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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절륜(絕倫)의 송라이터 로비 로버트슨(1943-2023)

The weight / Music From Big Pink (1968)
‘더 밴드’라는 무색무취한 이름은 밥 딜런과 관계한다. 로버트슨이 이끌던 록 밴드 더 호크스는 전기기타를 든 밥 딜런의 포크 록 시기에 동행했고, 점차 밥 딜런의 백 밴드(밥 딜런 앤 더 밴드) 이미지가 굳혀진 더 호크스는 자연스레 ‘더 밴드’가 되었다.

릭 당코와 리차드 마누엘, 로비 로버트슨과 가쓰 허드슨, 레본 헬름 5인이 조직한 더 밴드의 < Music From Big Pink > 음악만큼은 데뷔작이 무색한 완성도였다. 사이키델릭 록이 부흥했던 1960년대 말 루츠 록(포크와 블루스, 컨트리의 요소를 담은 록)의 역행도 깊은 음악성 덕에 설득력을 얻었다. 성경 속 인물 나자렛을 등장시킨 문학적 노랫말과 빈틈없는 악곡 전개는 밴드의 상징이자 루츠 록 걸작 ‘The weight’를 탄생시켰다. 많은 이들이 “곡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며 명성을 의문하나 ‘The weight’ 한 곡만으로 그 기준치를 뛰어넘는다.

Up on cripple creek / The Band(1969)
더 밴드는 소포모어 징크스를 허락치 않았다. 1969년 발매된 2집 < The Band >는 데뷔작 < Music From Big Pink >와 빅 브라더 앤 홀딩 컴퍼니의 < Cheap Thrills >(1968)을 제작했던 프로듀서 존 사이먼과 멤버들의 기량이 조화롭다. 남북 전쟁 속 남부 백인 하층민을 다룬 ‘The night they drove old Dixie down’과 가난한 농부를 이야기한 ‘King harvest (has surely come)’처럼 진중한 < The Band >에서 ‘Up on cripple creek ‘은 윤활유 역할을 한다. 키보디스트 가쓰 핸더슨의 클라비넷과 보컬 하모니가 음악평가 일 야노비츠(Il Janovitz)의 표현처럼 산뜻하고 캐치한 선율을 빛낸다. 구성원 대부분이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점은 더 밴드의 특징점이자 대표 키워드였다.

The shape I’m in / Stage Fright (1970)
무대공포증이란 뜻의 5번째 스튜디오 앨범 < Stage Fright >는 1970년대의 문을 활짝 열었다. 비교적 밝은 음향은 불안과 긴장을 담은 어두운 노랫말을 중화했고 앞의 두 앨범만큼 만장일치 호평은 못 받았지만 빌보드 200 5위를 획득했다. 싱글 컷 된 ‘Time to kill’의 B사이드 ‘The shape I’m in’은 빌보드 121위에 그쳤으나 무대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골든 레퍼토리가 되었다. 리처드 마누엘의 보컬과 로버트슨의 일렉트릭 기타, 가 핸더슨의 오르간 연주는 각자의 자리에서 은은한 빛을 내뿜음과 동시에 함께 쌓이며 다층성을 빚었다. 밴드의 유일한 미국인인 드러머 레본 헬름은 자서전 < This Wheel’s on Fire: Levon Helm and the Story of the Band >에서 곡을 자포자기(Desperation)로 정의하며 상기한 모순점을 부각했다.

Ophelia / Norther Lights Southern Cross(1975)
다른 뮤지션들을 커버한 4번째 정규 음반 < Moondog Matinee >(1973)은 색다른 시도였지만 완성도는 덜했다. 로버트슨의 작곡으로 독자성을 재확보한 1975년 작 < Norther Lights Southern Cross >는 또렷한 선율과 과하지 않되 안정적인 편곡과 프로덕션을 다시금 천명했다.

두 곡을 기억해야 한다. 캐나다 남동부 노바 스코샤의 분쟁 역사를 담은 ‘Acadian driftwood’와 ‘Ophelia’. < 인생 찬가 >로 알려진 미국 시인 헨리 롱펠로의 대표작 < 에반젤린 >에서 착안한 전자가 고든 라이트풋의 ‘The wreck of the Edmund Fitzgerald’처럼 문학적 서사를 둘렀다면 후자는 악곡 자체가 명징하다. 화려하지 않지만 건반악기와 관악기가 혼합된 맛깔나는 연주가 남부 재즈의 향취를 드리운다. ‘Ophelia’의 진가를 안 마이 모닝 자켓과 빈스 길 같은 후배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포크 록 명작을 리메이크했다.

Fallen angel / Robbie Robertson (1987)
조디 포스터 주연의 < 삐에로 프랭키 >(1980)와 로버트 드니로가 열연한 < 성난 황소(분노의 주먹) >(1980)처럼 사운드트랙 작업에 집중하던 로버트슨은 1987년 솔로 데뷔작 < Robbie Robertson >을 발매했다. 빌보드 200 38위와 캐나다 앨범 차트 12위를 수확한 < Robbie Robertson >엔 더 밴드 시절 동료 릭 당코와 가쓰 허드슨 뿐 아니라 보노를 비롯한 유투의 전 멤버, 최고의 재즈 편곡자 길 에반스와 프랭크 자파와 활동했던 드러머 테리 보지오, 채프먼 스틱이라는 독특한 현악기를 연주하는 토니 레빈 등 특급 지원군을 구성했다.

피터 가브리엘과 공연한 ‘Fallen angel’은 세심한 편곡과 프로덕션을 갖춘 명품 팝록이며 로버트슨과 가브리엘의 잔향이 동등하게 드러난다. 루츠 록 뮤지션 샘 라나스의 백보컬을 입힌 ‘Showdown at big sky’와 캐나다 프로듀서 겸 뮤지션 다니엘 라노이스가 참여한 ‘Somewhere down the crazy river’도 주목할 만하다. 스페인 재즈 퓨전 기타리스트 알 디 메올라는 < Robbie Robertson >을 가장 좋아하는 팝 록 앨범 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

Go back to your woods / Storyville (1991)
경력 내내 딕시랜드 재즈를 비롯한 남부 음악에 뿌리 뒀던 로버트슨 1991년 두 번째 정규 음반의 제목을 뉴올리언스의 유서 깊은 지역 스토리빌(Storyville)로 짓는다. 본격적인 재즈 음반으로 보긴 어렵지만 알렉스 아쿠냐(드럼)과 로니 포스터(해먼드 오르간)처럼 재즈에 기반한 세션 뮤지션을 기용해 악기 듣는 맛을 살렸다.

