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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제 63회 그래미 시상식 결산 편

다양성과 공정성이라는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그래미 어워드가 범세계적인 전염병 때문에 행사 날짜까지 옮겼다. 붉은 융단 위에 별들이 쏟아지던 그때 한국은 3월 15일 아침 9시였다.

제 63회 그래미 시상식은 무관중인 상태에서 마스크를 착용했던 여타의 국내 시상식처럼 익숙한 방식으로 진행됐다. 지난 어워드에서 두 차례 연속으로 사회를 맡았던 앨리샤 키스를 대신해 이번에는 언변이 남다른 코미디언 트레버 노아가 마이크를 잡았다. 코로나로 인해 달라진 식순과 돌발상황에 대비함과 동시에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논란의 감정을 내려놓고 축제 자체를 즐기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코로나에 대응하는 방식

매년 특별한 협업 스테이지를 선보이던 그래미가 코로나의 영향으로 그 규모를 줄였다. 대편성의 무대가 압도하던 과거와 달리 대부분의 뮤지션이 간단한 구성으로 자신의 노래를 한 곡씩 부르고 마치며 ‘2020년’이라는 이름의 플레이리스트를 채웠다. 카메라를 다각도로 활용한 배드 버니와 제이 코르테즈의 ‘Dakiti’, 복고적인 색채와 조명이 잘 묻어난 실크 소닉(앤더슨 팩과 브루노 마스)의 ‘Leave the door open’ 무대가 무관중에 의한 중계의 이점을 적절히 살린 예다.

인상적인 부분은 공연 중간중간 카메라에 잡히는 뮤지션들의 얼굴이다. 관중이 없기에 공연자가 관객이 되고, 관객이 다시 공연자가 되는 이 모습은 마치 아티스트끼리 여는 뒤풀이 파티와 같았다. 자신의 차례가 끝난 뒤 술인지 물인지 모를 잔을 들고 앉아 있는 배드 버니부터 카디 비와 매간 더 스탈리온의 무대를 미친 듯 즐기는 포스트 말론까지 재밌는 장면이 아닐 수가 없다. 관중이 없다고 열기가 식지는 않았다.

코로나 대응 공연보다 대단하고 놀라웠던 점은 따로 있다. 경영난에 처한 내슈빌의 스테이션 인, 뉴욕의 아폴로 시어터 등 총 4곳의 소규모 공연장 직원들이 주요 부문 후보를 소개하며 공연 업계의 실정을 알린 부분이다. 국내에서도 화제인 이 문제에 대해 대중음악의 본토인 미국, 그중에서도 권위 있다는 단체에서는 이를 어떻게 조명하고 고민하는지 엿볼 수 있었다. 이외에도 올해의 레코드 부문 후보의 인터뷰를 티저로 만들거나, 공연을 녹화본으로 대처하며, 화상으로 시상식에 참여하는 등 세심한 준비가 돋보였다.

역사의 절차를 밟아가는 방탄소년단

한국 가수가 그래미 어워드에서 단독 공연을 할 줄이야. 녹화 중계였지만 여의도 빌딩의 헬리패드까지 올라가서 노래하는 BTS를 전 세계가 지켜봤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무대 사이즈로만 보면 제 63회 그래미 시상식 무대 중에서는 최대 크기였다. 제 61회에서는 시상자로, 제 62회에서는 릴 나스 엑스와 함께 노래했던 이력을 생각하면 단계적으로 나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퍼포머로 참여한 것뿐만 아니라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에도 ‘Dynamite’로 이름을 올렸다. ‘Rain on me’를 부른 레이디 가가와 아리아나 그란데에게 아쉽게 트로피가 넘어갔지만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큰 성과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해외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카디 비의 ‘WAP’ 같은 노래와 비교해 ‘건전’ 가요 & 가수로 불리고 있다니 생각도 못 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논란을 잠시 잠재우다.

