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밥 딜런과 마틴 스콜세지의 성명을 동시에 끌어낼 수 있는 뮤지션은 그리 많지 않다. 뉴욕타임스(NYT)는 8월 9일 캐나다 음악가 로비 로버트슨의 사망 소식을 보도했고 딜런과 스콜세지를 포함한 동료 예술가들은 반세기 경력의 음악가를 추모했다. 밥 딜런의 기타리스트로 주류 음악계에 발 딛은 로버트슨은 캐나다 4인과 미국인 1인으로 구성된 록밴드 더 밴드의 일원으로 명작 < Music From The Big Pink >(1968)과 < The Band >(1969)를 연속 발표했다.
더 밴드의 거의 모든 곡을 작곡한 로버트슨은 베이스 기타리스트 릭 당코와 함께 밴드의 중추였다. 더 밴드의 활동이 잠잠하던 시기에도 솔로 앨범과 영화 음악으로 활약했고 닐 다이아몬드의 음반을 제작하기도 했다. 딥 퍼플 리치 블랙모어나 스매싱 펌킨스 빌리 코건처럼 독선적 성향의 일화가 종종 언급되나 음악 실력만큼은 누구도 토를 달지 못했던 로버트슨은 1994년 더 밴드 소속으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The weight / Music From Big Pink (1968)
‘더 밴드’라는 무색무취한 이름은 밥 딜런과 관계한다. 로버트슨이 이끌던 록 밴드 더 호크스는 전기기타를 든 밥 딜런의 포크 록 시기에 동행했고, 점차 밥 딜런의 백 밴드(밥 딜런 앤 더 밴드) 이미지가 굳혀진 더 호크스는 자연스레 ‘더 밴드’가 되었다.
릭 당코와 리차드 마누엘, 로비 로버트슨과 가쓰 허드슨, 레본 헬름 5인이 조직한 더 밴드의 < Music From Big Pink > 음악만큼은 데뷔작이 무색한 완성도였다. 사이키델릭 록이 부흥했던 1960년대 말 루츠 록(포크와 블루스, 컨트리의 요소를 담은 록)의 역행도 깊은 음악성 덕에 설득력을 얻었다. 성경 속 인물 나자렛을 등장시킨 문학적 노랫말과 빈틈없는 악곡 전개는 밴드의 상징이자 루츠 록 걸작 ‘The weight’를 탄생시켰다. 많은 이들이 “곡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며 명성을 의문하나 ‘The weight’ 한 곡만으로 그 기준치를 뛰어넘는다.
Up on cripple creek / The Band(1969)
더 밴드는 소포모어 징크스를 허락치 않았다. 1969년 발매된 2집 < The Band >는 데뷔작 < Music From Big Pink >와 빅 브라더 앤 홀딩 컴퍼니의 < Cheap Thrills >(1968)을 제작했던 프로듀서 존 사이먼과 멤버들의 기량이 조화롭다. 남북 전쟁 속 남부 백인 하층민을 다룬 ‘The night they drove old Dixie down’과 가난한 농부를 이야기한 ‘King harvest (has surely come)’처럼 진중한 < The Band >에서 ‘Up on cripple creek ‘은 윤활유 역할을 한다. 키보디스트 가쓰 핸더슨의 클라비넷과 보컬 하모니가 음악평가 일 야노비츠(Il Janovitz)의 표현처럼 산뜻하고 캐치한 선율을 빛낸다. 구성원 대부분이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점은 더 밴드의 특징점이자 대표 키워드였다.
The shape I’m in / Stage Fright (1970)
무대공포증이란 뜻의 5번째 스튜디오 앨범 < Stage Fright >는 1970년대의 문을 활짝 열었다. 비교적 밝은 음향은 불안과 긴장을 담은 어두운 노랫말을 중화했고 앞의 두 앨범만큼 만장일치 호평은 못 받았지만 빌보드 200 5위를 획득했다. 싱글 컷 된 ‘Time to kill’의 B사이드 ‘The shape I’m in’은 빌보드 121위에 그쳤으나 무대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골든 레퍼토리가 되었다. 리처드 마누엘의 보컬과 로버트슨의 일렉트릭 기타, 가 핸더슨의 오르간 연주는 각자의 자리에서 은은한 빛을 내뿜음과 동시에 함께 쌓이며 다층성을 빚었다. 밴드의 유일한 미국인인 드러머 레본 헬름은 자서전 < This Wheel’s on Fire: Levon Helm and the Story of the Band >에서 곡을 자포자기(Desperation)로 정의하며 상기한 모순점을 부각했다.
Ophelia / Norther Lights Southern Cross(1975)
다른 뮤지션들을 커버한 4번째 정규 음반 < Moondog Matinee >(1973)은 색다른 시도였지만 완성도는 덜했다. 로버트슨의 작곡으로 독자성을 재확보한 1975년 작 < Norther Lights Southern Cross >는 또렷한 선율과 과하지 않되 안정적인 편곡과 프로덕션을 다시금 천명했다.