‘The way it is’의 주인공 브루스 혼스비와 듀엣한 ‘Go back to your woods’는 뉴올리언스 알앤비의 전설적인 뮤지션 워델 퀘제궤의 혼섹션과 펑크(Funk) 그룹 더 미터스의 창립자 아트 네빌의 오르간 연주가 흥겨움을 자아낸다. “스토리빌의 밤이 저물도록 여자들과 즐거운 시간을 못 보낸다면 음악이 대신 너를 흥분하게 할거야(When the night goes down on Stroyville, If the women don’t get you, then the music will get your trills)”란 가사가 곡의 생동감을 요약했다.

Theme for Irishman / The Irishman (Original Motion Picture Sound)(2019)
로버트슨은 영화 감독 마틴 스콜세지의 죽마고우였다. 더 밴드의 1978년 콘서트 < The Last Waltz >를 다큐멘터리로 만든 < The Last Waltz >(1978)에서 로버트슨은 사운드트랙 프로듀서를 역임했다. < 코미디의 왕 >(1983)과 < 컬러 오브 머니 >(1986) 등으로 지속된 협업의 마지막은 올해 10월 개봉 예정인 신작 < 플라워 킬링 문 >(2023)이었다.

로버트 드니로와 알 파치노가 출연한 2019년 작 < 아이리시맨 >의 메인 테마는 두 배우만큼이나 무게감 있다. 연륜과 품격을 담은 곡조엔 1930~40년대 미국 누아르의 고전미가 흘렀고, 프레더릭 요넷의 하모니카에서 레지 헤밀턴의 베이스로 이어지는 구성이 절묘하다. 배철수는 영화 음악에 활발했다는 측면에서 로버트슨을 랜디 뉴먼과 비교했다. 뉴먼은 < 토이스토리 >의’You’ve got a friend in me’ 등 픽사 애니메이에서 활약한 작곡가.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1943년생으로 나이가 같다.

국내에서의 인지도는 미약하지만 로비 로버트슨은 록 역사의 위대한 작곡가로 추앙 받으며, 그에 따른 관련 미디어가 많다. 캐나다 영화 감독 다니엘 로허가 연출한 다큐멘터리 영화 < 로비 로버트슨과 더 밴드의 신화(Once Were Brothers: Robbie Roberston And The Band >(2019)는 로버트슨의 2016년 회고록 < 증언 >을 기초로 했고 그의 내레이션도 들을 수 있다. 로버트슨의 음악 세계를 이해하는 지침서 역할을 할 것이다. 로버트슨의 마지막 정규 음반 < Sinematic >(2019)에 동명의 ‘Once were brothers’가 실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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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IZM 필자가 사랑하는 뮤직비디오 (해외편)

팻보이 슬림(Fatboy Slim) – ‘Weapon of choice’ (2001)
< 007 뷰 투 어 킬 >의 미치광이 빌런을 연기한 크리스토퍼 워컨, 기이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 존 말코비치 되기 >의 감독 스파이크 존즈, 펑카델릭의 베이시스트 부치 콜린스, 그리고 빅 비트의 시대를 주도한 팻보이 슬림의 앙상블은 이 세상에서 가장 진중하고도 자유로운 뮤직비디오를 탄생시켰다. 정장 차림의 크리스토퍼는 적막과 공허함이 감도는 호텔 로비에 멍하니 앉아 있다. 이윽고 ‘Weapon of choice’의 비트가 울려퍼지자, 호텔은 댄스플로어가 된다. 3분 40초간 리듬을 타고, 움직이고, 점프하고, 회전하고, 날아오르면서 가사처럼 이렇게도 저렇게도 마음껏 움직이는 그의 모습은 삭막한 일상으로부터의 해방이자 일탈이다. 2001년, 그렇게 팻보이 슬림은 수많은 샐러리맨 겸 내적 댄서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김태훈)

푸 파이터스(Foo Fighters) – ‘The pretender’ (2007)
파괴는 순간이다. 푸 파이터스의 강렬한 에너지를 분출하는 ‘The pretender’의 뮤직비디오에 복잡한 서사가 등장하지 않는 건 이때의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상징하는 바를 해석하는 게 의미 없을 정도로 직관적인 대립 구도, 저항 정신을 밀도 있게 표현한 음악의 색채, 비트와 밀접하게 닿아 있어 타격감이 넘치는 장면전환 등 영상의 모든 요소가 펑크(Punk) 그 자체다. 이 세상 모든 위선자를 부숴버리는 푸 파이터스의 카운터 펀치가 4분 30초간 신나게 작렬한다. (김호현)

패닉 앳 더 디스코(Panic! At The Disco) – ‘Girls/girls/boys (Director’s cut)’ (2013)
원 테이크의 아슬함을 즐긴다. 수백 번의 리허설을 거친다 해도 기어코 발생하고야 마는 돌발 상황, 그 무한한 변수를 극복한 필름이 포착해 낸 귀한 찰나를 좋아한다. 이 곡 또한 단 한 번의 촬영으로 기세를 이어 나간 원 샷(one-shot) 뮤직비디오다. 이십여 년 전 제작된 미국의 알앤비 가수 디안젤로의 아이코닉한 뮤비 ‘Untitled’를 그대로 리메이크했다. 알몸의 남성 뮤지션이 카메라를 바라보며 열창하는 와중, 그 신체를 샅샅이 핥아 내리는 카메라가 거침없이 아래로 내려가다 장골 근처, 기막힌 타이밍에 시선을 거둔다. 간단한 촬영 기법만으로도 재치와 긴장감을 더한 것은 물론 주인공의 연기도 강렬하다. 사랑의 애환으로 고통스러워하는 프론트맨 브랜든 유리가 피사체의 힘만으로 끌고 가야 하는 원 샷 필름의 약점을 온몸으로 보완했다. 바이섹슈얼을 암시한 가사에 맞춰 디렉터스 컷 클라이맥스에 삽입된 약간의 반전이 곡을 독특한 방식으로 시각화했다. (박태임)