인종차별부터 남녀차별까지 매년 습관처럼 욕을 먹던 레코딩 아카데미(레코드 예술 과학 아카데미, NARAS)가 심사위원단을 대폭 개편하면서 제 61회 그래미 시상식에서는 본상을 차일디시 감비노에게 2개, 두아 리파와 케이시 머스그레이브스에게 각각 1개씩 수여해 조금은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작년 빌리 아일리시에게 주요 부문 4개를 쓸어주며 ‘몰아주기’ 논란을 다시 가중했다. 

빌보드 HOT 100에서 ’Blinding lights’로 1년 동안 10위권을 지킨 대기록의 주인공 위켄드가 제 63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후보 무관에 그치자 그는 영원한 보이콧을 선언했다. 시상식 전부터 연일 얘깃거리였다. 이러한 여러 문제를 의식한 듯 이번에는 시상식의 주요 부문을 안전하게 ‘나눠주기’로 결정했다. 올해의 레코드, 앨범, 노래, 그리고 신인상을 빌리 아일리시의 ‘Everything I wanted’, 테일러 스위프트의 < Folklore >, H.E.R의 ‘I can’t breathe’, 그리고 메간 더 스탈리온이 수상하며 장내 가장 큰 갈채를 받았다.

후보만 봐도 반 이상이 여성이고 흑인과 백인이 반반이다. 그중 ‘I can’t breathe’는 BLM을 대표하는 노래다. 위켄드 개인과 팬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며, 그의 사건은 분명 레코딩 아카데미에 문제가 있음을 알려주고 있지만, 올해의 본상 결과는 아카데미 위원회도 이제 대중과 사회의 눈치를 보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제 63회 그래미 시상식의 주인공

진정한 주연은 따로 있었다. 9개 부문의 후보에 오르고 4개 부문을 수상한 그의 이름 비욘세. 제 63회 그래미 어워드 후보와 수상에서 최다를 기록했지만 이는 귀여운 수준이다. 올해 베스트 알앤비 퍼포먼스, 베스트 랩 퍼포먼스, 베스트 랩 송, 베스트 뮤직비디오를 거머쥐면서 그는 역대 총 28개의 그래미상을 따냈다. 여성 최다 수상자임과 동시에 남자를 포함하면 거장 프로듀서 퀸시 존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공동 2등이다.

비욘세에 이어 주인공이 또 있다. 본상을 2년 연속 수상한 빌리 아일리시다. 작년 주요 부문을 싹쓸이한 후 그가 받은 ‘레코드 오브 더 이어’의 타이기록은 U2와 로버타 플랙만이 가진 진기록이다. 빌리 아일리시에 이어 주인공이 또 있다. < Fearless >, < 1989 >, 그리고 2020년 포크를 시도하며 예술성을 인정받은 < Folklore >로 ‘앨범 오브 더 이어’를 3회나 수상한 테일러 스위프트다. 엔지니어를 제외한 뮤지션으로서는 프랭크 시나트라, 스티비 원더 등과 같은 레전드들과 동일한 선상에 섰다. 빌리 아일리시와 테일러 스위프트의 나이를 생각하면 이는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음악으로 치유하다.

코로나의 영향인지 지난 한 해도 우리의 곁을 떠나간 사람들이 많았다. ‘로큰롤의 왕’ 리틀 리처드, ‘갬블러’ 케니 로저스, 작년 그래미 평생 공로상을 받은 존 프라인, 코로나 위로송 ‘You’ll never walk alone’의 주역 제리 마스던 등 트리뷰트한 뮤지션만 이 정도다. 팬데믹 상황의 힘든 위기 속에서 우리가 그들의 음악으로 치유를 받고, 한데 모여 떠난 이들을 기리는 이런 자리는 그래미 어워드가 아니면 힘들었을 것이다. 집에서만 머무르던 2020년 ‘음악’은 가장 큰 치료제였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이번 시상식은 성공에 가까웠다. 본상 수상자와 각종 기록을 세운 뮤지션들이 이를 증명한다. 여성 컨트리 뮤지션 미란다 램버트, 마렌 모리스, 그리고 흑인 여성 컨트리 뮤지션인 미키 가이턴의 공연까지 집중 조명하며 형식적인 노력까지 놓치지 않았다. 아시아 가수 BTS도 빼놓을 수 없다.

