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특집 Feature

다가오는 무더위, 케이팝 10곡으로 여름 나기

올 여름에도 여행은 힘들 것 같다. 학생이건 회사원이건 꿀 같은 여름방학과 휴가를 이용해 잠시나마 무더위를 피해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한다. 작년부터 시작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우리들의 일상에서 여행을 빼앗아갔고 이번 여름도 어김없이 방구석 에어컨에 의지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그래도 여름이 왔다는 것을 온몸으로 실감하게 해줄 가장 쉬운 방법이 하나 있다. 매년 여름 태양의 뜨거운 열기를 시원하게 녹여주었던 아이돌의 신나는 여름 노래에 그대로 몸을 맡기는 것. 이들의 청량한 사운드로 우리들의 마음만큼은 시원한 해변으로, 휴양지 야자수 밑으로 단번에 보내줄 수 있다. 각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꿈같은 여름날의 시간을 보낼 수 없는 이번 여름, 우리들의 심적 휴양을 책임져 줄 아이돌 가수들의 대표 여름 노래 10곡을 선정했다.

에프엑스 ‘Hot summer’ (2011)

에프엑스의 여름은 뻔하게 한가로운 휴양지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교실, 사무실, 방구석에서 갇혀 무더운 여름을 이겨내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을 그리며 뜨거운 여름 그 자체를 노래한다. 수십 번 반복되는 가사 ‘Hot summer’는 듣는 이에게 시원함을 선사해 줄 생각이 전혀 없다는 듯 이열치열의 에너지로 무더위에 정면으로 맞선다. 보통의 여름 노래는 청량한 사운드의 시원함을 느끼기 위해 듣는다면 ‘Hot summer’는 견디기 힘든 폭염 탓에 정신이 살짝 혼미한 상태에서 듣기 제격이다.

‘Hot summer’의 매력 포인트는 10년이 지나도 그 뜻을 제대로 알 수 없는 가사에 있다. 특히 ‘땀 흘리는 외국인은 길을 알려주자 / 너무 더우면 까만 긴 옷 입자’라는 구절은 당시 가사의 논란이 발생했을 정도로 큰 혼란을 야기했다. 결과적으로는 알쏭달쏭한 가사가 귓가에 자꾸만 맴도는 중독성을 만들며 유일무이한 시즌송을 만드는데 한몫 했다. 십 년이 지났음에도 무더위에 미쳐버린 여름의 순간들을 이보다 화끈하게 표현한 아이돌 여름 노래는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

씨스타 ‘Loving u’ (2012)

쿨 이후로 등장한 2010년대 여름의 절대강자. 수 년에 걸쳐 한 계절을 점령해 버린 아이돌은 씨스타가 최초였다. 다른 걸그룹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건강미와 섹시함, 그리고 메인보컬 효린의 시원한 가창력으로 탄생한 이들의 여름 노래는 계절을 청각화 하는데 탁월했다. ‘Loving u’로 시작된 씨스타의 썸머송 연대기는 ‘Touch my body’, ‘Shake it’로 정점의 궤도에 올라서며 해체하는 순간까지 여름의 왕좌를 누구에게도 내주지 않았다.

씨스타와 여름의 상성을 본격적으로 보여준 ‘Loving u’는 사랑에 빠진 풋풋한 감정을 짧지만 낭만적인 여름의 순간으로 표현한다. 직접적으로 여름을 연상시키는 단어 없이 소유의 살랑거리는 목소리와 탄산 음료 같은 효린의 고음, 도입부부터 바다로 떠나고 싶게 만드는 브라스 사운드의 설렘만으로 완벽하게 만들어진 썸머송! 해체한 지 4년이 지났지만 여름만 되면 여전히 씨스타의 노래를 찾게 될 정도로 이들의 존재감은 강력했다.