레이디 가가(Lady Gaga) – ‘Born this way’ (2011)
사랑하는 것을 떠나 충격과 깨달음을 안겨준 뮤직비디오다. 다소 기괴하고 충격적인 어쩌면 직접적이고 적나라하게 출산을 묘사한 도입부로 인해 눈을 깜빡이게 하는 시작을 지나면 이후 퍼포먼스는 그야말로 강력 메시지의 집합체다. 속옷 정도만 입고 ‘Don’t be a drag, just be a queen’ 그러니까 ‘행세하지 말고, 그냥 네가 돼라’는 간단하고 위대한 메시지를 계속해서 밀어붙인다. 시선을 뗄 수 없는 영상 속 캐릭터 및 시각 효과도 출중하다. 유니콘을 타고 내려온 레이디 가가가 제목 그대로 ‘태어난 대로 살자’며 전 세계 많이 어른이들의 “마더 몬스터(Mother monster)”가 된 작품. 이 뮤직비디오가 마음에 들었다면 2011년 53번째 그래미 시상식에서 그가 펼친 공연도 추천한다. (박수진)

시저(SZA) – ‘Doves in the wind’ (2017)
화려한 비주얼이나 파격적인 연출로 시선을 끄는 뮤직비디오가 있는가 하면 시각적 쾌감이 부족해도 코믹하고 컨셉츄얼한 시도로 재미를 주는 영상이 있다. 최근 몇 년간 최고의 알앤비 앨범으로 손꼽힌다고해도 손색이 없을 시저의 < Ctrl >에 수록한 ‘Doves in the wind’가 그렇다.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내세우는 가사와 켄드릭 라마의 컨셔스랩, 서정적인 얼터너티브 알앤비 사운드까지. 음악만들어서는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를 상상하기 힘들다. 무림고수들의 대결이라는 스토리를 짧고 전형적인 연출과 빈티지 질감의 대사, 어설픈 와이어 액션으로 담은 영상은1980년대 무협영화를 고증한다. 굳이 의미를 부여할 필요 없이 시저와 켄드릭 라마의 유쾌한 면모에 집중하자. (백종권)  

케미컬 브라더스(Chemical Brothers) – ‘Star guitar’ (2002)
사람들은 30초 정도 지났을 때 이 뮤직비디오의 패턴을 눈치 챘겠지만 그 시간이 되기 전까지 대부분은 예측 불가능한 시각적인 충격을 기대했을 것이다. 이유는 감독이 미셸 공드리이기 때문. 가사 없는 차갑고 날카로운 일렉트로니카 사운드와 건조한 영상이 만나 제3의 공간을 창조한 이 명작은 돈이 아닌 아이디어의 승리이자 영광이다. 때로는 ‘Star guitar’처럼 음악과 화면이 어울리지 않는 뮤직비디오가 충격과 감탄을 선사한다. (소승근)

맥 밀러(Mac Miller) – ‘Good news’ (2020)

‘Good news’ 뮤직비디오의 맥 밀러는 초연했다. 생애 마지막 작품이 된 < Swimming >에서 비극적 고통을 토해낸 젊은 아티스트에겐 ’삶‘에 대한 미련은 사라졌고, 고민이 떠난 자리엔 < Circles >란 텅 빈 허무가 머물러있다. 타인을 향해 미소 짓던 그였지만 당장 자신의 내일은 캄캄했고 이는 곧 정체를 알 수 없는 형형색색의 형태로 변해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혼란을 뒤로하고 도달한 곳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우주. 맞이한 순간이 위안이었을까? 확신할 수 없기에, 우리는 그가 마련한 무(無)의 공간에서 단지 유영할 뿐이었다. 6분 30여 초. 한 사람의 생을 판단하기엔 턱 없이 부족한 시간. 다만 여과되지 않은 고뇌와 해방의 과정이 세상에 묵직이 내려앉았다. 맥 밀러가 견딘 무게가 큰 만큼 모두의 상처도 깊게 파였지만, 그가 느낀 우울의 끝엔 남은 이들을 위해 심은 위로가 작게 싹트고 있었다. (손기호)

에미넴(Eminem) – ‘Stan’ (2000)
누군가의 사랑은 잔인하고 강렬하다. 한 사람의 말과 행동이 타인에게 끼칠 수 있는 영향력에 대해 ‘Stan’은 뮤지션과 그에게 집착하는 팬의 시선을 빌려 비극적인 이야기로 엮었다. 1인 2역을 소화한 에미넴의 랩이 먼저 애증의 분노를 토해내고, 노랫말을 그대로 화면에 옮긴 광적인 스토킹 현장이나 강물에 차가 들이받는 컷이 차례로 입혀지면 이 서사는 곧 생동감 넘치는 현실로 다가온다. 비극으로 치닫는 이 울적한 영상은 감상자들에게 시커멓게 타버린 사랑의 또 다른 얼굴을 뇌리에 강하게 남겨버린다. 참, 이왕 ‘Stan’을 챙긴 김에 뮤직비디오 디렉팅을 닥터 드레가 맡았다는 사실과 2001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엘튼 존과 함께 한 라이브 버전도 잊지 말길. (손민현)

자넬 모네(Janelle Monae) – ‘Dirty computer’ (2018)
자넬 모네의 4집 < Dirty Computer >와 함께 제작된 동명의 장편 SF 필름은 규범에 맞지 않는 소수자들을 ‘오염된 컴퓨터’로 간주하는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제인 57821’로 분한 자넬 모네 역시 강제로 기억을 삭제 당할 위기에 놓이지만 그의 기억은 오히려 시스템을 교란하는 저항의 도구로 작용한다. 그것이 기억과 꿈, 환상의 경계에 놓여있었기 때문이며 형식적으로는 다름 아닌 뮤직비디오였기 때문이다. 내러티브 필름과 뮤직비디오의 절묘한 결합, 정점에 오른 모네의 음악적 성취, 새로운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메시지까지. 시학, 미학, 주제 모든 면이 군더더기 없이 완벽하다. (신하영) 

피터 가브리엘(Peter Gabriel) – ‘Sledgehammer’ (1986)
정신 착란적이고 기괴하지만 놀랍고 감탄스럽다. 프레임 단위로 촬영물을 연결해 움직임을 구현하는 픽셀레이션과 점토를 이용한 클레이메이션 등 다양한 기법을 동원한 ‘Sledgehammer’는 가브리엘이 영국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제네시스 시절부터 제공한 시각적 충격파의 연장선상이며, 아하 ‘Take on me’와 더불어 1980년대를 대표하는 음악 영상이다. 아르침볼도의 환상화와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 개구진 동심(머리둘레를 횡단하는 기차)과 고약한 장난(치킨 댄스)이 뒤섞인 유미주의 종합선물 세트는 가브리엘 뇌 속 상상계의 출력물. 곡의 펑키(Funky) 리듬을 살린 스티븐 R. 존슨의 연출력은 < So >의 수록곡 ‘Big time’에서도 이어진다. (염동교)

