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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돌풍 속 대중음악

2018년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 레디 플레이어 원 >은 모든 상상을 현실로 바꾼다. 극심한 빈부격차로 사람들이 신음하는 2045년 지구, 척박한 일상 속 가상 세계 ‘오아시스’만이 피난처다. 이곳에서 유저들은 실제로 만나본 적 없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게임에 참가하며, 고전 영화를 배경으로 한 퀘스트와 대중문화 속 전설적인 캐릭터를 만나는 등 시공간을 자유로이 넘나든다. 과거와 미래의 경계를 허물고 비로소 모두의 꿈을 실현하는 인류의 새로운 생태계, ‘메타버스(Metaverse)’다.

먼 미래처럼 보이던 모습이 이제 코앞에 다가왔다. 초월을 뜻하는 메타(Meta)와 세계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3차원 가상 세계를 일컫는 메타버스는 이미 금융, 의료, 교육 등 사회 다방면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이 뜨겁게 동참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VR 기기 ‘오큘러스 퀘스트2’로 애플의 초기 아이폰과 맞먹는 판매량을 기록한 페이스북과 하이엔드 VR 헤드셋을 발표할 예정인 애플, 그 밖에도 마이크로소프트, 테슬라 등도 무주공산에 깃발을 꽂기 위해 저마다 발 빨리 움직이고 있다.

메타버스가 새 시대의 문명으로 자리 잡기 위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요건은 무엇일까? 많은 전문가들은 핵심이 ‘콘텐츠’에 있다는 데에 의견을 모은다. 최첨단 기술을 겸비해도 그 속에 즐길 거리가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라는 이야기다. 메타버스 관련 기업들의 성패도 참신한 놀잇거리가 있는지에 판가름 날 가능성이 크다. 대중문화를 선도하는 음악계 역시 이 흐름에 주목하고 있다. 현실 너머의 광활한 땅을 맞아 조금씩 시류에 탑승하고 있는 국내외 팝 신의 면면을 살펴본다.

에스파, 무한한 가상 세계의 광야로

K팝 신에 화끈한 신기술의 돌풍이 인다. 2020년 11월 ‘Black mamba’로 데뷔한 에스파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 6월 ‘Next level’로 공개 32일 만에 유튜브 조회 수 1억 건을 돌파하며 매서운 기세를 입증했다. 국내 음원 사이트 정상에 안착하는 것은 물론 독특한 팔 꺾기 ‘디귿 춤’은 각종 SNS에서도 유행했다. ‘Next level’은 이렇게 끝난다. “Next level / 제껴라 제껴라 제껴라!”. 그룹의 정체성뿐만 아니라 장대한 이상을 그려가는 기획사의 미래관까지 압축한 한 줄이다.

에스파는 현재로서 K팝이 다다른 세계관의 절정이다. 인원 구성부터 독특하다. 실제 멤버 네 명에 그들의 분신 넷이 공존한다. 개인 소셜미디어 활동을 통해 제공된 데이터로 설계된 각 멤버의 아바타들이다. ‘싱크(Synk)’를 통해 이들과 교감하고 그를 방해하는 악당의 존재를 찾아 가상의 땅 ‘광야’로 떠나는 등 그 스토리도 장대하다. 어느 순간 멤버들과 교차되고 무대 위에서 직접 춤추기도 하는 아바타. ‘삶의 기록’을 뜻하는 ‘라이프로깅(Life logging)’과 ‘가상 세계’ 메타버스를 결합했고 이를 뒤받치는 건 최첨단의 가상현실(Virtual Reality)과 증강 현실(Augmented Reality) 기술이다.

SM은 세계관을 음악에 한정하지 않겠다는 야심도 여러 차례 드러냈다.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는 지난 SM 콩그레스 2021에서 ‘음악을 기반으로 이전에 없던 경험을 만들기 위한 도전을 계속할 것’이라며 만화, 애니메이션, 웹툰, 모션 그래픽, 아바타, 소설의 앞글자를 딴 ‘CAWMAN’을 자사의 비전으로 제시했다. 콘텐츠가 디지털 세상에서 팬들을 통해 확장해 가수와 대중이 그 속에서 호흡할 것이라는 귀띔이다. K팝 산업 최전선에 선 SMCU의 미래, 그 중심에 메타버스가 있다.

새 시대의 콘서트 컬쳐, 포트나이트와 로블록스

팬데믹으로 부닥친 일상 구금은 공연 업계에 큰 타격이었다. 가수는 무대 뒤에서 팬들과 멀찌감치 떨어져 기약 없이 기다려야 했다. 메타버스가 대중음악계에 관심사로 급부상한 것도 사실 이런 사정에서였다. 메타버스는 멈춰버린, 그리고 앞으로 크게 바뀔 콘서트 업계에 방책을 내놓을 수 있을까? 그 실마리를 제공한 것은 다름 아닌 게임 산업이었다.

미국의 에픽게임즈가 제작한 ‘포트나이트’는 온라인 게임에서 대표적인 메타버스 서비스로 거듭난 플랫폼이다. 지난해 4월 래퍼 트래비스 스콧이 이곳에서 가상 공연을 펼쳐 큰 화제를 모았다. 2,770만 명의 관객, 200억 원이 넘는 수익으로 오프라인 공연보다 더 많은 돈을 번 대규모 쇼였다. 방탄소년단도 ‘Dynamite’의 새 안무 버전 뮤직비디오를 포트나이트에서 최초 공개했고, 올해 8월에는 아리아나 그란데가 ‘리프트 투어’로 유행의 열기를 이어갔다.

월간 사용자 수 1억5000만 명에 달하는 게임 플랫폼 로블록스의 움직임도 주목해야 한다. 작년 래퍼 릴 나스 엑스는 로블록스 내에서 물리 기반 렌더링, 안면 인식 기술 등을 앞세운 빼어난 몰입감의 가상 공연으로 3,600만 명의 접속자를 모았다. 이 밖에도 트웬티 원 파일럿츠의 콘서트에서는 밴드를 콘셉트로 한 미니 게임과 퀘스트도 펼쳐졌다.

로블록스는 대형 음반사의 꾸준한 사랑을 받는 기업이기도 하다. 연초 워너 뮤직에 5억 2천만 달러를 투자받은 데에 이어 7월에는 소니 뮤직과 전략적 제휴를 체결했다. 더 많은 아티스트들의 목소리가 로블록스 안에서 울려 퍼질 거라는 추측이 가능한 이유다.

K팝 팬들의 새로운 소통 창구

미국에 로블록스가 있다면 한국에도 이에 뒤처지지 않는 콘텐츠가 있다. 네이버 자회사 네이버제트가 개발한 제페토다. 증강현실 기반의 3차원 아바타 플랫폼이자 글로벌 10대들에게 하나의 소셜 미디어 앱으로 자리매김한 서비스로 전 세계 2억 명이 넘는 유저가 뛰어놀고 있는 새 시대의 놀이터다.

제페토는 K팝 신과 밀접하게 교류하고 있다.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회사는 YG엔터테인먼트다. 지난해 9월 블랙핑크는 제페토에서 멤버들의 아바타를 앞세운 가상 팬 사인회를 개최해 4,600만 명의 세계 팬을 끌어모았다. 그뿐만 아니라 멤버들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구현한 ‘블핑하우스’는 연일 팬들이 사진을 찍고 춤을 추는 ‘블링크(BLINK)’의 필수 방문 코스가 됐다.

기존에 있던 단상에 가수의 아바타를 올려놓은 것은 비교적 간단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국내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은 자체적인 온라인 팬 플랫폼 제작에도 열성을 다한다. 재작년 하이브는 팬 커뮤니티 서비스 ‘위버스’를 론칭해 팬과 가수의 다양한 교류 방식을 하나의 채널에 취합하는 전략을 펼쳤다. 게임 회사 엔씨소프트가 카카오 산하 엔터테인먼트 업체들과 합작한 ‘유니버스’도 전선에 뛰어들었다. 이곳에서 팬들은 아티스트의 아바타를 코디하거나 직접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는 등 능동적으로 참여한다. 메타버스가 선사한 K팝 신 스타와 팬들의 새로운 소통 방식이다.

다시 음악을 소장하는 시대로? NFT를 만나다

메타버스가 일상에 고착화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경제시장과의 연결이다. 가상 세계가 가상에만 머물지 않고 현실과 상호운용적으로 교류하기 위해 개인이나 기업이 자유롭게 수익 모델을 창출해 판매하고 화폐를 벌어들이는 것이 가능해야 한다. 이에 최근 몇 년 사이 가상자산 NFT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NFT는 ‘Non-Fungible Token’의 약자로 소유권, 판매 이력 등의 정보가 블록체인에 저장되어 위조가 불가능하고, 각각 디지털 자산에 고유한 인식 값이 부여되어 대체 역시 불가능한 암호화폐를 말한다.

대중음악계에도 NFT를 활용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Blinding Lights’의 스타 위켄드는 예술 경매 플랫폼 니프티 게이트웨이(Nifty Gateway)에서 낙찰자만 소유할 수 있는 미공개 음원을 판매했다. 수익은 229만 달러(한화 약 26억 원)였다. 이 밖에도 린제이 로한, 미국 밴드 킹스 오브 리온, DJ 저스틴 블라우도 앨범 발매에 NFT를 적용했다. 음원 스트리밍이 절대적인 음악 청취 방식이 된 지금 다시 과거처럼 노래를 개인이 소장하는 형국이 도래할 조짐을 보이는 것이다.

