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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차트 역주행 특집 VOL 3. IZM 필자들이 뽑은 ‘역주행 되기를 바라는 곡’

‘역주행’이라는 키워드에 걸맞게 작년 5월 진행했던 차트 역주행 특집이 정확하게 1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는 조금 가볍게, IZM 필진들의 사심이 가득 담긴 ‘제발 한 번쯤 역주행했으면 하는 곡’을 소개한다. 숨겨진 명곡, 아쉬운 매치업, 앞서간 작법, 혹은 발굴의 의미까지… 필자마다 천차만별인 기준 만큼이나 장르와 시대를 아우르는 독특한 리스트가 탄생했다. 아직은 ‘희망 명단’에 불과하더라도, 언젠가 도약할 그날을 위해 같이 회고하는 것은 물론이요, 독자 역시 자신만의 선정을 떠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오마이걸 ‘한 발짝 두 발짝’
설렘의 감정을 스트링 선율로 물들인 멜로디와 완성도 높은 멤버들의 하모니가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을 소환한다. 소속사 선배 B1A4 진영이 선물해준 이 곡은 발매 당시 큰 파도를 일으키지 못했지만 점차 팬들의 입소문을 타고 일명 ‘갓 발짝 킹 발짝’의 칭호를 획득했다. 진가는 노랫말에 있다. 풋풋한듯 비장하게 건넨 ‘거리두기 완화 고백법’으로 가사의 미학과 시의성마저 겸비한 ‘한 발짝 두 발짝’은 지금 당장 컴백한다 해도 눈감아 줄 수 있을 정도. 2020년 전국에 물보라 주의보가 발령되기 4년 전부터 이미 오마이걸의 핑크빛 바다(Pink Ocean)는 일렁이고 있었다.

블로섬즈(Blossoms) ‘There’s a reason why (I never returned your calls)’
따스한 햇볕처럼 쏟아지는 신시사이저에 벚꽃 필 무렵의 1980년대가 아른거린다. 떠나간 연인을 향한 속앓이와 미련 섞인 투정은 사랑에 서툴렀던 모두의 지난날을 끄집어내 복잡한 감정을 안기다가도, 이 마성의 리프 앞에 곧장 추억으로 미화된다. 데뷔부터 노골적으로 과거 시제를 겨냥해온 블로섬즈의 집념이 끝내 열매를 맺은 것.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멜로디와 선배 그룹 스웨이드를 연상케 하는 톰 오그던의 고풍스러운 음색은 청취를 넘어 회상의 영역까지 안내한다. 향수, 계절성, 공감대, 그리고 뉴트로. 역주행의 모든 조건을 충족한 곡이다.

이박사 ‘몽키 매직-우주몽키(Feat. 윈디시티)’
어느 장르의 음악을 좋아하냐는 질문에 트로트라고 답하는 젊은이는 흔치 않다. 급격한 사회 변혁을 거치며 젊은 세대와 윗세대 사이에 취향의 장벽이 생긴 탓이다. 하지만 트로트계의 이단아 이박사에게 세대 간의 담은 대수롭지 않다. 그는 특유의 독창적인 매력을 소통의 열쇠로 삼아 록 페스티벌의 관중을 당당하게 호령한다. 빠른 템포의 고속도로 사운드로 일관했던 이박사의 ‘몽키매직’을 사이키델릭한 편곡으로 풀어낸 윈디시티의 역량이 곡에 매력을 더한다. 트로트에 대한 젊은 세대의 관심도가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아진 지금 이박사와 윈디시티의 ‘몽키 매직-우주몽키’는 트로트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할 수 있는 곡이다.

테빈 켐벨(Tevin Campbell) ‘Can we talk’
힙합과 알앤비가 손을 잡은 이래 서로의 장점을 한 음악에 녹여내는 시도가 많아지는 추세다. 둘 중 어느 장르인지 구분이 모호한 곡도 많다. 귀에 쉽게 들어오는 멜로디와 탄탄한 실력의 보컬, 낭만적인 가사의 1990년대 알앤비가 그리운 이들에게 ‘Can we talk’는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1993년에 이미 히트했던 이 곡은 비트에 약간의 세련미를 더한다면 분위기나 콘셉트에 경도된 음악에 지친 이들에게 충분한 휴식 시간을 제공할 수 있는 노래다. 지금의 경향이 좋아도 가끔은 알앤비는 알앤비대로 듣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땐 기본에 충실한 노래가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이상은 ‘더딘 하루’
‘삶은 여행’, ‘언젠가는’ 등 따뜻한 온도의 곡과 동양적 색채를 중심으로 거침없이 장르를 배합하는 < 공무도하가 > 스타일. 이 양단의 끝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것이 뮤지션 이상은의 핵심이자 빼어난 강점이다. 인기의 정점을 누리던 중 돌연 활동 중단 및 유학을 선언한 뒤 1991년 발매한 동명 음반의 타이틀 ‘더딘 하루’는 그런 그의 과도기를 담고 있다. 잔잔하게 시작해 수직적 울부짖음으로 향하는 구성은 ‘담다디’로 인기를 끌어모았던 그 시절, 대중의 기대를 완벽하게 벗어났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만큼 폭발적이고 이만큼 반전의 충격을 안기는 곡은 잘 없다. 보시라, 들어 보시라. 어떤 식으로든 모창하거나 밈(meme)화 하게 될 것이니…

티건 앤 세라(Tegan and sara) ‘Make you mine this season’
경쾌하고 발랄한 분위기의 노래가 시작부터 귓가를 사로잡는다. 뒤이어 울려 퍼지는 한마디, ‘Make you mine’. ‘널 내 것으로 만들겠다’는 당찬 포부이자 언젠가 아니, 언제고 듣고 싶은 마음 설레는 문장이 짧은 러닝타임 내내 반복된다. 간지럽고 좋다. 곡은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한 영화 < 크리스마스에는 행복이 >의 수록곡이다. 작품이 담고 있는 유쾌함과 달콤함을 응축해 영화의 맛도 살리고 노래의 맛도 살렸다. 그러나 진가는 영상을 통해 곡을 만났을 때 드러난다. 국내에는 잘 없는 밝은 퀴어 로맨스를 그린 영화에 톡 떨어지는 곡이 참 중독적이다. 듣고 있으면 기분 좋아지고 보고 있으면 행복해지는 마성의 노래.

이엑스아이디(EXID) ‘데려다줄래’
이엑스아이디에게 날개를 달아 준 신사동호랭이의 그늘에서 벗어나 팀의 래퍼 엘이가 작사, 작곡하여 마련한 무대이다. ‘위아래’ 이후 역주행 신화를 잇기 위해 도발적인 모습을 앞세운 ‘아예’, ‘덜덜덜’ 등이 자기복제를 벗어나지 못했던 데에 비해 안정된 속도감이 이들의 실력을 조명한다. 과거 언더그라운드 힙합 크루 지기펠라즈에 속해 이미 검증된 바 있는 랩과 보컬트레이너로서의 경력이 있는 솔지의 목소리, 각자의 자리를 알고 움직이는 멤버들의 역량은 관능적인 춤이 하나의 무기에 불과했음을 증명한다. 짙은 색깔에 묻혀 빛을 보지 못한 음악은 그들을 ‘한 때 돌풍을 일으킨 섹시 심볼’로 보내주기 힘든 이유이다.

88라이징(88rising) ‘Midsummer madness’
아시아계 아티스트만을 영입하며 확고한 방향성을 정립한 88라이징의 목표는 글로벌 시장에 깃발을 꽂는 것이다. 리치 브라이언(Rich Brian), 조지(Joji) 등 이미 검증된 이들을 등에 업고 꾸준히 세계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레이블은 2018년 컴필레이션 앨범 < Head In The Cloud >를 발매하며 다음 단계를 도모했다. 곡의 도입부터 ‘떼창’을 유도하며 여름의 더위를 식혀 줄 명확한 의도를 가진 ‘Midsummer madness’의 중독성은 단연 돋보인다. 짧지 않은 러닝타임에도 반복적인 구성 탓에 금세 감흥이 줄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 하나쯤 남아 있는 아련한 오뉴월의 저녁을 떠오르게 만든다. 아카데미와 그래미로 영역을 넓히는 동양 문화의 한 축을 차지할 집단의 한여름 열기는 아직 뜨겁다.

