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Album POP Album

슬로타이(slowthai) ‘TYRON’ (2021)

평가: 4/5

충격적인 데뷔였다. 2019년, 모국의 브렉시트 정책을 비판한 첫 번째 앨범 < Nothing Great About Britain >으로 오피셜 차트 9위를 차지한 슬로타이는 영국 악센트로 내뱉는 날것의 플로와 날카로운 정치적 메시지로 순식간에 대중과 평단의 이목을 끌었다. 다만 머큐리 프라이즈 시상식에서 보리스 존슨 총리의 잘린 목 모형을 흔들며 논란을 일으키는 등 주목도와 비례하는 기괴한 행보는 그를 비난할 구실이 되었고, 슬로타이는 자신을 차분하게 돌아볼 시간을 갖는다. 그의 본명을 내세우며 거칠었던 외면에 묻힌 내면을 드러낸 두 번째 정규 < TYRON >이다.

짜임새부터 눈에 들어온다. 대문자와 소문자로만 적힌 제목으로 확실하게 영역을 나눈 앨범은 그를 대표했던 스타일, 힙합과 그라임으로 꾸려진 CD 1로 시작한다. 긴박한 샘플의 반복과 묵직한 비트로 구성된 ’45 SMOKE’로 출발하는 슬로타이의 래핑은 곧 반주의 변화를 거쳐 광기를 표출하고 트랩이 가미되며 스켑타(Skepta)의 중독적인 훅이 지배하는 ‘CANCELLED’과 에이셉 라키(A$AP Rocky)의 ‘MAZZA’에서도 밀리지 않는 존재감을 발휘한다.

‘VEX’ 이후부터 CD 2 이전까지의 흡인력이 대단하다. 트랙 ‘WOT’은 짧은 플레이 타임 속 잘게 나눠진 신시사이저와 톤 다운된 목소리로 낮게 깔린 분위기를 형성한 뒤 몰아치는 랩이 돈이 아닌 음악을 통해 영원히 살아남고 싶은 다짐을 밝히는 ‘DEAD’까지 이어진다. 초조하게 소셜미디어, 나태, 고정관념 등에 대한 반감을 쏟아내는 전개가 다소 지칠 수 있지만 < TYRON >의 첫 파트는 곡마다 변주를 통해 쉴 틈 없이 긴장을 유지한다.

팽팽하게 당겨진 앨범은 ‘PLAY WITH FIRE’의 경쾌한 총성으로 끊어진다. 느슨한 박자 위로 ‘부정에서 찾은 긍정’이란 기존의 그와 다른 화두를 던지며 다음 페이지를 암시하고 자연스럽게 ‘i tried’로 연결된다. 보컬 소스와 로파이로 전달하는 슬로타이의 개인적 기록은 불행한 과거를 ‘다른 곳에 집중’해 벗어난 경험 ‘focus’를 지나 유기성을 획득하며 CD 2의 전반적인 서사를 가꿔간다. 노샘프턴 출신 아티스트의 절대 순탄하지 않았던 생애는 ‘push’로부터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고 항상 주변에 머무는 것들에게 감사를 표현하는 ‘nhs’까지 더해 처절하지만 따뜻하게 청자를 감싼다. 고단한 재생의 과정이 부드럽게 마음에 스며든다.

참여진의 활약도 두드러진다. 도미닉 파이크와 덴젤 커리의 후렴이 매력적인 ‘terms’와 공동 프로듀서 돔 메이커(Dom Maker), 제임스 블레이크가 선사하는 세상을 떠난 동생에 대한 추모곡 ‘feel away’는 공간을 가득 채우는 앰비언트 사운드로 몽환적이다.

어느 때보다 편안하지만 결국 분노와 절규로 귀결되는 마지막 트랙 ‘adhd’가 < TYRON >을 요약한다. 위로와 울분 등 어쩌면 일관되지 못하고 양분된 감정이 혼란스럽지만 이 또한 규정지을 수 없는 슬로타이. 아니 인간 타이론의 순수한 형태이다. 결핍을 양분 삼아 뻗어가는 뿌리에 어떠한 설득도 필요하지 않다.