샤이니 ‘View’ (2015)

샤이니의 상징색 펄 아쿠아 그린으로 수놓은 여름의 뷰. 뜨겁게 정열적이지도, 특별하게 시원하지도 않은 이들의 여름 노래에는 은은한 청량감이 감돈다. 당시로서는 케이팝에서 생소했던 딥 하우스 장르로 간결함을 추구하며 신나고 경쾌해야 한다는 여름 노래만의 고정관념을 깨부순다. 기승전결이 뚜렷하지 않은 곡의 구성은 자칫 심심함을 유발할 수도 있지만 공감각의 축제를 그린 종현의 언어유희, 감각적인 선율과 공간감을 채우는 멤버들의 보컬로 샤이니만의 개성이 담긴 여름 노래를 완성했다.

‘View’의 뮤직비디오에는 청춘들이 생각하는 낭만적인 여름 향기가 모조리 담겨 있다. 칠(Chill)한 여름의 푸른빛 색감, 자유로움을 상징하는 스트리트 올드스쿨 패션, 휴양지에서 친구들과 만끽하는 풀 파티까지. 이들의 청춘 로드 무비는 사운드에 몽환적으로 스며들어 물속에서 숨 쉬며 헤엄치듯 환상 속에 들어온 느낌을 준다. 수많은 여름 노래들이 있지만 ‘View’가 가장 세련된 아이돌 여름 노래이자 샤이니의 대표곡으로 꼽히는 이유.

태연 ‘Why’ (2016)
태연에게는 사계절을 대표하는 곡이 하나씩 있다. 봄의 ‘사계’, 가을의 ’11:11’, 겨울의 ‘This Christmas’, 그리고 여름의 ‘Why’. 통쾌함이 감도는 시원시원한 가창력과 청량한 트로피컬 리듬으로 표현한 ‘Why’의 여름은 불쾌지수 높은 계절의 스트레스를 단숨에 날려준다. 국내에서 트로피컬 장르가 유행하기 이전에 발매된 탓에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지만 후발주자들이 등장함에 따라 완성도 높은 여름 노래로서 평가 측면의 역주행이 예상된다.

‘Why’는 서사를 투영한 여름 노래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단순히 상쾌한 여름날의 휴가를 노래한 곡이 아니다. 도입부의 차분한 어쿠스틱 선율에서 후렴의 청량한 비트로 전환하는 구성은 갑갑한 현실을 벗어나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을 그린다. 이때 ‘Why’라고 끝없이 반문하는 태연의 목소리는 일상 탈출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지금 당장 떠나도 좋다는 용기를 심어준다. 올여름도 어디든 멀리 떠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렘을 부풀게 하는 노래.

여자친구 ‘너 그리고 나’ (2016)

학교를 졸업한 소녀들이 처음으로 맞은 자유분방한 여름. ‘유리구슬’, ‘오늘부터 우리는’, ‘시간을 달려서’로 이어져 온 ‘파워 청순’ 콘셉트의 연장선에 있는 곡이지만 강렬한 록 사운드와 박력 있는 기타 연주로 도로 위를 질주하는 듯한 시원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멤버들의 티 없이 맑고 담백한 음색은 순수한 사랑을 표현한 가사에 청량한 여름의 향기를 한 스푼 더해준다.

뮤직비디오 속 멤버들은 학교를 벗어나 친구들과 함께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공원에서 피크닉을 즐기며 풀 빌라로 여행을 가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 이 장면들과 서정성을 갖춘 여름 노래의 만남은 익숙했던 공간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는 여름 방학 시기를 떠올리게 한다. 약간의 긴장 그리고 나비처럼 날아오르고 싶은 설렘이 함께 마음을 일렁이게 하는 계절. ‘너 그리고 나’에 깃든 시원한 에너지는 수줍은 소년소녀가 이번 여름에 앞을 향해 힘껏 내달릴 수 있는 동력을 실어준다.