푸 파이터스(foo fighters) ‘Learn to fly’
움츠러든 시대가 기지개를 켜고 있다. 서로 멀어지기를 명했던 세계가 집합하기 시작했고 이에 굳어있던 심장이 거친 호흡을 내뱉었다. 이제 앞을 보고 뛸 일만 남았다. 너바나의 음울했던 그림자를 벗겨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결국 누구보다 밝은 고유 형체를 갖게 된 푸 파이터스의 ‘Learn to fly’는 그런 점에서 현세대에 필요한 최고의 음악적 격려였다. 빌보드 싱글 차트 19위, 모던록 차트 1위 등 밴드에게 최초로 대중적 영예를 안긴 곡이기도 하지만, 어떤 분노와 슬픈 감정 하나 없이 경쾌한 연주와 보컬로 전달하는 직선적 쾌감이 물들이는 희망은 분명 시제를 관통할 보편성을 지녔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드러머 테일러 호킨스와 함께 그들이 전파한 ‘힘’이 다시금 울려 퍼지길 기대하며 지금이야말로 ‘하늘을 나는 법’을 배워야 할 때라고.

라붐 ‘아로아로’
2021년 브레이브걸스가 ‘롤린’으로 보여준 기적은 팬데믹 시대에 지친 대중을 위로했다. 우연히 마주한 희망에 모두는 자연스레 다음 페이지를 이어갈 타자를 기대했고 따스한 흐름 속 언급된 여러 후보 중 유력한 그룹은 단연코 라붐이었다. 데뷔 해였던 2014년부터 꾸준히 군부대를 중심으로 활동한 이력도 비슷했지만, 무엇보다 음악이 있었다. 대표곡 ‘상상더하기’가 한차례 반등에 성공한 지금 그들의 세 번째 싱글이었던 ‘아로아로’는 라붐의 재각인을 도울 확실한 촉진제다. 레트로를 기반으로 한 신스팝 장르의 경쾌한 편곡과 기억하기 쉬운 멜로디, 후렴구의 ‘치키차’란 포인트 가사까지. 기분 좋게 갖춰진 중독성은 이미 역전 시나리오의 긍정적 결말을 그리고 있다.

보이즈 라이크 걸즈(Boys Like Girls) ‘The great escape’
단번에 꽂히는 멜로디와 단순한 구성에 탄산음료 한 잔의 청량감이 담겨있다. 팝 펑크 특유의 경쾌함을 살린 ‘The great escape’는 국내에서 각종 게임 대회와 TV광고 배경음악으로 자주 등장해 2010년대 초반까지 큰 인기를 끌었다. ‘던져 버려, 어제는 잊고. 우리는 위대한 탈출을 감행할 거야!’라며 반항적으로 외치는 노랫말과 톡쏘는 절정은 학업에 지친 학생들의 아드레날린을 분출하며 답답함을 날려버렸다.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되어 마주한 그들의 스트레스도 단숨에 해소해줄 만큼 여전히 강렬하고 통쾌하다.

브로콜리 너마저 ‘보편적인 노래’
아프니까 청춘이다. 그 씁쓸한 말을 일삼던 시기에 브로콜리너마저는 방황하던 젊은 마음들을 어루만졌다. 단출하고 편안한 기타 선율 위에 보편적인 이야기를 읊조렸을 뿐이지만 흔하디 흔한 위로가 건넨 온기는 아직도 따뜻하게 남아있다. 특히 후미에 등장한 계피의 목소리에는 누구나 갖고 있는 소중한 기억으로 역주행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추억 속 포크 음악이 주는 진솔한 감상을 잠시 음미하기조차 어려워진 오늘날, 각박한 현대사회를 다정하게 물들일 추억 속 책갈피를 펼쳐본다.

데프콘(Defconn) ‘길’
각종 예능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며 인지도를 쌓은 데프콘은 20세기에 첫 앨범 < Kapital G >를 발표할만큼 경력이 길다. 하드코어 랩 ‘독고다이’나 버벌진트와 함께한 ‘Sex drive pt.2’ 처럼 거친 초기작은 친근한 이미지로 희석되기 아쉽다. 거침과 부드러움을 배합한 2003년 작 정규 1집 < Lesson 4 The People >에서 ‘길’은 후자에 속했다. 초등학생 시절이 끝날무렵 접한 푸근한 멜로디와 쏙쏙 들리는 가사는 지오디의 동명의 히트곡과는 다른 매력이었고, ‘슈퍼스타’란 곡으로 잘 알려진 불독맨션의 이한철이 피처링을 맡아 밴드풍 사운드가 완성되었다. 삶의 기로에 놓인 무명 래퍼의 솔직담백한 곡이다.

팀발랜드(Timbaland) ‘Give it a go (feat: Veronica)’
팀발랜드는 2000년대 중후반 뮤지션과 프로듀서 등 다양한 직함을 내걸고 히트곡을 쏟아냈다. 휴 잭맨 주연의 영화 < 리얼 스틸 >에 수록된 ‘Give it a go’는 주인공 소년과 격투 로봇이 함께 춤을 추는 장면에서 흥겨움을 선사했다. 팀발랜드 특유의 전진하는 편곡에 배우 겸 가수 베로니카의 목소리가 힘을 보탰다. 따라부르기 쉬운 후렴구로 히트 공식도 성립하지만 비슷한 제목의 ‘Give it to me (Feat. Justin Timberlake, Nelly Furtado)’가 빌보드 1위까지 오른 것에 비해 싱글 커트 조차 하지 않았다. 안젤리나 졸리의 아버지 존 보이트가 나온 1979년작 < 챔프 >의 21세기 버전 같은 < 리얼 스틸 >의 사운드트랙엔 이 곡을 비롯해 푸 파이터스의 ‘Miss the misery’와 에미넴의 ”Till I collapse (Feat. Nate Dogg) 같은 강력한 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싸이 ‘비오니까’
우리의 ‘연예인’에서 모두의 ‘연예인’이 된 싸이는 댄스 가수다. ‘챔피언’, ‘연예인’, ‘Right now’, 그리고 ‘강남 스타일’까지 결정적인 대표곡들이 전부 신나는 춤곡인 탓에 바꿀 수 없는, 바꾸지 않을 선입견이 그에게 잡혀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서정적인 음악을 좋아한다. 선정적인, 성적인을 잘못 쓴 것이 아니다. ‘친구놈들아’, ‘아름다운 이별 2’, ‘예술이야’, 그리고 이 특집에 넣은 ‘비오니까’ 같은 작품을 더 자주 듣는다. 음악도 음악이지만 가사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김광석 정도를 빼면 내가 노랫말을 유심히 보는 몇 안 되는 가수 중 한 명이다. ‘비오니까/그러니까/그래서/그랬어요’. 운(韻)이 단순해서 좋다. 싸이를 발라드 가수로 만들자.

지미 잇 월드(Jimmy Eat World) ‘The middle’
약 10년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록의 봄이 돌아오기를. 올리비아 로드리고, 머신 건 켈리, 태연, (여자)아이들 등 그 문법을 활용한 뮤지션이 활약하는 요즘 펑크(funk)와 디스코 이후 새 과거 유산을 찾듯 신복고 물결을 타고 고개를 내미는 록이 정말 반갑다. 걸걸한 기타 사운드로 가득한 나의 애청목록에 반해 국내 싱글 차트에서는 정제된 신시사이저만이 울리고 있어 쉬이 눈길이 가지 않아 이를 정화하고자 록 음악을 준비했다. 인간적인 매력이 살아 있는 20세기 노래를 소개하기에는 역주행에 ‘역’자도 꺼내기 전에 실패할 것 같아 2001년 빌보드 HOT100 탑10에서 5위에 올라 딱 중간을 차지했던 팝 펑크의 정석 ‘The middle’을 추천하고 떠난다.