K팝 산업의 발걸음도 바쁘다. JYP엔터테인먼트는 7월 블록체인 업체 두나무와 NFT 플랫폼 사업을 위한 업무 제휴를 맺었다. 국내에서는 산업에 공식적으로 뛰어든 최초 기획사다. 보이그룹 에이스는 4월 미국 블록체인 플랫폼 왁스(WAX)를 통해 멤버들의 사진 등이 담긴 굿즈를 선보였다. 가수뿐만 아니라 인플루언서, 화가, 사진작가 등 다양한 창작자들의 작품을 다루는 K컬쳐 전문 NFT 마켓 플레이스 스노우닥도 등장했다.

NFT 시스템은 가수와 팬 모두에게 윈윈(win-win) 될 수 있다. 아티스트는 무분별한 복제를 막아 창작물의 희소성을 지킬 수 있고, 팬들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작품을 독점하는 특권을 누릴 수 있다. 물론 아직은 가격대가 지나치게 높아 대중이 진입하기 어렵다는 점은 풀어야 할 숙제다. 투기성 거래의 위험이 크다는 지적도 고민해볼 만하다. 대중음악계와 소비자가 적극적으로 참여해 자체적인 적정선을 마련하는 것이 관건이다.

마케팅 수단 그 너머로, 라디오헤드의 특별한 전시회

앞서 언급했듯 미국의 에픽 게임즈는 메타버스와 대중음악을 연결할 방법을 꾸준히 모색해왔다. 포트나이트에서 유저들은 트래비스 스콧의 신곡을 들었고 아리아나 그란데와 함께 날아다니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라디오헤드다. 엥? 라디오헤드? 의외의 인물이다. 라디오헤드가 아바타로 변신해 포트나이트에서 오징어 춤을 추면서 ‘Creep’을 연주하기라도 하는 걸까?

뭐, 그것도 재미있겠다만 정확히는 아니다. 기술 혁신과 실험 정신으로 똘똘 뭉친 세기의 록 밴드는 메타버스를 활용하는 방식도 남달랐다. 지난 9월 8일 에픽 게임즈와 콜라보한 < Kid A Mnesia Exhibition > 프로젝트의 티저가 플레이스테이션 쇼케이스에서 공개됐다. 밴드의 2000년대 걸작 < Kid A >와 < Amnesia >의 20주년과 21주년을 기념하는 가상 전시회다.

오는 11월 플레이스테이션5, 맥, PC를 통해 정식 출시 예정이지만 아직 아무런 추가 정보가 없어 정확히 무엇이라 규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예고편에서부터 범상치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리더 톰 요크와 비주얼 디자이너 스탠리 돈우드가 협업한 아트워크와 프로듀서 나이젤 고드리치가 맡은 오디오 디자인이 지하 세계에서 1인칭 시점의 관람자를 디스토피아를 연상케 하는 으스스한 전경으로 초대한다.

가상 공연이나 팬 커뮤니티 기반의 서비스와 달리 아티스트의 명작을 박물관 형식으로 재현한다는 점이 독특하다. 라디오헤드는 매우 난해한 음악을 하는 밴드다. 어쩌면 그들이 미처 다 보여주지 못한 팀의 예술 세계를 메타버스에서 구현할 지도 모를 일이다. 메타버스가 단순 마케팅 수단을 넘어 뮤지션의 내면과 감정을 보다 정교하게 채색하는 캔버스로 진화할지. 결과는 11월에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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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성의 영화음악 – #7 페임(Fame, 1980)

1976년 브로드웨이 뮤지컬 <코러스 라인>(A Chorus Line)의 노래 ‘Nothing’에 뉴욕 공연 예술고등학교(New York High School of Performing Arts)를 언급하는 대목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제작자 데이비드 드 실바(David De Silva)는 앨런 마샬(Alan Marshall)과 함께 8백 5십만 달러라는 넉넉한 제작비로 영화화에 착수했으며, 앨런 파커(Alan Parker)를 감독으로 고용했다.

파커 감독은 학생들이 겪는 고통과 실망을 강조하는 것을 선호해 이야기를 상당히 어둡게 만드는 쪽으로 대본을 수정했다. 그리고 10대의 자살, 동성애와 낙태, 문맹, 미성년자 포르노와 같이 이전에는 금기시되었던 주제를 과감히 다뤘다. 파커는 또한 42번가에서 상영되는 포르노 영화의 제목이 “Hot Lunch”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제작 과정에서 영화 제목을 “Fame”(페임)으로 개명했다. 이야기에 주어진 설정에 따라 감독은 극의 등장인물 선발을 위해 젊은 배우를 찾았다. 아이린 카라(Irene Cara)가 주인공 코코 에르난데즈(Coco Hernandez) 역에 선정되었고, 신인 리 커렌(Lee Curren), 로라 딘(Laura Dean), 안토니아 프란세시(Antonia Franceschi), 폴 맥크레인(Paul McCrane), 배리 밀러(Barry Miller) 그리고 모린 티피(Maureen Teefy)가 합류했다.

영화는 1980년대 뉴욕시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명문인 뉴욕 공연예술학교 입학부터 졸업까지 학생들의 열망과 두려움을 탐구하고, 그들의 성공과 실패를 투영한다. 북미에서만 4천2백만 달러 이상의 티켓 판매수익을 올리며 상업적 성공을 거둔 흥행요인, 대중들의 발길을 극장으로 향하게 한데는 궁극적으로 문화적 현상이 될 만큼 핵심이 된 영화의 구성요소가 크게 한몫했다. 공연예술학교에서의 학생들의 삶을 근본으로 하는 드라마에 대한 비판이 쏟아진 한편, 비평가들의 찬사는 영화를 뮤지컬로 이끄는 영화음악에 쏟아졌다. 극명한 비평의 갈림에도 불구하고 <페임>은 4개의 아카데미상 후보에 지명되었고, 최우수 스코어(Best Original Score)와 최우수 노래(Best Original Song)를 모두 수상했다. 영화음악부문 트로피를 석권한 것이다.

앨런 감독은 애초 1978년 명화 <미드나잇 익스프레스(Midnight Express)를 성공적으로 합작한 작곡가 조르지오 모로더(Giorgio Moroder)에게 영화의 스코어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런 다음 밴드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Electric Light Orchestra)의 리더인 제프 린(Jeff Lynne)에게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도박하는 심정으로 그는 신예 작곡가인 마이클 고어(Micheal Gore)에게 음악 지휘봉을 넘겼다. 마이클 고어는 유명한 여성 팝가수 레슬리 고어(Leslie Gore)의 남동생으로 누나와 함께 곡을 쓰기는 했으나, 영화음악은 <페임>이 입문작이었다. 파커 감독은 고어가 쓴 곡들을 재녹음(dubbing)하는 대신 동시녹음(Live)으로 촬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Out here on my own’과 ‘Hot lunch jam’을 누이 레슬리의 작사로 완성한 마이클은 주제가(Title song)에 맞는 가사를 찾기 위해 작사가 딘 피치포드(Dean Pitchford)와 함께 한 달 동안 고심했고, 결국 “I”m going to live forever“(난 영원히 살 거야)를 즉흥적으로 완성해냈다. “Remember! Remember! Remember!(기억해! 기억해! 기억해!)”를 반복해 노래하는 백업 보컬의 코러스 라인도 덧붙였다. 딘과 고어는 린다 클리포드(Linda Clifford)가 부른 ‘Red light’와 ‘I sing the body electric'(아이린 카라와 교우들 합창), 두 곡에도 함께 이름을 올렸다. 파커는 사운드트랙 넘버를 동시 녹음하는 한편, 영화가 가스펠(Gospel), 록(Rock), 클래식(Classic)의 세 가지 양식을 구성요소로 결합한 노래들로 채워져다 한다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그리고 주제를 가진 각각의 노래들을 연기자의 배역에 맞게 사용해 장면에 조응하게 했다. 파커 감독의 주문에 따라 곡을 쓴 고어의 노고는 아카데미 시상식 역사상 처음으로 두 곡이 최우수 노래 부문 후보에 오르는 획기적 성과를 낳았다. 타이틀곡 ‘Fame’과 ‘Out here on my own’이 주제가상 후보에 지명된 것. 또한 디지털 오디오 사운드트랙을 사용한 최초의 영화 중 하나였다.

고어의 음악은 사실상 앨런 파커 감독이 연출가로서 이야기를 구성해냄에 있어서 드러낸 결점을 매끄럽게 이어줄 만큼 이야기의 맥락을 자연스럽고 조화롭게 이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야기의 부자연스러운 부분을 음악으로 보강하고, 분절된 내러티브의 맥을 음악으로 유지해줌으로써, 청중들의 동참을 유도하고, 극 중 아이들의 투쟁과 열망 그리고 승리라는 주제가 주는 생생한 쾌감에 관객들이 동화되게 했다. 영화적 감동의 8할은 마이클 고어의 음악이 빚어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고어가 피치포드와 공작한 주제가 ‘페임’은 대중들의 반향을 일으킴과 동시에 문화적 현상을 촉발하게 했다. 사랑과 평화의 세상, 그리고 자유와 반전을 노래한 저항 음악이 포크와 록을 통해 시대를 대변한 1970년대를 지나, 개인주의와 소비주의 시대로 유명한 1980년부터 향후 10여 년간의 세대를 향한 일종의 신호탄과 같았다. 전자 키보드 신시사이저(전자 음향 합성기)의 등장과 춤추기 좋은 댄스뮤직(디스코, 신스팝)의 유행, 그리고 곧 1981년 ”MTV“의 개국과 더불어 뮤직비디오 시대가 전개되기까지, 영화 <페임>의 사운드트랙으로 쓰인 음악은 그 전조에 다름 아니었다.