케로 케로 보니토(Kero Kero Bonito) – ‘Break’ (2016)
음악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음악에는 시공간 이상의 힘이 있다. 평범한 일상의 순간도 음악과 함께 종종 특별한 경험으로 완성되곤 하니 말이다. 케로 케로 보니토의 프론트우먼, 사라 보니토는 과연 음악의 이런 마법같은 힘을 알고 있는 인물이다. 하트 모양 선글라스, 정체 모를 음료 한 잔과 함께 런던 곳곳에 걸터앉은 뮤직비디오 속 사라는 그 존재만으로 주위를 휴양의 한복판으로 바꿔 버리며 이 흥미로운 현상을 몸소 시각화해 보인다. 바쁜 일상 속 찰나의 휴식이 필요하다면, 양쪽 귀에 이어폰을 꽂고 ‘Break’를 재생해 보자. 그곳이 어디든 친절한 가이드 사라 보니토가 당신을 달콤한 휴양지로 안내할 것이다. (이승원)

마이 케미컬 로맨스(My Chemical Romance) – ‘Welcome to the black parade’ (2006)
죽어가는 남자,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감성적인 피아노 선율. 단숨에 이목을 잡아끄는 오프닝이다. 거기에 아버지에 대한 가사의 언급과 화려한 사후세계가 등장하면 이 뮤직비디오가 범상치 않다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병원에서 숨을 거둔 환자가 저승으로 연결되어 자신을 격려하고 축복하는 이들을 만나는 장면을 목격하는 순간 죽음이 삶과 별개가 아닌 또 하나의 연장이라는, 노래의 가사 ‘Carry on’의 의미가 가슴에 꽂힌다. 저승의 악단 ‘블랙 퍼레이드’로 분한 멤버들의 격정적인 연기, 돈 냄새 나는 세트와 각종 효과 장치, 배경을 가득 메운 엑스트라 귀신들이 완성한 시각적 아름다움도 압도적인데, 무엇보다 그러한 삶과 죽음을 어루만지는 메시지가 따뜻하다. 마이 케이멀 로맨스의 ‘Bohemian Rhapsody’? 아니, 구태여 어떤 곡과 비교할 필요 없는 2000년대 최고의 록 명곡. (이홍현)

오케이 고(OK Go) – ‘Here it goes again’ (2009)
뮤직보다 뮤비! 음악보다 영상에 더 심혈을 기울이는 오케이 고 덕에 뮤직비디오의 매력에 빠지기 시작했다. 무표정으로 진지댄스를 춘 ‘A million ways’, 스톱 모션을 이용한 ‘End love’, 그리고 화룡점정 러닝머신 퍼포먼스를 보여준 ‘Here it goes again’을 대표로 밴드는 지금까지도 기발한 작품을 찍어오고 있다. 뮤직비디오에 정성을 다하는 이미지 탓에 라이브를 못 할 것이라는 편견도 있었지만, 몇 년 전 국내 록 페스티벌에서 본 그들의 실력은 생각보다 깔끔했다. 오해는 풀렸고, 오케이 고는 음악을 못하는 게 아니라 영상 제작을 더 잘할 뿐이었다. 이들에게 있어서 음악은 하나의 수단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임동엽) 

뱀파이어 위켄드(Vampire Weekend) – ‘Cousins’ (2009)
기발하다. 뱀파이어 위켄드의 커리어 중 가장 통통 튀는 작품으로 평가 받는 < Contra >에서도, 그중 가장 복잡하고 급진적인 곡인 ‘Cousins’의 뮤직비디오는 더할 나위 없이 밴드가 가진 활기와 상상력의 역동성을 내포한다. 골목길 위에 놓인 트레일을 반복 움직이며 간단한 변주를 주는 구조부터 충동적이다. <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의 감독 가스 제닝스가 구현한 독창적 프레임 속 원색 그라피티와 접착 테이프, 각종 저예산 소품들, 꽃가루마저 휘날리는 투박한 판타지가 현실과 화려하게 충돌한다. 큰 의도를 찾을 수 없어도 정신없이 빠져든다. ‘인디’가 가진 불특정 유쾌함을 누군가에게 설명해야 한다면, 군말없이 이 영상을 보여주지 않을까. (장준환)

차일디쉬 감비노(Childish Gambino) – ‘This is America’ (2018)
팝과 힙합, 어디에도 접점이 없었다. 그럼에도 알고리즘은 이 충격적인 아수라장 한가운데로 나를 안내했다. 합창과 기타 연주가 어우러진 도입부만 들으면 평화로운 찬가에 가깝지만, 주인공이 뒤춤에서 총을 꺼내들어 기타리스트의 머리에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내 머리도 함께 터졌다. 투신, 총기 난사, 집단 폭동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중에도 ‘이게 미국이야/정신 바짝 차려’라며 뚝심 있게 현장 고발을 이어 간다. 트랩 비트 위에 실제 흑인들이 겪었던 참상을 그린 덕분에 성찰의 탄환 한 발이 즉각 신체를 관통한다. BLM(Black Lives Matter) 운동에 재차 불을 지폈던 차일디쉬 감비노 조차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종종 드러냈다는 게 아이러니. 분개해선 안 된다. 당장 주변의 약자들만 돌아봐도 달라진 게 없다. 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이게 모두의 현실이다. (정다열)

펄프(Pulp) – ‘Bad cover version’ (2011)
“네가 누굴 만나든 내 아류일 뿐”이라 말하는 프론트맨 자비스 코커의 심보 고약한 가사와 달리 뮤직비디오의 정서는 사뭇 따뜻하다. 유명 뮤지션을 초빙해 녹음 광경을 포착하는 캠페인 송의 형식을 비틀어 진짜 아티스트 대신 그들의 닮은꼴을 초대했고, 심지어 음원에는 이들의 어설픈 노래까지 담았다. 무엇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지만 이 우스꽝스러움 속에 공동체의 가치가 피어난다. 사실 우리 살아가는 모습이 그렇지 않은가. 각각 불완전한 엉터리, 가짜일 수는 있어도 한데 모여 화합하는 순간 삶은 어느덧 ‘진짜’가 되며 형편없는 모창은 사랑스러운 찬가로 바뀐다. “가짜들의 세상”이어도 아름다울 수 있는 법이다. 마음만 순수하다면. (한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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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스래시 메탈 명곡 13선(2)