레드벨벳 ‘빨간 맛’ (2017)

2017년 이후 여름 노래의 ‘국룰’은 ‘빨간 맛’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름만 되면 TV 프로그램에서는 ‘빨간 맛’이 쉴 새 없이 흘러나오고 1020 세대에게는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여름 노래일 정도로 상징성이 짙다. 레드벨벳은 씨스타 이후 계보가 끊겼던 썸머퀸의 바통을 이어 받으며 ‘빨간 맛’을 시작으로 ‘Power up’, ‘음파음파’까지 여름과 떼어놓을 수 없는 그룹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빨간 맛’이 그린 여름의 기승전결은 완벽하다. 야자수 아래 달콤한 과일 주스를 마시며 뛰어노는 한낮부터 금세 노을이 진 해변의 저녁까지. 빠른 후렴구부터 느린 템포로 여운을 주는 엔딩의 구성은 어느 여름날의 하루를 다채로운 맛으로 담는다. 여름의 질감을 가진 통통 튀는 가사로 표현한 시원하고 짜릿한 음악은 그 해 여름을 상큼하게 보내기 위해 꼭 들어야만 하는 당위성을 가진다. 누군가 여름이 어떤 맛이냐고 묻는다면? 이제는 ‘빨간 맛’이라고 답할 것이다. 제목과 함께 흘러나오는 멜로디만으로 여름이라는 계절을 설명하기 충분한 강력한 썸머송!

위너 ‘Island’ (2017)

여름 노래의 진가는 당장의 뙤약볕 밑에서 들어도 눈앞에 하와이 해변에서 휴양을 만끽하는 장면을 그려줄 때 나타난다. 위너의 청량함을 대표하는 ‘Island’는 시원한 트로피컬 하우스 리듬으로 듣는 이들의 방구석 휴양지 여행을 가능케 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해외여행이 불가능해진 지금, 이보다 여행을 꿈꾸는 자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곡이 또 있을까.

‘Really really’부터 위너와 떼어놓을 수 없는 조합이 된 트로피컬 장르는 ‘비행기 모드’, ‘무인도’, ‘보물섬’과 같은 여행을 떠올리게 하는 가사와 함께 여름 휴가에 대한 욕구를 자극한다. 쉴 새 없이 부딪히는 플럭 사운드는 내적 댄스와 함께 흥을 유도하며 강승윤의 여유로운 보컬과 이승훈의 자유로운 래핑은 트로피컬 분위기에 한껏 취하게 한다. ‘Island’와 함께 도로 위를 드라이브하는 것만으로 휴양지에서의 기분을 조금이나마 만끽할 수 있다.

트와이스 ‘Dance the night away’ (2018)

트와이스의 상큼함과 청량한 썸머송의 멜로디는 실패할 수 없는 조합이다. 한 여름밤 해변가에서 신나게 댄스 축제를 벌이는 모습으로 담은 트와이스의 여름은 밝은 에너지가 넘친다. 휴양지의 에스닉한 의상, 맨발로 모래사장을 자유롭게 뛰어노는 듯한 역동적인 안무, 멤버들의 맑고 시원한 보컬로 초대하는 여름 파티의 현장!

흥겨운 브라스 사운드가 이끄는 후렴구의 단순한 반복은 쉽게 따라 부를 수 있어야 한다는 여름 노래의 공식을 따르며 강한 중독성을 유발한다. ‘바다야 우리와 같이 놀아 / 바람아 너도 이쪽으로 와’처럼 자연의 요소를 품은 휘성의 독특한 노랫말도 곡의 흥행 요인으로 작용했다. 2018년 여름을 접수했던 ‘Dance the night away’는 여름마다 차트 역주행으로 소환되며 매년 어김없이 더위가 찾아왔음을 알린다.

세븐틴 ‘어쩌나’ (2018)

2세대 보이그룹을 대표하는 ‘청량돌’이 샤이니라면 3세대에는 세븐틴이 있다. 시원한 여름 분위기의 노래를 소화할 때 가장 자연스러운 이들은 여름에 빼놓을 수 없는 그룹이다. ‘어쩌나’는 데뷔 초 ‘아낀다’, ‘만세’, ‘예쁘다’로 이어져 온 세븐틴의 청량 콘셉트를 이어가며 무더위를 산뜻하게 녹여주었던 썸머송이다. 이전의 곡들은 소년미를 부각하는데 집중했지만 ‘어쩌나’는 여름이라는 계절에 좀 더 초점을 맞추었다.