공원소녀 ‘Bazooka!’
좋은 음악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빛을 본다는 운명론을 믿는 편이다. 공원소녀를 두고 ‘아직 발화의 순간이 찾아오지 않았을 뿐, 기회만 주어진다면 언제든지 도약할 팀’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일삼던 것 역시, 그들이 꾸준히 선보인 양질의 결과물에서 리스너의 확신을 도출했기 때문이었다. 현란한 멜로디와 모범적인 드롭 활용으로 트로피컬 하우스 계열의 K팝 사운드를 정립한 ‘밤의 공원’ 시리즈와 더불어 대중성까지 고루 버무린 웰메이드 트랙 ‘Bazooka!’를 그저 과거의 산물로 남겨두기에는 이제 아쉬움보다 죄책감이 앞설 정도다. 역주행 워너비의 영순위로 이 곡을 뽑은 이유는 간단하다. 과장을 조금 보태, 그 누구에게 들려주더라도 단번에 사로잡을 자신이 있으니까.

스카이 페레이라(Sky Ferreira) ‘Everything is embarrassing’
매체와 기기의 거듭된 발전으로 국가 간 장벽은 허물어진지 오래. 이미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군 두아 리파와 빌리 아일리시는 물론, 이제는 마니아 감성의 찰리 XCX와 FKA 트위그스까지 국내에서 입지를 꽤나 얻은 상태다. 그렇기에 더더욱 짙은 스모키 화장과 공허한 삼백안의 뮤즈, 스카이 페레이라의 언급은 빼놓을 수 없다. 비교적 주목은 덜하더라도 이들 못지않은 만능 플레이어기 때문. 대표곡 ‘Everything is embarrassing’을 보자. 자욱한 몽환경 속 덧없는 애가(哀歌)는 취향의 영역을 가혹하게 요구하지만, 기어코 빠져들면 헤어 나오기 힘든 모진 매력을 지닌다. 게다가 대중의 호응을 얻기 위한 필수 조건인 팝의 기본 질서를 탄탄하게 충족하고 있으니 뭘 더 바라겠는가. 만약 이 글을 읽고 호기심이 생겼다면, 새벽 시간의 퇴폐와 습기를 가득 머금은 그의 앨범 < Night Time, My Time >까지도 필청을 권한다.

소나무 ‘넘나 좋은 것’
행사 공연 ‘직캠’ 하나로 메이저 반열에 올라선 이엑스아이디, 전국 곳곳의 군부대를 누비며 ‘젊은 장병들의 선택’을 받았던 브레이브걸스, 낙수 효과 덕분에 ‘좋은 음악’을 재조명 받을 수 있었던 라붐까지. 이들의 모든 역주행 공식을 따랐지만 걸그룹 소나무만큼은 그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철 지난 속어 제목을 실패 이유로 들기엔 곡 구성과 멜로디가 결점을 완벽히 상쇄한다. 아카펠라로 출발해 신시사이저와 스트링을 비롯한 악기들이 펼치는 협연은 한 편의 뮤지컬 같은 감상을 이입하고, 끊임없는 변주의 끝엔 메인보컬 하이디의 환상적인 5단 고음이 펼쳐진다. 음원엔 이들의 활기찬 에너지가 온전히 담기지 못했다. 언젠가는 다시 무대 위에 올라 늘 푸른 기운을 담은 라이브로 관객을 놀라게 할 2010년대 슈가맨.

탑독 ‘애니’
유독 남자 아이돌에겐 이 짜릿한 역행의 순간이 찾아오지 않는다. 노래가 좋아도 팬덤 위주로 소비하는 경향이 강해 널리 퍼지기 힘든 구조가 한몫한다. 13인조 보이그룹 탑독 역시 초기의 난감한 콘셉트가 꽤나 큰 진입장벽을 세워 활동 반경을 크게 넓히지 못했다. 하지만 데뷔 1주년이란 ‘기념일(Anniversary)’을 맞아 발표한 팬송만큼은 대중적으로 회자될 만한 요소가 다분하다. 1990년을 상징하는 미국의 두 래퍼 MC 해머와 바닐라 아이스를 모티브로 한 뉴 잭 스윙 장르의 댄스곡이라는 점부터 특색 있다. 세련된 기타 리프와 신나는 비트 사이에서 개성 넘치는 랩과 보컬이 쉴 틈 없이 호흡을 주고받고, 후렴구에선 LP를 들고 현란한 안무를 소화하며 보는 재미까지 선사한다. 높은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청취를 막아서는 것은 멤버들을 다닥다닥 정렬해놓은 앨범 커버. 우연히 재소환 당할 기회가 찾아온다면 브레이브걸스의 ‘롤린’처럼 사진 교체가 시급하다.

씨아이엑스 (CIX) ‘Cinema’
워너원으로 활동했던 배진영 그룹이라는 별명보단 데뷔 무대가 기억에 남았다. 폭우가 쏟아지는 날 야외무대에 선 신인 아이돌은 풋풋하고 열정적이었다. 소형 기획사지만 송 캠프 시스템을 도입하여 음악에 큰 비용을 투자한다는 사실에 또 한 번 주목했다. 데뷔 초의 무거운 콘셉트와 음악을 씻어내고 산뜻하게 다가온 ‘Cinema’는 팀의 잠재력을 확인한 결정적 순간이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밝지만 선명하진 않다. 사이다처럼 톡 터지는 한 구절 대신 일정한 리듬과 편안한 멜로디로 상투적인 청량 K팝과 거리를 둔다. ‘Ready and action!’이라는 사인 뒤, 맥동하는 기타와 함께 시작하는 도입부와 코러스에서 쭉 뻗어 나가는 승훈의 보컬도 매력적이다. 내 필름 위에 씨아이엑스를 선명히 각인한 테이크다.

코난 그레이 (Conan Gray) ‘Generation why’
‘Maniac’의 전세계적인 히트로 국내에도 많은 팬을 보유한 코난 그레이의 매력은 순수한 미성으로 부르는 냉소적인 가사다. 아일랜드-일본 혼혈로서 시달린 선입견과 부모님의 이혼으로 12번 이사한 과거가 공허하고 우울한 음악의 저변을 형성하고 있다. Z세대 팝스타로 떠오르기 이전에 발매한 ‘Generation why’는 더욱 몽환적이고 내밀하다.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소년은 ‘우린 무기력하고 이기적이고 유별난 데다가 모두 죽고 싶어 하는 밀레니엄 세대니까’라며 비꼬고 수백 번은 들었을 ‘너희 세대는 도대체 왜 그런 거야’라는 잔소리를 떨쳐내려 한다. 그 모습이 세대 갈등을 겪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이 노래가 울려 퍼지면 어른들도 조금은 우리를 이해하려 하지 않을까.

나인뮤지스 ‘Wild’
달샤벳, 레인보우와 함께 ‘나달렌’으로 묶이며 늘 더 뜨지 못해 안타깝다는 시선을 받았던 걸그룹 나인뮤지스. 그들의 노래 중 가장 아까운 건 역시 2013년에 발표한 ‘Wild’다. 차가운 건반 사운드와 화려한 전자음을 뚫고 나오는 멤버들의 목소리는 단번에 강렬한 흔적을 남기고, 자극적인 콘셉트에 가려진 사랑하는 이에게 외치는 가사 ‘늘 함께 함께 가야만 해’가 퍼뜨리는 울림 또한 폭발적이다. 분열로 가득한 지금 시대에 더욱 각별하게 다가오는 문장이다. 지난해 SBS < 문명특급 > ‘다시 컴백해도 눈감아줄 명곡’ 특집의 무대 곡으로 가장 흥행했던 ‘Dolls’를 선택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지만, 학창시절 방송반 선곡표를 짜며 이 노래를 듣고 감탄에 빠졌던 나는 여전히 ‘Wild’와 함께 가고 있다.

칼리 래 젭슨(Carly Rae Jepsen) ‘Run away with me’
‘Call me maybe’의 돌풍 이후 가볍고 반복적인 훅을 내세운 ‘I really like you’는 복귀작 < Emotion >에 대한 대중의 기대를 이끌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앨범은 평단의 찬사에도 불구하고 상업적으로는 실패를 거뒀다. 두 번째로 발표한 ‘Run away with me’ 또한 빌보드 차트에는 진입조차 못했으나 팬들의 열렬한 지지 덕에 어느덧 그의 상징적인 곡으로 등극할 수 있었다. 도입부의 색소폰과 따스함을 머금은 멜로디, 간결하면서도 확실한 메시지 ‘나와 함께 달아나자!’까지 흠잡을 곳 하나 없는 노래가 흥행하지 못한 것에는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1980년대 풍 레트로 유행을 5년가량 앞섰다는 점에서도 더더욱 그렇다. 칼리 래 젭슨은 바쁜 틴 팝 스타를 벗어나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소탈한 뮤지션이 된 삶에 만족한다지만 적어도 이 노래 만큼은 지금보다 더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

정리 : 장준환
이미지 디자인 : 정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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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헌의 실감, 절감, 공감] 야구 좋아하세요?

