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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여성 싱어송라이터 16인/16곡

격세지감. “21세기 대중 음악 신은 여성이 호령한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여성 뮤지션들의 위세가 대단하다. 테일러 스위프트와 비욘세, 빌리 아일리시와 올리비아 로드리고 같은 대형 스타들의 군웅할거는 남성 뮤지션의 이름이 빼곡했던 1960~70년대 빌보드 차트를 전복했다. 그간 억눌러왔던 재능을 터트리듯 대중음악계의 우먼파워는 사기충천한다.

리스트에 오른 20세기 여성 싱어송라이터 16인은 남성 지배적인 대중음악계에서 직접 곡과 가사를 쓰고 노래까지 부르며 음악적 주도권을 확립했고 ‘자아를 음률(音律)로 표현한다’라는 아티스트의 본질을 이뤄냈다. 후배 여성 뮤지션들은 이들을 보며 음악의 꿈을 키웠고, 용기 낼 수 있었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선각자와 계승자의 명곡 중 자작곡 혹은 공동 작곡에 해당하는 열여섯 작품을 골랐다.

조니 미첼 ‘Both sides now’ (1969)
배철수의 음악캠프의 디제이 배철수는 조니 미첼을 가장 위대한 여성 싱어송라이터로 꼽았다. 60여 년에 걸친 포크와 록, 재즈를 아우르는 음악적 변화와 사상과 감정을 고스란히 반영한 노랫말은 싱어송라이터의 기준을 정립했다. 포크 록 걸작 < Clouds >와 그녀를 대표하기에 이른 < Blue >, 본격적으로 재즈 퓨전을 시도했던 1970년대 중반의 < Hejira >와 더불어 실험적인 신스팝 앨범 < Dog Eat Dog >까지 미첼은 정체(停滯)를 거부했다.

‘Send in the clowns’로 유명한 여성 싱어송라이터 주디 콜린스가 1967년 미첼의 자작곡 ‘Both sides now’를 취입해 빌보드 핫100 8위까지 오르며 선전했고 미첼은 본인의 두 번째 스튜디오 앨범 < Clouds >의 마지막 트랙으로 이 곡을 택했다. 소설가 솔 벨로의 < Henderson And The Rain King >에서 영감을 얻은 이 곡의 키워드는 구름이며 앨범 제목과도 연결된다. 고통 속에 아름다움이 깃든 삶의 양면성을 노래하는 이 곡은 시적 언어의 정수다. 최근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영화 < 코다 >의 중심 테마로 젊은 팬들에 가닿았고 미첼은 최근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후배 브랜디 칼라일과 이 노래를 불러 감동을 안겼다.

캐롤 킹 ‘It’s too late’ (1971)
최고의 여성 작곡가를 단언하기 어렵지만 캐롤 킹은 후보로 첫손에 꼽힐만하다. 전 남편 제리 고핀과 콤비로 더 셔를스(The Shirelles)의 ‘Will you love me tomorrow’ 리틀 에바(Little Eva)의 ‘The loco-motion’ 같은 명곡을 쏟아냈던 그녀는 1971년 명반 < Tapestry >로 작곡가에서 싱어송라이터로 영역을 확장했다. ‘I feel the earth move’ 제임스 테일러와 입을 맞춘 ‘You’ve got a friend’ ‘(You make me feel like) a natural woman’ 같은 완벽한 팝송들로 채워진 이 앨범은 1972년 그래미 올해의 레코드 수상으로 방점을 찍었다.

여자가 내리는 이별 선고는 시대를 고려하면 급진적이다. 작사가 토니 스턴(Toni Stern)은 ‘Fire and rain’의 제임스 테일러와 킹의 짧은 로맨스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고 밝혔다. 킹이 직접 연주한 피아노와 커티스 에이미(Curtis Amy)의 색소폰이 재즈를 덧칠하고 빈틈없는 선율이 대중성과 영속성을 움켜쥐었다. 당당한 여성상을 높이 산 롤링 스톤은 이 곡을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500곡 중 하나로 선정했다.

칼리 사이먼 ‘You’re so vain’ (1972)
커다란 입과 두툼한 입술이 인상적인 가수 칼리 사이먼의 가사지엔 진솔한 감정 표현이 가득하다. 1970년대에 걸쳐 꾸준히 히트곡을 발표해온 그녀는 전남편 제임스 테일러와 듀엣으로 부른 ‘Mockingbird’, 블루 아이드 소울 뮤지션 마이클 맥도널드와 함께한 ‘You belong to me’ 등 남성 뮤지션들과 좋은 합을 보여줬다. 빌보드 핫100 2위를 기록한 <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 >의 주제가 ‘Nobody does it better’도 대표곡이다.

“당신은 허영심 넘쳐요, 당신도 이 노래가 자신을 말하는 걸 알죠? 정녕 모르시나요?”라는 구절이 남자들의 가슴을 쿡쿡 찔렀고 사이먼은 할리우드 스타 워렌 비티를 세 명의 당사자 중 하나로 지목했다. 도입부의 꿈틀대는 베이스 연주는 비틀스의 멤버들과 협연했던 독일 출신 클라우스 부어만(Klaus Voorman)의 솜씨고 피아노는 사이먼이 직접 연주했다. 크레디트에 명시되진 않았지만 숨길 수 없는 음색 덕에 대부분 팬이 믹 재거의 백업 보컬을 알아챘다. 사이먼의 유일한 빌보드 핫100 1위 곡인 ‘You’re so vain’은 2021년 롤링 스톤지가 선정한 500대 명곡에서 495위를 차지하며 역사적 의미를 더했다.

돌리 파튼 ‘Jolene’ (1974)
자선 단체 뮤지케어스(MusiCares)의 2021년 콘서트는 돌리 파튼 트리뷰트로 꾸며졌다. 마일리 사이러스, 크리스 스테이플턴 등 스타 뮤지션이 대거 참여해 존경을 표했고 객석의 뮤지션들도 노래를 따라부르며 위대한 가수를 칭송했다. 1946년생, 여든의 나이를 바라보는 파튼은 컨트리 음악을 넘어 미국 대중 음악의 전설이다. 25곡의 빌보트 컨트리 차트 1위 곡으로 또 다른 컨트리 음악의 전설 레바 매킨타이어와 함께 꼭대기에 위치하고 그래미도 50번의 노미네이션, 11번 수상해 대중과 평단에 두루 사랑받았다.