그뿐만 아니라 스코어도 존 윌리엄스(John Williams)의 <스타워즈 에피소드 Ⅴ-제국의 역습>(Empire Strikes)을 누르고 오스카상을 수상하는 놀라운 쾌거도 올렸다. 오늘날까지 영화의 타이틀곡인 노래 ‘Fame’은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노래 중 하나로 당당히 손꼽힌다. 클래식, 고전음악과 1980년대에 유행한 대중음악 양식을 뉴욕의 한 공연예술고등학교를 무대로 펼쳐지는 십대들의 이야기에 기막히게 엮어낸 음악가 고어가 아니었으면 이 영화의 영속성은 담보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또한 주제가 ‘Fame’과 함께 ‘Out here on my own’을 열창해 오스카와 그래미를 모두 석권한 아이린 카라가 아니었으면, 이 영화가 지금의 명성을 획득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 오리지널 사운드트랙 목록
1. Fame(명성) – 아이린 카라
2. Out here on my own(여기에 나 홀로) – 아이린 카라
3. Hot lunch jam(즉흥적이고 흥분된 점심 잼) – 아이린 카라
4. Dogs in the yard(마당의 개들) – 폴 맥크레인(Paul McCrane)
5. Red light(빨간 등) – 린다 클리포드(Linda Clifford)
6. Is it okay if i call you mine?(널 내 거라고 불러도 괜찮겠어?) – 폴 맥크레인(Paul McCrane)
7. Never alone(절대 혼자가 아니야) – 음악예술고등학교 컨템포러리 가스펠 코러스Contemporary Gospel Chorus of the High School of Music and Art)
8. Ralph and Monty(랄프와 몬티) (의상실 피아노 연주) – 마이클 고어
9. I sing the body electric(난 몸이 전율하게 노래해) – 로라 딘(Laura Dean), 아이린 카라(Irene Cara), 폴 맥크레인(Paul McCrane), 트레이시 파넬(Traci Parnell), 에릭 브로킹스턴(Eric Brockington)
10, The way we were – Maureen Teefy(모린 티피) 노래, 원곡 마빈 햄리시(Marvin Hamlisch) 작곡
11. Old folks at home (Swanee River)(1851) 배리 밀러(Barry Miller) 피아노 연주, 춤
12. Happy birthday to you(1893) – 모린 티피(Maureen Teefy)
13. Singin’ in the rain – 아이린 카라(Irene Cara)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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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세계에 울려 퍼진 ‘리스펙트’, 아레사 프랭클린의 명곡 16

과거나 지금이나 아레사 프랭클린을 수식하는 단어는 경이로움이다. 동시대를 빛낸 수많은 디바 가운데서 여왕의 칭호를 누린 것은 물론, 오늘날까지 최고의 보컬리스트 중 하나로 꾸준히 호명되는 것은 그의 존재가 어느덧 시대의 ‘가치’를 초월한 불변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음을 의미한다. 독보적인 성량과 음역으로 장르의 부흥기를 견인하고 흑인과 여성의 존중을 주장하는 등 인권 운동의 선봉장으로도 활약한 그의 행보는 음악사를 통틀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유산이 되었다.

9월 8일, 개봉을 앞둔 아레사 프랭클린의 전기 영화 < 리스펙트 >는 아레사 프랭클린이 반세기를 뛰어넘어 후세에 끼친, 그리고 앞으로 먼 미래까지도 끼칠 영향력에 대한 증거다. 스크린으로 접하기에 앞서 16곡으로 그의 거대한 역사를 되돌아보자. 1960년대 후반 가스펠과 소울에서 두각을 보이며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아틀란틱(Atalntic) 레코드를 기점으로, 디스코나 뉴웨이브와 같은 주류와의 융합을 도모하여 젊음과 호흡했던 1980년대 아리스타(Arista) 소속 시절까지. 그 부드럽고도 장대한 융단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I never loved a man (the way I love you) (1967)
이렇다 할 성적표를 안겨주지 못한 콜롬비아 레코드사에서 아틀란틱 레코드사로 이적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 새 레이블과 손을 잡은 후 발매한 < I Never Loved A Man The Way I Love You >에서 대중음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싱글 ‘Respect’가 등장하는데, 그 도화선이 바로 ‘I never loved a man (the way I love you)’다. 선공개 트랙은 데뷔 이래로 처음 빌보드 싱글 차트 톱 10 안에 들었으며 레이디 소울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동아줄이다.

< I Never Loved A Man The Way I Love You >는 흑인의 임파워링과 당대 여성이 가져야 할 미덕이라는 양극단을 지녔고, ‘Respect’와 ”I never loved a man (the way I love you)’가 각각을 대표한다. 거짓말쟁이에다 바람피우는 남자여도 사랑하기에 어찌할 도리가 없는 여인의 비애를 울부짖으나 마냥 슬프지 않다. 방아쇠와 같은 거대한 샤우팅으로 상대를 일갈하기도, 흐르는 물처럼 상황을 받아들이기도 한다. 놀라운 점은 변검술 같은 보컬의 변화가 단 한 문장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임선희)

Respect (1967)
억울함이 쌓이고 쌓여 터지기 일보 직전. 그간 흑인 여성으로서 받은 온갖 부조리한 대우로 분노 게이지는 임계점을 가리켰고 ‘Respect’는 모든 억눌린 감정을 분출한 카타르시스의 순간을 담았으니 어찌 속 시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존경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당신과 똑같은 인격체로 나를 존중해 주길 바란다는 것이다.

순서는 ‘(Sittin’ on) the dock of the bay’를 부른 천재적 소울 뮤지션 오티스 레딩이 1965년에 발표한 원곡이 먼저다. 허나 곡의 주인은 따로 있었고 레딩에게 미안한 얘기지만 프랭클린의 음성을 통해 곡의 진폭은 백배 천배 더욱 커졌다. 흑과 백에 남과 여의 이야기를 더해 주제를 확장했다.

흑인 여성이 부통령에 당선되고 흑인 스포츠 스타가 동경의 대상이 되는 시대지만 이면엔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인한 희생자가 있다. 아직 갈 길이 너무나 멀고 ‘Respect’는 여전히 시대와 공명한다. (염동교)

(You make me feel like) a natural woman (1967)
아틀란틱 레코드로 이적한 후 아레사 프랭클린은 ‘Respect’를 발매하며 ‘소울의 여왕’에 등극했으나 프로듀서 제리 웩슬러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또 다른 히트곡을 만들기 위해 캐롤 킹과 제리 고핀에게 ‘(You make me feel like) a natural woman’을 의뢰했다. 새로운 사랑으로 우울증에서 벗어나 살아갈 의지를 다지는 여성을 묘사한 곡은 빌보드 차트 8위에 오르며 아티스트의 명성을 더욱 드높였다. 특히 아침의 피로를 표현하듯 나른한 도입부와 대비되는 폭발적인 에너지의 후렴구가 영적이고 황홀한 분위기를 자아내 사람들을 매료했다.

제리 고핀이 쓴 가사는 단순히 남자에게 인정받는 여성을 표현한 것이 아닌 여성성을 축하하는 찬가로서 ‘흑인 여성 지우기’가 만연했던 1960년대에 여성의 존엄성과 평등을 상기시켰다. 덕분에 대중문화에서 ‘(You make me feel like) a natural woman’은 여성이 변모하는 순간을 상징한다. 1995년 미국의 헤어 제품 브랜드 클레롤의 염색약 광고가 대표적이며, 2014년 미국 하이틴 드라마 < 글리 >에서 메르세데스가 재회한 연인 샘과의 관계에 확신을 갖기 위해 부른 장면도 인기를 끌었다. 아레사 프랭클린은 2015년 케네디 센터에서 캐롤 킹을 축하하기 위해 이 곡을 불러 큰 감동을 선사했다. 변치 않은 빛을 가진 자기 확신의 메시지는 발매한 지 5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대중을 감화하고 있다. (정수민)

Chain of fools (1967)
‘바보들의 사슬’이란 담백한 제목의 노래는 이름만큼이나 간결한 구조를 지닌다. ‘Chain’이 반복되는 오프닝을 지나 다층의 굵은 코러스가 쌓인 메인 멜로디에 안착한 뒤 다시 힘을 풀어 전자의 것으로 돌아간다. 3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곡. 그럼에도 2010년 영국의 < 롤링스톤 >지는 이 곡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곡 500중 252위(그의 노래 중 단 4개만이 차트에 올랐다)로 선정했다. 또한 곡은 아레사 프랭클린의 뺄 수 없는 대표곡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핵심은 단순함을 꽉 채운 아레사의 보컬 역량이다. 도입부, 곡의 트레이드 마크인 떨리는 기타 소리 이후 이렇다 할 사운드 소스가 없음에도 노래는 때론 강하고 때론 약하게 곡을 가지고 노는 그의 호흡과 만나 강렬한 에너지를 낸다. 이 완벽한 소화력은 어쩌면 사랑했던 사람의 변절을 담은 가사가 너무나도 그의 삶과 밀접히 닿아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빌보드 싱글 차트 2위에 오르고 그에게 그래미 베스트 여성 알앤비 보컬 퍼포먼스 수상의 영예를 안긴 곡. 지금도 국내외의 많은 뮤지션이 커버하며 무한히 생명력을 연장 중이다. (박수진)

Satisfaction (1967)
롤링 스톤스가 1965년 발표한 ‘(I can’t get no) satisfaction’은 그들을 커버 밴드에서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주역으로 인양한 역작이다. 밴드에게 처음으로 빌보드 차트 1위라는 성과를 안겨준 이 곡이 현재까지도 록 음악 계보에서 최고 반열에 위치한 까닭은 명확하다. 로큰롤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기타 리프를 지녔기 때문. 좀처럼 잊히지 않을 것 같은 믹 재거와 키스 리처드 콤비의 강렬한 잔상에도 아레사 프랭클린의 목소리가 입혀진 ‘Satisfaction’은 전혀 다른 감상을 남긴다.