2022년을 시작하며 세 가지 질문을 하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우선 ‘술 드실래요?’다. 세상 모든 사람이 음주를 즐기는 건 아닌데도 언젠가부터 항상 술을 권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두 번째로 아무나 붙잡고 ‘음악 좋아하세요?’라고 묻지 않기로 했다. 모두가 음악에 지대한 관심을 두고 있지는 않다. 그리 궁금하지 않은 음악계 소식을 지루하게 듣고 있어야 하는 상대의 고충을 고려했다. 마지막으로 이 질문만큼은 반드시 줄여야 함을 절감했다. ‘야구 좋아하세요?’

나는 야구광이다. 매일 저녁 여섯 시 삼십 분, 주말 낮 두시만 되면 웬만한 경우가 아니고서야 반드시 야구 중계를 켠다. 영어 공부를 핑계로 10년째 시즌권을 결제하고 있는 메이저리그 중계까지 더하면 새벽 두 시 십 분과 오전 아홉 시까지 야구의 시간으로 할당된다. 오랜 친구들과는 반드시 야구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하고 오랜만에 가족이 모일 때면 항상 야구 중계를 켜 둔다. 어젯밤 꿈에서도 나는 호쾌하게 초구 스트라이크를 던지는 에이스 투수가 되어 경기를 즐기다 팔을 머리 위로 올리는 것도 찌뿌둥한 현실로 돌아오고 말았다.

아버지 손에 이끌려 신문지 모자를 쓰고 찾은 야구장, 푸르른 그라운드가 눈 앞에 펼쳐지던 그 순간부터 야구는 세상을 이해하는 문법이자 공감대를 형성하는 중요한 문화 요소가 되었다. 돌아보면 아버지께서는 야구에 미쳐있는 나의 고향에서 살아남기 유리한, 나름의 사회생활 조기 교육을 일찌감치 해주신 셈이었다. 야구 학원 가는 봉고차 안에서도, 저녁거리 심부름하러 지폐 몇 장을 쥐고 들어선 슈퍼마켓에서도, 마른안주를 주워 먹던 호프집에서도 야구 중계가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시내 초등학생들이 모두 모인 교육청 영재 캠프에서 어색한 분위기를 깨 준 것도 야구 이야기였고, 영어를 잘하고 싶어 학교 원어민 선생님과 친해질 구석을 찾은 곳도 야구장이었다.

결정적으로 야구가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음악이었다. 2013년 이즘에 처음 들어와 팝의 고전 강의를 들을 때 나는 내가 의외로 선배들이 이야기하는 가수와 노래가 낯설지 않다는 점이 의아했다. 알고 보니 그들은 야구장에서 내가 열심히 따라 부르던 응원가의 주인공들이었다. 야구장에 가기 전 나는 항상 모든 응원가를 숙지하여 가곤 했는데, 운이 좋게도 내가 응원하는 구단은 주로 유명한 팝 노래를 번안하여 활용하는 팀이었다.

캐롤 킹과 제리 고핀의 명작 ‘The Loco-motion’은 거액의 FA 계약을 따냈으나 부진을 거듭하다 음주 문제로 커리어를 접은 선수의 상징 곡이었다. 긴 무명 시간을 떨치고 주장으로 거듭난 선수의 응원가는 도널드 분의 ‘Beautiful Sunday’였고, 앞날이 창창한 신인 내야수였으나 끔찍한 수비 탓에 중견수로 자리를 옮긴 선수의 주제가는 터틀스의 ‘Happy Together’였다. 지금은 다른 팀의 스타가 된 타자가 나올 때면 팬들은 보니 엠의 ‘Riverside of Babylon’을 소리 높여 불렀고, 나중에는 이럽션의 ‘One Way Ticket’까지 응원가가 되었다. 올드 팝만 나온 건 아니었다. 콰이어트 라이엇의 ‘Cum on Feel the Noize’와 트위스티드 시스터의 ‘We’re Not Gonna Take It’을 처음 들은 곳도 야구장이었다.

그냥 노래를 부르고 싶어서였을까, 또래보다 음악을 더 많이 안다는 허세를 부리고 싶어서였을까. 야구장 응원가로 나름 음악 공부를 열심히 했다. 리틀 에바가 부른 ‘Locomotion’으로부터 그랜드 펑크 레일로드와 카일리 미노그의 리메이크 버전을 찾아 듣고, 캐럴 킹과 제리 고핀의 빛나는 브릴 빌딩 틴 팬 앨리 명곡을 찾아 노트에 써 내려갔다. 콰이어트 라이엇, 트위스티드 시스터로 알게 된 1980년대 헤비메탈의 휘황찬란한 시대로부터 머틀리 크루, 건스 앤 로지스, 밴 헤일런, 데프 레퍼드의 이름을 발견했다.

시간이 흘렀다. 노래의 주인공들이 은퇴를 선언하고, 응원하는 팀은 단 한 번도 정상에 서지 못했다. 2017년부터는 노래 원작자들이 KBO에 응원가 편곡에 대한 저작권을 요구하며 유명 팝송 응원가가 구단 자체 제작 노래로 대체되었다. 선수도, 응원가도 사라졌다. 그러나 음악만큼은 기억에 남았다. 아직도 백스트리트 보이스의 ‘Straight Through My Heart’를 접하게 되면 팀을 옮긴 프랜차이즈 선수에 대한 감정이 되살아나고, 노래방에서 노브레인의 ‘넌 내게 반했어’를 선곡하면 중간중간 이름을 넣어 소리 질러야 할 것만 같다. 고령의 닐 세다카가 음악 다큐멘터리에 등장할 때마다 나는 ‘날려버려!’를 외치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지난 3월 한국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20대의 18%만이 프로야구에 관심이 있다고 한다. 80% 이상이 야구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뜻이다. 일부 선수들의 방종과 구단의 태만한 운영, 올림픽 참사로 만천하에 드러난 실력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야구에 열 내는 사람이 희귀한 요즘 굳이 다른 사람에게 재미없는 이야기 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음악, 술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야구를 보면 음악이 생각나고, 음악을 듣다 보면 야구를 떠올린다. 그리고 야구에 몰입하다 보면 술이 당긴다. 시원한 맥주 한 잔을 손에 든 채로 옆자리 처음 만난 아저씨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힘차게 견제 응원을 하고 싶다. 그렇게 음악을 체험하고 익힌 경험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음악을 글로 쓰고 말로 전할 수 있다.

강요는 아니더라도, 모르는 사람에게 친절하고 재미있게 권하는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그렇게 오늘도 넌지시 질문을 던져본다. ‘음악 좋아하세요? 그리고 야구도 좋아하시나요? 술 한 잔 하실까요?’. 혹시 내가 응원하는 이 팀까지 좋아한다면 금상첨화인데… 여기까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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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뉴트로 특집 VOL. 1 : ‘레트로 아니, 뉴트로 마니아’의 시대

복고가 뭐길래. 이리도 오랜 시간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특히 ‘젊은 세대’에게도 사랑받는 것인가. 한 번쯤은 떠올렸을 궁금증이다. 이에 이즘이 ‘뉴트로 특집’을 준비했다. 먼저 박수진 필자가 ‘레트로 아니, 뉴트로 마니아의 시대’란 제목으로 복고(레트로)와 뉴트로의 정의를 알리고 오늘날 뉴트로가 사랑받는 이유에 대해 정리한다. 이 흐름 안에서 짚고 가면 좋을 국내외 대표 아티스트도 함께 언급했다고 하니 복고 열풍을 이해하는 좋은 지침서가 될 듯하다. 특집들은 한 주의 차를 두고 공개된다.

복고가 대중음악의 트렌드로 자리한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2007년, 1970년대 디스코를 복각한 원더걸스의 ‘Tell me’가 전국에 선풍적인 반향을 일으킨다. 다음 해인 2008년, 그들은 1960년대 흑인 보컬 그룹 슈프림스의 콘셉트를 ‘재연’한 ‘Nobody’로 인기를 이어가는데 이는 미국 시장 진출의 발판이 되기도 했다. 진출 이상의 성과는 없었지만 당시 시야를 해외로 옮길 만큼 원더걸스의 인기는 대단했다. 복고와 함께한 성공이었다.