부드러운 스윙 리듬과 신시사이저로 차분하게 여름의 분위기를 담았음에도 세븐틴의 유쾌한 에너지는 그대로 다. 13명이라는 다인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현란한 안무, 뮤지컬 같은 다채로운 구성의 음악, 사랑에 빠져 허우적대는 풋풋한 감성에는 듣는 이를 기분 좋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가사 속 ‘찌더움이 없는 Summer’를 맞이하게 해 줄, 선선한 공기를 품은 파스텔 톤의 노래.

오마이걸 ‘Dolphin’ (2020)

발매 시기는 봄이지만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켠 것은 여름이었다. 앨범 수록곡에 불과했던 ‘Dolphin’은 은은하게 스며드는 가사 ‘da da da da da’의 나른한 음성으로 여름 바다의 물보라와 같은 파동을 일으켰다. 직접적으로 계절을 겨냥한 노래는 아니다. 사계절을 지나 일 년이 넘도록 사랑받고 있는 곡이지만 돌고래가 헤엄치는 모습이 연상되는 시원한 멜로디와 멤버들의 청아한 음색은 무더운 여름에 듣기 최적화된 세트다.

빠른 템포, 꽉 찬 사운드, 시원시원한 가창력으로 대표되는 썸머송의 흥행 공식과는 분명 거리가 있다. 하지만 강력한 중독성 한 방으로 여름 노래들의 모든 인기 요인을 압도한다.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안무 또한 너도 나도 ‘Dolphin’의 리듬에 몸을 맡기도록 만든다. 이번 여름에도 어김없이 많은 사람들의 플레이리스트에서 빠지지 않을 마성의 여름 사운드!

Categories
Album KPOP Album

태연 ‘What Do I Call You’ (2020)

평가: 3/5

여섯 곡이라는 단출한 구성에도 뚜렷한 변화를 챙긴다. < Purpose >가 쨍한 스포트라이트 아래 화려한 아티스트를 끌어내 ‘내가 이만큼 할 수 있다’를 노래했다면, < What Do I Call You >는 이와 대척점에 서 있다. 시린 코끝을 간지럽히는 햇살이 닿는 곳에서 단숨에 써 내려간 일기장을 읊는 듯한 앨범은 ‘이만큼만 해도 문제없는’ 태연을 담았다. 한 마디로 많은 것을 덜어낸 모습이다.

하나는 짙게 물들인 감정선을 배제한 것이겠다. 섬세한 표현이 응축을 거쳐 적당한 타이밍에 파열을 일으킨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선공개 곡 ‘Happy’를 원류 삼아 키워드를 단조로움으로 잡는다. 뭉근하게 우려낸 타이틀 ‘What do I call you’는 달콤쌉쌀한 목소리 질감과 변주를 절제한 미니멀 비트의 조응이 탁월하다. 담담한 온도로 일관되나 타고난 음색이 견인하는 흡인력은 그의 기량을 다시금 입증하는 요소다.

전반적인 흐름, 특히 어쿠스틱 기타의 차분함이 공존하는 ‘Galaxy’에서 특유의 비장감과 웅장한 스케일을 벗어 던지고 보컬 그 자체에 충실하고자 하는 모습이 감지된다. 즉, SM이라는 거대한 프로모션에서 ‘어느 정도’ 멀어진 상황. 데커레이션을 뺀 채 유려하게 타고 넘나드는 가창은 곧 아티스트의 지지대로 자리 잡는다. 이때 조곤조곤한 무드를 깨면서 공기를 환기하는 역할 ‘들불’을 중반부에 배치하면서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것 역시 만족스러운 점이다.

