 간신히 일어서게 도와주는 목발에 가깝다. 물밑으로 돌아간 것 자체는 좋지만, 정말 돌아가기만 했다. 수면 위로 얼굴이라도 내밀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인 걸까.

– 수록곡 –
1. Mountains at midnight
2. Shiner in the dark
3. Pull me through
4. The firing line
5. Tell me when it’s too late
6. Triggers
7. How many more times
8. High waters
9. There goes my cool
10. Wav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