근 15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복고는 음악 곁에 있다. 지역이나 문화권을 뛰어넘은 전 세계적 흐름이다. 해외 음악 시장을 보자. 데뷔 초 ‘Marry me’, ‘Just the way you are’ 등 달콤한 팝을 하던 브루노 마스가 ‘Treasure’, ‘Uptown funk’, ’24K magic’ 등의 펑크(Funk)를 주력으로 삼은 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 도자 캣의 긴 무명 시절을 끝내 준 효자곡 ‘Say so’ 역시 디스코, 펑크를 근간으로 하고 게일을 한순간에 스타로 만든 ‘abcdefu’ 또한 2000년대 초반 팝펑크를 여기로 이식한다. 신시사이저를 근사하게 채색한 해리 스타일스의 신곡 ‘As it was’는 현재 빌보드 싱글차트 2위를 순항 중이다.

복고의 의미를 따져볼 필요성을 느낀다. 복고, 즉 레트로(retro)는 회상, 회고, 추억이라는 의미의 영어 단어 ‘retrospect’로부터 파생했다. 과거의 ‘재현’을 통해 향수를 느끼고 추억을 되새기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해리 스타일스의 ‘As it was’를 듣고 그때 그 시절 떠올리는 (아마도) 중장년층에게 이 곡은 레트로다. 반면 추억이 없는 1020세대에게 이 곡이 지닌 복고적인 특성은 ‘색다름’이며 ‘새로움’이다. 이때는 ‘뉴트로’다. ‘새롭다’라는 뜻의 new와 ‘복고’의 retro가 합쳐진 신조어 ‘뉴트로’는 이렇게 레트로와 종이 한 장 정도의 차이를 가진다.

레트로와 뉴트로를 굳이 나누는 것은 한국 한정 현상이다. 책 < 트렌드 코리아 2019 >에서 뉴트로를 새해 소비 트렌드 전망으로 꼽으며 대중화됐다. 레트로 콘셉트의 음악에 이렇다 할 추억이 없는 젊은 세대에게 복고가 계속해서 큰 관심을 끄는 것이 키워드화 될 정도로 붐인 것이다. 도대체 왜. 다수의 전문가는 해답을 디지털 매체의 발달에서 찾는다.

2017년 익명의 ‘유튜브’ 계정에 타케우치 마리야의 곡 ‘Plastic love’가 업로드됐다. 2022년 현재 5천만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발매된 지 30년도 더 된 이 곡이 별다른 맥락 없이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는 이유로(위 영상의 댓글 창을 보자) 소환되고 회자했다. 그렇게 불어온 시티팝 열풍이 유튜브 알고리즘 추천을 타고 국내까지 번졌다. 빛과 소금의 ‘샴푸의 요정’이 젊은이들의 귓가를 쓰다듬었고, 김현철은 10년 만의 정규 음반을 발표한다. 백예린, 아이유, 태연, 브레이브 걸스 등이 시티팝 스타일의 노래를 불렀다.

나아가 소셜 미디어 사용이 확대되며 뉴트로가 ‘확산’되는 속도가 빨라졌다. 2020년 한 틱톡커(Tiktoker)가 스케이트보드를 타며 플리트우드 맥의 ‘Dreams’를 따라 부르는 영상을 올린다. 이 영상이 입소문을 타며 1977년에 발표한 곡이 40여년 만에 빌보드 싱글 차트 21위에 재진입했다. 최근 국내의 각종 숏폼 플랫폼에서는 이럽션의 ‘Oneway ticket’이 활약 중이다. 1980년 방미가 ‘나를 보러와요’로 번안하며 인기를 끈 이 노래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원곡으로 다시 사랑받고 있다. 곡이 가진 ‘뽕끼’와 촌스러운 익살스러움이 젊은 층에게 개성과 재미로 먹혀들었기 때문.

앞으로 달려 나가는 사회에서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디지털 매체가 발달하고 소셜 미디어 사용이 확대된 오늘날 우리가 찾는 새로움이 ‘미래’가 아닌 ‘과거’에 더욱 쏠려 있다는 것은 복고가 전하는 메시지가 무언의 설득력을 가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제 막 30대 초입에 들어선 필자는 그 답을 현실의 퍽퍽함에서 찾고자 한다. 기술 매체의 발달이 되려 팽팽한 긴장감으로 치환되는 지금 우리네 사회는 앞을 내다볼 여유가 없다.

영국의 저명한 평론가 사이먼 레이놀즈는 < 레트로 마니아 >라는 책에서 레트로 문화를 강도 높게 비판한다. 그는 “문화에서 레트로 마니아는 이제 지배적 우상을 넘어 임계점에 다다른 느낌”이라 말하며 “문화가 노스탤지어에 매달려서 앞으로 나갈 힘을 잃은 걸까, 아니면 문화가 더는 앞으로 나가지 않아서 결정적이고 역동적이던 시대에 노스탤지어를 느끼는 걸까”라는 질문을 덧붙인다. 일면 타당한 시선이다. 재창조가 받침 되지 않는 복고는 완벽한 재현(혹은 재연) 이상의 함의를 띄지 못한다.

그렇기에 언제든 가져다 쓸 수 있는 과거의 다양한 유산들은 자칫 그것이 음악의 전부가 될 경우 질적 하락을 초래할 수도 있다. 이번 글에서 복고가 사랑받는 이유에 대해서 분석하며 현실의 바로미터를 파악했다. 이어질 특집을 통해 레트로, 아니 뉴트로 마니아의 시대 복고를 듣기 좋게 재창조한 곡들을 소개한다. 대중문화를 사로잡은 ‘과거 앓이’가 자기복제 이상의 가치 창출로 뻗어나가길 바라며, 다음 특집도 재밌게 읽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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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아이돌 역사를 빛낸 노랫말 명작 1부

영화 <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 >의 여주인공 소피는 멜로디가 누군가를 처음 만나는 것이라면 가사는 그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음률은 음악의 첫인상을 결정하고 노랫말은 깊이를 만든다. 그동안 유재하, 토이, 서태지 등 싱어송라이터의 가사는 심도 깊게 알아야 할 대상으로 여겨져 왔지만 타인의 손에서 쓰인 아이돌 음악은 배제되었다. 그럼에도 K팝은 10대의 현실을 예리한 시선으로 포착했고 그때 만들어진 형식은 지금까지도 영향을 주고 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발매된 K팝 중 우리 기억에 또렷하게 새겨진 노랫말 명작들을 소개한다.

젝스키스 ‘사나이 가는 길(폼생폼사)’ (1997)

폼생폼사, 네 글자가 주는 임팩트 덕분에 부제가 더 기억에 남는다. 강건한 제목과 달리 미련한 가사는 웃음을 자아낸다. ‘폼에 살고 폼에 죽는 나인데/이제 와 구차하게 붙잡을 순 없잖아’라고 자신을 위로하다가 다시 마음가짐을 바꿔 복수를 다짐한다. ‘기가 막혀 홧김에 군대 갈까 했지만/머리 깎기 싫어서 다시 생각 고쳤지’라는 20대 초반의 치기 어린 랩도 킬링 포인트다. 그 모습이 폼 나진 않지만 어쩐지 첫사랑을 실패한 동생 같아서 ‘사나이다’라고 응원해 주고 싶다.

핑클 ‘영원한 사랑’ (1999)

2021년 말 신인 걸그룹 아이브가 ‘난 몰랐어 내 맘이 이리 다채로운지’라는 가사로 소녀들의 마음을 대변했지만 본래 우리는 단 하나의 ‘영원한 사랑’을 약속했다. 그 인식에는 미디어가 주입하는 ‘첫사랑의 신화’와 함께 핑클의 영향이 남아있다. 새끼손가락을 올리며 부르는 ‘약속해줘’, 양손을 돌리며 노래하는 ’항상 나의 곁에 있어줘’를 들으면 그때만큼은 사랑을 맹세할 수밖에 없다. 그 시절의 낭만이 시들어버린 지금은 추억 속 음악 혹은 결혼식 축가로 불리지만 순수했던 마음은 아직 살아있다.