다만 숨 고르기 단계로의 정착은 필연적으로 팝 스타의 현 행보와 겹쳐지게 된다. 컨셉트 면에서는 테일러 스위프트, 음악적으로는 아리아나 그란데의 그늘이 드리울 때가 있다. 일례로 후렴구의 팔세토가 돋보이는 ‘To the moon’은 아리아나 그란데의 < Positions >의 잔향이 훅 들어오는 구간이다. 레퍼런스에 갇힌 정도는 아니나 ‘태연’이라는 브랜드가 갖는 기대치가 높기에 아쉬움도 동반한다.

안주하기보다 매번 다채로운 페르소나를 담으려 고민하는 모습이 여실히 드러난다. 꾸밈과 과잉 없는 ‘덜어내기’ 방식에도 감정표현의 영역은 더 넓어진 < What Do I Call You >는 노련함과 성실의 합작이다. 이제는 어떤 장르를 시도하더라도 무리 없이 자신의 이름을 새긴 깃대를 세운다. 다 제치고, 매서운 바람의 계절에 따스한 숨결을 불어 넣는 목소리가 깊이 가닿는 것만으로도 앨범은 생생해진다.

– 수록곡-
1. What do I call you 
2. Playlist
3. To the moon
4. 들불(Wildfire)
5. Galaxy 
6. Happy

Categories
KPOP Single Single

태연 ‘Happy'(2020)

평가: 3/5

태연의 이미지를 논할 때 꾸준히 테일러 스위프트나 아리아나 그란데 같은 팝 가수의 잔상이 언급되는 데는 적어도 몇 가지 이유가 있겠다. 인상을 나열하면 떠오르는 시원한 가창 소유자나 독자적인 보컬리스트, 그리고 다양한 콘셉트를 소화하는 만능 엔터테이너의 면모. 여러 페르소나를 겸임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선행된 아티스트들의 기시감이겠지만, 물론 그 기저에는 트렌디함을 추구하며 유행하는 팝 흐름을 즉각으로 반영한 SM 프로덕션이 있었다.

‘Happy’는 분명 그간 태연이 구가해온 스타일과는 결이 다른 곡이다. 발라드긴 하나 상당히 팝적인 사운드스케이프를 띠고 있으며, 히트곡 ‘I’나 ‘Why’처럼 내지르는 포인트 지점은 전무하고 ‘사계 (Four seasons)’와 같은 전형적 기승전결을 따르지 않는다. 마치 최근 발매된 테일러 스위프트의 ‘Lover’의 전달 방식과 비슷하다. 천천히 쌓아 올려 코러스로 터트리는 방식보다는 곡 전반에 깔린 일관된 감정을 유도하는 방식. 소위 곡 전체를 하이라이트로 만들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예전 곡들에 비해 훨씬 본격적으로 팝의 분위기를 풍기지만, 어느 정도 친절한 동기화를 거친 덕에 변화에 대한 부담이 덜하게 느껴진다. 작중 두근거림을 표현한 브라스 진행이나, 편한 기조에 걸맞은 노랫말 등 상당히 직설적이고 투박한 표현법이 익숙한 ‘케이팝’ 데이터를 전송하는 셈이다. 낯선 방식으로도 음원 사이트 정상을 차지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태연의 이름이 아니었다면 성공하기 힘든 곡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태연이기에 소화할 수 있었던 곡이기도 하다.

Categories
Album KPOP Album

세정 ‘화분'(2020)

평가: 3.5/5

세정은 나보다 남을 향했다. 대중은 < 프로듀스 101 >의 무한 경쟁 속, 긍정적이고 털털한 자세로 자신보다 타 연습생들을 위로하고 ‘국민 프로듀서님’들께 큰 절을 올리는 세정의 이타적인 매력을 사랑했다. 첫 솔로 싱글 ‘꽃길’ 역시 나를 믿고 사랑해준 ‘누군가’를 위해 노래한 곡이었다. 그랬던 그가 ‘나는 초록을 담은 / 작은 화분 하나가 필요해’라 차분히 앨범의 막을 올리는 모습이 새롭다. 남을 향하기 전, 나를 마주하는 세정이다.