-수록곡-
CD 1
1. 45 SMOKE
2. CANCELLED (With Skepta)
3. MAZZA (With A$AP Rocky)
4. VEX
5. WOT
6. DEAD 
7. PLAY WITH FIRE 

CD 2
1. i tried 
2. focus
3. terms (Feat. Dominic Fike & Denzel Curry)
4. push (Feat. Deb Never)
5. nhs 
6. feel away (Feat. James Blake & Mount Kimbie)
7. adhd

Categories
Album POP Album

시아(Sia) ‘Music'(2021)

평가: 3/5

시아의 활동 범위가 이제 영화로까지 이어진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개봉 예정이 없지만 자국인 호주에선 지난 1월 14일 공개돼 먼저 관객을 만났다. 영화 < Music >. 2007년 직접 쓴 단편 소설을 각색해 만든 뮤지컬 형식의 극으로 작품 속 10개의 사운드트랙 역시 시아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작년 한 인터뷰에서 이 영화를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다고 회고한 그는 이 창작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다. 즉, 9번째 정규 음반이자 감독 데뷔작 < Music >에 영향받아 쓴 동명의 앨범은 새로운 시작을 위한 ‘맺음’을 담당한다.

우선의 숨 고르기 앞서 음반의 얼개는 다소 헐겁다. 스스로 이 정규 음반을 단순한 사운드트랙이 아닌 스튜디오 음반이라 명명했으나 전체적인 흐름과 에너지가 전에 비할 것이 못 된다. ‘Chandelier’라는 그해 최고의 히트 싱글을 탄생시킨 < 1000 Forms Of Fear >(2014)의 강렬한 퍼포먼스나 다른 가수들에게 선택받지 못한 곡들에 새 숨결을 불어 넣은 < This Is Acting >(2016)의 신선한 구성. 혹은 < Everyday Is Christmas >(2017)의 쫀득한 멜로디와 화려한 색감이 어딘지 모르게 부족하다.

앨범의 구심력을 끌어올 구성보단 각 곡의 인상에 더 힘을 쓴 기색이다. 말하자면 보너스 트랙을 포함한 14개의 곡은 각자 저마다의 굴곡을 가지고 있다. 수록곡이 모두 모여 하나의 파도를 만들기보단 잔잔한, 크고 작은 14개의 물결이 모였다. 영화 속 영상과 만났을 때 확실한 화력을 장착할 곡들은 선공개된 싱글 ‘Together’, ‘Hey boy’, ‘Courage to change’ 등을 제외하곤 부피가 크지 않다. 시아의 검증된 작사, 작곡 실력이 이번에도 대번 그 힘을 보여준다고 할지라도 곡 사이 편차가 클 수밖에 없다. 미드 템포의 일렉트로 팝 ‘Eye to eye’와 피아노를 바탕으로 점점 웅장해지는 ‘Music’이 교차하여 재생될 때 수록곡은 각자도생하며 선명히 기억에 남는 건 꾹꾹 눌러 사운드를 꽉 채운 노래가 될 뿐이다.

얼마나 새로운 모습이 있는가, 혹은 얼마나 더 인상적인 모습이 있는 가란 질문의 답은 쉽지 않다. 확실한 건 기세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영국 가수 두아 리파와 함께 작업한 ‘Saved my life’, 쭉쭉 뻗어 나가는 가창이 일품인 ‘Floating through space’, 힙합 비트의 ‘Play dumb’ 등 여전히 그가 좋은 곡을 쓴다는 것이다. 여기서 고민은 다시 시작점에 놓인다. 비단 ‘사운드트랙’만이 아닌 정규 앨범은 ‘사운드트랙’이어야 설명될 수 있는 빈틈들이 많다. 거칠지만 갈라지지는 않는 시아의 목소리, 전매특허인 매끈한 선율들이 담겨있지만 음반 전체의 이어짐이 부족하다. 때문에 작품의 메시지 또한 성기게 흘러간다. 영화의 스토리 없이 존재하기엔 힘이 약하다.