에이치오티 ‘아이야!’ (1999)

에스파까지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SMP(SM Music Performance)의 시초는 에이치오티였다. 이들은 학교폭력을 비판하는 ‘전사의 후예’, 공부를 강요하는 어른들에게 불만을 터트리는 ‘We are the future’ 등 10대의 대변자로서 목소리를 높였다. ‘아이야’ 역시 ‘피우지도 못한 아이들의 불꽃을 꺼버리게 누가 허락했는가’라고 분개하며 1999년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사고로 희생된 아이들을 추모했다. ‘언제까지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반복하고 살 텐가’라며 더 이상 아이들이 다치지 않도록 반성을 촉구했지만 2014년 역사는 무자비하게 되풀이되고 말았다.

보아 ‘Girls on top’ (2005)

SM엔터테인먼트의 야심 찬 포부를 안고 출범한 갓 더 비트의 ‘Step back’은 17년 전 보아의 ‘Girls on top’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연애지상주의 대한민국에 등장한 이 곡은 사랑이 없더라도 여성이 오롯한 존재일 수 있다고 말한다. 당당하고 주체적인 현대 여성상은 오늘날 걸 크러시 콘셉트의 원형이다. 비록 ‘나는 나인 걸 누구도 대신하지 말아/내 모습 그대로 당당하고 싶어’라는 가사는 갈 곳을 잃고 ‘내 남잔 지금 Another level/너 따윈 꿈도 못 꿀 Level’로 뒷걸음질 쳤지만.

FT 아일랜드 ‘남자의 첫사랑은 무덤까지 간다’ (2007)

긴 제목이 낯선 탓에 속담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나만 모르는 구비 설화가 아닌가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FT 아일랜드의 노래였다. 당시 유행하던 인터넷 소설을 가져온 듯 나쁜 남자의 첫사랑을 절절하게 그린 가사를 들으면 2000년대가 새록새록하다. 지금 듣기에는 낯간지러워도 어떤 이들에게는 아직까지 공식처럼 여겨지는 제목이다. ‘사랑의 기준은 언제나 너’였다고 고백하던 아이돌 밴드가 첫사랑의 기준을 다시 세웠다.

소녀시대 ‘다시 만난 세계’ (2007)

후렴구 ‘사랑해 널 이 느낌 이대로 그려왔던 헤매임의 끝’을 소녀들의 응원으로만 치부하기에는 음악이 지닌 함의가 크다. 역사적으로 새로운 사회를 맞이할 때 희생, 폭력, 혁명 같은 단어가 뒤따랐지만 ‘다시 만난 세계’는 사랑으로 감싸안기를 제안한다. 가사가 담고 있는 신념은 곧 연대의 상징으로 펴졌다. 2016년 이화여대 학생들은 경찰의 과잉진압 앞에서 우리 사회가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이 노래를 불렀다. 10대의 문화를 대표하던 K팝은 미얀마 민주화 운동, 태국 반정부 시위까지 퍼져 나가며 동시대 민중가요로 탈바꿈하고 있다.

빅뱅 ‘거짓말’ (2007)

원더걸스의 ‘Tell me’를 계기로 후크송이 급물살을 탔던 2007년, 빅뱅은 리더 지드래곤이 쓴 서정적인 가사로 승부수를 던졌다. 가장 인기 있던 부분은 탑이 손가락을 빙빙 돌리면서 외치던 ‘주머니 속에 꼬깃꼬깃 접어둔/이별을 향한 쪽지’였다. 당시 재밌게 따라 부르던 노랫말은 지금 돌이켜보면 구겨져도 버리지 못하는 마음을 비유한 것 같아 감탄을 낳는다. 가볍게 즐기기 좋지만 마지막까지 거짓말이라고 고백하는 ‘그 말’은 정작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어 알쏭달쏭한 추측만 남긴다. 모두가 아는 만큼 감춰둔 의미도 많은 노래다.

샤이니 ‘누난 너무 예뻐’ (2008)

투피엠을 위시한 짐승남이 각광받던 시대에 반기를 들고 나타난 샤이니의 데뷔곡은 제목부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아마 그녀는 어린 내가 부담스러운가봐’나, ‘누난 너무 예뻐/그 그녀를 보는 나는 미쳐’라는 미숙한 가사는 지금도 연하남의 교과서로 불리기에 충분하다. 이들이 내세웠던 소년의 성장기와 청량함은 엔시티 드림,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등이 여전히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한 편의 노랫말로 출발한 캐릭터의 서사는 후속작 ‘Love sick’을 지나 ‘Marry you’에 와서 마침표를 찍었다.

카라 ‘Step’ (2011)

1월 1일 0시, 신년을 맞이하면 매번 스트리밍 사이트의 실시간 순위에 익숙한 곡들이 오른다. 요즘은 한 해의 소망을 다 이룰 것이라는 포부를 담아 우주소녀의 ‘이루리’를 가장 많이 듣지만 그전에는 카라의 ‘Step’이 있었다. 하우스 튠과 글리치 효과 사이로 훅이 지나가면 ‘넘어 지진 않을 거야 슬픔아 안녕/친해지지 않을 거야 눈물아 안녕’이라는 도입부가 시작한다. ‘Pretty girl’, ‘Wanna’ 등 미숙한 소녀 같았던 초기 이미지를 뒤엎은 그 자리에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여전히 한 단계 도약하고 싶은 이들의 당찬 걸음걸이를 책임지고 있다.

비스트 ‘비가 오는 날엔’ (2011)

봄에 벚꽃 특수가 있듯 여름 장마철마다 유난히 사랑받는 음악이 있다. 헤이즈의 ‘비도 오고 그래서’, 에픽하이의 ‘우산’, 샤이니의 ‘투명 우산’ 등이 있지만, 많은 이들은 비스트의 ‘비가 오는 날엔’을 떠올린다. 빗방울이 떨어지면 지나간 연인의 잔상을 더듬는다는 현실적인 설정은 감성적이고, 멜로디와 완벽히 일체화한 ‘비가 오는 날엔 나를 찾아와/밤을 새워 괴롭히다’라는 구절은 콧노래를 흥얼거리게 한다. 지금은 부를 수 없는 비스트라는 이름을 되살리는 마법 같은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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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한 프로그레시브 록 입문곡 10선

로큰롤은 흑인 교회의 열정적 의식에 어원을 두나 ‘몸을 야하게 움직인다’라는 속뜻도 있다. 원초성과 본능에 뿌리 둔 음악이 로큰롤이다. 단순명료했던 1950년대 초기 로큰롤은 1960년대에 이르러 다양한 장르로 분화했고 그 중심엔 비틀스가 있었다.

1960년대 후반은 록 음악의 예술적 전성기였다. 도전적인 밴드들은 고전 음악, 재즈와 전위음악의 양식을 도입해 록의 외연을 확장했다. 그렇게 탄생한 프로그레시브 록은 복잡한 구조의 대곡(大曲) 지향적 음악, 다채로운 악기 사용과 소리의 실험 등을 특징으로 예술성의 극한에 다다랐다.

태생적 한계도 있다. 장르명이 주는 왠지 모를 차별감, 록의 기본 속성에서 빗나가버린 현학적인 스타일로 인해 대중과 멀어졌다. 이후 마릴리온을 위시한 1980년대의 네오 프로그레시브 록, 드림 시어터를 필두로 1980년대 후반부터 점화된 프로그레시브 메탈이 나왔으나 대중적 장르로 보긴 어려웠다.

록의 여러 하위 장르 중에서 현대의 대중 음악가들에게 미친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적고 3~4분 러닝타임에 익숙한 리스너들에게 복잡다단한 곡들은 생경하다. 하지만 프로그레시브 록 뮤지션들이 바라본 아득한 예술성은 마니아들의 지지와 함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무수한 장르 명곡 중 국내에서 특히 사랑받았거나 개인적인 추억이 있는 작품들을 열 곡으로 간추렸다. 아무쪼록 이 리스트가 프로그레시브 록과 조금이나마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길 소망한다.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Time’ / < The Dark Side Of The Moon >(1973)

비단 프로그레시브 록이라는 장르에 한정하지 않더라도 핑크 플로이드는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록밴드 중 하나다. 가장 유명함과 동시에 조금은 이질적인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인데 다른 밴드들과 비교 불가한 압도적 상업적 성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네 차례 1위를 기록했고 ‘가장 많은 앨범을 판매한 록밴드’ 리스트 5위에 이름을 올렸다. 최근 약 28년만의 신곡 ‘Hey, hey, rise up!’ 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하기도 했다.