< Aretha Arrives >에 수록된 소울 레이디의 ‘Satisfaction’은 스윙으로 가득 채워졌다. 자유롭게 활보하는 피아노 선율이 곡을 주도하고 브라스, 퍼커션 사운드가 그 중심을 지탱한다. 그루브를 타기 위한 뼈대 작업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아레사 프랭클린의 보컬이 곡을 휘젓고 다니는데 절정에 오른 강약 조절이 단연 압권이다. 소울의 귀재가 제시한 재해석 본은 블루스, 하드 록의 색채가 짙은 원곡에 완전히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김성욱)

Think (1968)
1967년 디트로이트 폭동 때 시위대의 찬가 ‘Respect’가 미국 전역에 울려 퍼졌지만 인종 간의 갈등은 여전했다. 1968년 4월 4일엔 민권운동의 정신적 지주였던 마틴 루터 킹이 암살당하며 사태가 악화되었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었던 아레사 프랭클린은 장례식에 참석해 넋을 기리고 집으로 돌아와 곧장 피아노를 두들겼다. ‘마침내 자유로워졌다(Free at last)’라는 민족 영웅의 전언을 받들어 작곡한 ‘Think’는 자유를 향한 갈망을 담았다. 열성을 토하는 저항적인 가사는 유명 세션들의 연주와 어우러지며 소울 음악의 본질을 투영한다.

물론 시대적 상황과 별개로 본인의 경험이 녹아든 곡이기도 하다. 만 18세의 어린 나이에 맞이했던 첫 결혼 생활, 전 남편이었던 테드 화이트의 상습적인 가정 폭력은 또 다른 억압이었다. 이때 목사의 죽음이 도화선에 불을 댕겼고 피부색은 물론 성별에 의한 차별까지 겪고 있던 그는 흑인을 멸시하던 백인과 여성을 홀대하던 남성을 향해 날 선 비판을 던졌다. 강자에겐 죄책감을 부추기고 약자에겐 자긍심을 고취했던 ‘Think’는 지금까지도 ‘Respect’와 함께 ‘소울 여왕’의 업적을 아로새기는 인류애의 산물이다. (정다열)

I say a little prayer (1968)
“이미 히트한 곡을 몇 년도 채 지나지 않아 리메이크한다.” 만약 당신이 제작자라면 원전의 존재감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러한 모험을 시도할 수 있겠는가. 사실 나라면 과감히 승부수를 띄워볼 만도 할 것 같다. 대신 여기엔 한 가지 조건이 있어야겠다. 아레사 프랭클린이 내 레이블의 소속 가수라는 전제 말이다.

그는 디온 워윅이 1967년에 선보여 이미 빌보드 Hot 100 4위를 기록했던 노래를 불과 1년 만에 자신의 디스코그라피로 소환했다. 비록 앞선 업적을 넘어서지 못하고 10위에 머물렀지만, 신기하게도 지금에 와 이 싱글의 주인은 누가 뭐래도 아레사 프랭클린이다. 아무래도 보컬로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가볍고 경쾌한 느낌을 강조했던 오리지널이 여유와 박력을 동시에 갖춘 그의 가창력에 두 손 두 발 들고 만 셈이다.

코러스를 전담해 가스펠의 기운을 불어넣은 스위트 인스피레이션(The Sweet Inspirations)의 전 멤버가 디온 워윅이었다는 것도 흥미로운 사실이다. 더불어 작사가 할 데이비드(Hal David)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남자를 걱정하는 여자를 모티브로 해 써 내려간 노래로, 나름의 시대상을 담고 있기도 하다. 많은 이들에게는 영화 <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에서 조지가 줄리안에게 부르던 뮤지컬 같은 장면이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1967년과 1968년 사이 그가 거머쥔 9개의 Top 10 히트 중 마지막을 장식하는 트랙. (황선업)

Bridge over troubled water (1971)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Bridge over troubled water’는 1970년 발매한 사이먼 앤 가펑클의 곡으로 더 유명하다. 1960년대 미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포크 듀오의 원곡은 발매 1년 만에 아레사 프랭클린의 노래로 재탄생했고 잔잔한 피아노 연주가 이끄는 찬송가 분위기에서 거센 물살처럼 용솟음치는 가창의 폭발력을 더한 소울 넘버로 변신했다. 원곡에서의 부드럽고 서정적인 보컬이 따뜻한 위로의 감성을 주었다면 희망찬 그루브가 이끄는 소울 여왕의 버전은 힘찬 에너지로 하여금 기댈 수 있는 안식처를 제공했다.

엘비스 프레슬리, 린다 클리포드, 메리 클레이턴 등 50명이 넘는 아티스트가 이 곡을 커버했지만 그 누구도 아레사만큼 영혼을 담아 재창조하지는 못했다. 가창자인 아트 가펑클은 아레사의 재해석을 원곡보다 높이 평가했으며 작곡자 폴 사이먼 또한 수십여 버전의 리메이크 중 제일로 꼽았다. 경건하게 울리는 피아노 연주의 간결함뿐이지만 사운드를 뚫고 나오는 파워풀한 성량과 광활한 음역대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보컬은 전율을 일으키기 충분했고 1972년 그래미 어워드에서 베스트 알앤비 퍼포먼스 부문을 수상하는 쾌거로 이어졌다. (김성엽)

Spanish harlem (1971)
대중에게 친숙한 곡을 커버하는 것은 상당히 부담이 따르는 일이지만 미국 가장 위대한 보물 목소리에 그런 걱정은 해당 사항이 아니었다. 아레사 프랭클린이 히트곡을 자신의 방식대로 재해석, 아니 완벽히 갈취할 수 있음을 보여준 ‘Spanish harlem’은 기존 버전을 새까맣게 잊게 하는 철저한 자기화로 빌보드 소울 차트 정상과 싱글 차트 2위를 석권하며 원곡자 벤 이 킹의 기록을 앞질렀다.

벤 이 킹의 버전이 느긋한 룸바 리듬으로 서정적이었다면 무거운 베이스라인과 펑키한 기타, 닥터 존(Dr. John)의 피아노를 껴입은 아레사 프랭클린의 그것은 거친 할렘 거리의 후끈한 열기에 가까웠다. 예쁜 가사 ‘There is a rose in spanish harlem’을 ‘There’s a rose in black at spanish harlem’으로 각색한 노랫말은 흑인 공민권 시대 정서를 절묘하게 나타낸다. 20세기 소울 퀸은 리메이크에서도 이렇게나 치밀했다. (이홍현)

Rock steady (1971)
우리나라에서 지난 7월에 개봉한 레게 다큐멘터리영화 < 자메이카의 소울: 이나 데 야드 >에서 한 가수가 록스테디의 탄생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스카는 연달아 춤추기 힘들었어요. 피곤하다고들 했죠. 그래서 더 느리게 춤추기 시작한 게 록스테디였어요.” 스카의 후임이자 레게의 이전 모델인 록스테디는 느린 템포가 특징이다. 록스테디의 명칭을 취한 ‘Rock steady’도 템포가 그리 빠르지 않다. 록스테디의 평균 BPM이 80에서 100이고, ‘Rock steady’의 BPM이 100을 조금 넘으니 록스테디의 속도까지 빌린 셈이다.

템포는 다소 느린 편이지만 분위기는 경쾌하다. 주제도 춤이다. 묵직한 베이스 연주와 가벼운 일렉트릭 기타 연주가 조화를 이루며 몸을 흔들기에 좋은 리듬감을 생성한다. 관악기 연주는 노래를 한층 밝게 꾸며 준다. 백업 싱어들과 말을 주고받는 방식의 보컬 또한 생동감을 생성하는 요소 중 하나다. 아레사 프랭클린이 코러스에서 외치는 “아~” 소리에는 약간의 울림 효과가 가해져서 노래가 신비로운 메시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게 “꾸준히 흔들어!”라는 문장은 파티나 춤을 즐기는 사람들의 잠언이 됐다. 1980년대 초반 미국에서는 록 스테디 크루라는 브레이크댄싱 팀이 생겼다. 지난달 29일 열린 브레이크댄싱 배틀 대회 < 의정부 브레이킹 게임즈 >에서는 음악을 담당한 브레이킹 심포닉이 오프닝 무대로 ‘Rock steady’를 연주하고 불렀다. 브레이킹 시합에서 ‘Rock steady’가 자주 흐른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사례다. 또한 수많은 힙합 노래에 차용되며 오랜 세월이 흘러도 강한 생명력을 뽐내고 있다. (한동윤)

Until you come back to me (that’s what I’m gonna do) (1973)
‘(You make me feel like) a natural woman’과 ‘I never loved a man (the way I love you)’의 명성을 이은 아레사 프랭클린의 대표 발라드 넘버. 스티비 원더가 클라렌스 폴, 모리스 브로드낙스(Morris Broadnax)와 함께 쓰고 1967년 녹음까지 한 이 멋진 곡이 아레사를 통해 먼저 세상에 나왔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1973년 노래의 잠재력을 발견한 그는 자신의 버전으로 곡을 제작해 이듬해 빌보드 싱글 차트 3위에 안착시켰다. 스티비 원더의 잔반을 커리어 최고의 싱글 중 하나로 맞바꾼 셈이다.