그녀는 무려 3,000여 곡을 쓴 정상급 작곡가다. 많은 이들이 휘트니 휴스턴의 원곡으로 오인하는 ‘I will always love you’와 빌보드 넘버원을 차지한 ‘9 to 5’도 그녀의 작품이다. 경쾌한 곡조의 ’9 to 5’와 달리 ‘Jolene’은 ‘졸린, 제발 제 남편을 빼앗지 마세요’라고 애원하고 파튼은 실화 기반의 곡을 부르기 꺼렸다. 개러지 록의 부활을 이끌었던 화이트 스트라입스의 절규를 담은 커버와 파튼이 직접 목소리를 얹기도 한 아카펠라 그룹 펜타토닉스의 버전이 유명하다. 며칠 전 세상을 떠난 올리비아 뉴튼 존도 7번째 정규 앨범 < Come On Over >의 마지막 싱글로 이 곡을 택했다.

존 바에즈 ‘Diamonds & rust’ (1975)
1960년대 미국 반문화의 상징 존 바에즈는 사회상에 끊임없이 문제 제기한 포크 뮤지션 겸 인권운동가다. ‘밥 딜런의 동지’ 정도로 그치기엔 1950년대 말엔 마틴 루터 킹과의 교류, 1960년대 말 베트남전 반대 성명, 이후의 성 소수자 존중과 사형제 폐지 등 딜런보다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통기타 반주에 목소리를 더한 간결한 음악을 구사했던 바에즈가 풍성한 편곡을 시도했던 열여섯 번째 정규 앨범 < Diamonds & Rust >는 래리 칼튼(기타), 윌튼 펠더(베이스), 토토의 건반 연주자 데이비드 페이치같은 정상급 연주자들로 포크와 재즈를 섞은 세련된 사운드를 세공했다. 한때 연인이었던 딜런과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묘사한 ‘Diamonds & rust’는 사랑의 양면성을 다이아몬드와 녹으로 은유했고 바에즈가 내면적인 노래에도 강점이 있음을 증명했다.

재니스 이안 ‘At seventeen’ (1975)
만 16살에 데뷔 앨범을 발표할 정도로 천재성을 보인 재니스 이안은 1967년 ‘Society’s child ‘ 이후 빌보드 핫100에서 뚜렷한 성공을 못 거뒀지만 1975년에 발표한 < Between The Buttons >로 단숨에 전세를 역전했다. ‘At seventeen’ 이외에도 ‘From me to you’, ‘In the winter’ 등 흡인력 있는 곡들이 포진한 소프트 록의 명반이자 경력의 정점이다.

무도회의 퀸카들을 보며 ‘나는 왜 저렇게 안 될까?’ 좌절하는 십 대 소녀 이야기다. 파티 경험이 없는 이안은 사실적인 가사를 쓰기 위해 몇 달을 고민했고 여러 차례 퇴고 끝에 완성한 노랫말은 소녀들의 공감대를 끌어냈다. 열일곱을 노래한 스물셋의 이안은 보사노바 리듬에 실린 어쿠스틱 기타와 트롬본으로 격조를 높인 이 곡으로 1976년 제18회 그래미에서 최우수 여자 팝 보컬 상을 받았다.

패티 스미스 그룹 ‘Because the night’ (1978)
데뷔 앨범 < Horses > 속 흑백 사진은 패티 스미스의 쿨함을 상징한다. 상업적 성과는 미미했으나 밴 모리슨의 원곡에 살을 붙인 ‘Gloria’과 자유로운 사랑을 함의한 ‘Redondo beach’로 여성 펑크(Punk) 로커의 시금석이 되었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한 축 존 케일이 제작을 맡아 아트 펑크적 성향이 짙은 이 앨범은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아르튀르 랭보와 비트 제너레이션의 대표 작가 앨런 긴즈버그의 영향으로 문학적이다.

패티 스미스 그룹의 명의로 3년 후에 발표한 정규 3집 < Easter >는 빌보드200 20위를 수확했고 뉴웨이브를 접목한 편안한 사운드는 친밀감을 더했다. 빌보드 핫100 13위까지 오른‘Because the night’의 뿌리엔 ‘더 보스’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있고 그가 < Darkness On The Edge Of Town > 제작을 위해 밑 작업만 해놓았던 곡은 당찬 펑크 록으로 환생했다. “당신의 명령 아래 내 기분은(The way I feel under your command)”이란 가사가 걸리지만 전반적으로 주도적이고 당당한 태도로 사랑을 갈구한다. 어떤 노래든 ‘패티 스미스 화’하는 능력을 ‘Gloria’에 이어 다시금 발휘했다.

마돈나 ‘Lucky star’ (1983)
마돈나는 명실상부 대중 음악을 대표하는 슈퍼스타다. 40년 가까이 차트를 호령해온 꾸준함은 비견할 데 없고 역경을 극복하고 정상에 오른 신화적 인물이기도 하다. 함께 ‘58년 개띠 클럽’을 구축했던 마이클 잭슨, 프린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박한 평가를 받아왔으나 < Like A Virgin >, < Like A Prayer > 등의 명반을 배출하고 < Ray Of Light >, < American Life >로 음악적 다변화도 꾀했다.

싱어송라이터의 이미지가 약할 뿐 마돈나는 꽤 많은 곡을 스스로 써냈다. ‘Live to tell’, ‘La isla bonita’, ‘Frozen’, ‘Hung up’ 같은 대표곡들이 모두 그녀의 손길에서 나왔고 2집 < Like A Virgin >의 초대박 히트에 묻혔을 뿐 결코 경시할 수 없는 데뷔작 < Madonna >의 수록곡 ‘Lucky star’도 자작곡이다. 앨범의 유일한 탑5 히트곡이자 빌보드 댄스 차트 1위에 오른 이 곡은 펑키(Funky)한 기타와 신시사이저 리프에 꼼꼼한 사운드 프로덕션으로 5분이 넘는 러닝타임이 지루하지 않다. 남성의 육신을 빛나는 별에 은유했다는 평이 일반적이지만 뮤직비디오 속 마돈나의 자애적(自愛的)인 모습은 진짜 럭키 스타가 누군지 암시한다.

신디 로퍼 ‘Time after time’ (1983)
요란한 외모에 독특한 목소리로 캐릭터를 구축한 신디 로퍼는 많은 히트곡을 작곡한 특급 싱어송라이터기도 하다. 한때 마돈나의 라이벌로 거론될 정도로 특급 인기를 구가했던 그녀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발표한 1983년 데뷔작 < She’s So Unusual >로 일약 슈퍼스타가 되었다. 짧은 전성기로 라이벌리는 무색해졌으나 정통 재즈 < At Last >와 블루스 록 < Memphis Blues >를 발표하고 뮤지컬 < 킹키 부츠 >의 음악을 맡는 등 다재다능을 드러냈다.

1986년 정상을 차지한‘True colours’와 더불어 신디 로퍼의 유이한 빌보드 1위 곡 ‘Time after time’은 신나는 팝 록으로 채워진 < She’s So Unusual >에서 사뭇 이질적이다. 앨범의 마지막 퍼즐을 채우기 위해 록밴드 후터스의 보컬 겸 키보디스트 롭 하이만과 조우했고 실연의 아픔을 대화하듯 가사지에 써 내려갔다. 신시사이저와 간결한 퍼커션 연주가 구현한 애상적인 사운드 앞에서 팝계의 말괄량이조차 진중해졌다.