– 수록곡 –
1. Together
2. Hey boy
3. Saved my life
4. Floating through space(Feat. David Guetta)
5. Eye to eye
6. Music
7. 1+1
8. Courage to change
9. Play dumb
10. Beautiful things can happen
11. Lie to me
12. Oblivion(Feat. Labrinth)
13. Miracle
14. Hey boy(Feat. Burna Boy) [Bonus Track]

Categories
Album POP Album

릴 더크(Lil Durk) ‘The Voice’ (2020)

평가: 2.5/5

트랩 힙합의 한 분파인 드릴 뮤직(Drill Music)을 대표하는 래퍼 릴 더크의 여섯 번째 정규 음반. 2010년대 초 발매한 양질의 믹스테이프로 시카고의 촉망받는 래퍼로 거듭난 그는 거친 생활을 경험하며 감옥에도 여러 차례 드나든 이력이 있는 갱스터 출신이다. 그에 반해 음악가로서는 매년 작품을 꾸준히 만들어온 성실한 다작 아티스트인 그는 드릴 뮤직 특유의 어두운 허무주의를 노래하며 최근에는 드레이크와의 합작 ‘Laugh now cry later’로 확고한 인지도를 다지기도 했다.

그의 색깔로 특징지어진 멜로디컬한 래핑은 신보에서도 이어진다. 가라앉은 피아노를 중심 삼은 트랩 프로덕션 위 한층 간소해진 플로우가 안정적이다. 자신을 ‘거리의 목소리’라 칭하며 갱스터의 삶을 이야기하는 내용도 여전하다. ‘누가 죽는 게 쉽댔어’라 총살당한 그의 오랜 친구를 연민하는 ‘Death ain’t easy’, ‘나는 내가 믿는 사람에게 투표조차 할 수 없다’며 중범죄자가 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The voice’는 그의 감정을 잘 녹여낸 곡이다. 빠른 템포의 알앤비 트랙 ‘Stay down’에서 래퍼 블랙(6LACK)과 영 떡(Young Thug)을 대동해 좋은 합을 이루는 콜라보 감각도 주목할만하다.

그러나 이렇다 할 발전이 감지되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무난한 프로덕션이 안정성을 보장하지만 특이점 없이 안전하기만 한 비트는 유튜브에 무료로 풀린 타입 비트처럼 밋밋하다. 스트링 세션을 쌓아 올린 ‘Coming clean’과 어쿠스틱 기타로 분위기를 환기하는 ‘Not the same’ 정도가 개성적인 사운드를 선사한다. 또한 멜로디의 감도가 그리 높지 않은 데다가 반복에 매진하고, 콘셉트에 맞춘 전략인지는 몰라도 랩 끝을 흐리는 발성과 어색하게 겹쳐진 오토튠도 몰입을 방해한다. ‘Laugh now cry later’나 퀸 나이자(Queen Naija)와 함께한 ‘Lie to me’에서 보여준 활기찬 퍼포먼스가 없어 수록곡 간의 경계가 흐릿하고 음반은 몹시 길게 느껴진다.

야심 차게 자신을 ‘시카고의 제이 지’라 칭한(‘The voice’) < The Voice > 속 그의 목소리에 커뮤니티를 대변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다. 비슷비슷한 감성을 이루는 열여섯 수록곡에서 뮤지션으로서의 존재감이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 작년 고인이 된 오랜 친구 킹 본(King Von)과 꾸린 ‘Still trappin”같은 뱅어가 그나마 중독을 의도하며 빌보드 싱글 차트 순위권에도 얼굴을 내밀었지만 이 역시 2013년 그의 대표곡 ‘Dis ain’t what u want’에 견줄 정도는 아니다. 이번에는 너무 정직했다.

