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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아이디(J.I.D) ‘The Forever Story’ (2022)

평가: 4/5

신의 스포트라이트와 ‘드림빌 특급 유망주’라는 칭호. 최근 몇 년 사이 일궈낸 힙합 팬들의 열띤 지지가 부담으로 다가올 법도 하지만 제이아이디는 그 모든 기대를 찬사로 맞바꾼다. 2017년 제이 콜이 이끄는 드림빌 레코드 입단을 발판 삼아 정규작 < The Never Story >와 < Dicaprio 2 >를 발매하며 주가를 올린 그의 신보는 그가 그저 유망주가 아닌 어느덧 신을 이끌 수 있는 리더로 성장했음을 천명하는 작품이다.

야심이 그 여느 때보다 거대하다. ‘네가 엄마를 위해 연주할 노래를 가져왔지 / 여자들에게 들려줄 노래도 가져왔지 / 약쟁이들에게 팔 것도 가져왔지'(‘I got the sh*t you could play for your mama / I got the sh*t you could play for the hoes / I got the sh*t you could sell to the trappers’)라는 ‘Raydar’의 가사를 보라. 이 말이 허풍이 아닌 게, 음반은 자기 과시 트랙과 진심 어린 발라드, 가슴 시린 가족 이야기까지 실로 다양한 주제를 아티스트의 일취월장한 역량과 연결 지어 눌러 담는다. 제이아이디의 커리어 최고작이라는 평가도 평단과 애호가들 사이에서 속속 나온다.

초반부의 자기 과시 트랙들은 래퍼로서의 제이아이디에 주목하는 구간이다. ‘Never’나 ‘Off deez’ 등 이전의 뱅어에서 드러난 그의 랩은 한 방 카운터보다 스피드와 잽에 능한 복서처럼 묵직하기보다 가볍게 툭툭 치는 듯한 발성과 촘촘한 플로우가 특징. 본작에서도 그 주무기는 강력하다. 무거운 베이스 위로 날렵하게 라임을 내리꽂는 ‘Raydar’, 이전과 비교해 힘을 뺀 랩이 21 새비지와 찰떡궁합을 이루는 ‘Surround sound’가 중독성 있다. 특히 2절의 예측 불가한 플로우 스위치로 그의 재능을 유감없이 펼친 ‘Dance now’는 올해 최고의 힙합 싱글 중 하나.

프로듀서 크리스토(Christo)가 총괄하고 캐나다 연주 밴드 배드배드낫굿, 베이시스트 썬더캣 등 재즈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한 프로덕션은 옛 재즈와 소울의 향취로 고풍스럽다. ‘Bruddanem’에서는 신스 펑크(Funk) 그루브 위 흡사 앤더슨 팩처럼 노래하기도 하고, 모스 데프가 피쳐링해 무게감을 살리는 ‘Stars’에서는 부유하듯 몽환적인 오케스트레이션이 일품이다. 올드 힙합과 블랙 뮤직에 대한 헌사는 ‘Surround sound’에서 본격적으로 행해지는데, 아레사 프랭클린의 ‘One step ahead’를 모스 데프의 1999년 작 ‘Ms. Fat Booty’와 거의 동일한 방식으로 샘플링했다. 옛 힙합 팬들에게는 반가움을, 신세대 리스너들에게는 신선한 감흥을 전달할 신구를 아우르는 전략이다.

음악적 완성도와 더불어 세밀하고 진심 어린 가사도 깊은 인상을 남긴다. 주된 글감은 각별한 가족 이야기. 전작에서도 자전적인 메시지를 드러낸 바 있는 그이지만 본작에서는 일곱 남매로 자란 어린 시절 배경을 더욱 구체적으로 풀어내며 서사의 밀도를 높였다. ‘Crack sandwich’는 이웃과의 다툼을 통해 더욱 끈끈해진 남매의 일화를 생생한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고, 음울한 비트와 제임스 블레이크의 몽환적인 후렴구가 공존하는 ‘Sistanem’에서는 돈을 벌고 유명해질수록 소홀해진 여형제와의 관계를 한탄한다. 이 분야에서 백미는 단연 ‘Kody blu 31’. 언뜻 빌 위더스의 ‘Lean on me’가 연상되는 포근한 멜로디로 일찍 세상을 등진 친구의 아들을 애도하는 노래는 ‘그럼에도 삶은 계속해서 나아가야 한다’는 강인한 메시지를 새기며 단연 앨범에서 가장 진한 여운을 남긴다.