케이트 부시‘Running up that hill (deal with god)’ (1985)
에밀리 브론테의 동명 소설에서 영감을 얻은 신묘한 곡 ‘Wuthering heights’로 데뷔한 케이트 부시는 독보적인 음악성과 카리스마를 갖췄다. 일찌감치 재능을 알아본 핑크 플로이드의 기타리스트 데이비드 길모어는 부시의 데뷔작 < The Kick Inside >에 참여했고 그로부터 음악 감독의 주체성을 흡수한 부시는 < The Dreaming >(1982), < The Sensual World >(1989) 같은 명반을 스스로 제작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 기묘한 이야기 >에 수록된 ‘Running up that hill (deal with god)’은 역주행 신화를 쌓으며 ‘2022년의 재발견’ 도장을 찍었다. 원제는 ‘Deal with god’이었고 대중음악계의 한 여성으로 느끼는 유리천장을 부술 수 있다면 신과 거래라도 하겠다는 울부짖음을 담았다. 가녀린 고음 보컬은 육중한 리듬 트랙 위를 활보하고 뉴웨이브 신스팝과 프로그레시브 록을 혼합한 사운드는 고유의 소리 문법을 정립했다. 1985년 작 < Hounds Of Love >는 이 곡 이외에도 ‘Hounds of love’,‘Cloudbursting’같은 개성적인 넘버들로 채워졌다.

브렌다 러셀 ‘Piano in the dark’ (1988)
악기 연주와 가창, 작곡에 능한 팔방미인 브렌다 러셀은 상기한 뮤지션들에 비해 인지도는 떨어지나 알앤비와 소울, 재즈를 아우르는 실력파 뮤지션이다. 1970년대부터 남편 브라이언 러셀과 함께 펑크(Funk) 밴드 루퍼스,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닐 세다카와 협업하며 숙련도를 높였고 1979년에 데뷔 앨범 < Brenda Russell >로 솔로 경력을 시작했다. 빌보드 알앤비 차트 20위까지 이 오른 앨범의 전곡을 써내며 성숙한 음악성을 드러냈다.

1988년 발표한 < Get Here >는 빌보드200 46위에 올라 상업적으로 가장 크게 성공했다. 장기인 건반 연주를 더 크루세이더스의 조 샘플, 옐로우자켓의 러셀 페런트(Russell Ferrante)에 맡겼고 마이클 잭슨의 < Thriller >에서 기타를 연주한 폴 잭슨 주니어와 베이스의 네이던 이스트 등 정상급 연주자가 소리 밀도를 책임졌다. 빌보드 팝, 알앤비, 어덜트 컨템포러리 세 카테고리에서 모두 10위권 안에 든 ‘Piano in the dark’는 유려한 가창과 편곡을 겸비했고 아레사 프랭클린, 패티 라벨에게 곡을 제공했던 조 에스포지토와의 파트너십도 훌륭하다. 알토 색소폰 연주자 데이비드 샌본과 함께한 ‘Le restaurant’도 앨범의 세련된 분위기에 일조했다.

트레이시 채프먼‘Fast car’(1988)
흑인이 부르는 포크 록은 이색적이었다. 가상의 주인공을 설정해 가난의 악순환을 이야기하는 방식과 어쿠스틱 기타 위로 흐르는 담담한 음성은 신인의 어설픔과 거리가 멀었다. 조숙한 데뷔작 < Tracy Chapman >과 빌보드 핫100 6위까지 ‘Fast car’에 힘입어 채프먼은 1989년 제31회 그래미에서 신인상을 비롯한 3관왕을 차지했다. 록 색채가 강한 4집 < New Beginning >(1995) 이후 하강 곡선을 그렸고 2008년도 앨범 < Our Bright Future >가 최근작이다.

채프먼의 진면목은 사회비판적 포크 음악의 부활에 있다. 제목부터 혁명을 담은 ‘Talkin about a revolution’ 물질문명을 비판한 ‘Mountains o things’ 등 사회적인 노래를 다수 발표했고, 백인우월주의에 근거한 인종차별을 일컫는 아파르트헤이트 피해자를 위한 모금 행사 등 인권 관련 행사에 참여해 급진적 성향을 드러냈다. 흑인, 여성의 제약을 딛고 포크의 저항 정신을 다시금 일깨웠다.

셰릴 크로우 ‘All I wanna do’ (1993)
컨트리를 기반으로 한 팝 록 앨범 < Tuesday Night Music Club >은 미국에서만 약 450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긴 무명 생활을 한 방에 날렸다. 윈 쿠퍼(Wyn Cooper)의 시 < Fun >을 참고한 ‘All I wanna do’는 뻔한 삶에서 벗어나길 갈망했고, 그래미 올해의 레코드 수상과 빌보드 핫100 2위로 그 소망을 이뤘다. 앨범의 프로듀서 빌 보트렐(Bill Botrell)이 연주한 스틸 기타가 미래를 향한 낙관주의를 담았다.

크로우의 강점은 꾸준함이다. ‘If it makes you happy, ‘Soak up the sun’ 같은 히트곡을 공동 작곡한 음악적 동반자 제프 트로트(Jeff Trott)와 함께 거의 매년 자작곡을 내놓고 있다. 데뷔작의 신선함이 바란 자리에 연륜이 들어섰고 포크, 컨트리, 멤피스 소울 등 미국의 음악 유산을 탐색하고 있다. 2019년에는 스티비 닉스, 세인트 빈센트, 자니 캐쉬가 참여한 < Threads >로 경력을 압축했다.

앨라니스 모리셋 ‘You oughta know’ (1995)
1995년 데이비드 레터맨 쇼에서의 무대는 광포했다. 제인스 어딕션의 베이시스트 크리스 채니(Chris Chaney)와 얼마 전 세상을 떠난 푸 파이터스의 드러머 테일러 호킨스와 함께한 격정적 퍼포먼스가 곡에 담긴 분노를 표출했다. 1995년 발표된 < Jagged Little Pill >은 약 3300만 장의 판매고와 ‘올해의 앨범상’을 비롯한 그래미 다섯 개 부문을 휩쓸었고 모리셋은 1990년대를 대표하는 여성 록커로 우뚝 섰다.