– 수록곡 –
1. Redman
2. Refugee
3. Death ain’t easy 
4. The voice 

5. Backdoor
6. Still trappin’ (Feat. King Von) 
7. Stay down (Feat. 6LACK, Young Thug)
8. Free jamell (Feat. YNW Melly)
9. Misunderstood
10. Not the same
11. India pt. 3
12. Coming clean 
13. Going crazy 

14. Changes
15. Lamborghini mirrors (Feat. Booka600)
16. To be honest

Categories
Album POP Album

푸 파이터스(Foo Fighters) ‘Medicine At Midnight'(2021)

평가: 3.5/5

현재라는 시제를 치열하게 다그치는 리빙 레전드

지금의 록의 시대가 아니다. 그래도 현재 록 음악계에서 ‘꾸준함’이라는 단어와 가장 적합한 인물이 누굴까. 바로 푸 파이터즈(Foo Fighters)의 데이브 그롤(Dave Grohl)이다. 깡마른 체구로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의 뒤에서 힘 넘치는 드러밍을 펼쳤던 그가 2021년 록 장르 최후의 보루가 될 줄 그 누가 알았을까. 1995년 데뷔작인 < Foo Fighters >를 시작으로 이번 열 번째 스튜디오 앨범 < Medicine At Midnight >까지 30년에 가까운 활동에서 그들은 4년을 넘기지 않게 정규 작품을 지속해서 발매하고 팬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투어를 이어왔다. 평작은 있을지언정 단 한 번의 졸작을 발표한 적이 없는 ‘록 레전드’다. 잘하는 것을 오래도록 지속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또 숭고한 과업인지 보여주는 록큰롤 베테랑이다.

< Wasting Light >(2011)로 취했던 그래미의 영광 이후 미국의 8개 도시를 주제로한 음악 지도이자, 음악사에 바치는 러브레터라 명명했던 < Sonic Highways >(2014)와 전설적인 스튜디오 사운드 시티와 그 핵심 엔진이었던 니브 콘솔, 그 속에서 쏟아져 나왔던 수 많은 마스터피스와 뮤지션들에 대한 존경을 담은 음악 다큐멘터리 < Sound City >(2013)는 규모가 큰 프로젝트였다. 너바나 활동 이후 푸 파이터즈 활동만 해도 25년이다. 지칠 법도 하고 쉬엄쉬엄할 만도 하지만, 여전의 기복이 없이 더욱 탄탄한 창작열을 불태울 수 있었던 이유는 전작인 < Concrete And Gold >(2017)에서부터 함께 합을 맞춰온 프로듀서 그렉 커스틴(Greg Kurstin)의 역할이 크다.

많은 뮤지션과의 작업이 있지만, 대표적으로 그는 < 25 >(2015)로 아델(Adele)을 전 지구적인 슈퍼스타로 올라서게 한 인물이며, 모든 음악인의 우상인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 경의 < Egypt Station >(2018)과 브릿팝의 영원한 탕아 리암 갤리거(Liam Gallagher)의 성공적인 솔로 데뷔 작품 < As You Were >(2017)을 진두지휘한, 이제는 거장이라는 수사가 아깝지 않은 명 프로듀서다. 2017년 영국의 음악 잡지인 ‘뮤직 위크’의 인터뷰에서 “그렉은 음향, 소리에 대한 직감이 누구보다도 뛰어난 인물이다. 그는 빌어먹을(Fxxking) 천재다.”라며 격정적인 칭송을 아끼지 않는다. 이는 그롤이 그렉 커스틴을 얼마나 신뢰하는지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2020년 12월, 푸 파이터즈 유투브 계정을 통해서 ‘Kurstin x Grohl: The Hanukkah Sessions’이라는 커버 곡 콘텐츠를 공개하기도 했다. 유대교의 명절인 ‘하누카(Hanukkah)’ 혹은 ‘빛의 축제(Festival of Lights)’를 기리는 뜻으로 8곡의 유대인 뮤지션의 곡이 업데이트 돼 있다. 그렉 커스틴은 유대인이다.)