두 곡을 기억해야 한다. 캐나다 남동부 노바 스코샤의 분쟁 역사를 담은 ‘Acadian driftwood’와 ‘Ophelia’. < 인생 찬가 >로 알려진 미국 시인 헨리 롱펠로의 대표작 < 에반젤린 >에서 착안한 전자가 고든 라이트풋의 ‘The wreck of the Edmund Fitzgerald’처럼 문학적 서사를 둘렀다면 후자는 악곡 자체가 명징하다. 화려하지 않지만 건반악기와 관악기가 혼합된 맛깔나는 연주가 남부 재즈의 향취를 드리운다. ‘Ophelia’의 진가를 안 마이 모닝 자켓과 빈스 길 같은 후배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포크 록 명작을 리메이크했다.
Fallen angel / Robbie Robertson (1987)
조디 포스터 주연의 < 삐에로 프랭키 >(1980)와 로버트 드니로가 열연한 < 성난 황소(분노의 주먹) >(1980)처럼 사운드트랙 작업에 집중하던 로버트슨은 1987년 솔로 데뷔작 < Robbie Robertson >을 발매했다. 빌보드 200 38위와 캐나다 앨범 차트 12위를 수확한 < Robbie Robertson >엔 더 밴드 시절 동료 릭 당코와 가쓰 허드슨 뿐 아니라 보노를 비롯한 유투의 전 멤버, 최고의 재즈 편곡자 길 에반스와 프랭크 자파와 활동했던 드러머 테리 보지오, 채프먼 스틱이라는 독특한 현악기를 연주하는 토니 레빈 등 특급 지원군을 구성했다.
피터 가브리엘과 공연한 ‘Fallen angel’은 세심한 편곡과 프로덕션을 갖춘 명품 팝록이며 로버트슨과 가브리엘의 잔향이 동등하게 드러난다. 루츠 록 뮤지션 샘 라나스의 백보컬을 입힌 ‘Showdown at big sky’와 캐나다 프로듀서 겸 뮤지션 다니엘 라노이스가 참여한 ‘Somewhere down the crazy river’도 주목할 만하다. 스페인 재즈 퓨전 기타리스트 알 디 메올라는 < Robbie Robertson >을 가장 좋아하는 팝 록 앨범 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
Go back to your woods / Storyville (1991)
경력 내내 딕시랜드 재즈를 비롯한 남부 음악에 뿌리 뒀던 로버트슨 1991년 두 번째 정규 음반의 제목을 뉴올리언스의 유서 깊은 지역 스토리빌(Storyville)로 짓는다. 본격적인 재즈 음반으로 보긴 어렵지만 알렉스 아쿠냐(드럼)과 로니 포스터(해먼드 오르간)처럼 재즈에 기반한 세션 뮤지션을 기용해 악기 듣는 맛을 살렸다.
‘The way it is’의 주인공 브루스 혼스비와 듀엣한 ‘Go back to your woods’는 뉴올리언스 알앤비의 전설적인 뮤지션 워델 퀘제궤의 혼섹션과 펑크(Funk) 그룹 더 미터스의 창립자 아트 네빌의 오르간 연주가 흥겨움을 자아낸다. “스토리빌의 밤이 저물도록 여자들과 즐거운 시간을 못 보낸다면 음악이 대신 너를 흥분하게 할거야(When the night goes down on Stroyville, If the women don’t get you, then the music will get your trills)”란 가사가 곡의 생동감을 요약했다.
Theme for Irishman / The Irishman (Original Motion Picture Sound)(2019)
로버트슨은 영화 감독 마틴 스콜세지의 죽마고우였다. 더 밴드의 1978년 콘서트 < The Last Waltz >를 다큐멘터리로 만든 < The Last Waltz >(1978)에서 로버트슨은 사운드트랙 프로듀서를 역임했다. < 코미디의 왕 >(1983)과 < 컬러 오브 머니 >(1986) 등으로 지속된 협업의 마지막은 올해 10월 개봉 예정인 신작 < 플라워 킬링 문 >(2023)이었다.
로버트 드니로와 알 파치노가 출연한 2019년 작 < 아이리시맨 >의 메인 테마는 두 배우만큼이나 무게감 있다. 연륜과 품격을 담은 곡조엔 1930~40년대 미국 누아르의 고전미가 흘렀고, 프레더릭 요넷의 하모니카에서 레지 헤밀턴의 베이스로 이어지는 구성이 절묘하다. 배철수는 영화 음악에 활발했다는 측면에서 로버트슨을 랜디 뉴먼과 비교했다. 뉴먼은 < 토이스토리 >의’You’ve got a friend in me’ 등 픽사 애니메이에서 활약한 작곡가.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1943년생으로 나이가 같다.
국내에서의 인지도는 미약하지만 로비 로버트슨은 록 역사의 위대한 작곡가로 추앙 받으며, 그에 따른 관련 미디어가 많다. 캐나다 영화 감독 다니엘 로허가 연출한 다큐멘터리 영화 < 로비 로버트슨과 더 밴드의 신화(Once Were Brothers: Robbie Roberston And The Band >(2019)는 로버트슨의 2016년 회고록 < 증언 >을 기초로 했고 그의 내레이션도 들을 수 있다. 로버트슨의 음악 세계를 이해하는 지침서 역할을 할 것이다. 로버트슨의 마지막 정규 음반 < Sinematic >(2019)에 동명의 ‘Once were brothers’가 실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