그녀를 상징하는 명곡 ‘Ironic’(4위) 과 ‘ You learn’(6위)이 쾌활한 분위기를 지닌 데 비해 ‘You ought know’는 하드록의 정통성을 따랐고 그래미 ‘최우수 록 송’, ‘최우수 여성 록 보컬 퍼포먼스’의 영예를 안았다. 차버린 남자를 향한 날선 노랫말은 당당하고 억센 여인의 이미지를 부각했고, 당시 레드 핫 칠리 페퍼스 소속이었던 기타리스트 데이브 나바로와 베이시스트 플리가 거친 록 사운드를 제공했다. 청량한 댄스 팝을 부르던 십 대 소녀가 여전사로 변신한 순간이다.

뷰욕 ‘Hyperballad’(1995)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출신의 뷰욕은 대중음악계의 원 오브 어 카인드다. 한 문장으로 정의하기 힘든 이 뮤지션은 재능의 끝을 가늠하기도, 어디로 튈지 예측하기도 어렵다. 전위성을 바탕으로 한 음악 스타일이 그녀의 인장이고 음악을 시각화하는 뮤직비디오에도 최전선에 위치한다. 감독 라스 폰 트리에와 잡음이 있었지만, 영화로 어둠 속의 댄서 >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전방위적 재능을 입증했다.

1995년에 나온 2집 앨범 < Post >는 데뷔작 < Debut >에 비해 한층 성숙한 음악성을 확립했다. 1집을 함께 했던 넬리 후퍼 이외에도 매시브 어택의 트리키와 하우스 음악에 일가견 있는 그레이엄 메시를 프로듀서로 초빙해 다변화를 꾀했다. 강성 트립합‘Army of me’과 뮤지컬 스타일 ‘It’s so quiet’ 등 이채로운 곡 중에서 ‘Hyperballad’는 앨범의 백미다. 브라질의 재즈 뮤지션 유미르 데오다토의 현악 세션과 하우스 에이펙스 트윈 풍의 비트가 층위를 이루고 뷰욕은 몽환적 음성으로 남녀의 신비로운 역학 관계를 이야기한다. 미로 같은 소리 갈래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는 특유의 음악성을 집약했다.

사라 맥라클란‘Angel’(1997)
십여 년간 시행착오를 겪던 캐나다 출신 싱어송라이터 사라 맥라클란은 네 번째 정규앨범 < Surfacing >에서 응축했던 내공을 터트렸다. 돌파구가 된 이 앨범 이후로 2010년 작까지Shine On >까지 미국과 캐나다 앨범차트 탑10 안에 들며 안정적 커리어를 구축했다. 1997년에는 여성 솔로 뮤지션과 여성이 이끄는 밴드가 출연한 릴리스 페어(Lilith Fair)를 열어 3년간 약 1천만 달러의 자선금을 확보했다.

‘Angel’은 얼터너티브 록 밴드 스매싱 펌킨스의 키보디스트 조나단 멜보인의 사망 사건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천사의 품에서 편안하게 쉬세요’라는 추모와 함께 약물 이외의 탈출구가 있다고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이 곡은 19주간 탑10안에 머문 대표곡이다. 청아한 목소리와 피아노 연주가 천사의 부름처럼 들리는 이 곡은 ‘Building the mystery’ ‘Aida’ 같은 록풍의 수록곡과 다른 차분한 매력을 지녔다. 편안하고도 꿈꾸는듯한 분위기의 힐링 송이다.

이미지 작업: 정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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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무비즘] 더 로즈

코로나 기세가 조금씩 저물자 삭막했던 극장가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지구촌 곳곳에는 흥미로운 작품 소식들이 당차게 고개를 내미는 추세다. 이러한 스크린 흐름에 발맞춰 IZM이 무비(Movie)와 이즘(IZM)을 합한 특집 ‘무비즘’을 준비했다. 시대를 풍미했던 아티스트의 명예를 재건하고 이름을 기억하자는 의의에서 매주 각 필자들이 음악가를 소재로 한 음악 영화를 선정해 소개한다. 열 한 번째는 재니스 조플린을 기억하며 너무 일찍 시들어버린 장미를 애도하는 영화 < 더 로즈  >다.

짧은 시간 강렬하게 불꽃을 태우고 세상을 떠난 27클럽에는 1960년대를 호령한 ‘3J’가 있다.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와 도어즈의 프론트맨 짐 모리슨 그리고 < The Rose >의 실제 모델 재니스 조플린이다. 화려한 불빛 아래에서 노래하는 아티스트의 삶에도 어두운 면은 존재한다. 대중문화의 역사는 약물이나 마약으로 그 짙은 음영을 지우려 했던 아티스트들을 수없이 떠나보냈고 재니스 조플린 역시 그중 한 명이다. 가상의 슈퍼스타 ‘로즈’의 삶을 담은 < The Rose >는 조플린의 삶을 온전하게 그리고 있지는 않지만 블루스와 록 역사의 한 획을 그은 그의 인생 말미를 미약하게나마 조명한다.

슈퍼스타 ‘로즈’의 이야기

허스키한 목소리와 과감한 몸동작으로 무대 위를 누빈다. 시대상에 구애받지 않았던 자유로운 영혼은 노래하는 것을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계약이라는 족쇄가 그를 구속한다. 살인적인 스케줄은 기량 저하를 동반했고 어느새 처음 마이크를 잡았을 때의 순수한 즐거움마저 잃어버린다. 로즈는 1년의 휴식기를 원했으나 다음 일정이 그를 기다린다.

언론과 미디어에게 슈퍼스타의 감정은 중요하지 않다. 지친 몸과 마음으로 눈물을 흘려도 기자들의 쏟아지는 질문과 여기저기서 터지는 플래시 세례 앞에서는 가면을 써야 한다. 어느 것이 진짜 자신의 모습인지 모를 지경. 끊임없이 감정 기복을 겪으며 다시 무대 위에 오른 로즈는 오직 조명 속에서 노래 부를 때만이 온전한 자신이 된 기분이다. 현실로 돌아오면 다시 피폐해진 심신을 달래야 한다. 여러 차례 이용했던 술과 마약도 일시적인 쾌락뿐이기에 그만두고 만다.   