물론 레코딩 아카데미 심사위원들은 다양성이라는 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신경 쓰기도 전에, 흑인과 여성 뮤지션으로 대표되는 다양성의 세상이 이미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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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 ‘evermore'(2020)

평가: 4/5

‘곡 쓰기를 멈출 수 없었다’는 수줍은 고백과 함께 테일러 스위프트는 해가 가기 전 < folklore >의 자매작(Sister Records)을 공개했다. 비틀즈, 엘튼 존, 톰 웨이츠, 브루스 스프링스틴 등 한 해 두 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했던 전설들의 발자취를 따르며, 고통스러웠던 지난날을 통해 더욱 단단해진 자아로 왕성한 창작욕을 증명하는 기록이다. ‘구전(口傳)’으로 스스로를 치유했던 테일러는 31세의 자신에게 주는 생일 선물과 같은 이 작품으로 ‘영원’을 꿈꾼다. 

< folklore >와 동일한 재료로 지어진 < evermore >의 세계는 언뜻 단순한 속편처럼 들리나 그 아래에는 훨씬 깊고 정교한 세계가 생동감 있게 호흡하고 있다. 자전적인 고백의 메시지가 주를 이루던 전작과 달리 본작에는  ‘Love story’의 하이틴 컨트리 로맨스와 ‘ivy’의 불륜, ‘no body, no crime’의 살인극, 대프니 듀모리에로부터 영감을 받아 조모의 이름을 붙인 ‘marjorie’ 등 다양한 설화가 21세기의 그레이트 아메리칸 송북을 꿈꾸는 태피스트리 위 수놓아진다. 다면의 페르소나를 규합하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지휘 아래 전작의 설계도를 그린 더 내셔널의 아론 데스너, 본 이베어가 조력자의 역할에 충실하다. 실크처럼 부드러운 포크, 재기 발랄한 소녀의 컨트리, 1990년대 얼트 록의 반항기와 일말의 진지함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willow’의 ‘1990년대 트렌드보다 더 강하게 돌아왔다’라는 선언이 조곤조곤하나 굳은 확신으로 가득 찬 이유다. 글로켄슈필, 프렌치 혼, 첼로 등 클래식 악기와 아론 데스너의 미니멀한 정서를 교합하며 데뷔 초 과거의 자취를 가져온 뮤직비디오까지 직접 감독한 이 곡의 주도권은 온전히 테일러에게 있다. 현 연인 조 알윈의 가명 윌리엄 바워리(William Bowery)와 함께한 챔버 팝 ‘champagne problems’에서 캠퍼스 커플의 선택을 애틋하게 바라보다 잭 안토노프의 리듬감 있는 박동 위 부와 명예를 경계하는 ‘gold rush’로 자의식으로의 전환을 가져오며, ‘’tis the damn season’과 ‘cowboy like me’에서는 유년기 내슈빌의 베테랑들이 사사한 보편의 연애담을 읊는다. 

상상과 현실을 분주히 오가는 스토리텔링은 < folklore >의 보편보다 아티스트의 개인과 밀접히 맞닿아있다. 이는 앨범을 더욱 복합적이고 흥미롭게 구성하는 주요 요소다. 가슴 아픈 ‘exile’을 따라 여린 떨림으로 눈물을 삼키는 ‘tolerate it’까지 목가적인 무드 속 여류 시인의 면모에 안심할 때쯤 하임(HAIM) 세 자매와 함께한 ‘no body, no crime’으로 비정한 서부극의 한 장면을 가져온다. 더 내셔널을 초청한 ‘coney island’를 통해 ‘Blank space’로 서랍에 고이 넣어두었던 전 연인들의 명단을 다시금 슬쩍 꺼내보이기도 한다. 