1973년 작 < The Dark Side Of The Moon >은 빌보드 앨범차트에 무려 962주간 올랐다. 처음부터 끝까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구성에 알란 파슨스가 매만진 초현실적 사운드는 청취를 초월한 음악적 체험이다. 동전 소리로 시작하는 ‘Money’는 배금주의에 메스를 대고 클레어 토리(Clare Torry)의 처절한 가창이 ‘The great gig in the sky’를 수놓았다. 서늘한 자명종 소리와 몽환적인 코러스, 데이비드 길모어의 기타 솔로를 지닌 ‘Time’은 덧없는 시간을 향한 비관주의다. 1980~90년대 공익 광고의 BGM으로 쓰이며 국내에 알려졌다.

킹 크림슨(King Crimson) ‘Epitaph’ / < In The Court Of The Krimson King >(1969)

강렬한 인상의 앨범 커버에 담긴 음악은 진중하고 깊었다. 1969년 발매 당시 킹 크림슨의 < In The Court Of The Krimson King >은 비틀스의 < Abbey Road >를 밀어내며 빌보드 앨범차트 1위를 기록했다고 와전되었으나 대신 역대 최고의 프로그레시브 록 앨범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오로지 가사만 담당했던 작사가 피터 신필드와 윈도우 효과음을 창조한 기타 철학자 로버트 프립, 후에 AOR (어덜트 오리엔티드 록) 밴드 포리너에 합류하는 이언 맥도널드의 ‘1기 킹크림슨’ 유일 작이다.

플루트로 서정 미학을 확립한 ‘I talk to the wind’와 전위적인 재즈 록 ‘21st century schizoid man’ 등 앨범의 수록곡 전부가 걸출하지만 국내에선 의심의 여지 없이 ‘Epitaph’였다. 죽음에 대한 신필드의 철학은 비틀스가 ‘Strawberry fields fover’ 도입부에 사용한 건반악기인 멜로트론 연주와 어우러지며 음울한 분위기를 조성했고 그렉 레이크의 보컬은 어느 때보다 처연하다. 검열 정책으로 예술 작품이 난도질당했던 1970~80년대에 역설적으로 인기를 끈 이 곡은 어떠한 주술처럼 당대의 청년들을 홀렸다.

프로콜 하럼(Procol Harum) ‘A whiter shade of pale’ / < Procol Harum >(US version)(1967)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들은 고전 음악과 불가분의 관계였다.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를 차용한 ‘A whiter shade of pale’은 영국 1위, 미국 5위까지 오른 최초의 프로그레시브 록 히트곡이 되었고, 바로크풍의 오르간 선율과 밴드의 창립자 개리 브루커의 절절한 음성이 장르의 형식적 규범을 세웠다. 영화 < 빅 칠 >과 < 락앤롤 보트 >가 이 곡을 사용해 인지도 효과를 보았다.

춤을 추다가 얼굴이 창백해진 여인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갈피를 잡기 힘든 노랫말에 설왕설래가 있었다. 섹슈얼한 관계의 은유와 신비라는 통설은 1967년의 히피 시대와 맞물려 설득력을 얻었으나, 곡의 작사가 키스 라이드는 “퇴폐를 직설적으로 이미지화했다.”라며 반박했다. 1960년대를 대표하는 이 명곡은 사라 브라이트만과 유리스믹스의 애니 레녹스를 비롯한 수많은 뮤지션들에 의해 커버되었고 브릿 어워드가 선정한 ‘1952년부터 1977년 사이에 발표된 가장 뛰어난 영국 싱글’에 퀸의 ‘Bohemian rhapsody’와 함께 공동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무디 블루스(Moody Blues) ‘Nights in white satin’ / < Days Of Future Passed >(1967)

1세대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무디 블루스는 ‘For my lady’과 ‘Your wildest dreams’, ‘Melancholy man’ 같은 대중적인 노래를 다수 발표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실험적이었다. 이들은 고전 음악과 록을 5 대 5 비율로 섞어 심포닉 록의 청사진을 제시했고 한 남자의 하루를 다룬 < Days Of Future Passed >로 콘셉트 앨범의 미학을 드러냈다. 활기찬 분위기의 ‘Lunch break: peak hour’와 건반 연주가 리드미컬한 ‘Tuesday afternoon’으로 이어지는 구성이 탁월하다.

리드보컬이자 기타리스트 저스틴 헤이워드가 작사 작곡한 ‘Nights in white satin’ 은 여자친구가 선물한 새틴에서 착상한 개인적인 이야기다. 전형적인 역주행 곡으로 발표 당시에는 차트 입성을 못 했지만 3년 후 1972년엔 빌보드 싱글차트 2위까지 올랐다. 건반 주자 마이크 핀더는 멜로트론으로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을 구사하며 악기의 효용성을 입증했다. 3~4분대의 싱글 버전들이 존재하지만 후반부 시 낭독이 포함된 7분여의 앨범 버전에서 진가가 드러난다.

제쓰로 툴(Jethro Tull) ‘Living in the past’ (1969)

메탈리카를 제치고 1989년 제31회 그래미 어워드의 헤비메탈/하드록 부문을 수상해 화제가 되기도 한 제쓰로 툴은 목가적인 포크부터 헤비메탈까지 방대한 음악 세계를 품었다. 수십 가지 악기를 연주하는 재주꾼 이안 앤더슨은 밴드의 알파이자 오메가로 기괴한 표정과 율동이 제스로 툴의 진중한 음악과 묘한 마찰을 일으킨다.

‘Living in the past’는 1969년에 영국 싱글차트 3위까지 오른 히트곡이다. 데이브 브루벡의 ‘Take five’처럼 독특한 5박자 리듬은 이안 앤더슨의 플루트 연주와 어우러져 신비감을 발산한다. 프랑스 68운동을 비롯한 반문화, 반체제의 혁명 시대를 부정하고 “너와 사랑을 나누겠다.”라는 본능에 충실한 가사는 곡 분위기와 조화를 이룬다. 이 곡 이외에도 최고의 기타 리프 중 하나로 거론되는 ‘Aqualung’ 등 명곡을 다수 보유했고 국내에선 전설적인 라디오 프로그램 < 전영혁의 음악세계 >가 배출한 연주곡 ‘Elegy’가 사랑받았다.

예스(Yes) ‘Roundabout’ / < Fragile >(1971)

1983년 빌보드 1위 곡 ‘Owner of a lonely heart’의 매끈한 사운드로 거장 밴드의 귀환을 알렸지만 이들의 진면목은 1970년대에 있다. ‘Roundabout’가 수록된 < Fragile >은 1971년 11월에 나왔고 ‘Starship trooper’가 수록된 < The Yes album >이 1971년 2월, 로저 딘이 구상한 몽환적인 앨범 커버에 단 세 곡이 들어간 < Close To The Edge >가 1972년 9월에 발매되어 2년도 안 되는 기간에 창작력을 폭발시켰다. 변화무쌍한 악곡 전개를 소화하는 최정상급 연주력은 후배 밴드들에 절망과 자극을 동시에 안겨줬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로 가는 길에서 만난 교차로를 모티브로 한 8분여의 대곡은 잘 짜인 곡 구성과 선명한 선율로 빌보드 싱글차트 13위까지 올랐다. 도입부를 비롯한 악곡의 중심엔 많은 후배에게 영감을 준 크리스 스콰이어의 베이스 연주가 있고, 마술 같은 릭 웨이크먼의 건반 연주가 힘을 보탰다. 지속적인 멤버 교체가 있었으나 팬들은 이 곡을 연주한 존 앤더슨(보컬), 스티브 하우(기타), 크리스 스콰이어(베이스), 빌 브루포드(드럼), 릭 웨이크먼(키보드)의 라인업을 최고로 친다. 영화 < 스쿨 오브 락 >의 잭 블랙은 피아노를 다루는 동양계 학생 로렌스에게 < Fragile > CD를 건네며 “’Roundabout’의 건반 솔로를 필청하렴.” 라며 강조했다.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Emerson, Lake & Palmer) ‘Lucky man’ < Emerson, Lake & Palmer >(1970)

‘키보드계의 지미 헨드릭스’ 키스 에머슨은 건반으로 기타에 맞먹는 카리스마를 보여줬고 거대한 신시사이저에 칼을 꽂는 퍼포먼스로 충격을 선사했다. 사이키델릭 록 그룹 나이스부터 후기 영화음악 작업까지 다채로운 경력을 쌓았으나 2016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기타 대신 키보드 연주를 전면으로 내세운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는 무소르그스키와 바흐를 재해석하고 거대 아르마딜로에 대한 콘셉트 앨범 < Tarkus >를 발표하는 등 실험적 행보를 보였다.