팬들에게 사랑받는 가수가 되었지만 그의 솔직하고 방탕한 성격이 늘 환영받는 것은 아니었다. 극중 인물인 작곡가 빌리 레이와의 갈등은 로즈를 방황하게 만들었고 불안정한 감정은 자연스럽게 애정결핍으로 이어졌다. 사랑을 찾아 떠났고 고향으로 돌아가 보기도 했지만 예민하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편히 의지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결국 끊었던 약물에 손을 대며 심연으로 도피한다. 무대에 갈증을 느끼고 다시 사람들 앞에 섰을 때는 이미 너무 많은 약을 복용한 뒤였다. 모든 것을 불태운 로즈는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노래를 부르다 생을 마감한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 

< The Rose >의 결말과 달리 재니스 조플린은 할리우드의 한 호텔에서 헤로인 중독으로 세상을 떠났다. 시간을 거슬러 그의 삶을 살펴보면 영화 속에서 그리고 있는 마지막 며칠보다 더 극적인 천재의 일생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텍사스의 보수적인 지역색과 다르게 자신의 솔직한 감정과 생각을 과감히 드러냈던 조플린은 따돌림을 당했다. 특히 외모로 인해 놀림을 받는 일이 많았는데 다행히 곁을 지켜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중 한 명은 블루스의 어머니라 불리는 마 레이니(Ma Rainey)를 비롯한 베시 스미스(Bessie Smith), 리드 벨리(Lead Belly) 등의 블루스 음반을 소개해 줬다. 자연스럽게 슬픔을 표현한 음악과 친해진 그는 상처를 달래기 위해 노래했고 1962년 대학 동료의 집에서 첫 레코딩 ‘What good can drinkin’ do’를 녹음한다.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싱글이 본격적인 음악 생활을 열어주었다. 재니스 조플린은 고향인 텍사스에서 벗어나 당시 히피문화가 팽배했던 도시이자 사랑의 여름의 요람이기도 한 샌프란시스코로 떠났다. 그곳에서 사이키델릭 밴드 빅 브라더 앤 더 홀딩 컴퍼니를 만나게 되고 재능은 만개하기 시작한다. 1967년 몬터레이 팝 페스티벌에서 강렬한 모습을 보인 그와 밴드는 이듬해 ‘Summertime’과 ‘Piece of my heart’, ‘Ball on chain’ 등을 수록한 < Cheap Thrills >를 발매하며 빌보드 앨범차트 1위를 기록한다. 놀림을 당하던 소녀가 정상을 찍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순간이었다. 

진주 속에 잠든 천재의 목소리

솔로 활동을 위해 새로운 백 밴드 코즈믹 블루스 밴드(Kozmic Blues Band)를 결성하고 음악 활동을 이어 나간다. 1969년 발매한 < I Got Dem Ol’ Kozmic Blues Again Mama! >는 사이키델릭 록이 주류였던 전작보다 더 블루스의 전형에 가까운 앨범이었다. 그 해 히피 문화의 절정을 달린 우드스탁 페스티벌 무대에 오른 재니스 조플린은 다시 한번 록스타로써의 입지를 다지며 성공 가도를 이어간다.

계속해서 꽃길만을 걸을 것 같던 그는 1970년 새 앨범의 녹음을 위해 방문한 캘리포니아 할리우드의 한 호텔에서 숨진 채 발견된다. 갑작스러운 죽음은 도어즈의 < The Doors >를 포함한 초기 다섯 개의 앨범을 프로듀싱했던 폴 앨런 로스차일드(Paul Allen Rothchild)와의 작업 중에 발생한 일이었다. 다행히 상당수 트랙의 녹음을 마친 덕에 음반은 1971년 1월 그의 죽음 석 달 후 < Pearl >로 세상에 공개된다. ‘Me and bobby Mcgee’와 ‘Cry baby’ 등을 수록한 앨범은 차트 1위와 더불어 4백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그의 가장 성공적인 작품으로 남았다. 

여전히 숨 쉬는 푸른색 장미

독특한 개성과 겉모습으로 받은 따돌림이 어린 소녀에게 새파란 멍을 새겼다. 음악으로 치유하며 상처가 간신히 아무는 듯했지만 그사이 중독되어버린 약과 방탕한 생활로 몸은 무너져 갔고 더 이상 유약한 신체는 대중의 무거운 시선과 압박을 견디지 못했다. 원제 < Pearl >로 각본이 제작되었던 < The Rose >는 유가족의 거부로 인해 각색된 스토리와 새로운 제목으로 스크린에 담겼다. 27년간의 소설 같은 삶이 온전히 담겨 있지는 않지만 주인공 로즈를 통해 재니스 조플린의 외롭고 고통스러웠던 마지막을 미력하게나마 확인할 수 있다.

영화와 음악계 그리고 뮤지컬 신에서 지대한 영향력을 미친 베트 미들러가 주연으로 열연했다. 새롭게 작사 작곡한 OST는 < Pearl >의 프로듀서 폴 앨런 로스차일드가 맡았다. 작품은 그 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과 음향상을 포함한 4개의 부문에 후보로 오르며 재니스 조플린을 기리기 위한 영화로서의 가치를 입증했다. 성공적인 송덕문이었지만 그의 음악과 인생 스토리는 영화보다 더 강렬한 힘을 지닌 채 역사에 남았다. 그가 열창한 블루스와 록은 시대를 불문하여 사람들의 가슴을 올렸고 급작스럽게 시들어버린 푸른색의 장미는 여전히 우리의 플레이리스트 안에 살아 숨 쉰다.     

-영화에 사용된 음악 목록-
1. Whose side are you on
2. Midnight in Memphis
3. Concert monologue
4. When a man loves a woman
5. Sold my soul to rock ‘n’ roll
6. Keep on rockin’
7. Love me with a feeling
8. Camellia
9. Homecoming monologue
10. Stay with me
11. Let me call you sweetheart
12. The r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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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무비즘] 앙코르

코로나 기세가 조금씩 저물자 삭막했던 극장가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지구촌 곳곳에는 흥미로운 작품 소식들이 당차게 고개를 내미는 추세다. 이러한 스크린 흐름에 발맞춰 IZM이 무비(Movie)와 이즘(IZM)을 합한 특집 ‘무비즘’을 준비했다. 시대를 풍미했던 아티스트의 명예를 재건하고 이름을 기억하자는 의의에서 매주 각 필자들이 음악가를 소재로 한 음악 영화를 선정해 소개한다. 아홉 번째는 ‘맨 인 블랙’ 자니 캐쉬와 그의 소울메이트 준 카터의 사랑을 그린 영화 < 앙코르 >다.

자니 캐쉬는 일견 고루한 컨트리 뮤직의 이미지를 깼다. 무대 전 차분함과 상반되는 역동적 퍼포먼스는 록커를 방불케 했고 약자를 지지하기 위해 검은 옷을 입는다는 꼿꼿함과 관습을 거부하는 저항성이 아우라를 부여했다. 로커빌리와 블루스, 포크를 아우르는 다채로움은 나직한 음성으로 한데 묶였고 말년에 나인 인치 네일스의 ‘Hurt’를 자신의 색깔로 커버해 호평받았다. 호아킨 피닉스와 리즈 위더스푼이 직접 노래와 연주를 한 영화 < 앙코르 >는 컨트리 뮤직의 풍운아 자니 캐쉬에 관한 이야기다.

제임스 맨골드의 캐릭터는 늘 어둡다. 장편 데뷔작 < 헤비 >(1995)의 비만 요리사 빅터(프루이트 테일러 빈스), < 처음 만나는 자유 >에서 위노나 라이더가 연기한 경계선 성격장애의 수잔나. 히어로 무비의 탈을 쓴 서부극 < 로건 >의 로건(휴 잭맨)도 고독을 감췄다. 맨골드가 자니 캐쉬를 고를 수밖에 없던 이유다.