테스타먼트 – First strike is deadly / The Legacy(1987)
1983년 캘리포니아 버클리에서 조직된 테스타먼트는 40년간 메탈월드를 종횡무진 누빈 메탈계 큰형님이다. 괴물 보컬 척 빌리(Chuck Billy)와 전 드림 시어터의 드러머 마이크 포트노이와 함께 메탈 공동체 메탈 얼라이언스에서 활동한 기타리스트 알렉스 스콜닉(Alex Skolnick) 등 실력파로 구성된 테스타먼트는 ‘성서’란 그룹명만큼 진중하고 깊은 음악성을 펼쳐냈다.

데뷔 앨범 < The Legacy >(1987)는 이듬해 나온 2집 < The New Order >와 함께 테스타먼트의 가장 우수한 음반으로 꼽힌다. 원래 밴드명도 더 레거시였으나 앨범 녹음 전 테스타먼트로 바뀌었고 보컬 스티브 소우자가 엑소더스로 떠났다. ‘The haunting’과 ‘Burnt offerings’같은 대표곡이 수록된 < The Legacy >는 소우자 특유의 강렬하고 무거운 가사가 돋보이니 떠나기 전 큰 선물을 남긴 셈이다. 균형감 있는 수록곡 사이에서 국내 팬들에겐 ‘First strike is deadly’가 선명할 수밖에 없다. 기타리스트 이태섭이 서태지 ‘하여가’에서 ‘First strike is deadly’의 기타 간주를 차용했기 때문이다.

애니힐레이터 – Alison hell / Alice In Hell(1989)
‘소멸자’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의 애니힐레이터는 보이보이드, 레이저, 새크리파이스와 더불어 캐나다 스래시 메탈의 사천왕으로 군림했다. 1984년 캐나다 수도 오타와에서 결성된 이래 40년 가까이 활동 중인 애니힐레이터는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예스를 방불케하는 이합집산에도 리드 기타리스트 제프 워터스(Jeff Waters)가 굳건히 중심을 지켰다.

메탈 명가 로드러너에서 발매된 < Alice In Hell >(1989)는 데뷔작이 무색한 완성도다. 워해머로 퉁퉁 내리치는 듯한 기타 리프의 ‘W.t.y.d’와 꿈틀거리는 리듬의 ‘Schizo’ 등 다채로운 곡들엔 워터스와 밴드의 또 다른 창립자 빅 존 베이츠(Big John Bates)의 역량이 빛을 발했다. 워터스는 앨범의 총괄 프로듀서를 역임하기도 했다. 짧은 인스트루멘탈 ‘Crystal Ann’에서 ‘Alison hell’로 이어지는 구성은 초반부터 밀어붙이겠다는 공포문과도 같아 아찔하다. 부기맨에 대한 소녀 앨리스의 공포감을 담은 ‘Alison hell’은 잔혹동화스런 분위기와 물 흐르는 듯한 구성을 지닌 애니힐레이터의 역작이다.

세풀투라 – Arise / Arise(1991)
브라질에서 여섯 번째로 큰 도시 벨루오리존치에서 결성된 세풀투라는 브라질 헤비메탈의 뿌리 격인 밴드 스트레스와 파워 메탈의 최강자 앙그라와 더불어 가장 영향력 있는 브라질 메탈 밴드로 인정받는다. 메탈 팬들에게 그루브 메탈의 명작 < Roots >(1996)과 빌보드 200 32위까지 오른 < Chaos A.D. >(1993)가 익숙하나 1984년부터 오랜 공력을 쌓아온 팀이다. 1986년 블랙 메탈과 데스 메탈을 섞은 듯한 데뷔작 < Morvid Visions >로 출사표를 끊은 세풀투라는 로드러너에서 발매한 1991년 작 < Arise >로 남미 스래시 메탈의 최고봉에 올랐다.

라틴 리듬에 거친 펑크적 특성을 부여한 < Arise >는 3분대의 짧은 곡들과 리드 기타리스트 안드레아스 키써(Andreas Kisser)가 쓴 ‘Desperate cry’와 ‘Altered state’ 같은 6분대 대곡들이 균형을 맞췄다. 황야에서의 합주를 담은 뮤직비디오가 인상적인 ‘Dead embryonic cells’과 더불어 싱글로 발매된 ‘Arise’는 시종일관 내달리는 브라질 종마 같은 에너자이저다. ‘Territory’, ‘Roots bloody roots’과 더불어 세풀투라의 대표곡으로 꼽힌다.

크리에이터 – Extreme Aggresion / Extreme Aggresion (1989)
독일은 록 음악 강국이다. 크라프트베르크와 캔을 위시한 크라우트 록과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은 스콜피온스, 멜로딕 스피드 메틀의 대표주자 헬로윈과 ‘Du hast’의 람슈타인 모두 독일 출신이다. 스래시 메탈 방면에서도 ‘저먼 스래시 메탈’의 분파가 생길 정도로 입지가 확고하다. 소돔과 탱커드, 디스트럭션과 함께 저먼 스래시 메탈의 판타스틱 포를 구축한 크리에이터는 1982년 결성된 이후 40년 현역을 이어가고 있다.

스피드 메탈과 인더스트리얼 등 시대에 조응하는 사운드를 선보였지만 역시 스래시 메탈에 중심을 두었다. 스래시 메탈 클래식 < Pleasure To Kill >(1986)로 일찌감치 입지를 확고히 한 이들은 < Terrible Certainty >(1988)와 < Extreme Aggresion >(1989)로 기세를 이어간다. 기타리스트 요르그 트리에비아토프스키(Jörg Trzebiatowski)와 드러머 벤토(Ventor)의 기량을 고스란히 반영한 < Extreme Aggresion >은 명료한 편곡과 연주로 성숙기를 나타냈다. 미국에서 사랑받았던 ‘Betrayer’와 더불어 타이틀 곡 ‘Extreme aggression’은 기승전결이 또렷한 곡 전개와 밀레 페트로자(Mille Petrozza )의 고음 보컬로 크리에이터의 전성기를 압축했다.