테일러의 짓궂은, 또는 야심으로 가득한 구성은 앨범의 끝단에서 분명한 반전을 의도한다. 잘게 부서지는 노이즈로 충격을 안긴 다음 언제 그랬냐는 듯 태연하게 5/4박자의 차분한 전반부로 돌아가는 ‘Closure’, 작품을 마무리하는 ‘evermore’에서는 전작에서 잔잔히 테일러와 호흡을 맞추던 본 이베어에게 소용돌이치는 혼란과 고독을 허락하며 짙은 흔적을 남긴다. 서두의 고백이 더 이상 수줍게 들리지 않는 지점이며, 지적인 < evermore >의 세계가 충동과 파토스 대신 정교하게 쌓아 올린 로고스와 야심의 건축물임을 체감하며 감화를 멈추게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 일말의 이질감은 전체적으로 < folklore >의 상징성과 견줄, 훌륭한 적응 및 확장의 면모를 보이는 이 작품 앞에서 덮고 넘어가도 될 정도의 흠이 된다. 아티스트가 완벽히 타인을 연기했다면 그 인공미가 두드러졌을 터나, 그는 분명히 수많은 등장인물들 속에 본인의 페르소나를 은은하면서도 선명하게 투영하고 있다. 빠른 노선 전환과 다작(多作) 속 풍부히 끌어안고, 섬세히 세공하며, 끝내 자신의 정체성으로 빚어내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창작 과정은 그가 우리 시대 드문 탁월한 재능의 팝스타임을 증명하고 있다. ‘영원’을 위한 발걸음이 신중하고도 찬찬하다.

-수록곡-
1. willow
2. champagne problems
3. gold rush
4. ’tis the damn season
5. tolerate it
6. no body, no crime (feat. HAIM)
7. happiness
8. dorothea
9. coney island (feat. The National)
10. ivy
11. cowboy like me
12. long story short
13. marjorie
14. closure
15. evermore (feat. Bon I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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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특별 기획 ‘미국’] 6. 케이팝 팬덤이 사회정의를 부르짖는 이유

부모 마음대로 되는 자식이 아무도 없다고 하지만, 한국에서는 정치와 담을 쌓은 케이팝이 되려 미국 정치에 휘말리는 아이러니를 예측한 케이팝 기획자가 있을까. 케이팝 팬덤은 올해 6월 오클라호마 털사(Tulsa)에서 개최된 트럼프 대통령의 유세에서 백만 건이 가까이 이루어진 가짜 참석 신청의 배후가 자신들임을 주장했고, 그 이전에도 백인우월주의나 극우 이념에 관련된 해시태그를 케이팝 이미지와 영상으로 도배하는 등 정치적 목소리를 거침없이 내고 있다. 예상치 못한 전개지만 케이팝 팬덤과 정치의 결합은 이미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 연결고리를 들여다보면 앞으로 케이팝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단서도 찾을 수 있다.

케이팝의 세계적 인기에서 유념할 점은, 그 시작점이 주변부였다는 사실이다. 방탄소년단이 빌보드 차트 1, 2위를 한 번에 차지하는 나날이 있기 전에도 케이팝 팬들은 존재했으나, 이들은 멸시나 조롱, 혹은 무시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일종의 마니아 문화로 시작한 탓도 있겠지만, 문화의 생산자나 소비자들에 대한 편견도 분명하게 작용했다. 클래식 음악이나 커피, 와인처럼 소수가 몰입해서 소비하는 문화가 무조건 천대받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케이팝의 ‘성공’이 완성하는 언더독 서사는 이런 배제의 역사에서 설득력을 얻고 팬들을 결집시킨다.

미국 케이팝 팬덤은 크게 보면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코스프레 같은 긱(geek)들의 문화와 그 뿌리를 공유한다. 단적인 예시로 케이콘(KCON)이 있다. 한국의 대중음악을 사랑하는 수만 명의 팬들이 로스앤젤레스나 뉴욕으로 몰려드는 이 축제는 미국 케이팝 팬덤의 주요 행사 중 하나다. 만화 팬들의 코믹콘(Comic-Con)이나 게임회사 블리자드의 블리즈컨(BlizzCon) 같은 박람회와 비슷한 양상이다. 한류는 서브컬쳐를 소비하는 사람들의 활동 영역에 들어와 있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는 게임과 만화, 케이팝 같은 서브컬쳐 커뮤니티의 큰 축이다. 생각해보면 케이팝 팬들이 트위터나 틱톡을 통해 활동하는 것은 한국 케이팝 팬덤의 특성을 떠나서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면 케이팝이 정치나 사회정의(social justice)와 어느 지점에서 교차하는지는 설명할 수 없다. 케이팝을 논할 때 그 음악이 가진 소구력의 실체를 부정한 채 인기를 괴현상 보듯 하는 시선들이나, ‘진보 성향의 요즘 애들이 이상하게도 한국의 음악을 좋아하더라’는 미국 보수진영의 해석이 이 수준에서 멈춰있다.