맨골드가 영화감독 겸 배우 길 데니스와 각본을 쓴 < 앙코르 >는 감정의 파고(波高)를 드러내는 영화다. < 처음 만나는 자유 >를 비롯한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트라우마가 인물을 흔드는 주요 동인이다.

착실한 형에게서 느끼는 열등감과 형의 비극적 죽음으로부터 시작된 아버지의 증오는 비극의 씨앗이다. 성공한 가수가 된 뒤에도 이미 발아한 씨앗은 계속 그를 괴롭혔다. 카메라는 약물 중독자의 얼굴을 집요하게 포착한다.

리즈 위더스푼이 연기한 준 카터는 한 줄기 빛이다. 캐쉬와 함께 투어를 다닌 준 카터는 블루그래스, 컨트리, 남부 가스펠 장르에 막대한 영향을 준 카터 가족(Carter Family)의 일원으로 이혼의 후유증으로 맘고생을 겪는 가운데에서도 캐쉬의 약을 몽땅 압수해 재기를 돕는다. 두 사람은 때론 무대 위 듀엣으로, 상처를 치유하는 동반자로 영혼의 교류를 이어 나간다.

속으로 아픔을 삭이는 카터와 달리 호아킨 피닉스의 캐쉬는 감정을 드라마타이즈한다. 기물을 파손하고 약에 취해 비틀거리며 굴곡진 삶을 몸으로 토해낸다.

인물 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연출 속에서도 경력의 주요 순간들을 붙든다. 수줍게 연주하다 금세 좌중을 휘어잡는 초기 히트곡 ‘Girl rhythm’, 파노라마처럼 음악 인생을 요약한 ‘I walk the line’, 1963년 빌보드 컨트리 차트 넘버원에 오른 ‘Ring of fire’ 준 카터와 입 맞춘 ‘Jackson’ 같은 대표곡이 나온다. 엘비스 프레슬리와 ‘Great balls of fire’로 유명한 피아노 록의 시초 제리 리 루이스가 시대상을 반영한다.

톱니바퀴 시퀀스는 경력의 분기점과 트라우마를 한데 엮는다. 초점 없는 눈으로 톱니바퀴를 어루만지는 캐쉬의 머리엔 톱니가 달린 목공 기계 오작동으로 사망한 형을 향한 그리움과 죄책감이 맴돈다. 도입부 시퀀스는 톱니바퀴와 캐쉬 앞에서 멈춰 서지만 수미쌍관을 이루는 후반부 시퀀스는 열정적 공연으로 전개된다. 극복의 영화적 시간을 거쳐 캐쉬는 트라우마에서 일시적으로 벗어나 무대에 혼을 쏟는다.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1968년 1월 13일 캘리포니아 폴섬 감옥에서 펼친 공연은 가장 위대한 라이브 앨범으로 꼽히는 < At Folsom Prison >으로 역사에 남았다. 12년 후 공연을 예견하듯 1956년에 발표한 ‘Folsom prison blues’는 ‘나는 단지 그가 죽는 모습을 보기 위해 리노에서 한 남자를 총으로 쏘았지'(But I shot a man in Reno just to watch him die)라는 논쟁적인 가사를 담았지만, 전체적인 맥락은 신중하다. 낙오자 입장에 서본 캐쉬는 수감자도 하나의 인격으로 존중받아야 함을 말한다.

맨골드의 결말은 행복과 슬픔으로 이분(二分)하기 어렵다. < 처음 만나는 자유 >에서 수잔나가 자유를 얻은 것과 달리 리사(안젤리나 졸리)가 정신병원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일견 행복해 보이는 < 앙코르 >의 마지막도 전처 비비안과 남겨진 딸들에게 잔인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영화 밖의 사실은 이렇다. 캐쉬는 준 카터는 35년간 부부로 함께 아이를 기르고, 노래 불렀다. 2003년 준 카터가 먼저 세상을 떠났고 4개월 후에 캐쉬도 그녀를 따라갔다. < 앙코르 >는 이 운명적 인연의 뜨거운 시간을 담았다. 상처 입은 사내가 음악과 한 여인을 통해 삶을 동여맨 시간.

– 영화에 사용된 음악 목록 –
1. Get rhythm
2. I walk the line
3. Wildwood flower
4. Lewis boogie
5. Ring of fire
6. You’re my baby
7. Cry! cry! cry!
8. Folsom prison blues
9. That’s all right
10. Juke box blues
11. It ain’t me babe
12. Home of the blues
13. Milk cow blues
14. I’m a long way from home
15. Cocaine blues
16. Jack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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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무비즘] 주디

코로나 기세가 조금씩 저물자 삭막했던 극장가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지구촌 곳곳에는 흥미로운 작품 소식들이 당차게 고개를 내미는 추세다. 이러한 스크린 흐름에 발맞춰 IZM이 무비(Movie)와 이즘(IZM)을 합한 특집 ‘무비즘’을 준비했다. 시대를 풍미했던 아티스트의 명예를 재건하고 이름을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매주 각 필자들이 음악가를 소재로 한 음악 영화를 선정해 소개한다. 여덟 번째는 너무 일찍 ‘Over the rainbow’로 떠난 주디 갈란드의 전기 영화 < 주디 >다.

무대 위에 서 있는 주디 갈란드를 사랑한다. 한없이 나약하고 한없이 강렬한 삶을 살다 떠난 주디 갈란드. 영화 < 주디 >는 47살의 이른 나이로 세상을 뜬 그의 마지막 1년을 다룬다. 5번의 결혼과 4번의 이혼. 뮤지컬 영화 < 오즈의 마법사 >의 ‘도로시’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지만 그 이면 가해진 소속사의 착취는 오랜 세월 주디의 발목을 잡았다. < 주디 >는 위태롭지만 강해 지려했던, 삶을 버텨내고자 했던 한 여성의 이야기다.

#1. 스타 탄생
회오리바람을 타고 오즈의 나라로 날아간 소녀 도로시. 1939년 전 세계에 선풍적 인기를 끈 < 오즈의 마법사 >는 주디 갈라드를 만인의 ‘이웃집 소녀’로 위치시킨다. 영화 속 도로시는 특유의 맑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희망을 노래했지만 현실의 ‘도로시’는 반대의 상황에 살았다.

영화의 시작이 묘사하듯, 당시 그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스케줄과 강압적인 소속사(MGM)의 요구 아래 혹사당했다. 17살의 나이에 수면제와 각종 약물, 하루 80개비 이상의 담배에 손을 댄 것 역시 ‘어른들’의 계략 때문이었다. 마름을 강요 받고 외모 지적 및 비하 속 살던 어린 시절은 성인이 된 주디의 삶을 계속해서 뒤흔든다.