힘들었던 과거에 마냥 사로잡힐 수는 없기에, 그는 나은 미래를 소망하고'(‘Better days’) 인생의 많은 낙관에도 ‘사랑을 느껴라’ 청자를 독려한다.(‘Lauder too’) 그가 앞날을 향해 새긴 한 줄 희망의 언어가 보편의 메시지로서 제이아이디 자신을 넘어 우리에게 닿을 때 기품 있는 엔딩 크레딧이 장식된다. 만개한 기량과 깊어진 서사가 빛을 발하는 올해 최고의 랩 앨범 중 하나다. 드림빌 에이스의 성장이 절정에 달했다.

– 수록곡 –
1. Galaxy
2. Raydar
3. Dance now (Feat. Kenny Mason) 
4. Crack sandwich
5. Can’t punk me (Feat. EarthGang)
6. Surround sound (Feat. 21 Savage, Baby Tate) 
7. Kody blu 31 
8. Bruddanem (Feat. Lil Durk)
9. Sistanem 
10. Can’t make u change (Feat. Ari Lennox)
11. Stars (Feat. Yassin Bey, BadBadNotGood)
12. Just in time (Feat. Kenny Mason, Lil Wayne)
13. Money
14. Better days (Feat. Johnta Austin) 
15. Lauder too (Feat. Raven Lenae, Allen K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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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아이드 피스(Black Eyed Peas) ‘Elevation’ (2022)

평가: 3/5

2009년 작 < The E.N.D >는 광풍을 일으켰다. 팝 음악을 덜 듣는 한국의 고등학생들도 ‘Boom boom pow’를 흥얼거렸고 이 곡과 함께 ‘I gotta feeling’과 ‘Imma be’가 빌보드 핫100 정상에 올랐다. ‘Where is the love?’와 ‘Let’s get it started’, ‘Shut up’으로 존재감을 터뜨린 세 번째 정규 앨범 < Elephunk >을 내놓은 지 꼭 6년 만이었다. < The E. N. D >의 일대 현상에 미치지 못했으나 영화 < 더티 댄싱 >의 수록곡 ‘(I’ve had) the time of my life’를 일렉트로 팝으로 바꿔 놓은 ‘The time (dirty bit)’을 대중에 각인했다.

휴지기를 거쳐 8년 만에 발표한 < Masters Of The Sun Vol. 1 >은 대장부 퍼기 대신 필리핀 출신 가수 제이 레이 소울(J. Rey Soul)을 영입해 만든 첫 작품이었다. 그룹의 입지가 내려간 지 오래고 상업적 반응도 미미했으나 본령인 힙합으로의 회귀를 반기는 팬들도 적잖았다. 라틴 음악의 경향성에 영합했다는 지점에서 2020년 작 < Translation >과 궤를 함께하는 신보 < Elevation >은 중독적인 댄스 팝의 연속으로 다시금 대중성을 모색했다.

힙합과 팝, 전자음악의 자연스러운 혼합은 블랙 아이드 피스의 강점이며 여기에 라틴 리듬과 레게톤을 더해 사운드의 폭을 넓혔다. 퍼기의 록적인 음색과 대비되는 제이 레이 소울의 감각적 가창과 랩이 ‘Double d’z’를 관통하고 레게톤의 대표 주자 대디 양키(Daddy Yankee)는 ‘함께 춤춰요’라는 뜻의 ‘Bailar contigo’에 장르 색을 입혔다. 리사 리사 앤 컬트 잼과 릭 제임스의 펑크(Funk) 샘플링에 기댄 전작과 달리 멤버들의 역량을 충분히 분출했다. 샤키라와 프랑스 출신 세계적 디제이 데이비드 게타로 드림팀을 꾸린 ‘Don’t you worry’는 그룹 본연의 국제성과 화합의 주제 의식을 드러냈다.

숱하게 들어왔던 기계음이 고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축적된 내공이 자극점을 꿰뚫지만, 기시감과 키치함을 느끼는 순간 흥분감은 사그라든다. 약점을 포착한 베테랑 프로듀서 윌 아이 엠은 빅비트 밴드 프로디지의 동명의 곡에서 최소한의 기타 사운드를 추출한 ‘Fire starter’와 미니멀한 라틴 트랙 ‘Filipina queen’으로 변주를 꾀했다.