2019년부터 2020년까지 < Foo Files >라는 타이틀의 스트리밍 음원을 발매했고, 주로 라이브 음원과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데모들이 주를 이뤘다. 총 10장의 이 시리즈는 밴드 25주년이라는 자축의 의미도 담고 있다. 동기간에 제작된 신작 < Medicine At Midnight >의 기조는 늘 그렇듯 ‘하던 대로’다. 조용한 멜로디의 트랙에서는 그의 이야기에 집중을 자연스럽게 이끈다. 확실한 쾌감을 전하는 곡에서는 다른 말이 필요 없다. 그냥 때리고, 부스고, 내지른다. 군더더기 없는 전개와 록 음악 전형의 폭발은 푸 파이터즈 작법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첫 번째 공개한 싱글은 ‘Shame shame’이라는 타이틀로 2020년 11월 선보였다. 사이키델릭한 코러스 위 기괴한 기운이 맴돈다. 어쿠스틱 기타 리듬 커팅 사이 데이브 그롤의 보컬은 굴곡 가득했던 삶을 반추하듯 차분하다. 그간의 곡들과는 이질감이 크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다면의 음악색은 그들이 가진 큰 장점이기도 하다. 두 번째로 선보인 ‘No son of mine’은 분위기를 반전한다. 퀸(Queen)의 ‘Stone cold crazy’에서부터 모터헤드(Motörhead)의 < Ace of Spades >(1980), < Iron Fist >(1982)의 시기와 메탈리카의 < Kill ‘Em All >(1983)의 연주들이 순차적으로 교차하며 불을 지핀다. 이는 ‘메탈 DNA’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그들의 선배들에 대한 헌사다.

2021년 1월 14일 52번째 데이브 그롤의 생일을 자축하며 공개한 ‘Waiting on a war’는 그의 둘째 딸인 하퍼 그롤(Harper Grohl)을 위해 쓴 곡이다. 딸을 학교로 데려다주는 중 “아빠, 이제 전쟁이 일어나요?”라는 질문에 가슴이 무너져 내렸던 기억을 회상했다. 그롤은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느꼈던 똑같은 불안감이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음에 큰 좌절감을 느꼈다고 한다. 이 곡은 전 세계의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멋진 미래를 이어줘야 한다는 메시지와 의지를 담고 있다. 더불어 앨범 크레딧에는 친숙한 이름이 보인다. 종종 무대 위 깜짝 게스트로 출현했던, 첫째 딸 바이올렛 그롤(Violet Grohl)이다. 그녀는 9곡 전곡의 백 보컬 아티스트로 이름을 올렸다.

고품격 하드록이 즐비하다. 우선 오프닝 ‘Making a fire’는 간결한 드러밍과 기타 리프, 신나는 여성 코러스 조합은 < Medicine At Midnight >의 경쾌한 스타터로 제격이다. 귀에 잘 들리는 록 리프가 넘실거리는 ‘Cloudspotter’는 푸 파이터즈의 정체성이 잘 드러나는 정석적인 하드록 넘버다. ‘Holding position’은 완숙한 노련미가 넘친다. 쉼 없이 새로운 톤의 리프가 등장하며 팝 기반의 멜로디, 건반의 오밀조밀한 조화가 멋지게 뒤섞인다. 이어지는 ‘Chasing birds’는 의외의 서정미가 돋보이는 레이드백(laidback) 트랙이다. 전체적으로 강성의 레퍼토리가 주를 이루지만 포근한 진행이 매력을 더하는 푸 파이터즈 식 발라드다. 이들이 왜 록의 베테랑인가는 확인할 수 있는 마지막 트랙 ‘Love dies young’에서도 구성의 미가 돋보인다. 명료한 파워 코드와 따라 부르기 좋은 선율과 어쿠스틱 무드는 마무리로써 완벽한 하모니를 이룬다.