작품은 바로 그 어린시절과 1969년 생을 마감하기 직전의 어른이 된 주디의 모습을 교차해 보여준다. 즉, 소속사에서 방출되다시피 벗어난 뒤 1954년 자력으로 다시 한번 정산에 선 영화 < 스타 탄생 > 시절의 이야기는 다루지 않는다. ‘희’보다 ‘비’에 주목했다. 

#2. 무대

‘비’를 내세웠지만 작품에는 슬픔 이상의 감정이 번진다. 우여곡절 끝에 생애 마지막 런던 투어 길에 오른 그는 첫 번째 무대를 끝내고 말한다.

“다음엔 못 해내면 어쩌지”

무대에 오르기 전 항상 불안함과 두려움을 토했다. 마이크를 잡으면 변한다. 주디 갈란드로 분한 르네 젤위거는 영화 속 모든 무대를 직접 라이브로 소화했다. 그 덕에 여러 차례 등장하는 공연 장면은 생생하고 활기 넘치고 무엇보다 ‘희로애락’을 압축해 전달한다.

어린 시절 열연한 또 다른 뮤지컬 영화 < 세인트 루인스에서 만나요 >의 히트곡 ‘The Trolley Song’에서는 앙증맞은 춤사위를 뽐내고, 처연한 슬픔을 머금고 부르는 ‘Get Happy’는 행복에 닻을 내리지 못한 주디의 삶과 대비되며 마음을 울린다.

큰 장소의 변화 없이 무대, 그리고 런던 투어 중 머물던 호텔이 영화 속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그사이를 채우는 몇 차례의 공연은 주디의 삶을 집약해 확대한다. 무대 위의 그는 강하고 약했으며 청중을 휘어잡는 동시에 휘청거리며 존재했다.

#3. 희망 : 무지개 너머 어딘가

아이들을 양육할 경비와 파산 수준에 다다른 재정을 살피기 위해 선택한 런던 투어. 영화의 말미 이마저도 실패로 돌아간다. 약물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무대는 그에게서 멀어졌다. 주디 갈란드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진행한 공연의 마지막 날, 그는 위태롭던 정신을 부여잡고 무대에 오른다. 혼신의 힘을 다해 부른 노래는 ’Over the rainbow’였다. 그는 곡을 ‘희망에 관한 노래’라고 소개한다.

“뭔가가 이뤄지는 노래는 아니에요. 늘 꿈꾸던 어떤 곳을 향해 걸어가는 그런 얘기죠. 어쩌면 그렇게 걸어가는 게 우리 매일의 삶일지도 몰라요. 그렇게 걸어가는 게 결국은 전부죠.”

무대 위의 주디는 언제나 찬란하게 빛났다. 받은 사랑 이상의 굴곡진 인생을 살았지만 작품은 그럼에도 그가 피워낸 아름다운 노래들을 들여오고 맞서 싸운 강한 흔적들을 꺼내 삶을 다시 썼다. 절망 끝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았던 뮤지션 주디 갈란드.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데워주는 ‘Over the rainbow’가 회자하는 한 주디가 전한 감동의 음악들 역시 계속 살아 찬란한 희망을 전한다. 주디 갈란드를 잊을 수 없다.

– 영화에 사용된 음악 목록 –
1. By myself
2. Get happy (duet with Sam Smith)
3. For once in my life
4. Zing went the strings
5. You made me love you
6. Talk of the town
7. Come rain or come shine
8. Have yourself a merry little Christmas (duet with Rufus Wainwright)
9. The trolley song
10. The man that got away
11. San Francisco
12. Over the rainb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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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아치의 노래, 정태춘

서정적인 멜로디부터 냉철한 현실 비판의 노랫말까지, 정태춘의 음악은 우리 사회와 함께 오랜 세월 숨 쉬며 맥을 유지해왔다. 전설적 존재의 데뷔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 아치의 노래, 정태춘 >은 주인공 정태춘을 비롯한 주변 인물 및 평론가와의 인터뷰, 콘서트에서의 감동을 생경히 옮긴 공연 실황을 정교히 엮어 만든 음악 다큐멘터리다. 시대별 대표곡들을 찬찬히 되짚으며 따라가 본 그의 발자취 곳곳엔 대한민국 그리고 우리 대중음악의 역사가 깊이 아로새겨져 있다.

한국형 포크의 서막

등장부터 범상치 않았다. 음대 진학을 꿈꾸다 실패하고 입대를 택한 청년 정태춘은 군 복무 당시 몇 안 되는 기타 코드 진행으로 틈틈이 곡을 만들었다. 전역 후에 작곡한 노래 중 하나인 ‘양단 몇 마름’을 공모전에 출품해 입상했고, 이를 눈여겨본 음악 프로그램 진행자 최경식이 서라벌 레코드사를 연결해주면서 가수 인생의 물꼬가 텄다.

첫 앨범 < 시인의 마을 >(1978)은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었다. 번안곡 위주의 포크가 주를 이루고 있던 상황에서 한국적인 요소가 배어 있는 ‘시인의 마을’이나 ‘촛불’은 대중에게 보다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지점을 마련하며 큰 공감을 얻었다. 그 인기를 방증하듯 정태춘은 1979년 MBC 10대 가수상까지 수상하며 가요계에 얼굴도장을 확실히 찍었다.

1집 성공 이후 전적으로 앨범 제작을 맡게 된 그는 본인만의 색을 강렬하게 섞어 나갔다. 불교적인 색채를 불어넣은 < 사랑과 인생과 영원의 시 >(1980)와 국악을 토대로 한 < 우네 >(1982)는 분명 음악적으로 유의미한 작업물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록의 시대가 도래하며 포크는 설 자리를 잃었고 그 흐름에 떠밀린 정태춘 역시 연이은 실패를 겪으며 생활고에 시달렸다.

다행히 지구 레코드사로 건너가 아내 박은옥과 함께 노래한 첫 작품 < 떠나가는 배 >(1984)와 뒤이은 < 북한강에서 >(1985)가 히트를 달성하며 꺼져가던 음악인의 불씨를 되살렸다. 그럼에도 형편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업소에서도 받아주지 않아 노래할 공간은 여전히 부족했다. 돌파구는 전국 순회 공연 < 얘기 노래마당 >이었다. 세상에 공개하지 않았던 ‘한 밤중의 한 시간’을 들려주는 장면처럼 미발표곡이나 심의에 통과되지 않은 노래를 부르며 독자적으로 언더그라운드 포크 신을 다져갔고, 이는 훗날 소극장 콘서트 형식으로 발전해 김광석과 같은 스타들의 성장 기반을 닦았다.