디스트럭션 – Curse the gods / Eternal Devastation (1986)
독일 소도시 바일 암 라인에서 1982년 결성된 디스트럭션은 2022년 열다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 < Diabolical >을 발표할 만큼 정력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초기엔 기타 트레몰로 피킹과 스크리밍, 조악한 음질 등을 특질로 하는 메탈의 하위 장르 블랙 메탈의 성향도 드러냈지만 1980년대 중반부터 내놓은 일련의 음반들로 독일 스래시 메탈의 선봉에 섰다. 멤버 교체가 잦았으나 밴드의 중심축은 베이시스트 겸 보컬리스트 마르셀 시머(Marcel Schimer)와 기타리스트 마이크 시프링거(Mike Sifringer)였다.

비교적 낮은 완성도의 데뷔작 < Infernal Overkill >(1985)을 무색하게 할 만큼 2집 < Eternal Devastation >과 3집 < Release From Agony >의 위용은 대단하다. ‘Confound games’와 ‘Life without sense’등 대표곡이 몰려 있는 < Eternal Devastation >은 드러머 토마스 샌드만(Thomas Sandmann)의 마지막 참여작으로 원년 멤버 간의 화양연화를 남겼다. “신을 저주한다”라는 도발적 제목의 ‘Curse the gods’는 음산한 분위기를 고조하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전개가 일품이며 결코 화려한 연주라고 할 순 없지만 시머의 고음 보컬과 중독적인 기타 리프가 곡의 레벨을 한 층 끌어올렸다.

소돔 – Agent orange / Agent Orange (1989)
독일 제조업 중심지 겔젠키르헨에서 결성된 소돔은 기독교 역사에 근거한 죄악의 도시라는 팀명처럼 강렬한 음악을 뿜었다. 원년 멤버로 끝까지 밴드를 지키고 있는 보컬 겸 베이시스트 탐 엔젤리퍼(Tom Angelripper)를 중심으로 이합집산을 거듭한 소돔은 특유의 음산하고 악마적인 기운으로 독일 블랙 메탈의 뿌리가 되기도 했다. 2020년 열일곱번째 정규 음반 < Genesis XIX >로 스태미나를 과시한 소돔은 자국 후배들에 존경을 사는 독일 메탈 대부로 자리매김했다.

1989년 작 < Agent Orange >는 1987년 발매한 < Persecution Mania >와 함께 소돔의 양대 명작으로 통한다. 후자가 블랙메탈에서 스래시로 이동하는 과도기였다면 전자는 스래시 메탈을 파고들었다. 개틀링 건이 그려진 앨범 재킷은 전쟁 사상자의 추모라는 메시지와 맞닿아 있고 소돔은 어느 때보다 광포한 연주로 주제의식을 부각했다. 베트남전에 사용된 주홍색 고엽제에서 착상한 타이틀 곡 ‘Agent orange’는 비장미 넘치는 도입부와 변화무쌍 전개로 곡의 서사를 구축했다. 크리스 위치헌터(Chris Witchhunter)의 드럼 속주와 안젤리퍼의 억지로 쥐어짜는 듯한 보컬이 극적 효과를 연출했다.

이미지 작업: 백종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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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스래시 메탈 명곡 13선(1)

메탈리카 – Master of puppets / Master Of Puppets(1986)
9회의 그래미 수상과 약 1억 2천 5백만장의 음반 판매고를 수확한 메탈리카는 어느 스래시 메탈 밴드도 범접할 수 없는 상업적 성과를 거뒀다. 스래시 인장을 땐 록으로 범위를 넓혀도 대중음악 역사상 위대한 밴드 중 하나로 꼽히는 이들은 2023년 현재에도 록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로 열정을 불사르고 있다.

< Kill Em All > 속 잠재력은 ‘For whom the bell tolls’와 ‘Creeping death’가 수록된 소포모어 작 < Ride The Lightning >의 소구력으로 수직 상승했다. 이 음반과 프로그레시브 메탈의 복잡한 구성으로 더욱 깊은 음악성을 표현한 4집 < And Justice For All….>(1987)은 때에 따라 최고작으로 꼽히기도 하나 상징성의 측면에서 3집 < Master Of Puppets >를 따라가기 힘들다. 스래시 메탈 불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이 음반으로 메탈리카는 메탈 최강자가 되었다.

거칠게 내달리는 오프너 ‘Battery’와 비장한 ‘Welcome home (sanitarium)’, 짜임새 있는 연주곡 ‘Orion’까지 완벽한 구성을 자랑한다. 앨범의 타이틀 곡 ‘Master of puppets’는 오랜 기간 공연 셋리스트의 피날레를 장식할 만큼 메탈리카를 상징하는 곡. 전율의 도입부터 으스스한 웃음소리의 결말에 이르는 8분 35초에 이르는 대곡 지향적 구성은 드림 시어터와 핀란드 심포닉 메탈 밴드 아포칼립티카 등 다양한 밴드들이 리메이크했다.

메가데스 Holy wars… the punishment due / Rust In Peace(1991)
메탈리카에서 쫓겨난 데이브 머스테인(Dave Mustaine)은 절치부심 이를 갈았다. 베이시스트 데이비드 엘렙슨(David Ellefson)과 결성한 메가데스의 1집 < Killing Is My Business… And Business Is Good! >(1985) 엔 메탈리카 ‘Four horseman’의 원곡 ‘Mechanix’를 수록하며 소심한 복수를 감행했다. 냉소와 자조 등 밴드의 정체성을 결정한 1986년 작 < Peace Sells… But Who’s Buying? > ‘Peace sells’와 ‘Wake up dead’, ‘The conjuring’으로 메탈리카와는 완연히 다른 음악색을 선보이며 진정한 리벤지에 성공했다. 쌍뱀처럼 절묘하게 엮어들어가는 머스테인과 크리스 폴란드(Chris Poland)의 기타 연주는 치밀한 악곡에 날개를 달았고 원년 멤버 엘렙슨은 저 유명한 ‘Peace sells’의 베이스 인트로와 리듬 섹션을 책임졌다.