데이브 그롤과 테일러 호킨스(Taylor Hawkins)는 앨범의 레퍼런스를 데이빗 보위(David Bowie)의 1983년 작 < Let’s Dance >의 팝 기반 사운드를 지향했다고 한다. 그리고 디스코와 모던 댄스 레코드류는 지양했다. 이런 분위기는 앨범의 타이틀 트랙 ‘Medicine at midnight’에 잘 녹아있다. 특히 기타 솔로 파트는 ‘Let’s dance’의 그것과 닮아있다. 블루스의 명인 알버트 킹(Albert King)을 오마쥬했던 스티비 레이 본(Stevie Ray Vaughan)의 또랑또랑한 기타 톤과 연주를 크리스 쉐프릿(Chris Shiflett)이 멋지게 구현했다. 보위의 마스터피스는 그야말로 레퍼런스로써 훌륭한 교본이었고, ‘Medicine at midnight’ 그에 걸맞은 영민한 결과물이다.

록 패밀리의 든든한 지지는 당연히 좋은 음악에 있다. 지금의 트랜드와 인기를 끌고 있는 음악도 물론 중요하지만, 역행을 자처한 푸 파이터즈의 모든 행보를 앞으로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과거와 현재와의 연결. 그들은 대중 음악계의 핵심 과업을 이행하는 ‘행동가 집단’이 되었다. 그가 좋아했던 선배들의 방식 그대로를 고수하며 좋은 곡을 써내고자 고심한다. 어쩌면 벗어나지 못할 악령처럼 그를 쫓았을 전설의 밴드 멤버였으며, 리빙 레전드 밴드를 이끄는 그지만 현재라는 시제를 치열하게 다그친다.

데이브 그롤과 푸 파이터즈는 과거와 지금을 잇는 몇 안 되는 고마운 존재다. 인생의 과업처럼 최첨단을 거부하고 시대를 거스른다. 그가 이야기하는 한 장의 레코드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옛 노래의 영향력은 시대와 동떨어진 고담이 되었고, 말 그대로 컴퓨터 한 대만 있으면 모든 음악 장르를 만들어낼 수 있는 요즘이지만 ‘생음악’을 그대로 레코드로 구현하려 애쓰고 이를 바로 무대 위에서 연주한다. 이는 현재를 사는 음악가와 대중 모두가 잃고 있는 ‘순수성’에 대한 고찰이며, 그 고민은 그대로 우리 모두에게 전해진다.

* Medicine At Midnight 음반 해설지를 수정한 글입니다.

– 수록곡 –
1. Making a fire
2. Shame shame
3. Cloudspotter
4. Waiting on a war
5. Medicine at midnight
6. No son of mine
7. Holding poison
8. Chasing birds
9. Love dies young

Categories
Album POP Album

숀 멘데스(Shawn Mendes) ‘Wonder'(2020)

평가: 3/5

남자가 파도 속에 허우적댄다. 물속으로 가라앉지만 그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가득하다. 현존 가장 잘나가는 젊은 팝스타 숀 멘데스의 네 번째 정규 음반은 바다처럼 깊은 사랑을 노래한다. 상대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어도 그 근원을 예측하는 건 어렵지 않다. 지난 1년간 뜨거운 공개 연애의 주인공이자 여러 인터뷰에서 밝힌 대로 아티스트에게 가장 큰 음악적 영감이 되어준 연인 카밀라 카베요가 작품의 원천이다.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개봉한 다큐멘터리 < 숀 멘데스 스토리 >에서 이야기했듯, 하늘에 떠 있는 달처럼 미처 다 담지 못할 그녀에 대한 감정을 음반은 싣고자 한다.