케이팝이 미국에서 인종과 나이, 성별을 초월한 공감대를 이끌어낸 이유는 일종의 문화적 대안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뻔하고 지루한 음악에 질린 미국 대중들에게 새로운 재미를 선사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그런 이유로 케이팝을 소비하기 시작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오히려 그 반대다. 케이팝 팬들은 미국 음악계, 연예계의 자극적이고 저질인(trashy) 논란으로 가득한 모습에 대한 대안으로 ‘착한'(wholesome) 한류 뮤지션을 소비한다.

칸예 웨스트는 2009년 MTV 비디오 뮤직 어워즈에서 수상소감을 말하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마이크를 뺏었고, 저스틴 비버는 아이돌로 활동하던 2013년 식당의 걸레통에 소변을 봤다. 2015년의 아리아나 그란데는 도넛에 침을 발랐는가 하면, 도자 캣(Doja Cat)은 백인우월주의 채팅방에서 인종주의적 발언을 한 영상이 올해 공개됐다. 미국에서 차트 1위를 하는 슈퍼스타 뮤지션들에 대한 소식은 이들의 실력 못지않게 비대한 자아와, 이를 연료 삼아 끊임없이 논란에 불을 지피는 티엠지(TMZ)같은 가십 전문지가 내뱉는 황색 저널리즘의 온상이다.

아이돌을 필두로 한 한국의 대중음악이 미국에 알려지는 과정에서는 뮤지션의 비대한 자아도, 미국 유사 언론의 관심도 부재했다. 미국의 케이팝 팬들 중 주류사회에서 배척당하는 소수자들, 사회정의나 정치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의 실마리가 여기서 풀리기 시작한다. 자신들이 인식하고 있는 사회의 폭력적인 구조들을 그대로 재생산하는 미국의 주류문화에 염증을 느낀 이 사람들은, 타인을 깔보거나 하대하기는커녕 예의와 존중으로 무장한 한국 아이돌들의 페르소나를 보고 공론장을 정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투사한다. 이 ‘착함’의 실존 여부와 상관없이 말이다.

출발점이 어디였든 케이팝이 지금 미국 팬들에게 받는 기대는 선함 그 자체에 대한 것이다. 케이팝 팬덤이 커지면서, 기획사들이 팔고 있는 이미지와 그 뒤에 숨겨진 ‘본질’ 사이의 간극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이젠 들려오고 있다. 문화전유나 뮤지션, 연습생의 인권에 대한 지적은 모두 이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미국에서 ‘주류’와 ‘비주류’에 대한 기준을 독점하고 있는 사람들은 점점 소수가 되어가고 있다. 케이팝이 영미권에서 진정한 승리를 거두려면 멋진 음악과 영상 이상의 섬세함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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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특별 기획 ‘미국’] 5. Intersectionality: 여러겹의 정체성이 교차하는 음악

억압받는 약자에 대한 담론 중에서 페미니즘은 오늘의 대중에게 가장 익숙한 단어 중 하나다. 그 의미나 정의에 대한 합의는 요원하지만, 일단 사람의 경험이나 정체성을 읽어낼 때 성별에 더 무게를 두고 해석하는 담론은 널리 퍼져있다. 뮤지션들 역시 자아를 음악에 담아내기에, 이들의 작품과 페르소나를 이해할 때도 페미니즘은 유용한 인식의 틀을 제공한다. 그러나 사람의 정체성은 입체적이기에, 성별이라는 단일차원에서 바라보면 반드시 놓치는 부분이 생긴다. 정체성의 상호교차성(intersectionality)을 이해하면, 음악에 담긴 이야기들과 이를 둘러싼 논란들의 맥락이 보다 명료하게 드러난다.