직접 연주한 낭만적인 피아노 전주와 조 파렐의 플루트가 산뜻한 재즈 감성을 제공하지만 곡 내용은 다소 등골 오싹하다. 자신을 차버린 전 애인을 찾아가 그의 집 현관문과 창문을 두드리는 스토커의 ‘집착’ 송! 굽이진 선율 곳곳을 매끄럽게 타고 흐르는 아레사 프랭클린의 황홀한 목소리는 스릴러 영화 같은 이런 으스스함마저 극도의 아름다움으로 치환하는 힘이 있었다. (이홍현)

Jump to it (1982년)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펄펄 날던 ‘여왕’은 1974년부터 여러 문제에 휩쓸리면서 인기 전면에서 퇴각한다. 아레사란 이름은 오랫동안 차트와 매체에서 사라졌다. 1976년 ‘Jump’라는 곡을 발표해 간절히 ‘점프’를 원했지만 여의치 않았다(72위). 하지만 1982년 이 곡과 함께 제집처럼 드나들던 전미 차트 톱 40에 ‘6년 만에’ 마침내 ‘점프'(24위), 리즈시절 재(再)도래에 희망을 갖게 된다. 1985년 ‘Freeway of love’로 시작된 2차 전성기로 이어주는 가교 역할은 물론 구원을 도모했다고 할까.

아레사는 갈망하던 히트 산출을 위한 기법을 당시 막 프로듀서, 작곡자, 가수로 떠오르던 루더 밴드로스에게 맡겼다. 그는 마커스 밀러와 공동으로 이 곡을 써, 아레사만이 구사하는 필살기, 그 펑키(Funky) 비트 지배력에 모든 것을 맡겼다. 서로를 향한 상호의탁과 신뢰가 낳은 결실! 환상적인 밀러의 베이스 연주 위에, 정말이지 비트를 쪼개가며 ‘노는’ 능란하고 찬란한 가창은 6년 뒤의

두에 중한 위치를 점하는 숨은 보석. 이 곡을 대야 아레사의 리얼 팬이다. (임진모)

Freeway of love (1985)
< Young, Gifted And Black > 이후 12년간의 부진을 끊어낸 것은 경쾌한 댄스 팝 ‘Freeway of love’였다. ‘사랑의 고속도로’라는 러브-코미디 드라마스러운 제목, 분홍 캐딜락의 들썩이는 승차감과 닮아 있는 퍼커션 리듬, 질주감을 자아내는 빠른 템포의 작풍. 곳곳에는 당시 유행하던 뉴웨이브나 댄스 팝의 시류를 감지한 흔적이 선명하다. 변화의 필요를 체감한 결과였다. 아레사 프랭클린은 프로듀서 나라다 마이클 월든에게 운전대를 맡긴 채 신시사이저가 활개 치던 1980년대 시대상으로 직접 돌파한 것이다.

이러한 협업 가운데 탄생한 이 가벼운 드라이빙 송은 발매 2개월 만에 빌보드 차트 3위에 오르며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이후 그래미상 최우수 여성 R&B 보컬 퍼포먼스 부문에서도 수상을 안겨주는 등 과거 못지않은 영예를 선사하기에 이른다. 디스코와의 합일로 도약을 시도한 ‘Jump to it’과 더불어 아리스타 레코드에서 펼친 변혁적 행보를 대표하는 곡이 된 셈. 결국 ‘Freeway of love’의 사례는 하나의 절대적 진리를 가리킨다. 대중을 사로잡는 보컬리스트의 진정한 덕목은 모든 배경적 요소를 뛰어넘는 독보적인 유연함에 있음을. (장준환)

Who’s zoomin’ who (1985)
1983년에 발표한 앨범 < Get It Right >의 실패는 충격이었다. 절치부심한 아레사 프랭클린은 1980년대를 대표하는 프로듀서 겸 작곡가 나라다 마이클 월든의 조력을 받아 당시의 트렌드였던 신시사이저 사운드를 대거 도입한 30번째 음반 < Who’s Zoomin’ Who >로 성공을 거뒀다. 기존의 ‘소울의 여왕’답지 않은 음반이지만 그해 < 타임 >지가 선정한 ‘올해의 앨범’ 리스트에도 천거되며 197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오랜 침체기를 끝낸 효자 앨범이다.

‘Freeway of love’에 이어 두 번째로 빌보드 싱글 차트 톱 텐에 오른 ‘신스팝 소울’ 넘버 ‘Who’s zoomin’ who’는 808 드럼머신을 적극 활용해 투명하고 선명한 비트를 강조했다. 상승한 리듬감과 여유로운 그루브로 채워진 이 곡은 미국 대중의 선택을 받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철저히 배척당했다. 아레사 프랭클린은 볼륨감이 넘실거리는 명곡 ‘Who’s zoomin’ who’를 발표하고 2년 후에 조지 마이클과 함께 부른 ‘I knew you were waiting (for me)’로 국내에서 넓은 인지도를 쟁취했다. (소승근)

Jumpin’ jack flash (1986)
2차 전성기의 시작을 알린 < Who’s Zoomin’ Who > 직후 일 년여만인 1986년 발매한 31번째 스튜디오 앨범 < Aretha >의 수록곡이다. 그의 이름 ‘아레사’를 내세운 작품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프로듀서 나라다 마이클 월든을 적극적으로 기용했고, 이는 곧 생애 두 번째이자 마지막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인 ‘I knew you were waiting (for me)’를 비롯해 ‘Jimmy Lee’, ‘Rock-a-lott’을 배출하며 대중적인 성공으로 향했다.

그 행렬의 선두는 ‘Jumpin’ jack flash’였다. 롤링 스톤스가 1968년 발표한 명곡은 밴드의 멤버 키스 리처드의 주도 아래 재해석되었고 우피 골드버그가 출연한 코미디 영화 < Jumpin’ Jack Flash (위기의 암호명) >의 타이틀로 사용됐다. 록의 근원인 블루스로 돌아가기 위한 노력으로 탄생한 원곡의 뿌리는 간직한 채 코러스 세션, 기타 솔로와 어우러지는 피아노 연주 등이 더해져 경쾌해진 ‘Jumpin’ jack flash’. 아레사 프랭클린의 짙은 목소리로 만개하며 빌보드 싱글차트 21위를 기록했다. (손기호)

I knew you were waiting (for me) (With George Michael) (1986)
곡의 의의는 왬!의 조지 마이클이 아이돌 이미지에서 벗어나 음악 역량을 증명한 데 있지만, 그 성과만큼 아레사 프랭클린에게도 거대한 족적을 남긴다. 가장 큰 기록은 ‘Respect’에 이어 20년 만에 빌보드 정상에 올랐다는 점이다. 덕분에 자서전 내용은 배로 늘었을 것이다. ‘너의 의미’로 아이유의 연락을 받은 김창완이 그러했을까, 신구 조합에도 눈이 간다. 장르 직속도 아닌 까마득하게 어린 후배의 부탁에 흔쾌히 응한 그의 모습에서 멋진 선배의 미덕이 돋보인다. 올라간 조지 마이클의 위상만큼 아레사의 위용 또한 위대해진다.