2집으로 더 올라갈 고지가 안 보이는 듯했지만, 인스트루멘탈 록 밴드 캐코포니 출신 마티 프리드먼(Marty Friedman)의 영입은 메가데스를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안내했다. 1980년대 말 메탈 뮤직의 마지막 불꽃과 너바나의 < Nevermind >(1991)가 위시한 그런지 사이에 있는 1990년, < Peace Sells >와 더불어 밴드의 양대 명반으로 회자되는 걸작 < Rust In Peace >가 발매된다.

절정에 달한 머스테인의 곡 구성 능력에 마티 프리드먼의 동양적 선율을 얹은 음반은 인트로 곡 ‘Hangar 18’부터 숨 막힐 정도로 밀어붙인다. 기타리스트들에게 좌절감을 안겨준 속주곡 ‘Tornado of souls’와 재즈 퓨전 향취가 묻어나는 ‘Five magics’ 등 개성적인 곡들로 가득하지만 3부로 구성된 ‘Holy wars… The Punishment Due’는 메가데스 음악성 정점이다. 복잡하면서도 정교한 곡 전개와 이스라엘과 북아일랜드의 종교 갈등에서 모티브를 얻은 노랫말에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사운드가 어우러진 이 곡은 2023년 롤링 스톤이 선정한 ‘가장 위대한 헤비메탈 100곡’ 중 28위에 선정되었다.

슬레이어 – Raining blood / Reign in blood (1986)
DC코믹스 < 왓치맨 > 로어셰크의 음산함 풍기는 밴드 슬레이어는 확고한 콘셉트로 팬베이스를 다졌다. 사타니즘과 테러리즘의 주제의식에 맞물리는 미국 화가 래리 캐롤의 앨범 재킷은 어둡고 불길한 슬레이어만의 색채를 확립했다. 메탈계 최고의 드러머로 언급되는 데이브 롬바르도(Dave Lombardo)와 제프 한네만(Jeff Hanneman), 케리 킹(Kerry King)의 기타 듀오는 콘셉트를 받칠 굳건한 대들보였다.

2017년 롤링스톤에서 선정한 ‘가장 위대한 메탈 앨범’ 6위로 선정된 1986년 작 < Reign In Blood >는 1990년 작 < Seasons In The Abyss >와 더불어 이들의 명반으로 공인받는다. 롬바르도표 스피드 드러밍이 구현한 펑크 질감과 데스메탈의 광포(狂暴)를 접붙인 사운드는 탄탄한 송라이팅과 만나 스래시 메탈 마스터피스를 제창했다. 피비린내를 흩뿌리듯 사악한 기운의 ‘Raining blood’는 육중한 기타 리프와 톰 아라야(Tom Araya)의 보컬 퍼포먼스로 ‘Angel of death’와 더불어 앨범의 대표곡으로 남았다.

앤스렉스 – Caught in a mosh / Among The Living(1987)
슬레이어를 듣다가 앤스렉스를 접하면 ”이게 스래시 메탈이야?’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상기한 밴드들이 헤비급이라면 앤스렉스는 크루저급 혹은 라이트헤비급이랄까? 역설적으로 이 경량화가 차별점이 되었다. 스래시 메탈의 지나치게 진지하고 무거운 이미지에서 벗어나 능글맞고 유쾌한 사운드를 확립한 앤스렉스는 메탈이 ‘창궐’하던 1980년대의 몇 안 되는 메이저 밴드로 기록되었다.

실패한 1집 < Fistful Of Metal >(1984)를 끝으로 떠난 보컬리스트 닐 터빈(Neil Turbin)의 공석을 넓은 음역의 파워 보컬 조이 벨라도나(Joey Belladonna)가 채운 건 신의 한 수였다. 빌보드 200 113위에 오른 2집 < Spreading The Disease >(1985)로 전기를 마련한 앤스렉스는 2년 후 그들의 최고작으로 불리는 < Among The Living >을 발매한다. 드림 시어터의 전 드러머 마이크 포트노이(Mike Portnoy)의 존경을 는 실력파 드러머 찰리 베난테(Charlie Benante)의 기량을 만끽할 수 있는 이 음반은 ‘I am the law’와 ‘Indians’ 등 또렷한 멜로디와 대중성도 챙겼다. 박자 변화로 다이내믹스를 강조한 ‘Caught in a mosh’는 리듬과 선율을 동시 포획한 메탈 명곡이다.

판테라 – Cowboys from hell / Cowboys From Hell(1990)
판테라는 드림 시어터, 메탈리카와 더불어 가장 영향력 있는 1990년대 메탈 집단이다. 기타리스트 다임백 데럴(Dimebag Darrell)과 프론트퍼슨 필립 안젤모(Phillip Anselmo)의 원투펀치에 비니 폴(Vinnie Paul), 렉스 브라운(Rex Brown)의 리듬 섹션을 결합한 당시 판테라는 천하무적의 위용이었다. 스래시 메탈로부터 헤비메탈의 원초적 파워에 넘실대는 리듬을 더해 그루브 메탈을 모색한 이들은 특유의 카리스마와 뛰어난 연주력으로 메탈헤드를 규합했다.

멤버들이 흑역사로 여기는 1~4집을 지나 실질적 정규 데뷔 음반에 해당하는 1990년 작 < Cowboys From Hell >은 그루브와 스래시 메탈 양 진영에서 명반 대접을 받는다. 다임백의 면도날 기타와 리듬섹션의 유연성까지 확보했고 중간중간 뿌려주는 안셀모의 그로울링은 판테라의 상징이 되었다. 이 곡과 더불어 ‘Domination’, ‘Cemetery gates’ 등 수작을 포함한 < Cowboys From Hell >은 미국에서만 130만장에 육박하는 판매고를 올리며 < Vulgar Display Of Power >(1992)와 < Far Beyond Driven >(1994)으로 이어지는 전성기의 시발점을 끊었다. 현재 판테라는 필립 안셀모와 렉스 브라운의 원년 멤버에 오지 오스본의 기타리스트였던 블랙 레이블 소사이어티의 잭 와일드(Zakk Wylde)와 앤스렉스의 드러머 찰리 베난테와 함께 북미 투어를 진행중이다.

엑소더스 – Bonded by blood(1985)
1979년 캘리포니아 리치먼드에서 결성된 엑소더스는 미국 스래시 메탈 계의 상위 4개 팀만큼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엑소더스까지 껴서 빅5로 불러야 하는 것 아니냐?”, “앤스렉스 대신 엑소더스가 들어가야 한다” 등의 논쟁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메탈리카의 기타 플레이어 커크 해밋(Kirk Hammett)이 잠시 활동하기도 했던 엑소더스는 테스타먼트에 재적했던 스티브 소우자(Steve Souza)와 원년 멤버인 드러머 톰 헌팅(Tom Hunting) 기타리스트 게리 홀트(Gary Holt)의 라인업으로 2021년 < Persona Non Grata >까지 꾸준히 앨범을 발매했다.