저릿저릿한 대한민국의 현실

성공적인 데뷔 이후 소포모어 징크스를 겪었지만 다시 한번 대중의 마음속에 안착했다는 역경 극복의 서사. 여기까진 정태춘을 모르는 이들에게 분명 익숙한 전개지만 한 일가족의 비극을 전하는 뉴스 보도 장면이 평화로운 흐름을 단숨에 뒤엎는다.

“오늘 오전 9시쯤 서울 망원동 대건 연립 지하 방에서 불이 나서 권순덕 씨의 딸 5살 혜영 양과 아들 4살 영철 군이 연기에 질식돼서 숨졌습니다.”

맞벌이 부부가 자녀들의 안전을 위해 일을 나가며 밖에서 방문을 잠갔는데 안쪽에서 불이 나 남매는 꼼짝없이 갇혀 생을 마감했다. 소외된 도시 한 구석에서 벌어진 참담한 사건을 접한 정태춘은 ‘우리들의 죽음’이란 곡으로 안타깝게 떠나간 아이들을 추모했다. 실제로 다른 어린이가 녹음했던 원곡의 내레이션 부분은 영화 속에서 박은옥이 눈물을 머금고 읊어 내리며 비통한 감정을 자극한다.

물론 이 곡 역시 심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지금 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시인의 마을’ 같은 곡도 20~30군데 수정 지시를 받아 공개됐을 정도로 공연윤리위원회의 사전 검열 제도는 음악인들의 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방해했다. 1987년 6월 항쟁을 필두로 민주화를 향한 국민들의 열망은 더욱 커져갔고 정태춘 역시 거센 저항의 물결에 동참하며 그 의지를 굳게 다졌다.

‘거짓 민주, 자유의 구호가 넘쳐흐르는 이 땅’ (아, 대한민국… 中)

공격적이고 직설적인 어조로 무장한 < 아, 대한민국… >(1990)은 당대 사회의 어두운 이면 고발이자 억압받던 동료들의 현실에 대한 탄식, 그리고 악법으로 통제하던 국가 집단을 향한 선전포고였다. 비합본 음반으로는 최초로 LP를 찍어냈고, 스스로 위법을 저질렀다고 알리는 기자회견도 가졌고, 나아가 그 불법 음반을 각 방송사 심의실로 집어넣었고 실제로 몇 군데에선 울려 퍼지기도 했다.

고독한 싸움에 지치기도 했지만 수년간의 노력 끝에 그는 자유를 쟁취해냈다. 헌법재판소에서 음반 및 비디오법의 사전 심의 절차가 헌법과 합치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고 기나긴 세월 창작자들을 옭아매던 조항은 1996년 완전 폐지되었다. 후배 뮤지션 강산에가 언급하듯 정태춘의 숭고한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사회 운동가? 약자들의 대변인!

“노래를 들으러 왔지, 당신 이념을 들으러 온 게 아니에요!”

2019년 광주 공연 도중 울려 퍼진 한 청중의 일갈. ‘5.18’ 곡 소개에 불만을 느낀 관객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지만 정태춘은 흔들리지 않고 무대를 이어갔다. 1987년 6월 항쟁부터 2006년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투쟁, 그리고 2016년 민중총궐기까지 크고 작은 집회에 꾸준히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에 운동권 인사라는 시선은 피해 갈 수 없었다.

행보를 통한 편견 이전에 노래 속에 담긴 진정한 의의를 들여다보라. 실향민이 될 위기에 처한 동향인들을 위한 ‘황새울 지킴이의 노래’부터 누군가의 아픔과 슬픔을 함께 위로해주는 박은옥의 공감이 어우러진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까지, 부부는 사회에서 외면 당하고 고립되어 있던 약자들의 이야기를 항상 잊지 않고 다뤄왔다.

‘물대포에 쓰러지지도 말자’는 ’92년 장마, 종로에서’의 노랫말을 오래도록 사유하려는 청소년 인권 활동가 이수경 양, 오로지 ‘5.18’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대회 출전을 결심한 아티스틱 수영의 전설 유나미 선수, 한평생 정태춘의 음악을 가슴 깊이 사랑해 온 루게릭병 환자 김미현 씨. 각기 다른 시대와 환경을 살아왔지만 팬이라는 유대 속에 얽힌 이들의 사연 역시 근 반세기를 살아 숨 쉬고 있는 정태춘 음악의 영속성을 여실히 증명한다.

미래가 아닌 과거로의 이상 회귀

‘아, 환멸의 90년대를 지나간다’ (건너간다 中)
‘동네 할머니 손수레 지나가고/동네 할아버지 리어카 끌고 오고’ (사람들 2019′ 中)

희망으로 가득할 것 같은 새천년을 맞이했지만 이 나라엔 여전히 ‘노인을 거지로 버려두는’ 차별이 만연하다. 노년층만의 얘기가 아니다. 세대, 성별, 지역, 학벌, 재력 등 공감을 막아서는 벽이 많아도 너무 많다. 2000년대에 접어들며 대외적인 활동 빈도를 줄인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세상과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어야 할지 고민하던 정태춘은 끝내 자본주의 체제와의 고별을 선언한다. 그가 노랫말로 그려낸 이상적인 세상은 미래를 뜻하진 않는다. 오히려 생산성이 떨어지는 먼 옛날의 수렵 채집 사회, 부에 대한 욕심이 없어 화폐를 만들거나 이자 제도를 도입하지 않았던 세계를 꿈꾼다. ‘양아치라고 불리기도’ 했던 정태춘은 그렇게 자유인이 되었다.

2시간이 채 안 되는 러닝타임으로 정태춘의 일대기를 요약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그 짧은 시간에 흩뿌려진 40년 음악 세월의 조각들은 매 순간마다 그 가치를 입증한다. 때로는 절제된 형식미를 영위하는 시인이 되어, 때로는 격양된 자세로 반(反)하는 흐름을 이끈 투사가 되어 기록한 ‘아치의 노래’, 올곧은 길을 걸어온 뮤지션을 향한 가슴 벅찬 헌사이자 이 시대가 전하는 위대한 전언이다.

– 영화에 사용된 음악 목록 –
1. 이런밤
2. 시인의 마을
3. 양단 몇 마름
4. 촛불
5. 바람
6. 떠나가는 배
7. 북한강에서
8. 한 밤중의 한 시간
9. 고향집 가세
10. 들가운데서
11. 얘기2
12. 송아지 송아지 누렁송아지
13. 일어나라, 열사여
14. 우리들의 죽음
15. 아, 대한민국…
16. 정동진 (1)
17. 건너간다
18. 아치의 노래
19. 황새울 지킴이의 노래
20. 저 들에 불을 놓아
21. 92년 장마, 종로에서
22. 광주천
23. 5.18
24. 봉숭아
25.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26. 사랑하는 이에게
27. 사람들 2019′
28. 정동진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