미투 운동이 세상을 휩쓴 후, ‘페미니스트 뮤지션’의 브랜드를 획득한 인물들이 몇 명 있다. 타임지가 미투 운동을 조명해 ‘침묵을 깬 사람들’을 2017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을 때 표지에 얼굴을 올린 테일러 스위프트가 그중 하나다. 2013년 MTV 비디오 뮤직 어워즈(VMA) 무대에서 로빈 시크(Robin Thicke)와의 무대에서 파격적인 트월킹을 선보이며 전통적인 여성상에 대한 반론을 내놓은 마일리 사이러스 역시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열렬한 페미니스트’라고 인터뷰했다.

팝스타의 반열이 아니더라도, 피오나 애플(Fiona Apple)은 8년 만에 내놓은 새 앨범 < Fetch The Bolt Cutters >에서 모두 ‘절단기를 들고 와’서 직접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라는 메시지를 보내 평단의 사랑을 받았다. 라나 델 레이(Lana Del Rey)는 2019년 발매한 후 그 내용이 ‘부드러운 페미니즘'(soft feminism)의 필요성을 강조한다고 말해 논란에 불을 지폈다.

어떤 사람이나 발언이 ‘페미니스트’인지에 대한 대략적인 이미지는 이미 대중문화 속에 퍼져있다. 예컨대 자신의 욕망과 생각을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걸크러쉬’에서 조금 진화한 여성의 모습이다. 테일러 스위프트, 마일리 사이러스, 피오나 애플, 라나 델 레이 같은 뮤지션들이 페미니스트 아이콘으로 조명받는 이유 역시 이들이 그 이미지에 잘 들어맞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들은 여성성 이외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모두 포크 음악과 관련 있는 백인이라는 점이다.

이들 여성의 목소리가 의미 없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이들이 모든 여성을 대표하는 것으로 일반화하기엔 너무 많은 맥락이 지워진다. 예를 들어, 마일리 사이러스가 트월킹을 하면서 내놓은 ‘얌전하지 않은 여성’의 이미지는, 영미권에서 백인 여성들이 항상 가정적이고 수동적인 역할을 강요받아온 역사의 연장선이다. 반면 이세벨 스테레오타입(Jezebel stereotype), 옐로우 피버(yellow fever) 등의 시선으로 언제나 극한의 성적 대상화를 당해온 흑인이나 동양계 여성의 경험을 마일리 사이러스가 제대로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라나 델 레이가 ‘부드러운 페미니즘’을 옹호했을 때 논란이 일어난 것 역시 그가 이런 맥락을 무시하는듯한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 Norman Fucking Rockwell! >이 학대를 미화한다는 비판에 대해 그는 비욘세, 도자 캣(Doja Cat), 카밀라 카베요 등 유색인종 뮤지션들을 언급하며 이들이 ‘섹시’를 앞세워 차트 1위를 했고, 자신도 13년간 여성의 입장에 대해 노래해 왔는데 왜 자기만 욕을 먹어야 하냐는 반응이었다. 정체성의 상호교차성(intersectionality)에 대해 무감각한 언사다.

상호교차성(intersectionality)은 사실 법조계에서 처음 사용된 단어다. 그 계기는 1976년 자동차 제조사 제너럴 모터스(GM)가 흑인 여성에게 채용상 불이익을 준 일인데, 흑인에 대한 차별 금지법도, 여성에 대한 차별 금지법도 이를 막을 만한 근거가 되지 못했다. GM이 흑인 남성과 백인 여성을 채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차별을 바라볼 때 모든 흑인, 모든 여성이 그룹별로 같은 방식으로 차별받는다고 생각한다면, 흑인 여성을 포함한 유색인종 여성의 경험들은 지워질 수밖에 없다. 형태주의에서 말하는, 전체는 그 부분의 합 이상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백 명의 사람이 있다면 백 가지의 페미니즘이 있기에, 모든 여성 뮤지션의 메시지가 저마다 의미 있다.