일종의 콘셉트 앨범이다. 사랑의 균일한 주제 아래 다양한 일화를 엮어낸다. 그렇기에 그의 이전 곡들과 내용에 근본적인 차이는 없지만, 대상이 명확한 덕에 표현은 보다 입체적이다. 상대에게 빠진 순간을 전작의 ‘Nervous’식 상황 묘사로 그려낸 ‘Higher’, 진지한 감정을 고백하는 프러포즈 송 ’24 Hours’, 복고적인 디스코로 섹스를 노골적으로 묘사한 ‘Teach me how to love’ 등의 서사는 이전보다 유기적이고 대범하다. < Illuminate >의 시원한 고음과 < Shawn Mendes >의 간드러진 팔세토를 포용하고 기타맨의 이미지를 살린 ‘Can’t imagine’으로 부드럽고 나른한 중저음을 소화하며 더욱 발전한 보컬 연기를 내비치는 것도 음반의 특기점이다.

감정의 크기를 대변하듯 프로덕션의 활동반경도 이전보다 넓다. 그의 오랜 동료이자 프로듀서인 스콧 해리스(Scott Harris)와 해리 스타일스(Harry Styles)의 < Fine Line >을 총괄한 작곡가 키드 하푼(Kid Harpoon)이 매만진 사운드는 그간 그 음악의 주축이었던 날렵한 기타의 경량화된 팝 작법 대신 한껏 덩치를 키운 외양을 그린다. 타이틀 ‘Wonder’는 대표적인 예다. 공간감 있는 백 보컬과 드럼을 가득 메워 교회 성가대 음악처럼 우람한 이 노래는 확실한 멜로디와 후렴에서 카랑하게 뻗는 하이톤이 더해져 안정적인 짜임새를 확보하고, 화사한 보컬을 겹겹이 쌓아 올린 ‘Dream’과 언뜻 퀸의 타격감이 겹쳐가는 ‘Look up at the stars’도 벅찬 사랑에 압도된 듯 웅장한 부피의 음향으로 행진한다.

이렇듯 한층 고풍스러워진 분위기가 음반의 콘셉트, 그리고 성인이 된 아티스트의 성장궤도와 잘 어울리지만, 한편으로는 덜 팝스럽게 들린다는 단점도 새긴다. 전체적으로 멜로디 감도가 높음에도 그의 입지를 공고히 했던 ‘If I can’t have you’나 국내에서 잘 알려진 ‘There’s nothing holdin’ me back’만큼의 맵시 있는 킬링 트랙이 없다.

또한, 깊은 감정을 전달해야 할 노랫말이 중간중간 ‘현자가 말했어 / 어리석은 사람만이 서두른다고’나 ‘네가 없으면 새들도 노래를 멈춰’처럼 밋밋하고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문장으로 채워질 때는 진한 인상 전달을 방해하기도 한다. 그 때문에 오랜 친구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Call my friends’나 우상 저스틴 비버와 팝스타의 어두운 이면을 자기 고백적으로 풀어낸 ‘Monster’처럼 로맨스의 영역을 벗어나 개인의 고뇌를 털어놓은 노래가 오히려 흥미롭게 다가오며 작품의 신선도를 유지한다.

< Wonder >가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며 숀은 네 장의 정규 음반을 정상에 올린 팝 음악 역사상 가장 젊은 남자 뮤지션이 됐다. 트위터의 바인(Vine) 속 노래 잘하는 소년에서 지금의 슈퍼스타에 이르기까지 숨 가쁘게 달려온 그는 본작에서 잠시 멈춰서 감정을 응시하고, 담담하게 낭만의 언어를 쌓아 올렸다. 뮤지션과 그의 뮤즈가 함께 호흡하는 음반. 서툰 면도 있지만, 숀 멘데스는 사랑의 힘을 등에 업고 성장하는 중이다.

– 수록곡 –
1. Intro
2. Wonder 
3. Higher 
4. 24 hours
5. Teach me how to love
6. Call my friends
7. Dream 
8. Song for no one
9. Monster (Feat. Justin Bieber) 
10. 305
11. Always been you
12. Piece of you
13. Look up at the stars 
14. Can’t imag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