스티브 소우자와 드러머 겸 리드 보컬 톰 헌팅, 현재 제너레이션 킬에서 활약 중인 롭 듀크스(Rob Dukes) 등 많은 보컬이 거쳐 갔지만, 최고작의 영광은 데뷔작 < Bonded By Blood >(1985) 이후 곧바로 해고된 폴 발로프(Paul Baloff)에게 돌아간다. 수록곡 대부분의 작사를 하기도 한 발로프의 정제되지 않은 가창은 열악한 레코딩과 맞물려 날 것 그대로의 질감이 확연하다. 혈맹을 의미하는 타이틀 곡 ‘Bonded by blood’는 가창보다 연기에 가까운 발로프의 보컬 퍼포먼스에 둔기를 연상하게 하는 블랙 사바스 풍 사운드를 장착했다.

오버킬 – Elimination / The Years Of Decay(1989)
1980년 미국 동부 뉴저지에서 결성된 오버킬은 보컬 바비 엘스워스(Bobby Ellsworth)와 베이시스트와 배킹 보컬을 겸하는 카를로 디디 베르니(Carlo “D.D.” Verni )를 중심으로 현재까지 활동 중인 장수 밴드다. 상업적 성과는 미약했지만 스래시 빅4와 더불어 장르의 기틀을 닦았다. 엘스워스의 폭넓은 보컬 레인지와 바비 구스타프손(Bobby Gustafson)의 빽빽한 기타 연주가 전체적인 완성도를 높였다.

1988년 작 < The Years Of Decay >는 전작들보다 한층 더 진화한 음악성으로 3년 후 발매한 < Horrorscope >와 더불어 밴드의 고점을 경신했다. 육중한 기타 톤에서 블랙 사바스의 영향이 감지되는 10분짜리 대곡 ‘Playing with spiders/skullkrusher’와 장엄한 분위기의 ‘Who tends the fire’ 등 대곡 지향적인 곡이 수록된 야심작이다. < The Years Of Decay >의 두 번째 트랙 ‘Elimination’은 메탈리카의 ‘Master of puppets’의 주요 리프와 닮았다는 결함에도 브레이크 장치 없이 몰아붙이는 직선 에너지가 강력하다.

이미지 작업: 백종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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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이 시대의 위대한 가수 토니 베넷(1926-2023)

2023년 4월 세상을 떠난 해리 벨라폰테에 이어, 또 한 명의 대중음악 거장이 세상을 떠났다. 미국을 대표하는 이지리스닝 싱어 토니 베넷은 말년에 알츠하이머병을 앓으면서까지 노래하며 생의 모든 연료를 음악에 소진했던 예술가요, 수 세대에 걸쳐 영향력을 지속한 국가대표 크루너(부드럽고 매끈한 창법의 가수)였다.

베넷이 갖는 동시대성은 장기간 활동으로만 설명될 수 없다. 노래를 향한 천착과 새로운 방향성 모색을 동력 삼아 쇄신을 거듭했다. 팝스타 레이디 가가와 함께한 두 장의 음반 < Cheek To Cheek >(2014) 과 < Love For Sale >(2021)은 연륜의 재확인이며 새로운 세대에 전하는 재즈 스탠더드의 매력이었다. < Cheek To Cheek >로 베넷은 자신이 갖고 있던 ‘최고령 빌보드 200 1위’ 기록을 경신했다.

다이애나 크롤과의 합작품 < Love Is Here To Stay >(2018)에서 ‘I got rhythm’과 ‘Love is here to stay’같은 조지 거슈윈의 작품을 리메이크한 베넷은 브로드웨이 음악과 틴 팬 앨리의 1920년대와 1960년대 사이 명곡을 모은 ‘그레이트 아메리칸 송북’에 몰두했다. 만 89세에 나이에 발매한 < The Silver Lining: The Songs Of Jerome Kern >(2015)은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의 뮤지컬 < 쇼보트 >의 음악가 제롬 컨을 소환했고, 1999년 작 < Bennett Sings Ellington: Hot & Cool >에서 듀크 엘링턴의 명 레퍼토리를 재조명하는 등 미국 대중음악사의 매개자 역할을 수행했다.

재즈 명장들과의 교류도 두드러졌다. 카운트 베이시 오케스트라와의 1959년 협연 < Strike Up The Band > 속 스윙과 보컬 재즈의 조화, 빌 에반스의 피아니즘과 베넷의 그윽한 음성으로 재탄생한 ‘My foolish heart’를 수록한 < The Tony Bennett/Bill Evans >(1975)가 대표적이다. 빌리 조엘과 입 맞춘 ‘New york state of mind’, 에이미 와인하우스와 신구 융화를 이룬 ‘Body and soul’도 경력을 수놓은 모멘텀들이다.

홀로 빛난 순간도 많다. 크리스마스 캐럴 음반의 고전으로 사랑받는 스테디셀러 < Snowfall: The Tony Bennett Christmas Album >과 1963년 제5회 그래미에서 올해의 레코드 상과 최우수 남자 보컬 퍼포먼스를 안겨준 <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 >(1962)와 이듬해 발매되어 빌보드 200 5위에 오른 < I Wanna Be Around >에서 오롯이 그의 음색과 가창을 느낄 수 있다.

종종 불꽃 같은 순간의 재능 폭발을 예술가에게 대입하곤 하나 토니 베넷은 그 반대에 있다. 칠십여 년간 음반을 냈고 무대에 섰다. 지속성과 헌신, 노력은 스무 개의 그래미 트로피와 5천만 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로 귀결했다.

사진 속 토니 베넷은 늘 웃음 짓고 있다. 폴 매카트니와 빌리 조엘을 비롯한 많은 후배가 그의 인품을 칭송할 만큼 푸근한 이미지는 듀엣 파트너와 듣는 이들에게 편안함을 가져다주었다. 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은 목소리로 대중에게 감동을 안겨준 위대한 가수 토니 베넷은 하늘 위에서도 인자한 미소로 후배 가수들과 가상 듀엣을 펼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