인종이나 사회, 경제적 배경 등을 고려하고 여성 뮤지션들의 음악을 보면 다채로운 페미니즘을 볼 수 있다. ‘Run the world (Girls)’가 흑인이자 걸어 다니는 대기업인 비욘세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곡이 실제로 전달하는 메시지는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과연 정말 세상을 주도하는 것은 여성인가, 아니면 비욘세인가?). 미츠키(Mitski)가 강렬한 기타 톤을 앞세워 외롭다고 소리치는 모습 역시 동양인 여성들은 얌전하고 가부장에게 복종하는 이미지가 있기에 훨씬 강렬하게 다가온다. 성 소수자자 Z세대인 킹 프린세스(King Princess)가 부르는 사랑 노래는 화자의 입장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뻔하게 들린다.

‘페미니스트 뮤지션’의 전형으로 다시 돌아와 보면, 이 단어의 실체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어쩌면 오히려 여성의 목소리를 지켜내는 접근법일 수도 있겠다. 여성성 하나로 정의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음악에 담긴 이야기를 여성성 하나에 대한 이야기로 해석하면 당연히 많은 부분이 지워진다. 여성에 대한 이야기로 논리를 전개했지만, 상호교차성은 정체성 그 자체에 대한 인식의 틀이다. 그 어떤 개인도 절대적인 약자, 혹은 강자일 수 없다. 이분법을 벗어나 음악에 담긴 사람을 온전히 직시했을 때 그의 이야기가 더 또렷하게 들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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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 ‘folklore’ (2020)

평가: 3.5/5

2010년대를 지배한 테일러 스위프트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미스 아메리카나’로 고독한 정상의 위치와 세간의 시선에 입은 상처를 고백하며 평온한 팝 앨범 < Lover >를 발표했다. 그리고 떠들썩했던 20대를 차분히 마무리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30대 테일러 스위프트의 첫 작품이 세상에 나왔다. 많은 이들에게 알리지 않고 차분히 써 내려간 이 모노톤의 노래 모음집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가져온 무거운 침묵과 고립, 적막의 시대를 관통하는 구전(口傳)이다. 

< folklore >에는 잔잔하고 차분한 포크와 진중하고 고전적인 블루스의 색채, 세상을 관조하는 테일러의 독특한 시각과 숨결이 맴돈다. 풋풋한 도전기 < Red >, 화려한 뉴욕의 < 1989 >, 독기 어린 < Reputation >의 두꺼운 메이크업을 모두 걷어냈다. 요란한 전자음과 여러 장치들은 사라지고 소문자로 쓴 앨범과 수록곡이 의도하듯 차분한 어쿠스틱 기타와 커버처럼 짙은 잔향이 작품 전체를 감싸고 있다. 

전작 < Lover >의 낙관 혹은 여유와 달리 건조 또는 음울이 짙게 배어있고, < Fearless >와 < Speak Now > 시절이 언뜻 스쳐가기도 하나 느낀 대로 고백하던 풋풋한 청소년기와 달리 산전수전 모두 겪은 베테랑 팝스타의 언어와 스토리텔링은 과거의 자신 또는 가상의 캐릭터를 정제된 형태로 회상한다. 내슈빌보다 1960년대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 조니 미첼과 같은 선배 포크 싱어송라이터들, 1990년대 케이디 랭이나 사라 맥라클란의 잔상이 스친다. 

< 롤링 스톤 >의 롭 셰필드가 언급한 것처럼 이 앨범엔 팝송이 전혀 없다(No pop songs at all). 히트메이커 맥스 마틴이 떠나간 자리엔 묵직한 시선의 밴드 내셔널(The National)의 아론 데스너가 이름을 올렸다. 잔잔한 피아노와 어쿠스틱 기타로 자연스레 책장을 여는 ‘the 1’부터 병치를 활용한 사색의 타이틀 싱글 ‘cardigan’, 이에 주석을 달며 구전의 성격을 강화하는 ‘seven’ 모두 아론의 손을 거쳤다. 토리 에이모스가 연상되는 ‘hoax’ 역시 그의 작품이다. 