시작부터 비범했다. 1970년에 나온 1집 < Emerson, Lake & Palmer >의 첫 곡 ‘The barbarian’은 ‘야만인’이라는 제목처럼 야성적인 사운드를 들려줬고 ‘Knife edge’ 속 에머슨의 해먼드 오르간 연주도 날카롭게 빛났다. 각각 헝가리 작곡가 벨라 바르톡과 바흐의 작품을 편곡해 고전 음악의 변용이라는 정체성을 명확히 했다. 베이스 주자 그렉 레이크가 12살에 작곡한 간결한 코드 진행의 ‘Lucky man’은 드러머 칼 파머의 연주가 리드미컬하고 에머슨의 무그 신시사이저 후주는 그 어떤 건반 악기에서 느끼기 힘들었던 두께감을 선사했다. 국내에선 ‘C’est la vie’와 ‘From the beginning’이 애청곡이었다.

카멜(Camel) ‘Long goodbyes’ / < Stationery Traveller >(1984)

눈물 떨구는 낙타와 똬리 튼 백조, 설원 위 마법사의 뒷모습까지 카멜의 앨범 이미지는 음악만큼 다채롭다.  빌보드 앨범차트 100위권 안의 앨범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위의 밴드들에 비해 상업적 성과는 옅지만 특유의 서정미로 국내에서 특히 사랑 받았다. 프로그레시브 록의 한 조류인 캔터베리 신을 대표하는 밴드 카라반과 멤버를 공유해, 재즈의 즉흥성을 수용했으며 심포닉한 곡 구성으로 마릴리온 같은 1980년대 네오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들의 음악적 전성기는 < The Snow Goose >와 < Moonmadness >가 나온 1970년대 중반이지만 국내에선 1984년 작 < Stationery Traveller >가 주목 받았다 . 서독과 동독의 이념 갈등을 담은 이 콘셉트 앨범에서 ‘Long goodbyes’ 는 차분한 전개와 아름다운 선율로 라디오 친화적인 노래가 되었다. 단 두 장의 앨범에만 참여했던 크리스 레인보우의 보컬이 인장을 남겼고, 밴드의 구심점 앤드류 레이티머의 플루트와 기타 연주가 곡 분위기를 살렸다.

뉴 트롤즈(New Trolls) ‘Adagio’ / < Concerto Grosso Per I New Trolls >(1971)

영국이 불 붙인 프로그레시브 록 열풍은 전 유럽을 걸쳐 퍼져나갔다. 카약과 포커스 등이 네덜란드서 활약했고 독일은 ‘크라우트록’(1960년대 말 서독에서 탄생한 실험적인 록 음악)이라는 파생 장르로 캔, 노이! 같은 밴드를 배출했다. 유럽 프로그레시브 록 지형도의 큰 대륙을 형성한 이탈리아 밴드들은 독일과 반대되는 서정미로 국내 팬들의 지지를 받았다. 디제이 성시완의 레이블 시완레코드는 라떼 에 미엘레, 방코, PFM 등 이름도 독특한 밴드들을 소개했고 지금도 마니아들의 수집욕을 자극하고 있다.

18세기 이탈리아의 고전 음악가 토마소 알비노니의 작품을 록으로 재해석한 ‘Adagio’는 < 햄릿 >의 명대사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의 한 대목을 ‘To die, to sleep, maybe to dream(죽거나, 잠들거나 꿈꾸거나)으로 변용했다. < Concerto Grosso Per I New Trolls >의 다른 곡 ‘1° Tempo: Allegro’는 기타와 바이올린의 거친 매력을 보여줬고 20분이 넘는 마지막 곡 ‘nella’로 즉흥 연주의 대서사시를 완성했다. 국내에선 프랑스 가수 질베르 베코의 샹송을 하모니가 강조된 록으로 커버한 ‘Let it be me’가 유명하다.

러시(Rush) ‘Tom Sawyer’ / < Moving Pictures >(1981)

캐나다의 국민 밴드 러시는 초기에 레드 제플린 스타일의 카랑카랑한 하드록을 들려줬지만 가상도시 메가돈(Megadon)을 배경으로 한 콘셉트 앨범 < 2112 >으로 프로그레시브 록의 총아로 떠올랐다. 이 앨범은 강력한 금속성 사운드로 드림 시어터와 같은 프로그레시브 메탈 그룹을 예언했다. 단 세 명이 주조해낸 완벽한 연주력은 추종자를 양산했으나 대중친화적인 발라드 곡의 부재로 국내 인지도는 저조하다.

캐나다 앨범차트에서 1위, 미국에서 3위를 차지한 1981년 작 < Moving Pictures >는 가장 높은 상업적인 성과를 거뒀다. 상대적으로 컴팩트한 악곡 전개와 뉴웨이브 신스팝을 접목한 사운드로 접근성을 높였고 2020년 작고한 닐 피어트의 드러밍이 돋보이는 연주곡 ‘Yyz’와 대중적인 ‘Limelight’ 등 명곡을 다수 포함했다. 닐 피어트와 캐나다 출신 시인 겸 작사가 파이 뒤부아가 함께 작사한 ‘Tom sawyer’는 마크 트웨인 소설 속 주인공의 모험 정신과 꽉 찬 연주로 캐나다 국가(國歌)의 위상을 넘봤다.

프로그레시브 록의 바다는 넓고 깊어 미처 언급 못한 밴드들이 많다. 연극적인 무대 장치와 노랫말의 문학성으로 장르의 심연을 파고들었던 제네시스는 피터 가브리엘과 필 콜린스라는 1980년대 대표 뮤지션을 배출했다. 브라이언 페리와 브라이언 이노라는 독보적 캐릭터를 보유했던 록시 뮤직은 흥겨운 카바레 풍 사운드 아래 놀라운 실험성을 숨겨두었고 따스한 선율로 국내 팬들에게 친숙한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와 하드 록 전설 딥 퍼플도 프로그레시브 록으로 분류되곤 한다. 미국 프로그레시브 록의 대표적인 밴드들인 캔사스와 스틱스도 빼놓을 수 없다.

서두에 언급한 대로 위의 열 곡은 국내에 잘 알려졌거나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낮은 작품들을 개인적 시선으로 모아놓은 것이다. 더욱 다양한 선택지와 객관성 확보를 위해 영국 미디어 회사 퓨처(Future)의 프로그레시브 록 전문 잡지 프로그(PROG)의 2017년 3월호가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프로그레시브 록 100곡’ 중 상위 10곡을 소개한다. 영미권 전문가들의 시각과 국내 감상자들의 성향을 비교하며 감상의 폭을 넓혀보길 바란다.

아티스트 – 곡명 / 앨범명(발표연도)

1. 제네시스 – ‘Supper’s ready’ / < Foxtrot >(1972)

2. 예스 – ‘Close to the edge’ / < Close To The Edge >(1972)

3. 제네시스 – ‘Firth of fifth’ / < Selling England By The Pound >(1973)

4. 핑크 플로이드 – ‘Shine on your crazy diamond pt.1’ / < Wish You Were Here >(1975)

5. 킹 크림슨 – ‘21st century schizoid man’ / <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 >(1969)

6. 핑크 플로이드 – ‘Echoes’ / < Meddles >(1971)

7. 예스 – ‘Awaken’ / < Going For The One >(1977)

8. 제쓰로 툴 – ‘Thick as a brick pt.1’, ‘Thick as a brick pt.2’ / < Thick As A Brick >(1972)

9. 킹 크림슨 – ‘Starless’ / < Red >(1974)

10. 러시 – ‘2112’ / < 2112 >(19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