윌 아이 엠 창작력의 고점과 퍼기의 카리스마가 합세한 최전성기의 위력에 미치지는 못했다. 비슷한 질감의 댄스 팝 행렬은 청각적 쾌감과 깊이감 부족의 양날 검을 안고 가나 ‘사반세기 그들 덕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얼싸앉고 춤췄는가?’ 공로를 상기한다. 앨범의 7번 트랙 ‘Guarantee’처럼 블랙 아이드 피스의 음악은 유쾌감을 보장한다.

-수록곡-
1. Simply the best
2. Muevelo
3. Audios
4. Double d’z
5. Bailar contigo
6. Dance 4 u
7. Guarantee
8. Filipina queen
9. Jump
10. In the air
11. Fire starter
12. No one loves me
13. Don’t you worry
14.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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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인 ‘광합성’ (2022)

평가: 3.5/5

마마무 멤버 중 누구를 떼어놓아도 역량 있는 가수이기에 홀로서기 욕심에 대해서 의문점이나 꼬리표가 붙지 않는다. 특히 독특한 음색으로 보컬 파트를 소화했던 휘인은 2021년 다른 멤버들과 달리 기존 소속사와 계약을 만료하고 다른 레이블과 손을 잡으며 야망을 표출했다. 올해 초 담백한 멜로디와 발군의 노래 실력이 돋보인 미니 앨범 < Whee >로 본격적인 분화에 박차를 가한 그가 곡의 작곡가이자 피처링으로 참여한 콜드와 함께 ‘광합성’으로 솔로 커리어를 잇는다.

별다른 꾸밈 없이 어쿠스틱 재즈로 일관한 사운드 위에 군더더기 없는 보컬만을 얹었다. 남녀 듀엣곡의 전형화된 파트 주고받기도, 감정과잉도 없다. 피아노와 기타 등 몇 가지 악기와 두 사람의 미성만으로 곡을 진행한다. 평범한 일상을 위로하며 따뜻함을 주는 가사와 이에 맞아떨어지는 제목, 깔끔한 노래의 전개가 조화를 이룬다. 낙엽이 거리를 메우고 추운 겨울이 다가오는 요즘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볕처럼 포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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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거레츠 애프터 섹스(Cigarettes After Sex) ‘Pistol’ (2022)

평가: 2.5/5

슬로우코어의 관건이 배합 비율이라 일컫는 것은, 질감과 분위기가 주가 되는 장르인 만큼 그 미묘한 차이에도 변화가 휙휙 체감되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정제에 초점을 둔 1집과 미니멀리즘 노선에 탑승한 2집의 선례처럼, 계속해서 은은한 변화구를 던지고 있는 시거레츠 에프터 섹스의 이번 과녁은 우울하기만 하던 작풍의 소소한 반전이다.

우선 적막에 가깝던 드럼 사운드를 전면으로 부각하며 박자감과 리듬감을 획득했다. 악기의 순번만 바꿨을 뿐인데 외로운 춤사위에서 어느덧 애인과 추는 가벼운 왈츠에 가까워진 셈. 다만 전반적인 구성부터 기본 멜로디 모두 타성에 젖어있는 탓에 전작과의 차별점을 느끼기 힘들다. 전형을 벗어나기 위한 밴드의 꿈틀거림이 반갑기에 아직은 헛헛한 싱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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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쉬 아일랜드(ASH ISLAND) ‘Everything’ (2022)

평가: 3/5

2020년에 창모의 ‘Meteor’가 있었다면, 2021년에는 애쉬 아일랜드의 ‘멜로디’가 있었다. 대중 친화적 싱잉랩에 록을 연상케 하는 스타일의 음악까지, 2019년 데뷔 앨범 < Ash >의 타이틀 곡 ‘Paranoid’ 때부터 뽐내던 애쉬 아일랜드만의 개성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신곡 ‘Everything’은 지금까지와 그 성격이 매우 다르다. 물론, 이러한 작은 특징 몇 개로 그를 전부 대변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분위기만 보자면 정규 1집에서 전체적으로 풍기던 어두운 공기를 닮았다. 힙합 리듬 뒤로 여러 악기와 보컬이 자리해 있는 사운드가 인상적이다. 들릴 듯 말 듯 숨어있는 전기 기타 또한 무시할 수 없는 흡인력을 발휘한다. 선율, 라임 등 음악적 장치보다 노래의 깊은 정서를 살리기 위해 소리의 앞뒤 배치를 적절히 활용했다. 그외 특별한 소구력이 보이진 않지만, 이것 하나로도 듣는 맛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