소울의 여왕이란 왕좌는 넘버원을 달성하는 퀘스트를 깨면 받는 보상처럼 자동으로 오르는 자리가 아니다. 실력은 물론이거니와 대중의 음악, 말 그대로 그가 대중을 위한 음악을 불렀기 때문에 지금의 위치에 당도한 것이다. 아무도 찾지 않는 노래나 부르면서 방구석 뮤지션으로 실력을 쌓아간들 그냥 노래 잘 부르는 사람에 불과할 뿐이다. 20세기를 넘어 21세기까지 아름다운 음악으로 채워준 데에 대해 팬들이 선사한 영원한 선물이자 최고의 존중이다. 누가 뭐래도 소울의 대명사는 아레사 프랭클린이다. (임동엽)


정리 : 장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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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한국 R&B/Soul 명곡 10 (2000년대)

19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이 도출한 한국어 랩의 가능성과 이태원 클럽 문나이트를 일대로 벌인 춤꾼들의 춤사위. 이는 나아갈 새천년의 국내 대중음악계 주류를 흑인 음악으로 맞바꾸어 놓은 초석과도 같았다. 그 후 21세기를 맞은 2000년대는 말하자면 한국이 흑인 음악에 열광, 열중하던 시기였다. 바다 건너 흑인들의 것인 줄만 알았던 ‘소울’을 한국화한 혼혈, 재미 교포 출신 가수들의 선구적인 활약과 그를 우리 정서에 맞게 녹여낸 ‘소몰이 창법’의 물결까지. 다양한 형태의 히트곡들이 줄을 이었다. 가창력의 척도가 스크리밍(Screaming) 등 록 기반의 고음에서 알앤비 특유의 정교한 기교, 꺾기로 변화한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알앤비/소울은 현대의 젊은 세대에게도 익숙하다. 빌보드 차트에서 목도하듯 세계 음악 시장을 주름잡는 블랙 뮤직은 그 위세를 그칠 줄 모른다. 비대해진 힙합의 지분으로 이제는 랩과 노래 그 중간 어딘가에 있는 싱잉 랩이 새 시대의 창법으로 성행하기도 한다. 이쯤에서 돌아볼 필요가 있겠다.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는 시간이 지났지만, 2000년대 국내 대중음악계를 빛낸 알앤비/소울 명곡들의 보다 날 것의 감성을 들어보자. 지금의 국내 흑인 음악 트렌드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 추이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제이 – 어제처럼 (2000)
재미교포 가수 제이의 시작이 댄스였다는 사실은 지금 와서는 새삼 믿기 어렵다. 그를 기억하면 언제나 ‘어제처럼~’이 귓가에 맴돌기 때문이다. 1집의 존재감은 그만큼 미미했지만 소울로의 안정적인 노선 변경에 성공한 차기작은 그의 진가를 발휘한 튼실한 앨범이었다. ‘어제처럼’ 하나만으로도 말이다.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는 감성을 제공한다. 알앤비하면 흔히 기교 섞인 목소리나 짙은 감정선을 연상하곤 하지만 ‘어제처럼’은 그와 사뭇 다른 부드럽고 담백한 멜로디와 여린 목소리로 유통기한이 긴 제이만의 소울을 잉태했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큰 인기를 얻은 노래는 2000년도 SBS 가요대상 신인가수상 등을 석권하며 그에게 꿈같은 한 해를 선물했다.

박화요비 – 그런 일은 (2000)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처럼, 재능 있는 아티스트는 때로 놀라울 정도로 이른 때에 두각을 나타내곤 한다. 등장부터 숙성된 가창력을 자랑하며 박정현과 국내 알앤비 신을 양분한 화요비이지만 이 노래를 부를 당시 그의 나이 고작 19세. 머라이어 캐리의 발라드 ‘My all’에서 따온 앨범 제목이 만용으로 보이지 않는 진짜 ‘노래 잘하는 신인’의 출현이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그를 ‘한국의 머라이어 캐리’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선명하게 들리는 숨소리의 호소력과 천부적인 완급 조절이 캐리의 그것과 닮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설과의 유사성을 차치하고 그가 내뿜는 소리 자체에 귀 기울여 보자. 말할 때 육성에서 알 수 있는 낮은 톤, 여기에 자연스럽게 갈라지는 허스키한 보이스가 실로 매력적이다. 성숙한 음성과 대비되는 여린 이별 가사가 더해져 더욱 가슴 아린 화요비표 알앤비 발라드.

박정현 – 꿈에 (2002)
솔리드의 김조한과 함께 국내 알앤비 보컬의 선두주자로 통하는 박정현이다. 여러 장르를 좋아하는 그는 자신을 알앤비 가수로 결정지어 결부하기를 거부하지만, 누가 뭐래도 당대 우리나라 알앤비 돌풍의 주역은 그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데뷔 이래 ‘P.S. I love you’, ‘You mean everything to me’ 등 멋진 곡을 많이 들려줬다. 하지만 ‘꿈에’만큼 강렬한 곡은 그에게도, 다른 가수에게도 찾아보기 어렵다.

당시 많은 이들에게 안긴 극적인 구성의 놀라움이 지금도 유효하다. 공일오비 정석원이 편곡한 몽롱한 국악기 소금 반주를 시작으로 ‘꿈에서 만난 옛 연인’이라는 주제 아래 기쁨과 절망, 잠에서 깬 후의 아련한 감정을 차례대로 연결 짓는 노래는 ‘스토리텔링’의 정석이 무엇인지 깨닫게 한다. 박정현은 이 대담한 서사에 더욱 높은 수준의 입체감을 조각한다. ‘보컬 올림픽’이란 말도 나왔을 정도. 약간은 부정확한 발음에서 오는 특유의 느낌과 절마다 창법을 변조해나가는 완급 조절, 막힘 따위 모르는 막강 성량이 결합하여 폭발한다. 작곡가의 상상 그 이상을 실현하는 가수의 놀라운 역량이다.

플라이 투 더 스카이 – Missing you (2003)
대중에게 익숙한 국내 알앤비 명곡을 살펴보면 대부분 사랑을 주제로 한 사실상의 알앤비 ‘발라드’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림과 애절함에 흔들리는 이 우리 정서는 이별 등 연모의 감정에 유독 취약하다. ‘Missing you’는 그 한국적 감수성의 표본이다. 대중의 보편적 가녀림을 파고드는 섬세하고 애절한 노랫말의 주제는 이별을 넘어 ‘사별(死別)’이다.

다양성과 장수의 목적 아래 SM이 내놓은 이들의 시작은 비주얼부터 화려한 아이돌이었지만 성숙한 느낌의 곡만큼은 어른 취향 가까워 심심할지라도 긴 수명을 보냈다. 만화 속 소울메이트처럼 외형적으로도 잘 어울리는 환희와 브라이언은 이 노래에서 각각 터프한 흉성과 맑은 미성의 매끈한 조화로 모범적인 듀오의 콤비 플레이를 전시했다.

휘성 – With me (2003)
휘성은 풋내가 없는 신인이었다. 서태지, 신승훈의 상찬을 등에 업고 등장한 괴물 신예에게 1집 발라드 ‘…안 되나요…’는 공전의 히트를 안겼지만 가수는 그 이상을 넘봤다. 차기작 < It’s Real >에서 마음껏 발산한 원숙미야말로 ‘진짜 자신’을 선언한 예술가적 발로였다. 이 중심에는 지금의 휘성을 있게 한 ‘With me’가 있었다.

당시 유행하던 미디엄 템포 장르를 멋들어지게 구현했다. 전작에 비해 강해진 장르적 색채에도 리드미컬한 드럼 타격이 주도하는 어반한 분위기는 대중에 가닿기에 충분했다. 신선함을 익숙함으로 맞바꾸는 작곡가 김도훈의 완연한 멜로디 라인에 묵직한 톤으로 능란하게 박자를 타는 휘성의 자신감 넘치는 활약은 거부할 수 없는 성공 공식이었다. 음반 판매량 40만 장을 넘기는 가공할 만한 위세를 누렸다.

빅마마 – 체념 (2003)
여타 멤버의 가창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더라도 노래 잘하는 가수 한두 명만 중심을 잡아줘도 그 팀은 실력파 그룹으로 인식이 가능하다. 그런데 네 명이라면? 요즘 시쳇말로 ‘사기캐’다. YG 엔터테인먼트와 알앤비 전문 레이블 엠보트(M-Boat)의 의기투합이 발굴한 빅마마가 그렇다. 당시 가요계 립싱크 행태를 꼬집은 ‘Break away’ 뮤직비디오에서 알 수 있듯, 이들의 등장은 비주얼 가수에게 응수하는 ‘가창력 그룹’의 도발적인 한 방이었다.

이영현이 홀로 작사, 작곡, 노래한 솔로곡 ‘체념’이 팀의 디스코그라피에서 가장 오랜 시간 지지를 받고 있다. 실제 이별 경험을 토대로 작사한 노랫말과 선 굵은 선율이 이영현 특유의 카랑한 고음을 타고 가슴 속에 아로새겨진다. 양현석과 엠보트 대표 박경진은 ’10년이 지나도 듣기 좋을 곡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팀을 꾸렸다던데, 이들을 한참이나 과소평가했다. 벌써 18년째 애청, 애창되고 있으니 말이다.

아소토 유니온 – Think about’ chu (2003)
짧아서 아쉽고, 그래서 더 소중한 활약이었다. 국내 흑인 음악 신의 선구자이자 보석과도 같던 팀 아소토 유니온의 빛나는 합동은 아프리카 부족 제사 의식용 북 ‘아소토’를 발췌한 그룹명처럼 원시적이고 날 것 그대로의 연주를 들려줬다. 드렁큰 타이거가 주도하던 크루 무브먼트의 밴드로서 이들이 보여준 것은 흑인 음악 원류에 관한 치밀한 탐구. 포화 상태에 있던 유사 블랙 뮤직들 사이에서 진정한 ‘검은 맛’이 무엇인지 시범이라도 보이는 것 같았다.

연주곡과 영어 곡의 큰 비중 속 ‘Think about’ chu’의 우리말 가사가 빛난다. 짙은 호흡을 섞어 허스키한 톤을 구사하는 김반장의 보컬이 소울 본연의 필(Feel)을 적극 구현하면서도 그 중심에 또렷이 생동하는 노랫말은 소울과 한국어의 반가운 악수를 보는 듯하다. 귀에 착 감기는 베이스 그루브와 서정성을 가미한 전자피아노의 끈적거림을 매끈하게 마감질한 사운드는 리마스터의 필요성에 반기를 든다. 2003년도 우리나라에 이런 노래가 나왔다.