내셔널 음악의 정수는 최소한의 장치만을 활용하면서도 건반을 누르는 소리, 어쿠스틱 기타의 줄을 튕기는 소리 등 사소한 장치들을 극대화하여 감상을 확장하는 것에 있다. 이런 장인의 사운드 메이킹이 앨범 곳곳에 숨결을 불어넣는다. 세간의 편견에 대해 분노하는 ‘mad woman’과 코로나바이러스가 가져온 혼란의 시기를 천천히 응시하는 ‘epiphany’, 쏟아지는 대중의 시선을 담담히 감내하는 ‘peace’가 2000년대 < Boxer >와 2017년 < Sleep Well Beast > 사이를 오간다. 진중하고 묵묵하게 미국 사회를 노래해온 밴드의 영향이다. 

동시에 < 피치포크 >의 설명처럼 ‘영원한 인디 앨범으로 기억될’ 작품은 아니다. 새 파트너들이 개성을 더하는 와중에도 테일러 고유의 진솔한 이야기 전달과 직관적인 멜로디, 빠르게 많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보컬은 여전한 팝의 영역에 있다. 아론 외에도 검증된 파트너 잭 안토노프가 앨범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  아무리 코로나 확산세 속 우울한 사회 속에서 치유와 위로를 원하는 이들이 많다 해도 < folklore >가 빌보드 싱글 차트 – 앨범 차트 – 아티스트 100위 차트를 모두 석권하는 기염을 토한 데는 분명 노메이크업 아래 치밀하게 재단된 팝의 터치가 있다. 

본 이베어로 활동하는 저스틴 버논과 함께한 ‘exile’ 역시 인디라기보다는 ‘인디를 받아들인 테일러’의 사례다. 테일러 커리어에서 가장 슬픈 러브송 중 하나일 이 곡은 닉 케이브 앤 더 배드 시즈의 잔향과 본 이베어 커리어 초창기의 포크가 혼합되어 있으나 곡 전개는 잔잔하되 빠르고 멜로디 역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감정을 전달하고 있다. 잭과 아론이 함께한 ‘Betty’도 2000년대 컨트리 테일러의 추억을 되살려 흥미롭게 다가온다. < Lover >의 잔향을 길게 이어가는 ‘Mirrorball’과 ‘August’도 달라진 테일러가 낯설 이들에게 단비처럼 여겨질 곡들이다.

빌보드 싱글차트 1, 4, 6위를 차지하고 앨범 전곡을 100위권 내 진입시킨 < folklore >의 대성공은 2010년대 끊임없는 변신과 도전을 시도한 테일러 스위프트의 행보를 연장하며 또 다른 형태의 진솔함과 아티스트 이미지를 부여한다. 컨트리 기반을 갖고 있다 해도 인디펜던트의 감성을 적극 수용하여 개인의 서사와 시대 배경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것은 아티스트의 견고한 세계와 탁월한 재능이 바탕에 있기에 가능한 작업이다.

다만 영미권 평론의 열광은 작품 자체의 평가보다 < Lover >의 수록곡 제목처럼 전례가 없었던 ‘잔인한 여름(Cruel Summer)’을 보내는 우리의 현실에 상당수 기반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흘려보내기, 편안한 감상의 의도일 수 있으나 개별 싱글 멜로디의 힘은 커리어 중 가장 낮다. ‘cardigan’, ‘august’, ‘betty’로 세 인물을 제시하며 본인의 이야기를 모두의 것으로 전유하려 하는 시도 역시 독특하지만, 테일러를 오래 지켜본 팬이 아닌 이상 아티스트 입장에 완전히 이입하고 공감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인디펜던트의 도움을 받아 꾸준히 다져온 자아의 가장 깊은 내면을 내비치는 < folklore >는 커리어의 정점보다 달라진 세계 속 새로운 기지개를 킨 작품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뜨겁게 소비하기보다 긴 호흡으로 오래 곁에 두고 싶다.

– 수록곡 –
1. the 1
2. cardigan
3. the last great american dynasty
4. exile (feat. Bon Iver)
5. my tears ricochet
6. mirrorball
7. seven
8. august
9. this is me yrying
10. illicit affairs
11. invisible string
12. mad woman
13. epiphany
14. betty
15. peace
16. hoa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