선우정아가 곡을 만들고 바버렛츠 안신애와 함께 노랫말을 쓴 ‘화분’은 정갈하다. 미니멀한 피아노와 어쿠스틱 기타의 선율 위 세정은 ‘초록을 닮은’ 싱그러움과 ‘사람들이 모르는 그늘진 마음’을 어루만지는 위로의 목소리를 꾸밈없이 전달한다. 감정 과잉, 근거 없는 긍정의 발라드 곡이 피로를 유발하는 요즘 시대에 나 자신을 보듬으며 타인을 품어내는, 오히려 ‘덜어내기’에 가까운 깨끗한 곡이 반갑다. 

‘화분’ 아래 이어지는 수록곡들도 일관된 테마 아래 솔로 세정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꽃길’을 닮은 발라드 ‘오늘은 괜찮아’는 아이유의 ‘Love poem’처럼 어둡고 무력한 길을 걷는 이들에게 힘이 되어줄 곡이다. 첫 후렴부를 팔세토 처리하며 여린 감성을 전달하고 마지막 후렴부를 무리 없이 강하게 소화하는 세정의 역량도 돋보인다.

태연의 솔로 커리어가 겹쳐가는, 밝은 톤의 모던 록 ‘Skyline’과 그루비한 ‘오리발’으로 단조로움을 피하고 새로운 면모를 더하는 구성도 좋다. 곡 작업에 적극 참여했기에 감각적인 이 두 곡은 물론 애절한 ‘꿈속에서 널’까지 준수한 가창을 보여주는 것도 덤. 

2016년 ‘꽃길’과 2018년 구구단 활동 이후 1년 남짓한 공백기 동안 고민이 많았을 터다. < 화분 >은 급하게 첫 발걸음을 내딛는 대신, 처음부터 차근차근 다시 걸어 나가는 길이다. 작은 방 안의 화분을 가꾸듯 천천히 자신을 어루만지며 보다 많은 이들에게 닿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화려한 밖을 향해 꿋꿋이 웃음 짓던 세정은 이제 시선을 안으로 돌리며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고자 한다. 이미, “너도 그”럴지도.

– 수록곡 –
1. 화분 
2. 오늘은 괜찮아 
3. Skyline 
4. 오리발 
5. 꿈속에서 널

Categories
KPOP Album

태연 ‘Purpose’(2019)

평가: 3.5/5

가능성과 한계, 그 한끝 차

어느덧 솔로가수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게 되는 그. 비교적 단시간에 정체성을 다질 수 있었던 이유는 몇 가지로 압축해 볼 수 있다. 오롯이 가수라는 역할에 집중했던 점. 드라마 OST 히트로 대중성과 존재감을 획득했다는 점. 여기에 싱글 및 EP가 득세하는 시대에 완성도 높은 앨범으로 평단의 우려를 불식했다는 것까지. 그런 점에서 1집 < My Voice >는 멋진 시도이자 걸출한 결과물로서 자리한다. 다양한 사운드 스케이프와 이를 유영하는 그의 목소리. 그룹 시절의 영광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과 달리, 자신과 팀을 정확히 분리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빛나는 전례가 있었기에 ‘불티 (Spark)‘에 살짝 실망했던 것도 사실이다. 에밀리 산데의 ‘Hurts’와 아델의 ‘Rollin’ in the deep’을 뒤섞은 듯한 강한 레퍼런스가 감지되었던 탓. 이를 비롯해 테일러 스위프트나 스테이시 오리코 등 여러 영미 여성 팝 싱어들이 머릿속을 오가는 초반 트랙 중에서도 유난히 기시감이 강한 트랙을 타이틀로 선정했다는 점은 분명 마이너스 요인이다. 다소 어두운 무드와 중저음 중심의 가창 역시 낯설어 적응을 어렵게 만드는 부분.