나얼 – 귀로 (2005)
브라운 아이즈로 점화한 미디엄 템포 붐과 브라운 아이드 소울로 완성한 갈색 하모니의 정수. 결과물로 보여준 영향력도 지대하지만 이렇게 한 장르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여준 아티스트가 또 있었나 싶을 정도로 오랜 시간 같은 우물을 파는 뚝심이야말로 나얼이 국내 알앤비/소울의 대명사가 된 원동력이다. 2005년 발매한 < Back To The Soul Flight >는 옛 명곡을 소울로 재해석한 소울에 바치는 그의 러브레터였다.

중독적이다 못해 최면적인 도입부 피아노 반주에 기절하고 나면 소울 도인(道人)의 경지를 탐하는 나얼의 목소리가 들린다. 눈물을 머금은 듯 애잔하고, 탁월한 공명감의 두성이 아름답다. 흉내 의지를 꺾는 화려한 애드리브를 정밀하게 스케치해낼 때면 이게 우리나라 가수가 맞나 싶다. 심지어 이는 1989년 박선주의 원곡을 여자 키 그대로 부른 것이다. 나얼은 독보적인 노래꾼이다.

BMK – 꽃피는 봄이 오면 (2005)
제임스 브라운, 아레사 프랭클린 등 1960년대 소울 거장들의 육성을 들어보자. 원시의 소울은 흑인의 민권 회복과 자긍심 표출을 위한 분출구와 같았으며 이들의 보컬은 필히 웅변적인 힘, 우렁찬 스태미너를 특징으로 한다. BMK의 스피커가 터질 듯 묵직하고 강력한 목소리와 비교해보자. 그들처럼 차별에 대한 격노나 한을 노래하지는 않아도, 무자비한 성량만큼은 그것의 전형과 쏙 빼닮았다. 과연 ‘소울 국모’다.

‘꽃피는 봄이 오면’의 절절함도 여기서 온다. 산뜻한 봄날 옛 연인에 대한 그리움으로 사무쳐버린 감정의 파고를 노래하는 이 곡은 간주도 없이 빽빽하게 채운 보컬이 굵직한 멜로디를 뽑아내고 이내 극단의 감정을 토해내는 후렴부로 치닫는다. ‘찰나 같아 찬란했던 그 봄날’처럼 이별의 심정을 지독하리만치 아름답게 대변하는 노랫말은 또 어떠한가. 우리가 알고 있던 봄의 계절감을 잊게 할 만큼 애틋하다. 소개한 다른 가수들에 비해 히트곡이 많지 않은 그이지만, ‘꽃피는 봄이 오면’ 하나만으로 계절만 되면 소환되는 스테디셀러의 주인공이 됐다.

윤미래 – What’s up! Mr. good stuff (2007)
전략은 중도, 무기는 실력. 윤미래는 날고 기는 신의 강자들 사이에서 잔학한 쌍칼 검법의 가능성을 창출한 독보적인 멀티 플레이어다. 대중과 장르 애호가를 모두 사로잡기 위한 랩, 노래의 현란한 휘날림과 속속 발매한 발라드 히트 넘버들로 양 분야 모두의 정상급 인정을 확보한 그였다. 그러한 완벽에 가까운 이도류의 특성을 압축하고 블랙 뮤직 스페셜리스트로서의 위상을 철저하게 굳힌 작품이 < t 3 Yoonmirae >다.

수록곡 ‘What’s up! Mr. good stuff’는 리얼하다. 인트로의 거친 드럼에서 예고하듯 호쾌한 펑크(Funk) 그 팔딱거리는 참맛을 별다른 효과 없이 기타, 브라스 등 화끈한 세션의 합연만으로 전달한다. 역동적인 박수 소리와 브릿지 내레이션은 입체감 이상의 현장감을 부른다. 자유롭게 그루브를 타고 흐르는 윤미래의 보컬을 따라 춤을 참을 수 없을 것이다. 2008년 한국 대중음악상 최우수 알앤비&소울 음반, 노래 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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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MZ세대의 음악 레전드 특집

음악은 저항 정신을 표현하는 매개체이자 자유를 실현하는 수단이다. 수십 통용되던 젊음의 코드가 낯설기만 MZ세대는 무엇이 당대 젊은이들을 열광하게 했는지, 기성세대에게서 간간이 들었던 ‘영광의 시절’의 주역에는 누가 있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귀가 가는 밴드가 있다. 강렬한 밴드 사운드,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힙합과 아이돌 음악에 익숙한 이들에게 록과의 접점을 마련할 가능성을 제공한다. 스타들인 포스트 말론(Post Malone) 다베이비(DaBaby) 공히 노래한 곡이 스타.

이 리스트는 1950년대 태동한 이래 한 시대를 풍미했던 록 음악에 주목한다. 달라진 환경과 흘러간 시간만큼 록과 멀어진 현세대에게도 시대를 막론하고 통하는 록 밴드에는 누가 있는지, 지금 젊음의 시선에서 ‘그래도 이 밴드만은 챙겨야 한다’고 공감할 수 있는 레전드 10팀을 선정했다.

핑크 플로이드 (Pink Floyd)
핑크 플로이드가 1973년 발표한 < The Dark Side of The Moon >이 위대한 앨범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주변에 록 음악을 좀 듣는다고 하는 광(狂)들의 추천 목록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기 때문. 찬사와 수식어가 늘 따라다니는 이 거룩한 밴드는 실험적 요소들을 음악에 대거 투입해 곡의 구성과 연주 방식의 범위를 넓혔다.

실제로 이들 음악은 기존의 일반적인 록과 달리 웅장한 사운드를 제공한다. 장엄한 아방가르드 록 사운드가 주는 장대한 분위기의 핑크 플로이드 음악은 청취를 거듭할수록 다채로운 감상이 가능하다. 유행하는 대중음악보다 진중하고 진취적인 체험을 원한다면 핑크 플로이드가 그 음악의 스펙트럼을 확장해줄 것이다. 특히 대표곡 ‘Comfortably numb’ 속 심금을 울리는 데이비드 길모어의 기타 솔로는 록연주가 선사할 수 있는 감동의 극치다.
추천곡:’Us and them’, ‘Wish you were here’, ‘Another brick in the wall, pt.2’, ‘Comfortably numb’

레드 제플린 (Led Zeppelin)
레드 제플린은 MZ세대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록 밴드의 형상을 지녔다. 긴 머리카락과 타이트한 바지, 그리고 단추를 풀어 헤친 화려한 셔츠를 입은 패션은 젊은 세대가 가장 먼저 형상화하는 록 밴드 이미지의 전형이다. 높은 음역대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로버트 플랜트의 록 보컬 스타일, 기타리스트들의 영원한 로망인 지미 페이지의 연주도 역시 마찬가지다.

레드 제플린은 밴드 구성원 모두가 해당 포지션에서 전설적인 위치를 점하며 8개의 앨범 을 발매했다. 헤비메탈, 블루스, 사이키델릭, 레게 그리고 월드뮤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요소들이 내재한 그들의 유산은 록 음악의 교본으로서 회자된다.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록 밴드의 최고 명곡에 대한 의견은 저마다 분분하지만 밀도 높은 커리어 속 굳이 하나를 택한다면 ‘Rock and roll’에 표를 던지고 싶다. 대단한 연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제목이 나타내듯 레드 제플린이 로큰롤 그 자체이기 때문.
추천곡:’Heartbreaker’, ‘Rock and roll’, ‘D’yer mak’er’, ‘Fool in the rain’

벨벳 언더그라운드 (The Velvet Underground)
현대 미술의 거장이자 숱한 명작들을 남긴 팝 아티스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은 현재까지도 위용을 떨치고 있다. 당대 뉴욕 문화의 상징이었던 그는 비단 시각주의 예술뿐만 아니라 음악 분야에도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우리에게 친숙한 흰 배경에 덩그러니 놓인 큰 바나나 하나와 ‘Sunday morning’, ‘Femme fatale’ 등으로 잘 알려진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1집 커버가 바로 그의 작품이다.

외부의 입김과는 별개로 이 앨범에 담아낸 루 리드와 존 케일의 천재성은 새바람을 몰고 왔다. 전위적 성격의 사운드를 강조하며 당시 만연하던 히피즘에 대적하는 도발적인 주제를 다뤘던 이들의 음악은 가까운 미래 펑크(Punk) 록과 뉴 웨이브 음악에 막대한 영향력을 선사했고 나아가 얼터너티브 록의 기원으로도 여겨진다. 활동 당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벨벳 언더그라운드가 실현한 단순하고 아름다운 록은 뉴욕 언더그라운드 신의 활로를 개척했다. 따라 하기 쉽고 매력적이다. 출시된 지 수십년이 지난 후에도 그들 음악이 유독 세련되게 다가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추천곡:’I’m waiting for the man’, ‘Ride into the sun’, ‘Sweet Jane’, ‘Who loves the sun’

에이씨디씨 (AC/DC)
일관적으로 추구한 8비트 로큰롤에 타협이란 없었다. 한결같이 직진한 쓰리 코드의 포효는 전 세계 록 시장을 강타하며 약 5,000만 장의 앨범 판매량을 기록한 하드 록 최고의 걸작 < Back In Black >을 배출해낸다. 최근엔 마블 영화 < 아이언맨 > 시리즈와의 인연으로 더 친숙하다. 극 중 주인공 토니 스타크의 화려한 등장 신에 어김없이 이들의 음악이 흐르는데 스크린을 뚫고 뿜어져 나오는 맹렬한 에너지까지도 모두 8비트 로큰롤이다.

때로는 단순한 게 귀에 맴돈다. 심장이 먼저 반응하는 8비트 드럼 위 얹어지는 강렬한 리프, 그리고 폭발하는 고속 질주까지, 스트레스를 날리기엔 이만 한 게 없다. 복잡한 머릿속을 말끔히 정리해주는 에이씨디씨의 음악은 아마 지금을 살아가는 MZ세대들에게 일종의 진통제가 될 것이다.
추천곡:’T.N.T’, ‘Whole lotta Rosie’, ‘Highway to hell’, ‘You shook me all night long’

레너드 스키너드 (Lynyrd Skynyrd)
발음하기 어려운 밴드다. 레너드 스키너드는 멤버들의 학창 시절 고등학교 교사 이름을 익살스럽게 변형해 그룹명으로 삼았다. 올맨 브라더스와 미국 남부 블루스, 컨트리의 융합인 서던 록(Southern rock) 시장을 양분하다시피 해온 그들은 1970년대 3대 록 클래식으로 꼽히는 ‘Free bird’를 비롯해 ‘Tuesday’s gone’, ‘Simple man’ 등을 수록한 1집 외에도 수많은 록 고전들을 쏟아냈다.

리드 기타리스트가 셋이나 되는 레너드 스키너드의 풍성한 사운드는 미국 남부를 떠올리게 한다. 개러지와 블루스, 그리고 하드 록을 결합한 토속적인 질감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앨라배마를 달콤한 내음이 가득한 고향으로 둔갑시킨다. 1977년 갑작스러운 비행기 사고로 3명의 멤버를 잃기 전까지 그들은 서던 록의 대표 주자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광대한 하모니를 그려냈던 대가들의 애달픈 결말은 먹먹한 그리움을 남긴다.
추천곡:’Free bird’, ‘Tuesday’s gone’, ‘Give me three steps’, ‘Sweet home Alabama’

클래시 (The Clash)
얼마 전 개봉한 디즈니 영화 < 크루엘라 > 사운드트랙에 클래시의 대표곡 ‘Should I stay or should I go’가 포함되었다. 펑크(Punk) 록의 원조 격인 그들은 작품 속 배경과 마찬가지로 1970년대 런던 젊은이들을 대변했다. 당시 갖은 사회 문제들로 혼란스러운 형국에 직면한 영국의 심장부에서 섹스 피스톨즈의 불꽃을 이어받은 이 4인조는 큰 파장을 몰고 왔다. 응축된 분노를 눌러 담은 노랫말이 곧 시위 문구가 되어 거리에 울려 퍼졌고, 그들이 고취시킨 저항 정신은 후배 펑크 뮤지션들의 귀감이 되었다.

메시지 측면에서 혁명과 노동 계급에 집중한 동시에 음악적, 장르적 모험도 서슴지 않았다. 스카, 레게의 요소를 접목한 곡들은 클래시의 새로운 면모를 부각하면서 쓰리 코드의 단순함 아니면 소음으로 치부된 펑크 록에 고(高) 퀄리티를 부여했다. 기억해야 할 클래시의 본질은 < London Calling > 앨범 표지 속 베이시스트 폴 사이모넌이 기타를 내리꽂는 모습으로 단번에 압축된다. 그들이 보여준 용기와 투쟁 정신은 모든 게 위축된 MZ세대에게 진정 록 스피릿이 무엇인지 일깨워줄 것이다.
추천곡:’White riot’, ‘I’m so bored with the U.S.A’, ‘London calling’, ‘Rock the casbah’

토킹 헤즈 (Talking Heads)
‘혁신’이라는 키워드는 현재 사회가 가장 필요로 하는 덕목이다. 토킹 헤즈가 구축한 혁신적인 음악 세계는 창의성과 독창성을 갈망하는 MZ세대의 니즈와 맞닿아 있다. 뉴욕의 CBGB 클럽에서 라몬즈(Ramones)의 오프닝 공연을 맡으며 커리어를 시작한 그들은 1977년 데뷔작 < Talking Heads’77 >로 지적 매력을 한껏 드러내며 단숨에 참신한 그룹으로 발돋움한다. 이후 브라이언 이노가 프로듀서로 가세하면서 최상의 시너지를 발휘해 미국 뉴 웨이브 신의 수작을 연이어 발표하며 주가를 올렸다.

독특한 음악관과 더불어 토킹 헤즈가 대중의 뇌리에 깊게 각인된 까닭은 프론트 맨 제임스 번의 지분이 압도적이다. 훤칠한 키와 번듯한 외모도 한 몫 했지만 무엇보다 무대 위에서 펼치는 기행에 가까운 라이브 퍼포먼스가 주된 요인이다.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격렬한 춤사위는 그들 음악의 일부이자 상징이 된 지 오래. 그가 보여준 쇼맨십도, 딴 프론트맨에 비해 다소 엉성한 가창법을 구사하는 것도 다 신선하다. 매직 밴드!
추천곡:’Psycho killer’, ‘Life during wartime’, ‘Once in a lifetime’, ‘Road to nowhere’

표준화된 록의 시대에 폴리스는 영국 뉴 웨이브 신과 함께 화려하게 등장했다. 펑크 록에서 곧장 장르를 확대하여 레게, 재즈 등을 뒤섞은 사운드를 건설했고 매 앨범 선보인 변신술은 정체된 시장에 반향을 일으키며 미 대륙까지 뻗어갔다. 이러한 ‘뉴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주역에는 이미 우리에게 관능적인 영국식 발음과 함께 대표곡 ‘Englishman in New York’, ‘Shape of my heart’ 하면 바로 떠오르는 가수 스팅(Sting)이 있다.

밴드 시절 스팅의 모습은 솔로 시절과는 상반된 반전 매력을 엿볼 수 있다. 그는 기타리스트 앤디 서머스, 드러머 스튜어트 코플랜드와 완벽한 합을 이루며 짧은 활동 기간 발매한 5장의 스튜디오 앨범을 선구적인 프로젝트로 만들어냈다. 작품성과 상업성을 모두 득한 주요인은 삼각 편대의 팽팽한 균형이다. 감미로운 보컬, 파워풀한 드럼과 어우러지는 앤디 서머스 특유의 ‘쫀득한’ 기타 리프는 매번 놀라움을 안겨준다.
추천곡 : ‘Can’t stand losing you’, ‘Message in a bottle’, ‘Every little thing she does is magic’, ‘Every breath you take’

뉴 오더 (New Order)
클럽 음악의 형태는 현재 힙합과 EDM으로 정형화되었지만 1980년대 영국 클럽 신에 울려 퍼진 음악은 지금과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일렉트로닉 록 요소와 신스팝을 가미한 뉴 웨이브 음악들이 맨체스터를 기반으로 흘러나왔고 그 중심에는 비극을 정면으로 돌파한 뉴 오더의 신화가 있었다.

조이 디비전의 그늘에서 출발한 뉴 오더는 전신 멤버 버나드 섬너, 피터 훅, 스티븐 모리슨을 주축으로 재결성했다. 댄서블한 록 사운드를 정직한 배열 아래 흡인력 있는 멜로디로 구사한 감각적인 문법으로 그들은 서서히 조이 디비전의 잔향을 지워갔고 훗날 ‘록+댄스’의 미친 맨체스터, 이른바 매드체스터라는 새로운 음악 형태의 근원이 된다. 물론 이 드라마틱한 서사는 멤버들의 역량이 탁월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중 단연 최고는 ‘인간 메트로놈’ 드러머 스티븐 모리슨. 자유자재로 리듬을 잘게 쪼개고 붙이는 그의 시그니처 연주는 언제 들어도 일품이다.
추천곡:’Age of consent’, ‘Love vigilantes’, ‘Bizarre love triangle’, ‘Round & round’

큐어 (The Cure)
큐어는 1970년대 말 태동한 고딕 록이라는 하위문화를 대표했다. 고스 족의 특징인 창백한 피부, 두꺼운 아이라인, 그리고 새빨간 립스틱을 바른 기괴한 화장법을 선보인 채 내면의 분노를 음울한 감성으로 담아 표출한 로버트 스미스는 고딕 록의 효시가 된 조이 디비전의 뒤를 이었다. 결성 초기 발매한 고딕 3부작을 대표적으로 작품들 속엔 사회의 어두운 측면과 허무주의가 만연하게 드러난다. 현재까지도 마니아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고딕 문화에 입문하기에 제격이다.

큐어는 꾸준함과 장수의 아이콘이기도 하다. 데뷔 이래 다양한 장르에 일가견을 보이며 고딕 록, 얼터너티브 록 이외에 주류 팝 분야까지도 좋은 성적표를 거두었다. 로버트 스미스의 음산한 무드와 전형적인 기타 팝 감각이 의외의 시너지를 발휘한 것. 지금까지 대중에게 유명세를 치른 곡들도 이와 결을 같이 한다. 울분을 토하는 보컬과 서정적인 멜로디가 교차하는 아이러니의 매력, 이게 큐어다.
추천곡:’Cold’, ‘Just like heaven’, ‘In between days’,’Friday I’m in 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