반복적인 감상을 거치며 목소리에 집중할수록 작품의 진가가 드러난다. 강한 비트 중심의 곡조를 홀로 소화해내며 스펙트럼을 넓혔다는 것, 디테일한 보컬 디렉팅으로 곡마다, 소절마다 다른 운용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높은 완성도의 기반이 된다. 이를 한꺼번에 보여주는 곡이 바로 ‘Love you like crazy’다. 초반부터 피아노의 저음부가 강하게 던져 짐에도 그 역시 노래에 힘을 싣고 멋스럽게 음을 꺾으며 정면으로 부딪힌다. 후렴에서는 의도적으로 바이브레이션을 억제하고, 가상과 진성의 교차를 통해 감정의 파고를 만드는 모습은 가히 인상적이다.

보다 느린 BPM을 타고 음절을 충분히 끌어 냉소적인 표정을 연출하는 ‘하하하(LOL)’, 흑백영화를 연상케 하는 빈티지한 반주 속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분하는 ‘Better babe’ 등, 해석력에 기반한 감정표현에도 능숙하다. 절정부를 가성으로 처리해 보다 풍성한 정서를 유도한 ‘Wine’까지, 러닝타임엔 가수의 생각과 태도가 자연스럽게 묻어나온다. 단순히 곡을 받아서 부르는 것이 아닌, 발전의 계기로 삼아 다시 한번 진화하겠다는 그런 의지 말이다.

초반 공격적인 어프로치로 모험의 여정을 지나왔다면, 후반부는 본래의 매력을 어필하는 힐링타임이다. 재즈 기반의 ‘Do you love me’는 첫 감상 시 특히 좋았던 곡으로, 현악세션과 함께 어우러지는 가창을 통해 장르적인 음악에도 특화된 그를 만나볼 수 있다. 리드미컬한 곡조 아래 시티팝과 캐롤을 반씩 섞은 듯한 아련함으로 다가오는 ‘City love’까지. 앞에서 이야기한 장점을 러닝타임 끝까지 유지하며 탄탄한 수록곡들을 빚어내고 있다.

이르게 많은 성과를 거둔 그다. 중간중간 감지되는 유사성은 다소 아쉽지만, 그에 매몰됨 없이 좋은 작품을 완성했다는 것은 뮤지션 자체의 역량뿐만 아니라 작업과정에서의 수많은 고민 역시 수반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SM이라는, 퍼포먼스 그룹 중심의 컨텐츠를 기획하는 곳에서 이 정도의 솔로작을 이끌어냈다는 점은 분명 박수 받아 마땅하다. 다만 동시에 한계 역시 분명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 Purpose >에서의 그의 역량은 분명 빛나지만, 외국 작곡가를 통한 무국적 음악을 지향하는 현재의 관습적인 시스템 안에서 이 이상 나아갈 수 있을지 약간의 우려가 동반되는 탓이다. 보아의 < Woman > 리뷰에서도 언급했듯, 고착화된 케이팝 프로덕션이라는 것은 그룹을 넘어 자신의 음악을 하려는 이들에게 있어 뜻하지 않은 장애로 다가오기도 한다.

전작의 ‘Time lapse’나 ‘When I was young’, 이번 앨범의 ‘Do you love me’ 같이 송캠프 체제에서 살짝 비껴가 있는 곡들이 좀 더 마음 속에 남아있는 것을 보면, 자신의 정서를 자유로이 이야기할 수 있는 이들과의 협업 및 소통이야말로 지금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들이 아닌가 싶다. 아이돌이기에, SM이기에 받을 수 있었던 프로덕션 및 시스템에 대한 혜택 및 도움을 잠시 내려놓고, 본인 내면의 언어와 숨결이 동료 뮤지션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해방되는 그런 작품을 만나길 바라는 이기적인 욕심을 조심스레 가져본다. 그리 멀지 않았으리라 본다.

– 수록곡 –
1. Here I am
2. 불티 (Spark)
3. Find me
4. Love you like crazy 
5. 하하하 (LOL)
6. Better babe 
7. Wine
8. Do you love me? 
9. City love 
10. Gravity 
11. blue
12. 사계(Four season)